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퓌크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키릴 문자를 로마자로 표시하는 방법인 볼라퓌크 인코딩도 있다.

볼라퓌크(Volapük)는 1879년 독일의 카톨릭 신부인 요안 마르틴 슈라이어(Johann Martin Schleyer)에 의해 구상되고, 1880년 발표된 대중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은 최초의 근대적 국제어이다. 그는 꿈에서 신에게서 국제어를 만들라는 계시를 받고 영감을 얻어 이 언어를 창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휘는 영어의 어휘를 기초로 하되,그것을 크게 변형시켰고, 음운과 문법은 그의 모어인 독일어불어의 문법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볼라퓌크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으며, 각국에서 급속도로 지지자들이 생겨나, 전성기 때는 25개 언어로 316가지의 교재가 발간되는 등, 그 기세가 막강하였다. 1887년 이후 조직 내부의 분열과 갈등과 맞물려 에스페란토가 대안으로 등장함으로서 믿을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쇠퇴 하였다. 그 후에 네덜란드의 아리에 데 용이 볼라퓌크의 문법요소와 어휘등의 기본규칙을 수정하고 이 개정안이 잔존 볼라퓌크 지지자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서 일시적으로나마 세력을 회복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의 전화로 말미암아,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슈라이어의 안을 오리지널이라고 하며, 아리에 데 용이 개정한 볼라퓌크를 개정안이라고 한다. 오늘날 볼라퓌크의 지지자들은 거의 아리에 데 용의 개정안을 사용한다. 물론 개정안으로 입문하여도 몇 가지 규칙만 추가하면 오리지널도 익힐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에스페란토만큼은 아니나, 볼라퓌크 이용자들도 볼라퓌크 위키백과를 설립하는등, 소수나마 명맥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볼라퓌크(Volapük)는 비록 대중적 보급에는 실패한 국제어이지만, 당시 국제언어로 외교에서 흔히 통용되던 프랑스어를 넘어서 "중립적인 국제어 도입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인공어로서 의의가 있다.


목차

[편집] 오리지널과 개정안의 주요 차이

  • 인식하기 어려운 어휘의 개정 Nelij -> Linglän(영국) Täl -> Litaliyän(이탈리아)
  • r음의 부활 lilöm -> rein(비) lilädön -> reidön(읽다)
  • 수사의 개정 bal(1) tel(2)- bals(10) tels(20)와 같이 10단위수를 1단위수에 s를 붙여 표현하던 것을 teldeg으로 고침
  • 동사의 활용형중 불필요한 부분을 간단히 고침 löfobsok(재귀활용형) -> löfobs okis
  • 중성형 대명사 도입
  • 성차별적 어근의 조정 blod(형제) ji-blod(자매):ji는 여성형접사 -> sör(자매)


[편집] 음운 및 철자

볼라퓌크의 음운은 크게 영어를 기본으로 프랑스어, 독일어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움라우트사용, z의 발음등은 독일어의 것을 그대로 차용하였다. 철자및 발음의 대응은 국제어인 만큼, 기본적으로 규칙적으로 고정되었으나, 사용자의 모어에 따라서 달리 발음되기도 하였다. 철자 "j"의 발음 (영어의 sh음)은 매우 특이한데, 볼라퓌크외에 이 철자를 이 음으로 읽는 예는 없다. 슈라이어의 오리지널 볼라퓌크에는 r음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중국인은 r발음을 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지식에서 나온 "배려"때문이었다. r발음은 아리에 데 용의 개정안에서 정식으로 사용이 결정되었고, 영어에서 차용한 볼라퓌크 어휘들중 r음이 들어가는 것은 보두 환원되었다. volapük의 vol은 영어의 world에서, pük은 speak에서 등 보는 바와 같이 음절구조는 CVC의 구조를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이것이 에스페란토와는 달리, 볼라퓌크의 단어의 어원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었다. Litaliaen(이탈리아)과 같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국명이라도 반드시 자음으로 시작하도록 변형시켰다.

슈라이어는 움라우트 모음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자모를 고안했으나 거의 쓰이지 않았다
슈라이어는 움라우트 모음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자모를 고안했으나 거의 쓰이지 않았다
letter IPA
a [a]
ä [ɛ]
b [b]
c [dʒ] 또는 [tʃ]
d [d]
e [e]
f [f]
letter IPA
g [ɡ]
h [h]
i [i]
j [ʒ] 또는 [ʃ]
k [k]
l [l]
m [m]
letter IPA
n [n]
o [o]
ö [ø]
p [p]
r [r] (1931년에 추가)
s [s]
t [t]
letter IPA
u [u]
ü [y]
v [v]
x [gz] or [ks]
y [j]
z [dz] or [ts]

Note: ä ö ü는 움라우트를 사용할 수 없을 때, ay, oy, uy로 철자하기도 한다.

