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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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파 또는 사두가이파는 유대교 제사장[1]을 중심으로 한 사상 세력으로서 유대교의 조류이다.
[편집] 개설
사두가이는 다윗 시대의 대사제(대제사장)였던 사독에서 파생된 말로, 사독의 후손들은 마카베오 시대까지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들은 바리사이 파 사람들과 함께 산헤드린 의회에서 법관의 역할도 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사도 바울로가 산헤드린 의회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2]그들은 모세 오경으로만 국한된 모세 법에 배타적으로 집착하고, 바리사이 파 사람들이 받아들인 온갖 주석과 전승들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구별된다. 그들은 특히 천사나 악마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활 사상과 내세에서의 보상(마태 22:22-33)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3] 그리하여 루가의 복음서에는 부활에 대해 사두가이파와 예수가 논쟁을 벌였다는 내용이 나온다.[4] 사두가이 파 사람들은 유대교의 신학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바리사이 파 사람들과 달리 헬레니즘의 영향을 그대로 방치했다.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족속들’(마태오 3:7)로 취급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을 누린 친로마파였다. 하지만 사두가이파들의 활동무대였던 예루살렘이 유대독립전쟁으로 붕괴되면서 사두가이파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5]
[편집] 바깥고리
[편집] 주석
- ↑ 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야훼 하느님께 동물이나 고운 밀가루로 희생제사를 드리던 성직자를 말한다. 공동번역에는 사제, 개역한글판에는 제사장으로 번역되어 있다.
- ↑ 사도 23:1-9
- ↑ 사도 23:8-9
- ↑ 루가 20:27-38
- ↑ 〈부활-갈릴리로의 초대〉,서재경/《기독교 사상》2006년 4월호/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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