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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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 1월 26일 - 1964년 4월 5일)은 미국의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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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맥아더 자신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 참전했으며, 미국이 일본을 지배할 당시 최고 통솔자를 맡았다.
[편집] 일본에서의 군정활동
일본역사 최초의 외국인 쇼군이기도 한 맥아더는 일본인들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일본 천황의 '천황(덴노)은 인간' 발언을 이끌어 낸 것으로도 유명하며, 성서를 대량으로 유포하는등 종교로써 일본을 순응시키려고 하였다. 즉,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적 근거가 된다고 판단한 신토를 무력화시켜 전쟁도발을 막고자 한 것이었다. 그외 일본에서의 맥아더의 脫 군국주의 정책으로는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운동 묵인을 통한 자본가 견제(자본가들이 군대와 협조하지 못하게 하려는 정책), 교과서 내 천황 신격화 금지 조치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도들은 한국전쟁이후 일본사회가 보수화(易 코스)되면서 의미가 없게 되었다.
[편집] 한국전쟁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에서 원수의 계급으로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 전쟁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당시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불신으로 인해, 한국 전쟁 후 미국에서 매카시스트 즉,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 추종자로 낙인찍힌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정규군(중국인민해방군)의 개입을 무시하다가 중국이 전쟁에 사단급 병력을 보내어 개입하자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무모하고 극단적인 주장들은 만약 그가 트루먼에 의해 해임되지 않았다면, 세계대전이 한번 더 일어났을 것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미군정 당시 행정공백을 명분으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았다는 것 등도 맥아더가 비판받는 이유이다.
[편집] 자세한 행적
[편집] 각주
- ↑ 조용중, 《미군정하의 한국정치현장》(나남, 1990) 3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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