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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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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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이지연 | |
출생 | 1979년 4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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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발라드 | |
활동 시기 | 1999년 ~ 현재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이수영 (李秀英, 1979년 4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이지연(李知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각각 한 명씩 있지만 부모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1999년 〈I Believe〉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라라라〉, 〈그리고 사랑해〉,〈덩그러니〉,〈휠릴리〉 등이 있다. 정규 7집 《Grace》이 2006년 1월 21일 발매된 이후로 《Grace》의 리팩키지 앨범인 《Speical Grace》가 발매되었다. (리팩키지 앨범은 정규 혹은 비정규 음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정규 8집 앨범은 2006년 가을에 발매가 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소속사와 불화로 인해 1년 늦은 2007년 9월 12일에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목차 |
[편집] 데뷔 전
[편집] 가정사
서울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9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식당 일,우유 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녀는 가스펠을 알아보기위해 방문한 교회에서 처음으로 개신교를 접하게 되었다. 개신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그녀는 교내 친구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믿음이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후에 고백한 바 있다.[출처 필요]
이수영의 어머니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 이듬 해, 이수영은 데뷔 앨범인 《I Believe》를 발매하고 가수로 데뷔하였다.
[편집] 트레이닝
이수영은 16살 때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장기자랑 코너에 나가 장원을 수상했다. 18살이 되던 해에 이수영은 머라이어 캐리 등의 가수들의 노래를 불러서 만든 데모 테잎을 이가 엔터테인먼트에 보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보컬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이가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이도형은 이수영이 다양한 분야의 가창법을 트레이닝 받도록 시켰다. 그녀는 그 당시를“10시간 보컬 연습 10시간 안무 연습 4시간 취침”이라 표현했다.
트레이닝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이도형은 이수영의 음색이 댄스 가수와 맞지않다며 발라드 가수로 데뷔시켰다. 이도형의 트레이닝과 관리는 데뷔 후에도 계속 되었으며 2집 활동 때 절정에 달했다.
[편집] 앨범 활동
[편집] 1집
데뷔 앨범인 1집 《I Believe》은 1999년 11월 16일 발매되었다. 이수영은 오리엔탈 발라드의 첫 번째 싱글 〈I Believe〉로 활동하여 각종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출처 필요] 소속사는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회사로 돌아와 녹화된 화면을 보며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I Believe〉의 성공에 이어 두 번째 싱글 〈Good bye my love〉로 활동했으나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편집] 거짓 프로필
데뷔 당시 소속사가 이수영에 대해 키,나이 그리고 가족사항을 허위 소개했다. 그녀는, 165cm로 기록되있었던 키가 사실 161.8cm라고 감성시대 진행 중 고백했다. 또 1980년생으로 나이 속였는데 이수영이 1979년생 연예인들의 친목클럽인 '79클럽'에 가입함에 따라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양부모가 없다는 것을 지인들의 글이 PC통신과 입소문을 통해 퍼뜨리면서 소녀가장이라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얼마 후 이 사실을 시인했는데 소속사는 이것을 동정심 마케팅으로 이용했다. 이후 이수영은 몇 년간 '소녀가장 가수'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사실 이수영이 데뷔했을 때는 성인이었다.) 당시 소속사의 그런 홍보방법에 대해 이수영은 "부모님을 두 번 죽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편집] 2집
2집 《Never again》은 2001년 2월 2일 발매되었다. 첫 번째 싱글 〈Never again〉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된 곡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두 번째 싱글〈스치듯 안녕〉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수영은 긴 생머리를 단발로 바꾸고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스치듯 안녕〉은 〈Never again〉보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2집 활동은 그야말로 이수영에게는 암흑기와 같았다. 신인인 상태라 소속사의 압박이 심했다. 이러한 것은 두 번째 싱글 〈스치듯 안녕〉활동 시 절정에 달했는데 이수영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했고 심지어 매일 밤마다 이수영은 그녀가 집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소속사의 전화를 받아야 했으며 방송국 대기실에서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다이어트를 명목으로 식사량도 강제적으로 제한했다.[출처 필요] 이 사실을 안 친구 이효리는 이수영을 밤에 몰래 빼내어 영화를 관람하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등의 도움을 줬다고 후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고백했다.
