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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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일본어: おしん)[1]일본의 방송작가인 하시다 스가코(일본어: 橋田壽賀子)가 쓴 역사소설이다. 1983년 4월 4일부터 1984년 3월 31일까지 방송된 NHK역사드라마 대본을 원본으로 한다. 체인 수퍼마켓의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오싱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80년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한국어판은 청조사에서 1984년 6권으로 출판하였으며, 2006년 기존판의 표지를 바꾸고 내용을 일부 편집한 3권의 개정판이 재출간되었다. 또한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군국주의나 매춘처럼 어린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을 각색한 만화동화로도 제작하였다.[2] 소설드라마의 모델은 야오한 백화점의 창시자인 가즈오 와다의 어머니이다.

목차

[편집] 줄거리

[편집] 더부살이편

1983년 일본 이새(일본어: 伊勢). 체인 수퍼마켓 다노쿠라 상점의 설립자이자 부사장인 오싱할머니가 가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어머니를 섭섭하게 해드린 것은 없는지 걱정하면서도 "내탓이오"가 아닌 "당신 탓이오"하면서 서로 대립한다. 이때 두살때 오싱이 데려다가 키운 양자인 노소미(일본어: 八代希望)의 아들 게이는 할머니의 추억이 담겨 있는 산촌 야마가타의 긴상온천을 찾아가고, 예상대로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게이(일본어: 八代圭)는 그동안 사업을 하느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줍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에 감동, 추억여행에 동참한다.

1901년 야마가타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오싱은 불과 7살때인 1908년 제재소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을 아끼기 위해서 채썬 을 지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형편때문에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했던 것이다.하지만, 주인어른의 을 가져간 도둑으로 몰려서 손찌검당하자 이에 서러움을 느껴서 제재소를 뛰쳐나온다. 눈밭을 걸어가던 오싱은 쓰러지고 이를 발견한 탈영병 쥰사쿠의 구조를 받아 겨우 목숨을 건진다.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쥰사쿠(일본어: 俊作) 오빠는 전쟁의 잔인성에 회의를 느껴서 탈영한 평화주의자였고, 오싱은 그에게 글을 배우면서 반전주의자로 성장한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쥰사쿠가 헌병들에게 사살당하면서 깨지고, 오싱은 평화주의자를 비겁한 자로 여기는 마을사람들의 극우성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더 힘든 일은 몸이 불편해서 일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 나카(일본어: 谷村なか)를 빼고 모두 일을 하는데도 집안이 점점 더 기운다는 것이었다. 결국, 엄마 후지(일본어: ふじ)가 흔히 말하는 술집여자로 긴상온천에 일하러 가는 일이 벌어지자 오싱은 동네 아주머니 리키의 소개로 해안도시 사카다의 쌀도매상 가가야(일본어: 加賀屋)의 애보기로 일을 시작한다. 이때 오싱은 거대한 창고에 각 지역 지주들에게 산 들을 쌓아놓을 정도로 부유한 가가야의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아서 하는 성실함으로 적응해간다.그리고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가가야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상업에 눈이 뜨게 된다.

[편집] 첫사랑 편

더부살이 기간은 오싱에게 있어서 유년시절중 몇 안되는 행복한 기간이었다. 우연히 사고를 당할뻔한 가요를 구해준 사건덕분에 집안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은 마님인 미노(일본어: みの)와 주인어른 기치지로(일본어: 清太郎)는 성실하고 영리한 오싱을 친딸처럼 대하고, 큰방마님이자 멘토인 구니(일본어: )는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면,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는 신념에 따라 가요와 오싱에게 붓글씨, 주산,회계,요리,꽃꽂이,다도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이때 큰방마님에게 배운 지식들과 상업에 대한 안목은 오싱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때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상전이자 동갑인 가요 아가씨와의 평생에 걸친 순수한 우정은 외롭게 자란 오싱에게 큰 위로가 되었는데, 이들의 관계는 16세가 되던 해에 사카다 해안가에서 고우타(일본어: 高倉浩太)라는 사회주의 지식인을 만나면서 잠시 삐걱거린다. 소작인의 편에서 사회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쫓기던 농민운동가 고우타를 해안가에서 만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모두 첫사랑을 느낀 것이다. 이들의 첫사랑은 오싱 자신이 손자 게이에게 "가요아가씨와의 만남이 나에게 좋은 일이었는지, 불행한 일이었는지..."라면서 말을 흐릴 정도로 오싱과 가요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결국 해안가에서 몰래 만나자는 편지를 읽게 된 가요가 오싱 대신 나가서 고우타와 도쿄로 가는 일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이 발칵 뒤집히자 마음의 부담을 느낀 오싱은 가가야 일을 그만두고 집에 온다.

