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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편집] 이지란

이지란(李芝蘭a)(여진어 이름은 퉁두란 혹은 퉁두란티무르)은 조선을 개국한 1등공신으로, 이성계의 의동생인 장군이다. 여진족의 만호(萬戶)였다가 고려말에 이성계 밑으로 귀화하였다.[1] [2] [3] [4] [5] [6] [7] [8]




미국은 하버드 법대에서 펴낸 ‘블루북(Bluebook: A Uniform System of Citation)’이 제시하는 엄격한 인용법을 법학 저널은 물론 대부분의 논문이 규범처럼 따르고 있다.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한국행정학회는 후속 대책으로 작년 12월 ‘윤리 헌장’과 ‘표절 규정’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표절은 ‘고의적인 경우는 물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또 출처를 정확히 밝혔다해도 너무 많은 단어나 생각을 베끼거나 출처내용이 논문의 중심내용이 되는 경우 표절로 인정된다. 원저자의 허락여부는 상관없다.


[논문표절 의혹] 왜 표절인가… 제목 비슷한 제자 논문명 안밝혀

[국민일보]2006-07-24 1309자



최근 한국 교수의 논문 표절을 강력히 비판하며 사과문을요구했던 미국 통신학술지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표절과 지적재산’이란 제목의 글에서 ‘표절은 다른 사람의 창의력을 훔치는 추잡한 행위’라는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비난했다.

미국과 유럽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문장에서 6개 이상 같은 단어가 나오면 표절로 의심받는다.표절 가능성이제기되는 논문에 대해서는 표절 여부를 가리기까지 심사 자체가 거부된다.표절로 판명되면 해당 논문을 쓴 학자는 스스로 학문활동을 중단하고 학계를 떠나는 것이 관행이다.당사자가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경우에만 학계 차원의 제재가가해질 뿐 법적 제재는 따르지 않는다.

저작권 관련 전문가들은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인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미국 등에서는 원저자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출판사에 사전 동의를 구하지않고 참고문헌으로 인용하는 행위도 저작권 침해로 규정되고 있다.

집중취재/ 대학가 논문표절 실태

[서울신문]2001-11-23 20판 06면 3074자 특집 기획,연재


행정학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예컨대 몇 부분 이상 가져다 쓰면 표절이라는 식의 명확한 규정이 있지만 한국행정학회에는 현재 그런 규정이 없다"고 운을 뗀 뒤



한국행정학보 논문 표절 논란

[오마이뉴스]2005-01-16 206519면 4452자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동아일보]1997-10-28 18면 1724자 문화 기획,연재 ◎학칙 강의지침에 처벌 명시… 최고 퇴학까지/타인생각 가져다 쓰면 실수라도 표절로 인정/논문 서적 뿐만아니라 도표 삽화도 적용대상근대적 형태의 대학 역사가 긴 외국에서는 표절을 「학문 세계의 중범죄」 「인간성을 의심케 하는 부정직한 행위」로 본다. 학칙이나 교수 개인의 강의방침에는 표절의 개념과 이에 대한 처벌이 명시된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는 학문적 신사도를 지키도록 하면서 스스로 원칙을 어기는 선생이란 흔치 않다. 학생이나 교수사회의 표절은 상식이하의 행위로 배척된다.예를 들면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대의 규정집에는 「표절 및 학문상의 정직하지 못한 행위」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학생이 제출하는 모든 과제물에 담긴 생각이나 표현은 특별히 출처를 밝히지 않는 한 학생의 것임을 나타낸다고 본다.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 계획 구상을 가져다 쓰거나 타인의 과제물을 제 것인 양 제출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실수이든을 막론하고 표절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각주 참고문헌 인용표시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쓴 구절이나 생각은 말을 바꾸어 사용했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다』 메릴랜드대 유럽분교 안내서에는 표절의 대상이 단지 논문이나 서적만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문구 도표 숫자 삽화 컴퓨터프로그램 수학이나 과학공식, 연구결과를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 소설 구성이나 시 영화 악보 등 예술작품의 전부나 일부를 작자를 표시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표절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브록대 컴퓨터공학부는 조교 지침서에서 학생이 제출한 논문중 표절 가능성이 있으면 「다른 내용과 얼마나 비슷한가 혹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고케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학장에게 곧바로 올라가고 이의제기시에는 증거서류로 채택되므로 정확하게 해주도록 요구한다.미국 켄터키주립대 미시간대와 캐나다 노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등 서구의 대부분 대학에서는 표절행위에 대해 최소한 학점취소이고 나아가 퇴학처분을 받을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캐나다 노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가 제시하는 「표절 예방 수칙」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국내학계에도 참고가 될 만해 소개한다.

