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코 황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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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 황태자비(일본어: 雅子皇太子妃, 1963년 12월 9일 ~ )는 일본의 현 황태자비로 혼전(婚前) 이름은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이다. 나루히토(徳仁) 황태자의 비(妃)로 그와 결혼하여 일본 황실의 일원이 되었다. 일본 적십자사의 명예 부총재이다.

1963년, 외교관 (현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 오와다 히사시의 장녀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쌍동이 여동생이 있는데 세쓰코와 레이코이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부임처인 해외에서 보낸 귀국자녀이다. 2살 때 그녀의 부모를 따라 러시아 모스크바에 갔다. 모스크바의 유치원에 다녔다. 귀국 후에는 토쿄에 있는 사립 여학교인 데네초후 후타바를 초등학교부터 고교 2학년까지 다녔다. 그후 그녀의 아버지가 하바드대학의 교환교수와 재미 일본 부대사가 되어 가족 모두 미국으로 갔다. 보스톤에서 가까운 메사추세츠 주 벨몬트에 있는 벨몬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에서 미국 고등학생들 중 지도적 학생들의 모임인 National Honor Society 의 회장을 하였다.

1985년, 하버드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국제관계 대학원 과정에 다녔으나 끝내지는 못했다. 귀국해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재직하던 도쿄대 법학부에 학사 입학하여 잠시 다녔으나 외무 공무원 고시에 합격하여 1987년 중퇴하고 외무성에 입성했다. 이곳에서 부장관까지 지냈던 아버지와 함께 일하였다.

[편집] 결혼

마사코는 도쿄대학에 다니던 1986년 11월 황태자를 처음 만났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는 그녀의 아버지가 황실 사람들을 수행할 때인 그 전에 두사람이 만났다고 했다. 1987년에는 두사람이 같이 있는 것이 여러번 목격되었다.

마사코의 이름은 황실 신부 후보 명단에서 사라졌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치소사의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치소는 미나마타병 추문을 일으킨 회사이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둘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황태자는 그녀가 마침내 동의할 때까지 몇번이나 프로포즈를 하였다. 1993년 1월 19일 황실이 두사람의 약혼을 발표했다. 이 뉴스는 일본대중에게 놀랄만한 일이었다. 둘이 오래전에 끝난줄 알았기 때문이다.

1990년,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는 알고 지내던 황태자 나루히토와 정식으로 교제하기 시작하여 1993년 6월 9일, 전통 방식으로 결혼식을 하고 황태자비가 되었다. 2001년, 어렵사리 딸 도시노미야(敬宮) 아이코(愛子) 내친왕을 낳았다. 그러나 남자에게만 계승권을 부여하는 일본 황실에서 아이코 출산 이후 남편을 이을 아들을 낳지 못했고, 이와 관련해 궁내청의 공공연한 압력을 받는 등 보수적인 황실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은 끝에 육체적, 정신적인 병을 얻어 장기간 정양에 있기도 하였다.

[편집] 가족과 후손

2001년 12월 1일 아이코 내친왕(공식명칭 도시노미야, 또는 아이코 공주)가 태어났다.

아이코 내친왕의 출생은 황태자부부의 결혼 8년도 더 지나서 일어난 일이었고, 1947년에 제정된 황실전범의 개정논쟁을 일으켰다. 황남 자손으로 규정된 황위의 계승 규정을, 여성도 황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2006년 1월 20일, 내각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연례연설을 통해 여성도 황위에 오를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미래에도 황위가 안정되게 계승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이즈미는 입법의 시기나 입법 내용의 자세한 사항을 밝히지는 않았다. 단지 2005년 각의의 결론에 따라서라고만 언급했다.

황태자비에게는 외교관으로서의 활동보다는 후사를 생산해야된다는 거대한 압력이 가해져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추측된다. 황태자는 주변 환경이 그녀에게 가하는 압력, 무례함과 그의 아내가 외교관으로서 살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으나, 곧 철회하였다.

2006년 9월 6일, 황태자의 동생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와 기코 친왕비 사이에 히사히토(悠仁) 친왕이 태어나면서, 남성 후계자 부재로 잠시 고개를 들었던 여성 군주 용인에 대한 움직임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편집] 기타

한국의 소설가 김진명이 마사코를 주인공으로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