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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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교리와 의식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규정하기 위하여 "전체 교회"의 주교와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진행하는 기독교의 종교 회의인데, "전체 교회"의 의미는 교파들 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의 경우 로마의 주교와 상통관계(full communion)이 있는 신자들을 일컫는다. 많은 교파들로 부터 두루 받아들여지는 공의회는 처음 일곱 개이다.
실상 첫 공의회라고 할만한 것은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로서, 이 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전통을 지킬 것을 요구할 것인가를 논하였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공의회'라고 선언하고 모인 것이 아닌 까닭에 통상 공의회 횟수를 기록하는데서는 제외 되고 있다.
[편집] 역대 공의회
[편집] 첫 일곱 공의회
제 1차 니케아 공의회(325 년)로부터 제 2차 니케아 공의회(787)에 이르는 기간을 종종 "일곱 공의회 기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황제에 의해서 소집되었다.
- 1.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25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영원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닌 피조물이라는 아리안주의를 배격하고 니케아 신조을 작성했다.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교파들은 (몰몰교, 여호와의 증인 등) 이 공의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 2.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381년): 니케아 신경을 개정했다.
- 3. 에페소스 공의회 (431년): 사람의로서의 예수와 신으로서의 예수를 구분한 네스토리안주의를 배격하였다.
- 4. 칼케돈 공의회 (451년): 예수에게는 신성 밖에 없었다는 단성설을 배격하고 칼케돈 신조를 작성하였다.
- 5.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년): 기존 공의회 결정들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형태의 아리안주의, 네스토리안주의, 단성설을 정죄하였다.
- 6.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680-681년): 단의론을 배격하고 그리스도에게 사람과 신으로서의 뜻이 다 있었다고 정하였다.
- 7. 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7년): 성화상에 존경을 표시하는 것을 부활시켰다. 많은 개신교 교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대신 성화상에 존경을 표하는 것을 정죄한 754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존중한다.
[편집] 로마 가톨릭에서 받아들이는 추후 공의회
- 8.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870-880년)
- 9. 제1차 라테란 공의회 (1123년)
- 10. 제2차 라테란 공의회 (1139년)
- 11. 제3차 라테란 공의회 (1179년)
- 12.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 13. 제1차 리용 공의회 (1245년)
- 14. 제2차 리용 공의회 (1274년)
- 15. 비엔나 공의회 (1311-1312년)
- 16. 콘스탄츠 공의회 (1418-1418년)
- 17. 바젤-페레라-프로렌스 공의회 (1413-1445년)
- 18. 제5차 라테란 공의회 (1512-1517년)
- 19. 트렌트 공의회 (1545-1563년)
- 20.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70년)
- 2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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