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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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 세르비아어 | ||||
수도 | 베오그라드 | ||||
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밀란 1세(1882-1889) 알렉산다르(1889-1903) 페테르 1세(1903-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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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 1882년 3월 6일 | ||||
통합 | 1918년 12월 1일 | ||||
통화 | 디나르 | ||||
종교 | 그리스 정교회 |
세르비아 왕국(Краљевина Србија '크랄례비나 스르비야')은 오늘날의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에 있었던 옛 나라이다. 1882년부터 1918년까지 존재하였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국가(國歌)는 하느님의 정의이다. 이 국가는 2004년도에 공화국의 국가로써 부활했다.
목차 |
[편집] 역사
[편집] 독립 전
19세기 초기부터 남슬라브인에 속하는 세르비아인의 독립운동이 활발하였다. 세르비아인은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민족주의의 대두에 자극을 받아 대세르비아주의를 내걸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하였다. 1867년에는 투르크군을 철수시키고 밀로슈 오브레노비치 4세를 세르비아공(公)으로 추대하였다. 1875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반란 때 투르크와 재차 싸워 패하였으나, 범슬라브주의와 결탁하고 러시아-투르크전쟁 때에 러시아와 협력하여 투르크와 싸웠으므로 1878년의 산스테파노조약, 베를린회의에서 마침내 독립이 승인되었다.
[편집] 발칸 문제
이 나라는 민족적으로는 슬라브족에 속하고 경제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의존하였으므로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교착되는 등 국내 정세가 복잡하였다. 페테르 1세(재위 1903-1918)가 쿠데타로써 이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확장 정책과 유럽 열강들의 이해 대립이 발칸을 화약고와 같은 상태로 몰아넣게 되었다.
[편집] 제1차 세계대전
1908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병합되고, 1914년에는 세르비아 청년(범인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한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 세르비아는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세르비아는 1915년 11월에 전 국토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동맹군에게 점령당한다. 국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수복하게 되었고, 세르비아는 승전국이 된다.
[편집] 통합
전후 세르비아가 중심이 되어 1920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성립되고, 이것이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된다. 유고슬라비아의 군주제는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 때까지 존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