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관우
관우

관우(關羽, 162년 - 219년)는 중국 삼국시대촉한의 무장이다. 수장 또는 장생이라는 를 썼으나 나중에 운장(雲長)으로 바꿨다. 유비가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 건국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관우의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로 손꼽힌다. 의리의 화신으로 민담이나 전승에서 널리 이야기되었고, 나중에는 신격화되어 관제묘가 세워졌다. 오늘날에도 관우는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목차

[편집] 생애

관우은 하동(河東)군 해(解)현 출신으로, 후한 말 고을의 악덕 지주를 살해한 죄로 고향에서 추방되어 탁군으로 이주하고 있을 때 유비가 도당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장비와 함께 나아가 그의 호위를 맡았다. 유비는 언제나 관우와 장비와 함께 한 방에서 같이 지냈으며 그 정이 형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공적인 장소에서 하루 종일 관우는 유비 곁에서 호위를 맡고 유비를 따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관장 3인이 도원결의로서 의형제를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키가 9척(약207cm), 수염 길이가 2자(=2척)이며, 얼굴이 홍시처럼 붉고, 기름을 바른 듯한 입술, 붉은 봉황의 눈,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 등의 풍모로 묘사된다. 여기에 대장간에서 특수 제작한 무게 82근이 나가는 청룡언월도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관우상이 완성된다. 다만 청룡언월도는 한나라 때의 무기는 아니고(한나라 때에는 언월도가 아예 없었으며, 또한 (언)월도는 북방 민족의 무기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나관중이 관우의 무기로서 꾸미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실제로 관우 자전에서는 그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 간결하다. 유비가 공손찬 밑에서 평원상이 되었을 때, 장비와 함께 별부사마로 임명되어 부대를 지휘하도록 했다는 기록뿐, 그 후 이야기는 200년까지 건너뛰고 만다.

유비가 서주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하비 태수의 직무를 대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정사에 따르면, 유비가 조조 밑에 있을 때 허창에서 조조와 함께 사냥을 나갔는데 관우는 한창 사냥을 하면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고 이 틈에 조조를 살해할 것을 유비에게 권하였지만 유비는 따르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사냥 도중 헌제의 활을 빌려 사슴을 쓰러뜨리는데, 헌제의 화살을 보고 모두 헌제에게 “만세”를 부르는 순간 조조가 헌제 앞을 가로막으며 환호를 받는다. 이에 관우가 분노하여 칼을 꺼냈으나 유비가 말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200년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어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자 관우는 하비성을 수비한다. 그러나 유비는 조조에게 패해 하북의 원소 밑으로 도주하고 관우는 조조에게 사로잡혀 항복했다. 조조는 관우를 후하게 대접하고 편장군에 임명하지만, 관우는 조조 밑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조조가 장료를 파견해 그의 의중을 떠보았을 때도 관우는 “조조의 뜻은 알겠지만 나는 유비에게서 많은 은혜를 입어 함께 죽기로 맹세한 사이로 절대 배반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터이지만 반드시 수훈을 세워 조조에게 은혜를 갚고 나서 떠날 생각이다”라고 대답한다. 이리하여 원소가 안량으로 하여금 군사를 백마로 진출시켰을 때 장료와 함께 선봉을 맡았다. 이때 관우는 만 명의 군사 가운데에 있는 안량과 문추을 죽이고 백마의 포위를 풀어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는 천자의 이름으로 관우에게 편장군이라는 미미한 관직을 내렸고, 이는 관우가 천자(황제)에서 받은 첫 관직이었다. 그러나 관우의 마음에는 언제나 유비가 있었다. 원소가 진군하여 양무(陽武)를 지키자 관우는 원소군에 있는 유비를 찾아 떠났다(정사 《삼국지》 위서 무제기). 떠날 때 하사품에 봉인을 하고 편지를 보내 이별을 고한 다음 조조의 곁을 떠나 유비에게로 향했고, 조조의 측근이 추적하려고 했지만, 조조는 “사람에게는 각기 주인이 있으니 쫓지 말라”라고 하며 조용히 보내준다(정사 《삼국지》 촉서 관우전).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는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로 봉하고 많은 상을 내렸지만, 결국 관우는 유비에게로 돌아갔다고 쓰여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에게 항복할 때 ‘조조가 아니라 한나라 황실의 천자에게 항복한다’, ‘유비의 부인 등을 보호한다’, ‘유비가 있는 곳을 아는 대로 다시 떠난다’는 3가지 조건을 내놓는다. 이 항복을 권유하는 사람으로 나선 자가 장료인데, 여포를 처형할 때 그 부하였던 그를 구해준 것도 관우였다. 그는 정사에서도 관우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으며, 연의에서는 적대 관계에 있으면서도 깊은 유대가 있는 듯이 묘사되고 있다. 이때 관우는 여포가 소지하고 있던 적토마를 조조에게서 물려받았다.

