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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비판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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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T00:4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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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글이나 그림, 영화, 만화, 게임 등 여러가지 매체를 접합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인간 본성의 표현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이 여러 매체를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남들과 공감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누군가는 사기를 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매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낙관론적인 시선에서 보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의심하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쪼잔해 보이는 법을 배우는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낙관과는 반대되는 비판을 배우므로써,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한쪽 면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통해서 논리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례들을 비추어 실제로는 악인들이 낙관주의자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었는지, 우리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적인 고전논리학, 형식적 오류와 비형식적 오류, 프로파간다, 프레이밍, AI 등을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형식논리나 기호논리는 이 주제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거친 주제일 것입니다.
때로는 생성형 언어 모델(LLM)의 도움을 구할 수는 있겠으나, 사람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만큼 AI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본적으로, AI 역시도 넓은 프레임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LLM으로 써내려가는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초안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딱히 무언가로 분류하지 않고, 양식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적절히 완성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 문서를 봐준다면 양식과 분류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스스로 만족해서 붙일 수도 있고요.
1. 논리적 사고
1.1.
우리는 의사소통을 언어로 합니다. 아마도 반대로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서 고안되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을 듯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빠롤)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생존과 관련된 것에 언어가 사용되었을 것이나, 아마도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직접적인 생존과는 무관한 사회제도가 만들어지고 아마도 그 과정에서 사냥이나 채집에서 사용되었던 추상적인 것들을 활용하여 더 복잡한 개념들을 만들었을겁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을겁니다. 복잡한 개념들이 다른 개념들과 들어맞지 않고, 때로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 괴리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 괴리들을 덜어내고 잘 들어맞게 개념들을 변형시켜 난잡하게 추상화 되었던 것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빚어냈을 겁니다. 물론 완벽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끔은 전보다도 못생긴 것들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 중에 아주 깔끔하게 벼려낸 것을 담아서 논리라고 합니다. 적어도 고전논리는 그렇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아마도 논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리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을 정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덜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가령
"이리 와."
라는 문장이 있다면, 이것은 어떠한 논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말한 사람에게 오도록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늘은 푸르다."
라는 문장은 하늘이 파란색을 가진다는 논리성을 표현한 문장이 됩니다. 또,
"사과는 맛있다."
라는 문장은 논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논리적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합니다. 사과가 자신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사과가 모두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논리를 다룰 때에는 적절하지는 않은 문장이 됩니다.
(고전)논리는 이와 같이 개념의 특성을 파악하고, 모호성을 없앤 문장들로 이루어집니다. 더 나아가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와 같이 논리에서는 여러 논리적 문장을 합쳐서 논리적 문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논리 자체는 아주 시시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논리적 문장을 마음대로 합친다고 해서 옳은 문장만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라는 것이 옳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제쳐두고, 그것이 논리적인지만을 따집니다. 다음 문장들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대전은 서울보다 북쪽에 있다."
위의 문장에서 A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문장구조를 반복하여 C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논리적 문장을 만들었으나, 그 구성이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결론 역시도 사실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새로 만든 문장이 참이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다음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이전의 것과는 무언가 달라보이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낸 문장 역시도 옳은 문장입니다. 그럼 논리적으로 맞을까요? 아닙니다. 문장들을 잘 읽어보면 마지막 문장은 그 전 문장들과 딱히 관련이 없습니다. 이보다 앞서 살펴본 문장들과 마지막 문장의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만 다를 뿐, 구조는 똑같습니다. 서울과 대전, 두 단어를 바꾸기만 하면 앞서 살펴본 문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여기서 논리적 문장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갑시다. 아마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문장이 주어져 있다고 합시다.
좀 더 체계적으로 들어갑시다. (고전)논리가 잘 굴러가기 위한 문장은 어떤 구조를 가진 문장이어야 하는지, 그런 문장은 어떤식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명제논리 도입
귀납법과 연역법
연역논리
진리표와 진리나무
귀납논리
2. 논리적 오류
형식적 오류
비형식적 오류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논리적인 오류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발화에는 무언가를 따지고 들어갈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과 같은 발화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청중으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이상한 이미지를 씌우기(프레임) 위해 이런 논리적 오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설탕세 폐지에 관한 토론 중에
"설탕세를 안 붙인다면 B 패널과 같은 풍만한 체중이신 분이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요?"
