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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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이란 용어는 그리스어 메타(Meta: 저 넘어, 또는 다음에 또는 후에)와 퓌시케(phusike: 물리, 자연)의 합성어이다. 이 애매한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으나, 일반적인 사용으로는 철학의 한 분과를 가리킨다.

  1. 이 용어가 쓰인 시원적 의미에서 보면, 기원전 1세기에 로도스 출신의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붙여진 이름, 《메타퓌지카》의 번역이다. 이 《메타퓌지카》라는 명칭은 '물리학 이후'라는 뜻으로, 안드로니코스가 본래 제목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이 책을 내용상 《물리학》 다음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기 대문이다.
  2. 보다 넓은 의미에서, 형이상학이란 인식을 말한다. 이 인식은 물질적인 자연적 실재성을 넘어서 비물질적 실재성에 대하여 종교적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파악하는 것이다(예를 들면, 신, 영혼, 플라톤의 이데아).
  3. 또한 형이상학은 절대자를, 다시 말하면 사물의 비(무)조건적 근본을 목표로 삼으로면서, 최고의 과학 또는 최초의 과학으로서 정의된다.
  4. 만일 현상을 관통하여 또는 현상을 넘어서 사물의 존재 또는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형이상학은 "존재하는 한 존재의 학문" 또는 존재론이다.
  5. 게다가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비판적 의미로 또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용어는 추상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는 사색(사변)을 의미하며, 따라서 한가로이 한담하는 언어 훈련정도 또는 실증과학의 객관적 기준을 회피하는 환상을 의미한다.

목차

[편집] 제일철학

중세의 과정에서,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였으며, 이 명칭은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이 명칭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철학"이라 불렀던 것으로 신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는 제일 원리와 제일 원인의 학문으로 쓰인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 용어 용법은 "형이상학"과 "제일철학" 사이에 동등한 의미로 고정되었다. 데카르트는 이 두 표현을 같은 것으로 사용했는데, 그의 한 저서의 프랑스어 제목이 《형이상학적 성찰(Meditation metaphysique, 1641)》인데 비해 라틴어로는 《제일 철학의 성찰(Meditation de philosophie premiere)》것이 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두 가지 사실을 결합, 즉 비물질적 실재성에 대한 인식(신, 영혼)과 인식의 전형에서 우선성과 우월성을 결합시키는 의미로 나아갈 것이다.

형이상학에서 물질의 내재적 에너지, 우주의 힘, 자연, 세계, 영혼, 신, 사랑 등으로 표현하는 용어는 비물질적 실재성에 대한 하나로의 규정이 있을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편집] 존재론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속에서 다음과 같은 명칭을 지닐 수 있는 학문의 다른 정의를 찾을 수 있다. 즉 "존재인 한에서 존재의 학문" 즉 존재론이다. 이것은 이러 저러한 측면의 과학도 아니고 존재의 속성을 규정하는 과학도 아니며, 존재를 있게 하는 그 무엇, 즉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존재의 근원을 둘로 상정할 수 있다. 하나는 신앙자들의 초월적 존재, 다른 하나는 자연 내재론자들의 자연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정의된 존재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곳에서 말했던 제일철학과 동일시 할 수 있다. "존재인 한에서 존재"는 가장 완전한 존재 또는 사물의 제일원리일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단어는 제일 철학 또는 존재론과 연합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 가지 용어는 서로 교환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형이상학과 제일철학 사이에,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과 존재론 사이에 차이를 확립하려할 것이다. 이 때 존재론이란 존재의 특별한 전형 즉 비물질적 존재 또는 제일 존재에 대해 인식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일반적인 범주들에 관해 반성하고자 한다(존재란 무엇인가?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 측면에서 그리스인들 이래로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는 존재 망각의 역사이다. (존재 망각의 역사는 거꾸로 존재자들의 범주에 한정된 여러 과학들의 성립과 전개를 위한 제 과학의 성립의 역사이다. 그래서 존재 자체 또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는 감추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 인간 존재(인격)에 대해 질료형이상학적으로 규정한 것이 베르그송이다.) 말하자면, 최고의 존재를 고려해서 존재의 문제에 대한 은폐(recouvrement)의 역사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에게 존재 신학(onto-theoogie)라는 자격을 부여했다. (사실 형상형이상학(존재신학)은 초월적 신을 단위로 완전한 외적 존재를 다룬다면, 질료형이상학(경험존재론)은 인간을 단위로 내재적 발생과 변화 즉 생성을 다룬다.)


