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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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요섭(朴堯燮, 1897년 1월 16일 ~ 1919년 3월 4일)은 3·1 운동 때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만세 시위 군중에게 총격을 가했다가 시위대에 의해 살해된 헌병보조원이다.
1919년 3월 4일, 사흘 전부터 촉발된 3·1 운동에 참가하여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강서군의 사천시장 방면을 향해 시위 군중이 몰려오자, 사천시장 부근의 사천헌병소에 근무하던 박요섭은 헌병주재소장 사토(일본어: 佐藤實五郞)의 지휘 아래 헌병보조원 김성규, 강병일과 함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살상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투석전으로 맞서, 박요섭과 사토, 김성규, 강병일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다.
박요섭은 당시 23세로, 사망한 헌병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그해 9월 11일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장 8등, 훈8등 백색동엽장의 서훈을 추서 받았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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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참고자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556~559쪽: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유서 - 박요섭 (2006.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