와 같이 주장 속에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의 오류를 넣으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자극시킬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이에 대해서 진정하면서
"설탕세와 체중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A 패널이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저는 음료수는 제로만 마십니다. 제 풍채는 당이 아니라 지방에서 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A 패널의 주장대로라면 국밥을 규제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런 인신공격의 오류에 빠져들어서
"제가 뚱뚱한 것과 설탕세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설탕을 먹는 것과 사람들이 뚱뚱한게 뭔 상관입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와 같이 답하면 어떠한 주장도 제대로 못한 체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논리와 발화를 구분하여 토론의 기술을 알려준 유명한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저서,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대놓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발화에서 대놓고 쓴다면 추후에 지적을 당할 수 있으나, 은근히 쓴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의 발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여러분이 상대방과 발화를 할 때 상대방이 이런 말하기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3. 참말로 참말, 참말로 거짓말
일부와 전체
혐오와 선동-반유대주의와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4. 프레이밍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의 일부 발췌
우리가 어떤 개념을 마주할 때, 그것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개념을 특정한 단어로 연결시키므로써 단어를 떠올리먼 그 개념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령 온실가스 등으로 인해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그대로 풀어서 쓰면 매번 쓰기 귀찮을겁니다. 그 대신에 "지구온난화"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우리는 위의 현상을 단 다섯글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배워온 것처럼, 우리가 어떤 단어를 만들어낼 때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편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게 객관적인지 아니면 특정한 의도를 가지는 단어인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논란이 될 수 있겠으나, 사람들이 각자 가지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름을 자신의 의도를 투영하는 경우들을 살펴봅시다.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중국의 우한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고, 그 형태가 태양의 코로나와 유사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명명은 초기에는 "우한폐렴", 나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또, 2003년에 높은 치명률을 보여줬던 SARS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확인되어 SARS2라고도 불립니다.
어차피 우리는 특정한 실체가 있는 바이러스를 지칭하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사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꽃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걸 굳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은 쪽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우한폐렴이라는 꽃으로, 누군가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꽃으로 말입니다.
한쪽에서는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다는 WHO의 작명법을 근거로 우한폐렴은 옳지 않으므로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스페인독감이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이 옛날 병명도 2015년에 새로 찾은 바이러스도 지역명을 붙인 사례를 통해 반박을 합니다. 더 나아가 특정국가와의 유착을 의심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 2024년 12월 29일, 한국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좀 더 와닿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쪽에서는 사건의 비극을 강조하며 "무안공항 참사"라고 부르고, 다른쪽에서는 사고의 중립성을 주장하면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라고 부릅니다.
두 쪽 모두 자신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에, 이런 이름 붙이기에서 다른 이름을 붙이기를 싫어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어하죠. 물론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만 낭비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논쟁적 발화술 중 하나일 수도 있을겁니다.
왜 이런 본질과도 관련 없는 이름짓기에 논쟁적으로 시간을 들이려고 하는 걸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꽃 이름이 멋져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남들도 그에게 똑같은 이름을 부르기를 원해서 그렇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에 담긴 의미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은 이런 발상과 잘 들어맞는 개념입니다.
프레임은 액자와 비슷합니다. 어떤 것에 집중하도록 안과 밖을 구분하는 장치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우리의 사고를 그 안에서만 논하도록 여러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프레임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의도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프레임이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의도적으로 붙이거나 덜어내는 것 역시도 프레임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대화하고 논의하는 것 역시도 우리의 시각 내에서 발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도 어떤 프레임 내에서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개념을 다루는 걸까요? 말하는 것만 보면 그냥 말하기의 모든 것이 프레임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프레임이라고 하는 개념을 다룸으로써, 프레임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좀 더 객관적인 척일 필요가 있는 경우와 좀 더 주관적이고 싶은 경우 프레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가 요리할 때도 사용하지만, 무언가를 죽일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칼처럼, 비판과 선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기 위해서 프레임을 배울 것입니다. 적극적 평화주의자들은 싫어하는 비유일 수 있겠지만, 이미 남들도 무기를 들고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다음 텍스트가 아이러니하게 들려올 수 있겠네요.
