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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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연극 배우로 활동했다. 1939년 극단 아랑에 참여하여 차홍녀, 문정복 등과 함께 많은 인기를 끌었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1943년 열린 제2회 대회에서 박영호 극본 안영일 연출의 〈물새〉에 출연하여 역시 이 연극에 출연한 황철과 함께 연기상을 받았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박영신은 연극 분야에 선정된 인물 가운데서는 유일한 여성이다.
광복 후 월북했다. 1949년 황철 등과 함께 공로메달을 수여 받았고, 1952년에는 공훈배우의 칭호를 받았다[1].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북조선 내각의 문화상(장관)도 역임했으며[2], 1965년 남한에 '북남공동 영화제작 및 연극경연대회’를 공식 제안한 바 있다[3]. 한설야 몰락 이후에 문화상에 임명되는 등 남한 출신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비판받는 와중에서도 살아남았으나, 이후 숙청되었다는 소문도 있다[4].
[편집] 참고자료
- 조영복 (2002-09-10). “임선규와 문예봉 - 극작가와 배우, 엇갈린 부부의 운명”,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1503.
- 한상언, 한국영화스타 8-① 영화배우 황철/ 천부적 재능의 조선 최고의 스타 황철 《오마이뉴스》 (2007.1.29)
- 한상언, 한국영화스타 8-② 영화배우 황철/ 친일, 월북, 그리고 인민배우 《오마이뉴스》 (2007.1.29)
[편집] 참고자료
- ↑ 《강원도민일보》 (2001.9.6) 통일광장/ 北 최초 인민ㆍ공훈배우는 ′최승희′
- ↑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2002-08-20). “북한에서 문학 예술분야에 대한 당적 영도”, 《북한문학의 이해》. 서울: 국학자료원. ISBN 8982069763.
- ↑ 김태철, 북의 문화콘텐츠, “잠재력 무궁하다” 《민족21》 (2005.7.1)
- ↑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북한 상류계층의 인생유전 (2005.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