집에 돌아온 오싱은 일본 산업혁명기 당시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악명높던 사업체중 하나였던 제사공장[3]에서 혹사당하다가 불과 19세에 산업재해 보상도 못 받고 폐결핵으로 죽은 하루 언니를 대신,도쿄의 다카 미용실에서 일본 전통미용을 월급없이 집안일을 해주며 배우는 도제식수업을 받는다. 미용원장인 다카(일본어: 長谷川)는 제자의 재능과 성실함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일본 전통미용이 서양미용에 밀려 쇠퇴하고 있던 터라, 오싱에게 신기술인 서양미용을 가르친다. 덕분에 오싱은 까페여급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출장 미용사로 독립한다.

[편집] 시집살이 편

출장 미용사로 활약하던 오싱은 자신에게 가가야 쌀도매점 후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부모님의 억압에서 도피,여급으로 일하는 가요(일본어: 八代加代)와 후에 그의 남편이 되는 양복점 사장 다노쿠라 류조(일본어: 田倉竜三)를 만난다. 오싱의 설득으로 가요는 집에 돌아간 후, 아들이 없으면 데릴사위를 두어서 가문의 대를 잇는 일본의 전통문화에 따른 어른들의 강요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마사오와 결혼하고, 오싱도 순수한 다노쿠라와 사찰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한 오싱은 남편을 어려서부터 보살펴온 갱 할아범의 도움[4]과 상인으로서의 안목과 재능[5]그리고 열정[6]으로 남편의 아동복 사업을 돕는다. 덕분에 사업은 빚을 내서 아동복 공장을 지을 정도로 번창했지만,1923년 9월 간토 대지진의 발생으로 몰락하고 만다. 그것도 다카 원장과 미용사 시절 단골손님이었던 카페 여급친구들을 초대한 공장개업식날,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부랴부랴 집에 돌아오니 갱 할아범은 그해 태어난 아들 다노쿠라 유(일본어: 田倉雄)를 안은채 시체로 발견되고, 집은 잿더미가 되었다.

결국 빈털털이가 되어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사가로 쫓겨온 오싱은 자신을 여종취급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하게 고생, 임신하고 있던 딸을 유산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남편도 그녀에게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혹독한 시어머니의 학대를 피해서 달아나려다가 발각된 아내를 구타,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편집] 유랑 편

시댁에 계속 있으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음을 느낀 그녀는 아들 유를 데리고 가출한다. 집을 나온 오싱은 사카다에서 밥집장사를 하지만, 거친 뱃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고단한 모습을 본 고우타의 배려로 어촌이자 제2의 고향이 되는 이새의 히사(일본어: 神山) 아주머니댁에서 생선장수를 시작한다. 도매상인 히사 아주머니에게 생선을 사서 장사를 시작한 오싱은 상술과 성실함으로 마을사람들의 신용을 얻는다. 하지만 더 큰 기쁨은 간척사업이 천재지변으로 실패한 남편과 다시 새 출발을 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생선장사에 동참했고, 오싱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생선가게를 열자 열심히 생선장사를 한다. 오싱은 한때 도쿄의 멋쟁이였던 남편이 장사를 배워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든든함과 행복을 느낀다.

