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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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3세 (865년 경 – 882년 8월 5일)는 루이 말더듬이왕의 둘째아들로 879년 아버지가 죽자 형제인 샤를로망과 함께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카롤링거 가문의 일원으로 왕조의 시조인 샤를마뉴의 4대 손이다.
아버지의 사후 몇몇 귀족들은 왕위를 한 명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로 인해 논쟁이 이었지만 루이와 샤를로망은 공동 왕으로 지정되었다. 그들의 법적 지위에 논란이있었지만 두사람은 왕국을 공동으로 통치하는 것을 승인받았다. 880년 아미엥에서 아버지의 영토를 나누어 가졌고 공동으로 통치했는데 루이는 북쪽의 영토인 네우스트리아를 받았다.
그러나 프로방스의 보소 공작이 두 형제와의 동맹을 깨고 부르고뉴의 왕으로 칭하고 나섰고 형제는 함께 그에 대항하여 싸웠다. 두 형제는 삼촌인 뚱보황제 카를의 군대와 연합하여 880년 8월에서 11월 빈에서 공성전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882년, 그는 이교도인 바이킹 해적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때의 전투는 게르만 구전문학으로 칭송되었다. 같은 해 8월 5일 루이는 생 드니에서 후계자 없이 죽었고 그의 영토는 동생인 샤를로망에게 넘어갔다.
전 임 루이 2세 말더듬이왕 (아버지) |
서프랑크의 왕 879년 - 882년 |
후 임 샤를로망 (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