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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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 공의회는 431년 터키 에페소스(에페소,에베소)에서 열린 공의회로 에페소 공의회 또는 에베소 공의회라고도 한다.
[편집] 공의회의 배경과 진행
이 공의회는 431년 6월 22일부터 에페소스의 테오토코스 성당에서 열렸다.
당시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대주교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 주교간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입장차이로 논쟁이 뜨거웠다. 이들이 논쟁을 벌인 이유는 성모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skos) 즉,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는가로 논쟁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키릴루스 주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여 성모 마리아에 대한 호칭에 찬성했고, 네스토리우스 주교는 인성을 강조하여 반대했다. 결국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하자, 비잔티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문제는 공의회에 친 네스토리우스 파 주교들이 늦게 오는 바람에 논쟁의 중심이 키릴루스주교 파에 기울었다는 것이었고, 결국 네스토리우스는 교리논쟁에서 패한다. 이단으로 몰린 그는 파문당했다. 에페소공의회의 이러한 판결은 '도적들의 공의회'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논란이 있었다.[1]435년 네스토리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아라비아의 페트라로 추방당했고 451년 수도원에서 한을 풀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의 신학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중국, 중동 등 동방지역에서 선교활동과 신학교육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경교(景敎)라고 하였다.
[편집] 주석
- ^ 《기독교인물사상사전》/토미 레인 지음/박도웅외 공역/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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