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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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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st of Yi Sun-sin 01.jpg|섬네일|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위키백과}}
'''[[w:ko:이순신|이순신]]'''(李舜臣, 1545년 4월 28일([[조선 인종|인종]] 원년 음력 3월 8일) ~ 1598년 12월 16일([[조선 선조|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은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이다. 22살에 무예를 배우고 10년 뒤인 32살에 식년 무과시험에서 합격하였다. 1591년, 선조는 이순신을 종6품 정읍 현감에서 종4품 진도 군수(珍島郡守)로 승진시킨 후, 부임하기 전에 종3품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로 전임시켰으며, 이 또한 부임하기도 전에 정3품(소장)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 명령을 내렸다. 이는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확신해서 왕이 내린 특령이었다.
1592년 4월 13일(양력 5월 24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 해안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여기서 이순신은 수많은 성과들을 발휘하면서 일본의 북상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1597년 정유년에서 이순신은 수많은 사건들을 겪는다. 먼저 부산 왜영 방화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은 파직되어 옥살이를 치루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된다. 이때 파직된 이순신을 대신하여 권력을 차지한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게 되자 7월 23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킨다.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에서 일어난 군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며 12척의 배를 간신히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597년 9월 16일(음력) 전라도 진도의 울돌목 해안에서 총합 333척 규모의 일본군과 명량 해전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조선은 다시 제해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 전투는 정유재란 전체에서도 조선의 운명을 바꾼 성과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전면적인 철수를 결정한다. 조명연합군은 일본군의 섬멸을 위해 노량 해전을 벌이고, 1598년 12월 16일 이순신이 전사한다. 같은 해 12월 21일 남해왜성 소탕전으로 정유재란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 《난중일기》 ==
이순신. 노승석 옮김. (2025). 《난중일기》. 여해. ISBN 9791197378270
* 1월 1일. 맑음.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맏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환을 가눌 수 없다. 병마절도사(이광)의 군관 이경신이 병사의 편지와 설 선물, 그리고 긴 화살과 짧은 화살 등 여러 가지 물건(임금 진상용)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31
* 3월 29일. 맑음. 나라(정희왕후 윤씨)의 제삿날이라 출근하지 않았다. 아산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3
* 4월 15일. 맑음. 나라(공혜왕후 한씨)의 제삿날이라 출근하지 않았다. 순찰사(이광)에게 보낼 답장과 별도 기록을 적어서, 곧바로 역졸을 시켜 달려 보냈다. 해질 무렵에 영남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부산 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또 수사(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즉각 장계를 보내고 겸하여 순찰사(이광), 병마사(최원), 우수사(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 영남 관찰사(김수)의 공문도 왔는데, 역시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5
* 4월 16일. 밤 10시경에 영남 우수사(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의 지휘 군영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분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즉시 장계를 올리고, 또 삼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공문을 보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5
* 4월 18일. 아침에 흐렸다. 이른 아침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발포 권관은 이미 파직되었으니, 임시 장수를 정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관 나대용을 이 날로 바로 정하여 보냈다. 오후 2시경에 영남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동래도 함락되고, 양산(조영규), 울산(이언함) 두 수령도 조방장으로서 성으로 들어갔다가 모두 패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경상 좌병사(이각)와 경상 좌수사(박홍)가 군사를 이끌고 동래 뒤쪽까지 이르렀다가 급히 회군했다고 하니, 더욱 원통했다. 저녁에 순천 군사를 거느린 병방이 석보창(석축 성곽)에 머물러 있으면서 군사들을 인도하지 않으므로 잡아다가 가두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p.45~46
* 4월 20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영남 관찰사(김수)의 공문이 왔다. "큰 적들이 맹렬하게 몰려와 그 날카로운 기세를 대적할 수가 없으니, 그 승승장구함이 마치 무인지경에 든 것 같다."고 하면서, "전함을 정비해 가지고 와서 구원해 오도록 장계로 청했다."고 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6
* 5월 2일. 맑음. 삼도 순변사 이일과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도착했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남해 현령(기효근), 미조항 첨사(김승룡), 상주포, 곡해(남해 화계리), 평산포 만호(김축) 등이 왜적의 소식을 한번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무기 등의 물자가 모두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매우 놀랄 일이다. 정오경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 군수(신호)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아 한탄스럽다. 그러나 원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가능하겠는가. 저녁에 방답의 첩입선 세 척이 돌아와 앞바다에 정박했다. 비변사에서 세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창평 현령이 부임하였다는 편지가 와서 바쳤다. 이 날 저녁의 군대 암호는 용호(龍虎)이고, 복병은 산수(山水)라고 하였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p.47~48
'''1592년 5월 7일~28일 옥포 해전.'''
* '''오직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 뿐이요. 감히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참수할 것이다.'''
* 5월 7일. '''경거망동하지 말라. 산처럼 침착하게 하라.'''
