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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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창(라틴어: Sainte Lance, 독일어: Heilige Lanze, 영어: Holy Lance)은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전해지는 창이다. 예수의 피가 묻었다고 여겨지는 성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신약성서의 요한 복음서 19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가현설 논란에 대해 예수가 죽었음을 확실히 명시하기 위한 강조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중에 롱기누스 신앙과 결합되어 롱기누스의 창(라틴어: lance de Longin, 독일어: Longinuslanze, 영어: Lance of Longinus)이라고도 불리게 된다.

목차

[편집] 롱기누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한 병사가 예수를 창으로 찔렀는데 예수의 피가 묻은 그 창이 성창이다. 그리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병사의 이름이 롱기누스라고 하는데, 그래서 성창을 롱기누스의 창이라고도 한다.

[편집] 아서 왕 전설

아서 왕 이야기에서 아서 왕은 대마법사 멀린의 유언에 따라 모든 원탁의 기사들에게 성배와 성창을 찾으라 명했다. 그러나 성배와 성창을 찾은 기사는 퍼시발, 보호드, 개러해드 세 명뿐이었고 이것은 완벽한 도덕자만이 찾을수 있다는 성배와 성창을 모든 기사들이 찾지 못했으므로 원탁의 기사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그뒤 원탁은 사분오열되어, 란슬러트가 아서 왕의 아내 기네비어와 바람이 나서 도주, 기사들은 아서 왕 파와 란슬러트 파로 나뉘어 싸우다가 베디비어 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고 만다.

[편집] 십자군

1차 십자군의 안티오키아 공격 당시 은자 피에르는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 전투에서 십자군은 승리했지만 결국 피에르는 성창의 진위 여부때문에 시죄법 재판을 받고, 죽었다. 이로 인해 피에르와 성창을 옹호하던 레몽이 십자군 내부에서 약해지고, 보에몽의 입김이 세지게 된다.

헌데 중요한 것은 성창의 발견자에 대한 설이 여럿이라는 것이다. 위의, 은자 피에르가 발견했다는 설은 안나 콤네나공주의 기록이고, 또다른 기록으로는

  • 은자 피에르와 동명이인인 피에르 바톨로메오가 있었다는 기록
  • 보에몽 밑의 어느 꾀바른 부하의 자작극이라는 기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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