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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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렬(李興烈, 일본식 이름:直木興烈, 1909년 7월 17일 ~ 1980년 11월 17일[1])은 한국작곡가이다.

함경남도 원산 출생이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서양음악을 접했고, 일본에 유학하여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1941년 조선음악협회가 결성되었을 때 음악보국주간 음악대연주회에 참가하여 군국가요를 반주했고, 1944년에는 대화악단의 지휘자를 맡았으며 1945년 경성후생악단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음악인들 가운데 현제명, 홍난파와 함께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다. 2005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1957년 한국작곡가협회를 조직하고 부위원장을 맡았고, 1963년 대통령 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으로 재직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마음〉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의 〈섬집 아기〉, 군가인 〈사나이로 태어나서〉 등 널리 불리는 노래를 다수 만들었고 담백한 가곡을 많이 작곡하여 '한국의 슈베르트'[2]도 불리나, 친일 전력을 비롯한 친체제적 성향 때문에 행적에 대한 논란도 그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 세울 계획이었던 '섬집 아기 노래비'가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3][4].

작곡가인 이영조가 이흥렬의 아들이다.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한국일보》 (1980.11.18일) 바위고개 作曲家 李興烈氏 別世
  2. 나운영, 안기영.현제명에서 태동된 가곡 창작시대 (나운영기념사업회)
  3. 《한겨레신문》 (2002.11.14) 친일작곡가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 강행 논란
  4. 《한겨레신문》 (2003.1.24) ‘섬집아기 노래비’ 계획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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