장자 산목제이십 마지막 단락
위의 이야기에서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좁고 더 좁게 잡아가고 있습니다. 첫번째 프레임은 장자가 활을 들고 새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지만, 두번째 프레임은 새가 사마귀를, 세번째 프레임에서는 사마귀가 매미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고 있습니다. 각자의 시선은 자신이 보는 프레임 속에서 있는데, 마치 위에서 선동으로써 프레임을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동안의 이야기에서 최상위에 있었던 장자도 누군가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리는 것을 통해 이야기가 제시했던 프레임들을 이용해 더 넓은 프레임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더 작은 프레임을 쓰는 것이 선동이라고 말한 것처럼(프레임 씌운 것처럼) 더 넓은 프레임을 쓰는 것은 비판이라고 말할 수(프레임 씌울 수) 있을 겁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잠깐만요... 그건 그냥 프레임을 더 넓게 잡은 것 아닌가요? 그럼 제대로 된 비판이라기보단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미봉책 아닌가요? 그냥 프레임을 없애면 안될까요? 글쎄요. 쉽지 않을겁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사실 사고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도입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의 틀을 인지하고 그것을 넘겼다고 해서 프레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 넘기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어떠한 절차를 따라 사고를 했을 것이고, 그것 역시도 하나의 프레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레임을 없애는 것은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없앴다고 주장해도, 그것에 대한 프레임이 또 생길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효용적인 일은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프레임 속의 것이 아닌 다양한 시야에서 주제를 검토해보는 것일겁니다.
넛지
우리가 누구에게 프레임을 걸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안 중에 넛지도 고려해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누군가가 넛지전략으로 여러분들의 생각을 프레임 속에 가둘 수도 있기 때문에 다루는 것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넛지는 쉽게 말해서 은근슬쩍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있는 사고구조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5. AI와 비판적 사고
인지편향
음향실 효과
AI와 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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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우리는 살면서 글이나 그림, 영화, 만화, 게임 등 여러가지 매체를 접합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인간 본성의 표현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이 여러 매체를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남들과 공감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누군가는 사기를 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매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낙관론적인 시선에서 보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의심하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쪼잔해 보이는 법을 배우는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낙관과는 반대되는 비판을 배우므로써,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한쪽 면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통해서 논리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례들을 비추어 실제로는 악인들이 낙관주의자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었는지, 우리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적인 고전논리학, 형식적 오류와 비형식적 오류, 프로파간다, 프레이밍, AI 등을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형식논리나 기호논리는 이 주제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거친 주제일 것입니다.
때로는 생성형 언어 모델(LLM)의 도움을 구할 수는 있겠으나, 사람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만큼 AI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본적으로, AI 역시도 넓은 프레임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LLM으로 써내려가는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초안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딱히 무언가로 분류하지 않고, 양식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적절히 완성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 문서를 봐준다면 양식과 분류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스스로 만족해서 붙일 수도 있고요.
1. 논리적 사고
1.1.
우리는 의사소통을 언어로 합니다. 아마도 반대로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서 고안되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을 듯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빠롤)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생존과 관련된 것에 언어가 사용되었을 것이나, 아마도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직접적인 생존과는 무관한 사회제도가 만들어지고 아마도 그 과정에서 사냥이나 채집에서 사용되었던 추상적인 것들을 활용하여 더 복잡한 개념들을 만들었을겁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을겁니다. 복잡한 개념들이 다른 개념들과 들어맞지 않고, 때로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 괴리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 괴리들을 덜어내고 잘 들어맞게 개념들을 변형시켜 난잡하게 추상화 되었던 것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빚어냈을 겁니다. 물론 완벽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끔은 전보다도 못생긴 것들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 중에 아주 깔끔하게 벼려낸 것을 담아서 논리라고 합니다. 적어도 고전논리는 그렇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아마도 논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리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을 정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덜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가령
"이리 와."
라는 문장이 있다면, 이것은 어떠한 논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말한 사람에게 오도록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늘은 푸르다."
라는 문장은 하늘이 파란색을 가진다는 논리성을 표현한 문장이 됩니다. 또,
"사과는 맛있다."
