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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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선(金處善) ( ? ~ 1505년 ) 은 조선 연산군 당시의 환관이다. 환관들은 역사책을 쓴 사마천, 종이를 만든 채륜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간사하고 임금의 비위나 맞추어 주어 평판이 좋지 않다. 그러나 김처선은 늘 자신의 양심에 따라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며 무슨 일이든지 바르게 처리했다.
김처선은 항상 연산군에게 간하였지만 연산군은 김처선이 역대 왕들을 모셔왔고, 나이가 자신의 아버지뻘인데다가 늙은 내시의 망령이려니 하고 한귀로 흘렸다. 그러자 어느날 김처선은 죽음을 각오하고 간하기로 한다. 처선은 연산이 놀고 있을때,
“모름지기 왕이란 백성을 위해 밤낮 걱정해야 어진 임금으로 존경받게 될것이요 저는 늙은 몸으로 지금까지 네 분 임금님을 모셔왔고 도덕을 대강 알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 상감께서 하시는 그런 일을 하신 왕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마마와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까 두렵습니다. 부디 임금으로서 할만할 일만 하소서”
이에 연산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활을 잡아 처선을 쏘았다.
“조정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인 제가 어찌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상감께서 오래도록 왕노릇을 하지 못할까 걱정일 뿐입니다”
연산은 한번더 활을 쏘았다. 그리고 칼로 처선의 다리 힘줄을 잘라버렸다.
“마마께서는 다리가 없어도 걸을 수 있습니까? 제발 악행을 그만두십시오”
그러자 연산은 처선의 혀를 잘랐다. 그래도 처선이 뭐라뭐라 간하자 처선의 배를 째고 내장을 끄집어 내어 뿌렸다. 그리고 시체를 가족에게 넘겨주지 않고 호랑이 우리에 던져버렸다. 김처선의 죽음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처참한 죽음으로 기록되고 있다. 서기 1505년, 연산군 5년, 김처선의 나이는 알수 없었다(연산군이 김처선의 기록은 다 불태웠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