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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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터키의 역사

터키는 문명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져 왔다. 긴 역사를 가진 터키를 여행하면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500년에 차탈회위크(터키어: Çatalhöyük) 최초의 부락이 만들어졌다. 차탈회위크 시대에서 현재까지 몇 세기에 걸쳐 번영했던 화려한 문화는 현대 문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이 것이 터키인의 장인 정신을 뿌리깊게 한 이유가 되었다).

하티, 히타이트, 프리기아, 우라르투, 리키아, 리디아, 이오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은 터키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유적은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제각각 문화의 특징이 있다(십자군 전쟁 당시의 유적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근대사도 흥미깊은 역사의 일부이다. 오스만 제국을 들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은 초반기에는 셀주크 투르크로부터 독립하여 그를 멸망시킨 나라이다(1299년). 이 제국은 17세기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청나라 못지 않게 강력하였으며 가장 장수한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만 제국은 황제가 독재했다고 하기 보다는 몇몇 유능한 재상들이 황제와 함께 통치하였다.

이 제국이 쇠퇴한 것은 1700년 이후 더 심각해졌다. 오스트리아(당시에는 대공국, 1804년부터 제국)가 처음으로 독립하였으며 나중에 그리스(1830년, 왕국)도 영국의 지원을 받고 독립하였다.

이에 1881년에는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모두 왕국)가 독립하였으며(루마니아1861년부터 공국) 1908년에는 불가리아(1879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 1912년에는 알바니아가 독립하였다(후에 불가리아는 제2차 발칸 전쟁 때 다시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어 주다 패배함. 그 이후로는 세르비아와 적대적 관계가 됨).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면 오스만 제국은 더더욱 쇠퇴하게 된다. 한 때 갈리폴리 전투 덕분에 오스만은 잠시 승리하였으나 1917년부터 다시 패배하였다.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휴전 조약으로 인해 많은 영토를 잃고 1922년 11월에 해체되었다.

한편, 갈리폴리 전투 당시 연합군을 몰아 낸 경험이 었었던 케말 파샤(파샤는 터키어로 장군이라는 뜻)는 1923년 10월 29일에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여 평화와 안정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실현하였다. (사실 터키의 근대화는 179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후 계속과 정지를 반복해 왔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중립을 지켜 국민을 보호할 수 있었으며 중립국을 치고는 1945년UN에 가입한 나라 중 하나이다. 한국 전쟁 때에는 UN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에 군대를 지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