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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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려군(중국어 정체: 鄧麗君, 간체: 邓丽君, 병음: Dèng Lìjūn, 덩리쥔, 1953년 1월 29일 ~ 1995년 5월 8일)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중화권 및 일본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첨밀밀이 소개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중화 민국, 홍콩, 일본, 중공까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아시아의 가희(歌姫)"라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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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름
그녀의 본명은 등려균(鄧麗筠)이나, 데뷔 후 등려군(鄧麗君)으로 불렸고 영문 이름은 Teresa Teng으로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리웠다. 이 영문 이름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했던 수녀 테레사에 연관되어 붙인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그녀는 기독교(카톨릭) 신자로 세례명을 사용한 것으로 사후 밝혀졌다.
[편집] 경력
1953년 중화 민국(대만)의 운림현(雲林)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대륙(현재 중공)의 하북성(河北省), 모친은 산동성(山東省) 출신으로 둘다 본토 출신이다. 부친은 원래 국민당군(국부군)의 직업 군인으로 국공 내전 후에 대만 섬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영향인지 그녀 자신 생전에도 군 위문 공연을 열심히 활동했고, 중화 민국에서는 "군인들의 연인"이라는 별명이 있었다는 것도 유명하다.
1970년인 16세때 당시 중화 민국의 인기 드라마인 "정정(晶晶)"의 주제가인 "我一見汝就笑"를 불렀고 그 후 5년정도 중화 민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싱가폴,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활동. 1973년에는 홍콩에서 만난 "도라스(トーラス)"의 사장 후나키(舟木稔)를 만나 일본에서의 활동도 개하였다.
이에 따라 그녀는 중화 민국의 공식어인 북경어를 비롯, 민남어, 광동어, 일본어, 영어로 된 노래들을 불러왔고, 중국어로 된 노래는 1000여곡, 일본어로 된 노래도 260여곡에 달한다.
[편집] 일본 활동
1973년부터 시작한 일본 진출에서 아이돌 계열의 노래인 "오늘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를 취입했으나 실패, 곧 엔카(戀歌) 계열로 전환하여 "공항(空港)"을 취입 대히트 당시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 인도네시아 위조 여권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국외 추방당했다.
이 후 1984년까지 미국, 홍콩, 중화 민국에서 활동하다 일본 시장에 재입성, "속죄(つぐない)", "애인(愛人)"이 각각 150여만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맏겨서(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가 200여만매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전일본 유선 방송 대상(全日本有線放送大賞)"의 동서(東西) 유선 대상으로는 최초의 3해 연속 대상 및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85년 12월에는 생전 마지막이 되는 솔로 콘서트를 NHK홀에서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1985년에는 조용필의 일본 활동 후 일본에서 유일하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 (이후 계은숙이 취입)
1987년 이후 일본에서 그다지 활동하지 않다가 1994년 11월 NHK "가요 자선 콘서트(歌謡チャリティーコンサート)"에 출연하였다.
1995년 취입할 예정이던 "잊지마(忘れないで) - time to say good-bye -"는 그녀의 사망으로 취입되지 않다가 2001년 일본 가수에 의해 추도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편집] 중국 활동
중화 민국 출신으로 대만 및 홍콩, 마카오등 중화 지역에서의 활동도 활발했다.
1979년 위조 여권 사용 이후 중화권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녀 자신의 오리지널 노래도 흥행했지만, 주로 일본인으로 태어나 만주국에서 활동한 이향란(李香蘭, 山口淑子)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곡들에는 "夜來香", "蘇州夜曲" 등이 있다. 그러나 이향란은 만주국 찬양,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귀국 활동등 이러한 이유가 문제가 되었는지, 중공에서는 1983년까지(실제로는 양안관계가 해소된 1987년까지) 등려군의 노래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또한 반대로 "何日君再来"와 같은 항일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7년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활동적인 모습은 그다지 없었고, 홍콩 및 대만에서 활동만 유지하다 1990년이후 홍콩 반환의 문제로 걱정하다 파리로 다시 이주한다. 이후에는 중공내 민주화 요구, 천안문 사건 반대 집회 등에 참여하는등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기도 한다.
중공의 대륙에서 금지곡이었던 그녀의 노래는 인민간에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많은 소문과 유언비어, 특히 콘서트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양안관계 해소 후 실제로 그녀는 그러한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천안문 사태를 야기한 공산당 정부에 실망, 실현되지는 않았다.
[편집] 죽음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은 1990년, 1991년 한번 씩 흘러나왔으나 유언비어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 1995년 5월 8일 요양을 목적으로 가끔 방문하던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 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사망, 향년 42세.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던 14세 연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이 최후의 간호를 했다. 동월 28일 중화 민국의 대북(타이페이)에서 국장급의 장례가 치뤄져 전 세계 3만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그녀의 관은 중화 민국 국기와 국민당 당기로 덮여졌다. 현재 묘소는 대북시 북동에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있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대만 국민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사체는 화장되지 않고 매장되었다. 사후 50년 정도 생전 모습 그대로 계속 둘 예정이다.
그녀의 사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기관지 천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약 복용설, 민주화 운동 및 반정부 운동에 관련되어 중공 공산당에 의한 암살설 등 여러가지 의혹이 있다.
[편집] 중국어 대표곡
모두 1000여곡이 있으며 사랑받는 대표적인 노래는 다음과 같다.
[편집] 북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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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광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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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민남어(대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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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일본어 대표곡
총 260여곡의 노래가 있으나 타이틀 곡으로 대표적인 노래는 다음과 같다.
- 오늘 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 - 1974년
- 공항(空港) - 1974년 7월 1일
- 눈 화장(雪化粧) - 1974년
- 밤의 페리포트(夜のフェリーボート) - 1976년
- 고향이 어디입니까(ふるさとはどこですか) - 1977년
- 속죄(つぐない) - 1984년 1월 21일
- 애인(愛人) - 1985년 2월 21일
-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서(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 - 1986년 2월 21일
- 스캔들(スキャンダル) - 1986년 11월 21일
- 이별 예감(別れの予感) - 1987년 6월 21일
- 연인들의 신화(恋人たちの神話) - 1988월 1월 25일
- 홍콩(香港) ~Hong Kong~ - 1989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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