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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운영자 새 끼야 식민사학 타파하겠다는데 뭔말이 많냐 개새끼야 그렇게 할일없으면서 우녕자라고 꼴에시부렁대기는 개새끼야
누가 이기나 보자
[편집] 중립적 시각 문제
기존의 식민사학계의 입장을 당연한듯이 받아들이고있습니다 실제 한사군은 밑에 설명과 같습니다.
한사군
전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초반 당시 중계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위만조선에게 불만을 품고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 발발하자 한나라 군대는 위만조선의 군대에게 패배를 거듭하였는데 위만조선의 장수들을 이간질시킴으로써 간신히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와 위만조선 모두 이 전쟁에서 많은 물자와 병사를 잃었으며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스스로 이 전쟁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하였다.1년여의 격렬한 전쟁끝에 국력이 쇠진할대로 쇠진하자 위만조선의 장수들은 형식적인 항복을 하게된다.(기원전 108년)
이 때 전한의 무제는 이 형식적인 항복을 통해 4개의 군을 임의로 만들어서 일부는 위만조선의 장수들을 그 군현의 통치자로 임명하였고 일부는 한나라사람을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그 4개의 군 이름이 각각 낙랑군(樂浪郡)·임둔군(臨屯郡)·현도군(玄菟郡)·진번군(眞番郡)이며 이를 가리켜 한사군(漢四郡)이라 한다. 여기서 한나라사람이 통치자로 부임한 군은 낙랑군과 현도군이다. 이 한사군의 위치는 현재 만주 지역의 랴오허강 서쪽 지역으로 흔히 말하는 요서(遼西)지방이다.
위만조선과의 전쟁이 끝난후, 이따른 패배와 전쟁의 실질적인 승리를 얻지 못한데 격노한 전한 무제(武帝)는 전쟁에 참전한 장수들을 극형으로 다르렸다. 형식적으로 항복했으나 조선인이 실질적으로 다스린 임둔군과 진번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이름을 바꾸어서 없어졌으며 낙랑군과 현도군은 고구려의 압박에 의해 점점 서쪽으로 밀려났다.그리고 마침내 서기 313년 고구려는 낙랑군을 멸망시킴으로서 한사군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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