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엔 후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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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엔 후 창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로 베트남에 대한 반체제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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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베트남에서의 반공 활동
1949년 베트남 빈 딘에서 태어난 우엔씨는 75년 월남 정부가 패망하고 공산화하기 전까지 고국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공산화 직후 특공대를 조직해 공산정권에 대항해 무력 투쟁에 나섬으로써 반체제 활동을 시작했다. 베트남의 체포를 피해 82년 미국으로 탈출한 후에도 반 베트남 정부 활동을 이어갔다.
[편집] 자유민주주의 베트남 정부 결성
우엔씨는 95년 동료 10여명과 함께 베트남 정치질서에 반대하는 조직을 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든 그로브시에서 일종의 망명정부인 ‘자유민주주의 베트남 정부’를 결성했다.
이 조직의 목표는 베트남 지역에 있는 공산정권 타도와 시장경제제도 및 자유선거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베트남 정부에서 2003년까지 국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하는 등 베트남의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 있는 베트남 국민당 당수로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우엔씨를 2000년 5월 호찌민 시 폭탄테러 미수사건과 2001년 6월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 폭탄테러 미수사건 등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해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1순위 ‘반체제 인사’로 분류해 왔다.
[편집] 대한민국과의 관계
우엔씨는 베트남 정부의 수배를 받아오던 중 2006년 4월 사업차 대한민국을 방문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통해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에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구욱서 부장판사)에서는 2006년 7월 27일 우엔 후 창씨에 대한 인도심사 청구사건 심리를 열어 우엔씨는 베트남에서 폭발 테러를 기도하는 등 13건의 범죄를 저질러 베트남과 대한민국 사이에 맺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인도 대상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범죄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우엔씨의 범죄사실 성격과 우엔씨가 속해 있는 망명 정부인 자유민주주의 베트남 정부의 성립 배경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정치적 범죄이므로 인도거절 사유에 해당해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동시에 베트남은 폭탄테러 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음을 들어 유엔 안보리 결의는 구체적인 범죄인 인도 의무를 부과하는 협정이 아니라는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이를 통해 재판부는 우엔씨는 정치범으로 보아 인도 거부 결정을 했다. 이에,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우엔씨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감사하다며 2,3일간 대한민국에 머물다 미국으로 출국했다.
[편집] 바깥 고리
- ((영어)) 우엔 후 창 공식 사이트
전 임 - |
제1대 자유 베트남 정부 총리 1995년 - ? |
후 임 우엔 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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