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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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張澤相,1893년 10월 22일 ~ 1969년 8월 1일[1])은 광복 직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호는 창랑(滄浪)이다.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칠곡.
- 1945년 10월부터 1948년까지 수도경찰청장 역임.
- 1948년 1월 24일 자택 근처에서 청년 2명으로부터 수류탄 저격 받음.
- 1952년 8·5정부통령 선거에서 경찰이 깊이 개입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해 이범석이 그를 고소하자, 1952년 9월 30일 국무총리를 사임하였다.[2]
[편집] 가족 관계
아버지 장승원(1852년 - 1917년)은 칠곡의 갑부였다. 둘째형 장직상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맏딸 장병민과 맏사위 채항석 부부는 남로당에서 활동한 좌익 운동가였다[3]. 한국 전쟁 때 북조선으로 갔다[4].
[편집] 사후
2006년 8월 4일 셋째 딸 장병혜는 한국방송공사(KBS)의 주말드라마 《서울 1945》에서 장택상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한국방송공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5]
전 임 - |
제1대 외무부장관 1948년 8월 15일 - 1948년 12월 24일 |
후 임 임병직 |
전 임 장병만 |
제2대 국회의원(칠곡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무소속 |
후 임 ' |
전 임 이윤영 |
제3대 국무총리 1952년 5월 6일 - 1952년 10월 5일 |
후 임 백두진 |
[편집] 주석
- ↑ 《한국일보》 (1969.8.2) 張澤相옹 別世
- ↑ 안희수, 〈서론:정당의 형성이론과 한국정당의 발전과정〉,안희수 편저,《한국정당정치론》(나남, 1995),59쪽.
- ↑ 안성일 (2004-06-20). “'남·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분단시대의 기아 이현상 - 남로당 붕괴되다”, 《혁명에 배반당한 비운의 혁명가들》. 서울: 선인. ISBN 8989205727.
- ↑ 《신동아》 (2006년 1월호)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 ↑ 《국민일보》(2006.8.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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