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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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풍(田豊 ? ~ 200년)은 자는 원호(元皓)이고, 거록(鉅鹿)이나 발해(勃海)사람으로 삼국시대 원소의 참모였다.
[편집] 생애
전풍은 성장하면서 준걸로써, 웅대한 계략은 다수의 눈을 집중시켰다. 젊을적에 아버지를 잃었으나 상복중에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얼마정도의 세월이 지나도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웃지 않았다. 박학다식하여 주의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처음 태위의 처소에 초빙되어 무재로 추천되어 시어사로 승진했다. 환관이 조정에서 득세하는것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풍은 심배와 더불어 기주목 한복을 섬겼는데, 두사람은 정직했기 때문에 한복에게 소외되었다. 원소는 주목의 지위을 얻자 좋은말로 전풍을 초빙했다. 전풍은 왕실이 곤란에 처했고, 난세을 구제하기 위한 뜻을 갖고 있어 원소의 명을 따랐다. 원소는 전풍을 별가, 심배을 치중에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후에 전풍은 원소의 명령에 의해 한복의 종사였던 경무와 관순을 살해했다.
196년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맞이하자 원소는 헌제를 견성으로 모셔올것을 조조에게 설득했다. 조조가 이를 거절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데려올것을 건의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조조가 장수를 포위하고 있을때 전풍은 다시 한번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맞이할 것을 원했지만 원소군 휘하의 병사가 이 계획을 조조에게 전했기에 조조는 포위망을 풀고 황급히 돌아왔다.
199년 공손찬을 멸망시켰는데, 이때 전풍의 책략이 쓰였다고 한다. 원소는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는데, 심배, 봉기에게 군사를 통괄하게 하고, 전풍, 순심, 허유을 참모장으로 안량, 문주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공융은 조조에게 [전풍, 허유란 지혜로운 자가 참모가 되었으니 승리하기가 어렵겠습니다]라고 걱정하자 순욱은 [전풍은 강직한 인물로 필히 윗사람을 거슬릴 것입니다.]라고 평했다.
200년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하고 패성을 점령하고 조조를 배신하자 조조는 유비를 직접 치기 위해 출정했다. 전풍은 이 호기를 보고 원소를 설득해 조조의 뒤를 치려고 했지만 원소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전풍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아아! 이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평생 찾아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겨우 어린아이 병때문에 놓치다니 애석하구나] 라고 말했다. 이 말을 원소가 듣고 분노하여 이후 둘사이는 소원해지게 되었다.
원소가 조조를 치려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조조가 매우 뛰어난 인물로 오히려 지구전을 펼쳐 그를 지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가 원소의 비유를 거슬려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원소의 참모 봉기는 전풍의 정직함을 싫어해 여러차례 원소에게 전풍에 대한 참언을 일삼았는데, 이 때문에 원소는 전풍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전풍이 종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는 [원소는 이미 진것이나 다름없구나]라고 기뻐했다.
원소군은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오자 장군들은 모두 울면서 [이전에 전풍을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을 것이야..]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전풍에게 [주공은 이젠 그대를 중용하실거네]라고 말했으나 전풍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께서는 외견은 관용이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은 분이네. 만약 승리햇다면 기쁨마음에 나를 사면하시겠지만 이렇게 패배했으니 나는 더이상 살 희망은 버려야 할것이야]라고 했다.
그때 원소는 [기주사람들은 모두 내가 패배한 소식을 듣자 모두 나를 걱정하였소. 다만 전풍만은 나를 꾸짖었기에 다른이와는 다르오. 나는 이제 전풍의 얼굴을 부끄러워서 볼수가 업소]라고 말했다. 봉기는 [전풍은 공이 패한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적중한것에 기뻐한다고 합니다.]라고 참언을 했다. 원소는 이말을 듣고 분노하여 전풍을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