이수영은 〈스치듯 안녕〉활동 당시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말았는데 소속사는 그런 이수영을 병원에 몇 일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한 뒤 퇴원과 동시에 곧바로 방송국으로 보냈다. 그로 인해 〈스치듯 안녕〉은 대부분 립싱크 무대를 선보이게 되었다. 이수영은 소속사의 압박으로 인해 점점 더 건강이 나빠졌고 이내 2집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편집] 단발 머리
〈스치듯 안녕〉활동 시 하고 나온 이수영의 단발 머리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였기에 얼마 간 헤어스타일에 알맞는 분위기연출을 구상하느라 애를 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도약의 길을 열었다.
[편집] 3집
3집 《Made in winter》는 2001년 12월에 발매되었다. 기존 앨범과 달리 현악기 세션을 최대한 자제한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그리고 사랑해〉는 〈라라라〉와 함께 팬들에게 이수영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3집 활동의 주된 변화는 예능 프로그램출연을 통한 홍보였다. 많은 이들이 노래는 아는데 그녀의 얼굴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연변 사투리 개인기를 선보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후에 이 연변 사투리는 실제 연변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모욕한다며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이수영은 MBC 예능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 코너에 출연해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강하게 인식시켰다.
홍콩의 유명 영화배우인 청룽과 함께 청룽의 앨범에 수록된 듀엣곡인 〈몽상적 천제〉를 녹음하며 동남아시아 프로모션의 모습도 보였으나 보도자료에서와 달리 프로모션 행사 이후 동남아시아에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고 활동 또한 전무했다.
이수영은 일본 유명 비디오게임인 《파이널 판타지》 열 번째 편의 인터네셔널 버전의 OST를 한국어로 번안하여 녹음했다. 단순한 OST 참여 였지만 〈얼마나 좋을까〉는 게임유저들에게 이수영이란 존재를 알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두 번째 싱글인 〈차라리〉로 활동하던 중 MBC 라디오프로그램 감성시대를 진행하게 되었다.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과 동시에 3집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편집] 라디오 DJ
2002년 4월 MBC는 정규 봄 개편을 단행했다. 봄 개편과 더불어 이수영은 MBC 표준 FM에서 오전 0시에 진행되는 감성시대 DJ를 맡게된다. 하지만 2003년 3월이 되자 돌연 DJ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겉으로는 일본 진출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소속사의 통제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며 실제로 이수영의 일본 진출은 1년 3개월 후에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수영은 2002년 4월 1일부터 2003년 3월 10일까지 진행하던 감성시대 DJ를 그룹 UN의 최정원에게 물려주고 DJ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편집] 4집
《My stay in Sendai》는 감성시대를 진행 중이던 2002년 9월 16일 발매되었다. 이수영은 앨범 활동과 DJ활동을 병행하였는데 이 점은 앨범 홍보에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싱글인 〈라라라〉는 곡의 변화가 크게 없는 이지 리스닝곡으로 이수영의 음색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라라라〉는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숙원을 풀게 해주었다. SBS 가요프로그램인 인기 가요에서 1위를 수상한 이수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해 사회자들을 당황케 할 정도였다. 두 번째 싱글인 〈빚〉도 〈라라라〉에 못지않는 인기를 구가하며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다. 이 여세를 몰아 2003년 1월 4.5집 스페셜 앨범인 《Sweet holiday in Lombok》을 발매하여 싱글로는 일본 밴드 자드의 곡인 〈Good day〉를 리메이크한〈굿바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4집은 그녀의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4집 활동으로 인해 이수영 개인적으로 최고의 한해를 보냈으며 그 해 연말 사싱식프로그램에 첫 출연하게 되었다. 공식 활동 마무리 후 음악공부를 위해 외국 유학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으나 이수영이 해외유학을 거절함에 따라 무산되었다.
[편집] 5집
5집 《This time》은 2003년 8월에 발매되었다.
그 당시 불안해진 라이브 실력 논란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떨리는 음정과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활동 시 보여주었던 고음부분의 저음처리는 노래 연습 부족이 아니냐는 비난여론을 형성케 하였다. 라이브 실력 논란은 후에 발매된 정규 6집 앨범에서도 계속되었다.
그 해 연말 이수영은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발표 당시 이수영은 본인이 수상했다는 사실에 대성통곡을 할 정도였다.
