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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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 9월 23일 - 14년 8월 19일)는 제정 로마의 초대 황제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에게 암살당한 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브루투스 일파를 제거한 뒤 이어진 내전으로 안토니우스까지 제거하고는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다.

타고난 이름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Gaius Octavianus)
황제 이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제위 기간 기원전 27년 1월 16일 - 기원후 14년 8월 19일
다음 황제 티베리우스

[편집] 생애

옥타비아누스는 지방 소도시인 벨레트리 출신으로 카이사르의 조카 손자(누이의 손자)로 그의 후계자로 임명되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었다.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9살이었다. 카이사르가 그를 양아들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카이사르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는 카이사르의 재산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성대한 잔치를 열흘 동안 벌였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시민 모두를 초대하여 각자에게 돈까지 나누어 주었다. 이 일로 인해 옥타비아누스는 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군대 또한 그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BC 31년 옥타비아누스는 악티훔 해전에서의 승리를 끝으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섬멸하는 동시에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켰으며 그 공로로 원로원에 의해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또한 개선장군이라는 뜻의 '임페라토르'라는 칭호도 받았다.

BC 37년 아우구스투스는 형식적으로 공화정 체제로 돌아갔지만, 카이사르한테 배운대로 여러 행정관의 권력을 자기 한 사람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군대와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였다. 실상 가볍게 위장된 왕정인 '원수정치'로 아우구스투스는 절대 권력을 장악하였고, 역사상 서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던 200년간의 평화시대인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구가하여 로마 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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