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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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란(金活蘭, 1899년 2월 27일 ~ 1970년 2월 10일)은 한국의 여성교육자이며 친일 인사이다. 아호는 우월(又月). 본명은 '김기득(金己得)'이며, '활란'이라는 이름은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어릴때 기독교에 입교하면서 '헬렌(Helen)'이라는 세례명을 받아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인천 출생으로 이화학당의 대학부를 1918년 제1회로 졸업하고 이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각각 미국에서 학사(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 석사 학위(보스턴 대학교)와 박사 학위(컬럼비아 대학교)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전 교수가 되었다. 박사 학위 논문은 한국의 농촌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국내 여성으로는 최초의 박사가 된 사람으로, '여성박사 1호'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부터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조선부인연구회,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에 참여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언론보국회, 임전보국단을 통한 강연, 《동양지광》, 《조광》에 대한 기고로 전쟁 지원을 선동하는 친일 활동을 벌였다.

광복후에는 우익 운동에 나서 반탁 운동 단체인 독립촉성중앙부인단에 참가했다. 이후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학교의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여성 교육계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등 여성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국제연합 한국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한 공로로 일등수교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이화여대에는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저서로 자서전 《그 빛속의 작은 생명》(1965)이 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해 발표한 친일파 목록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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