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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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종류 공개 회사
창립 1977년
위치 미국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핵심 인물 스티브 잡스 - 최고경영자, 공동 설립자
스티브 워즈니악 - 공동 설립자
조나단 아이브 - 산업 디자인 담당 부사장
산업 컴퓨터 하드웨어,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품 매킨토시, 맥 오에스 텐, 아이팟
종업원 정식: 17,787명, 임시: 2,399명 (2006년 9월 기준)
웹사이트 애플 코리아

애플(영어: Apple Inc. 나스닥: AAPL, LSE: ACP)은 스티브 잡스스티브 워즈니악1977년에 설립한 컴퓨터 회사이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I(Apple II)를 출시하였고, 매킨토시(Macintosh)로 마우스를 이용한 컴퓨터 조작과 같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보급을 선도하였다. 현재 개인용 컴퓨터인 매킨토시, 휴대용 MP3 플레이어아이팟(iPod), 가정용 멀티미디어 기기인 애플 TV(Apple TV) 등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팟에서 재생할 수 있는 음원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unes Music Store)와 맥 오에스(Mac OS)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인터넷 서비스인 닷맥(.mac)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Cupertino)에 소재하고 있고, 영국, 일본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공동 창업자이면서 1997년부터 애플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스티브 잡스이다.

목차

[편집] 회사의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애플사의 역사입니다.

[편집] 1970년대

Apple I
Apple I

애플은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에 의해 1976년 3월 1일에 창립되었다. 1977년 1월 3일에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애플 I 컴퓨터는 요즘처럼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조립해서 완성해야하는 키트 형태로 판매되었다. 사용자는 글자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키보드를 별도로 구매해 연결해야 했고, 화면 출력을 위해서는 별도 구입한 모니터나 RF변환 단자를 통해 TV를 연결해야 했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는 회사 인근의 컴퓨터 전문점이던 바이트샵(The Byte Shop)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최초의 50대의 물량을 500달러에 주문 받았다. 그 후 잡스는 당싱 미국의 유력한 전자 부품 판매 회사인 크래머 일렉트로닉스(Cramer Electronics)로부터도 주문받았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빌리거나 폴크스바겐 버스를 포함한 여러 물건을 팔아 조달한 자금을 기반으로 최초의 거래를 성사시킬수 있었다.

Apple-II
Apple-II

보다 향상된 성능과 키보드 일체형의 개인용 컴퓨터의 완성된 모습을 가진 애플 ][1977년 3월 16일 미 서부 해안 컴퓨터 전시회(West Coast Computer Faire)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코모도어 PET와 TRS-80 같은 다른 경쟁 상품보다 고가였지만 곧 시장을 선도하는 상품이 되었으며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루어 이후 컴퓨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애플 ][는 컬러 그래픽, 오픈 아키텍처가 높은 완성도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초기 모델은 보조 저장 장치로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했지만 이후 디스크 II(Disk II)로 알려진 5.25인치 디스크가 주로 사용되었다.

애플 ][가 성공한 또다른 요인은 바로 소프트웨어였다. 최초의 스프레드쉬트를 만든 프로그래머였던 댄 브릭클린과 밥 프랭크스톤은 개인용 컴퓨터가 업무용 시장에서도 사용될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개발한 비지칼크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은 애플 ][가 업무용 시장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고 그들의 성공에 힘입어 다른 많은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자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애플의 후속으로 II+, IIe, IIc, IIGS가 선보였다.

[편집] 1980년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는 수익성 높은 업무용 시장에서 IBM마이크로소프트 연합으로 인해 경쟁에서 고전함에 따라 1980년 5월 애플 III를 선보이지만 애플 III의 냉각팬 과열 문제로 수천 대의 컴퓨터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등 시장에서의 상황이 계속 악화 되고 개인용 컴퓨터에서의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게 된다. 두 경쟁 진영은 서로 다른 전술을 구사했다. IBM은 중대형 컴퓨터로 쌓아 올린 역사와 전통에 의한 신뢰감을 배경으로 한 IBM PC의 기치 아래 다른 협력사들에게 개방적인 하드웨어를 생산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를 번들로 제공한 16비트 개인용 컴퓨터를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애플사는 애플 ][의 복제품이 많이 제작되어 피해를 봤으며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이전과 반대로 폐쇄적인 하드웨어를 지향하는 정책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한편 80년대 초반 애플은 교육용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린이도 쉽게 다룰수 있는 컴퓨터 언어인 로고(LOGO)와 같은 소프트웨어와 교육용 콘텐츠로 세계의 여러 학교에서 환영 받았다. 이러한 교육 시장으로의 진출은 애플이 캘리포니아 주 소재의 학교마다 하나씩 애플 II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교육 시장에서 애플의 확고한 선점은 가정용 시장에서도 큰 힘이 되었다. 1977년에서 1983년 사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선도하였다.

