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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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편집] 한국의 선사 시대 (약 700,000년전 ~ 기원전 2333년)

한국의 선사시대는 구석기 시대 후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굴된 유물 및 유적을 바탕으로 추측하고 있다. 약 700,000년전 부터 한반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약 4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출현하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작은 씨족 사회가 서서히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의 선사시대의 설정은 그 이름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연대 규정에 유동성이 있다.

후기 신석기시대 (기원전 약 2000년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사람들의 군집 생활의 유적지가 여러 곳에서 발굴되고 있지만, '국가'에 해당되는 특징적인 유적이 없어 한 씨족 혹은 부족 국가의 형태가 이 시기까지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문헌상에 나타나는 한국의 첫 국가인 고조선의 영토는 만주와 요동, 한반도로 추정되어, 발해 연안의 유적지를 참조하면 그 이전에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진 집단이 존재했을 개연성이 있다.

단군 왕검에 의해 이른바 단군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이후 한민족의 역사가 첫 장을 열었으며 이 시대를 흔히 고조선 시대라고 부른다.

[편집] 선사 시대의 구분

참고>> 웅기 부포리와 평양 만달리 유적, 통영 상노대도의 조개더미 최하층, 거창 임불리, 홍천 화계리 유적 등을 중석기 유적지로 보는 사학자도 있다.

[편집] 상고 시대 (B.C. 2333년 ~ A.D. 1세기)

농경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 부와 권력을 가진 족장(군장)이 출현하였다고 추측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인돌이 있다. 부족장은 세력을 키워 주변 지역을 아우르고, 마침내 국가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성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다. 기원전 4C경 철기가 보급되었고, 이후,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과 대립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성립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편집] 고조선 시대

고려 이후로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은나라에서 건너온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이 많은 지지를 얻어 정식 역사에 포함되기도 하였으나, 현재에는 남한북한의 역사학계 모두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학자들도 대체적으로 이 설을 부정한다.

[편집] 고조선 멸망 이후 여러나라의 성장

철기문명을 받아들인 각 나라들은 철기를 이용하여 농업을 발전시키면서도 독특한 사회 풍습을 유지하였다. 많은 소국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일부는 다른 나라를 병합되었고, 다시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여 중앙 집권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편집] 고대 시대 (A.D. 1세기~A.D. 917)

[편집] 개괄

  • 고대의 정치
  • 고대의 경제
  • 고대의 사회
  • 고대의 사회

[편집] 고구려

[편집] 백제

[편집] 신라

[편집] 중세시대 (A.D. 918년 ~ A.D. 1392년)

[편집] 고려시대

  • 고려의 정치

고려는 새로운 통일 왕조로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려의 성립은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 이행하는 우리 역사의 내재적 발전을 의미한다. 신라말의 득난(6두품 세력) 출신 지식인과 호족 출신을 중심으로 성립한 고려는 골품 위주의 신라 사회보다 개방적이었고, 통치 체제도 과거제를 실시하는 등 효율성과 합리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정비되었다. 특히, 사상적으로 유교 정치 이념을 수용하여 고대적 성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고려 시대는 외적의 침입이 유달리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줄기찬 항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12세기 후반에 무신들이 일으킨 무신정변은 종전의 문신 귀족 중심의 사회를 변화 시키는 계기가 되어 신분이 낮은 사람도 정치적으로 진출 할 수 있었다.

이후, 무신 집권기와 원 간섭기를 지나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새롭게 성장한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성리학이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민본적인 정치 이념이 성립되었고, 이에 따른 사회 개혁이 진전되었다.

  • 고려의 경제

고려는 후삼국 시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전시과 제도를 만드는 등 토지 제도를 정비하여 통치 체제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또, 수취 체제를 정비하면서 토지와 인구를 파악하기 위하여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호적을 작성하였다. 아울러 국가가 주도하여 산업을 재편하면서 경작지를 확대시키고, 상업과 수공업의 체제를 확립하여 안정된 경제 기반을 확보하였다.