라는 문장은 논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논리적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합니다. 사과가 자신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사과가 모두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논리를 다룰 때에는 적절하지는 않은 문장이 됩니다.
(고전)논리는 이와 같이 개념의 특성을 파악하고, 모호성을 없앤 문장들로 이루어집니다. 더 나아가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와 같이 논리에서는 여러 논리적 문장을 합쳐서 논리적 문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논리 자체는 아주 시시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논리적 문장을 마음대로 합친다고 해서 옳은 문장만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라는 것이 옳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제쳐두고, 그것이 논리적인지만을 따집니다. 다음 문장들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대전은 서울보다 북쪽에 있다."
위의 문장에서 A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문장구조를 반복하여 C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논리적 문장을 만들었으나, 그 구성이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결론 역시도 사실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새로 만든 문장이 참이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다음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이전의 것과는 무언가 달라보이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낸 문장 역시도 옳은 문장입니다. 그럼 논리적으로 맞을까요? 아닙니다. 문장들을 잘 읽어보면 마지막 문장은 그 전 문장들과 딱히 관련이 없습니다. 이보다 앞서 살펴본 문장들과 마지막 문장의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만 다를 뿐, 구조는 똑같습니다. 서울과 대전, 두 단어를 바꾸기만 하면 앞서 살펴본 문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여기서 논리적 문장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갑시다. 아마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문장이 주어져 있다고 합시다.
좀 더 체계적으로 들어갑시다. (고전)논리가 잘 굴러가기 위한 문장은 어떤 구조를 가진 문장이어야 하는지, 그런 문장은 어떤식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명제논리 도입
귀납법과 연역법
연역논리
진리표와 진리나무
귀납논리
2. 논리적 오류
형식적 오류
비형식적 오류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논리적인 오류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발화에는 무언가를 따지고 들어갈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과 같은 발화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청중으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이상한 이미지를 씌우기(프레임) 위해 이런 논리적 오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설탕세 폐지에 관한 토론 중에
"설탕세를 안 붙인다면 B 패널과 같은 풍만한 체중이신 분이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요?"
와 같이 주장 속에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의 오류를 넣으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자극시킬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이에 대해서 진정하면서
"설탕세와 체중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A 패널이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저는 음료수는 제로만 마십니다. 제 풍채는 당이 아니라 지방에서 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A 패널의 주장대로라면 국밥을 규제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런 인신공격의 오류에 빠져들어서
"제가 뚱뚱한 것과 설탕세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설탕을 먹는 것과 사람들이 뚱뚱한게 뭔 상관입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와 같이 답하면 어떠한 주장도 제대로 못한 체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논리와 발화를 구분하여 토론의 기술을 알려준 유명한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저서,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대놓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발화에서 대놓고 쓴다면 추후에 지적을 당할 수 있으나, 은근히 쓴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의 발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여러분이 상대방과 발화를 할 때 상대방이 이런 말하기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3. 참말로 참말, 참말로 거짓말
일부와 전체
혐오와 선동-반유대주의와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4. 프레이밍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의 일부 발췌
우리가 어떤 개념을 마주할 때, 그것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개념을 특정한 단어로 연결시키므로써 단어를 떠올리먼 그 개념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령 온실가스 등으로 인해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그대로 풀어서 쓰면 매번 쓰기 귀찮을겁니다. 그 대신에 "지구온난화"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우리는 위의 현상을 단 다섯글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배워온 것처럼, 우리가 어떤 단어를 만들어낼 때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편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게 객관적인지 아니면 특정한 의도를 가지는 단어인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논란이 될 수 있겠으나, 사람들이 각자 가지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름을 자신의 의도를 투영하는 경우들을 살펴봅시다.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중국의 우한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고, 그 형태가 태양의 코로나와 유사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명명은 초기에는 "우한폐렴", 나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또, 2003년에 높은 치명률을 보여줬던 SARS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확인되어 SARS2라고도 불립니다.
어차피 우리는 특정한 실체가 있는 바이러스를 지칭하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사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꽃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걸 굳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은 쪽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우한폐렴이라는 꽃으로, 누군가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꽃으로 말입니다.