제프 라스킨과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제록스 PARC에 방문하여 최초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반 컴퓨터인 Alto를 보게 되었다. 제록스는 제록스 PARC에, 애플이 주식을 공개상장하기 전에 1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3일간 애플 기술자들이 제록스 PARC에 접근하는 것을 허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여기서 미래의 컴퓨터에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였던 애플 리사(LISA)에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애플 리사는 1983년 GUI가 적용된 최초의 개인 컴퓨터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리사는 9,995달러에 달하는 높은 가격과 제한적인 소프트웨어 때문에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경영 내분으로 인해 그룹에서 밀려났고 제프 라스킨이 추진하던 보다 저가의 컴퓨터 프로젝트인 매킨토시로 대체되었다.

매킨토시 128k
매킨토시 128k

1984년 애플은 매킨토시를 발표했다. 매킨토시는 슈퍼볼 경기 중계방송에서 방병된 유명한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알려졌다. '1984'로 알려진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150여만 달러를 들인 이 광고는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고 슈퍼 볼 XVIII 기간이던 1984년 1월 22일에 방송되었다. 광고를 통해 애플은 IBM PC가 빅브라더이고 매킨토시는 바로 그 빅 브라더를 타도하는 영웅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매킨토시를 성공으로 이끌게된 실제적인 계기는 훌륭한 인쇄 품질의 레이저라이터와 페이지메이커의 출시였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전자출판의 시대가 열렸다. 레이저라이터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여서 훌륭한 출력 품질을 만들수 있었고 WYSIWYG형 전자 출판 소프트웨어인 페이지메이커는 본격적인 전자 출판용 솔루션이었다. 이후 전자출판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애플의 판매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현재 까지도 쿽익스페레스와 매킨토시를 이용한 솔루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윈도 1.0을 발표한다. 초반에는 그리 위협적인 대상이 못되었지만 이후 1990년대부터는 매킨토시의 저렴한 대안으로서 또한 많은 저변을 확보한 MS-DOS 기반을 통해 시장에서 패권을 쥐게 되었다. 애플은 이에 대하여 지적 재산권 침해의 법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거나 애플이 패소했다. 이후 애플이 맥 오에스 텐 출시하기 전까지 클래식 맥 오에스들은 윈도에 비하여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닥친 애플의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영입한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와의 내분 끝에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내고 최고경영자에 취임한다. 1985년, 친 스컬리 경향을 갖게된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주요 업무를 박탈했다. 잡스는 후에 애플에서 퇴사하고 NeXT Inc.를 창업하게 된다.

[편집] 1990년대 초반의 전성기

1989년 매킨토시 포터블의 실패 이후 애플은 보다 나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제품 전략을 채택했다. 첫번째 휴대 기기는 소니가 제작했는데 소니는 매킨토시 포터블의 사양은 유지하면서 2시간 용량의 좀더 작은 배터리를 채용하고 20MB 하드드라이브를 탑재했으며 9인치 패시브 매트릭스 스크린을 채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워북 100은 1991년에 소개되었다. 파워북은 현대적이고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노트북 컴퓨터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기기로 인해 애플은 데스크탑 뿐만 아니라 랩탑 시장에서도 기술과 디자인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다.

1991년에 애플은 맥 오에스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벌여 시스템 7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속도가 느리고 많은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컬러 인터페이스 기반의 다양하고 강력한 네트워크 호환성등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의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의 경쟁제품인 OS/2나 윈도, 아미가 등에 비해 훨씬 발전된 형태인 시스템 7은 애플이 2001년 후속 운영체제인 맥 오에스 텐를 내놓기 전까지 애플이 발매한 모든 컴퓨터의 기반이 되었다.