[편집] 과도한 보도자료
5집 활동 당시 소속사인 이가 엔터테인먼트는 황당한 보도자료들을 내보내며 앨범 홍보에 열을 올렸는데 이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수영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인 바로 시력 상실과 청력 상실 보도자료인데 시력 상실과 청력 상실 보도자료는 모두 소속사에서 내보낸 홍보용 보도자료로써 이수영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출처 필요] 이 보도자료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하는 이어폰이 보청기라 주장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일어났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대중들에게 이수영을 알리고 약간의 동정심을 얻으려 했겠지만 이 일의 여파는 매우 큰 것이어서 3년이 지난 지금도 이수영 관련 소식을 접할 때 마다 "귀도 안들리는데.. 화이팅! 힘내세요!" 라는 식의 의견을 적어놓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출처 필요]
또한 이수영의 밴에 도둑이 들어 속옷과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영상이 담긴 비디오 테잎을 훔쳐갔다는 매우 자극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였다.
[편집] 리메이크 앨범 그리고 휴식기
5집 활동을 마친 이수영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소속사가 이미 일본 진출을 선언한 터라 다른 작업은 할 수 없었다. 공백기 동안 이수영은 리메이크 곡 《Classic the remake》를 발매하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리메이크해 첫 싱글로 내세웠다.
이 앨범은 2004년 앨범판매량 2위를 기록하여 그녀에게 2004년 골든디스크 대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또한 이 앨범은 CD와 테이프의 판매 비율이 거의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유래없는 기현상을 보였다. 휴식기동안 이수영은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귀국했다.
[편집] 일본 진출
이가 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의 일본진출을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다. 2004년 5월 소속사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소니 뮤직과 정규앨범 1장, 싱글앨범 2장 발매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감행했다.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앨범인 《最後の我がまま》는 오리콘 차트 12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출처 필요]
소속사는 곧 대한민국 정규 6집 녹음에 착수했고 6집은 판매량 면에서는 호조였다. 일본 진출 전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소속사는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식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마구 송고했다.[출처 필요]
[편집] 6집
6집 《The colors of my life》는 전체적으로 듣기 편안한 음악들로 이루어졌고 이는 이수영이 지향하는 음악이다. 6집의 대중들의 평은 전 앨범들에 비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다. 그러나 앨범 판매량에 있어서는 2004년 9월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월까지 34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그 해 앨범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2위 또한 그녀의 앨범인 《Classic the remake》였다.)
첫 번째 싱글은 〈휠릴리〉였다. 6집 활동에서는 전 앨범에 비해 더욱 더 강해진 물량 공세 홍보를 선보였고 소속사인 이가 엔터테인먼트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크레딧타임에 뮤직비디오를 방영시켰다. 이 물량 공세 홍보방식은 이가 엔터테인먼트가 2005년 데뷔시킨 아이비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6집 활동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첫 번째 싱글인 〈휠릴리〉활동 후 중단되었으며 앨범 발매 전에 미리 두 번째 싱글로 내정되었던 〈Andante〉의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수영과 소속사의 계약만료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생긴 일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2004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으며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우수가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2003년에 그러했듯이 이수영은 2005년 1월 1일을 기해 6집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편집] 공백기의 이수영
이수영과 팬텀(구 이가 엔터테인먼트)의 계약만료 소식이 전해지자 각 언론들은 그녀의 행보에 주목했으나 되었으나 이미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였다. 팬텀은 이수영의 그런 의사를 알고 매우 안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것은 2005년 2월에 열린 '톡톡콘서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출처 필요]
'톡톡콘서트'가 있다는 사실을 이수영은 공연 3일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이수영은 미국으로 떠나 친구 박경림과 생활하던 중이어서 준비 한번 된 적 없는 공연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만무했다. 반주는 모두 MR을 사용했고 노래 또한 5곡만 불렀으며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공연 마지막에 이수영은 이 공연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이 공연이 팬텀과의 마지막 일이라고 밝혔다.
팬텀은 이수영이 미국에 있을 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폐셜 앨범 《As time goes by》를 발매했다. 첫 번째 싱글은 〈꽃들은 지고〉였다.
