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로벨로의 트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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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룰리(Trulli)의 건축양식, 유네스코 문화 1996
‘아름다운 나무’라는 의미의 알베로벨로라는 도시에 현재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는 트룰리는 전체의 30%이고, 다른 30%는 선물 가게 등으로 이용되며 나머지 40%는 사람이 살지 않는 채로 방치되어 있다. 하나의 방에는 하나의 지붕이 올려지고 이 같은 집이 여러 개 모여 집 한 채인 ‘트룰리’가 된다. ‘방 하나 지붕 하나’를 트룰로라고 하는데,‘작은 탑’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트룰라가 어원이다. 대토지 소유를 기본으로 하는 장원제 하, 당시 신흥 개발 지역이었던 동해안 일대에 주변으로부터 농민들이 모여들고, 새로운 마을이 탄생하였다. 원래 이탈리아 남부는 석회암지층으로 뒤덮인 메마른 대지이다. 이곳의 농업이란 올리브뿐이었고 소작인들은 가난한 생활을 보내야만 했기에 발밑을 파면 금방 손에 들어오는 석회암을 이용하여, 독자적인 건축양식을 발전시킨 것이다. 트룰리에는 못이나 시멘트 같은 접착제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퍼즐을 맞추듯 벽 밑에서부터 천정까지 쌓아 올리기만 한다. 벽이 두꺼워서 발군의 방음효과를 자랑하고 여름은 시원하다.
이 양식은 이탈리아의 알베로벨로(Alberobello)에만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항구도시 바리(Bali)에서 남쪽의 브린디시(Brindisi : 그리스행 페리호 출발 항구)로 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파사노(Fasano)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알베로벨로가 위치하고 있다. 알베로벨로는 무르게(Murge)구릉지대와 셀바(selva)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의 지표(地標)는 온통 석회석으로 덮여 있다. 이곳의 석회석은 일정한 두께로 시루떡처럼 한결 씩 잘 떨어진다는, 다른 지역의 석회석보다 독특한 특질(特質)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석회석을 일정한 크기와 두께로 잘라서 큰 경제적인 부담 없이 손쉽게 그들의 주택과 창고를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주택은 건축적인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시적인 기초지식만 가지고도 충분히 누구나가 지을 수 있었다. 먼저 지을 터를 정하고 대략 둥근 형태를 땅바닥에 그은 다음 일정한 높이의 벽을 쌓아 올린다. 그 다음은 벽체 위에 석회석의 돌을 쌓기 시작하는데 차츰차츰 아래보다 좁혀 쌓으면 마지막은 고깔 모양인 원추형의 꼭지점 지붕에서 만나게 된다. 알베로벨로의 리오네 몬티(Rione Nonti)마을과 리오네 아이아 피콜라(Rione Aia Picola) 마을은 온통 트룰리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오네 몬티마을은 언덕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1909년에 이미 주정부에서 국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트룰리는 일정한 높이의 주택들로 이루어져 약 천여 개의 집들이 밀집하여 있고 주민은 약 3천여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트룰리 마을에는 6개의 도로가 승용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넓이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중심도로는 승용차가 왕복 1차선씩 나 있는 큰 길도 있지만 대개가 좁은 것이 특징인데 옛날 우마차를 이용할 때를 상정할 때 그렇게 좁은 길은 아니다. 리오네 몬티 마을은 이렇게 6개의 도로를 중심으로 6개의 동네로 나뉜다. 리오네 몬티의 대각선 건너편에 리오네 아이아 피콜라 마을은 알베로벨로 내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예쁜 트롤리가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이 마을의 골목길은 꼬불꼬불한 게 특징인데 이런 골목길 8개가 4백여 채의 트룰리 주택 사이를 누비고 있다. 