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안창호 동상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안창호 동상

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도산(島山)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도산대로(島山大路)와 도산공원은 이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수학

도산 안창호는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안흥국(安興國)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선대는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8세까지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는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김현진(金鉉鎭)에게 한학을 배웠다. 이때 서당 선배인 필대은(畢大殷)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1895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교육을 통해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미국 장로교 선교사호러스 언더우드가 경영하는 구세학당(救世學堂)에 입학하였다.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서구문물과 접하게 되었다. 구세학당 졸업후인 1898년에는 미국 유학을 떠나, 노동으로 학비를 벌면서 공부하였다.

[편집] 민족운동

유학생신분이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대일본제국이 빼앗자,1907년 도산은 귀국하여 대한 사람[1]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는 계몽활동외에도, 1904년 의친왕(義親王), 정재관(鄭在寬) 등과의 공립협회(共立協會)창립, 1909년김좌진(金佐鎭)·이갑(李甲) 등과의 서북학회 창립등으로 민족운동을 하였다. 또한 1908년 대성학교를 평양에 설립하였는데, 당시 대성학교의 교육방침은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1913년 흥사단을 창립하였으며, 1919년 4월 13일 선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에 임명되었다.[2] 1923년에는 만주에서 이상촌 건립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일본만주 침략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1930년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였다가 체포되어 5년간 옥살이를 하였는데, 출소후 고향에 머무르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이듬해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50세를 일기로 간경화로 별세하였다. 시신은 망우리공동묘지에 묻혔으며,1973년 도산공원으로 묘소가 이장되었다.

[편집] 가족 관계

[편집] 어록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고 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되는것이 다 나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요라고만 하고 가만 앉아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3]

운둔하는 것이 내 일신으로 보면 가장 편안한 일이다. 내 쇠약한 건강 상태를 보아서도 그러하지마는 내 심신이 아직 활동할 기력이 남아 있고, 우리 민족의 현상이 우려할 형편에 있는 이때에 제 일신의 평안이나 명성을 위하여 가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4]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안창호는 우리는 대한제국 사람이므로 대한사람으로 자신을 호칭해야 한다고 하였다.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502/kd2005021515292145690.htm
  2.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한길사, 2004) 26쪽.
  3. 출처는《우리가 아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오경준 지음/홍성사,p190이다.
  4. 도산 안창호가 1935년 감옥에서 출소했을때 어느 동포가 세상에 나오지 말고 산중에서 깨끗한 일생을 마치라고 권했을때 했다는 말이다. 출처는《우리가 아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오경준 지음/홍성사,p193이다.
신민회 창건위원
양기탁 | 전덕기 | 이동휘 | 이동녕 | 이갑 | 류동렬 | 안창호
무오 독립 선언 민족대표 39인
김교헌 김규식 김동삼 김약연 김좌진 김학만 류동렬 문창범 박성태 박용만 박은식 박찬익 손일민
신규식 신채호 안정근 안창호 여준 윤세복 이광 이대위 이동녕 이동휘 이범윤 이봉우 이상룡
이세영 이시영 이탁 이승만 이종탁 임방 정재관 조용은 조욱 최병학 한흥 허혁 황상규
2004년········2005년 선정, 이 달의 독립 운동가 ········2006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최용신 최석순 김복한 이동휘 한성수 김동삼 채응언 안창호 조소앙 김좌진 황현 이상설
이 문서는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