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욱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강량욱(康良煜, 1904년 12월 7일 ~ 1983년 1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평안남도 대동 출생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후반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도 수학했다.
그는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의 육촌 동생이다. 1923년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중퇴하고 강돈욱이 설립에 참여한 창덕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김일성의 담임으로서 그를 가르치기도 했었다. 이에 따라 광복 후 김일성이 귀국하고 집권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가까운 자문역을 맡았고, 북조선 내 기독교인과 친공 지식인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1945년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에 참가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1946년 북조선기독교연맹(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전신) 중앙위원장, 북조선 정권의 모체가 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1948년 최고인민위원회 1기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했다. 조선민주당 인사들이 월남하고 조만식이 사망한 뒤로는 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1959년)을 맡았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요직에 임명되어 1960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71년 대외문화연락협회 위원장, 1972년 국가 부주석을 지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외교 활동에 활발히 참가했으며, 1982년 김일성훈장을 서훈 받았다.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부인은 평남 숙천 출신의 송석정이며, 차남인 강영섭은 현 북조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장이다. 1946년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그의 아들과 신부가 강량욱을 노린 우익 테러리스트들에게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