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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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탕스 외제니 세실 드 보아르네(프랑스어: Hortense Eugénie Cécile de Beauharnais, 1783년 4월 10일 - 1837년 10월 5일)는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딸로,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이다. 나폴레옹 3세의 어머니이며, 오빠는 외젠 드 보아르네이다.
오르탕스는 부모와 오빠와 함께 마르티니크 섬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 자작의 거듭되는 바람기 등이 문제 되어 어머니 조제핀과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에 1783년 두 사람은 이혼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1794년 4월에 알렉상드르는 붙잡혀 카룸 감옥에 투옥된 후, 7월 23일에 처형당하고 만다. 조제핀도 그가 투옥당한 지 1개월 후에 붙잡혀 역시 투옥되어 버렸다. 그러나, 알렉상드르가 처형된 날부터 4일이 지나자,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여 처형되었다. 혁명 정부는 붕괴되었고 그와 동시에 공포 정치는 막이 내려 조제핀은 살아남았다.
그 후, 조제핀은 총재정부의 주역이었던 폴 프랑수아 바라스를 비롯한 몇몇 유력 정치인들의 애인이 되었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구애를 받아들여 1796년 3월 9일에 그와 결혼식을 치루었다. 이 날 이후, 오르탕스는 오빠인 외젠과 함께 의붓아버지 나폴레옹과 같이 살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요청에 따라, 오르탕스는 그가 가장 귀여워하고 있던 남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와 1802년 초반에 결혼하였다. 그러나, 루이는 가벼운 반신 마비가 있어 음침한 성격이었고, 오르탕스는 조제핀을 닮아 밝고 사교성이 강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는 나빴다. 의붓아버지 나폴레옹은 1804년 12월 2일에 프랑스 제국의 황제로서 즉위식을 올렸다. 1806년 루이는 네덜란드 국왕에, 오르탕스는 네덜란드 왕비에 봉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윽고 오르탕스는 샤를 드 플라오 백작과 불륜 관계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불행한 결혼을 시켰다는 생각에 빚으로 여겨 묵인한 것 같다. 루이와 오르탕스는 1810년에 이혼했다. 3명의 아들 가운데, 삼남 루이 나폴레옹(훗날의 나폴레옹 3세)은 오르탕스와 같이 살게 되었다. 오르탕스는 이혼한 후부터는 샤를 드 플라오와 동거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1811년에 아들 샤를 오귀스트 루이 조제프(훗날의 모르네 공작)를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1814년에 모후인 조제핀이 사망했다.
1815년 나폴레옹 1세의 백일천하 동안 오르탕스는 테일리 궁전에 나폴레옹보다 한 발 앞서 들어가, 여주인 역할을 맡았다. 그녀의 오빠 외젠은 나폴레옹 1세의 형제 자매들과는 달리 끝까지 의붓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쳤다. 프랑스 제국의 붕괴 이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망명한 후,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아레넨베르크 성을 매입하여 그 곳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1835년, 보나파르트 일족의 결속을 굳힌다는 명목으로 오르탕스와 나폴레옹 1세의 막내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 사이에, 루이 나폴레옹을 제롬의 딸 마틸드 보나파르트를 결혼시키자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 문제는 네 사람 모두 내켜하였다. 그러나, 1836년 10월에 루이 나폴레옹이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제정 부활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파담이 되었다.
오르탕스는 1837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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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een Hortense - A Life Picture of the Napoleonic Era - 1910 book by L. Mühlbach, as an eText from Project Gute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