파워북을 비롯한 새로운 애플의 제품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애플의 수익 또한 상승했다. 컴퓨터 관련 언론들은 애플의 발표에 대하여 귀를 기울였고, 애플의 유명한, 발전된 기술진이 다음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내놓을지에 대한 공론이 활성화되었다. 애플이 어떤 새로운 것을 선보이면 사람들은 이것을 "새로운 표준"이라고 불렀다.

[편집] 1990년대 중반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사람들은 윈도가 더 저렴하고 보편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운영체제 시장에서의 점유율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특히 업무용 시장에서의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성공과 저렴한 가격의 컴퓨터와 주변기기,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지원 소프트웨어들로 인해 많은 고객들이 '윈텔' 진영으로 돌아섰다. 현재까지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시장 점유율 싸움에서 다시 우위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

이때 또한 애플은 일반 사용자용 전자기기로 눈길을 돌렸다. 이러한 애플의 변화에 대한 예가 바로 일반 사용자를 위한 디지털 카메라 퀵테이크였다. 또한 존 스컬리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던 개인용 휴대형 뉴턴 PDA이었다. 뉴턴은 1993년 소개되었다. 이 기기는 비록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나 팜 파일럿과 포켓피씨와 같은 PDA시장의 발달에 시초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애플은 매킨토시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 등장은 다시금 운영체제에서의 선도력에 도전을 받게 되었다.

1994년 애플은 IBM과 모토로라와 합작하여 새로운 CPU를 개발하여 인텔에 대항하기 위한 AIM 연합을 구축하였다. 그 결과 RISC 구조의 파워피씨를 사용한 파워 매킨토시 라인업이 소개되었다.

[편집] 1990년대 후반

1990년대 후반 애플은 자사의 운영체제의 멀티태스킹 능력과 메모리 점유에 대한 개선을 추진했지만 내린 결론은, 차라리 새로운 운영체제를 채택하여 매킨토시에 맞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결국 애플은 Be의 BeOS, 넥스트의 넥스트스텝,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NT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채택했고 이는 훗날 맥 오에스 텐의 기반이 된다. 이런 결정에 따라 1997년 2월 7일 애플은 넥스트 사와 넥스트스텝 운영체제에 대한 인수를 완료했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왔다. 1997년 7월 9일 CEO인 길 아멜리오는 저조한 실적과 위기상황으로 경영을 몰아간 책임으로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임시 최고경영자의 자격으로 다시 애플의 경영을 맡게 되었고 다시 재정비와 부흥을 이끌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먼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5년간 계약 관계를 유지하며 매킨토시용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발매하고 애플에 대하여 1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매킨토시에 번들로 탑재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는 스크린상으로 밝힌 메시지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향후 매킨토시용으로 발매할 소프트웨어의 로드맵을 밝히고 애플의 성공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스크린을 통해 화상이 나온 후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불필요한 경쟁보다는 애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것을 주장했다.

1997 년 11월 10일 애플은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온라인 스토어를 발표했다. 이 사이트는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같이 가지고 온 웹오브젝트 어플리케이션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 새로운 온라인 직거래 상점은 애플의 새로운 생산 전략에 따라 새롭게 개편되었고 파워피씨 G3을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를 발표했다.

아이맥의 역사
아이맥의 역사

1998년 8월 15일 애플은 초창기 매킨토시 128K의 디자인으로 회귀하여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한 디자인의 새로운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였다. 아이맥을 디자인한 팀은, 훗날 아이팟을 디자인한 조나단 아이브가 이끌고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디자인을 채택하여 디자인적으로 매우 혁신적이었다. 아이맥은 시장에서 대단히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발매 첫달에 만 거의 80만 대가 판매되어 애플 사의 위기로 부터의 회복의 전기가 되었다. 아이맥 덕분에 애플은 1993년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한편 애플은 매크로미디어로부터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파이널 컷 프로를 구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반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아이무비, 전문가를 위한 파이널 컷 프로가 1999년에 출시되었다. 파이널 컷 프로는 현재 가장 성공적인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애플은 Astarte 사의 DVDirector 프로그램을 구매하여 일반용과 전문가용으로 각각 iDVD와 DVD studio Pro를 2001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발표하였다.

