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십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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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前趙 304년~329년)는 오호십육국 시대 유연이 건국한 나라이다. 처음엔 국호가 한(漢)이었으나 후에 조나라로 변경하였다. 같은시대 석륵이 똑같은 이름의 조나라을 세웠기에 유연의 조나라를 전조, 석륵의 조나라를 후조라고 구별지어 부르게 되었다.
[편집] 역사
진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흉노와 선비족등 주변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였다. 자연히 이들 민족은 중국의 내부사정에 정통하게 되었고, 진나라 황족들의 권력쟁탈이 벌어지면서 통치능력이 상실하는것을 보고 독립하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다.
후한에 굴복했던 남흉노 선우의 후예였던 유연은 진나라로부터 흉노 5부 대도독에 임명되었으나,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스스로 나라를 건국하고 국호를 한이라고 명명했다. 유연은 아들 유총과 친족인 유요, 갈족의 석륵등을 따르게해 병주(并州)을 공략했다.
유연은 고조(高祖)의 계통이던 후한 및 촉한의 후계자라고 자부하였으나 실제로는 양쪽의 후예을 간접적으로 살해하였다.(산양공(山陽公)을 계승했던 유추(劉秋)의 죽음으로 인해 후한왕실 직계자손은 끊어지게 되었다. 또한 촉한의 유비자손은 성한에서 도망친 유현(劉玄)만이 살아 남았으나 영가의 난에 휘말려 살해당하여 절멸하였다.)
310년 유연이 죽고 장남 유화가 제위를 물려받았으나, 폭군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인 초왕 유총(3남)이 모반을 일으켰다. 신황제 유화는 어머니측의 숙부 호연유와 함께 유총과 내통하던 부하에 의해 살해되었다. 제위를 계승한 유총은 다음해 진나라 수도 낙양을 함락시켜 회제을 사로잡았다.(영가의 난) 진나라는 장안에서 민제을 옹립하여 전조에 저항했으나 유총은 장안마저 함락시키고 민제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서진은 멸망했고 이때부터 오호십육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318년 유총이 죽자 유찬이 뒤를 계승했으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켰다. 유요와 석륵이 협력하여 이를 제압하고 유요는 장안에서 황제가 되어 국호을 조나라라고 고쳤다. 석륵은 조공(趙公)에 봉해졌으나 이윽고 자립하여 양국(襄国;현재의 하북성 형대(邢台)에서 조왕으로 즉위했다.(후조) 유요의 조나라는 서쪽에서 석륵의 조나라는 동쪽에서 각자 화북을 양분하여 다툼을 벌였으나 유요는 이후 추락하여 328년 석륵에게 멸망당했다. 아들 유희가 뒤를 계승했으나 329년 석호에 의해 살해당하여 이로써 전조는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편집] 역대황제일람
- 고조(高祖) 광문제(光文帝)(유연(劉淵)、재위308년 - 310년)황제라 자칭하다.
- 양 왕(梁厲王)(유화(劉和)、재위310년)
- 열종(烈宗) 소무제(昭武帝)(유총(劉聡)、재위310년 - 318년)
- 소주(少主) 은제(隠帝)(유찬(劉粲)、재위318년)
- 조주(趙主)(유요(劉曜)、재위318년 - 328년)국호을 조(趙)라고 고치다.
- 말주(末主)유희(劉煕)(재위328년 - 329년)
중국 오호십육국 시대의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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