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경덕(徐敬德, 1489년 - 1546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이다.
[편집] 생애
- 과거에 장원급제하기도 하고 관리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을 교육과 연구에 힘썼다.
- 1575년 (선조 8) 우의정에 추증, 1585년 신도비가 세워졌다.
[편집] 평가
만물의 이치를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자로서의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론중 이기설(理氣說)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유물론의 원류로 평가받기도 한다.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하다.
[편집] 저서
- 《화담집(花潭集)》
- 〈원이기(原理氣)〉
- 〈이기설(理氣說)〉
- 〈태허설(太虛說)〉
-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