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뒤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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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 1828년 5월 8일 ~ 1910년 10월 30일)은 국제적십자의 창시자이다.
[편집] 생애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어머니 앙트와네트와 제네바 시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한 아버지 자크 뒤낭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기부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데 힘썼으며, 1844년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만든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인 YMCA(기독교 청년연합회) 창설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아닌 아버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서 활동하는 한계를 발견하자,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지역주민들의 빈곤퇴치를 위한 제분회사(製粉會社), 즉 밀가루 공장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제분회사의 수리권(水利權)을 얻고자 북이탈리아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가던 길에, 솔페리노 전투에서 생긴 수천의 부상자를 만나 국적에 구애없는 구호에 참가하였으며, 1862년 그때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솔페리노의 회상》으로 출판, 전시의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민간 국제기구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 제안은 유럽 각국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1863년 국제적십자가 창설되었고, 다음해인 1864년 정치, 종교, 이념의 중립성 유지, 국적에 구애없는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적십자 조약이 체결되었다.적십자활동을 하느라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포함한 전 재산을 모두 써버린 앙리 뒤낭은 1867년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이사하여 글을 옮겨적는 일을 하였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간의 보불전쟁이 벌어지자 앙리는 프랑스 국방위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구호활동을 하였다. 1892년에는 스위스출신 의사의 배려로 알프스가 보이는 양로원에서 1910년 별세할때까지 여생을 보냈다.1901년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적십자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며, 1864년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을 적십자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