이 지역도 1930년 당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부에서 국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고 동시에 법령을 제정하여 트룰리의 보존 및 건축방법에 대하여 일일이 규제를 하였다. 이 법령은 이곳의 주택을 당국의 허가 없이 구조를 변경한다든가 변형하는 일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같은 재료, 같은 양식으로만 건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 사용하는 새로운 자재라든지, 한 건물의 원추모양을 두 개로 한다든지 하는 것은 허용하였다. 트룰리를 건축할 때는 석회석 표면을 파서 물탱크를 만들어야 하며 3m 직경에 5m 길이의 물탱크는 사각형의 방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 물탱크는 빗물을 받아 저장하기 위한 것으로 가정용으로 사용한다. 벽의 높이는 2m를 유지해야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아래 부분보다 경사지게 약간 좁게 올라가야 한다. 벽면은 2m로 쌓은 후 벽의 네 귀퉁이에 평평하고 큰 돌을 얹으며 이 네 코너의 큰 돌을 기초로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다. 이 때 아래 부분보다, 또 각 결마다 약간씩 안쪽으로, 차례로 놓는다. 마지막에는 고깔형 원추 모양으로 모이게 되고 지붕 정점에 아름다운 갖가지 모양의 돌을 하나 놓음으로써 건축은 끝나게 된다. 이 때 사용하는 평평한 돌을‘칸넬레(Cannele)’라고 부르며 칸넬레가 쌓여 원추형 제일 높은 정점에 놓는 돌을‘세라글리아(Serraglia)’라고 부른다. 건물의 벽 외장은 평평한 석회질 슬라브로 빙 둘러친 다음 기초보다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입구는 튼튼한 2개의 돌을 양편에 세운 다음 아키트라브를 그 위에 올려놓은 후 벽을 쌓았다. 문 입구는 집 주인의 취향에 따라 종교적인 상징물이나 좋아하는 조각 등을 문 주위에 장식했다. 이 입구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첫 방이 나오는데 이 방이 이 집에서는 제일 큰 방이다. 이 방안에는 책상, 의자, 응접세트 등의 가구가 놓여 있고 식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일반적으로 이 방의 한 벽면은 골동품이나 값비싼 목각을 걸어 장식한다. 때론 부인의 귀중한 추억이 담긴 귀중품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때 묻은 전통 민예품을 걸어 놓기도 한다. 또 다른 방에는 아주 오래된 베틀을 장식으로 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머니가 사용했던 베틀을 설채해 놓고 지금도 그 베틀로 옷감을 짜고 있다. 방들은 대개 사각형인데 제일 위는 대개 나무로 된 다락방이 3m 높이 벽 위쪽에 설치되어 있다. 나무 사다리를 통해서 오르내릴 수 있는데, 이곳은 장기 보존하는 곡식이나 연장들을 보관하고 있다. 벽면은 화려한 꽃무늬 커튼을 달아 놓고 때론 방과 방 사이를 커튼으로 막아 놓기도 한다. 입구 문 반대편 방은 대개 주방으로 사용하고 큰 벽난로를 설치하기도 한다. 집 밖 입구 양편에는 평평한 돌을 놓아 때때로 할머니들이 앉기도 하며 집밖 조그만 뜰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민속춤을 추는 곳이다. 인류문화를 보더라도 돌은 인류가 가장 많이 이용한 재료였다. 이집트의 파라오 무덤인 피라미드도 돌로 만들어졌고, 바빌로니아의 신전 또한 돌로 만들었다. 그리스의 마라톤 평야의 그리스 군인의 무덤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왕의 무덤 또한 돌로 쌓아 놓았다. 델포이의 아테나 신전의 원형(Tholos)도 돌이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와 아가멤논의 묘도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인류 문화가 시작된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처음으로 도구로 사용했던 재료도 전부 돌이었다. 인류 문화의 발달에 따라 도구의 재료가 돌에서 청동 및 철기로 변했을 뿐이지 그 도구의 형체는 거의 변함이 없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점을 보면 인간과 돌은 아주 가까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알베로벨로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러한 버네큘라 스타일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고, 그럼으로써 이 지구상에 독특한 형태로 남아있는 주택들을 지금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