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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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프랑스어: Chasse aux sorcières, 영어: Witch-hunt) 또는 마녀 재판은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현대에는 이러한 행위를 심리학적인 관점으로서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전근대적인 문화나 고대부터의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마녀 재판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일찌기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12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의 주도에 의해 행해져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러한 견해는 1970년대 이후 마녀 재판의 학술적인 연구의 진전 덕분에 수정되어 본래 민중 사회에서 일어났던 마녀 재판은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볼 수 있었으며 전 유럽에서 최대 4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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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유럽에서의 마녀 재판
[편집] 마녀 재판의 기원
고대 이래, 사람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대한 힘 또는 자연을 조종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라틴어로 마레피키움(Maleficium)으로 불리는 마법의 개념으로 연결되었다. 원래 유럽 각지에서는 민사에 관한 한, 권력자가 아닌 민중이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민중 재판을 통해 치안을 유지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중에 폭력이나 절도와 함께 마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건도 중재의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특별히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는 않았으며, 다른 범죄와 같이 피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처벌하고 있었다. 또 같은 마법으로도 좋은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여겨졌던 것, 이른바 백마법은 일반적으로 인간 친화적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리스도교 사회권에서는(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지만) 악마가 인간이나 동물 등을 이용해 악한 행위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의 민족 신앙에 대한 불신감이나 십자군 병사들에 의해 동방에서 가지고 온 사상 및 문화 등이 융합하여 생겨났다고 추측된다. 또 고대 이래, 악마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근절하려고 애써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진 인간에 대한 규탄이 있었다. 악마에게 이용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중세 유럽에서 볼 수 있던 동물 재판에서는 악마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동물도 있었다. 사람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붙잡고는 민중 재판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여성 연구가 막스 다슈에 의하면, 중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마녀관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로마의 민족 종교인 박커스 신앙이나 로마의 전설에 나오는 괴물 스트리크스(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올빼미로 변신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여겨졌다.)와 마녀상간에 유사점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찌기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중세 유럽 사회에서 12세기 카타리파 탄압이나 성전 기사단 박해 이후에 로마 교황청의 주도 아래 이단 심문이 활발해졌으며, 뿐만 아니라 교회의 주도로 마녀 재판이 활발히 행해져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연구에 의해서 이러한 견해는 뒤집어지게 되었다. 특히 유명한 노맨 콘과 리처드 키크히퍼의 연구에 의하면, 마녀 재판은 스위스와 크로아티아의 민중 사회에서 시작되어 이윽고 민중 법정의 형태로 마녀를 단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단에 관해서는 깊이 개입했지만, 마녀에 관해서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로마 가톨릭이 이단 심문을 통해 마녀 재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이것은 1384년과 1390년에 밀라노의 이단 심문소에서 마법을 사용한 혐의로 고발당한 두 명의 여성에 대해, 이단 심문소에서는 이런 종류의 고발에 대해서는 재판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편집] 마녀 재판의 전개와 쇠퇴
12세기에 시작된 이단 심문이 민사 재판으로 재판되었던 마법까지 취급하게 된 것은 15세기에 들어가면서 부터이지만, 그것은 왈도파가 많았던 스위스나 프랑스의 알프스와 가까운 지방에서만 취급되었다. 노맨 콘에 의하면 기록을 보면 1428년의 스위스 Valais 주의 이단 심문소가 마녀 건을 취급한 것이 최고였다고 한다. 원래 이 지방의 이단 심문소는 주로 왈도파를 추궁하는 성향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윽고 이단자들의 집회 이미지가 마녀의 집회 이미지로 변용되어 간다. 악마 숭배 행위, 혹은 성물을 모독하는 행위, 아이를 납치해 잡아먹는 행위 등의 마녀의 집회가 가지는 이미지는 일찌기 이단의 집회에서 행해졌다고 여긴 이미지 그대로였다(마녀는 본래 군집생활을 했었으며, 숲세 혼자서 사는 마녀의 이미지는 그림 동화의 영향이 크다).
한발 더 나아가 마녀의 개념이 당시 유럽을 뒤덮고 있던 반 유대주의와 결합하게 되면서, 아이를 잡아먹는 매부리코를 가진 여인이라고 하는 마녀상이 만들어졌다. 마녀의 집회가 유대인의 안식일과 같은 명칭인 사바트로 불리게 된 것도 반 유대주의의 산물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마녀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 15세기였다.
15세기에 들어가면서, 마녀와 마법에 관한 서적이 일종의 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서적의 대부분은 속설이나 소문을 근거로 집필된 것이었으며 마녀의 위험성을 부추기는 저속하고 선정적인 물건이었다. 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마녀의 혐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여러가지 잔인한 고문행위도 이러한 풍설에 근거한 것이었다.
[편집] 마녀 재판을 하는 방법
[편집] 시기와 지역, 희생자 수
[편집] 마녀 재판의 의미
[편집] 광적인 마녀 재판
[편집] 바깥고리
- The Stages of a Witch Trial ? a series of articles by Jenny Gibbons.
- 1913 Catholic Encyclopedia entry on "Witchcraft"
- The Burning Times A Wiccan discusses what she considers the three myths of "The Burning Times"
- Jenny Gibbons (1998). Recent Developments in the Study of The Great European Witch Hunt. Retrieved 21 November 2006.
- Crises: Witch hunt
- The Decline and End of Witch Trials in Europe by James Hannam
- Witch Trials Documentary Archive and Transcription Project
- Witch T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