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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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명(李根命, 1840년 1월 21일 ~ 1916년 6월 11일)은 조선의 관료이며 친일파 인물이다.

이흥민의 아들이나 이시민에게 입적되었다. 양부와 생부가 모두 판서 벼슬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다.

1871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고, 1866년 이조참판, 1898년 내부대신이 되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에는 상소를 올려 반대한 기록이 있으나, 1907년부터 친일파로 활동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해 조직한 신사회와 토지 측량을 위한 대한산림협회(총재 이재완)에 가담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매국 공채 5만원을 사들였다.[1] 그의 작위는 이충세가 습작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