농업에서는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상업은 시전을 중심으로 도시 상업이 발달하면서 점차 지방에서도 상업 활동이 증가하였다. 수공업도 관청 수공업 중심에서 점차 사원이나 농민을 중심으로한 민간 수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갔다.

  • 고려의 사회

고려의 사회 신분은 귀족, 중류층, 양반, 천민으로 구성되었다. 중류층은 새로이 등장한 신분층이었다.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 원칙이었고, 각 신분에는 그에 따른 역이 부과되었다. 지배 신분 안에서는 과거 제도를 통하여 계층 이동이 이루어졌으며, 정치적 변동(무신정변, 원의 국권 침탈기)에 따라 신분이 변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성의 대부분을 이루는 양민은 군현에 거주하는 농민으로, 조세, 공납, 역을 부담하였다. 향, 부곡, 소 같은 특수 행정 구역에 거주하는 백성은 조세 부담에 있어서 군현민보다 차별받았으나, 고려 후기 이후 특수 행정 구역은 일반 군현으로 바뀌어 갔다. 흉년이나 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국가는 의창과 상평창을 설치하고, 여러 가지 사회 복지 시책을 실시 하였다.

  • 고려의 문화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중세 문화는 고대 문화의 기반 위에서 조상들의 노력과 슬기가 보태져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채택, 적용됨으로써 유교에 대한 인식이 확대 되었으며, 후기에는 성리학도 전래 되었다. 불교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가운데 불교 사상이 심화되고, 교종과 선종의 통합운동이 꾸준히 추진되었다.

중세의 예술은 귀족 중심의 우아하고 세련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건축과 조각에서는 고대의 성격을 벗어나 중세적 양식을 창출하였으며, 청자와 인쇄술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림과 문학에서도 중세의 품격 높은 멋을 찾아 볼 수 있다.

[편집] 근세시대 (A.D. 1392년 ~ A.D. 1506년)

[편집] 초기 조선 시대

  • 초기 조선의 정치
  • 초기 조선의 경제
  • 초기 조선의 사회
  • 초기 조선의 문화

[편집] 근대 태동기 (A.D. 1506년 ~ A.D. 1907년)

[편집] 후기 조선 시대

  • 후기 조선의 정치
  • 후기 조선의 경제
  • 후기 조선의 사회
  • 후기 조선의 문화

[편집] 근현대시대 (A.D. 1907년 ~ )

[편집] 개괄

조선 사회는 안에서 성장하고 있던 근대적인 요소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채 19C 후반 제국주의 열강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후 정보와 각계(各界), 각당(各堂), 각단체(各單體), 각층(各層), 각파(各派)에서는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개항 이후 우리나라는 서구 문물을 수용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펼치면서 자주적인 근대화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일본과 청을 비롯한 외세의 경제 침략이 본격화 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개항 이후, 사회 개혁이 진행되면서 신분 제도가 폐지되고 평등 의식도 점차 성장하였다. 또,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외래 문물과 제도 등이 수용됨에 따라 전통적인 생활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개항 이후 서양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전기, 철도, 같은 근대 기술과 서양 의술 등 각종 근대 문물이 들어왔다. 근대 시설은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었으나, 열강의 침략 목적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일제는 강압적인 식민 통치를 통하여 우리 민족을 지배하였다. 이에 맞서 우리 민족은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 투쟁, 민족 실력 양성 운동, 독립 외교 활동 등을 벌여 일제에 줄기차게 저항하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투쟁과 연합군의 승리로 1945년 8월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경제적 침략으로 경제 발전이 왜곡되어, 우리 민족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광복 이후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새로운 경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대단히 컸다.

