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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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중국어: 西夏 병음: Xī Xià 시 샤)는 1032년에서 1227년까지 중국 북서부의 간쑤 성(甘肅省), 산시 성(陝西省)에 위치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왕조이다. 전성기에는 북으로는 고비 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로는 옥문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탕구트족은 자신의 나라를 "크고 높은 나라"(phiow¹-bjij²-lhjij-lhjij², 大白高國)라고 불렀었다. 당나라 시대 때 서하의 지도자는 장안의 수복에 공을 세워 당나라로부터 황실의 성(姓)인 이(李)씨를 하사받아 자손 대대로 이씨 성을 사용하였다. 송나라 때 와서는 송나라 황실로부터 조(趙)씨 성을 하사받아 사용하고 있었고 1038년까지는 송나라의 조공국이었다.
1038년 서하의 원호(元昊)가 조씨 성을 버리고 탕구트어에 의한 성으로 바꾸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나라의 이름을 대하(大夏)로 정해 고대 중국 하(夏)나라의 계승을 자처하였고 연호를 천수예법연조(天授禮法延祚)로 고쳤다. 서하 문자를 제정하고 관제를 확립하는 등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려 하였다. 서하는 송나라에게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였으나 송나라는 서하 황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1041년 서하군이 송나라 영토 근처에 집결해 호수천에서 양국 간 전투가 벌어졌는데, 송군이 패배해 전사자가 1만 3천 명에 달했다. 그 후 2년 여간 전쟁이 계속 되었는데, 송나라와 요나라가 강화를 맺고 서하의 병사와 백성들이 느끼는 전쟁의 피로가 커지는 등 전황이 서하군에 유리하지 않게 되자 서하에서는 송나라에 강화를 요청했다. 송나라는 서하와 요나라와의 동맹을 우려하여 서하의 강화 교섭을 받아들였다. 1044년 송이 서하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는 대신 서하에서는 송나라의 황제를 인정하고 신하의 나라가 되는 조건의 강화를 맺었다. 그래서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夏國王)에 봉해졌고, 송나라는 매년 비단 13만 필, 은 5만 냥, 차 2만근을 서하국에 보내기로 하였다.
송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불교 문화가 발전하는 등 나라의 발전이 있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부패가 만연하고 경제 사정이 열악해져갔다.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 안정도 잃어갔다. 당시 국력이 신장하고 있던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의 침략을 6번이나 받게 된다. 1207년 서하는 몽골에의 복속을 약속하고 서하 황제의 딸을 보내 칭기즈 칸과 혼인시켰다. 이후 서하는 금나라와 오랜 전쟁을 치루었는데 이는 서하의 국력을 더욱 쇠퇴하게 하였다. 결국 1227년 칭기즈 칸의 몽골군에 의하여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