[편집] 통곡 편

하지만 슬픈 일들이 그녀의 행복을 질시하고 있었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의 악영향으로 인한 극심한 불경기와 남편이 투자한 주식의 폭락으로 가게가 망한후 매춘부로 전락, 고생을 하다가 병으로 죽은 가요의 아들 노소미를 입양했고,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큰아들 유가 필리핀에서 전사한 사건, 이에 상처받은 수양딸 하스코(일본어: 田倉初子)가 가출하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슬픔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애국주의에 근거, 가담한 잘못에 죄책감을 느낀 남편의 자살이었다. 그녀는 꿋꿋히 슬픔을 참으면서 작은 아들 히토시, 수양딸 하스코 그리고 딸 데이와 함께 식료품가게를 꾸려나가 여러 지점들을 둘 정도가 된다. 죽은 큰 아들 유를 대신해서 장남역할을 성실하게 해오던 히토시(일본어: 田倉仁)도 부자집딸 미치코와 결혼한다. 오싱은 속없고 예의도 없는 철부지 아가씨 미치코가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지만, 아들이 원하니까 결혼을 허락한다. 이때가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경제가 안정된 정치를 발판으로 성장한 1950년대였다. 하지만 오싱의 우려대로 미치코는 가출까지 할 정도로 시어머니의 속을 썩힌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아들 노소미와 딸 하스코가 도공과 수예품가게주인의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편집] 완결편

에 눈이 어두운 그래서 명의를 도용해가면서까지 땅을 사들인 아들 히토시.. 결국 16호점을 개점하는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회사는 망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오싱은 물질숭배자인 아들이 정신차리기를 바라면서 부도당하도록 놔둔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때는 애인이었지만 지금은 친구인 고우타[7]에게 말해서 도울 수 있었지만, 아들을 위해서 일부러 돕지 않은 것이다. 한가지 다행은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처음에는 이혼등으로 피하려고만 했던 가족들이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작은 집에 가서 살 생각을 할 만큼 의연하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한때의 애인이자 친구인 고우타의 친구가 무리하게 개업한 가게를 인수하면서 재기할 수 있게 된다.

[편집] 평가

  •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키운 기성세대들의 삶을 다루었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 수 있다.

[편집] 주석

  1. 오싱은 별다른 의미없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표기된다.단, 오싱이 결혼하기전의 성인 다니무라는 谷村로 표기된다.
  2. 청조사에서 출판한 동화《어린이를 위한 오싱》에서는 오싱의 친구이자 옛 상전인 가요가 매춘부로 혹사당하다가 급사하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으며, 오싱이 가요의 장례를 치른뒤 아들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도 가요가 고아원에 맡긴 노소미를 데려오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3. 제사공장은 실을 짓는 공장을 말한다. 공장안의 습기가 높은데다가 보균자를 격리시키지 않아 폐결핵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또한 대부분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소작인의 딸이었는데, 이들의 부모들이 지주에게서 진 빛을 갚기 위해서 선불로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동의 자유조차도 없었다. 물론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일본 사회주의 운동이 성장하는 거름이 되었다. 소설속에서도 오싱의 언니 하루는 제사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폐결핵에 걸려서 죽는데, 죽기직전 동생에게 다카미용실의 주소를 알려준다.오싱은 이 주소를 간직하고 있다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도쿄에 무작정 가서 다카의 제자가 된다.
  4. 갱 할아범은 출신이 비천한 오싱을 처음에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만, 오싱의 착한 마음씨와 요리, 다도, 주산, 회계 모두 수준급일 정도로 다재다능함에 감탄하여 아씨라고 부르면서 존경한다. 그리고 아동복 가게가 개업하자 가게일을 봐주면서 사업을 돕는다.
  5. 오싱은 양복점영업 시절, 남편의 거래처가 무리한 사업확장과 세계경제대공황으로 부도나자, 과감하게 거래처에 가서 납품한 양복원단을 갖고와서 시장에서 장사하여 손해를 최소화하는 지혜를 보인다.
  6. 오싱과 다노쿠라의 아동복가게는 우연히 오싱이 만든 옷을 본 미노미야 백화점 머천다이저들의 거래제안으로 미노미야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재봉사들을 고용할 정도로 번창한다. 그런데 재봉사중 한 사람이 감기로 일을 할 수 없자, 오싱은 그 재봉사 아가씨를 대신해서 재봉틀을 돌려 납품에 지장이 없게 하였다.
  7. 고우타는 사상전향을 한뒤 이름을 나미키(일본어: 並木浩太)로 바꾸었기 때문에, 다노쿠라 수퍼 관계자들은 고우타를 나미키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