①타인의 논문을 자기 것인 양 내지 말라.

②같은 논문을 다른 강좌용으로 내려면 사전허가를 얻어라.

③인용방법의 혼란을 피하려면 한 학회지를 철저히 연구하라.

④출처를 인용할 때에는 서지사항을 전부 복사하라.

⑤단어 한 두개라도 중요한 개념은 인용부호를 사용하라.

⑥인용할 때 타인의 아이디어는 자신의 것과 분리하라. 필요하면 각주를 달라.

⑦표절에 관해 출간된 서적을 반드시 숙독하라.

⑧표절에 대한 규정이나 관련법, 처벌사항을 알라.

⑨현재 인용하려는 사람의 저작보다 자신이 더 전문적으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당신은 이제 초심자일 뿐이다.

⑩당신의 아이디어가 논문속에 보이도록 하라. 인용의 나열이 논문은 아니며 타인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하고 싶은 욕망 또한 억제하라.

⑪논문 초안을 인용없이 30분정도 작성해보라.

물론 서구에서도 표절사례는 있다. 88년에는 하버드대 심리학교수가 표절사실이 밝혀져 사직했다. 선타임스는 표절 사실이 드러난 칼럼니스트를 필진에서 제외시켰다. 표절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부 곽영진 저작권과장은 『최근에도 미국출판협회측이 대학가의 불법복제에 관해 항의해왔다』면서 『학문세계의 표절은 지적 소유권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고 「법 무시 풍조」에도 원인이 있음을 지적했다.〈조헌주 기자〉


대한출판문화협회 정종진 사무국장은 “최소한의 인용 원칙도 지키지 않는 표절 행위가 저작권 관련 전반에 걸쳐서일어나고 있다”면서 “명백한 범죄행위임에도 관행으로 여기는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문 표절’ 전담기구 만든다… 교육부,BK21 관리시스템도 대폭 개선키로

[국민일보]2006-08-08 756자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계의 논문 표절·이중게재 및 실적 무임승차 등의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연구윤리에 관한 기준을 제정하고 이를 위한 전담조직도 신설키로 했다. 교육부는 또 두뇌한국(BK)21 평가·관리시스템도 대폭 개선키로 했다.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논문 의혹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학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고쳐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교육부 이종서 차관은 8일 교육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육정책현안을 보고했다.

교육부는 논문 표절·이중게재 등 관행화된 부조리에 대해 학계의 자율적 정화를 이끌어내는 한편 제도적 보완을 추진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는 연구윤리에 관한 기준을 제정하고 전담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외국에는 논문 표절 등의 행위를 막기 위한 연구윤리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면서 “따라서 이를 법령이나 규정 등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미국 랜드연구소 등과 협력해 BK21 상시평가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이달 중 BK21 사업단 현황 및 성과 등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종합정보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대학별 세부시행계획을 조속히 마련한 뒤 학생부 반영비율 제고와 수능 9등급화,동일계 특별전형 도입 등 2008학년도 대입전형기본계획을 확정,공고키로 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논문표절 의혹] 왜 표절인가… 제목 비슷한 제자 논문명 안밝혀

[국민일보]2006-07-24 1309자 [쿠키 사회]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자신의 논문 첫 장에서 ‘서베이 데이터는 신모씨에 의해 수집된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를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에 해당된다. 왜일까.결론부터 말하면 김 부총리는 자신의 논문과 제목이 비슷한 신씨의 논문명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고 그 연구자료가 논문으로 이미 쓰였음을 밝히지 않았다. 즉 출처를 밝히는 시늉을 했을 뿐 부정확하게 부분적으로만 밝힌 편법을 사용했다.