== 《이충무공전서》 ==
* 임진년부터 5·6년간 적이 감히 호서와 호남으로 직공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을 누르고 있어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말미암아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自壬辰至于五六年間。賊不敢直突於兩湖者。以舟師之扼其路也。今臣戰船尙有 十二。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今若全廢舟師。則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此臣之所恐也。戰船雖寡。微臣不死。則賊不敢侮我矣。
:* 《이충무공전서》. 이분, 「행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_0120_010_0010&solrQ=query%E2%80%A0%E4%BB%8A%E8%87%A3%E6%88%B0%E8%88%B9%20%E5%B0%99%E6%9C%89%E5%8D%81%E4%BA%8C$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2$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MO_0232A_0120_010_0010 한국고전종합DB 원본]
*19일. 새벽, 공(公)이 한창 전투를 독려하던 중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맞았다. 공이 말하기를, "'''싸움이 한창 급하니, 부디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 十九日。黎明。公方督戰。忽中飛丸。公曰。戰方急。 愼勿言我死。言訖而逝。
:* 《이충무공전서》. 이분. 行錄[從子正郞芬]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_0120_010_0010&solrQ=query%E2%80%A0%E6%88%B0%E6%96%B9%E6%80%A5%20%E6%84%BC%E5%8B%BF%E8%A8%80%E6%88%91%E6%AD%BB$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8$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MO_0232A_0120_010_0010 한국고전종합DB 원본]
== 관련 언사 ==
[[파일:2012-05-06 Seoul Downtown.jpg|섬네일|가운데|500px|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 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전일 통제사 원균(元均)은 비할 데 없이 탐학(貪虐)하여 크게 군사들의 인심을 잃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배반하여 마침내 정유년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 왔다. (중략)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111027_005 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7일 무신 5/5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당시 조선 사관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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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이 이르기를, "전조가 병력이 강성하여 적을 토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란이 연달아 일어났으니 참으로 경이 우려했던 것과 같다."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소신의 소견으로는, 고(故)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 같은 이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이순신과 같은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란 당시에 이순신 하나밖에는 인물이 없었다."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순신의 아들 이예(李䓲)가 현재 충훈부 도사로 있는데 그도 얻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왜란 때에 이순신이 곧 죽게 되자 이예가 붙들어 안고서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적하고 있으니 삼가 발상(發喪)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예는 일부러 발상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 대신들은 필히 인재를 얻어 천거하였다. 경도 쓸 만한 인재를 천거하겠는가?"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순신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천거할 수 있겠지만 신은 병으로 몇 해 동안 칩거하여 사람들과 접하는 일이 드무니, 어찌 누가 쓸 만한지를 알아서 천거하겠습니까. 선묘조에 신은 이순신의 훌륭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천거하였는데 통제사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비국(備局)에서 다시 원균(元均)을 천거하여 통제사로 의망(擬望)하자, 신이 치계(馳啓)하여 이순신을 체차하고 원균으로 대신하면 틀림없이 일이 잘못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재삼 아뢰었으나 비국에서는 끝내 이순신을 체차하였습니다. 원균이 패배한 뒤에 다시 이순신으로 하여금 대신 군대를 이끌게 하였으나 대세가 이미 기울어 결국 패하고 말았으니, 지금까지도 이 일을 생각하면 울분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승정원일기》. 인조 9년 신미(1631) 4월 5일(무신) 맑음. 인조와 이원익의 대화. [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P0_A09_04A_05A 한국고전종합DB 번역본].
* 한국 민족의 역사는 이웃 민족의 침략에 항쟁한 고난의 역사다. 그러나 매양 그 고난을 헤치고 이겨 낸 극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극복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의 힘이 움직였음을 볼 수 있으니 그 힘이 바로 민족을 죽음 속에서도 건져낼 수 있는 민족 정기요 이 정기의 가장 대표적인 발양자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시다.
:
:서기 1545년 4월 28일 음력 3월초 8일 서울에서 탄생,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노량에서 순직,
:54년 동안의 일생을 통해 오직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은 이다.
:
:특히 1592년으로부터 7년 동안 싸운 저 유명한 임진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 종사는 위태롭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 적에 쓰러지는 국가, 민족의 운명을 한 손으로 바로잡아 일으켰으니 창생의 생명을 살리고 역사의 명맥을 잇게 한 크신 공로야말로 천추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만대에 겨레의 제사를 받으리라.
:
:비록 육신의 몸은 마지막 해전에서 최후의 피를 흘렸을지라도 꽃다운 혼은 저 태양이 되어 조국과 함께 길이 살아 계실 것이니 과연 우리 역사의 면류관이요 또 빛과 힘과 자랑이 아니겠느냐.
:
:아! 님이 함께 계시는 이 나라여 복이 있으라.
