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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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1745년-1827년)는 스위스의 교육가이다.
[편집] 생애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아버지 요한 바프티스트와 어머니 수잔나 사이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 요한은 페스탈로치가 9세가 되던해에 병으로 별세하였다. 페스탈리치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실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개신교 목사인 그의 할아버지는 가난한 교우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고, 어머니는 두 아들을 혼자서 돌보면서도 고아원에 틈틈히 음식과 옷을 보내고는 하였다. 취리히대학교에 재학 중 애국자 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때 만난 안나와 1769년에 결혼하였다. 노이호프에서 20여명의 어린이들과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공동야학을 열었으나 실패하였다. 이 실패로 페스탈로치는 무일푼이 되었고, 건강도 나빠지고 말았다. 이때 아내 안나도 병으로 별세하여 가정부외에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1798년 스위스정부의 요청으로 고아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1799년 폐쇄될때까지 운영되었다. 이후 학교를 설립하여 그의 교육관을 실천하였다. 1827년 81세를 일기로 별세할때까지 교육사상가로 활동하여,《은좌의 황혼》(1780년),《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1781년-1787년)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며, 고유의 세계가 있는 인격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보던 당시 사람들의 교육관과 배치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