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18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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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金容鎭, 1878년 ~ 1968년 2월 14일)은 한국의 서화가이다. 아호는 영운(潁雲) 또는 구룡산인(九龍山人).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 친어머니는 흥선대원군의 외손녀이다.
20대 초반 잠시 수원군 군수를 지내는 등 관직에 나간 것 외에는 40대까지 유유자적하면서 거문고를 타는 풍류 생활을 하다가, 1919년 무렵부터 그림에 입문했다. 이후 유명한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귀한 서화를 모으고 글씨를 쓰며 사군자를 그리는 등으로 평생을 보냈다.
광복 후 창설된 초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예부문 심사위원을 맡았고, 91세까지 장수하며 한국서화가협회 고문을 맡는 등 서예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원색을 즐겨쓰는 등 강렬한 느낌을 주는 화풍을 선보였는데, 본인은 화가라기 보다는 조선의 문인화 계열을 이어받은 선비로 불릴 것을 원했다. 순정효황후가 사망했을 때는 옛 국장 방식으로 병석에서도 상복을 입었다는 일화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부채를 제작해 기증한 일이 있다[1]. 이 사실은 김승학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명단에도 적혀 있다. 2005년 선정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
[편집] 참고자료
- 문화관광부 이뮤지엄, 유물상세정보 - 화훼도병
- 김충현, 조선조 마지막 서화가 영운(潁雲) 작고 (《예에 살다》, 범우사, 1999년)
- 《한국일보》 (1968.2.16) 文人畵家 金容鎭옹 別世
[편집] 주석
- ↑ 조은정, 청산해야할 역사적 기억 - 친일미술 새로 보기/ 수묵채색의 친일미술인 《컬처뉴스》 (2004.11.26)
분류: 1878년 태어남 | 1968년 죽음 | 한국의 화가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