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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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金升淵, 1952년 2월 7일 ~ )은 한화 그룹의 회장이다.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1]. 1974년 멘로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드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1981년 부친의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하여, 한화 그룹의 규모를 수십 배로 키워냈다. 1996년서강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회장으로서는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되었다. [1]

목차

[편집] 가족 관계

국회의원 서정화의 장녀 서울대학교 약대출신의 서영민과 1982년에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 김동관(1983년생)은 하버드 대학교을 졸업 공군사관후보생 117기 통역장교로 선발되어 복무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동원은 예일대학교에서 동아시아 학과에 재학중이다. 셋째 아들 동선은 미국 터프트 스쿨에 제학중이며 승마 선수로, 2006년 아시안 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둘째 아들 동원이 2007년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여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남동생의 장인은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 씨다.

[편집] 보복 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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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대략적 개관

2007년 3월 8일 새벽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씨가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하여 김씨가 눈에 부상을 입었다. 3월 8일 오후 김승연은 경호원 17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아들과 몸싸움을 벌인 술집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보복성 집단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3월 8일 밤 김승연씨와 아들 김씨, 경호원들은 김씨와 다투었던 종업원들이 일하는 술집으로 재차 찾아와 다시 폭행을 가하였다. 이와 같은 폭행은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3월 9일 인근 주민이 신고를 하였으나, 술집 종업원들이 "우리끼리 다투었다"라고 하여 출동한 경찰이 철수하였다. 다음날 경찰은 사건 경위에 대해 조사하였지만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다. 그러나 4월 24일 일부 언론에 재벌 아들의 폭행 사건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2]

경찰은 4월 28일자로 정식 수사에 착수했으나, 김승연이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김승연의 아들이 출국 중이어서 수사가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김씨의 출국은 도피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만일 김승연 회장의 폭력 행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대한민국 형법 '상해 혐의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편집] 엇갈리는 주장들

술집 종업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청계산의 한 창고로 끌고가 수십분간 비인간적인 폭행을 가했으며, 술집 사장의 따귀를 때리고 쇠파이프, 몽둥이, 심지어는 총으로 보이는 물건까지 들고와 비윤리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김승연회장이 경호원이라 주장하는 인물들은 경호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경찰에 알리면 죽게될 것이라고 협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김승연회장 측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청계산으로 끌고 갔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비인간적인 폭행이 아닌 훈계조로 머리를 쥐어 박은적만이 있을뿐이다. 또한 흉기는 없었으며, 회사 경호원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후에 김회장은 검찰에서는 주먹으로 폭행하였지만 흉기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법원에서는 일부 흉기를 이용한 폭행은 있었다는 등 진술을 번복했다.

[편집] 김승연과 한화그룹의 입장 표명

2007년 4월 27일,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승연 회장은 여론과 수사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사건에 대하여 입장을 밝혔다.[3]

"개인적인 일로 물의를 일으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지금 제기되는 사안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리라 생각하며, 수사에 적극 헙조하겠다."

한편, 한화그룹의 한 직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4]

"대한생명 인수를 계기로 '신뢰, 준경, 혁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기업 로고를 발표하는 등 회사 이미지 개선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큰 타격을 받을 것 같다"

2007년 월 5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처음으로 임원진들에게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따르기보다 남자로서 사과를 받게 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 무척 후회스럽다. 둘째가 피투성이가 돼 집에 들어왔는데 자초지종을 듣고 격정을 억누르지 못했으며, 아들 말대로 경찰에 고소하고 사법처리에 맡겼으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같다. 또, 29세에 그룹 회장이 된 이래 지금이 제일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편집] 정치권, 법조계 입장

한나라당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27일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강조하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복성 폭력인 만큼 사회정의 확립 차원에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또한,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재벌총수가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세상이 돼서는 안되며, 당국은 그런 분일수록 진상을 밝혀 다시는 국민 앞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도 경찰의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자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 각종 의혹을 둘러싼 객관적 사실을 확인키로 한다고 밝혔다.

[편집] 구속

2007년 5월 12일 남대문 경찰서에 구속되었다.

[편집] 공판

2007년 7월 2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5] 1심 법원은 범행의 발단 및 합의 등 유리한 정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나 재력 및 조직을 내세워 사적 보복을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행위라는 점을 중시하고 이를 위반한 피고인들의 범행에 대하여 법질서 위반의 정도를 높게 평가하여[6] 피해자와 합의한 폭행사건임에도 중형을 선고하였다. 김승연 회장은 이에 대해 항소하였고, 2심 법원은 김 회장에 대해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3년, 사회봉사 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7]

[편집] 각주

  1. '보복 폭행'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구속, 뉴시스, 2007년 5월 12일
  2. 한겨레 2007년 4월 27일자 기사
  3. 중앙일보 2007년 4월 28일자 기사
  4. 중앙일보 2007년 4월 28일자 기사
  5. `보복폭행' 김승연 회장, 징역 1년6월 실형, 연합뉴스, 2007년 7월 2일
  6. 서울 중앙지방법원, 우리법원 주요판결, 2007년 7월 2일
  7. 김승연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선고, 머니투데이, 2007년 9월 11일

[편집]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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