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케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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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케나짐(히브리어: אשכנזים)는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그룹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יהודי אשכנז 예후디 아슈케나즈) 이라고도 불리며 세파라딤과 구별된다. 중세시대 당시 라인랜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아슈케나즈"는 그 당시 히브리어로 독일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동유럽에 있는 나라들로 이주했다.
아슈케나짐은 11세기 당시 전세계 유대인들의 3%에 불과했으나 1931년에는 92%를 차지했으며 현재 80%를 차지한다.[1] 20세기 중반까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이디시어를 사용했다. 지중해 주변에 있는 유대인들을 제외하면 유럽 출신 유대인들의 대부분이 아슈케나짐으로 여겨진다. 현재 8백만 명 내지 1천 2백만 명 정도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3~4백만 명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2] 약 6백만 가량의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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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의 직종이 한정되었으며, 기독교인들 사이의 고리와 관련된 금융활동을 금지해서 아슈케나짐들은 대부분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직업을 맡았다.[4] 프랑스에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포도밭을 소유했으며 포도주를 만들었다.[5] 최초의 반유대 폭동은 11세기에 발생했으며 1182년 결국 유대인들은 프랑스에서 추방당했다.[5] 15세기 경 폴란드에 존재한 유대인 지역들은 디아스포라 이래 가장 큰 유대인 지역들로 발전하였다.[5]
[편집] 유대인 대학살
당시에 전 유럽에 존재했던 약 8백만 유대인들 중 대다수가 아슈케나짐이었고, 학살당한 6백만명의 희생자 역시 대부분 아슈케나짐이었다. 폴란드에 존재했던 330만 유대인 중 3백만 명(91%)의 폴란드 출신 유대인과 110만 명 중 90만명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82%)들이 희생당했다. 슬라브 민족, 독일, 프랑스, 헝가리와 발칸 반도 출신 유대인들은 약 50~90% 정도가 학살당했다. 아슈케나짐이 아닌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희생된 나라는 그리스밖에 없었다.[6] 생존한 아슈케나짐은 대부분 이스라엘, 호주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편집] 관습, 전통과 법
아슈케나짐들의 관습들은 세파르딤과 여러모로 다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과월절에는 전통적으로 콩과식물, 옥수수, 쌀과 조를 먹는 것을 멀리했다. 반면에 자유롭게 생선과 우유를 마시지만 몇몇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이런 음식들을 피한다. 히브리어 발음 역시 다소 다르다. "타우"라는 히브리 문자를 발음할 때 끝 부분에 "t" 혹은 "th" 발음 대신에 "s" 소리를 붙인다는 것이다.
[편집] 주석
- ↑ Elazar, 다니엘 J.. 세파르딤 유대교를 재건할 수 있을까?. Jerusalem Center for Public Affairs. 2006년 5월 24일에 접속 확인.
- ↑ 존즈 홉킨즈 가제트, 1997년 9월 8일.
- ↑ 가브리엘 E. 펠드맨 Do Ashkenazi Jews have a Higher than expected Cancer Burden? , Israel Medical Association Journal, 볼륨 3, 2001.
- ↑ Ben-Sasson, Hayim.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유대인들의 역사). 하버드대학 프레스. 1976.
- ↑ 5.0 5.1 5.2 Schoenberg, Shira. 아슈케나짐. Jewish Virtual Library. 2006년 5월 24일에 접속 확인.
- ↑ 유대인대학살로 죽은 유대인들 예측. Jewish Virtual Library. 2006년 5월 24일에 접속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