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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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가(黃鳥歌)는 고구려유리명왕(瑠璃明王)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노래이다. 삼국사기에 4언 4구의 한시 형태로 번역되어 전하고 있다.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노니는데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1]

[편집] 원문과 배경 설화

유리명왕 3년(기원전 17년) 가을 7월에 골천(鶻川)에 별궁(別宮)을 지었다. 겨울 10월에 왕후 송씨(王后 宋氏)가 죽자 대왕은 다시 두 여자들에게 장가를 들어 후처로 삼았다. 하나는 화희(禾姬)인데 골천인(鶻川人)의 딸이고, 또 하나는 치희(稚姬)인데 한나라(漢) 사람의 딸이다. 두 여자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서로 다투며 화목하지 않았으므로 대왕은 양곡(凉谷)에 동·서 2궁을 지어 각각 살게 하였다. 그 후에 대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자 두 여자가 서로 다투었다. 화희가 치희를 꾸짖어 “너는 천한 한나라 계집인데 어찌 무례함이 심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치희가 부끄럽고 한스러워 도망쳐 돌아갔다. 대왕은 그 말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좇아갔으나 치희는 성을 내며 친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대왕은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黃鳥]가 날아와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노래하였다.[2]
  1. 《국문학전사》(이병기, 백철, 1957년), 41쪽
  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1권 유리명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