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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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1982년 4월 2일,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하고 있던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영국포클랜드 섬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만에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종료되었다.

목차

[편집] 배경

Sea Harrier
실제 크기로
Sea Harrier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이 섬은 이미 19세기 초에 아르헨티나가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면서 정착민을 파견하는 등 주권을 주장하였으나 영국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하여 1832년에 강제로 아르헨티나 정착민들을 추방하면서 그 분쟁의 씨앗은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비록 150여년동안 아르헨티나가 이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영국과 갈등을 빚어오기는 했지만, 1982년에 아르헨티나군이 무력으로 점령한 것은 영유권 때문이라기보다,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행해진, 내부 문제를 외부의 위기로 해결하려는 고전적인 정치 수단의 일환이었다. 즉, 인플레이션과 실업, 정치혼란(반독재투쟁)을 잠재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국 정부가 남대서양의 끝에 있는 별볼일없는 섬에 무력으로 개입할 것같지는 않다는 판단도 무력 점령을 시도한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이 당시 포클랜드 주둔 영국군은 해병대 코만도 소속 수십명에 불과하였으며, 이들 모두는 포로가 되었다. 이들에 대한 (영국인의 시각에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태도에 영국 여론은 자국 영토가 침탈당했다는 자존심의 상처와 더불어 강경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편집] 경과

구스그린 전투.
실제 크기로
구스그린 전투.
  • 4월 02일 :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등 3개 제도에 대한 무력점령; 영국의 항의, UN의 중재노력; 영국, 기동부대 파견 결정
  • 4월 26일 : 영국의 대규모 기동부대와 아르헨티나군간 전투; 영국, 남부조지아(South Georgia)섬 탈환
  • 5월 02일 : 영국, 아르헨티나 전투함 General Belgrano를 격침
  • 5월 21일 : 영국, 카를로스(San Carlos)섬 상륙
  • 6월 14일 : 영국, 스텐리항(Port Stanley)을 탈환/포클랜드 주둔 아르헨티나군 항복

[편집] 결과

이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은 내부의 위기를 외부에서 해결하려하다가 거꾸로 패착이 되어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후 아르헨티나는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민주화를 계속 추진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포클랜드(말비나스)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계속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도발에 대해 즉각 무력 대응을 결정하고 군대를 파견하는 결단을 내린 "철의여인" 대처 수상에 대한 영국인들의 지지는 확고했다. 결국 대처 수상은 이 분쟁의 해결을 바탕으로 1983년에 다시 집권하는데 성공하였고, "철의여인"의 개혁정책은 계속 탄력을 받아 추진되었다.

전쟁의 결과는 전쟁 당시 집권세력에게는 판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편집] 아르헨티나군과 영국군의 전력 비교

[편집] 참고할만한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