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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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柳致眞, 1905년 ~ 1974년 2월 10일)은 한국의 연극인, 극작가이다. 아호는 동랑(東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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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시인 유치환의 친형이다.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10대에 일본에 유학하여 릿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 귀국하여 곧바로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고, 《문예월간》에 연재한 〈토막 (土幕)〉을 시작으로 농촌을 무대로 한 사실주의 작품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예를 들어 1942년 발표한 〈북진대〉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생애를 찬양한 작품이다. 관제 연극 공연을 위한 현대극장을 주도했고, 현대극장 창립 작품인 일본의 만주 침략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흑룡강〉의 희곡을 썼으며, 함세덕, 조천석 등의 친일 작품을 연출하고 친일 수필도 발표한 기록이 있다. 조선연극협회, 조선문인협회의 간부를 지냈고, 1944년에는 어용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다.
이 시기의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다른 이념이나 논리에 앞서던 1950년대에 극예술연구회 시절부터의 동료인 김광섭과 희곡 〈왜 싸워〉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이미 연극계 친일 논란의 중심이었다. 2005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1],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광복 후 우익 연극계에서 활동하며 반공 작품을 공연했고, 대한민국 연극계의 기초를 닦았다. 1958년에는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이 되는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국립극장 극장장과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참고자료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5.7.1). “유치진 : 친일 ‘국민연극’ 주도한 근대연극사의 거두 (박영정)”, 《친일파 99인 (3)》. 서울: 돌베개. ISBN 8971990139.
[편집] 주석
극예술연구회 창립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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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 | 유치진 | 이헌구 | 서항석 | 윤백남 | 이하윤 | 장기제 | 정인섭 | 조희순 | 최정우 | 함대훈 | 홍해성 |
구인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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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 김기림 | 이효석 | 이종명 | 김유영 | 유치진 | 조용만 | 이태준 | 정지용 | 이무영 |
대체회원: 박태원 | 이상 | 박팔양 | 김유정 | 김환태 |
분류: 1905년 태어남 | 1974년 죽음 | 한국의 연극인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 경상남도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