또 출처를 정확히 밝혔다해도 너무 많은 단어나 생각을 베끼거나 출처내용이 논문의 중심내용이 되는 경우 표절로 인정된다. 원저자의 허락여부는 상관없다. A논문과 B논문이 얼마나 유사한지 여부만 평가기준이다. 저작권과 관련,규범을 삼는 미국 저작권협회는 이런 경우의 표절을 ‘완전 범죄(Perfect Crime)’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김 부총리 논문에서는 신씨의 연구자료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이 자료가 어떤 부분에,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또 인용의 기본원칙은 인용내용을 쓴 저자명,책 또는 논문명,인용문이 있는 쪽(페이지),발간일,출판기관 등을 일목요연하게 각주로 달아 설명해야 한다. 이는 대학생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특히 김 부총리는 제자의 논문에서 너무 많은 것을 차용했다. 도출된 결론도 신씨의 논문과 획기적으로 다른 내용을 담지 못했다.

미국 저작권협회는 출처를 밝히더라도 논문에 독창적인 내용이 없는 경우에 대해 ‘수완이 뛰어난 인용자(Resourceful Citer)’라는 유형으로 분류해 표절로 인정한다. 미국 저작권협회는 또 ‘저자가 적절하게 출처를 밝히지만 (논문명 등) 자세히 인용하지 않고 그 출처로부터 다른 주장들도 바꿔쓸 때’의 경우를 ‘완전 범죄’로 명명했다. 김 부총리의 논문은 이 두 가지에 해당된다.

교육부가 올해초 발간한 ‘연구윤리 소개’에는 ‘연구발표를 언급하지 않은 채 같은 정보를 또 발표하는 것’을 ‘중복 논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 부총리의 논문은 전형적인 중복 논문인 것이다.

한 서울대 법대교수는 “명백하게 의도적인 표절”이라면서 “논문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학문연구 윤리체계가 잡히지 않은 1970∼1980년대 논문 표절은 권력관계에서 다루기 쉬운 제자들의 학위논문을 중심으로 표절이 있어 왔다”면서 “김 부총리가 연구업적을 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 김 부총리가 표절논란을 피하기 위해 출처를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는 편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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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영수(사회학) 서강대 교수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본문은 그대로 놔두고 제목만 바꾸거나 하는 것은 자기 표절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라 ‘사기’에 해당한다”며 “자기가 저작권자인 글을 다시 싣더라도 반드시 ‘예전에 언제 어느 저널에 어떤 이유로 게재했다’는 것을 밝혀주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장 하나라도 인용할 때 참고문헌을 밝히지 않으면 표절”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학 연구풍토 멍든다… “중복투고는 관행“

[문화일보]2006-08-05 03판 21면 2137자

[편집] 표절

표절은 저작권 있는 타인의 저작물을 인용의 조건에 위배하여 무단 이용하는 저작권법 침해해위를 말한다.

[편집] 관련 사례

  •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대 규정집[9]
    • 표절 및 학문상의 정직하지 못한 행위: 학생이 제출하는 모든 과제물에 담긴 생각이나 표현은 특별히 출처를 밝히지 않는 한 학생의 것임을 나타낸다고 본다.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 계획 구상을 가져다 쓰거나 타인의 과제물을 제 것인 양 제출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실수이든을 막론하고 표절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각주 참고문헌 인용표시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쓴 구절이나 생각은 말을 바꾸어 사용했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이다.
  • 메릴랜드대 유럽분교 안내서[10]
    • 문구 도표 숫자 삽화 컴퓨터프로그램 수학이나 과학공식, 연구결과를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 소설 구성이나 시 영화 악보 등 예술작품의 전부나 일부를 작자를 표시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표절이다.
  • 미국 저작권협회
    • 출처를 밝히더라도 논문에 독창적인 내용이 없는 경우에 대해 ‘수완이 뛰어난 인용자(Resourceful Citer)’라는 유형으로 분류해 표절로 인정한다.
    • 저자가 적절하게 출처를 밝히지만 (논문명 등) 자세히 인용하지 않고 그 출처로부터 다른 주장들도 바꿔쓸 때의 경우를 ‘완전 범죄’로 명명했다.[11]