일제 강점기에는 국권을 되찾으려는 독립 운동이 줄기차게 일어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화를 위한 각계(各界), 각당(各堂), 각단체(各單體), 각층(各層), 각파(各派)에서는 근대화하려는 노력이 펼쳐졌다. 이러한 가운데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전통 사회는 점차 근대 사회로 변모해 갔는데, 식민지 현실 아래에서 근대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국권을 탈취한 후에 동화와 차별의 이중 정책을 바탕으로 황국 신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였다. 이에 맞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런데,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과 좌∙우익 세력의 갈등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고 남북 사이의 상호 불신이 깊어 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4∙19혁명과 5∙18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등으로 민주주의가 점차 발전하였다. 이와 함께,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민족 통일을 위한 노력도 계속 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일구어 냈다. 한국은 이제 가난한 농업 국가가 아닌,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광복 후에 우리나라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1980년대에 진행된 민주화 운동으로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고,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 졌다.

광복이후에는 학문 활동이 활발해지고 교육의 기회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가치관의 혼란과 전통문화의 위축 현상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의 다양화가 촉진되고, 반도체 등 몇몇 과학 기술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한편, 현대 사회의 윤리와 생명 과학 기술의 발달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펼쳐지고 있다.

[편집] 근대시대

  • 대한 제국
  • 일제시대 :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강제적으로 식민지로 삼은 시기
    • 무단 통치 시기 : 조선을 영구히 통치하기 위해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의병 활동을 억누르고 국내의 저항 세력을 무단으로 통치한 시기이다. 토지조사령을 공포하여 식민지 수탈을 시작하였고, 회사령을 공포하여 국내의 자본 세력을 억압하고 일본 자본 세력의 편의를 봐주었다. 이 시기의 한국인 노동자는 극악한 환경과 저임금, 민족적 차별까지 받으며 혹사 하였다.
    • 문화 통치 시기 : 3·1 운동이 발발하자 일제는 무단통치로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친일파를 육성하는 문화정책을 펼친다. 이는 한민족을 기만하는 정책이었다. 이 들은 교육의 기회를 늘리고 자본 운용의 기회, 참정권의 기회등을 제공하였으나, 결국은 조선을 선동 정치 하기위한 친일파 육성에 주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 전시 체계 시기 : 1941년 일제가 미국진주만을 불법적으로 기습하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조선에서는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이 착취 되었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또, 젊은 여성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하여 군수 공장 등에서 혹사시켰으며, 그 중 일부는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로 삼는 만행을 저질렀다.

[편집] 현대시대

[편집] 인터넷 정보

  • 일반 역사
    • 국사 편찬 위원회 : 한국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 정리, 편찬하는 국가 연구 기관, 소장 자료, 논문, 저서 검색, 한국사 관련 연구 기관. 소장 자료, 논문, 저서 검색, 한국사 관련 안내
    • 국사 전자 교과서 : 현직 교사들이 연구.감수하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원하였다.
    • 한국 역사 정보 시스템 : 한국사 연표, 한국사 기초 사전 및 신문 자료, 문헌 자료, 문집 등을 제공
    • 한국학 중앙 연구원 : 한국 문화 및 한국학 여러 분햐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연구 기관. 디지털 한국학 개발, 정보 광장, 전자 도서관, 전통 문화 등 수록
    • 역사 문제 연구소 : 순수 민간 연구 단체(역사적 중립성이 의심됨), 근현대사 자료실, 간행물 자료, 한국사 학습 자료 등 수록
  • 재단, 기타, 정부 기관
    • 고구려 연구재단 : 고구려사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학술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2004年 설립된 법인. 고구려, 발해를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 관련 자료의 조사, 수집, 정리, 정보화 자료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편입되어 더이상 유용하지 않다.
    • 국가 기록 영상관 : 대한 뉴스, 문화 기록 영화, 대통령 기록 영상 등 멀티미디어 역사 자료 제공
    • 국가 문화 유산 종합 정보 서비스 :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 기념물 지정 종목별, 시대별, 지역별, 유형별, 유물 정보, 검색 서비스 제공
    • 국가 지식 정보 통합 검색 시스템 : 정보 통신부 제공, 과학 기술, 정보 통신, 교육, 학술, 문화, 역사 등의 포괄적이고 연동적인 학술 데이터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