위 두 일을 끝으로 이수영과의 일은 마무리 되는 듯 했으나 그 해 10월 이가스폐셜앨범 사건으로 다시금 안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5년 4월까지 휴식을 취한 이수영은 4월 22일 리쿠드 엔터테인먼트와 3년간 정규 앨범 3장, 비정규 앨범 2장 발매의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이수영의 새 소속사 후보로는 신나라 레코드와 리쿠드 엔터테인먼트가 물망에 떠올랐는데 이수영은 신생기획사인 리쿠드 엔터테인먼트를 택했다. 리쿠드 엔터테인먼트는 사실 신생기획사는 아니지만 매니지먼트 분야에서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였다. 리쿠드 엔터테인먼트는 직원 전원이 개신교 신자로서 그 점이 그 곳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후에 밝혔다.
계약 체결 후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한인 축제 행사 등에 참여한 뒤 이수영은 보컬 트레이닝에 임했다. 미국 보컬 트레이너는 이수영에게 "당신은 흑인 아니라서 절대 흑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창법이나 음색을 바꾸려 하지 말고 더욱 발전 시킬것을 조언했다.
한 달여 간의 트레이닝을 마친 이수영은 국내로 귀국하여 팬들과 만남을 계획하여 2005년 7월 30일, 경기도 안성시에서 이수영은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팬미팅 겸 캠프 행사를 가졌다. 이 날 이수영은 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이가 엔터테인먼트에서 추가로 발매할 세 장의 앨범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은 자신의 앨범이 아니며 꼭 7집만을 사랑해 달라며 부탁했다.
10월에 발매예정이어었던 7집이 이듬 해로 연기되면서 이수영은 또 다시 약 6개월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편집] 7집 발매 연기
전 소속사였던 팬텀은 언론에 공시를 통해 추가로 3장의 이수영 앨범을 발매하며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전소속사 팬텀과 이수영 사이에 이미 존재했었던 계약이었는지 어떤 모종의 새로운 계약이 있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얼마 후 9월 30일을 기해 7집 앨범의 인터넷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팬텀의 첫 번째 앨범 (일명 이가스폐셜앨범)도 동시에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7집은 발매일이 10월 21일있고 이가스폐셜앨범은 10월 20일이어서 7집 음반판매에 같이 묻어가려 한다는 속셈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이로 인해 팬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수영 측은 7집 발매를 11월로 연기하였다가 내년에 발매하는 것으로 결정내렸고 이로 인해 7집은 2006년 1월 21일 발매되었다.
팬텀이 발매한 이가스폐셜앨범은 기존 곡들과 일본 싱글제작당시 녹음한 미공개곡 두 곡과 기존에 공개했던 일본어곡 한 곡을 포함한 베스트앨범이었다. 시장에서의 반응은 최악이었고 이수영의 열렬한 팬들조차 등을 돌린 앨범은 역대 최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 판매량은 다른 신인,기존 가수들의 판매량을 우습게 뛰어 넘는 것이어서 이수영의 네임벨류가 얼마나 강한지를 실감케 했다.
[편집] 동요 스트리밍 사건
빠빠라빠 스트리밍 사건은 2006년 1월 7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발생한 사건이다.
어느 날 일부 스트리밍 사이트에 이수영이 2001년 촬영했던 어린이 동요 테이프인 《빠빠라빠》,《WOW Go Go English》의 음원이 추출되어 스트리밍 되었다. 우연히도 이것은 곧 두장의 앨범을 뜻하며 팬텀의 추가 앨범 발매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로 인해 세 장의 앨범 발매가 성립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팬텀에 대한 비난여론이 더욱 더 거세지자 팬텀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은 전적으로 동요 테이프 유통사였던 문화미디콤의 책임이라며 맞대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자신들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해명했다.
얼마 후 문화미디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하였다. 그리하여 빠빠라빠 스트리밍 사건은 끝을 맺었다.
[편집] 7집
〈Grace〉는 앨범 발매 한 달만에 방송횟수 1000회를 돌파했고 특히 MBC 라디오 프로그램 정오의 희망곡에서는 7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벅스 뮤직에서는 8주간 1위라는 부동의 자리를 지켰다.[출처 필요]
〈Grace〉 활동 시 그녀는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을 한 것이다. 이수영은 본인 스스로가 '웃긴 사람'이라고 칭할 만큼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나 전 소속사인 팬텀의 이미지관리로 인해 많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두 번째 싱글 활동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자제하고 음악 프로그램 출연에 더 전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두 번째 싱글〈시린〉으로 활동중이던 이수영은 하반기 앨범 작업과 각종 국내외 공연 일정을 이유로 2006년 4월 9일자로 7집의 공식적인 활동을 마감했다.
