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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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李燦, 일본어: 靑葉薰, 1910년 1월 15일 ~ 1974년 1월 14일)은 〈김일성장군의 노래〉 작사가로 유명한 한국의 시인이다. 문화어로는 리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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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다.
경성제2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릿교 대학교와 와세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때 일본 유학 중이던 임화 등을 만나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 운동에 뛰어들었다.
1931년 동지사 결성에 가담했고, 카프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1932년 검거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고향인 북청에 내려가 시집을 발표했다. 카프 활동을 하던 초기에는 현실 참여적인 서술시를 썼으나, 복역한 뒤 간행한 시집 《대망(待望)》(1937), 《분향(焚香)》(1938), 《망양(望洋)》(1940)에는 허무적 정서로 나약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털어놓는 내용이 들어 있다.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친일 시를 발표했다. 1944년 《매일신보》와 《신시대》에 실은 〈송출진학도(送出陳學徒)〉가 대표적이다. 이 기간 중 친일 희곡도 창작했다.
광복후 잠시 상경하여 서울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한 것 외에는 주로 북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자연스럽게 월북 작가가 되었다. 함경남도 혜산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함남인민일보사 편집국장을 맡아 활동했고 북조선문학예술동맹 서기장도 맡았다. 이 시기에 펴낸 시집으로 《화원》(1946), 《승리의 기록》(1947), 《쏘련시초》(1947) 등이 있으며, 북조선 정권의 성립과 관련된 정치적 경향성이 강한 시를 창작했다.
북조선에서 널리 불리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1946년 작사했다. 이 노래는 북조선 문학에서 매우 중시하는 수령형상문학의 정수로 손꼽히며, 작사자인 리찬은 혁명시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소(朝蘇)문화협회 부위원장, 문화선전성 군중문화국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카프 작가편에서 그의 생애가 특별히 조명되기도 했다. 애국렬사릉에 유해가 묻혀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의 친일 시 발표로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고,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친일 작품 수는 희곡 2편을 포함하여 총 8편이 밝혀져 있다[1].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자료
- 권영민 (2004-02-25).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774쪽. ISBN 8952104617.
- 《연합뉴스》 (2007.3.14)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시인 이찬
- 김준태, 다시 읽는 통일시⑧ 리찬 〈눈 나리는 보성(堡城)의 밤〉 - 일제강점기, 함경도 진한 토착언어로 출발, ‘혁명시인’으로 거듭난 북녘의 대표적 시인 《민족21》 (200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