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라베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욘 라베(John Rabe) 1882년 (11월 23일, – 1950년) 1월 5일)는 난징 대학살시 25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한 독일의 기업가이다.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베는 사업경력을 계속 해서 쌓아왔으며 몇년간 아프리카에서 활동했다. 1908년에 그는 중국에 도착했고, 1910년에는 베이징(나중에 난징)에 있는 지멘스 AG(Siemens AG)의 중국법인에서 활동했다. 난징대학살기간인 1937년 11월 22일 라베는 다른 외국인들과 국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임박해오는 일본의 도살자들로부터 중국인 난민들을 구제하고, 음식과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한 난징안전구역을 설정하였다. 안전구역은 모두 난징주재 외국대사관과 난징대학교에 설치되었다. 라베는 또한 그 자신의 소유지를 650명이 넘는 피난자들이 피신할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뒤따른 학살에 25만명 이상의 양민이 학살당했으며, 라베와 그가 설치한 안전구역내의 행정책임자들은 흉악한 학살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라베는 일본군에게 그의 나치당원증명서를 제시하여 학살을 막아보려는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38년 2월 28일, 라베는 난징을 떠나 상하이를 여행하다가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베를린에서 일본군의 잔학한 학살장면이 담긴 필름과 사진들을 발표하였고, 아돌프 히틀러에게 비인간적인 학살을 멈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 결과는 게슈타포에 의한 감금및 심문이었다. 이후 그는 지멘스 AG의 중재로 석방되었다. 그는 필름을 제외하고, 학살의 증거들을 보존해도 관계없다는 허락을 당국으로부터 받았으나, 그 주제에 대한 강연이나 저술활동은 금지당했다. 라베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전부에 잠시 발령받으면서 지멘스를 위해 계속 일했다. 1945년까지 라베는 동회사의 베를린본부에서 근무했다.

종전후, 라베는 그의 나치당원전력을 고발당하여, 처음에는 소련, 나중에는 미영연합군측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조사를 통하여 그의 무결함과 무죄가 입증되었다. 1946년 6월, 그는 연합군측에 의해 정식으로 탈나치화된 인사가 되었으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난징학살중 그의 선행을 평가한 중국정부로부터 달달이 지급된, 음식과 돈이 담긴 소포를 통하여 일정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1950년, 라베는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1997년 그의 비석은 베를린에서 난징으로 옮겨졌으며, 난징학살기념지에서 영예로운 장소에 안장되었다.

그가 학살기간동안 남긴 일기는 영어로 난징의 선인(The Good Man of Nanking; 독일어명Der gute Deutsche von Nanking)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1]).

[편집] See al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