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철 103계 전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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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철 103계 전동차
양산 냉방차·연명 N40 개조차, 오사카 순환선
양산 냉방차·연명 N40 개조차, 오사카 순환선
양 수
전기 방식 직류 1,500V
제어 방식 저항제어
기관 형식
기어비
차륜 배열
동륜 배열
기동가속도 4M4T편성:2.0km/h/s
8M2T편성*:3.3 Km/h/s
영업최고속도 100 Km/h
설계최고속도 100 Km/h
감속도 상용:3.5km/h/s
비상:5.0 Km/h/s
전동기 출력 110 kW
편성 출력 4M4T편성:1760kW
8M2T편성*:3520 kW
출력 {{{출력}}} hp
견인력
주 용도
차량 정원
편성 정원 선두차량:136명
중간차량:144명
전장 20,000 mm
전폭 2,832 mm
전고 3,935 mm
차량 중량 t
편성 중량 t
대차간 거리 mm
축중 t
궤간 1,067mm
구동 장치 중공축 평행카르단 구동방식
제동 방식 발전제동 병용 전자직통제동
MT비
보안 장치
제작사
제작 연도
비고 *은 1000번대

일본국철 103계 전동차(일본어: 国鉄103系電車)은, 구 일본 국유철도(국철)가 설계·제조한 직류 통근형 전동차다.

전작에 해당하는 101계 전동차를, 당시 일본국철의 재정·설비·보수등의 각 사정을 고려, 경제성을 중시하여 재설계하여 1963년 3월부터 1984년 1월까지 21년간 총 3,447량이 제조되었다.

목차

[편집] 역사

[편집] 개발

[편집] 101계의 전(全)전동차화 계획과 단념

1958년부터 츄오선(中央線)을 시작으로 도입이 개시된 101계는, 특급형이나 급행형 등과 같은 설계인 저출력 모터의 기어비를 변경하여 전전동차 방식을 적용하는 것을 통해 높은 가속성능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당시의 전형적인 고성능 통근 전동차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설계 컨셉은 변전소 용량의 증대나 가선설비 강화와 같은 추가적인 투자요인을 발생시켰고, 이는 통근 5방면 작전 등 긴급한 러쉬(rush) 대책에 쫓긴 당시 일본국철의 재정 상황 및 스케줄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동기를 장비하지 않는 부수차(T차)의 삽입이 실시되게 되었다.

원래 전전동차로 운용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던 101계의 경우, T차의 삽입에 의한 MT비의 변경은 성능의 대폭적인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재정상의 원인이 강했던 MT비 1:1로의 운용은, 정격출력이 100kW/h인 MT46형 주전동기를 사용하는 101계의 경우 그 출력곡선과 감속 기어의 기어비의 문제(※1) 때문에 인해 사실상 불가능했다. 때문에, MT비 1:1을 실현하여 보다 저비용으로 그리고 대량으로 신형 통근전동차를 양산하려면 주전동기의 설계를 변경, 정격출력을 강화하여 저속에서의 견인력을 향상할 필요가 있었다.

(※1) 4M4T 편성으로의 시험운행 결과 주행시 주전동기의 전기자 및 계자의 현저한 온도 상승이 확인되었다. 때문에 상한은 4M3T, 실용상은 4M2T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편집] 신형 통근전동차의 요건

101계가 설비 면에서 다운그레이드를 강요당한 일과 관련하여, 일본국철 본사 운전국에서는 1960년 2월 '통근 전철의 문제점'을 정리하여 차기 통근전동차에 대한 요망으로서 경제적으로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차량을 제안했다. 초기의 전(全)M차를 전제로 하는 101계로 대표되는 그룹을 고성능 차량, MT비1:1를 목표로 해 경제성을 추구하는 103계로 대표되는 그룹을 고경제 차량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철 각사에서도 고성능 차량으로부터 고경제 차량으로의 대거 이행이 진행되었으며, 이것은 일본의 철도사에서의 큰 흐름의 하나였다.

