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명우(李明雨, 1901년 ~ ?)는 한국영화 감독이다.

1927년 월남 이상재가 사망했을 때 〈월남 이상재선생 장례식 실황〉을 찍었고, 1935년에는 국내 최초의 발성 영화 〈춘향전〉을 연출[1]했다. 인기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1939년 영화화하기도 했다. 이 영화 제작에는 한국 최초의 카메라맨이자 녹음 기사였던 이명우의 형 이필우가 녹음을 맡아 참여했고, 처남 최순흥도 촬영 감독을 담당했다[2].

이명우 역시 촬영과 녹음 등에 다재다능하여 촬영 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했는데,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친일 영화의 촬영을 맡았다. 만주 이주 정책과 관련된 국책 영화 〈복지만리〉(1941), 지원병제를 선전하는 〈지원병〉 (1941) 과 징병제 실시를 기념한 〈조선해협〉(1943)의 촬영을 담당했고, 〈병정님(일본어: 兵隊さん)〉 (1944)이 제작되었을 때는 편집을 맡았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목록 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 〈밤의 태양〉 (1948)의 촬영과 〈전우〉 (1949)의 편집을 맡는 등 영화계에서 활동하다가, 공보처 소속 촬영기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북조선으로 납치되었다[3][4].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1935년에는 국내 최초의~: 예술로, 호현찬 인터뷰 / '한(恨)과 저항의 우리영화 100년'
  2. 한상언, 한국영화스타7-② 영화배우 차홍녀 - 22세로 짧은 생 마감한 여배우 차홍녀 《오마이뉴스》 (2007.1.22)
  3. 《씨네21》 (2001.3.26) 59편의 영화, 그 첫발자욱 - 홍성기 감독밑에서의 감독수업과 데뷔작 〈여성일기〉
  4.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이명우 (李明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