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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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閩 909년~945년)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 10국중 하나로써 현재 복건성을 중심으로 왕심지(王審知)가 세운 나라이다.
[편집] 역사
개조 왕심지는 광주고시(光州固始)사람으로 형 왕조(王潮)와 함께 당나라 말기 혼란속에서 중앙의 혼란을 피해 복건으로 이주하여 이곳을 점령하였다. 896년 왕조는 당나라로부터 무위군절도사(威武軍節度使)을 인정받았으나, 다음해 왕조가 죽자 왕심지가 지위을 이어받았다.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세우자, 왕심지는 후량에 입조하여 민왕에 봉해졌다. 왕심지는 내정에 힘을 기울여 당시 아직 낙후된 지역이었던 복건의 개발을 진행해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남해교역에서 이익을 얻자, 문인, 승려등을 모아 문화를 진흥시켰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해 왕심지는 개민왕(開閩王)이라 불리면서 복주에서는 민왕덕정비(閩王徳政碑)가 세워져 지금까지도 방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925년 왕심지가 죽은후 내분이 계속되었다. 곧 다음해 왕심지의 장남 왕연옹(王延翰)이 제위을 얻었으나, 동생 왕연균(王延鈞)에게 살해당하고, 그대로 왕연균이 제위을 얻었다. 민은 후량을 무너뜨린 후당에 대해서 신하를 자처했으나, 후당의 명종 이사원이 병으로 쓰러지고, 후당이 혼란에 휩싸인 틈을 노려 933년에 독립하여 황제을 칭했다.
왕연균은 935년 장남 왕계붕(王継鵬)에게 살해당하고, 왕계붕이 제위에 올랐다. 937년 왕계붕은 후당을 쓰러뜨린 후진에게 복종하여 민왕으로 지위가 내려갔다. 뒤를 이은 왕상(王昶)은 도교을 광신하여 무녀의 말만 믿고 일족을 살해하였다가 939년 장군의 쿠데타에 의해 살해되고, 왕심지의 막내아들 왕연의(王延羲)가 옹립되었다. 그러나 왕연의도 폭정을 일삼고 원한이 있던 일족을 살해하였다. 943년 이에 대해 왕연의의 형 왕연정(王延政)이 임지인 건주(建州)에서 자립하여 황제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은(殷)이라고 했다.
다음해 왕연의는 휘하에게 살해되고, 왕연정이 민왕의 지위을 물려받았으나, 이 혼란을 지켜본 일족의 왕계훈(王継勲)과 왕계성(王継成)이 각자 자립하여 나라는 분열상태에 빠졌다. 이 상황을 지켜본 남당의 이경(李璟)이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민을 멸망시키고, 왕연정과 일족은 남당의 수도 금릉으로 끌려와 이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편집] 문화
앞서 얘기한것처럼 왕심지의 문화진흥에 의해 건립된 건축물들은 현재까지도 존재하는것이 적지않다.
- 개원사 철불(開元寺 鐵佛)-복주에 있는 개원사에는 높이 5.3m의 철불이 있다. 왕심지가 건립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민왕사(閩王祠) - 앞서 얘기한 민왕덕정비가 세워져 있다.
- 통천사(涌泉寺) - 복주의 동남쪽 고산(鼓山)중턱에 있는 사찰. 908년 왕심지에 의해 창건되었다.
- 개원사(開元寺) - 천주(泉州)에 있는 사찰로써 위에 있는 사찰과는 다른 절이다. 이곳에 있는 탑중 하나가 왕심지가 세운것이다.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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