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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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궤도(京城軌道)는 서울시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뚝섬과 광장리(현재의 광나루)까지 운행하던 한국의 궤도 노선이다. 1961년에 폐선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차

[편집] 개요

  • 노선 연장 : 총 13.5km[1]
  • 운영 기관 : 경성궤도주식회사(해방 이전), 서울시(폐선시까지)
  • 궤간 : 1067mm(협궤)
  • 통행 방식 : 좌측통행
  • 역 수 : 9
  • 복선 구간 : 전부 단선
  • 전철화 구간 : 불명, 해방 직전 또는 한국전 직후에 전철화된 것으로 보임.

[편집] 역사

[편집] 개요

경성궤도의 노선은 1930년 11월에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가 왕십리~뚝섬 간의 4.3km에 대해 면허를 받아 부설한 것이 그 시초이다. 당시 동대문에서 왕십리 간은 서울전차의 노선을 겸용하거나, 왕십리 종착으로 계획을 설정한 듯 하나 상세한 부분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경영상의 문제로 해당 노선을 경성궤도주식회사에 이관하였다.

경성궤도주식회사는 1932년 4월에 노선을 인수받아 운영을 개시하였으며, 이후 동 년 10월에 동대문~왕십리간의 별선을 건설하고, 동대문 역(현재 동대문 동남측)을 터미널 역으로 건축하였다.

1934년 12월 25일에는 도중에 있는 상후원(上後原) 역에서 분기하여 광장리(廣壯理)까지 가는 지선 7.2km가 추가 건설되었다. 이 지선은 자갈선을 연장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나 확실한 것은 불명확하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군정령에 의해 적산시설로 몰수되었으나, 이후 강석기라는 한국인 최선임 직원이 임시 선임되어 그 경영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의 정상화 가능성은 한국전쟁의 전쟁피해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차량의 손상은 물론이고, 시설의 경우 청계천교량을 비롯하여 80%가 파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자 결국 1953년에 서울시가 이를 인수, 시영체제로 운영하게 되었다.

교량의 복구가 이루어질때까지 광장리 방향 노선은 1957년까지 운행 중단이 되는 등, 복구 역시 지연되었으며, 또한 수송력의 만성적인 부족과 함께 궤도사업 운임의 동결은 경영을 점점 더 열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차량과 시설의 노후 역시 과제가 되었다. 결국 1961년에 폐지가 결정되어 이 노선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편집] 연표

[편집] 노선

두 계통으로 나누어진다.

  • 동대문~상후원~뚝섬(성수)
  • 동대문~상후원~광장리

[편집] 차량

일제 당시의 목록에서는 기관차 4량, 경유객차 2량, 경유동차 4량, 견인차 2량, 5톤 화차 23량, 6톤 화차 10량, 7톤 화차 10량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다. 개업 당시엔 전철화 되어 있지 않은 노선이었으며, 운행 역시 경유 동차에 의하였다.[2]

해방 전후에서 시영화이전 사이에 전철화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기차량이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서울전차의 전차를 일부 이관받아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 특히, 전기기관차의 경우 일본에서 사용되던 소형의 철형(凸形) 기관차가 존재하는 등, 일본제 차량의 영향이 현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참고문헌

  1. 교통부(1962), 《한국교통연감》.강생회.
  2. 中村進吾(1932).《鮮內鐵道沿線要覽》.朝鮮總督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