[편집] 문법

기본적으로 유럽어의 특징을 바탕으로 하는 가운데, 교착어적인 성격을 부가시켰다. 독일어와 같이 볼라퓌크에도 네 가지 격(주격,소유격,여격,대격)이 존재하며, 각각 격어미를 통해 구분한다. 동사의 활용은 시제,법,성과 수에 따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는데, 모든 활용형을 다 나열하면 무려 1,584가지나 되었으며, 이는 타 인공어 지지자들로부터 볼라퓌크가 배우기 어렵다고 비난받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물론 이들 동사활용은 상당수가 선택적이어서,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아리에 데 용은 일부 동사활용도 간소화시켰다. 에스페란토의 -o와 같이 명사는 별도로 명사표시를 갖지 않았으며, 형용사는 형용사 어미 -ik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에스페란토에 비하면 격의 개념등 배우기 어려운 점이 있었으며, 발음시에는 비슷한 활용형이 중복되어 발음의 구별이 어려운 점등의 난점이 있었다. 이러한 난점들은 모두 에스페란토 등장이후 지지자들이 옮겨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편집] 볼라퓌크운동의 실패원인

전성기의 볼라퓌크는 역대 국제어중에서 에스페란토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지지자들을 모은 인공어였으며, 대중적인 국제어운동의 시발이라는 점에서는 최초였다. 유럽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많은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참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 세 차례의 국제대회(1884-프리드리히샤펜,1887-뮌헨,1889-파리)를 끝으로 볼라퓌크 운동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가장 큰 원인은 조직의 분열이었다. 볼라퓌크의 창시자 슈라이어는 융통성이 없는 완고한 성격으로, 볼라퓌크에 대한 모든 권한을 독점하려 하였고,특히 자신의 언어를 완벽한 것으로 치부하여, 실제 사용자들에게서 지적된 문제점에 대해서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또한 자발적 지지자들이 만든 조직인 볼라퓌크 아카데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슈라이어 지지파와 아카데미 지지파로 나뉘어 다투었고, 슈라이어의 독선적 태도에 실망한 아카데미 지도부가 환멸을 느끼고 조직을 떠나거나, 볼라퓌크의 문제점을 개선한 신종 언공어를 들고 나와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핵분열은 마침 새로 등장한 에스페란토와 맞물리면서 비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대거 에스페란토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슈라이어의 사망이후에는 구심점마저 잃어 버리면서 운동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만약 슈라이어가 조금만 더 열린 태도로 아카데미의 권위를 인정하고, 볼라퓌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면, 그토록 급속도로 붕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는 볼라퓌크 자체의 문제이다. 원어를 알아볼 수 없이 변형된 단어와 격의 개념, 비슷한 음이 많은 발음하기 어려운 활용형등은 볼라퓌크 자체의 난제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은 좌절되었다. 실제로 국제 볼라퓌크 대회의 세 번에 걸친 대회에서 볼라퓌크 만으로 대회가 개최된 것은 파리에서 열린 마지막 대회뿐이었고, 앞의 두 대회는 볼라퓌크 대회이면서도 독일어로 의사가 진행되었다. 후에 에스페란토 지지로 돌아선 볼라퓌크 이용자들은 볼라퓌크를 이용한 대화에서 창시자인 슈라이어마저도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만족할만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등 볼라퓌크의 학습과 이용에 불편이 있었음을 증언하였다.

세번째는 분열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국제어에도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아카데미를 이용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볼라퓌크의 개선안을 들고 나와, (대표적인 것으로 이디엄 뉴트럴) 얼마 남지 않은 이용자들 마저 분열되기 시작했다. 인공어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사회성을 얻으면 나중에 그 인공어에서 자연언어와 같이 불합리한 점이 발견되어도 관습상 개정이 어렵게 된다. 이 점을 협회의 권위로 커버해 나간 것이 에스페란토라면, 볼라퓌크는 이러한 핵분열을 맞아 그대로 붕괴되었다. 물론 분열된 각 개체도 모두 각 개인의 사용단계에서 거의 좌절되었다. 에스페란토의 창시자 자멘호프이도분리주의가 그의 에스페란토 운동이래 최고의 위기였다고 회고하였다. 이러한 분리주의에 대한 견제 및 새로운 인공어에 대한 적대적일수밖에 없는 구조는 국제어를 지향하는 인공어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편집] 관용구및 기타

  • 에스페란토로 Ĝi estas por mi volapukaĵo(그것은 내게 볼라퓌크로 쓰여진 책과 같다)는 볼라퓌크의 난해성을 조롱하는 당대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조크에서 에스페란토의 관용구로 굳어졌다.
  • 당대의 암호전문가들이 볼라퓌크의 이용가능성에 대하여 일부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는 볼라퓌크 운동에 투신한 인물도 있었다.
  • 볼라퓌크 화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볼라퓌크 모어 화자의 여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볼라퓌크를 모어로서 활용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슷한 사례(인공어를 자녀에게 모어로 전수하는 사례)는 클링온어의 경우에도 존재한다.

[편집] 볼라퓌크 문장의 예(주기도문)

  • O Fat obas, kel binol in süls,
  • paisaludomöz nem ola!
  • Kömomöd monargän ola!
  • Jenomöz vil olik,
  • äs in sül, i su tal!
  • Bodi obsik vädeliki givolös obes adelo!
  • E pardolös obes debis obsik,
  • äs id obs aipardobs
  • debeles obas.
  • E no obis nindukolös in tentadi;
  • sod aidalivolös obis de bad.
  • Jenosöd!

[편집] 바깥고리

위키백과
볼라퓌크 위키백과
분류:인공어
국제보조어
링구아프랑카노바 | 볼라퓌크 | 에스페란토 | 이도 | 인테르링구아
합리어, 철학어
쳉리 | 이쓰퀼 | 로그란 | 로지반 | 로 | 도기 보나
예술어, 소설에 나오는 언어
클링곤 | 링구아이그노타 | 꿰냐 | 신다린 | 바론
기타
구모소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