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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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金永華)는 한국의 연극인이며 영화 감독이다.

일본 니혼 대학교 예술학과에 유학하면서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1934년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여 연극 운동을 했다[1]. 동경학생예술좌에는 박동근, 마완영, 주영섭 등이 참가하여 창작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동인지 《막(幕)》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영화를 감독했다. 서항석과 김영화가 제작을 맡은 《아내의 윤리》(1941)와 일본 공군 홍보영화인 《우러르라 창공(일본어: 仰げ大空)》(1943년)의 두 편이다. 이 중 《우러르라 창공》은 군국주의를 직설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의 본격적인 친일 영화로, 김영화가 편집과 기획까지 담당했다.

광복 후 1948년 안석주, 안철영 등과 함께 우익 영화인 모임인 대한영화협의회의 최고위원을 맡았으나, 한국 전쟁을 전후하여 북조선으로 갔다. 이 때문에 김영화가 우익 단체에 세포 격으로 잠입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2]. 반면 납북되었다는 설[3][4]도 있어 북조선으로 가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2005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예술로, 배우 김동원,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
  2. 광복 후 1948년~: 최장집, 정해구 외 (1997-04-01). “9. 해방 직후의 민족영화운동 (이효인)”, 《해방전후사의 인식 4 - 민중항쟁ㆍ무장투쟁ㆍ문화예술운동ㆍ한국전쟁의 해명》. 서울: 한길사. ISBN 8935623491.
  3.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2000-12-25).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2》. 서울: 시공사, 195쪽. ISBN 8952710274.
  4. 정종화, 한국영화 성장기의 토대에 대한 연구 - 동란기 한국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석사논문, 2002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