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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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의 조선의 국호이다.

을미사변, 아관파천으로 인해 나라의 자주성이 위협받게 되자 자주적 국가 수립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서 1897년 고종경운궁으로 환궁해, 그 해 8월 17일 광무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고, 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제국 열강들은 대한제국의 성립을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으로서는 자주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하고 위신을 세우기 위해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으며, 10월 12일 환구단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즉위 직후인 11월 12일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국장을 치렀으며, 11월 20일 독립문을 완공하였다.

그런데 이 제국을 성립하기까지 서로 연합하였던 독립협회와 수구파는 정체문제로 대립하였다.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반면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주장하였다.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계속 추진하여 1898년 11월 중추원신관제를 공포했다. 그러나 수구파들은 이에 대해 경무청과 친위대를 동원해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하고 조병식을 중심으로 수구파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독립협회 세력을 꺾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 정부에 가담,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도록 권고하자 고종이 받아들여, 만민공동회를 강제로 해산하여 독립협회는 1898년 12월 해산되었다.

이렇게 수립된 수구파 정부는 1899년 일종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여 황권의 절대성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1904년 한반도만주를 둘러싸고 러일전쟁이 일어나, 이듬해 포츠머스 조약의 체결로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1905년 을사 조약이 체결되었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8월에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 순종이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로 정하였다.(고종 양위 사건 참조.) 그 후로도 일본의 침략이 점차 심해져,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庚戌國恥), 일제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호는 다시 조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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