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박지성 | ||
개인 정보 | ||
---|---|---|
출생일 | 1981년 2월 25일 | |
출생지 | ![]() |
|
키 | 175cm | |
포지션 | 윙포워드,공격형 미드필더 | |
클럽 정보 | ||
현 소속팀 | ![]() |
|
등번호 | 13 | |
클럽1 | ||
연도 | 클럽 | 출장수(골) |
2000-2003 2003-2005 2005- |
교토 퍼플 상가 PSV 아인트호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76(11) 64(13) 48(6) |
국가대표팀2 | ||
2000- | ![]() |
67(6) |
1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만 카운트되고, |
박지성(朴智星, 1981년 2월 25일~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국가 대표를 지냈으며, 일본 J 리그의 교토 퍼플 상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PSV 에인트호벤을 거쳐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종교는 불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2005년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PSV 에인트호벤 소속으로 참가하여 AC 밀란과의 4강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득점을 기록했다.
2005년 6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Sir Alex Ferguson) 감독에 의해 발탁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등번호는 13번이며 팀이 06-07 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목차 |
[편집] 선수 경력
- 수원공업고등학교
- 명지대학교 (1999년 입학, 중퇴)
- 교토 퍼플 상가 (2000년 - 2003년)
- PSV 에인트호벤 (2002/2003년 - 2004/2005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2006년 - 현재)
[편집] 수원공업고등학교
박지성은 수원 세류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6학년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서는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보양식을 챙겨먹였을 정도였고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까봐 수원공고 이원종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정도였다고 한다.[1]
[편집] 명지대학교
왜소한 체격 탓에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박지성은 이원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박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로 진학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편집] 교토 퍼플 상가
왜소한 체격 탓에 국내 프로팀의 눈에 들지 못한 박지성은 일본 J 리그로 눈을 돌려 2000년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박지성은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탈락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천황배(天皇盃)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 교토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박지성은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일본을 떠나 거스 히딩크를 따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로 이적했다.
[편집] PSV 에인트호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으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했다.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매우 부진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때문에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는 정도에 이르렀고,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팀 동료 마크 반 봄멜도 박지성의 부진한 플레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상치료후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에이스로 군림했던 윙어 로번과 롬메달, 골게터 케즈만까지 프리미어리그로 떠난 04-05시즌에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에 뒤진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가 리그 우승을 거머쥐는데 핵심선수로서 활약했는데, 이는 여러가지 증언들로 묘사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당시 반 봄멜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했던 인터뷰, 04-05 챔피언스 리그 4강 AC밀란과의 1차전 패배 이후 실날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에 대한 평가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에서 일 것'이라는 요한 크라이프의 발언, AC밀란과의 2차전이 끝난 이후 박지성을 마크했던 밀란 선수인 가투소가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던 에세이, 리그 우승 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팀을 위해서는 박지성을 잡아야 한다고 했던 코쿠의 발언 등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겠지만,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팬들의 야유가 '위숭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많은이들은 박지성이 후보선수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유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고 있으며, 2006년 9월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블랙번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미국 콜로라도에서 수술을 받았고, 현재(2007년 6월), 재활중이다. 복귀 예정일은 2008년 1월로 예상되며 복귀 후 나니와의 경쟁이 불가피 해 보인다.
[편집] 국가대표 경력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 2002년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06년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편집] 대외 활동
- 청소년위원회 홍보대사 (2005년 11월)
[편집] 출처
[편집] 관련 항목
[편집] 바깥 고리
- ((영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 페이지
- ((영어)) PSV 아인트호벤 박지성 페이지
- ((영어)) Asian eyes turn to Europe, 2005-09-22 (FIFAworldcup.com)
- ((일본어)) 한국 대표 박지성의 궤적(쿄토 신문)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2년 축구 월드컵 | ![]() |
---|---|---|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 7 김태영 | 8 최태욱 | |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6년 FIFA 월드컵 | ![]() |
---|---|---|
1 이운재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