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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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Fundamentalism)은 1850년대 미국남부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면서 신학사조를 말한다.
목차 |
[편집] 근본주의의 특징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근본주의의 특징이다. 근대 미국 기독교계에서는 유럽에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오자,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원리주의 세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근본'이라는 작은 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미국 남부의 이른바 성서 지대에서 특히 세력이 강한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성과 속으로 구분짓는 이원론에 근거하여 정치에 무관심하던 모습에서 탈피, 신복음주의, 오순절교회 등과 더불어 국수주의, 반공주의 등이 특징인 기독교 우파라는 이름으로 정치세력화되고 있다.
[편집] 근본주의의 주요교리
[편집]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한국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일부 근본주의자들이었다.-하지만 이들이반공주의, 반 가톨릭주의, 맹목적 반일주의 내지 대일비방의 인습, 성과 속으로 구분짓는 이원론, 성서비평학 이론 거부, 이슬람이나 불교 등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 영향은 다음과 같다:
[편집] 광복 직후
일본인들의 퇴각으로 통치행정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자, 미군정은 행정상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친미적 인사를 대거 등용했다. 당시 미군정에 한국인을 천거하던 임무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의 아들이며 해군 대령인 윌리엄스(G. Z. Williams)가 맡았는데 그는 주로 개신교도를 천거하였다. 그 결과 제1공화국의 주요 국가기관과 고위직에는 개신교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진출했다.[3] 대통령인 이승만 자신이 감리교회의 장로였으며, 부통령이었던 이기붕도 감리교회의 집사였다. 해방 직후 ‘적산’으로 분류된 일본 종교의 재산 중 상당수가 개신교 예배당으로 전환되었다.[출처 필요] 당시 개신교계의 지도급 인사이자 장로교 성직자들이었던 김재준과 한경직은 미군정의 도움으로 천리교 재단을 접수하였다. 그래서 천리교 본부가 있던 동자동에는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의 전신)와 성남교회가 창설되었고, 가장 큰 천리교 종교행사장소가 있던 저동에는 영락교회, 그리고 두 번째로 큰 천리교 종교행사장소가 있던 동사헌정에는 경동교회가 창설되었다. 이 시기의 개신교는 선교활동 및 교세확장에 유리한 여러 가지 제도적 특권도 얻게 되었다. 미군정하에서 크리스마스가 국가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국영방송의 성격을 지니고 있던 서울방송을 통하여 기독교 교리가 일요일마다 전파되었다. 1951년에는 대통령령으로 개신교만이 참여하는 군종 제도가 시행되었다. 물론, 1957년이후 불교와 가톨릭도 군종에 참여하게 되었고, 현재는 원불교도 군종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편집] 군사 정권
한국 개신교는 교회의 보호와 교세 확장을 위해 1962년부터 1987년까지 군인들이 독재정치를 한 비민주주의 시기인 군사독재 시기에 당시 경제논리와 성장주의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4]이 시기에 한국 개신교회는 Explo '74와 같은 대형 집회와 한민족의 개신교 신자화를 위한 대대적인 전도 운동이 연일 계속되어 복음화에 공헌한 긍정적 모습도 있지만, 군사독재정권에 대해서 한국 개신교회는 반공주의 정권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보내는 부정적인 모습도 보였다.[5][6] 이에 대해 한국 기독교 장로회 창시자이자 신학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는 “한국 교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내세워서 무조건 국가권력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말하였다.[7]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 문헌
- ↑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수난을 인간의 죄를 대신한 수난으로 보는 교리
- ↑ 전천년주의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신학(종말론)들이다. 전천년주의는 그리스도의 탄생(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수난이후를 은총의 시대, 교회가 들려지는 휴거이후를 대환란시대로 본다.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한뒤에는 선과 악의 싸움인 아마게돈이 일어나며 천년왕국이 세워진다. 이후 모든 나라와 사탄의 배반, 백보좌(하얀 보좌)에서의 심판이 일어났다가 새하늘과 새땅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외 미국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이 지지한 무천년주의도 있다.이스라엘을 구약교회, 이방인을 신약교회로 보는 것으로 환난과 적그리스도와 재림을 거쳐 새하늘과 새땅이 열린다고 본다.《5시간만에 읽는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지음/작은 행복
- ↑ 실제로 예장 통합측에서 발간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100주년사를 보면 이승만대통령당시 개신교 목사들이나 신자들이 국회위원으로 취임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승만정권과 한국교회가 정치적으로 결탁했음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 있다.
- ↑ 소위 개발독재로 불리는 군사정권의 경제발전정책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한국교회에서도 예장 통합측에서 총회장 선거당시 금권선거 논란이 있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목적을 위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사례들이 있다.사소한 부분에서는 복음전파나 종교적인 감수성 만족을 위해서라면 불법복제를 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 ↑ 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칼럼 : 한겨레21:
- ↑ 원로 교회사학자이자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인 김영재 교수는 과거 군사정권당시 진보교단들은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사회운동으로 참여한 것에 반해, 보수 교단들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군사독재정권에게 아론의 지팡이(권력의 정통성을 의미한다.)를 들려달라고 부르짖었다고 강력히 비판하였다.김영재, 《믿음 그리고 행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출판부.
- ↑ 김은봉 지음, 《한국사 103장면》,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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