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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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安浩相, 1902년 1월 23일 -1999년 )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된 바 있으나, 병중(病中)이어서 체포는 면하였다.

1946년에 결성된 문필가들의 문화단체인 전조선문필가협회(全朝鮮文筆家協會)의 학술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에 조직된 조선민족청년단의 부단장을 맡았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제시한 '하나의 국민(一民)'으로 대동단결하여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통치이념인 일민주의(一民主義)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였다.

1976년에는 유봉영·박창암·이유립 등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를 조직하였다.

국민교육헌장의 사상을 구축하는데 박종홍과 함께 참여하였다.

전 임
초대
제1대 문교부장관
1948년 8월 - 1950년 5월
후 임
백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