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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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난(三別抄의亂, 1270년-1273년)은 몽골 침략기에 삼별초가 고려 왕조에 대항하여 일으킨 난이다.

다른 반란군들과는 다르게 삼별초는 난을 일으키기 전에는 고려 정부의 지휘하에 있었다. 삼별초는 최씨 무신정권 의 사병 집단이었고, 군부 독재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해오자, 최씨무신정권은 1232년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후 몽골의 침략에 맞섰다. 불행히도 허약한 기반으로 인하여 고려는 잦은 반란에 직면하게 된다. 반란중 일부는 정부에 의하여 평정되었지만, 북부 지역의 반란 무리들은 몽골로 이탈하고, 그 영토는 몽골 제국에 병합되었다. 결국 최씨 군부가 무너지고 고려는 항복하였다.

몽골의 지원으로 군부 정권으로부터 권력을 되찾게 된 왕은 1270년 삼별초를 해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는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개경 환도는 몽골에 굴복하는 것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별초는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남서쪽에 위치한 진도에 새 정부를 수립했다. 1271년, 수장인 배중손이 이전의 다른 반란군들처럼 쿠빌라이 칸에게 그의 영토를 제국이 직접 통치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몇달 후, 진도는 여몽 연합군에 의해 무너졌다.

1271년 말, 김통정이 이끄는 잔존 세력들은 제주도에 있는 탐라국을 점령하고 탐라왕을 몰아냈다. 1274년에 이들은 여몽 연합군에 격파되었다. 결국 몽골이 1294년까지 탐라를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오늘날 삼별초의 난은 외세 침략에 대해 완강한 저항을 한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고려 민중들도 삼별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남부 지방의 조세가 개경으로 운송되지 않을 정도였다. 1978년 삼별초의 난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 제주도에 세워졌다. 진도에 있는 용장성과 같은 유물들은 관광지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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