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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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명치유신, 일본어: 明治維新 메이지 이신[*])은 일본에서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로 전환된 사건이며,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된 개혁을 말한다. 일본의 정치, 사회 구조를 크게 바꾼 일련의 사건들이다. 미 해군의 제독 매튜 페리가 이끌고 온 흑선(일본어: 黑船 구로후네[*])에 대한 일본의 직접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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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배경
19세기 일본은 영토확장을 진행중이던 미국의 개항 요구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미·일 수호조약(1858년)을 체결하게 되었다. 막부와 천황파는 대립하게 되었다. 그 후 왕정복고 세력과 개항압력에 대해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막부 타도 세력 등이 결합하여 막부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편집] 동맹과 충성
1866년 사쓰마 번의 지도자 사이고 타카모리와 쵸슈번의 키도 타카요시 사이의 사쓰마-초슈 동맹으로 메이지 유신이 이뤄졌다. 이 두 지도자는 고메이 천황을 지지하였다. 이들은 사카모토 료마에 의해 천거되었는데 도쿠가와 쇼군의 지배에 도전하여 천황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1867년 고메이 천황이 세상을 떠나자 메이지 천황이 뒤를 이었다.
[편집] 개혁의 내용
이 개혁은 중앙관제/법제/신분제/경제/지방행정/산업/교육/종교/외교 제도 등이 개편되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인하여 천황 친정 정치로 개정되었고, 관청 명칭도 형부성(刑部省)이 사법성(司法省) 등으로 되었다. 1885년에는 내각제도가 발족되었으나 정작 언론의 자유가 없고, 여전히 상전과 하인이 있을 정도로 지극히 형식적인 민주주의여서 자유주의 정당과 언론들은 탄압을 받았다.
군사적으로는 무사계급을 견제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도록 하는 징병제를 도입되었다. 경제적으로는 관영공장이 만들어지고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의 육성이 시작되어 서양식 공업기술이 도입되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개의 계급이 생겼다. 직업도 이전에는 무사, 농민, 공업인, 상인으로 분류되었고, 무사계급이 농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직업이동이 불가능했으나 메이지 유신이후 직업선택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러한 직업선택자유 인정은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하층계급이었던 상인들이 중요한 계급으로 성장하게 했다. 또한 화폐제도를 개편하여 통화 단위로 엔을 도입하고, 국립은행을 설치했다. 종교적으로는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는 신토를 부활시키고, 불교와 기독교는 탄압했다. 이 개혁으로 일본은 농업국가에서 근대 산업국가로 변모하는 산업혁명을 진행되었고 주요 산업인력이었던 여성들의 사회에서의 위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1920년대까지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았고[1],사회주의가 20세기초 들어오면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계급갈등이 벌어졌다. 메이지유신당시 일본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뿌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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