한쪽에서는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다는 WHO의 작명법을 근거로 우한폐렴은 옳지 않으므로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스페인독감이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이 옛날 병명도 2015년에 새로 찾은 바이러스도 지역명을 붙인 사례를 통해 반박을 합니다. 더 나아가 특정국가와의 유착을 의심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 2024년 12월 29일, 한국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좀 더 와닿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쪽에서는 사건의 비극을 강조하며 "무안공항 참사"라고 부르고, 다른쪽에서는 사고의 중립성을 주장하면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라고 부릅니다.
두 쪽 모두 자신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에, 이런 이름 붙이기에서 다른 이름을 붙이기를 싫어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어하죠. 물론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만 낭비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논쟁적 발화술 중 하나일 수도 있을겁니다.
왜 이런 본질과도 관련 없는 이름짓기에 논쟁적으로 시간을 들이려고 하는 걸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꽃 이름이 멋져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남들도 그에게 똑같은 이름을 부르기를 원해서 그렇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에 담긴 의미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은 이런 발상과 잘 들어맞는 개념입니다.
프레임은 액자와 비슷합니다. 어떤 것에 집중하도록 안과 밖을 구분하는 사고의 틀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우리의 사고를 그 안에서만 논하도록 여러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프레임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의도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프레임이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의도적으로 붙이거나 덜어내는 것 역시도 프레임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대화하고 논의하는 것 역시도 우리의 시각 내에서 발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도 어떤 프레임 내에서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개념을 다루는 걸까요? 말하는 것만 보면 그냥 말하기의 모든 것이 프레임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프레임이라고 하는 개념을 다룸으로써, 프레임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좀 더 객관적인 척일 필요가 있는 경우와 좀 더 주관적이고 싶은 경우 프레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가 요리할 때도 사용하지만, 무언가를 죽일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칼처럼, 비판과 선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기 위해서 프레임을 배울 것입니다. 적극적 평화주의자들은 싫어하는 비유일 수 있겠지만, 이미 남들도 무기를 들고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다음 텍스트가 아이러니하게 들려올 수 있겠네요.
장자 산목제이십 마지막 단락
위의 이야기에서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좁고 더 좁게 잡아가고 있습니다. 첫번째 프레임은 장자가 활을 들고 새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지만, 두번째 프레임은 새가 사마귀를, 세번째 프레임에서는 사마귀가 매미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고 있습니다. 각자의 시선은 자신이 보는 프레임 속에서 있는데, 마치 위에서 선동으로써 프레임을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동안의 이야기에서 최상위에 있었던 장자도 누군가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리는 것을 통해 이야기가 제시했던 프레임들을 이용해 더 넓은 프레임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더 작은 프레임을 쓰는 것이 선동이라고 말한 것처럼(프레임 씌운 것처럼) 더 넓은 프레임을 쓰는 것은 비판이라고 말할 수(프레임 씌울 수) 있을 겁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잠깐만요... 그건 그냥 프레임을 더 넓게 잡은 것 아닌가요? 그럼 제대로 된 비판이라기보단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미봉책 아닌가요? 그냥 프레임을 없애면 안될까요? 글쎄요. 쉽지 않을겁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사실 사고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도입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의 틀을 인지하고 그것을 넘겼다고 해서 프레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 넘기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어떠한 절차를 따라 사고를 했을 것이고, 그것 역시도 하나의 프레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레임을 없애는 것은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없앴다고 주장해도, 그것에 대한 프레임이 또 생길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효용적인 일은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프레임 속의 것이 아닌 다양한 시야에서 주제를 검토해보는 것일겁니다.
넛지
우리가 누구에게 프레임을 걸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안 중에 넛지(nudge)도 고려해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누군가가 넛지전략으로 여러분들의 생각을 프레임 속에 가둘 수도 있기 때문에 다루는 것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넛지는 쉽게 말해서 은근슬쩍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있는 사고구조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가령 도로에서 우리는 노란색을 보통 주의 표지판 같은 것으로 많이 봤을겁니다. 이것에 착안해서 보도블럭과 벽을 노란색으로 칠해 운전자로 하여금 운전에 주의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넛지 중 하나입니다.(동아사이언스, 2019, https://www.dongascience.com/ko/news/28489)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생활 속의 문제를 피곤비용을 절감하면서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가 바라볼 것은 이런 실용적인 사례가 아니라 행동에서 은근슬쩍 프레임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유의해서 살펴봅시다.
