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헤이하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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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헤이하치로의 초상화
도고 헤이하치로의 초상화

도고 헤이하치로(일본어: 東郷平八郎)는 일본의 해군 제독이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순수한 군인 생활로 인생을 마감했다. 일본인들은 그를 '군신'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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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도고는 일본가고시마 현의 '가노야'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13세기부터 무사 집안이었고, 그 영향으로 그는 무술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로부터 '반항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반항이 잦았다.

그는 그 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대포를 다루는 기술을 배워서 '사쓰마' 지역의 다이묘의 휘하 사무라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1863년 어느 날, 그는 "앞으로 있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국 일본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강한 해군력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미 한번 싸운 적국이었지만, 동시에 당시 최강의 해군 국가였던 영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고, 당시 제대로 된 ESL(English Second Language)과정도 없었지만, 유학생 도고는 교회를 다니면서 성가책(찬송가)과 성서를 교재삼아 영어를 배운 뒤, 그것을 바탕으로 해군 관련 교육들을 공부하고 그에 대해서 알게 된 일본 정부 관리들의 지시로 당시 영국의 조선소에 큰 돈을 주고 발주하였던 신식 전함의 건조 과정을 살펴본 뒤 귀국하였다.

[편집] 업적

그가 처음으로 참가한 전쟁은 1894년에 일어난 청일 전쟁이었다. 그 후, 일본이 승리하게 되자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된다.

두번째로 참가한 전쟁은 러일 전쟁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발틱 함대를 보유한 해군 강국이었고, 일본조차도 패배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에게는 한가지 흠이 있었다.

러시아 해군은 함장과 해군 제독들의 무능과 일부 관료들의 예산 횡령이 잦았고, 제독들이 귀족 출신에다 힘든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패하지 않았던 사람은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가 유일했다. 그는 황제의 허락으로 발틱 함대를 이끌고 일본과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함거포주의(大艦巨砲主義)' 즉, '거대한 대포를 가진 큰 몸집의 전함으로 해상의 표적을 일소한다'는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일만 여톤의 거대한 몸체를 지닌 전함들과 전함보다는 작지만 속도가 빠른 순향함을 건조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도고 헤이하치로는 생각을 달리 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들이 포탄 개량에 있어서 포탄이 적의 전함의 장갑을 뚫고 들어가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 포탄의 폭발력 및 화재를 일으키는 능력을 중심으로 하여 '시모세'라는 화약을 개발하였고, 두께는 작지만 속에 화약을 많이 넣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 군함에 쓰던 부식 방지용 페인트는 '시모세' 한 대 맞고 쉽게 화염에 타올랐다고 한다. 더구나 해로를 너무 길게 잡은 러시아 해군의 실수도 패배의 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 전후

[출처 필요] 전후 전승축하연이 마련되었고 그 자리에서 한 기자가 영국의 넬슨과 도고 자신과 비교한다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도고는 "넬슨은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나와 나의 함대는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3분의 1 규모로써 이겼다."라고 말해 자신이 넬슨보다 우위에 있다는 표현을 한다.

그러자 기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어떠냐 하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마시오. 그 분은 전쟁에 관해서는 신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오. 이순신 제독께서는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 내셨소.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께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오."[1]

러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도고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원하는 의식을 갖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의 해군 사령부가 있던 경남 진해에서 약 40km 떨어진 통영 충렬사에 가서 주기적으로 진혼제를 지내는 것이 일본 해군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국방부 정훈용 소책자에 도고제독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뒤, 이순신장군이 자신보다 위대하다고 찬양했다는 일화가 실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