[편집] 전동기의 설계

그러한 상황 아래, 1960년 1월에는 101계의 전동기 출력을 120 KW/h로 향상시킨 시험 차량의 시운전을 실시하여 고출력·고회전형의 전동기를 검토하였으며, 1960년 3월에는 회생제동이 추가된 101계 910번대가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시험결과와 신형 통근전동차 투입예정선구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 고회전형인 MT46형의 출력 향상형으로는 목표로 하는 성능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회전형의 MT55형이 개발되게 되었다.

MT55형 전동기는 '4량 내지 8량의 MT비 1:1정도의 편성으로, 역간거리가 짧고 평균속도가 비교적 낮은 노선'에 최적화된 설계가 되어 있다. 또, 투입예정선구에서의 8량 운전을 전제로 당시의 주전동기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MT55형은 신형 통근전동차용 전동기로서 최대의 목표인 소비전력의 절감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구동시 발열에 여유가 있어 추후의 증속운행에도 견딜 수 있었고, 팬터그래프 1개당 집전 전류가 작기 때문에 가선의 온도 상승도 방지할 수 있는 등의 이점이 인정되어 이후 통근전동차의 주전동기로서 널리 채용되게 되었다.

[편집] 임박한 전력 공급 사정

중앙선의 101계는 전전동차방식으로 투입되었지만 변전소 용량 문제로 한류치를 480A에서 350A로 내려서 운전했다. 6M4T 운전을 시행함으로써 한류치를 420A까지 높일 수 있었지만, M차 비율이 높은 경우 전력 사정 이외에 가선온도 상승 등의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에 가선 증강도 아울러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1961년 봄, 수도권에서의 2번째 101계 투입선구는 변전소 능력이 다른 노선에 비해 나았던 야마노테선(山手線)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야마노테선에서조차 전력 사정으로 인해 한류치를 300A로 설정해야만 하였으며, 주전동기의 온도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전기 브레이크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야마노테선 일주는 구형 차량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101계에 의한 신성능화를 위해서는 변전소 설비 등의 증강을 함께 실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다대한 비용이 들었고, 선구(線區)마다 섬세한 설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운전에 관해 제약이 없는 통근전동차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편집] 103계의 투입처

신형 통근전동차의 개요가 결정되자, 103계를 어느 선구에 투입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1962년 6월 무렵에는, 정말로 103계를 야마노테선에 투입할 것인지, 염출(捻出)되는 101계를 어디로 옮길 것인지를 시급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62년 가을에 있었던 야마노테선 8량화를 위한 변전소 증강에서는 101계 6M2T 편성의 한류치 300A로의 운전을 상정하고 있었고, 또한 한류치를 350A, 480A까지 높일 수 있는 정도의 변전소 증강이 계획되고 있었다.

그러나 103계 4M4T편성을 한류치 415A로 사용할 경우, 1962년 가을의 변전소 증강만으로 101계 6M2T편성의 한류치 480A로의 운전과 거의 동등한 운전을 실시할 수 있었다. 때문에 103계를 야마노테선에 넣는 것을 시급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변전소 증강을 실시하게 될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1962년 10월 일본국철 본사 운전국·영업국·전기국·공작국 등에 의해 '신형 통근전동차의 투입선구에 대해'가 정리되어, 103계의 투입선구를 야마노테선·게이힌토호쿠선(京浜東北線)·소부완행선(総武緩行線)으로 좁혀 논의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로 1962년 11월 5일의 상무회에서 103계 전동차를 야마노테선에 투입하는 것이, 야마노테선에서 사용중이던 101계는 소부 완행선으로 옮기는 것이 결정되었다.

