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정호(金正浩, 1804년? - 1866년)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지리학자였다. 자는 백원(伯元)·백온(伯溫)·백지(伯之)이며,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행성 95016의 이름을 김정호라 하였다.
목차 |
[편집] 지도와 지리지
김정호가 편찬한 지도와 지리지는 다음과 같다.
- 1834년 지도 〈청구도〉
- 1861년 지도 〈대동여지도〉
- 1864년 지리지 《대동지지》(1866년 편찬설이 있음)
- 지도 〈동여도〉 : 대동여지도보다 먼저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나 정확한 때는 알 수 없다.
[편집] 지도 제작에 관한 이야기
김정호의 대작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이다. 김정호는 조선의 지리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전역을 답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김정호가 탐사로 지도를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정호가 해당 지역의 관찬 지도와 가장 지도를 참고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때 가장 지도란 사사로이 만들어 집에 보관하던 지도로, 대부분 그들 소유의 산림이나 논밭을 그리고 있으며, 그 정확성은 관찬 지도에 못지 않았다.
또한 종래에는 김정호가 홀로 지도와 지리지를 편찬하였으리라 보았으나, 최근에 김정호와 가깝게 지내던, 조선 후기의 무관이자 실학자인 신헌이 한양에 보관하고 있던 관찬 지도를 제공했으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신헌이 쓴 “〈대동방여도〉의 서문”에 김정호가 〈동여도〉를 제작했다고 하는 등 절친한 사이이거나 도움을 주었던 사이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일까지 알고 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그러나 〈대동방여도〉의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편집] 김정호 옥사설
김정호는 1866년 죽었는데, 이에 대해서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이적행위자로 몰아 옥사시켰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오해이다. 식민사관을 가진 일본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흥선대원군이 고산자 김정호를 죽였다는 허위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흥선대원군의 측근인 신헌이 김정호의 오랜 지기였음이 밝혀져 이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더구나 흥선대원군은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해서 경계를 하기는 했지만,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을 통해 서양의 회중시계를 구해오게 하여 그것으로 시간을 맞추며 알뜰히 썼던 일이나, 대동강에서 통상을 강요하면서 횡포를 부리다가 소각된 제너럴 셔먼호의 잔해를 수습하여 연구하라 명령한 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문물 흡수에 적극성을 갖고 있었다.
[편집] 바깥고리
![]() |
이 문서는 한국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