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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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송(山訟)은 조선 시대 산소(山所)와 관련된 사송(詞訟)이다. 조선 시대 중기와 후기에 풍수 사상의 영향으로 명당에 묏자리를 만들려는 음택 풍수가 유행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가문의 선산에 몰래 부모의 묘자리를 만들거나, 남의 묘자리 주위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는 것 때문에 다툼이 발생하는 형태였다. 노비와 관련된 노비송(奴婢訟), 토지와 관련된 전답송(田畓訟)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사송을 이루었다.
[편집] 산송이 빈번하게 일어난 원인
산송은 조선 중기 이후 차츰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산송이 이렇게 큰 사회 문제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유교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를 하기 위해 묏자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 음택 풍수가 유교 사상과 결합하여 묏자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 신분제의 동요로 인해 중인, 상인 층이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선산을 뺏는 경우가 많아졌다.
[편집] 산송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
-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사이에서 400년 가까이 이어진 산송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산송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 어윤중은 아관파천 당시, 경기도 용인에서 산송과 관련하여 원한을 품은 양반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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