1962년 11월 15일에 시부야·도쿄등의 변전소 증강이 완성되어 11월 19일의 운전 시각표 개정부터 야마노테선의 일부 8량 편성화가 진행되었지만, 전동차 비율이 올라간 것으로 인해 한류치는 300A에 머물러 야마노테선 일주의 운전시간은 5M3T의 구형 차량보다 20초밖에 단축할 수 없었다. 이것이 당시 일본의 수도권의 전력 사정이었다.

[편집] 시운전

1963년 3월 25일 선행 시제차량 1편성이 완성, 9개월에 걸친 시운전을 거쳐 12월 28일부터 영업 운전에 들어갔다. 시운전에서는 문제가 몇 개 발생하고 있었지만 시급한 신차 투입이 요구되고 있었기 때문에 최저한의 수정으로 양산 차량을 발주했다.

[편집] 양산

1964년 이후 국철의 통근용의 표준 차량으로서 대량으로 제조되어 직류 통근형 전동차는 물론, 일본의 모든 철도차량 중에서도 최대의 차량수를 자랑했다. 1970~1980년대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권의 통근 수송을 지지했다.

[편집] 최초의 투입처

1964년 5월부터 103계의 양산차량이 야마노테선에 배치되어 1964년에만 202량이 제조되었다. 야마노테선에 사용되고 있던 101계는 당초의 예정대로 소부완행선으로 옮겨져, 별도로 새롭게 제조된 선두차량 2량을 추가하여 10량 편성으로 사용되었다.

[편집] 역간거리가 긴 구간으로의 진출

양산이 진행되면서, 점차 본래의 투입예정선구와는 성격이 다른 노선에도 103계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2년의 신형 통근전동차의 투입선구에는 죠반선(常磐線)(평균속도 52.8 Km/h)과 케이한신 완행선(京阪神緩行線)(평균속도 56.7 Km/h)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103계의 사양 결정에서는 이런 노선을 제외한 대상선구에서의 평균속도가 참고되었다. 이것은 103계가 역간거리가 짧은 선구 전용이라는 특징이 있는 이상, 역간거리가 긴 선구에서는 어떤 개선 또는 새로운 형식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4년에는 케이한신 완행선의 신성능화와 관련해, 칸사이 지사에 103계를 그대로 투입해도 문제가 없는지, 혹은 새로운 형식이 요구되는지 검토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사실, 가칭 105계(현재의 105계와는 무관)가 4문 크로스시트 차량으로 검토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말부터 죠반선에 103계가 투입되어 실적을 세운 일도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은 채임에도 불구하고 케이한신 완행에도 103계가 투입되었다. 그 후로는 역간거리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103계를 이용한 신성능화가 진행되게 된다. 이것은, 부속 차량의 제동장치를 디스크 브레이크로 변경하는 등 투입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 운전속도 향상에 의한 문제점

역간거리가 긴 구간에서의 운전이 증가하자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케이한신 완행선 투입 3년 후인 1972년 3월 15일 운전시각표 개정과 함께 시행된 증속운행에서는, 제동 초기 속도가 90km/h 대가 되면 전기 제동을 사용했을 때 주전동기에 과전압이 걸려 보호회로가 빈번하게 작동 전기 제동이 해제, 고장이라고 혼동하기 쉽기 때문에 운전기사로부터 불평이 많았고, 또한 보호회로가 작동할 때 제동충격이 커 승차감에도 악영향을 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설계상 95km/h 정도까지는 과전압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101계에 장착되고 있던 감압 계전기를 설치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 중 하나지만, 본래의 성능에 접근하기 위해 회로를 일부 개량하여 과전압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편집] 차체 구조

차체 구조는 101계와 같은 보통 강철이 채용되었다. 때문에, 101계와는 전면 이외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또, 제조가 진행됨에 따라 개량이 계속되어, 초기 제조 차량과 최종 증비 차량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크다.