[편집] 2000년대 초반

2001년 애플은 차세대 매킨토시용 운영체제인 Mac OS X를 발표했다. 넥스트의 오픈스텝과 BSD 유닉스에 기반해서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다시 재설계한 운영체제이다. 일반 사용자와 전문 사용자 모두를 위해 유닉스의 장점인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높은 보안성을 가지는 한편 매킨토시의 전통적인 사용하기 쉽고 간편한 유저 인터페이스를 결합하였다. 또한 애플은 클래식 OS에서 쉽게 OS X로 이주할 수 있도록 에뮬레이션을 통해 클래식 OS 환경에서 사용하던 어플리케이션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개발자들은 카본 API을 이용하여 기존의 클래식 OS 용 소프트웨어를 맥 오에스 텐에 맞게 재컴파일하여 쉽게 맥 오에스 텐용 소프트웨어를 개발 할 수 있었다.

2001 년 5월, 애플은 애플 스토어라 불리는 직영 매장을 개장하고 소비자와 더욱 더 친밀하게 끔 다가서고자 하였다. 미국의 각 소비 중심지에 세워 졌으며 기존 컴퓨터 상점과는 달리 훌륭한 인테리어에 친절한 안내원, 상품을 직접 작동해 볼수 있는 진열, 교육과 서비스 그리고 판매를 결합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만들어낸 소매점이였다. 이 상점의 건립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점점 떨어지는 애플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소매시장에서 지역 공급망인 딜러와 대형 쇼핑 마트들과의 관계가 않좋아질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였으며 델사와 같은 전화와 인터넷 주문에 점점 더 의존해가는 업계의 트랜드에 반대로 도전한것이였다. 2006년 10월 6일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와 일본 등지에 167개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편집] 휴대용 음악시장으로의 진출

2001 년 9월 23일 애플은 휴대용 음악 재생기인 아이팟(iPod)을 발표했고 11월 10일에 정식 발매했다. 곧이어 온라인 음악 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MS,iTunes Music Store)가 열렸고 아이팟과 연동되는 음악 파일들을 한곡당 99센트에 판매했다. 이 서비스는 정식으로 음반사와의 계약을 통해 합법적인 디지털 음악을 공급하는 시장의 1인자가 되었고 2006년 9월에는 15억 곡 다운로드라는 기록을 세웠다. 아이팟은 액정표시장치,내장 배터리, 대용량 메모리와 터치휠방식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매킨토시와 같은 편리하면서도 간결하게끔 만들고 이를 컴퓨터에 설치한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을 통해 음악과 기타 데이타들을 관리하고 동기화 시키는 제품이다. 애플은 이를 기반으로 점점 사용자 경험을 더욱더 확장하여 컬러 디스플레이를 채용하고 사진및 비디오를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음반회사들과 헐리우드 영화사, 방송사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음반,영화, 텔레비젼 쇼등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또한 팟캐스팅라 불리는 손수제작물(UCC)인 개인 방송들을 쉽게 구독할 수 있는데 대부분 무료이어서 사용자들의 편의를 대폭적으로 향상 시키고 있다.

[편집] 음악 소프트웨어

2002년 애플은 Nothing Real과 그 회사의 디지털 작곡 프로그램인 Shake를 인수했다. 이로 인해 애플의 전문 음악가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었다. 같은 해에 애플은 Emagic를 사들여서 전문가급 음악 제작 프로그램인 Logic으로 발매했다. 한편 일반 사용자용 음악 제작 프로그램인 개러지밴드(Garage Band)를 개발해 발매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2002년 iPhoto가 출시됨에 따라 애플의 전문가용 패키지와 일반사용자용 솔루션인 iLife에 합쳐져서 매킨토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지원에 큰힘이 되었다.

[편집] 2000년대의 매킨토시

최초의 인텔 베이스 맥 컴퓨터, 아이맥
최초의 인텔 베이스 맥 컴퓨터, 아이맥

2000년대에도 매킨토시의 혁신적 개발은 계속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흰색 일반사용자용 아이맥아이북을 출시하고 교육 시장을 겨냥한 일체형 컴퓨터인 eMac을 출시했다. 한편 전문가용 매킨토시 컴퓨터들은 금속 재질의 외장을 사용했다. 2001년 티타늄 파워북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파워맥 G5가, 2004년에는 시네마 디스플레이가 출시되었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2005년 6월 6일 키노트에서 애플이 2006년부터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매킨토시를 만들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2006년 1월 10일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를 장착한 최초의 매킨토시를 선보였다. 이때 선보인 기종은 맥북 프로와 아이맥이었다. 두 컴퓨터 모두 인텔 코어 듀오 칩셋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더 빠른 속도와 향상된 성능을 선보였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미니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미니

