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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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게이(Enola Gay)는 미 육군항공대가 보유한 B-29 슈퍼포트리스 중 하나로 8월 6일 히로시마 대한 원자폭탄 투하에 사용된 폭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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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우라늄 운반
1945년 7월 26일 캘리포니아주의 메어 섬을 출발한 미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호는 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안 섬에 도착해 4.6m 가량되는 투박한 나무상자와 큰 납통을 내려놓고 티니안 섬을 떠났다. 3일 후 순양함은 불행히도 일본 잠수함 I-58호가 발사한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으며 승무원 800명 중 500명이 익사했다. 나무상자에는 길이 305cm, 두께 71cm, 무게 약 4t의 원자폭탄의 강철 케이스가 들어 있고 무지막지한 납통 속에는 TNT 2만t의 위력에 해당하는 우라늄 덩어리가 있었다.
[편집] 일본까지의 거리
일본 제국은 티니안 섬에서 2400km 떨어져 있어 왕복 4800km는 B-29 슈퍼포트리스의 항속거리 내에 들어 있었다.
[편집] 폭격 목표 설정
1945년 8월 2일 이 섬에 폴 티베츠 대령이 지휘하는 제509혼성비행대대 요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1년 동안 호박투하 훈련을 하는 등 훈련이 된 부대다. 도착 다음날 스파츠 장군이 티베츠·파슨스 대령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즉 폭격 목표는 많은 군수품 공장과 숙련공이 있으며 일본 육군의 제2군 사령부가 있는 히로시마, 일본군 군수품 창고가 있는 고쿠라 그리고 니가타와 나가사키였다. 이 중 가장 먼저 설정된 목표는 제2군 사령부가 있는 히로시마였다.
[편집] 안전 문제 해결
폭격 이전 미 육군항공대는 히로시마까지 가는 과정의 안전에 대한 문제가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다했다. 즉 폭탄을 싣고 이륙할 때와 그 밖의 어떤 충격으로 폭탄이 조기에 폭발한다면 비행기와 승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티니안 섬을 비롯한 일대는 일시에 생명체가 없는 폐허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폭발장약과 우라늄 덩어리를 분리, 이륙해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하고 정상비행할 때 파슨스 대령이 이동하는 비행기 내부에서 조립토록 하였다. 결정적인 것은 일정한 상황에서 차례대로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는 세 개의 스위치 시스템이었다. 첫 번째 스위치는 폭격 후 에놀라 게이가 그곳을 탈출하는 데 필요한 15초 동안 시한장치를 가동해 신관 내의 모든 회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스위치는 기압에 반응해 1500m 상공에서 접속하게 돼 있었고, 세 번째 스위치는 폭탄 내부에 설치된 레이더 장치로부터 발사된 전자파가 지상에서 반사돼 돌아온 것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 스위치는 576m 상공에서 접속돼 우라늄 탄환 뒤에 있는 폭발장약을 터뜨리게 돼 있다. 또 기압계와 레이더 장치에 의한 신관 작동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 탄두와 탄미에 재래식 신관도 부착했다.
[편집] 출격과 핵폭격
임무가 있기 하루 전 티베츠 대령은 자신이 탑승하게 될 B-29 슈퍼포트리스 조종석 밑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쓰라고 지시했다. 이 것이 바로 일명 에놀라 게이다. 8월 6일 오전 2시45분 68t이나 되는 에놀라 게이호는 티베츠를 포함한 승무원 12명과 2만6500ℓ의 연료, 4.5t이나 되는 원자 폭탄를 품고 약10여km의 창공을 날기 시작했다. 이때 티베츠 대령은 포로가 될 경우 승무원 각자에게 나누어 줄 청산가리 캡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륙 15분 후 파슨스 대령은 폭탄을 조립하기 시작, 20분 후에 작업을 완료했다. 5시 5분 에놀라게이호와 다른 두 대의 B-29가 유황도 상공에서 히로시마로 방향을 잡았다. 7시 9분, 히로시마 라디오 방송은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그것은 에놀라 게이호보다 약 1시간 먼저 이륙한 기상정찰 비행기에 대한 경보였다. 그 비행기에서 히로시마 상공은 쾌청이라고 알려 왔다. 8시 12분 에놀라게이호는 고도 9470m에서 320km/h 속도로 폭격지점 위를 날고 있었다. 8시13분 히로시마 지상감시소에서 3대의 B-29가 접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도시는 이미 폭격조준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 폭탄이 투하되기 15초 전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돼 신호는 08:15:17에 멈추었다. 폭격담당 페레비 소령이 ’폭탄투하!” 라고 소리쳤다. 꼬마가 에놀라게이호의 배에서 떨어진 지 43초 후 도시 위에서 핑크색과 자주색 섬광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져 갔다. 이 것은 곧 일본 제국 패망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곧 이어 거대한 공 같은 회색의 구름덩어리가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충격파가 비행기의 배를 때렸을 때 승무원들은 마치 인형처럼 내던져졌다. 오후 2시 58분, 에놀라 게이호는 티니안 섬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편집] 현재
애놀라 게이호는 전후 한 번 해체 되었다가 1994년 어드바-헤이지 센터에서 복원되어 스미소니언 박물관 부속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중에 있다.
[편집] 탑승자 명단
에놀라 게이에는 1945년 8월 6일 총 12명이 탑승하였다.
육군 대령 티베츠 대령
해군 대령 로베츠 대령
Major Thomas Ferebee – bombardier
Captain Theodore Van Kirk – navigator
Lieutenant Jacob Beser – radar countermeasures (also the only man to fly on both nuclear bombing aircraft)
U.S. Navy Captain William Sterling "Deak" Parsons – weaponeer and bomb commander
Second Lieutenant Morris R. Jeppson – assistant weaponeer
Sergeant Joe S. Stiborik – radar*
Technical Sergeant George R. "Bob" Caron – tail gunner*
Sergeant Robert H. Shumard – assistant flight engineer*
Private First Class Richard M. Nelson – radio operator*
Technical Sergeant Wyatt E. Duzenberry – flight engineer*
(* 당시 에놀라 게이에 규칙적으로 탑승했던 승무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