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데사 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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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사 백국은 12세기 에데사 (현재의 터키 우르파)에 세워진 십자군 국가중의 하나이다. 제1차 십자군 원정이후 가장 먼저 세워진 십자군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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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에데사 백국의 성립
1098년 제1차 십자군의 지도자중 한사람인 부용의 보두앵은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십자군 본대에서 갈라져 나와서 처음에는 킬리키아로 나중에는 에데사로 원정을 하였다. 에데사에서 그는 그곳의 영주 토로스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 얼마후 토로스는 암살되었는데 보두앵에 관여햇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두앵은 토로스의 뒤를 이어 에데사의 영주가 되어 백작이 되었고 이로서 에데사 백국이 성립되었다.
1100년 예루살렘 왕국의 실질적 왕(성묘의 수호자)이던 보두앵의 형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죽자 보두앵이 에루살렘 왕국의 왕으로 가게 되었고 에데사 백국은 사촌인 보두앵 2세에게 넘어갔다. 보두앵 2세는 조슬랭과 함께 셀주크 제국에 대한 중요한 십자군 요새인 투르베셀을 공격하고 점령하였다.
[편집] 무슬림과의 전쟁
보두앵 2세는 소아시아와 시리아 북부에 대한 공략에 나섰다. 1103년 보두앵은 다니슈멘트에게 안티오키아의 보에몽 1세의 몸값을 치르고 이듬해 보에몽과 함께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인 킬리키아를 침공하였고 같은 해 모술의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받았다. 이슬람과 싸운 하란 전투에서 패한 보두앵과 죠슬랭은 함께 포로가 되었고 그 사이 보에몽의 조카인 탕크레드가 에데사 백국의 섭정이 되었다. 1108년 몸값을 치르고 풀려난 보두앵은 에데사에서 재집권을 위해 탕크레드와 싸웠고 몇몇 이슬람 제후들과 연합하여 결국 탄크레디를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110년 까지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영토 대부분은 모술의 이슬람 세력에게 빼았겼다.
1118년 예루살렘의 보두앵 1세가 죽자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으로 가게 되었고 에데사는 이듬해 죠슬랭에게 넘겨졌다. 그러나 죠슬랭은 1122년 다시한번 포로신세가 되었고 이를 구하러온 보두앵 2세도 역시 포로가 되었다. 이듬해 죠슬랭은 탈출에 성공해 보두앵 2세를 석방시켰다.
[편집] 백국의 몰락
죠슬랭은 1131년 죽고 에데사는 그의 아들 에데사의 조슬랭 2세에게 넘어갔다. 이즈음 이슬람에는 뛰어난 지도자인 이마드 앗 딘 장기가 알레포와 모술을 하나로 통합하여 에데사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죠슬랭 2세는 트리폴리 백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장기가 에데사를 침공했을 때 트리폴리 백작은 에데사를 도우러 오지 않았다. 1144년 장기는 에데사를 포위하고 공성전을 벌였고 결국 그해 12월 에데사는 함락 되었다. 죠슬랭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영토만을 간신히 지배하고 있었고 장기가 죽었을 때 잠시 에데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슬람 세력에게 다시 빼앗겼다.1150년 죠슬랭 2세는 장기의 아들인 누르 앗 딘에게 붙잡혔고 알레포에서 포로로 죽었다. 중요한 요새인 투르베셀은 나중에 비잔티움 황제 마누엘 1세에게 넘어갔으나 곧 누르 앗 딘과 룸 술탄국에게 다시 빼앗겼다. 에데사 백국은 최초로 성립된 십자군 국가이지만 가장 먼저 사라진 십자군 국가였다.
[편집] 에데사 백작의 목록
- 보두앵 1세:1098–1100
- 보두앵 2세:1100–1118
- 탕크레드 섭정 (1104–1108)
- 조슬랭 1세:1118–1131
- 조슬랭 2세:1131–1149 (115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