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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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론이란 기독교 넓게는 구원과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신학 이론을 지칭하는 말이며, 종종 좁은 의미로 개혁주의의 이중예정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목차

[편집] 배경 성경 구절

예정론의 근거로서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들로 다음이 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37,39,40,44)

위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과, 한 번 그리스도를 믿고 나온 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이론의 근거로 자주 등장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

위 구절은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란 이론의 근거로 종종 쓰인다. 이 때 "창세 전"이란 시간 조차 창조 되기 전, 즉 시간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서의 결정이란 뜻으로 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축 위에서 과거의 어떤 시점에 미래의 일이 결정되었다는 운명론과는 차이가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위 구절은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의지나 선택에 상관 없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이론의 근거로 종종 쓰인다.

자주 인용 되는 기타 구절로 다음이 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데살로니가후서 2:13)

[편집] 개혁주의 이중예정론

개혁주의 이중예정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범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또한 사랑하길 거부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인간의 거부와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새롭게 해 주셔야만 끝나게 된다.
  • 또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지키신다.

이러한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새롭게 하실 것이며 누구는 방치하실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중예정론'이라고 불린다. 이중예정론과 운명론의 차이는 운명론의 경우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미래의 일을 결정지었다는 이론이지만, 예정론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축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서의 결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렇게 시간을 초월하여 결정된 사실은 시간에 갇혀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공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중예정론은 일찍이 어거스틴이 주장하여 '어거스틴주의'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자세한 것은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 참조.) 그러나 신학적으로 체계화 된 것은 종교개혁 때 개혁자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은 이에 대한 변증서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중예정론은 개혁주의 신학의 한 특징이 되었다. 특히 개혁주의에서 얘기하는 '칼빈주의 5대 강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세한 것은 개혁주의 참조.)

[편집] 자유의지와 이중예정론

이중예정론과 관련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이중예정론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정론은 인간의 선택권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이론이다---즉, 자유로운 선택권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원죄로 인하여 타락한 자연인은 하나님을 싫어하는 심성 때문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심성을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 주실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역사에서 크게 두 가지 대척적인 입장이 있어 왔다:

  • 합력설 (synergism):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지만, 사람이 그것을 취하느냐의 여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즉,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의 합작이라는 것이다.
  • 단독설 (monergism):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취하는 것도 그리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께만 달려있다는 것이다.

합력설을 주장하는 신학사상을 넓게는 알미니안주의라고 하며, 단독설을 주장하는 신학사상은 넓게 어거스틴주의라고 한다. 예정론은 물론 어거스틴주의에 해당한다. 오늘날 어거스틴주의를 주장하는 교파는 장로교회개혁교회가 있으며, 이 외의 종파들은 대개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

보톡 협력설을 주장할 경우 구원이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으므로 한 번 구원을 얻었던 사람도 훗날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독설을 주장할 경우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시작하고 또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므로 한 번 시작된 구원의 역사가 취소되거나 실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편집] 예지예정론

예지 예정론의 요점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정'의 뜻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지 예정론의 선택은 조건적이라는 점에서 루터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주장된 본래의 예정론과 차이가 있다 --- 즉,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를 미리 보고 선택했다면 그것은 조건부 선택이다. 그러므로 예지 예정론은 알미니안주의 안에 들어 간다. 그러나 본래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지 예정론을 주장한 유명한 사람으로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있다.

[편집] 역사

처음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 교회에서 불거진 사건이 4~5세기에 있었던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이다. 어거스틴은 단독설을 주장하였고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였는데, 카르타고 회의에서 기독교회는 어거스틴의 이론을 체택하였고, 이리하여 단독설에 어거스틴주의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곧 로마교회는 알미니안주의로 회귀하게 되는데, 다시 어거스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 당시 이러한 어거스틴주의식 원죄론에 반대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심성을 따로 바꾸어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에라스무스다. 여기에 반박하고 '전적 타락'설을 주장한 것이 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이다. 에라스무스의 주장은 합력설에 해당하며, 루터의 주장은 단독설에 해당된다.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은 기독교 초창기에 이미 있었고, 잘 알려진 것이 4~5세기에였 있었던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논쟁이다.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

종교개혁 이후로는 17세기에 알미니우스를 따르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합력설을 주장하였다. 이 때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도르트 총회에서 작성된 것이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이다.

18세기에는 웨슬리가 합력설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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