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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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崔承喜,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는 한국의 무용가이다. 남편은 좌파 문학평론가 안막이다.

강원도 홍천, 또는 서울 태생이라는 설이 있으며, 서울에서 자라고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서 사사 받았다.

두차례 일본 유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반도의 무희》(1936)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수년 동안 해외 순회 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광복 후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으나,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현재는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이다.

최승희는 신무용(新舞踊)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으로는 〈영산춤〉, 〈에헤라 노아라〉, 〈달밤의 곡〉, 〈반야월성곡〉, 〈우조춤〉, 〈칼춤〉, 〈보살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 〈광상곡〉, 〈가면의 춤〉, 〈승무〉, 〈인도인의 비애〉,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 〈방랑인의 설움〉, 〈봉산탈춤〉, 〈유격대의 아들〉 등이 있고, 북조선에서 쓴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이 있다.

안막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안성희도 소련에서 발레 유학을 하고 돌아와 북조선에서 무용가 및 안무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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