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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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閔泳翊, 1860년 - 1914년)은 조선 말기 민씨 외척 정권의 주요 인물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1883년 주한(駐韓) 미국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자 보빙사(報聘使)의 정사가 되어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하였다. 태평양을 건너고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미대륙을 횡단한 다음 뉴욕에서 미국 대통령 체스터 A. 아서와 회동하고 국서를 전하였다. 보스턴 등 각지를 순회하고 유럽을 거쳐 귀국하였다. 중도 개화파의 후원자였으며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감행할 때 가장 먼저 기습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독일인 묄렌도르프에게 구출되어 미국인 의사 알렌에게 치료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측의 권유로 주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로 일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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