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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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응(趙重應, 1860년 - 1919년)은 친일 인사이다.

청일 전쟁 전야에 의친왕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것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친일행적을 드러내게 되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여하였다.[1]

1910년 10월 16일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2]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편집] 가족 관계

  • 아들: 조문호(趙文鎬, 1908년 - ?)
  • 딸: 조숙호(趙淑鎬, 1913년 - ?)

[편집] 각주

  1. ^  반민족문제연구소,《친일파99인》(돌베게, 1993년) 138쪽(장석홍 집필 부분)
  2.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80쪽.
정미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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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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