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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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1899년~1931년)는 대한민국의 아동문화운동가이며, 사회운동가, 아동문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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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약력
[편집] 생애
- 1899년 수산물 상인의 아들로 출생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냄.
- ‘소년입지회’를 조직, 동화구연, 토론회, 연설회 등의 활동을 함.
- 1913년 미동초등학교를 졸업
- 선린상업고등학교 입학
- 이광수가 펴내던 잡지 ‘청춘’에 보낸 글이 게재.
- 어머니의 병환으로 2년만에 학교 중퇴.
- 1916년 생활비 조달을 위해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근무(서류필사)
- 1918년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와 결혼
- 결혼하던 해에 청년단체인 청년구락부 조직
- 당시 손병희 선생이 지도하던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직접 찍은 호외와 독립선언문을 돌리다 일경에 체포되었다.하지만 일경이 들이닥치기 전에 등사기를 우물에 버렸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 1919년 말, 일본 도쿄의 도요〔東洋〕대학 철학과에 입학,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
- 1920년~1923년 사이 유학 기간에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혁명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
- 1920년 《개벽》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씀)
- 1921년 일본유학기간동안 외국동화를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
- 1923년 소년잡지 월간 《어린이》창간
- 1923년 5월 1일 색동회 창설(아동문학가 윤극영, 마해송 선생등이 참여했으며, 1987년 사단법인이 되었다.)
- 1927년 어린이 단체를 통합한 ‘조선소년연합회’ 위원장 역임
- 동요·동화·소년 소설·동극 창작과 외국 동화 번역에 힘씀.
- 1931년 7월 23일 구연동화 활동중에 쓰려져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고혈압으로 숨을 거둠. '문간에 검은마차가 자신을 데리러왔으니 가야겠다'면서,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편집] 사후
[편집] 방정환이 쓴 작품
- 만년 샤쓰
- 형제별(동화)
- 귀뚜라미(동요)
- 어린이 찬미(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