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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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金琪洙, 일본식 이름:光山哲三, 1917년 11월 22일 ~ 1986년 10월 21일)는 한국의 국악인이다. 아호는 죽헌(竹軒), 또는 순한국어로 풀어서 '대마루'라고도 한다.
서울 출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왕실 관리를 위해 설치된 이왕직 소속 아악부의 아악부원 양성소에서 국악을 공부했다. 이왕직 아악부는 광복 후 설립된 국립국악원의 전신이다.
1941년 획기적인 창작 국악곡으로 꼽히는 《세우영(細雨影)》을 작곡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악계의 토대를 닦았다. 흔히 창작국악과 국악작곡의 개척자로 불린다[1].
1973년 국립국악원 원장에 임명되었고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국악에 대한 저서를 다수 저술하여 국악계의 대부격으로 활동했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호를 딴 '죽헌실'이라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도 지냈다.
성악곡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 등 친일 국악곡을 작곡하여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파 목록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일본 건국 2600주년을 기념하여 천황을 칭송하는 내용의 《황화만년지곡》은 이능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김기수는 이 명단에 수록된 음악인 가운데 친일자료의 편수는 많지 않으나 친일행위의 정도가 노골적이라고 평가된 경우이다[2].
19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편집] 참고자료
- 국립국악원, 전시실 - 죽헌실
- 안주연, 죽헌 김기수의 음악세계와 그의 대표작 『송광복』분석 (국악고등학교 홈페이지 - 전통음악 자료실)
- 《연합뉴스》 (2005.8.29) 친일인명사전 명단 관련 문화계 반응 - "무책임한 발표" "친일행적 참회" 엇갈려
- 《중앙일보》 (2003.4.22) 일제가 키웠던 '대한민국 음악가들'
[편집] 주석
- ↑ 전지영, 창작국악은 발전하고 있는가 《컬처뉴스》 (2006.11.22)
- ↑ 《컬처뉴스》 (2005.9.5 ) 친일음악편/ 홍난파, 현제명, 김성태, 남인수 등 24명 - 황국신민 맹세한 인물이 한국음악의 거목
분류: 1917년 태어남 | 1986년 죽음 | 한국의 음악가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 서울특별시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