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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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張保皐, 출생 연대 불명 - 846년)은 남북국 시대의 신라 해상 호족이며, 해상왕으로 알려져 있다. 본명은 궁복.

신라에서는 신분적인 제약으로 인해 장군이 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자, 당나라로 건너갔다. 뛰어난 무술을 인정받아 무령군소장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령군소장으로 있는 동안 자신의 관할지역에 신라인 노예들이 끌려오는 것을 보고 크게 격노하여 신라로 돌아갔다.

신라로 간 그는 신라 제42대 임금인 흥무왕을 만나 완도에 청해진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으며 김우징 등의 황족들이 이를 찬성하여 마침내 허용되었다.

그는 청해진을 건설한 후 당시 신라 서남해에 출몰하던 당나라의 해적과 일본 왜구들을 모두 소탕하였으며 당나라, 일본, 남방,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엄청난 이득을 취하였다. 이 때문에 신라의 국력이 잠시나마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836년, 흥무왕이 죽은 후 왕위계승전쟁에서 패퇴하여 청해진으로 쫓겨 온 김우징을 도와 정변을 일으켜 839년 1월,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추대하여 감의군사의 직책을 받았다. 문성왕이 즉위한 후에는 진해장군에 임명되었으며 당나라에 견당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비로 맞아들이려 했던 일이 신무왕의 갑작스런 서거 이후 대신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조정에 큰 불만을 품었다. 이에 그는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조정의 밀명을 받은 그의 옛 부관 염장에게 비밀리에 격살(擊殺)되었다.

그가 죽은 년도는 846년 봄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장보고에 관한 자료를 보면 841년 11월에 참살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교토의 적산선원에서 장보고를 적산 대명신으로 받들고 있으며, 16세기 센고쿠 시대의 명장 다케다 신겐은 장보고를 가문의 수호신인 신라 대명신으로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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