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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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檀君)은 만주와 한반도 지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시조이다. 다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예전에는 단군신화라 하여 정통사학계에서는 그저 신화일뿐 우리역사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사책에 단군을 신화인물이 아닌 고조선을 세운 왕이라고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학계에서 받아들여진 단군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은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의 단편적인 기록이다. 《삼국유사》는 《위서(魏書)》,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의 조선 건국과 관련된 기이한 이야기와 단군의 치세 기간을 기술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단군이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최초의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의·식·주를 비롯한 온갖 예절을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숙종 2년에 북애자가 저술한 《규원사화》와 1979년 이후에 알려진 《환단고기》에 역대 단군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후대에 꾸며졌다는 의견이 있다.
평양직할시 근처에 1994년 재건된 단군릉이 있으나, 그 조성 연도나 무덤의 주인에 관해서는 남·북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목차 |
[편집] 명칭 및 성격
[편집] 통설
통설은 단군은 대제사장을 의미하고,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를 의미한다.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1].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2]. 조선 초에는 '단군천왕(檀君天王)'으로 부르기도 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3]
[편집] 무속
최남선은 무당이 ‘단골’로 불리는 것을 주목하여 단군을 제사장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단(檀)을 제터(壇)의 다른 표현이라 하여 단군을 ‘壇君(단군)’으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 지적에 대해 무녀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것은 무녀가 서낭당이 있는 고을에 산다고 하여 ‘당골네’로 부르는 것일 뿐, 단군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4]
무에서는 단군을 옥황천존, 삼신제석 등의 천신과 함께 모시기도 한다.
[편집] 규원사화
‘단군’의 명칭은 박달나무(檀) 임금(君)을 의미하며, 임금이 되기 전에는 '환검신인(桓儉神人)'이라 불리었다.
[편집] 사료에 나타난 단군
[편집] 고기
- 단군(檀君)
- 당고 즉위 50년(경인년)에 평양성를 수도로 삼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 수도를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겨 1,50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
- 주나라 호왕이 조선에 기자를 봉하자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돌아왔다.
- 1,908년 만에 신(神)이 되었다.
[편집] 단군고기
- 단군(檀君)
- 부루(夫婁)
- 1,038년 만에 신(神)이 되었다.
- 금와(金蛙)
- 가섭원(迦葉原)에 부여를 세움.
[편집] 부도지
- 임검씨(壬儉氏)
- 동북방에 부도를 세워 부족들이 왕래하게 하였다.
- 부루씨(夫婁氏)
- 읍루씨(浥婁氏)
- 천부를 봉쇄하고 입산하였다.
- 후천 말세 이후 1천 년 간 치세.
[편집] 고조선의 역대 임금
《규원사화》, 《단기고사》, 《환단고기》에는 고조선의 47대 임금의 역년과 치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명칭은 유사하지만 그 연대는 다르다. 《단기고사》와 《환단고기》는 명칭과 치세 역년은 서로 동일하지만, 실제 연대는 20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편집] 명칭
공통된 47대 임금의 왕호는 다음과 같다.
- 단군(檀君)
- 부루(夫婁)
- 가륵(嘉勒)
- 오사(烏斯) 또는 오사구(烏斯丘)
- 구을(丘乙)
- 달문(達文)
- 한율(翰栗)
- 우서한(于西翰) 또는 오사함(烏舍咸)
- 아술(阿述)
- 노을(魯乙)
- 도해(道奚)
- 아한(阿漢)
- 흘달(屹達)
- 고불(古弗)
- 벌음(伐音) 또는 후흘달(後屹達)
- 위나(尉那)
- 여을(余乙)
- 동엄(冬奄)
- 구모소(구牟蘇) 또는 종년(縱年)
- 고홀(固忽)
- 소태(蘇台)
- 색불루(索弗婁)
- 아물(阿勿)
- 연나(延那)
- 솔나(率那)
- 추로(鄒盧)
- 두밀(豆密)
- 해모(奚牟)
- 마휴(摩休)
- 나휴(奈休)
- 등올(登兀)
- 추밀(鄒密)
- 감물(甘勿)
- 오루문(奧婁門)
- 사벌(沙伐)
- 매륵(買勒)
- 마물(麻勿)
- 다물(多勿)
- 두홀(豆忽)
- 달음(達音)
- 음차(音次)
- 을우지(乙于支)
- 물리(勿理)
- 구홀(丘忽) 또는 구물(丘勿)
- 여루(余婁)
- 보을(普乙)
- 고열가(古列加)
[편집] 규원사화
- 이 부분의 본문은 규원사화#상세 내용입니다.
치세 기간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128년으로, 47대 1205년 간 지속되었다.
[편집] 단기고사
- 이 부분의 본문은 단기고사#내용입니다.
치세기간은 기원전 2512년 ~ 기원전 416년에 해당되며, 2096년 간 지속되었다.
위만 조선의 건국 연대는 기원전 194년으로 추정하였다.
[편집] 환단고기
- 이 부분의 본문은 환단고기#상세 내용입니다.
치세 기간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으로, 47대 2096년 간 지속되었다.
[편집] 참고 문헌
- 《삼국유사》
- 《세종실록 지리지》
- 《규원사화》, 북애자 편집, 주해, 고동영 번역, 한뿌리, 2005년
- 《부도지》, 박금 편집, 김은수 번역, 주해, 한문화, 2002년
- 《단기고사》, ?, 한뿌리, 1986년
- 《단군 - 그 이해와 자료 …》, 윤이흠,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년
[편집] 주석
- ↑ 〈고조선 연구〉, 이병도, 1975년
- ↑ 〈단군왕검의 형태론적 풀이〉, 정호완, 한글학회, 한글 제219호, 1993. 3., pp. 5 ~ 32.
- ↑ 《세종실록》40권, 10년 6월 14일 기사
- ↑ 《단군과 고조선 연구》, 단군학회 엮음, 지식산업사, 2005년, 4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