[편집] 최고의 과학 즉 최고의 환상(Science supreme ou supreme illusion)

18세기부터 실험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형이상학에 관한 비판적 여러 담론들, 예를 들어 데이비드 흄의 담론 등의 형성이 성행하였다. 순수히 연역적 확실성을 지닌 수학과 경험을 통하여 이론을 검증하는 자연학(물리학)의 측면에서, 연역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는 형이상학이란 과학에는 더 이상의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이같이 주장된 형이상학이란 과학은 실제로 인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인식하고자 하는 환상처럼 보이게 된다.

19세기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는 이런 비판을 전개할 것이다. "실증적 정신" 또는 과학적 정신은 절대적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또한 현상의 최초나 최종 원인을 탐구하는 대신에 현상들 사이에 관찰 가능한 관계를 탐구하면서, "형이상학 정신" 대신에 자리를 차지하였다.

20세기에, "신실증주의" 즉 빈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불가능한 인식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언어의 비논리적 사용의 결과로 생겨나서, 의미가 박탈된 명제들로 되어 있다고 비판을 강화하였다.

[편집] 한계와 새로운 (질료)형이상학이 가능성

임마누엘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전개했다. 형이상학은 이성의 세 가지 주요한 이념(Idees, 관념)을, 즉 영혼, 세계, 신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그 형이상학은 이 시도에서 좌초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물자체(Ding an sich)는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상들을, 즉 현상들이 경험에 드러나는 대로의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베르그송은 물자체를 인식 가능하게 하는 인식방법이 있음을 인정하고, 또한 인식가능한 물자체의 단위(통일성 있는 존재)를 인격(자아)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존재론도 인식론도 베르그송의 질료형이상학에서 성립한다. 존재는 자아라는 지속하는 단위이며, 인식방법은 내재적으로 직관(공감)과 외적 이마쥬들과 관련하여 지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자체의 이마쥬에 대한 인식, 즉 공감과 대상과 관계에 있는 이마쥬들 사이의 인식, 즉 지성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환상(즉 칸트가 이름 붙인 "초월적 환상"은 이성의 관념들(Idees)을 인식의 대상으로 변형하는 변증법에서 이루어 진다. 우리는 프로이트정신분석학과 관련하여, 이성의 관념들을 대상으로 변형하는 것을 환상(fantasme)이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라캉의 견해를 빌려서 상징이라 부를 수 있다. 이 관념과 현실과의 차이뿐만 아니라, 관념과 내재적 실재성의 차이에는 이미 분열(schizo)현상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환상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이 환상은 통일성(unite, 단일성)을 염려하고 또한 통일성을 기초하는 무조건적 원리우리가 보기에 절재적 완전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의 자연적 경향에 응답한다. 베르그송의 경우에 이런 인식의 자연적 경향은 지성이 물질성에 대한 자연적 경사이며, 질료의 내재성에 대한 자연적 경사와 방향이 반대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플라톤 이래로 칸트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전도된 심리학이라 부른다.

영혼은 내재적 삶을 즉 사유하는 주체의 현상들에 대한 무조건적 통일성(unite)을 표상한다. 세계는 원인들에 대한 무조건적 총체성(totalite)이며, 신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단일성(unite)이다. 이리하여, 형이상학적 인식에 대한 기획(projet)은 항상 좌초한다 하더라도, 형이상학은 흄이나 실증주의자가 말했던 것처럼, 착오, 결함, 또는 인간 정신과 언어사용의 유치함이 아니다.

반대로 형이상학의 경향성이란 이성의 가장 높은 이론적 관심들에 대한 만족할 만한 탐구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도 형이상학으로 가능한 과학 또는 모든 과학에서 가장 높은 과학을 만든다는 것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형이상학은 물론 환상적인 무조건적 인식을 거부할 것이고,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이 일반적 도식으로 그리려했던 인간 인식에 대한 조건을 완전하게 하는 학문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편집] 핵심 저술

  • 데카르트, 《형이상학적 성찰(Meditation metaphysique, 1641)》
  •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 칸트, 《미래 형이상학 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 마르틴 하이데거 『질문 I(Questions I)』의「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metaphysique?)」

[편집] 인접용어

존재론, 제일철학

  • 대립용어: 경험, 실증주의
  • 상관용어: 절대, 인식, 본질, 존재, 환상, 무(비조건, inconditione), 과학,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