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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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柳得恭, 1749년 1월 3일, 음력1748년 11월 5일 - 1807년 10월 1일, 음력 9월 1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자는 혜보(惠甫)·혜풍(惠風), 호는 영재(冷齋), 영암(冷菴), 가상루(歌商樓), 고운당(古芸堂),고운거사 (古芸居士), 은휘당(恩暉堂) 이다.
[편집] 생애
1748년 음력 11월 5일 유득공이 한성 출생했다. 1752년, 자신의 아버지인 유춘이 사망하자 남양의 외가로 이사했다. 8세가 되자 외가에서 한성로 돌아왔다. 1773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1779년 검서관이 되고 1786년에는 포천 현감이 되고 1788년에는 양근 군수에 올랐다. 1792년에는 가평 군수가 된다. 그 이후 여러 요직을 거치다 1807년 음력 9월 1일, 사망했다.
[편집] 저서
- 《발해고(渤海考)》
- 《사군지(四郡志)》
- 《경도잡지(京都雜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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