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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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李無影, 1908년 ~ 1960년 4월 21일)은 한국의 소설가이다.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본명은 이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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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하여 휘문의숙에서 수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 수업을 받았다. 일본 소설가인 가토 다케오(일본어: 加藤武雄)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소설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발표한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이 데뷔작이다. 1929년에는 귀국하여 교사와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1931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 1933년 순문학을 추구하는 구인회에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3년 친일 소설 〈토룡〉과 〈향가〉를 발표한 바 있고, 《매일신보》에 〈가련한 처칠의 말로〉(1942) 등 친일 논설을 실은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파 목록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친일 작품 수는 소설 두 편, 논설 네 편의 여섯 편이다[1].
1933년 경기도 군포로 귀농하였고, 이때부터 작품 경향에도 변화가 왔다. 이 시기부터는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주로 썼기 때문에 한국 농민 문학 또는 농촌 소설의 선구자로 불린다.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해군 정훈장교로 참전한 뒤로는 남녀간 애정을 주로 다룬 소설을 발표하여 또 한번 작풍에 변화가 있었다. 1956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숙명여자대학교와 단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고향인 음성군 설성공원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고, 1994년 그를 추모하는 '무영제'가 제정되었다. 2000년부터 동아일보사 주최로 이무영 문학상도 시상하고 있다.
[편집] 주요 작품
[편집] 소설
[편집] 단편
- 〈제1장 제1과〉
- 〈흙의 노예〉
[편집] 장편
- 《의지할 곳 없는 청춘》
- 《폐허》
- 《먼동이 틀 때》
- 《농민》
[편집] 희곡
- 《팔각정 있는 집》
[편집] 참고자료
- 충북어린이도청, 자랑스러운 충북인 - 이무영
[편집] 주석
구인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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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 김기림 | 이효석 | 이종명 | 김유영 | 유치진 | 조용만 | 이태준 | 정지용 | 이무영 |
대체회원: 박태원 | 이상 | 박팔양 | 김유정 | 김환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