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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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일본어: 目黒公証人役場事務長拉致監禁致死事件)은 옴진리교가 1995년, 당시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이었던 남성을 납치·감금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편집] 개요
피해자의 여동생은 1993년 10월경에 옴진리교에 들어가 몇천만 엔을 헌금하고 있었다. 이어 교단이 피해자의 여동생 소유로 되어있던 시가 2억 7천만 엔의 ‘메구로공증인사무소’(目黒公証人役場)의 토지와 건물을 헌납하도록 강요하였으므로, 여동생이 교단에서 도망쳐 메구로공증인사무소였던 오빠에게 피신하게 되었다.
1995년 2월 28일 오후 4시반경에, 시나가와 구의 거리에서 사무소에서 나온 피해자를 신도 마쓰모토 다케시, 하야시 다케시, 이노우에 요시히로, 히라타 신 등이 미니밴으로 끌고가 납치하여 가미쿠이시키 촌의 종교시설 새티앤에 감긍하였다. 교단은 마취약을 투여하여 피해자의 여동생의 거처를 추궁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러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피해자의 납치 기억을 지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일본 경시청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정보를 듣자 살해하도록 명했다.
아사하라는 납치 실행범의 한 사람을 살인의 실행자로 지명하고, 도쿄에서 새티앤으로 불러들였다. 그동안 피해자는 마취약의 과잉투여로 3월 1일 오전에 사망했지만, 살인의 실행자로 지명한 사람은 오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사망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피해자의 목을 조르게 한 뒤, 시체는 소각로에 소각 후 재를 모토스 호에 뿌렸다.
3월 4일에 이 사건이 표면화 되면서, 교단은 처음으로 사건을 보도한 아사히 신문사를 고소했다. 그러나 다른 매스컴도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3월 18일에는 ‘옴진리교에서 K씨[1]를 구출하는 모임’이 주최한 1만여 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일본 경시청은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뒤, 납치 감금의 혐의로 교단에 강제 수사를 실시하게 된다.
[편집] 주석
- ↑ 실제로는 피해자의 본명이 들어가있으나, 여기서는 익명으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