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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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풍(扶餘豐, ?~669년)은 백제의 제31대 왕 의자왕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여풍은 볼모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신라당나라의 연합 공격으로, 백제가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자, 이후 각 지방의 저항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이 가운데 무왕의 조카인 좌평 복신과 흑치상지, 도짐 등은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주류성과 임존성을 거점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은 200개의 성들을 되찾고 사비성과 웅진성에 주둔한 당나라군을 공격하면서 4년간 저항하였으나, 663년 결국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의하여 백강 전투에서 진압되고 만다.

한편 부여풍은 이웃의 고구려로 도주를 하였으나, 668년에 고구려가 당에 멸명된 후, 중국 남부지방으로 유형되었다고 한다. 이후의 생애는 미상.

한편 그의 동생인 선광(善光 또는 禪廣)은 왜에 남았으며, 지토 천황(持統天皇)으로부터 '구다라노 고니시키'(百濟王)라는 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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