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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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태후(왕후) 임씨(恭睿太后[王后] 任氏, 1109년~1183년)는 고려의 17대 왕인 인종(仁宗)의 아내이다. 중서령을 지낸 임원후(任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녀이다.
[편집] 탄생 설화
고려사에 그녀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데, 그녀가 태어나던 날 밤에 태후의 외조부인문하시중 이위가 황색의 큰 깃발의 꼬리가 선경전을 싸고 도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이위는 외손녀가 “선경전에서 놀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그녀가 15세가 되어 김인규의 아들 김지효(金之孝)와 혼인을 약속하였는데 김지효가 신부집 문에 이르러 병이 발작하여 사경을 헤메었다. 이에 임원후가 결혼을 물리고 점쟁이에게 점을 처보았더니, 점쟁이가 여인이 왕후가 될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문이 당대의 세도가 이자겸의 귀에 들어갔다.
이자겸은 자신의 3녀와 4녀를 왕비로 시집보냈는데, 임원후의 딸이 왕비가 된다는것이 자신과 가문의 몰락을 의미했으므로 임원후를 개성부사로 강직시켜버렸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의 난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인종의 아내이며 이자겸의 두 딸 역시 폐출당하였다. 1126년 6월에 왕후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편집] 생애
앞서 어린 인종이 즉위하자 인종의 외조부인 이자겸은 자신의 3녀와 4녀를 인종의 아내로 시집 보냈다. 즉, 인종은 이모와 결혼한 셈이다. 1126년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고, 이자겸의 일가가 몰락하면서 인종의 이모이며 아내였던 이자겸의 3녀와 4녀 역시 폐출당하면서 뒤를 이어 임원후의 딸이 인종의 아내가 되었다.
공예왕후는 인종과의 사이에서 5남 4녀를 두었다. 18대 의종,대령후(大寧侯) 경(璟), 19대 명종, 원경국사 충희(沖曦: 元敬國師), 20대 신종의 5형제와 승경(承慶)·덕녕(德寧)·창락(昌樂)·영화(永和)의 4공주를 낳았다.
인종이 서거하고, 의종이 즉위하자 그녀는 태후가 되었다. 이 때부터는 공예태후라고 칭해진다.
1170년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퇴위당하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무신들에 의한 정치가 시작되어, 항상 마음을 졸이며 살았고 1182년(명종12년) 넷째 아들 충희가 사망하였을 때 무신들에 의해 화를 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충격을 못이겨 병을 얻었다.
1183년(명종 13년) 11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능호는 순릉(純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