**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의 건립기
<hr width="50%"/>
*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 대한민국 해군 복무신조 《해군의 다짐》
[[분류:16세기 죽음]]
[[분류:조선 사람]]
[[분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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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st of Yi Sun-sin 01.jpg|섬네일|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위키백과}}
'''[[w:ko:이순신|이순신]]'''(李舜臣, 1545년 4월 28일([[조선 인종|인종]] 원년 음력 3월 8일) ~ 1598년 12월 16일([[조선 선조|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은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이다. 22살에 무예를 배우고 10년 뒤인 32살에 식년 무과시험에서 합격하였다. 1591년, 선조는 이순신을 종6품 정읍 현감에서 종4품 진도 군수(珍島郡守)로 승진시킨 후, 부임하기 전에 종3품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로 전임시켰으며, 이 또한 부임하기도 전에 정3품(소장)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 명령을 내렸다. 이는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확신해서 왕이 내린 특령이었다.
1592년 4월 13일(양력 5월 24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 해안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w:임진왜란|임진왜란]]이 시작된다. 여기서 이순신은 수많은 성과들을 발휘하면서 일본의 북상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1597년 정유년에서 이순신은 수많은 사건들을 겪는다. 먼저 부산 왜영 방화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은 파직되어 옥살이를 치루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된다. 이때 파직된 이순신을 대신하여 권력을 차지한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게 되자 7월 23일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킨다.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에서 일어난 군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며 12척의 배를 간신히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597년 9월 16일(음력) 전라도 진도의 울돌목 해안에서 총합 333척 규모의 일본군과 명량 해전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조선은 다시 제해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 전투는 정유재란 전체에서도 조선의 운명을 바꾼 성과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군은 전면적인 철수를 결정한다. 조명연합군은 일본군의 섬멸을 위해 노량 해전을 벌이고, 1598년 12월 16일 이순신이 전사한다. 같은 해 12월 21일 남해왜성 소탕전으로 정유재란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 《난중일기》 ==
이순신. 노승석 옮김. (2025). 《난중일기》. 여해. ISBN 9791197378270
* 1월 1일. 맑음.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맏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환을 가눌 수 없다. 병마절도사(이광)의 군관 이경신이 병사의 편지와 설 선물, 그리고 긴 화살과 짧은 화살 등 여러 가지 물건(임금 진상용)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31
* 3월 29일. 맑음. 나라(정희왕후 윤씨)의 제삿날이라 출근하지 않았다. 아산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3
* 4월 15일. 맑음. 나라(공혜왕후 한씨)의 제삿날이라 출근하지 않았다. 순찰사(이광)에게 보낼 답장과 별도 기록을 적어서, 곧바로 역졸을 시켜 달려 보냈다. 해질 무렵에 영남우수사(원균)가 보낸 통첩에,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부산 영도)에 정박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또 수사(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즉각 장계를 보내고 겸하여 순찰사(이광), 병마사(최원), 우수사(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 영남 관찰사(김수)의 공문도 왔는데, 역시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5
* 4월 16일. 밤 10시경에 영남 우수사(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의 지휘 군영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분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즉시 장계를 올리고, 또 삼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공문을 보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5
* 4월 18일. 아침에 흐렸다. 이른 아침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발포 권관은 이미 파직되었으니, 임시 장수를 정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관 나대용을 이 날로 바로 정하여 보냈다. 오후 2시경에 영남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동래도 함락되고, 양산(조영규), 울산(이언함) 두 수령도 조방장으로서 성으로 들어갔다가 모두 패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경상 좌병사(이각)와 경상 좌수사(박홍)가 군사를 이끌고 동래 뒤쪽까지 이르렀다가 급히 회군했다고 하니, 더욱 원통했다. 저녁에 순천 군사를 거느린 병방이 석보창(석축 성곽)에 머물러 있으면서 군사들을 인도하지 않으므로 잡아다가 가두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p.45~46
* 4월 20일.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영남 관찰사(김수)의 공문이 왔다. "큰 적들이 맹렬하게 몰려와 그 날카로운 기세를 대적할 수가 없으니, 그 승승장구함이 마치 무인지경에 든 것 같다."고 하면서, "전함을 정비해 가지고 와서 구원해 오도록 장계로 청했다."고 했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46
* 5월 2일. 맑음. 삼도 순변사 이일과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도착했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남해 현령(기효근), 미조항 첨사(김승룡), 상주포, 곡해(남해 화계리), 평산포 만호(김축) 등이 왜적의 소식을 한번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무기 등의 물자가 모두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매우 놀랄 일이다. 정오경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 군수(신호)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아 한탄스럽다. 그러나 원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가능하겠는가. 저녁에 방답의 첩입선 세 척이 돌아와 앞바다에 정박했다. 비변사에서 세 장의 공문이 내려왔다. 창평 현령이 부임하였다는 편지가 와서 바쳤다. 이 날 저녁의 군대 암호는 용호(龍虎)이고, 복병은 산수(山水)라고 하였다.
