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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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웅(梁世雄, 일본어: 三原世雄[1], 1907년 ~ ?)은 한국의 영화 촬영기사이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제2상업학교를 졸업했다[2]. 일본에 유학하여 동아키네마에서 촬영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3], 1935년 일본에서 함께 공부한 박기채 연출의 《춘풍》 촬영을 맡아 국내 영화계에 첫 선을 보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제작된 친일 영화에 촬영 담당으로 참여했다. 친일 영화 시대를 예고하는 《군용열차》(1938)[4]를 시작으로, 일본군 공군을 그린 어용 영화 《우러르라 창공(일본어: 仰げ大空)》(1943),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친일 영화 《감격의 일기(일본어: 感激の日記)》(1945), 징용 나간 남편을 참고 기다리는 여성을 통해 전시 지원을 강조한 《우리들의 전쟁(일본어: 我れらの戰爭)》(1945)을 촬영했다. 친일 단체 조선영화인협회에서는 임원을 맡기도 했으며[5],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목록 영화 부문과 친일단체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도 어린이용 영화로 많은 인기를 모은 《똘똘이의 모험》(1946) 등을 촬영하며 활발히 활동했으나, 한국 전쟁 중 북조선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6][7]. 마지막 작품은 1949년 고향인 부산에서 찍은 《해연(海燕)》이다.
[편집] 참고자료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양세웅
[편집] 주석
- ↑ 편집부 (2003-02-03). 《한국영화사연구》. 서울: 새미, 175쪽. ISBN 8956280614.
- ↑ 《부산이야기》 (2005년 7/8월호) 부산이 낳은 천재 촬영감독
- ↑ 《씨네21》 (2001.6.13) `새로운` 조선영화를 꿈꾸다...이규환 감독편 上
- ↑ 《씨네서울》(2002.1.28) 16. 한국 최초의 친일 어용 영화는? - 서광제의 "군용열차"(1938)
- ↑ 이효인, 영화계 친일행위의 논리와 성격 《디지털 웹진 Now Art》 (2002년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 문화예술의 친일 논리와 성격)
- ↑ 한국 전쟁 중~: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양세웅 (梁世雄)
- ↑ 한국 전쟁 중~: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양세웅 (梁世雄)
분류: 1907년 태어남 | 한국의 영화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 부산광역시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