[편집] 기본성능

주전동기는, 'MT비는 1:1, 역간거리가 1.36km 정도인 통근선구에서 운용'을 전제로, 저회전시의 토크 특성을 중시하여 정격 회전수를 인하, 이것에 맞추어 전기자의 자기 용량을 크게 취한 MT55형(정격출력 110 kW/h)을 채용, 85% 계자로의 정격속도를 36.5 km/h로 설정하여 전력소비량을 억제한 경제차다. 가속도는 4M4T 편성의 경우 2.0(6M4T는 2.3)km/h/s가 되도록 설정되어 있다(1000·1200·1500번대를 제외).

비교적 역간거리가 짧고 속도가 낮은 노선에서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되고 있기 때문에, 장시간 고속운전이 계속되는 선구에는 부적합하다. 또 고속운전시에 대비해 약계자를 35%로 설계했지만, 실효가는 40%정도로, 100km/h 도달까지의 소요시간은 2분 이상 걸린다. 케이한신 완행선 등 일부의 선구에서는 설계 그대로 35%가 되도록 개조하여 고속성능을 개선한 차량도 있다.

103계의 설계는 지하철 토자이선(東西線)승입용(乘入用) 알루미늄제 차량 301계의 기본이 되었으며, 지방 전화(電化)노선용인 105계에도 응용되었다. 또, 부품 일부가 이이다선(飯田線)용 119계나 121계에도 사용되고 있다.

새로 제조된 3,447량 외에도 20량이 72계로부터, 36량이 101계로부터 각각 편입되어 총 차량 수는 3,503량이 되었다. 다만 나라선(奈良線)·와카야마선(和歌山線)의 전화(電化) 개업 및 카베선(可部線) 신성능화용으로서 0·1000번대 61량(JR화 후 사고 폐차 보충용으로서 또 1량), 센세키선(仙石線) 재적차량 중 4량이 105계로 개조되었고 또 사고로 폐차가 된 차량도 있었기 때문에 3,503량이 동시에 존재했던 적은 없다.

[편집] 101계와의 차이점

  • 차륜경의 확대에 수반해 지면으로부터의 높이가 약간 상승했다.
  • 고압인통선의 단축화등을 목적으로 팬터그래프를 M'차에서 M차(쿠모하 103형, 모하 103형)로 이설했다.
  • 운전중인 승무원이 궤도의 흐름에 의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운전대 창문을 상하 방향으로 약간 축소했다.
  • 운전대 기기는, 시인성을 중시한 계기판 배치, 조작성·피로 경감성을 고려하여 앞으로 기울여진 마스콘과 브레이크 핸들, 취급 용이성을 고려하여 제어 탁자에 정리된 스위치, 피로 경감을 도모한 운전기사용 좌석 등 인체공학적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교체되었다.
  • 운전대 하부 정면 중앙에도 외기(外氣, 바깥 공기)입구를 추가했다.
  • 주전동기 및 전동 발전기 냉각풍 도입구를 전동차의 차체 외측 막판부에 설치, 두껍닫이를 이용하여 차체 하부로 유입시키는 니이가타식을 채용했다.
  • 정면 행선지 표시기를 확대했다.
  • 전동 공기압축기를 성능이 2배인 C2000형으로 교체, 탑재 차량을 쿠모하 102형·모하 102형으로 집약했다.

[편집] 차종분류

103계의 경우, 통근형 차량으로서 대량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제조 시기나 사용 목적등에 의해 여러가지 설계 변경으로 인한 번호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번호 구분을 했다. 때문에, 차번(車番)에 의해 대략적인 사양의 판별이 가능하다.

