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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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봉(梁世奉, 1896년 음력 6월 5일 ~ 1934년 음력 8월 12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문화어로는 량세봉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 양서봉(梁瑞鳳), 양윤봉(梁允奉)이 있고, 호는 벽해(碧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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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렵고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여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1917년 중국으로 이민하여 중국인 지주의 소작농으로 생계를 연명하던 중,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3·1 운동을 계기로 만세 시위를 조직하면서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1922년 천마산대라는 유격 부대에 가입했고, 이후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에서 독립군 지휘관으로 활동하면서 국내의 평안북도 지역으로 진공하는 등 그때마다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32년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오른 뒤,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신빈현 융링제 전투에서 일본군에 승리를 거두었다.
1934년 밀정인 박창해가 매수한 중국인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편집] 평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고 국립현충원에 유골 없는 묘지가 마련되었다.
양세봉은 북조선에서도 유해가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어 있고 김일성이 특별히 양세봉의 유족들을 평양에 불러 살게 하는 등 높이 평가받고 있다[1].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아버지 김형직이 일찍 사망한 뒤 오동진, 손정도,장철호,현묵관, 그리고 양세봉에게서 학비를 후원받은 사실을 기록했다[2].
[편집]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양세봉, 1994년
- 《경향신문》 (2005.6.20)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Ⅱ중국편-4.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편집] 주석
- ↑ 《경향신문》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 남북 국립묘지 묻힌 유일한 독립투사 (2005.6.20)
- ↑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제1편 항일혁명편, 8장 반일의 기치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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