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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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李永根, 일본식 이름:河本龍雄 또는 上田龍男, 1910년 ~ ?)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인물이다.

충청남도 온양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에모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미국에서부터 친일 강연으로 이름을 얻었는데, 이 과정에서 재미 한국인들과 충동을 일으켜 신변에 위협을 받은 끝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우익 단체인 대일본연합청년단에서 촉탁으로 근무하였으며, 국민정신문화연구소 소속으로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론 등 친일 논리를 이론적으로 연구했다.

1939년 녹기연맹에 가입하여 기관지 《녹기》를 통해 사상교양 선전 활동을 시작했다. 1942년 발간한 《조선의 문제와 그 해결(일본어: 朝鮮の問題ど其の解結)》과 1943년 출간한 《황도조선(일본어: すめら朝鮮)》에서 생활의 일본화를 주창하고 있으며, 그 방법론으로 일본어의 상용과 창씨개명을 내세웠다. 대화숙, 황도학회, 조선언론보국회 등의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완전한 자기부정을 통한 조선의 말살과 조선인의 철저한 황국신민화, 일본 동화를 주장하고 이를 전투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같은 녹기연맹 출신의 현영섭과 매우 유사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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