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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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曺晩植, 1883년 2월 1일 - 1950년 10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호는 고당(古堂).
- 1945년 8월 26일 조만식이 주도한 평안남도 건준 지부와 현준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에서 각각 16명의 위원을 선정하여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조만식은 위원장이 되고, 오윤선과 현준혁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1]
- 1945년 9월 8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내각이 발표되었는데, 조만식은 재정부장으로 선임되었다. [2]
- 소련 측은 1946년 1월 2일, 4일, 5일의 세차례에 걸쳐 조만식에게 새로 수립될 정부의 대통령 자리까지 제시하면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할 것을 요청했다.[3]
- 1950년 6월 10일 북조선은 김삼룡과 이주하를 조만식과 38선에서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북조선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헌영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6월 16일 이승만은 북에서 먼저 보내라는 요구를 했고, 6월 18일 북조선은 동시교환을 주장했다. 한동안 "먼저 보내라", "아니다, 동시에 교환하자"는 공방이 되풀이되다가,[4] 1950년 10월 15일 조만식은 북조선 내무성 안에서 일단의 내무서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5]
[편집] 각주
- ↑ 송광성, 〈조선을 분단〉《미군점령 4년사》(한울, 1993),269쪽.
- ↑ 허은, 〈8·15직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역사비평사,2000)307~308쪽.
- ↑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2: 기원과 원인》(나남, 1996) 141~142쪽.
- ↑ 1950년 6월 10일~공방이 되풀이되다가,: 정창현,《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민연, 2002),120쪽.
- ↑ 1950년 10월 15일~의해 살해되었다.: 박명림,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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