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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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가톨릭 주교(1921년-1993년). 세례명은 다니엘.
1921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태어나 소신학교(신학 고등학교)인 서울 동성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함경남도 덕원에 있는 덕원 신학교를 다니다가 남북 분단 이후 월남하여 서울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쟁중이던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부산, 청주 등에서 본당 신부로 있다가 로마 우르바노 신학교에 유학하여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65년 주교 서품을 받고 그 해에 신설된 천주교 원주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되었다.
주교로 봉직하는 동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1970년 원주 문화방송을 설립하는 데에 앞장서고 김지하 등 의식있는 청년들을 지원하였다. 1974년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는데, 이를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출범하였다. 226일 동안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후에도 한국 민주화의 지주로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을 방문하여 누이 지용화 등을 만났으며, 분단 40년 만에 북한에서 한국인 신부로서 처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1993년 3월 12일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제천 배론성지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선종 후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단법인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을 설립하고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