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프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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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의 총리
재임기간 제75대 1996년 5월 17일
1998년 10월 21일
제79대 2006년 5월 17일 -
현직
전임 제74대 람베르토 디니
제78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후임 제76대 마시모 달레마
현직
태어난 곳 이탈리아 스칸디아노
사망한 곳

로마노 프로디(Romano Prodi, 1939년 8월 9일-)는 이탈리아총리(현재 제79대)이다.

목차

[편집] 성장 과정

볼로냐시 근교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61년밀라노 카톨릭 대학교에서 법학사를 취득했다. 그 직후 런던경영대(LSE)에서는 경제학을 수학했다. 이후 1963년부터 볼로냐대학교의 정치학과 강사로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연구조교 및 하버드 대학교교환교수를 역임하는 등 학문적 경력을 쌓았다.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1970년대에는 보수적 기독정파에 몸담았으나 개혁적 사회운동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공기업 IRI의 최고경영자로도 일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보유했다.

[편집] 제75대 총리 재임 업적

이러한 다양하고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에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들어, 진보-개혁적 중도좌파연합체 이탈리아 올리브나무동맹 공동창설과 동시에 당의장에 올랐다. 그 이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수차례 격돌하며 정치적 앙숙이 되는데, 그 첫번째 대결인 1996년총선에서 올리브동맹에서부터 공산주의까지 아우르는 범진보연합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에 올랐다. 유럽 진보적 중도개혁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제1기 프로디 행정부'는 다양한 성향의 파벌을 자신의 지도 아래 일치단결하도록 이끌어, 세계대전 이후 수십회동안 지도자 및 정치세력이 수시로 교체될정도로 복잡한 이탈리아의 정세 속에서도 3번째로 긴 행정부를 운영했다.

[편집] 유럽 연합 (이사회)의장

1998년 신임투표에서 패한 이후에는 자신과 그의 지지자들이 '이탈리아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유럽 통합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는 1999년에 제10대 유럽 연합이사회(European Commission)의 의장직에 취임하였다. 재임중 회원국가간 이해관계의 조율에 노력했으며, 유로화 도입과 신규 가입국 확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 등을 이끌어내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편집] 현재-제79대 총리

2004년, 5년간의 주어진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에는 다시 이탈리아 정계에 복귀하여, 야권이 된 범진보진영을 다시 추스르고, 유럽의 우경화를 주도하던 베를루스코니의 보수-자유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2005년 10월, 대한민국 새천년민주당이 성공적으로 실시한 바 있는 '국민경선제도'의 도입과 동시에 자신은 후보로 출마하였다. 4백만명 이상의 높은 국민참여를 통해 약 70% 득표로 총리후보가 되었으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프로디 대 베를루스코니'의 두번째 대결인 2006년 4월총선에서, 간발의 차로 범진보진영이 승리, 총리직에 재취임했다.

'제2기 프로디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자국 군인들을 즉시 철수시켰으며, 대기업-중소기업과 부유층-중산서민층간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각종 세제혜택을 도입하였고, 유럽통합을 다시 가속화시키는데 주력하는 등 각종 개혁적 정책들을 펴고 있다. 다만, 2007년 초반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 추가파병논란으로 촉발된 불신임 위기를 맞았으나 상원에서 162:157로 신임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도 동시에 겪고 있다.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과대학 테러 참사'당일에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평소 유창한 외국어(특히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회담 직후 아리랑 TV와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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