미국은 하버드 법대에서 펴낸 블루북(Bluebook: A Uniform System of Citation) 이 제시하는 엄격한 인용법을 법학 저널은 물론 대부분의 논문이 규범처럼 따르고 있다.[12]

미국 등에서는 원저자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출판사에 사전 동의를 구하지않고 참고문헌으로 인용하는 행위도 저작권 침해로 규정되고 있다.[13]

한국행정학회는 2005년 12월 ‘윤리 헌장’과 ‘표절 규정’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표절은 ‘고의적인 경우는 물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타인의 지적 재산권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14]

[편집] 표절 예방 수칙

캐나다의 노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가 제시하는 표절 예방 수칙은 다음과 같다:[15]

  1. 타인의 논문을 자기 것인 양 내지 말라.
  2. 같은 논문을 다른 강좌용으로 내려면 사전허가를 얻어라.
  3. 인용방법의 혼란을 피하려면 한 학회지를 철저히 연구하라.
  4. 출처를 인용할 때에는 서지사항을 전부 복사하라.
  5. 단어 한 두개라도 중요한 개념은 인용부호를 사용하라.
  6. 인용할 때 타인의 아이디어는 자신의 것과 분리하라. 필요하면 각주를 달라.
  7. 표절에 관해 출간된 서적을 반드시 숙독하라.
  8. 표절에 대한 규정이나 관련법, 처벌사항을 알라.
  9. 현재 인용하려는 사람의 저작보다 자신이 더 전문적으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당신은 이제 초심자일 뿐이다.
  10. 당신의 아이디어가 논문속에 보이도록 하라. 인용의 나열이 논문은 아니며 타인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하고 싶은 욕망 또한 억제하라.
  11. 논문 초안을 인용없이 30분정도 작성해보라.