5. AI와 비판적 사고
인지편향
음향실 효과
AI와 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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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text
text/x-wiki
우리는 살면서 글이나 그림, 영화, 만화, 게임 등 여러가지 매체를 접합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인간 본성의 표현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이 여러 매체를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남들과 공감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표현을 하지만, 누군가는 사기를 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매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낙관론적인 시선에서 보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의심하고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쪼잔해 보이는 법을 배우는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낙관과는 반대되는 비판을 배우므로써,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알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한쪽 면을 익히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통해서 논리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례들을 비추어 실제로는 악인들이 낙관주의자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었는지, 우리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적인 고전논리학, 형식적 오류와 비형식적 오류, 프로파간다, 프레이밍, AI 등을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형식논리나 기호논리는 이 주제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거친 주제일 것입니다.
때로는 생성형 언어 모델(LLM)의 도움을 구할 수는 있겠으나, 사람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만큼 AI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본적으로, AI 역시도 넓은 프레임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LLM으로 써내려가는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초안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딱히 무언가로 분류하지 않고, 양식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적절히 완성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 문서를 봐준다면 양식과 분류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스스로 만족해서 붙일 수도 있고요.
1. 논리적 사고
1.1.
우리는 의사소통을 언어로 합니다. 아마도 반대로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서 고안되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을 듯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빠롤)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생존과 관련된 것에 언어가 사용되었을 것이나, 아마도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직접적인 생존과는 무관한 사회제도가 만들어지고 아마도 그 과정에서 사냥이나 채집에서 사용되었던 추상적인 것들을 활용하여 더 복잡한 개념들을 만들었을겁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을겁니다. 복잡한 개념들이 다른 개념들과 들어맞지 않고, 때로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 괴리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 괴리들을 덜어내고 잘 들어맞게 개념들을 변형시켜 난잡하게 추상화 되었던 것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빚어냈을 겁니다. 물론 완벽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끔은 전보다도 못생긴 것들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 중에 아주 깔끔하게 벼려낸 것을 담아서 논리라고 합니다. 적어도 고전논리는 그렇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아마도 논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리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말을 정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덜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가령
"이리 와."
라는 문장이 있다면, 이것은 어떠한 논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말한 사람에게 오도록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늘은 푸르다."
라는 문장은 하늘이 파란색을 가진다는 논리성을 표현한 문장이 됩니다. 또,
"사과는 맛있다."
라는 문장은 논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논리적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합니다. 사과가 자신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사과가 모두에게 맛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논리를 다룰 때에는 적절하지는 않은 문장이 됩니다.
(고전)논리는 이와 같이 개념의 특성을 파악하고, 모호성을 없앤 문장들로 이루어집니다. 더 나아가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와 같이 논리에서는 여러 논리적 문장을 합쳐서 논리적 문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논리 자체는 아주 시시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논리적 문장을 마음대로 합친다고 해서 옳은 문장만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라는 것이 옳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제쳐두고, 그것이 논리적인지만을 따집니다. 다음 문장들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대전은 서울보다 북쪽에 있다."
위의 문장에서 A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문장구조를 반복하여 C는 B보다 북쪽에 있다는 논리적 문장을 만들었으나, 그 구성이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결론 역시도 사실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새로 만든 문장이 참이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다음을 살펴봅시다.
"서울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대전은 부산보다 북쪽에 있다. 따라서 서울은 대전보다 북쪽에 있다."
이전의 것과는 무언가 달라보이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낸 문장 역시도 옳은 문장입니다. 그럼 논리적으로 맞을까요? 아닙니다. 문장들을 잘 읽어보면 마지막 문장은 그 전 문장들과 딱히 관련이 없습니다. 이보다 앞서 살펴본 문장들과 마지막 문장의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만 다를 뿐, 구조는 똑같습니다. 서울과 대전, 두 단어를 바꾸기만 하면 앞서 살펴본 문장과 다를게 없습니다.
여기서 논리적 문장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갑시다. 아마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문장이 주어져 있다고 합시다.
