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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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성 도미니코

도미니코(라틴어: Sanctus Dominicus, 1170년 - 1221년 8월 6일)는 로마 가톨릭의 수도자이자 도미니코회의 창설자이다. 본명은 도밍고 데 구스만(스페인어: Domingo de Guzmán)이다.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8월 8일. 도미니코는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흔한 이름으로 ‘하느님의 날’을 뜻하는 도메니카(domenica), 즉 일요일이란 단어와 관련이 있다. 미술작품에서 도미니코는 도미니코회의 하얀 수사복에 검은 망토를 입고 있으며, 이마에는 별이 있고 손에는 백합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후대의 그림에는 그가 를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설립한 도미니코회의 명칭이 ‘신의 개들’을 의미하는 라틴어 도미니칸(Domini canes)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개가 입에 횃불을 물고 있기도 한다.

[편집] 생애

도미니코는 1170년 스페인의 북부 카스티야 지방의 궁핍한 농촌에서 그곳 총독인 펠릭스 데 구스만과 요안나 폰 아자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도미니코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 요안나는 횃불을 입에 문 개 한 마리가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오고, 개가 태어나자마자 온 세상이 불이 붙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요안나는 이 꿈을 장차 태어날 자신의 아들이 말로써 세상을 불태우게 될 태몽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신앙심이 두터운 부모에게서 훌륭한 자랐으며, 7살 때에는 사제였던 숙부한테서 일찌감치 성직 교육을 받았다. 14살에는 교육의 중심지로 유명한 발렌시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10년간 열심히 문학과 신학을 연구하고 24살 때에 오스마 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204년 그는 주교 디에고 데 아제베도와 함께 덴마크 등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도미니코가 툴루즈에서 알비파이단 사상을 처음 접하게 되는 기회였으며,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평생의 일부가 될 소임, 즉 알비파 신도들을 다시 교회와 화해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설교 수도회를 설립하여 로마 가톨릭 문화의 연구 중심지로 삼고 설교 수도사들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도미니코가 설립한 새로운 수도회는 1216년 도미니코회라는 명칭으로 교황 호노리오 3세의 승인을 받았다. 도미니코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율을 받아들이고 다른 규칙들을 추가했다. 도미니코회는 급속히 서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1220년에 도미니코회의 첫 번째 총회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렸으며 도미니코는 이듬해인 1221년에 사망하였다. 1234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한편 도미니코는 어려움에 쳐할 때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간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1210년에 그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로사리오를 주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널리 전파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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