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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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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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위
943년 ~ 945년
왕 비 의화왕후
황 후 {{{황후}}}
부 군 {{{부군}}}
앞선 왕 태조
다음 왕 정종
고려의 제2대 국왕

혜종(惠宗, 912년 - 945년)은 고려 제 2대 임금(재위: 943년 - 945년)이다.

는 승건(承乾), 는 무(武), 시호는 혜종인덕명효선현의공대왕(惠宗仁德明孝宣顯義恭大王). 고려 태조장화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편집] 생애

어렸을 때부터 도량이 넓고 무예가 뛰어났으며, 부왕인 태조를 따라다니며 함께 선봉장으로 나서서 후백제를 공격해 활약할 정도로 용맹스러운 인물이었고 개인적인 능력으로도 일국의 제왕으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921년박술희를 후견인으로 하여 왕태자에 책봉되었고, 943년고려 태조는 죽으면서 왕권의 안정을 위해 맏아들을 세우는 원칙을 정하여 혜종을 다음 군주로 세웠다.

그러나 나주경기도 일부만을 제외하고 자체적인 지지세력이 없던 혜종은 왕위를 둘러싼 정치적 불안과 갈등 속에서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고전을 하며 제대로 된 통치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끝내 몸이 허약해져 병들어 시름시름 앓다 죽으니 그의 재위는 고작 2년이었다.

혜종이 죽고 나서 박술희는 새 군주 정종에게 죽고,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는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불타는 화신으로 왜곡되고, 혜종은 고려 태조가 장화왕후와 동침했는데 장화왕후가 빈한한 신분이기 때문에 임신을 시키지 않으려고 태조가 돗자리에 체외사정을 하였으나 장화왕후가 이를 흡입하여 혜종을 낳았는데, 이런 이유로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있는 인물로 격하되어 '돗자리 임금'이란 오명을 쓰게 된다.

한편, 그가 암살을 당했다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그의 재위기간 도중 도적에게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고려사》에서는 도적을 보낸 사람이 왕규라고 쓰여 있다. 혜종은 박술희와 최지몽의 작전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왕규는 혜종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박술희와 함께 혜종을 지지하던 세력이었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없던 광주원군을 즉위시켜 반란을 도모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정종광종의 세력이 왜곡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편집] 가계

  • 의화왕후 임씨(義和王后)
    • 흥화군(興化君)
    • 경화궁부인(慶化宮夫人)
    • 정헌공주(貞憲公主)

[편집] 같이 보기

전 임
태조
제2대 고려 국왕
943년 - 945년
후 임
정종
고려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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