좀 더 체계적으로 들어갑시다. (고전)논리가 잘 굴러가기 위한 문장은 어떤 구조를 가진 문장이어야 하는지, 그런 문장은 어떤식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명제논리 도입
귀납법과 연역법
연역논리
진리표와 진리나무
귀납논리
2. 논리적 오류
형식적 오류
비형식적 오류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논리적인 오류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발화에는 무언가를 따지고 들어갈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과 같은 발화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청중으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이상한 이미지를 씌우기(프레임) 위해 이런 논리적 오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설탕세 폐지에 관한 토론 중에
"설탕세를 안 붙인다면 B 패널과 같은 풍만한 체중이신 분이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요?"
와 같이 주장 속에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의 오류를 넣으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자극시킬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이에 대해서 진정하면서
"설탕세와 체중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A 패널이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저는 음료수는 제로만 마십니다. 제 풍채는 당이 아니라 지방에서 왔습니다. 차라리 A 패널의 주장대로라면 국밥을 규제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런 인신공격의 오류에 빠져들어서
"제가 뚱뚱한 것과 설탕세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설탕을 먹는 것과 사람들이 뚱뚱한게 뭔 상관입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와 같이 답하면 어떠한 주장도 제대로 못한 체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논리와 발화를 구분하여 토론의 기술을 알려준 유명한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저서,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대놓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발화에서 대놓고 쓴다면 추후에 지적을 당할 수 있으나, 은근히 쓴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의 발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여러분이 상대방과 발화를 할 때 상대방이 이런 말하기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3. 참말로 참말, 참말로 거짓말
일부와 전체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일부와 전체를 혼동합니다. 앞서 우리가 배웠던 "어떤"과 "모든"이 자연언어에서 반드시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논리적 문장을 구성할 때 언급함으로써 완성되었음을 기억합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발화, 혹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특히 한국어에서는 지시체의 개수가 몇 개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논리적인 말하기를 할 때 일부와 전체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자주 쓰이는 스킬입니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우리가 배웠던 고전논리는 사실 일상 속에서 그다지 실용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명확한 기준으로 묶인 대상에 대해서는 고전논리를 사용하기 쉽습니다만, 우리가 어떠한 것들을 묶는 행위는 모든 특성을 묶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많은 경우 같은 것들로 치부하기는 힘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은 개인의 특성을 지닌다는 개인주의가 나오지만,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여전히 사회는 어떠한 기준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성별, 나이, 세대, 지역, 민족 등으로 인간을 묶기도 하고, 식물, 동물, 균류 등으로 생명을 묶기도 하고, 사회학이니 인문학이니 자연과학이니 공학 등으로 학문을 묶기도 합니다.
혐오와 선동-반유대주의와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4. 프레이밍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의 일부 발췌
우리가 어떤 개념을 마주할 때, 그것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개념을 특정한 단어로 연결시키므로써 단어를 떠올리먼 그 개념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령 온실가스 등으로 인해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그대로 풀어서 쓰면 매번 쓰기 귀찮을겁니다. 그 대신에 "지구온난화"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우리는 위의 현상을 단 다섯글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배워온 것처럼, 우리가 어떤 단어를 만들어낼 때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편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게 객관적인지 아니면 특정한 의도를 가지는 단어인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논란이 될 수 있겠으나, 사람들이 각자 가지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름을 자신의 의도를 투영하는 경우들을 살펴봅시다.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중국의 우한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고, 그 형태가 태양의 코로나와 유사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명명은 초기에는 "우한폐렴", 나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또, 2003년에 높은 치명률을 보여줬던 SARS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확인되어 SARS2라고도 불립니다.
어차피 우리는 특정한 실체가 있는 바이러스를 지칭하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사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꽃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걸 굳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은 쪽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우한폐렴이라는 꽃으로, 누군가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꽃으로 말입니다.
한쪽에서는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다는 WHO의 작명법을 근거로 우한폐렴은 옳지 않으므로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스페인독감이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이 옛날 병명도 2015년에 새로 찾은 바이러스도 지역명을 붙인 사례를 통해 반박을 합니다. 더 나아가 특정국가와의 유착을 의심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 2024년 12월 29일, 한국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좀 더 와닿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쪽에서는 사건의 비극을 강조하며 "무안공항 참사"라고 부르고, 다른쪽에서는 사고의 중립성을 주장하면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라고 부릅니다.
