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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하계 올림픽 |
|
참가국 |
92 |
참가 선수 |
6,028 (남자 4,781명, 여자 1,247명) |
경기 |
21 종목, 198경기 |
개회식 |
1976년 7월 17일 |
폐회식 |
1976년 8월 1일 |
공식 개회 선언 |
엘리자베스 2세 |
선수의 선서 |
피에르 생장 |
심판의 선서 |
모리스 포제 |
올림픽 성화 점화 |
스테판 프레퐁텐,
산드라 헨더슨
|
주경기장 |
스타드 올랭피크 |
1976년 하계 올림픽(The Games of the XXI Olympiad)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었다. 1970년 모스크바와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권을 획득하였다. 이 두 도시는 후에 1980년, 1984년에 올림픽을 개최한다.
[편집] 대회 이모저모
- 이 대회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회 선언을 하였다.
- 대회 경비 조달 문제로 대회 개막일까지 주경기장이 완공되지 못할 위기에 처할 뻔 했다.
- 뉴질랜드가 인종 차별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이 뉴질랜드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뉴질랜드의 참가가 허가되었다. 이에 아프리카의 26개 국가들이 대회를 보이콧하여 참가국이 전 대회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한 캐나다는 타이완이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의 국호를 사용할 경우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 규정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었으나, 캐나다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였고, 결국 타이완은 이 대회 참가를 포기하였다.
- 캐나다는 은메달 5개와 동메달 6개를 얻는데 그쳐 하계 올림픽 역사상 금메달을 따지 못한 첫 개최국이 되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1928년 생모리츠 대회에서 개최국 스위스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었다. 캐나다는 1988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개최국으로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게 된다.
- 이전 올림픽에서 뮌헨 참사의 영향으로 경계가 강화되었고 안보비용이 상승하여 개최비용이 상승한 대회였다. 결국 이 대회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보게 되었고, 몬트리올 시는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 올림픽 성화가 아테네에서 개최지로 전자적으로 전달된 대회였다. 아테네에서 실제 불꽃에서 전자 펄스를 이용해 오타와에 채화하였고 이 성화는 몬트리올로 주자에 의해 옮겨졌다. 개최 도중 성화가 비바람에 꺼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관리자가 담배 라이터로 다시 불을 붙었으나 조직위원회는 다시 이 성화를 끄고 보관해 두었던 예비 성화로 다시 점화하였다.
- 루마니아의 14세 체조선수인 나디아 코마네치가 7개의 10점 만점 연기를 펼치면서 3관왕에 오른 대회였다. 소련의 한국계 체조선수인 넬리 김도 3관왕에 오르며 코마네치와 쌍벽을 이루었다.
- 소련의 빅토르 사네예프가 삼단 멀리뛰기에서, 이탈리아의 클라우스 디비아시가 다이빙에서 3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
- 여자 경기에 농구, 핸드볼, 조정이 추가되었다.
- 영국의 앤 공주는 영국 승마의 여자 선수로 참가하였다. 앤 공주는 출전 선수중 성별감정을 받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
- 인구 2000만명이 안되는 작은 나라인 동독이 미국보다 더 많은 40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대한민국의 양정모가 레슬링 자유형에서 해방 후 태극기를 달고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편집] 메달 집계
1976년 하계 올림픽 메달 집계 |
 |
순위 |
나라 |
|
|
|
합계 |
1 |
소비에트 연방 |
49 |
41 |
35 |
125 |
2 |
동독 |
40 |
25 |
25 |
90 |
3 |
미국 |
34 |
35 |
25 |
94 |
4 |
서독 |
10 |
12 |
17 |
39 |
5 |
일본 |
9 |
6 |
10 |
25 |
6 |
폴란드 |
7 |
6 |
13 |
26 |
7 |
불가리아 |
6 |
9 |
7 |
22 |
8 |
쿠바 |
6 |
4 |
3 |
13 |
9 |
루마니아 |
4 |
9 |
14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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