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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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시(咸興市)는 북조선의 도시이자, 함경남도의 도청소재지로 거듭나고있다. 함경만과 가까우며 산지가많아 쌀농사가 어렵고, 어업이 발달했다. 1999년 현재인구는 98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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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지리

최고봉은 형제봉이다. 주요하천은 성천강이고 동해에 접해있다. 해안에 접해있는곳으로 이곳은 기온이 따뜻하다. 그리고 함경산맥이 바람받이역할을 해주는곳으로 푄 현상도일어난다.

[편집] 연혁

함흥시는 기원전 1세기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8세기이후에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성덕왕 20년에 사건을 기록한 삼국사기 제 8권에 의하면, "하슬라주(오늘날의 강릉시) 이북에 군사2천여명을 선발하여, 하슬라주와 용흥강일대를 지키도록 했다"고 하였다.

한편, 발해의 5경제도에 속해있었던남경 임해부가 함경남도 함흥시와 북청군, 그리고 락원군에 존재했을수있다고 추정된다.

고려때 "함주"로 불렀지만, 영토가 된것은 단기간이었고, 원나라의 쌍성총관부에 "함흥"이 속했기때문에, 실제로 함흥시가 고려의 영토가 된적이 없었다. 공민왕1365년에 원나라가 홍건적에게 막대한손실을 보고있는것을 기회로 해서 영토를 넓혔고 이제야 함흥이 고려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초기 함흥시는 여진족과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요충지가 되였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의 지위에서 물려나서, 1403년까지 머물고있었던곳이 바로함흥시이다.

리조시대후기와 대한제국시기에 함흥시는 함경남도에 소속되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합병당한일제 시대에는 함흥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복전에는 일본인거주지였다. 그 후 1945년8월15일 일본의항복으로 해방이되면서, 쏘련의관할지역으로 되여있었다가, 북조선이 1948년9월9일에 건국하고, 지방행정개혁을 실시하면서 함경남도도소재지가 되었다.

[편집] 인문정보

함흥시한국전쟁때 공공건물과 주택들이 파괴되면서 막대한손실을 잃다가, 천리마운동때 2차선도로망을 구축하고 고층아빠트가 들어섬으로서, 새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새시가지는 대부분 공산주의도시들이 그렇듯 역시 계획도시의 형태를 보이고있다. 북조선은 1960년대 함흥시를 함흥직할시로 승격했으나, 1970년대 다시 함경남도도소재지가 되었다. 이 때 새로생긴도시가 함주군, 신흥군, 락원군등이다. 2002년에 북조선정부는 흥남시를 승격하여 함흥시의 공업기지들은 양분했고, 동흥산구역과 용흥산구역 등 함흥시의 각 행정구역들을 폐지했다. 이 곳은 북조선 영화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촬영지이다. 2005년에는 흥남시가 함흥시로 통합되였다.

[편집] 산업

함흥평야에선 이 생산된다. 주변지역에선 사과가 생산된다. 쌀외에도 보리 · · ·감자도 생산된다. 목재시장을 형성한다. 관북지방에선 소비도시적인도시이다.

[편집] 교통

함남선, 신흥선, 장진선등은 목재수송에 이용된다. 그외에도 도로가 위치해있다.

[편집] 교육

  • 함흥대학
  • 의과대학교
  • 공업대학교
  • 함흥수리동력대학
  • 고려약학대학

[편집] 같이 보기

  • 함흥만
  • 만세교
  • 함흥평야
  • 함흥랭면
  • 함흥차사
  • 남경남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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