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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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 당시의 국경 | |||||
표어 | دولت ابد مدت! (영원한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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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오스만 제국의 국가 | ||||
공용어 | 오스만터키어(1928년 사멸) | ||||
수도 | 쇠귀트(1299 ~ 1326) 부르사(1326 ~ 1365) 에디르네(1365 ~ 1453) 이스탄불(1453~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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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 절대군주제, 입헌군주제 | ||||
마지막 술탄 | 메메드 6세(1918-1922) | ||||
마지막 칼리프 | 압둘 메지드 2세(1922-1924) | ||||
건국 | 1299년 | ||||
해체 | 1922년 11월 17일 | ||||
면적 | 19.9m km²(1595년 통계) 6.3m km²(1902년 통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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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40,000,000명 (1902년 통계) | ||||
통화 | 터키 리라 | ||||
국교 | 이슬람교 | ||||
성립 이전 | 셀주크 제국, 비잔티움 제국 | ||||
해체 이후 | 터키 공화국 |
오스만 제국(오스만 터키어 : دولت عالیه عثمانیه, 현대 터키어 : Osmanlı İmparatorluğu)은 오스만 가문을 왕가로 하여, 現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다민족 제국이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 구석에서 나온 소 군후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 등의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어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목차 |
[편집] 국명
서양인이 오스만 제국을 오스만 투르크, 투르크 제국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영어식으로 Ottoman Turks, Turkish Empire라고 표기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이 표현을 그대로 따와 오스만 투르크, 투르크 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 많이 불렀지만, 현재는 오스만 제국 또는 오스만 왕조이라는 표기가 일반적이고 오스만 투르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오스만 제국의 군주(파디샤, 술탄)의 출신은 투르크 계로 궁정의 언어도 오스만 터키어로 불리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의 어휘를 많이 차용한 터키어였지만, 지배 계층은 민족·종교에 관련없이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터키 민족의 국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 내의 사람들은 멸망 때까지 자국을 '오스만 가의 숭고한 국가', '오스만 국가' 등으로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을 투르크 민족의 국가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국의 실태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오스만 투르크라는 호칭은 부적절하고, 오스만 제국을 터키라고 부른 것은 외부로부터의 통칭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 오스만 제국의 뒤를 잇는 국가인 터키 공화국은 정식 국호에 처음으로 '터키'를 채용했지만, 오스만 제국을 가리킬 경우에는 '오스만 제국'이라는 뜻의 Osmanlı İmparatorluğu(오스만르 임파라토를루유)나 '오스만 국가'라는 뜻의 Osmanlı Devleti(오스만르 데블레티)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편집] 역대 군주
-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만 제국의 군주입니다.
술탄은 아랍어로 왕(王)이라는 뜻이지만, 터키에서는 황제에 속한다.
[편집] 역사
오스만 제국은 후세의 역사 전승에 대해 시조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서북부에 세력을 확립해 신정권의 왕위에 올랐다고 여겨지는 1299년을 건국 년도로 하는 것이 통례이며, 술탄제가 폐지되어 메메드 6세가 폐위된 1922년이 해체 년도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오스만 왕조 초기에 대해서는 동시대의 사료가 부족하고, 사실과 전설이 혼연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건국 년도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편집] 발전
1299년에 건국되었으며 오스만 1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15세기 초부터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면서 1453년에는 제국을 멸망시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아 이스탄불(現 터키 공화국의 최대 도시)로 개칭하였다. 성 소피아 성당도 첨탑 4개를 첨가한 상태에서 모스크로 개축되었다.
한 때 티무르 제국에 의해 위축될 뻔하였으나 1517년에는 아바스 왕조를 정복하여 나중에 술탄이 칼리파를 겸하게 되었다. 쉴레이만 1세(재위 1520년-1566년) 때 3대륙에 가장 큰 영토를 거느렸다.
[편집] 쇠퇴
그러나 18세기부터 힘이 약해졌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땅을 되찾는 한편, 아랍인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들의 독립 운동이 일어났다. 1830년에는 그리스가 왕국으로 독립하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다.
[편집] 탄지마트의 실패
1839년부터 탄지마트 칙령을 실시하였으나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결국 1876년에 실패로 끝났다. 탄지마트(Tanzimat, 오스만 터키어: تنظيمات)는 1839년부터 1876년까지 실시된 오스만 제국의 개혁 정책이었다.
영국과 러시아 제국의 간섭, 그리고 압둘 하미드 2세의 등장으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편집] 발칸 국가들의 독립
1876년에 즉위한 압둘 하미드 2세는 1908년까지 전제 정치를 하였다. 마드하트 파샤가 창안해 낸 마드하트 헌법이 폐지되고, 좌파는 국외 추방 또는 사형을 각오해야 하였고, 이리하여 압둘 하미드 2세는 '피의 황제'로 불린다.
그러나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가 독립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토가 된다.
[편집] 청년 투르크 당의 집권
1908년, 압둘 하미드 2세는 청년 투르크 당에 의해 폐위되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청년 투르크 당은 메메드 5세를 황제로 모시고 마드하트 헌법을 다시 시행하였으며, 지도자가 군인 출신이어서 군사무기 개발에도 착수하였다.
그러나, '모든 민족의 평등'이 '터키인에 한한 평등'으로 바뀌고 아랍인들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의 독립 열망은 더더욱 가속화되었다.
[편집] 패전국
이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동맹국으로 참전하였다. 동맹국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을 일컫는다.
이 제국은 패전국이 됨으로써 세브르 조약의 결과, 1914년 이전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했다. 다만, 로잔 조약으로 現 터키 공화국의 영토로 고정되었다.
[편집] 멸망
메메드 6세(재위 1918-1922)가 폐위됨으로써 600년 장수 제국은 해체되었다. 압둘 메지드 2세도 1924년, 칼리프제가 폐지됨에 따라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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