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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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일본어: 小泉純一郎 소천순일랑, 1942년 1월 8일 ~ )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중의원 의원(12선), 내각총리(제87·88·89대), 우정대신(제56대), 후생대신(제73·74·86대), 자유민주당 총재(제20대)를 역임했다. 1,980일 간 총리로 재임하여 전후의 정권으로는 사토 에이사쿠와 요시다 시게루 다음으로 긴 집권기간을 가졌다. 또한 총리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래로 사임하지 않고 임기를 끝까지 마친 자유민주당 총재가 되었다. 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와 부친인 고이즈미 준야도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부친은 방위청 장관도 역임했다. 아들 고이즈미 고타로는 배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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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약력
- 1942년 1월 8일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의 정치가 집안에서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 어머니 요시에의 장남으로 태어남.
- 1960년 3월 가나가와 현립 요코스카 고등학교 졸업.
- 1962년 4월 삼수하여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입학.
- 1967년 5월 한 번 유급한 후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졸업.
- 1967년~1969년 런던 대학교에서 유학
- 1969년 8월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국.
- 1969년 12월 27일 제32회 중의원 선거에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함.
- 1970년 후에 총리가 되는 후쿠다 다케오 중의원 의원의 서생으로 들어감.
- 1972년 12월 10일 제33회 중의원 선거에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첫 당선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당선됨.
- 1979년 11월 대장성 정무차관으로 취임.
- 1988년 12월 후생성 장관으로 취임.
- 1992년 12월 우정성 장관으로 취임.
- 1995년 9월 자유민주당 총재선거에 출마했으나 하시모토 류타로에게 패함.
- 1996년 11월 후생성 장관으로 취임.
- 1998년 7월 자유민주당 총재선거에 출마했으나 오부치 게이조에게 패함.
- 2001년 4월 24일 3번째로 도전한 자유민주당 총재선거에서 당선.
- 2001년 4월 26일 제87대 내각총리에 취임.
- 2001년 8월 13일 총리 취임 후 첫 야스쿠니 신사 참배 .
- 2002년 1월 29일 다나카 마키코 외무성 장관을 경질.
-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첫 정상회담, 조일평양선언 조인.
- 2003년 11월 19일 제88대 총리에 취임.
- 2004년 1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
- 2004년 5월 22일 다시 방북해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25만 톤의 식량과 1000만 달러 상당의 의료품 지원을 표명하고 북·일간의 국교 정상화를 진전시켰다고 발표함. 5명의 납치 피해자 가족의 귀국을 실현.
- 2004년 7월 제20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에 근소한 차이로 짐.
- 2005년 7월 5일 우정 민영화 관련 법안이 중의원 본회의에서 가결.
- 2005년 8월 8일 우정 민영화 관련 법안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내각에서 중의원 해산을 결정하고, 중의원 해산결의에 서명을 거부한 시마무라 요시노부 농림수산성 장관을 파면시킴. 같은 날, 헌법 7조에 의거해 중의원을 해산시키고, ‘우정 해산’이라고 명명함.
- 2005년 9월 11일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296석을 획득하여 크게 승리함.
- 2005년 9월 21일 제89대 총리에 취임.
- 2006년 8월 15일 취임 당초의 공약에 따라 연미복 차림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 2006년 9월 21일 자민당 총재 임기가 만료.
- 2006년 9월 26일 오전에 임시 각료회의를 갖고 5년 5개월 동안의 임기를 마감함과 동시에 내각 총 사퇴.
- 아베 신조를 자신의 후계자로 주목해 정부 각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차기 총리가 되는 발판을 마련해줌.
[편집] 인용
- 결국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의 후광을 곱빼기로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 1972년 12월, 중의원 당선시
- 주식을 갖고 있는 것은 가지고 있는 만큼 의심을 받고 나쁘다고 말하니 도리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팔아버렸다.
- 1989년 2월 각료 재산 공개시
- 복지를 담당하는 부서이니 노인에게도 이해가 되는 아름다운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하시오.
- 1989년 3월 후생성 예산설명시
- 자민당이 증인심문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국회에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가라 생각한다. 나카소네는 좀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
- 1989년 4월 리쿠르트 사건시
- 일본 경제의 발전은 민간이 노력해서 성장해 왔다. 우정의 일은 관없이 민업을 압박하고 있다. 마찰이 있는 부서지만 부서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다.
- 1992년 12월 우정상 취임 기자회견시
- 진짜 칼을 뽑아서 행정개혁을 추진해 달라. 당신은 연습용 죽도를 흔들고 있다.
- 1996년 8월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와 대담
- 알기 쉽게 말하자면 부하가 책임을 지고 할복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1996년 11월, 뇌물 수뢰 의혹 후생성 사무차관 사직 승인시
- 후보자는 유권자를 고르지 못한다. 헌금을 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알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1996년 12월 후생성 소관 공익 법인 정치단체로부터 뇌물 수뢰시
- 행정개혁의 제일보는 정치가 자신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 1997년 9월 중의원 연속 재직 25년 표창 거부시
- 새로운 부서의 이름이 너무나 가볍다. 노동복지성이라면 각의에 서명하지 않겠다. 내 목을 잘라달라
- 1998년 1월 재편예정 명칭 반대시
- 보통사람도 군인도 이 세상에서 사리지고 남은 것은 괴짜(變人)뿐이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데 정계에서는 괴짜라고 평한다. 진짜 괴짜는 나가타 초다.
- 2000년 7월 다나카 마키코의 보통사람, 군인, 괴짜 발언 인용
- 나는 괴짜라고 불리지만 괴짜라는 것은 변혁하는 사람의 양칭이다.
- 2001년 3월 파벌 소속 의원 모임에서
여기까지는 '괴짜총리 고이즈미, 흔들리는 일본'에서 인용[1]
-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
- 미국 죠지아주 시 아일랜드에서 개최된 제 30회 주요국 수뇌 회담에 참가해서, 2005년 6월 9일 기념 촬영때, 이탈리아 수상 실비오 베르르스코니에게 말을 걸었을 때의 기행. 베르르스코니는 기가 막혀 있고, 기자단으로부터는 「Shame on You!」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그는 그에 대해 「쌩유!」라고 대답했다.
- 나는, 지금, 국회에서 우정국 민영화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다시 한번 국민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우정국의 일은 국가 공무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지. 민간인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공무원 삭감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어떤 행정 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 중의원 해산 때의 총리 기자회견.
小泉純一郎, 出典: フリー引用句集『ウィキクォート(Wikiquote)』[2]
[편집] 관련항목
[편집] 참조
[편집] 바깥 고리
- 일본총리관저 공식웹사이트 (일본어, 영어)
- 일본 국가전략본부 (일본어)
- Biographical information on Junichiro Koizumi's divorce, ex-wife Kayoko Miyamoto, and their estranged children Yoshinaga Miyamoto, Kotaro Koizumi and Shinjiro Koizumi.
전 임 모리 요시로 |
제87·88·89대 일본 총리 2001년 4월 26일 ~ 2006년 9월 26일 |
후 임 아베 신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