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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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德壽宮)은 조선의 궁궐로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경운궁은 광해군 시절인 1611년에 정릉동 행궁을 확장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흥경궁(興慶宮)으로 하고자 하였으나, 광해군이 “이것은 전대의 궁호이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합당한 궁호를 여러 개 써서 아뢰라”고 하였으므로, 경운궁이라고 이름하였다[1]. 본격적으로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고종 연간인 1896년이다. 이후 1897년부터 1907년까지 대한제국 시기에 황제가 정무를 보던 법궁(法宮)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4년에 불이 나 궁궐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후 중건이 시도되었는데, 당시 국가의 정치 상황이나 재정 여건상 궁궐 권역과 건물 규모에 적지 않은 축소가 있었다.
1907년 7월에 헤이그 밀사 사건의 여파로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후 경운궁에 머물렀는데, 이때 고종의 궁호(宮號)를 '덕수(德壽)'라고 하였기 때문에 덕수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당시 순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하였다.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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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광해군일기 46권 신해년 10월 11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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