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글 전용은 한국어를 적을 때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만을 쓰는 것을 말한다. 한자어를 쓰지 않는 국어 순화와는 다르다.
목차 |
[편집] 조선 시대
한글은 조선 세종이 만들었다. 세종은 한자를 대신하는 문자로서 한글을 만들었고, 한자를 잘 모르는 백성, 특히 여성과 아이를 위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수구파 유학자의 사대주의 사상 때문에 한자 지상 주의 때문에 공용 문서에 한글을 쓰지 않아서 조선 시대 공문서는 모두 한문으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한글은 일반 백성이나 여자들 사이에 퍼져 문맹 퇴치율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문자로 백성들은 나름대로 문서를 만들어 노래나 시 등을 기록했다. 이 영향을 받아 조선 시대 후기가 되면 양반들도 한글로 문예 활동에 해당하는 것이 많이 등장해, 소설에서 한자+한글 혼용으로 적힌 소설, 또 ‘한자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한글만으로 적힌 작품이 나타났다. 이러한 소설 중에는 조선 문학의 최고라고 말하는 ‘춘향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받아 개국 후의 조선 시대 말기에는 한글과 한자가 섞인 문장이 공용 문서에 나타났다.
[편집] 일제 강점기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는 일본어가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중기까지는 한국어도 한 과목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 수는 많지 않았고 한국어나 한글에 대한 사회 압력도 많이 있었다. 그런 중에도 사립 학교나 서당처럼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세운 교육 기관에서는 국한문혼용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 상태에서도 한글은 살아남았다.
[편집] 국한문 혼용과 한글 전용의 논쟁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됐다.
이승만 시대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 교육을 했지만, 박정희 시대인 1970년에는 한자 폐지 선언을 발표, 보통 교육에서 한자 교육을 전면 폐지했다. 그러나 언론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대가 강해서 1972년에 다시 한자 폐지 선언을 철회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이 부활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한문은 선택 과목이 됐으며 시험에도 거의 관계가 없고, 실제 사회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은 금지되어 아이에게 사적으로 한자를 가르친 초등학교 교원은 국책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징계 면직 같은 무거운 벌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신문·잡지도 점차 한자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한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세대가 많았기 때문에 한자를 섞어 쓴 출판물이 팔리지 않게 된 점이 한 이유라 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후반부터 한자 교육 부활을 요구하는 소리가 더해지자,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공문서에 한자를 섞어 쓰는 데에 손을 들어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로 도로 표지나 철도역·버스 정류소에서 한자 병기는 실현되었지만, 한글 전용파의 저항이 완강해서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 의무화나 젊은 층에서 한자 사용 일상화는 실현되지 않았다. 서울 시내의 버스 정류소의 한자 표기는 버스 개편으로 없어졌다.
공교육에서 한자 교육이 잘 추진되지 않자, 한자의 필요성을 느끼는 한국 국민들은 사교육으로 한자를 배우고 있다.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은 한국어에서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이 70% 또는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50% 가량이라 한다.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한자어 낱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한글 전용인지 한자 혼용인지에 대해서는 여론 조사에서도 국론이 양분되어 왔다. 정치가들도 이것을 쟁점화하기에 난색을 보여 광복 이래 계속된 이 논쟁을 '문자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편집] 같이보기
분류: 출처가 필요한 문서 | 중립적 시각 분쟁 | 한국어의 표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