[편집] 주석과 참고자료

  1. <여적> 귀화인 [경향신문] 2002-01-30 45판 06면 977자
    여진족 출신의 퉁두란은 고려말 귀화인이다. 그는 형제결의를 맺을 정도로 매우 가까웠던 이성계의 부하가 되고자 고려에 귀화했다. 고려로부터 이씨성과 청해를 본관으로 하사받고 이름을 지란이라 지어 청해이씨의 시조가 된다. 이지란은 이성계군의 휘하 선봉장으로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황산전투에서는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하는가 하면 위화도 회군에도 참여해 조선개국공신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조국 여진과의 싸움에 앞장서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2. 횡설수설 [동아일보] 1993-09-13 01면 959자
    동이족의 「이」(夷)자가 「대」(大)자와 「궁」(弓)자의 합자다. 대궁의 민족이란 뜻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마상의 무사가 몸을 돌려 호랑이와 사슴에 강궁을 당긴다. 그 기상이 고려 조선조에까지 면면히 계승돼 왔다. 고려 우왕때 왜장 아지발도가 2만 대병을 이끌고 침략, 남도일대를 휩쓸었다. 그는 얼굴까지 철갑으로 감싸 아무도 대적하지 못했다. 삼도도순찰사 이성계지리산 황산협곡에서 이 왜병들과 맞닥뜨렸다. 이성계는 어렸을 때 화살 한개로 날아가는 까마귀 5마리를 꿰뚫어 떨어뜨렸다는 신궁이다. 장군이 적장의 턱밑 투구끈을 맞혀 끊어 투구가 벗겨지자 부장 이지란이 얼굴을 쏘아 장수를 잃은 왜병은 섬멸됐다.
  3. 원로 소설가 홍성유 투병불구 신작발표 [한국일보] 2001-05-17 30판 23면 916자
    원로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ㆍ73)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에 신작 장편소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북@북스 발행)를 발표했다. 배경은 고려말이다. 홍건적이 들끓던 당시 보부상 출신으로 한반도 북녘을 누비며 오랑캐를 물리친 가상의 인물 백현아가 주인공. 그가 여진족 추장 퉁두란티무르(훗날의 이지란ㆍ李芝蘭)와 이성계를 만나 홍건적에게 짓밟힌 땅을 회복하고 동포를 구하는 활약을 하는 것이 줄거리다.
  4. 신포(이규태코너) [조선일보]1997-08-21 05면 1094자
    이성계의 창업을 도와 개국공신이 된 귀화한 여진족 무장 이지란의 고향이 함경도 신포다. 이태조는 이곳에 「천」자 대문 99칸 집을 지어주어 여생을 살게 했다. 근대 인물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어 만방에 일제의 흉계를 폭로한 이준 열사의 고향도 신포다. 그 신포가 한반도 분단사를 아물게 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엊그제 남북 경협의 과실인 경수로 시설공사의 기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시절에는 숙신이 지배하여 그 토성을 남겼고 그후 동부여 고구려 발해 동란국 금국 동진의 지배를 거쳐 윤관 장군의 수복으로 고려땅이 된 기구한 운명의 땅이다. 그래선지 이 북청 신포 고을 사람들에게 남다른 기상이 있다.
  5. [백두대간 대탐사] (2) 고기리(지리산북부)~백운산~중재 [조선일보] 2005-02-04 10판 52면 1638자
    운봉을 지나 인월로 조금 가면 왼쪽에 황산대첩비가 있는 화수리 비전마을이 있다. 비전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에 황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황산은 운봉의 길목에 있는 산이고 운봉 평야지대를 제압할 수 있는 산이다. 고려 말에 함양·운봉을 노략질하며 인월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장수 아지발도 부대를 이성계가 이곳에서 섬멸했다. 이성계는 아지발도의 투구를 활로 쏘아 입을 벌리게 하고 그때 이지란이 활을 쏴 아지발도를 죽였다. 적장이 죽자 적의 기세는 단번에 꺾여 고려군들이 크게 격파했다. 황산대첩비는 왜구를 황산벌에서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다.
  6. 조선조 창업의 숙명적 맞수 정도전과 하륜 신동아 1997-11-01 14353자
    1393년(태조 2년) 7월에 정도전은 동북면 도안무사(東北面都安撫使)가 되어 동북면(함경도) 일대에 살던 토착 여진족을 조선의 편호(編戶)로 편입시켜 우리 백성으로 동화시켰으며, 1397년(태조 6년) 12월에 동북면 도선무사(東北面都宣撫使)로 나가서 동북 지방의 성보(城堡)를 수축하고 주군(州郡)의 경계를 정했다. 고려 때에는 여진족이 동북면 일대에 내려와서 농경생활을 했다. 이성계는 함주(함흥)의 대토호로서 그 세력이 동북면 일대 여러 여진족을 통솔할 만큼 막강했다. 이성계는 길주(吉州) 출신인 여진족 대토호 이지란(李之蘭, 퉁두란)과 손을 잡고 동북면 일대 여러 여진족이 조선의 판도 안에 들어오게 했다. 이리하여 조선이 건국하자 정도전을 도안무사로 보내 토착 여진족을 조선의 호적에 올리고, 그들에게 농토를 주어 농사를 짓도록 생존권을 보장해 주었으며 우리나라 백성들과 여진족의 혼인을 장려했다.
  7. 스크린과 역사<14> [시민의신문]2001-10-10 00면 1631자
    만주족은 언어(알타이어)와 민족(퉁구스계)이 우리와 같은 갈래로 고대에는 숙신·말갈, 고려때부터는 여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우리와 갈등과 화평의 관계를 유지했다. 역사적 교류과정에 귀순자도 많았는데 그들중에는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본명은 퉁두란)이 가장 유명하고 오늘날 황·박·정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8. [이규태 역사 에세이] (23)좌부인 이야기 [조선일보]1999-08-06 45판 19면 4220자
    우리나라 기록에 처음으로 좌부인이 나타난것은 북청이씨 족보다. 송나라에서 고려에 병력을 요구하자 조정에서는 함경도 북녘 변방에 강제 모병을 했다. 이때 여진족으로서 귀화한 북청이씨 문중에 70 노부를 대신한 딸이 남장을 하고 모병에 응모했다. 송나라 무목 장군 휘하에서 3년간 종군했는데 끝무렵에 여자임이 들통이 났고, 무목장군이 그 미모와 기개에 반해 아내로 삼았다. 본부인은 우부인으로, 이 북청이씨 여인을 좌부인으로 삼아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 한다. 그후 그 악명높은 진회가 무목장군을 죽이고 가문을 말살하자 좌부인은 한 아이만을 둘러업고 고향인 함경도 청해(북청)에 와서 살았으며, 그 후손이 이태조의 건국공신인 귀화 여진족 이지란이다.
  9.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
  10.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
  11.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논문표절 의혹] 왜 표절인가… 제목 비슷한 제자 논문명 안밝혀 [국민일보]2006-07-24 1309자
  12.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13. 집중취재/ 대학가 논문표절 실태 [서울신문]2001-11-23 20판 06면 3074자
  14.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15.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

