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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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사태는 현재의 미2사단과 용산 미군기지를 2008년말에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원으로 이전하여, 확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 및 시민 운동단체와 국방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이다. 넓은 의미로는 2004년 미군기지 이전결정 이후 벌어진 주민, 시민단체의 반발과 경찰과의 충돌을 이르고, 좁은 의미로는 2006년 5월 4일이후 경찰과 군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으로 인한 대규모 충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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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날짜 : 2006년 5월 4일
- 장소 :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대추분교
- 결과 : 대추 분규 철거 및 이전 예정지에 철조망 설치, 시민단체의 항위 시위 계속됨
- 시위 참가자 : 약 1천여명 추산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 민주노총,한총련 회원. 여타지역 평택주민은 없음.)
- 동원 공권력 : 경찰 110개 중대 1만3,000명, 용역업체 직원 1,200여명, 군인 2,000여명 (군병력은 철조망 작업에 동원됨)
- 인명 피해 : 시위대 90여명 부상, 경찰 110여명 부상. 군인도 일부 부상.
- 연행 : 5월 4일 500여명. 5월 5일 40여명 연행. 일부는 구속.
배경
1990년 6월 25일, 주한미군기지 이전 관련 한·미 기본합의각서 및 양해각서의 체결됨에 따라 2004년 8월에 미군기지 이전 부지 349만 평을 확정 발표되었고, 이후 이전 부지에 대한 토지 보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토지수용과 보상의 과정에서 국방부의 일방적인 집행으로 인해 대추리 주민들의 반발과 마찰이 빚어졌고, 대추리 일부 주민들은 토지 수용을 거부하고 미군기지의 이전 및 확장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국방부의 적극적인 협의를 요구했다.
경과
그러나 2006년 5월 4일부터 본격적인 경찰과 용역 병력 투입이 개시되었다. 반대 주장을 외치는 시위대가 있던 대추분교 운동장을 에워싸 포위하였다. 후에 시위대를 연행, 물러나게 하면서 용역업체의 굴착기가 대추분교 철거작업을 개시하여 운동장의 나무와 시설물을 철거하였다. 끝으로 경찰이 시위대가 있던 2층 진압을 마친 후, 그 사이 군이 투입되어 미군 기지 예정 부지 일대에 철조망이 세워졌다.
이번 강제집행으로 대추분교에 집결한 1,000여명중 500여명이 연행되고 부상자가 120여명에 달하였다. 강제 집행에는 투입 경찰 110개 중대 1만3,000명, 용역업체 직원 1,200여명, 군인 2,000명이 동원되었다. 잔여 시위대가 철조망을 훼손하는 등의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주동자 37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시위 참가자 100여명을 추가로 구속조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후 발생되는 시위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보고 강력히 엄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에 호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시민연대 측은 5월 6일 오후 2시로 예정했던 집회를 전격 취소했다.
범대위는 5월 14일 시위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따라 경찰은 2만2,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시위진압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추리 주민들을 2006년 10월부터는 강제 퇴거시키겠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