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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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근정전
(景福宮勤政殿)
대한민국국보
지정 번호 국보 223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제작 시기 조선 시대
1985년 1월 8일 지정
근정전
근정전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정면 5칸에 측면 5칸인 다포계 팔작 지붕의 중층 건물이다. 현재 근정전은 국보 223호로 지정되어 있는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다.

목차

[편집] 역사

1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정도전이 ‘왕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근정전의 이름을 지어올렸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1867년(고종 4년)에 재건되었다.

[편집] 개요

근정전은 조선 시대 궁궐의 법전 가운데 유일하게 상월대와 하월대에 난간을 두르고 복을 가져다 주는 돌짐승들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경복궁이 법궁으로서 갖는 위상을 근정전의 격식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월대의 난간에는 방위신에 해당하는 사방신(四方神)을 동서남북의 방향에 맞게 조각해 놓았고, 상월대와 하월대의 난간 곳곳에는 십이지신(十二支神)과 상서로운 동물(瑞獸)들을 조각해 근정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는 지붕이 문양으로 장식된 청자기와로 지어져서 푸른 유리 지붕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내부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烽屛)으로 둘러쳐진 왕이 앉는 의자인 어좌(御座)가 높은 대 위에 있고 통간으로 높은 천장을 형성하였다. 천장 중앙에는 7개의 발톱을 갖고 있는 용 2마리를 나무로 조각해 매달았다.

[편집] 이름의 유래

다음은 근정전에 대한 정도전의 설명이다[1].

근정전(勤政殿)과 근정문(勤政門)에 대하여 말하오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온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일이겠습니까?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경계하면 걱정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 하였고, 또 ‘편안한 것만 가르쳐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지 말라.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일만 가지 기틀이 생긴다. 여러 관원들이 직책을 저버리지 말게 하라.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순임금과 우임금의 부지런한 바이며, 또 말하기를,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해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한다.’ 하였으니, 문왕(文王)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임금의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러하니, 편안하게 봉양하기를 오래 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게 됩니다. 또 아첨하고 아양 떠는 사람이 있어서 이에 따라서 말하기를, ‘천하에서 나랏일로 자신의 정력을 소모하고 수명을 손상시킬 까닭이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이미 높은 자리에 있어서 어찌 혼자 비굴하게 노고를 하겠는가?’ 하며, 이에 혹은 여악(女樂)으로, 혹은 사냥으로, 혹은 구경거리로, 혹은 토목(土木)일 같은 것으로써 무릇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일을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 임금은 ‘이것이 나를 사랑함이 두텁다.’ 하여, 자연으로 태만해지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니, 한(漢)·당(唐)의 임금들이 예전 삼대(三代) 때만 못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으로서 하루라도 부지런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 했으니, 신은 이로써 이름 하기를 청하옵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삼봉집》기09 경복궁, 또는 《태조실록》태조 3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