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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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鄭澈, 1536년 - 1593년)은 조선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이다.
명종 17년(1562년) 진사시와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라도.강원도 관찰사, 예조판서, 대사간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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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 26세 명종 16년(1561년) 진사시,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 32세 명종 32년(1567년) 사가독서
- 40세 선조 8년(1575년) 귀향
- 43세 선조 11년(1578년) 재등용
- 45세 선조 13년(1580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전라도, 함경도 관찰사를 지냄
- 48세 선조 16년(1583년 예조판서에 임명
- 54세 선조 22년(1589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에 오름
- 56세 선조 24년(1591년) 광해군 책봉을 건의하다가 귀양길에 오름(명천, 진주, 강계)
- 57세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귀환, 왕을 의주까지 호송, 사은사로 명에 다녀옴
- 58세 선조 26년(1593년) 사직하고 강화도에서 거하는 중에 별세
[편집] 사후
[편집] 문학사적 업적
《성산별곡(星山別曲)》,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훈민가(訓民歌)》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가사와 많은 단가를 남겼다.
시풍은 호탕하고 비장하며, 한문투를 벗어나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하여,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그의 저서 《서포만필》에서 '예로부터 우리나라(左海)의 참된 문장(眞文章)은 오직 이 세편(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뿐'이라 평가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그 후손이 시조와 가사를 엮은 《송강가사》가 있다.
[편집] 부록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자료
- 조선왕조실록
- 정송강사 사적비
- 엠파스 한국학 - '정철'
[편집] 관련 링크
[편집] 주석
- ↑ 1883년~: 《고종실록》20년 3월 16일: 敎曰: "故相臣文淸公鄭澈祠板, 遣地方官致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