[편집] 소속사와의 불화
2006년 7월 말, 소속사인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항간에 떠도는 이수영의 소속사간의 불화설은 사실무근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내보냈다. 그러나 이 루머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이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였기에 루머 관련 기사 이전의 '사실무근기사'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7월 31일 이수영측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속사간의 불화사실을 공식발표했다. 소속사 리쿠드엔터테인먼트는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이수영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계약금 지급을 요구한 이수영의 요구에 이수영의 매니저팀을 전원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또한 2005년 하반기의 전국투어 콘서트일정을 이수영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체결하는 등 여러면에서 불성실한 계약이행을 해왔다는 것이다.
현재 이수영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 상태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리쿠드 엔터테인먼트 또한 이수영을 맞고소하였다. 이수영은 7집 《Grace》의 음원권리를 넘긴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편집] 음악 스타일
싱글로 활동한 곡들은 대부분 발라드이다. 그러나 〈그리고 사랑해〉,〈덩그러니〉의 경우는 발라드라기 보다는 록 음악에 가깝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정통발라드,보사노바,재즈,포크 록,펑키,디스코 등 여러 장르가 수록 되어있으나 대부분이 서정적이고 애절한 분위기의 발라드곡이다.
[편집] 이수영이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
이수영은 흑인 음악의 열렬한 팬이다. 따라서 그녀가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은 듣기 편하고 부담없는 소위 '이지 리스닝' 음악이다. 정규 7집 《Grace》 발매 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미래의 이수영은 보컬에 더 힘을 뺄 것이라 밝혔다.
[편집] 수상 경력
- 1995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장기자랑 장원
- 2002년 골든디스크 본상
- 2002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2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2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
- 2003년 골든디스크 본상
- 2003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3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3년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
- 2004년 서울 가요 대상
- 2004년 골든디스크 본상 및 대상
- 2004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4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4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수상
[편집] 발매 앨범
- 정규 앨범
- 1999년 1집 《I Believe》
- 2001년 2집 《Never again》
- 2001년 3집 《Made in winter》
- 2002년 4집 《My stay in Sendai》
- 2003년 5집 《This time》
- 2004년 일본 싱글 《最後の我がまま》
- 2004년 6집 《The colors of my life》
- 2006년 7집 《Grace》
- 2007년 8집 《내려놓음》
- 비정규 앨범
- 2001년 라이브앨범 《그녀에게 감사해요》
- 2003년 4.5집 《Sweet holiday in Lombok》
- 2004년 5.5집 《Classic the remake》
- 2005년 6.5집 《As time goes by》
- 2005년 2005 스폐셜《An Autumn Day》
- 참여 앨범
- 2000년 《이정봉 4집》
- 2000년 《Dream Song》
- 2001년 《KOREAN DANCE TOP 30》
- 2001년 《이영애의 애수》
- 2001년 《드라마 명성황후 OST》
- 2001년 《첫사랑》
- 2002년 《Baek ji Young Best & Live New Release》
- 2002년 《성룡 夢想的天材》
- 2002년 《영화 묻지마 패밀리 OST》
- 2002년 《Final Fantasy X International OST》
- 2002년 《The Winter》
- 2003년 《IVY MEGAMIX》
- 2003년 《ONE SHOT 가요리믹스 VOL.2》
- 2003년 《장나라와 친구들》
- 2003년 《드라마 장희빈 OST》
- 2004년 《LEEJEEHOON 5》
- 2004년 Simply Sunday 싱글 《사랑해요》
- 2004년 《new Kpop compilation》
- 2004년 《2004* Christmas carol Ballad & Trot & Hiphop & Jazz》
- 2005년 《이 죽일놈의 사랑 OST》
- 2005년 《DJ 처리의 Chirstmas 쏭쏭쏭》
- 2005년 《The wave Christmas Caroling》
- 2005년 《The Wave Blessing & Caro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