[편집] 더 보기

  • 인용: 표절이 되지 않고 인용이 되기 위한 조건들 설명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과 참고자료

  1. <여적> 귀화인 [경향신문] 2002-01-30 45판 06면 977자
    여진족 출신의 퉁두란은 고려말 귀화인이다. 그는 형제결의를 맺을 정도로 매우 가까웠던 이성계의 부하가 되고자 고려에 귀화했다. 고려로부터 이씨성과 청해를 본관으로 하사받고 이름을 지란이라 지어 청해이씨의 시조가 된다. 이지란은 이성계군의 휘하 선봉장으로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황산전투에서는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하는가 하면 위화도 회군에도 참여해 조선개국공신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조국 여진과의 싸움에 앞장서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2. 횡설수설 [동아일보] 1993-09-13 01면 959자
    동이족의 「이」(夷)자가 「대」(大)자와 「궁」(弓)자의 합자다. 대궁의 민족이란 뜻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마상의 무사가 몸을 돌려 호랑이와 사슴에 강궁을 당긴다. 그 기상이 고려 조선조에까지 면면히 계승돼 왔다. 고려 우왕때 왜장 아지발도가 2만 대병을 이끌고 침략, 남도일대를 휩쓸었다. 그는 얼굴까지 철갑으로 감싸 아무도 대적하지 못했다. 삼도도순찰사 이성계지리산 황산협곡에서 이 왜병들과 맞닥뜨렸다. 이성계는 어렸을 때 화살 한개로 날아가는 까마귀 5마리를 꿰뚫어 떨어뜨렸다는 신궁이다. 장군이 적장의 턱밑 투구끈을 맞혀 끊어 투구가 벗겨지자 부장 이지란이 얼굴을 쏘아 장수를 잃은 왜병은 섬멸됐다.
  3. 원로 소설가 홍성유 투병불구 신작발표 [한국일보] 2001-05-17 30판 23면 916자
    원로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ㆍ73)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에 신작 장편소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북@북스 발행)를 발표했다. 배경은 고려말이다. 홍건적이 들끓던 당시 보부상 출신으로 한반도 북녘을 누비며 오랑캐를 물리친 가상의 인물 백현아가 주인공. 그가 여진족 추장 퉁두란티무르(훗날의 이지란ㆍ李芝蘭)와 이성계를 만나 홍건적에게 짓밟힌 땅을 회복하고 동포를 구하는 활약을 하는 것이 줄거리다.
  4. 신포(이규태코너) [조선일보]1997-08-21 05면 1094자
    이성계의 창업을 도와 개국공신이 된 귀화한 여진족 무장 이지란의 고향이 함경도 신포다. 이태조는 이곳에 「천」자 대문 99칸 집을 지어주어 여생을 살게 했다. 근대 인물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어 만방에 일제의 흉계를 폭로한 이준 열사의 고향도 신포다. 그 신포가 한반도 분단사를 아물게 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엊그제 남북 경협의 과실인 경수로 시설공사의 기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시절에는 숙신이 지배하여 그 토성을 남겼고 그후 동부여 고구려 발해 동란국 금국 동진의 지배를 거쳐 윤관 장군의 수복으로 고려땅이 된 기구한 운명의 땅이다. 그래선지 이 북청 신포 고을 사람들에게 남다른 기상이 있다.
  5. [백두대간 대탐사] (2) 고기리(지리산북부)~백운산~중재 [조선일보] 2005-02-04 10판 52면 1638자
