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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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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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트로츠키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러시아어: Лев Дави́дович Тро́цкий[?], 1879년 10월 26일(구력)/11월 7일(신력) - 1940년 8월 21일)은 볼셰비키 혁명가이며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그의 사상을 따로 일러 트로츠키주의라고 한다. 보통 레프의 영어식 이름을 따서 레온 트로츠키라고 불린다.

초기에는 멘셰비키였다가 볼셰비키로 전환, 사회주의10월혁명에서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당의 지도자 중 하나로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했다. 초대 소비에트 연방의 외무부 장관을 맡았으며 붉은 군대의 창립자이다.

레닌의 사후 이오시프 스탈린과 이론적인 차이가 생겨 권력투쟁을 하게 되었다.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으로 세계 사회주의혁명을 계속 진전시킬 것을 주장했지만,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을 튼튼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후, 공산혁명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트로츠키의 세계혁명이론은 서유럽의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혁명가들에게 혁명이론으로 지지를 받았으나, 결국 그는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뒤 소련에서 쫓겨났다.

말년에 멕시코에서 거주했으나, (스탈린이 사주했다고 여겨지는) 암살자에 의해 얼음 도끼로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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Лев Троцкий

우크라이나의 부유한 농가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9년 남부 노동자 동맹을 조직했다가 체포돼 시베리아로 유형당했다. 1902년 탈출에 성공한 뒤 런던에서 혁명가 레닌과 처음과 만났다. 초기에는 레닌의 훌륭한 조력자로 "레닌의 곤봉"이라는 별명까지 얻지만, 곧 레닌의 냉혹한 노선에 실망해 멘셰비키에 가담함으로써 레닌과 오랜 반목이 시작된다. 1905년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의장이 된후 다시 체포되지만 곧 탈출한다. 이후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통합을 도모하나 실패하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1917년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여성들이 주도한 민중혁명인 2월 혁명러시아로 귀국한 트로츠키는 레닌과 다시 손잡고 전쟁반대와 임시정부 타도 투쟁을 벌이다가 볼셰비키당에 정식으로 입당하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으로 선출된다. 이어 무장봉기를 조직해 10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소비에트 러시아의 외무장관이 된다. 1918년 붉은군대 즉, 적군(赤軍)을 창건, 황제파인 백군(白軍)과의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1919년 코민테른 선언문을 기초한다.

1922년 트로츠키는 당의 제 2서열이자 후계자 직위인 소비에트 인민위원회 부의장을 맡으라는 레닌의 권유를 사양한다. 이 무렵 레닌은 스탈린을 축출하고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1923년 트로츠키는 몇몇 군 고위 장성들로부터 스탈린을 몰아내고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제안을 받지만, 비합법적 폭력을 사용할수는 없다며 이를 거절한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뒤, 트로츠키와 스탈린은 당의 노선을 두고 본격적으로 대립한다. 스탈린은 10월 혁명 당시 트로츠키의 역할을 축소 왜곡하고 트로츠키주의레닌주의에 적대적인 사상이라고 비판하는 등 갖은 날조와 중상으로 트로츠키를 고립시킨다. 결국 1927년 트로츠키는 당에서 제명당하고 1929년 국외로 추방된다.

트로츠키는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 멕시코, 빈 등지를 떠돌며 끝까지 스탈린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反 스탈린주의 투쟁을 벌인다. 이 시기 그는 <나의 생애>(1930), ,<러시아 혁명사>(1931), <스탈린주의 날조학>(1932), <배반당한 혁명>(1936)을 잇달아 발표한다. 특히 트로츠키 최후의 명자라 불리는 <배반당한 혁명>(1936)은 소련 인민의 정치혁명을 선동하는 내용으로 이에 경악한 스탈린은 트로츠키주의를 완전히 절멸시키기로 결심한다.

1936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가족과 거의 모든 측근을 차례로 잃은 트로츠키는 1940년 8월 스탈린이 남긴 자객에 의해 등산용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때즈음 이미 죽음을 예감한 트로츠키는 유언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트로츠키의 유언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아래 투쟁해왔다. 내가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들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1940년 2월 27일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씀

참고 서적 : 무장한 예언자(출판사 : 필맥, 저자 : 아이작 도이처, 역자 : 김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