원소와의 전투에서는 안량과 문추를 토벌하고 조조 밑을 떠나 유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도중에 5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6명의 장수를 참살한 오관육참(五關六斬)의 설화가 전해진다. 이것은 나중에 적벽에서 패주한 조조를 돕는 이유가 된다. 물론 이 둘은 사실이 아니고 《삼국지연의》의 저자가 꾸며낸 이야기이다. 관우가 조조를 떠나면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조조 공께서 저를 후하게 대해 주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비 장군에게 깊은 은혜를 받았기에 그를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정사 촉서 관우전). 이것을 관우의 높은 기개와 깊은 의리를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관우는 유비와 다시 만나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지한다. 유표가 죽은 후 조조가 형주 평정에 착수하자 관우는 수백 척의 군선을 모아 하구로 향해 오나라의 손권과 연합해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다. 연의에서는 적벽 대전에서 대승한 후 화용도로 도망가는 조조를 정에 얽매여 그냥 놓아주고 만다. 제갈량은 이를 미리 예측하고 있었지만 “조조의 운명이 아직 다하지 않으므로 관우에게 의리를 갚게 해도 좋다”라고 말하여 관우를 출진하도록 한다. 그리고 관우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채 귀환하자 규율상 제갈량은 “서약에 따라 목을 쳐라”라고 명령하는데, 유비가 이를 가로막았다. 이후 자존심이 센 관우는 제갈량에게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된다.

적벽 대전에서의 승리 후 유비가 강남의 여러 군을 지배하자 관우는 양양태수 탕구장군에 임명되어 양자강 북쪽에 주둔, 마침내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러 나서자 관우는 제갈량과 함께 형주의 수비를 맡았다. 그러나 도중에 유비의 군사 방통이 전사하고, 익주에서 유비가 궁지에 빠지자 제갈량도 익주로 구원하러 나가 관우 혼자 형주에 남게 된다. 익주 평정 후 관우는 형주 군사총독에 임명되는데, 이것이 곧 촉나라의 운명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215년 손권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것을 이유로 형주 반환을 요구하며 남쪽 3개 군(장사, 영릉, 계양)에 관리를 파견하는데, 관우가 이들을 쫓아냈다. 그래서 손권은 여몽에게 명령해 3군을 공략하고 익양에서 관우와 대치한다. 관우와 노숙에 의한 담판이 이루어지고 결국 유비는 조조의 공격에 대비해 3군을 반환했다.

서량의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하였을 때는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마초의 재능을 물어보았다. 제갈량은 관우의 성품을 잘 알고 답신하길 “마초는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걸물이나 미염공(美髥公)인 당신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관우는 이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빈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또 관우의 초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가 정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왼쪽 팔꿈치에 화살을 맞은 적이 있어 상처가 치료된 후에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욱식욱신 뼈가 쑤셨다.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보니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독이 스며들고 있으므로 뼈를 갂아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판명되어 절개 수술을 행한다. 관우는 수술 중에도 연회를 즐기고 피가 가득 쏟아져나와도 태연하게 담소했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방덕과의 싸움에서 이 상처를 입었는데, 명의 화타가 그의 상처를 살핀다. 그리고 수술 중에는 마량과 바둑을 계속 두면서 먹고 마셔 화타를 감탄하게 만든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올랐을 때 관우는 전장군에 임명되었다. 관우는 번성을 공격하여 우금과 생포하고 방덕을 참수했다. 조조는 관우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허도를 떠나는 것을 고려하기도 하였지만 사마의와 장제 등이 손권의 군사를 이용하자는 건의를 듣고 실행하지 않았다. 한편 손권은 아들을 관우의 딸과 혼인시키려 했지만 관우는 허락하지 않았고 관우의 번성 포위 작전 때 손권의 지원군의 도착이 늦자 손권을 오소리에 비유하며 모욕하였기에 손권은 관우를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다. 조조와의 요청을 수락한 손권은 기습을 감행하여 강릉을 점령하였다. 손권은 관우를 공격하였고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을 생포하였다. 손권은 관우를 살려두어 유비로 하여금 조조에게 대적하게 하려 했지만 측근들의 말을 듣고 참수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장무후(張繆候)로 봉하고, 그 아들인 관흥이 관우의 작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편집] 평가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관우를 평하길, “관우는 만 명을 대적할 만한 용맹한 장수이며 조조에게 보답을 하는 등 국사(國士)의 풍격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관우의 굳세고 교만한 단점으로 결국에는 실패하였다”라고 했다.