    운봉을 지나 인월로 조금 가면 왼쪽에 황산대첩비가 있는 화수리 비전마을이 있다. 비전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에 황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황산은 운봉의 길목에 있는 산이고 운봉 평야지대를 제압할 수 있는 산이다. 고려 말에 함양·운봉을 노략질하며 인월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장수 아지발도 부대를 이성계가 이곳에서 섬멸했다. 이성계는 아지발도의 투구를 활로 쏘아 입을 벌리게 하고 그때 이지란이 활을 쏴 아지발도를 죽였다. 적장이 죽자 적의 기세는 단번에 꺾여 고려군들이 크게 격파했다. 황산대첩비는 왜구를 황산벌에서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다.
  6. 조선조 창업의 숙명적 맞수 정도전과 하륜 신동아 1997-11-01 14353자
    1393년(태조 2년) 7월에 정도전은 동북면 도안무사(東北面都安撫使)가 되어 동북면(함경도) 일대에 살던 토착 여진족을 조선의 편호(編戶)로 편입시켜 우리 백성으로 동화시켰으며, 1397년(태조 6년) 12월에 동북면 도선무사(東北面都宣撫使)로 나가서 동북 지방의 성보(城堡)를 수축하고 주군(州郡)의 경계를 정했다. 고려 때에는 여진족이 동북면 일대에 내려와서 농경생활을 했다. 이성계는 함주(함흥)의 대토호로서 그 세력이 동북면 일대 여러 여진족을 통솔할 만큼 막강했다. 이성계는 길주(吉州) 출신인 여진족 대토호 이지란(李之蘭, 퉁두란)과 손을 잡고 동북면 일대 여러 여진족이 조선의 판도 안에 들어오게 했다. 이리하여 조선이 건국하자 정도전을 도안무사로 보내 토착 여진족을 조선의 호적에 올리고, 그들에게 농토를 주어 농사를 짓도록 생존권을 보장해 주었으며 우리나라 백성들과 여진족의 혼인을 장려했다.
  7. 스크린과 역사<14> [시민의신문]2001-10-10 00면 1631자
    만주족은 언어(알타이어)와 민족(퉁구스계)이 우리와 같은 갈래로 고대에는 숙신·말갈, 고려때부터는 여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우리와 갈등과 화평의 관계를 유지했다. 역사적 교류과정에 귀순자도 많았는데 그들중에는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본명은 퉁두란)이 가장 유명하고 오늘날 황·박·정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8. [이규태 역사 에세이] (23)좌부인 이야기 [조선일보]1999-08-06 45판 19면 4220자
    우리나라 기록에 처음으로 좌부인이 나타난것은 북청이씨 족보다. 송나라에서 고려에 병력을 요구하자 조정에서는 함경도 북녘 변방에 강제 모병을 했다. 이때 여진족으로서 귀화한 북청이씨 문중에 70 노부를 대신한 딸이 남장을 하고 모병에 응모했다. 송나라 무목 장군 휘하에서 3년간 종군했는데 끝무렵에 여자임이 들통이 났고, 무목장군이 그 미모와 기개에 반해 아내로 삼았다. 본부인은 우부인으로, 이 북청이씨 여인을 좌부인으로 삼아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 한다. 그후 그 악명높은 진회가 무목장군을 죽이고 가문을 말살하자 좌부인은 한 아이만을 둘러업고 고향인 함경도 청해(북청)에 와서 살았으며, 그 후손이 이태조의 건국공신인 귀화 여진족 이지란이다.
  9.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
  10.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
  11.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논문표절 의혹] 왜 표절인가… 제목 비슷한 제자 논문명 안밝혀 [국민일보]2006-07-24 1309자
  12.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13. 집중취재/ 대학가 논문표절 실태 [서울신문]2001-11-23 20판 06면 3074자
  14. 美선 판결문도 논문출처 밝혀 저작권 단체가 표절 판정해야;‘金부총리 논문’ 논란 [조선일보]2006-07-27 45판 5면 1076자
  15. 표절/외국대학의 경우/금단의 열매, 조헌주 기자, 동아일보 1997-10-28 18면 172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