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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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그랜트
미국 제18대 대통령
재임 기간 1869년 3월 4일 -
1877년 3월 3일
전임 대통령 앤드루 존슨
후임 대통령 러더퍼드 B. 헤이스
태어난 곳 오하이오 주
사망한 곳 뉴욕 주
소속 정당 공화당 (미국)
미국의 역대 대통령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1822년 4월 27일 - 1885년 7월 23일)는 미국의 제 18대(1869년-1877년) 대통령이다.

목차

[편집] 생애

오하이오 주에서 가죽 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하이럼 율리시스'(Hiram Ulysses)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육군사관학교 입학 후, 율리시스 심슨으로 개명하였다. 1843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였으며, 1846년에는 멕시코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성격이 내성적이던 그랜트는 결혼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알콜중독증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하여 1854년에 불명예 퇴직당하였다.

1861년남북 전쟁이 시작되자, 그랜트는 다시 준장으로 군에 복귀, 남부군이 차지하고 있던 헨리요새와 도넬슨요새를 점령하였다. 여기서 그랜트는 적에게 무조건 항복과 전투 중에 선택하라고 하여 별명이 'Unconditional Surrender' 즉, 무조건 항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빅스버그 전투에서도 큰 전과를 세우자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그랜트를 북부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그랜트는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사기가 꺾인 남부군을 몰아붙였으며, 그리하여 1865년에 애포매톡스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링컨 암살 후, 앤드루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그랜트는 국가군통수 대원수 겸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존슨은 의회의 탄핵을 받았고 그랜트는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눈길을 끌어 1868년 선거에서 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랜트는 대통령이 되자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등 극심한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정부 각료들과 그의 비서들이 공공연히 뇌물을 주고받는 사태와 대규모 금융 스캔들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전쟁영웅인 그의 이미지는 완전히 추락하였으나, 1872년의 선거에서 재선되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할 정도였다. 백악관을 떠난 뒤에는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주어서 파산을 당하여 회고록까지 내었다.

1885년 7월 23일 후두암으로 63세의 생애를 마쳤다.

[편집] 업적

남북 전쟁의 영웅이었으나, 정치가가 되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그다지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는 너무 착해 모든 사람들을 믿었고, 자연히 부패도 많아졌다. 윗물이 맑지만 아랫물은 맑지 못한 것이다. 훌륭한 장군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또하나의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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