[편집] 숭배의 대상이 된 관우

명나라 말기인 1594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져 중국 대륙 각지, 나아가 대만, 홍콩, 한국, 일본 등지에도 관제묘가 세워졌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뭄이 들면 관우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편집] 관우와 적토마

적토마가 관우와 일생을 함께하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관우가 적토마를 물려받았을 때에는 이미 십여 세에 이르른 적토마는 "늙은 말"이었고, 관우가 죽을 때에는 삼십 세가 넘는, 인간으로 치면 180세가 넘는, 말이기에 살아 있기는 힘들다. 이것은 관우를 치료한 화타 이야기만큼이나 유명하지만, 관우를 치료한 의원이 화타가 아니듯이, 관우와 일생을 함께한 말이 적토마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편집] 역대 시호

한편, 중국의 역대 황제에게는 충의의 화신인 관우는 무조건적 충성의 좋은 본보기였기에 관우를 우대하고 여러 시호를 봉했다. 그 종류는 아래와 같다.

나라 황제 연대 봉호
북송 송 휘종 숭녕원년(1102년 忠惠公
북송 송 휘종 숭녕3년(1104년 崇寧眞君
북송 송 휘종 대관2년(1107년 武安王
북송 송 휘종 선화5년(1123년 義勇武安王
남송 송 고종 건염2년 1128년 壯繆義勇武安王
남송 송 효종 순희14년(1187년 壯繆義勇武安英濟王
원 태정제 천력8년(1335년 顯靈義勇武安英濟王
명 신종 만력42년(1613년 單刀伏魔、神威遠鎮天尊關聖帝君
명 사종 숭정3년(1630년 真元顯應昭明翼漢天尊
청 세조 순치9년(1652년 忠義神武關聖大帝
청 세종 옹정3년(1725년 三代公爵、聖曾祖、光昭公、聖祖、裕昌公、聖考、成忠公
청 고종 건륭원년(1736년 山西關夫子
청 고종 건륭31년(1767년 靈佑二字
청 인종 가경18년(1813년 仁勇二字
청 선종 도광8년(1828년 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關聖大帝

[편집] 관우의 친족관계

  • 유비 (《삼국지연의》 상 의형)
  • 장비 (《삼국지연의》 상 의제)
  • 관평 (장남, 연의에서는 양자이나 정사에서는 아님)
  • 관흥 (차남)
    • 관통 (손자)
      • 유선 (사돈, 유선의 딸과 관통이 혼인했음)
    • 관이 (손자)
  • 관색 (삼남, 연의에서 등장하나 정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음)
  • 관은병 (장녀, 야사에서 등장하나 정사에서는 등장하지 않음)
  • 이회 (사돈, 야사에 이회의 아들과 은병이 혼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음)

[편집] 읽을거리


오호대장군
관우|장비|마초|황충|조운


삼국지의 주요 등장 인물
군주 후한: 영제 - 소제 - 헌제
: 조조 - 조비 - 조예 - 조방 - 조모 - 조환
: 유비 - 유선
: 손견 - 손책 - 손권 - 손량 - 손휴 - 손호
: 사마염
기타: 공손찬 - 도겸 - 동탁 - 마등 - 여포 - 원소 - 원술 - 유요 - 유장 - 유표 - 장각 - 장로 - 장수 - 한복
참모 : 가후 - 곽가 - 만총 - 사마사 - 사마소 - 사마의 - 종요 - 순욱 - 순유 - 유엽 - 정욱 - 신비 - 진군
: 간옹 - 강유 - 등지 - 미축 - 방통 - 비의 - 손건 - 장완 - 제갈량 - 서서 - 마량 - 법정 - 동윤
: 고옹 - 노숙 - 육손 - 육항 - 장굉 - 장소 - 제갈근 - 제갈각 - 주유 - 보즐 - 노번 - 장제
: 가충 - 장화 - 진수
기타: 심배 - 봉기 - 이유 - 저수 - 전풍 - 진궁 - 신평 - 허유 - 괴량 - 괴월 - 곽도 - 진등 - 장송
장군 : 종회 - 등애 - 서황 - 악진 - 우금 - 이전 - 장합 - 장료 - 전위 - 하후돈 - 하후연 - 허저 - 관구검 - 제갈탄
: 관우 - 관평 - 관흥 - 마초 - 위연 - 장비 - 장포 - 조운 - 황충 - 요화 - 이엄 - 황권 - 마대 - 하후패
: 감녕 - 능통 - 서성 - 여몽 - 정보 - 한당 - 조무 - 황개 - 주연 - 주태 - 태사자 - 주환 - 정봉 - 여대
: 양호 - 두예 - 왕준 - 왕혼
기타: 기령 - 문추 - 안량 - 하진 - 화웅 - 고순 - 장연 - 문빙 - 장임
비한족 어부라(흉노) - 가비능(선비) - 답돈(오환) - 맹획(남만) - 부건(저족) - 황난(산월) - 아차새(강인) - 비미호(일본) - 동천왕(고구려)
기타 관로 - 남화노선 - 사마휘 - 손상향 - 우길 - 좌자 - 초선 - 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