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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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量子力學)은 전자, 원자핵 등 미시적 세계의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 이론이다. 19세기 중반까지의 실험은 뉴턴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진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아원자입자에 관련된 실험들의 결과는 고전역학으로 설명을 시도할 경우 모순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역학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기로 하여 에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등에 의해 만들어진 전적으로 20세기에 이루어진 학문이다. 양자역학에서 플랑크 상수를 0으로 극한을 취하면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으로 수렴하는데, 이를 대응 원리라 한다.

목차

[편집] 역사

1900년 실험으로 알고 있는 흑체 복사에너지 밀도주파수에 대한 함수를 도출하기 위해 막스 플랑크양자화란 개념을 도입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가 광양자(광자)라는 덩어리 형태로 전해진다는 가정을 하여, 광전 효과를 설명해 냈다.

1913년에는 닐스 보어가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소의 띄엄띄엄한 스펙트럼등을 양자화를 이용해 설명하는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1924년드브로이드브로이파(물질파)의 개념을 주창했다.

1926년경엔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가 슈뢰딩거하이젠베르크에 의해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이라는 두 가지 형식이 제안되었고, 슈뢰딩거는 두 가지 형식이 등치임을 증명해냈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도입하였고, 거의 같은 시기에 코펜하겐 해석이 명확히 기술되었다. 이즈음, 폴 디랙은 양자역학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여 디랙 방정식을 만들었고, 또 브라-켓 기호를 이용한 연산자 이론을 최초로 사용했다.

1932년 존 폰 노이만은 연산자 이론으로 양자 역학의 엄밀한 수학적 기초를 닦았다.

1940년대엔 리처드 파인먼, 프리맨 다이슨, 슈윙어, 도모나가 신이치로에 의해 양자전기역학이 성립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양자역학은 라이너스 폴링의 양자화학을 필두로 하여, 많은 실용적인 문제와 미시계의 시뮬레이션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코펜하겐 해석의 완성자인 폴링, 원자 폭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 등의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는 발전하였다. 최근 밀도범함수이론이 발전하여, 슈뢰딩거의 방정식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근사적으로 풀이할 수 있게 되면서, 양자역학의 미시계 모사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양자색역학의 역사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현재 알려진 것과 같은 이론은 데이비드 폴리처, 데이비드 그로스Gross, 프랭크 윌첵Wilzcek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1975년에 완성되었다. Schwinger, Higgs, Goldstone들과 다른 많이 선구적인 연구에 기초해서, 셸던 글래쇼, 스티븐 와인버그, 압두스 살람 등은 약한 핵력과 양자전기역학이 하나의 전자기 약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각각 증명했다.

[편집] 철학적 함의

양자역학의 결론들은 당시 과학자(및 일반인)들의 직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기에, 이 이론이 실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해 많은 해석철학적 논쟁이 있었다.

많은 수의 물리학자들은 닐스 보어 등이 개발한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해석에서 양자역학의 확률적 측면들은 우리의 지식의 부족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 실재 그 자체이며, 따라서 결정론적 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양자역학을 개발한 이들 중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의 무작위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자역학의 근본에는 보다 깊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해 여러 가지 반박을 제시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EPR 역설이라 불린다. 존 스튜어트 벨(John Stewart Bell)은 EPR 역설을 이용해 양자역학과 국소적 이론 사이에 실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차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실험은 실제 세계가 양자역학적 비국소성을 가짐을 보여주었다.

작가 C. S. 루이스는 비결정론이 그의 철학적 신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양자역학을 불완전한 이론으로 보았다.[1] 영문학 교수인 그는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가 존재론적 비결정성이 아닌 인식론적 한계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이유에서 숨은 변수 이론을 지지했다. 코펜하겐 해석을 둘러싼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은 당시의 양자역학을 둘러싼 논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해석 방법은 코펜하겐 해석이나,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존재한다.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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