2월 이후,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미니를 출시했다. 맥 미니는 코어 듀오 프로세서와 코어 솔로 프로세서(싱글 코어)를 장착하고 미디어 솔루션인 프론트로(DVD, 음악 파일, 동영상 파일, 이미지 파일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다.)를 소개하여 가전시장으로의 진출의도를 내보였다. 2006년 8월 7일 WWDC에서 파워맥을 대체하는 맥 프로,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Xserve를 발표함으로써 애플은 종전에 예고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인텔 CPU기반으로의 이전을 완료했다. 4월 5일에는 애플에서 인텔맥에 윈도 XP 등 다른 운영체제을 설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부트캠프 소프트웨어를 발표하였다. 현재 인텔 프로세서 기반 매킨토시는 공식적으로 맥 오에스 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리눅스를 가상 환경을 거치지 않고 모두 구동할 수 있는 유일한 컴퓨터이다. 차기 Mac OS X인 10.5 버전 코드명 레퍼드(Leopard)에는 부트캠프를 패키지로 기본 포함할 예정이다.

애플의 1998년부터 시작된 성공, 특히 2003년과 2005년 사이의 고속 성장은 엄청난 주가 상승으로 증명된다. 2003년 초부터 2006년 1월까지 애플의 주가는 10배 이상 치솟았다. 6달러 남짓하던 주식이 80달러 넘게 오른 것이다. 2006년 1월에 86달러에서 최고조로 치솟은 후 주가는 50달러 아래로 하락했지만 2006년 10월 이후 57달러에서 80달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2006년 1월 13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델을 앞질렀다. 이전에 델(Dell)의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델은 만약 애플을 소유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회사 문을 닫고,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에 잡스는 "혁신적이지 못한 골판지 상자나 만드는" 회사라고 응수했다.

[편집] 휴대폰 시장으로의 진출

2007년 1월 9일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호를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개명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애플은 2007년 6월부터 AT&T와 독점계약하여 새로운 아이폰을 공급할 것이고 또한 TV와 컴퓨터, 아이팟을 연결하는 셋탑박스애플 TV를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 발표했다. 이는 애플이 앞으로 컴퓨터시장이나 휴대용 음악기기와 판매시장 뿐아니라 가정용 전자기기와 휴대폰 시장으로 그 사업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편집] 만든 제품들

이 부분의 본문은 애플사의 제품입니다.

현재 애플사의 제품은 크게 일반 사용자및 전문가를 위한 개인용 컴퓨터인 매킨토시, 휴대용 종합 오락 기기인 아이팟과 온라인 음악 판매를 하는 아이튠즈, 퀵타임등의 소프트웨어, 기업용 서버 제품군과 그외 주변장치 그리고 직영점인 애플 스토어가 있다.

[편집] 하드웨어

오늘날 애플은 일반소비자, 전문가, 교육용의 3가지 시장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다. 1984년 첫 매킨토시의 발표 이래, 그 뛰어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매킨토시가 인해 디자이너 등 전문가 집단과 교육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전체 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IBM 호환 PC에 비해 열세를 보여오다가, 1990년대 초·중반 윈도 95의 등장으로 인해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CEO로 애플에 복귀한 다음 1998년 선보인 아이맥은 다시금 애플의 컴퓨터가 일반 소비자시장에서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아이맥의 성공에 따라 애플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2005년 1월에 소개된 맥 미니는 일반 소비자용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가정용 컴퓨터로서, 윈도우즈 유저들을 매킨토시로 좀더 쉽게 바꾸게끔 유도하기 위한 제품이다. 이후 아이맥은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형을 선보였으며 일체형이란 점이 구형 매킨토시의 디자인의 전통으로 다시 돌아갔다. 계속적으로 아이맥은 수차례 디자인의 변경이 있었고 현재의 아이맥은 세번의 주요한 변화 후에 나온 모델이다. 또한 보다 전문가 시장을 겨냥하는 파워맥 브랜드는 2006년 64비트 듀얼코어 제온 프로세서 '우드크레스트'를 탑재한 맥 프로로 바뀌었다. 기존의 파워피씨 기반의 프로세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새로운 인텔 프로세서를 채택함으로서 매킨토시 컴퓨터는 또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현재 제공되는 인텔 프로세서의 모델은 2, 2.66, 3 GHz 세가지 모델이 있다. 맥 프로는 4개의 HDD용 슬롯이 있었고 애플이 제공하는 옵션에 따라 최대 2TB의 저장용량을 담을 수 있다. 타 업체의 HDD를 이용할 경우 3TB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8개의 DIMM 슬롯을 갖추어 최대 16GB까지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다. 맥 프로를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애플은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맥 프로의 출시는 단순히 인텔로의 완벽한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뛰어난 성능, 워크스테이션으로서 높은 수준의 그래픽 구현, 490만 개가 넘는 시스템 구성을 제공한다." 애플은 또한 서버 제품군에 인텔 우드크레스트 듀얼 코어를 장착한 엑스서브를 발표하고 엑스서브의 저장 시스템으로서 엑스서브 레이드를 선보였다.