[편집] 103계 0번대

일본국철 103계 전동차 0번대
츠루미선에서 운용되었던 초기 차량
츠루미선에서 운용되었던 초기 차량
양 수 {{{량수}}}량
전기 방식 {{{전기방식}}}
제어 방식 {{{제어방식}}}
기관 형식 {{{기관형식}}}
기어비 {{{기어비}}}
차륜 배열 {{{차륜배열}}}
동륜 배열 {{{동륜배열}}}
기동가속도 2.0 Km/h/s
영업최고속도 {{{영업최고속도}}} Km/h
설계최고속도 {{{설계최고속도}}} Km/h
감속도 {{{감속도}}} Km/h/s
전동기 출력 {{{전동기출력}}} kW
편성 출력 {{{편성출력}}} kW
출력 {{{출력}}} hp
견인력 {{{견인력}}}
주 용도 {{{용도}}}
차량 정원 {{{차량정원}}}명
편성 정원 {{{편성정원}}}명
전장 {{{전장}}} mm
전폭 {{{전폭}}} mm
전고 {{{전고}}} mm
차량 중량 최소(사하103, 1963년도 차량) 25.8t
최대(모하102, 1974년도 차량) 40.2 t
편성 중량 {{{편성중량}}} t
대차간 거리 {{{대차간거리}}} mm
축중 {{{축중}}} t
궤간 {{{궤간}}}mm
구동 장치 {{{구동장치}}}
제동 방식
MT비 {{{MT비}}}
보안 장치 ATS-SW.P.Ps, ATC-6(1974년 이후 제조
된 일부 차량. 현재는 전차량 폐차)
제작사
제작 연도 1964~1984
비고

1964년부터 1984년까지 제조된 103계의 기본 형식이다. 장기간에 걸쳐 대량으로 제조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개량이 추가되었다(1982년에는 제조되지 않음). 제조시기에 따라 나누어 해설한다.

[편집] 1964년~1967년 제조 차량

  • 최초의 대량생산차 그룹이다. 야마노테선용을 시작으로 수도권 각 선구에 도입되었다.
  • 쿠모하 103-1~133, 모하 103-1~159, 모하 102-1~292, 쿠하 103-1~114·501~616, 사하 103-1~225가 이것에 해당하며, 시제편성에는 없었던 쿠모하 103형과 사하 103형이 추가되었다.
  • 야마노테선에 선행투입되었던 시제차량은 후에 이 그룹에 맞추어 개조되었다.
  • 1967년 10월 이후에 제조된 '쇼와 42년도 본예산차(일본어: 昭和42年度本予算車)'은 동시에 제작한 910번대와 같이 승객용 도어가 스테인리스제로 변경되었으며, 그 이전에 제조된 차량의 강철제 도어도 대부분 스테인리스제로 교환되었다. 또, 개조 공장·시기에 따라 창틀로 H고무를 사용한 타입과 접철식을 사용한 있으며 병용된 차량도 있었다.

[편집] 1967년~1970년 제조 차량

  • 1967년에 '쇼와 42년도 본예산 추가 차량'으로서 죠반선, 그리고 '쇼와 42년도 제 3차 채무 차량'으로서 한와선(阪和線) 등의 고속운전 중심 노선에 투입되었고, 그 결과 103계의 사용방법에 대한 불만이나 의문이 발생하는 원인을 만든 그룹이다.
  • 쿠모하103-134~155, 모하103-160~278, 모하102-293~433, 쿠하103-115~177·617~638, 사하103-226~305가 이에 해당한다. 쿠하 103형 0번대와 쿠하 103형 500번대는 이 그룹에서 제조가 중단되었다.
  • 고속운전에 대비하여 쿠하와 사하의 부수대차가 답면 브레이크를 채용한 TR201형에서 디스크 브레이크를 채용한 TR212형으로 변경되었다.
  • 1차 차량과 2차 차량의 선두차의 전조등은 101계와 같이 250W 백열등을 1개 장비하였지만, 1975년 오오이 공장에서 사고복구 공사를 마친 쿠하 103-544, 1977년에 오오이 공장에서 사고복구 공사를 마친 쿠하 103-4를 시작으로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쉴드빔 2개로 개조되었다. 2000년 11월 6일에 폐차된 게이요 전차구의 쿠하 103-562가, 개조되지 않은 채 백열등인 상태로 남겨진 마지막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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