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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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이치로 (일본어: 鈴木一朗 すずき いちろう, 1973년 10월 22일 - )는 일본 출신 프로 야구 선수이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다가, 현재는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그곳에서도 활발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포지션은 외야수이다. 그의 활약에 아시아에 타자는 없다라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안타제조기'로 맹활약중.
일본 프로 야구에서 쓰던 이름은 한문으로 이름을 쓰지 않고, 특이하게도 イチロー(이치로)라고 가타카나로만 표기하였으며, 등번호는 51번이다.
부인은 일본 TBS의 전 아나운서인 스즈키 유미코(鈴木弓子)씨이다.(옛 성은 후쿠시마[福島])
아이치 현 니시카스가이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글러브에 '집중(集中)'이라고 써 놓았었다고 한다.고교 시절 일본 최고의 고교 야구 대회인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다.1991년 탁월한 타격감 각을 인정받아 프로 야구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지명받아, 외야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한다.
입단후 2군에서 타격왕 자리를 차지하지만, 1군 수뇌부가 변칙타법에 대해 좋게 평가하지 않아 1군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실의에 빠져 2군생활을 하던 이치로는 2군 타격 코치였던 河村健一郎(가와무라 켄이치로)와 "시계추타법"을 생각해낸다.
1994년 감독직을 맡게 된 오오기 아키라(仰木彬)는 이치로의 천재적인 타격감을 발견해내고, 등록 이름을 당초 한자로 표기하던쓰던 스즈키(鈴木)에서 카타카나로(イチロー)로 바꾸게 하고 1군으로 발탁한다. 당시 1군타격코치였던 아라이(新井)의 지도를 받으며 광각타법(廣角打法)을 익히게 된다. 그 해 그가 기록한 안타수는 210개로 아주 훌륭한 성적이었다.
이후 7년연속 타격왕, 3년연속 MVP라는 일본 프로 야구의 대기록을 달성하고, 팀의 일본 시리즈 제패를 이루는 등 일본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슈퍼 스타로 성장한다.
2001년 메이저 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여 그해 242개의 안타를 처낸다. 이로써 그해 아메리칸 리그의 신인왕과 MVP를 모두 획득하고 팀의 플레이 오프 진출에도 공헌한다. 그리고 2004년에는 262안타를 쳐 84년간 깨지지 않았던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안타수만 보고 그가 단지 타격만 잘하는 선수로 인식하기 쉬운데 그 외에도 그의 능력은 특출난 편이다. 특히 수비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레이져빔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송구능력은 메이져에서도 톱수준을 자랑한다. 죠지마 켄지와는 '저페니즈 핫라인'으로 불리고 있다. 거기다 준족을 살린 수비범위는 아주 넓다. 준족은 내야안타와 도루로도 활용중.
이러한 면에서 수비의 포지션은 다르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이종범이 일본야구진출전에 주로 비교대상으로 언급되었었다. 당시 이종범의 별명은 '한국의 이치로'.
어릴 때 좋아하던 선수는 일본 선수로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田尾安志(타오 야스시), 미국 선수로는 뉴욕 양키즈의 버니 윌리엄스이다.
2003년에 4년 동안 4천4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연봉 계약을 해서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획득한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국가 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편집] 약력
- 1991년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
- 1992년 주니어 올스타 게임 최우수선수상 수상.
- 1994년 선수등록 이름을 가타카나 표기인 イチロー(이치로)로 바꾸고,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시즌 200안타 기록을 넘어섬. 최종 210안타.
- 1994년~2000년 7년 연속 퍼시픽 리그의 타격왕.
- 2000년 메이저 리그로 이적.
- 2001년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도루왕, 신인왕, 최우수선수를 휩씀.
- 2004년 5월 21일(현지시각) 미국 일본 리그 통산 2000안타.
- 2004년 8월 26일(현지시각) 메이저 리그 사상 최초로 입단 후 4년 연속 200안타기록 달성.
- 2004년 10월 1일(현지시각) 조지 시슬러의 메이저리그 연간 최다안타기록(257안타)을 84년만에 갈아치움.
[편집]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이치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로 참가한 이치로는 대회 전, '대전 상대가 향후 30년은 일본에게 손도 못댈것 같은 느낌으로 이겨주겠다.'(戦った相手が『向こう30年は日本に手は出せないな』という感じで勝ちたいと思う。) [1]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의 30년은 실제의 30년이 아니라 일본어에 있는 '10년 빠르다(거의 불가능하다 혹은 아주 어렵다)' 라는 관용 표현을 응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을 이를 곧이 그대로 30년으로 번역 보도하였고 이치로가 대전상대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상대를 한국으로 해석하여 이치로는 여론의 집중타를 맞는다.
이후에도 한국과의 2차전 이후의 인터뷰에서의 '굴욕적이다'와 한국과의 4강전이 끝난뒤의 인터뷰에서의 '이길 팀을 이겼다'등의 발언이 확대보도와 이로 인한 국민감정의 자극 등으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입치료'라는 별명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치로는 도쿄돔에서 열린 1 라운드 아시아 예선에서는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고, 대한민국 전에서는 악송구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열린 2 라운드에서는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며, 미국전에서는 첫회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4강전에서 다시 만난 대한민국 전에서 3안타를 기록했으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적시타로 일본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편집] 바깥 연결 고리
분류: 1973년 태어남 | 일본의 야구 선수 |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 | 메이저 리그 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