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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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 기원전 470년 경 – 기원전 399년 5월 7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을 철학의 여러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보낸 서양 철학의 중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불운하게도 그를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기원전 399년에 고소되어 사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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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소크라테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록, 크세노폰의 회고록 그리고 그와 동시대인인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 서술된 내용을 통해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후대의 기록들은 부차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흔히 자유로이 창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인 소프로니코스를 아버지로, 해산술을 업으로 하던 화이나레테를 어머니로 하여 아테네의 서민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 관계로는 아내 크산티페와 사이에 아들 셋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추한 외모와 빈곤한 삶은 오늘날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성장 및 교육과정은 전반 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마흔을 전후로 하여 그는 자신의 철학적 관심 분야와 방법론을 확고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철학적 관심 분야에 관해 좋은 실마리를 발견 할 수가 있다. 즉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의 정치 및 문화의 전성기이며, 그와 동시에 쇠퇴기의 전초기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 특히 이 시기는 소피스트들(궤변론자)의 활동이 눈에 두드러진다.
[편집] 사상
[편집] 법철학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에서 법정이 철학을 포기한다면 석방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더라도 자신이 철학을 하는 이유는 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는 법 이전에 자신의 철학적 원칙과 신념에 기초하여 의사결정을 했던 몇가지 예들이 있다. 반면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독배를 내린 법률에 대해 자신이 (국외 추방을 제의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동의한 절차적 정당성을 뒤늦게 훼손할 수 없다고 친구인 크리톤에게 밝힌다. 그러나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평소의 냉정한 소거적/부정적 논법을 구사하지 않고 정서적이고 자기비하적인 모습으로 크리톤을 설득하고 있어서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변명'과 '크리톤'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 중 '크리톤'에 실린 모습이 과장되어 '변명'에 담긴 법령 불복종자로서의 모습을 누르고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원전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계속 인용되어왔다.[1]
[편집] 미(美)
소크라테스는 미학적인 범주를 최소한 셋으로 나누었다. 그 세 범주는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미',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미', 그리고 '유용한(혹은 기능적인) 미'이다.[2]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 ^ 이러한 범주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3장에 따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미의 역사》(열린책들, 2005) 48쪽.)
- ^ 강정인.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문학과 지성사. 1994 ISBN 89-3200-7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