애플은 아이맥의 자매품으로서 일반 소비자용 노트북 컴퓨터인 아이북을 선보였다. 이 노트북은 저렴한 가격대의 노트북이었다. 아이북 라인은 2006년 5월 16일 맥북으로 대체되었다. 맥북은 새로운 인텔 코어 듀오를 장착하고 13인치 와이드스크린 액정패널을 채택했다. 또한 상위 모델은 블랙 컬러로 출시되었다. 맥북 프로는 1991년 처음 소개된 애플의 파워북을 대체하는 노트북 모델이다. 맥북 프로 모델은 주로 전문가 유저나 창의적인 작업을 주로 하는 디자이너에게 환영받고 있다.

2001년, 애플은 아이팟 디지털 음원 재생기기를 소개하여 지금까지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현재 모델은 비디오 재생이 가능한 모델이다.) 5세대인 아이팟 비디오는 30GB와 80GB 모델이 있고 슬림형이며 플래시 메모리를 채택한 아이팟 나노는 2GB, 4GB, 8GB 모델, 액정이 없는 간편한 음악 플레이어인 아이팟 셔플은 1GB 모델이 있다. 또한 U2 스페셜 에디션 아이팟을 디자인한 모델들이 있다. 이 U2 스페셜 에디션은 검은색 외장에 빨간색 클릭휠로 차별화 되었다. 뒷쪽의 외장에는 U2의 멤버의 사인을 레이저 조각으로 새겨놓았다. 또한 애플은 2006년 7월 13일 나이키와 제휴를 맺고 나이키+아이팟 스포츠 키트 제품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아이팟 나노와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와 결합하여 아이튠스와 나이키+ 웹사이트와 연동되어 사용자가 달리는 거리, 칼로리 소모량 등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2007년 1월 7일 맥월드 엑스포 2007의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소개하였다. 이 제품은 모바일 인터넷 기기, 모바일 폰과 터치스크린 기반의 아이팟이 결합된 제품이다. 아이폰은 2.5세대 4개 밴드 GSM과 EDGE를 채택하고 모바일 기기에 맞게 다듬어진 Mac OS X을 탑재하고 있다. 덕분에 사파리 웹브라우저, E메일, 네비게이션과 같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마치 매킨토시 컴퓨터를 사용하듯 체험할 수 있다. 아이폰은 싱귤러와 제휴하여 처음으로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며 현재 FCC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또한 아이폰과 더불어 애플 TV를 선보였다. 애플TV는 이전의 컨퍼런스에서 코드네임 iTV로 알려진 기기로서 가정용 텔레비전 기기에 아이튠스를 통해 구매한 컨텐츠를 재생하게 해주는 셋톱박스이다. 이 기기는 한 대의 컴퓨터로부터 유무선으로 다운받거나 다른 4대의 컴퓨터로부터 스트리밍 받은 컨텐츠를 동기화하여 텔레비전에 재생하게 해주는 기기이다. 고해상도의 동영상, 음악, 사진등을 무선으로 컴퓨터와 연결하여 재생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애플은 매킨토시를 위한 컴퓨터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다.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시네마 디스플레이와 같은 컴퓨터 디스플레이, 애플 마이티 마우스 같은 마우스 기기, 애플 무선 키보드를 비롯한 키보드 기기와 USB모뎀을 판매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개의 버튼만 가지던 마우스는 멀티 버튼과 스크롤볼을 지원하는 마이티 마우스와 마이티 무선 마우스로 대체되었다.