두 쪽 모두 자신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에, 이런 이름 붙이기에서 다른 이름을 붙이기를 싫어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꽃으로 만들고 싶어하죠. 물론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만 낭비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논쟁적 발화술 중 하나일 수도 있을겁니다.
왜 이런 본질과도 관련 없는 이름짓기에 논쟁적으로 시간을 들이려고 하는 걸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꽃 이름이 멋져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남들도 그에게 똑같은 이름을 부르기를 원해서 그렇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에 담긴 의미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은 이런 발상과 잘 들어맞는 개념입니다.
프레임은 액자와 비슷합니다. 어떤 것에 집중하도록 안과 밖을 구분하는 사고의 틀입니다.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우리의 사고를 그 안에서만 논하도록 여러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프레임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의도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프레임이고,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의도적으로 붙이거나 덜어내는 것 역시도 프레임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대화하고 논의하는 것 역시도 우리의 시각 내에서 발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역시도 어떤 프레임 내에서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개념을 다루는 걸까요? 말하는 것만 보면 그냥 말하기의 모든 것이 프레임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프레임이라고 하는 개념을 다룸으로써, 프레임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좀 더 객관적인 척일 필요가 있는 경우와 좀 더 주관적이고 싶은 경우 프레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가 요리할 때도 사용하지만, 무언가를 죽일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칼처럼, 비판과 선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기 위해서 프레임을 배울 것입니다. 적극적 평화주의자들은 싫어하는 비유일 수 있겠지만, 이미 남들도 무기를 들고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다음 텍스트가 아이러니하게 들려올 수 있겠네요.
장자 산목제이십 마지막 단락
위의 이야기에서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좁고 더 좁게 잡아가고 있습니다. 첫번째 프레임은 장자가 활을 들고 새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지만, 두번째 프레임은 새가 사마귀를, 세번째 프레임에서는 사마귀가 매미를 사냥하는 장면으로 잡고 있습니다. 각자의 시선은 자신이 보는 프레임 속에서 있는데, 마치 위에서 선동으로써 프레임을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동안의 이야기에서 최상위에 있었던 장자도 누군가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리는 것을 통해 이야기가 제시했던 프레임들을 이용해 더 넓은 프레임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더 작은 프레임을 쓰는 것이 선동이라고 말한 것처럼(프레임 씌운 것처럼) 더 넓은 프레임을 쓰는 것은 비판이라고 말할 수(프레임 씌울 수) 있을 겁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잠깐만요... 그건 그냥 프레임을 더 넓게 잡은 것 아닌가요? 그럼 제대로 된 비판이라기보단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미봉책 아닌가요? 그냥 프레임을 없애면 안될까요? 글쎄요. 쉽지 않을겁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사실 사고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도입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의 틀을 인지하고 그것을 넘겼다고 해서 프레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 넘기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어떠한 절차를 따라 사고를 했을 것이고, 그것 역시도 하나의 프레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레임을 없애는 것은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없앴다고 주장해도, 그것에 대한 프레임이 또 생길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효용적인 일은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프레임 속의 것이 아닌 다양한 시야에서 주제를 검토해보는 것일겁니다.
넛지
우리가 누구에게 프레임을 걸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안 중에 넛지(nudge)도 고려해볼 수 있을겁니다.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누군가가 넛지전략으로 여러분들의 생각을 프레임 속에 가둘 수도 있기 때문에 다루는 것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넛지는 쉽게 말해서 은근슬쩍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있는 사고구조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가령 도로에서 우리는 노란색을 보통 주의 표지판 같은 것으로 많이 봤을겁니다. 이것에 착안해서 보도블럭과 벽을 노란색으로 칠해 운전자로 하여금 운전에 주의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넛지 중 하나입니다.(동아사이언스, 2019, https://www.dongascience.com/ko/news/28489)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생활 속의 문제를 피곤비용을 절감하면서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가 바라볼 것은 이런 실용적인 사례가 아니라 행동에서 은근슬쩍 프레임을 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유의해서 살펴봅시다.
5. AI와 비판적 사고
인지편향
음향실 효과
AI와 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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