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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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吉善宙, 1869년 3월 25일 ~ 1935년)는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며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영계(靈溪).
평안남도 안주 출생이다. 젊은 시절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아 무속과 선도에 심취하며 입산 수도하다가, 선교사를 통해 1897년 개신교에 입교했다. 같은 해 안창호가 독립협회 평양 지부를 설립할 때 발기인이 되는 등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함께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1907년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서 한국 최초의 장로교 목사들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관우를 섬기는 무속인으로서도 한 무리의 제자들을 거느릴 정도로 신통력을 인정 받았던 그는, 타고난 영적 감응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부흥회를 이끄는데 자질을 보였다. 부흥 집회와 구국기도회로 대부흥 운동을 이끌었고, 기독교 교육 사업에도 관심을 보여 평양의 숭실학교와 숭덕학교 경영에 참여했다.
1911년 105인 사건 때 체포된 바 있고, 이때 신민회 회원인 장남 길진형은 고문으로 얻은 병으로 1917년 사망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하여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도장을 이승훈에게 맡기고 3월 1일 당일에는 지방에 있었는데,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와 함께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에 참가하지 않은 네 명의 민족대표 중 한 명이다.
당시 안질로 인해 시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고 모임 불참 사실도 확인된 길선주는 체포된 32인중 유일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하고도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제외되었으나, 최린, 박희도, 정춘수가 추후에 구체적인 친일 행위에 가담하여 변절자로 불린데 반하여 길선주는 공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이다.
1935년 평안남도 강서의 교회에서 근무중 뇌일혈로 순직했고, 1980년 둘째 아들이자 목사인 길진경이 평전 《영계 길선주》를 펴냈다.
민족대표 33인 - 편집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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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 |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
천도교 : |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 |
불교 : | 한용운 백용성 |
분류: 1869년 태어남 | 1935년 죽음 | 한국의 독립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