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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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李恒九, ? ~ 1945년)는 유명한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으로,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8년 이왕직 의식과장 등을 지냈고[1], 1932년 이왕직 차관으로 승격되었다가 장관까지 역임했다. 《고종실록》을 편찬할 때는 일본인 편찬위원장 밑에서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두 명단에는 아버지 이완용과 일찍 사망한 형 이승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이완용의 후작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이병길이 포함되어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그의 남작 작위를 습작 받은 3남 이병주도 들어 있다.
1913년 한국 최초로 인명 상해 교통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2].
[편집] 가족 관계
[편집] 주석
-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90쪽.
- ↑ 전영선, 사고 이야기 - 국내 첫 인명피해, 《동아일보》 (199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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