[편집] 소프트웨어

애플은 자사의 매킨토시에 돌아가는 자사만의 OS인 Mac OS X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애플은 또한 Mac OS X상에서 구동되는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애플이 개발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컴퓨터에 번들로 제공된다. 아이DVD(iDVD), 아이무비(iMovie), 아이포토(iPhoto), 아이튠즈(iTunes), 가라지밴드(GarageBand), 아이웹(iWeb)을 포함한 일반 소비자용 제품인 소프트웨어인 아이라이프가 그 예이다. 또한 프레젠테이션과 페이지 레이아웃용으로 키노트페이지를 포함한 아이워크가 있다. 아이툰스와 퀵타임 플레이어는 매킨토시용 및 윈도우용으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애플은 또한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도 판매하고 있다. 서버 제품용의 소프트웨어로서 Mac OS X server와 애플 리모트 데스크탑, WebObjects, Java Web application server, Xsan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전문 제작자용 어플리케이션으로 RAW 포맷 이미징 프로그램인 Aperture, 디지털 비디오 편집 어플리케이션인 Final Cut Studio가 있다.

애플은 또한 온라인 솔루션으로 닷맥(.Mac)을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홈페이지, 전자우편, 닷맥 지역 네트워크 서비스, 아이디스크, 닷맥 백업, 닷맥 싱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온라인 튜토리얼도 제공하고 있다.

[편집] 회사의 이름과 관련한 분쟁

비틀즈의 소속사로 유명한 영국의 음반 회사인 애플 레코드와 애플은 상표권 분쟁으로 1978년부터 2003년까지 네 차례나 소송을 벌였다. 소송의 주된 원인은 애플이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현재는 아이튠즈 스토어로 명칭을 변경)을 통해 음악판매 사업에 나서게 됨으로서, 결과적으로 향후 음악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1978년의 애플 레코드와 맺었던 협약을 위반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송에서 애플이 승소하였고, 2007년 2월 애플레코드의 모든 상표권을 애플이 사들여 일부 상표권을 애플 레코드에 허가하는 조건으로 상표권 분쟁이 타결되었다.

[편집] 유해물질 사용과 관련된 논쟁

애플은 2004년부터 그린피스의 표적이 되었다. 그린피스는 애플이 PCB 물질을 아이팟 나노와 맥북과 같은 제품 제조에 사용하고 있고 이 물질의 제거를 위한 기한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는 애플의 광고를 패러디하여 애플이 사용하는 중금속의 종류를 알리고 있다. 그린피스가 밝힌 물질로는 카드뮴, 베릴륨, 브롬계 난연제, 6가 크롬, 수은 등이 있다.

이에 대해 애플은 자사의 사이트에서 위의 대부분의 물질을 사용이 한정된 물질로 규정했고 자세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1] 애플은 또한 1994년부터 시행된 재활용 프로그램으로 210만 파운드 이상의 전자 제품들이 재활용 과정을 거쳤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2006년 12월 그린피스는 애플을 유해물질을 제품 생산에 이용하고 있는 마지막 10개 회사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유는 위와 같이 시한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편 2006년 1월 EPA에 의해 실시된 연구는 애플의 유해물질 사용 수준은 친환경적이라고 알려진 경쟁 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7년 5월 애플은 'A Greener Apple'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지금까지의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2] 이 발표문에서 애플은 유럽연합의 유해물질 사용 기준을 철저히 준수하고 경쟁사에 비해 유해물질을 적게 사용하고 있으며, 2008년 말까지 주요 유해물질의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폐기물의 재활용 현황과 이에 대한 계획을 제시하였다.

[편집] 사용자

JD Power에 따르면 컴퓨터 브랜드중 애플이 가장 높은 브랜드 충성도와 재구입 의사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에 따르면 애플의 주고객 층은 창의적이고 예술분야의 교육수준이 높은 인구로 나타났다. 애플이 아방가르드 하부문화에서 젊은 브랜드로 인지되는 것도 이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편집] 출처

  1. ((영어)) Apple - Environment
  2. ((영어)) A Greener Apple - 애플의 환경 유해물질 사용 현황과 억제 계획에 대한 발표문

[편집] 바깥 고리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Apple Compu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