**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pp.47~48
'''1592년 5월 7일~28일 옥포 해전.'''
* '''오직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 뿐이요. 감히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참수할 것이다.'''
* 5월 7일. '''경거망동하지 말라. 산처럼 침착하게 하라.'''
== 《이충무공전서》 ==
* 임진년부터 5·6년간 적이 감히 호서와 호남으로 직공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을 누르고 있어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말미암아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自壬辰至于五六年間。賊不敢直突於兩湖者。以舟師之扼其路也。今臣戰船尙有 十二。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今若全廢舟師。則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此臣之所恐也。戰船雖寡。微臣不死。則賊不敢侮我矣。
:* 《이충무공전서》. 이분, 「행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_0120_010_0010&solrQ=query%E2%80%A0%E4%BB%8A%E8%87%A3%E6%88%B0%E8%88%B9%20%E5%B0%99%E6%9C%89%E5%8D%81%E4%BA%8C$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2$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MO_0232A_0120_010_0010 한국고전종합DB 원본]
*19일. 새벽, 공(公)이 한창 전투를 독려하던 중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맞았다. 공이 말하기를, "'''싸움이 한창 급하니, 부디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 十九日。黎明。公方督戰。忽中飛丸。公曰。戰方急。 愼勿言我死。言訖而逝。
:* 《이충무공전서》. 이분. 行錄[從子正郞芬]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_0120_010_0010&solrQ=query%E2%80%A0%E6%88%B0%E6%96%B9%E6%80%A5%20%E6%84%BC%E5%8B%BF%E8%A8%80%E6%88%91%E6%AD%BB$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MO_AA$solr_toalCount%E2%80%A08$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BD_ITKC_MO_0232A_0120_010_0010 한국고전종합DB 원본]
== 관련 언사 ==
[[파일:2012-05-06 Seoul Downtown.jpg|섬네일|가운데|500px|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 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전일 통제사 원균(元均)은 비할 데 없이 탐학(貪虐)하여 크게 군사들의 인심을 잃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배반하여 마침내 정유년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 왔다. (중략)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111027_005 선조실록106권, 선조 31년 11월 27일 무신 5/5 기사 /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당시 조선 사관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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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이 이르기를, "전조가 병력이 강성하여 적을 토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란이 연달아 일어났으니 참으로 경이 우려했던 것과 같다."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소신의 소견으로는, 고(故)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 같은 이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이순신과 같은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란 당시에 이순신 하나밖에는 인물이 없었다."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순신의 아들 이예(李䓲)가 현재 충훈부 도사로 있는데 그도 얻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왜란 때에 이순신이 곧 죽게 되자 이예가 붙들어 안고서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적하고 있으니 삼가 발상(發喪)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예는 일부러 발상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 대신들은 필히 인재를 얻어 천거하였다. 경도 쓸 만한 인재를 천거하겠는가?"
:하니,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순신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천거할 수 있겠지만 신은 병으로 몇 해 동안 칩거하여 사람들과 접하는 일이 드무니, 어찌 누가 쓸 만한지를 알아서 천거하겠습니까. 선묘조에 신은 이순신의 훌륭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천거하였는데 통제사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비국(備局)에서 다시 원균(元均)을 천거하여 통제사로 의망(擬望)하자, 신이 치계(馳啓)하여 이순신을 체차하고 원균으로 대신하면 틀림없이 일이 잘못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재삼 아뢰었으나 비국에서는 끝내 이순신을 체차하였습니다. 원균이 패배한 뒤에 다시 이순신으로 하여금 대신 군대를 이끌게 하였으나 대세가 이미 기울어 결국 패하고 말았으니, 지금까지도 이 일을 생각하면 울분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승정원일기》. 인조 9년 신미(1631) 4월 5일(무신) 맑음. 인조와 이원익의 대화. [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P0_A09_04A_05A 한국고전종합DB 번역본].
* 한국 민족의 역사는 이웃 민족의 침략에 항쟁한 고난의 역사다. 그러나 매양 그 고난을 헤치고 이겨 낸 극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극복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의 힘이 움직였음을 볼 수 있으니 그 힘이 바로 민족을 죽음 속에서도 건져낼 수 있는 민족 정기요 이 정기의 가장 대표적인 발양자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시다.
:
:서기 1545년 4월 28일 음력 3월초 8일 서울에서 탄생,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노량에서 순직,
:54년 동안의 일생을 통해 오직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은 이다.
:
:특히 1592년으로부터 7년 동안 싸운 저 유명한 임진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 종사는 위태롭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 적에 쓰러지는 국가, 민족의 운명을 한 손으로 바로잡아 일으켰으니 창생의 생명을 살리고 역사의 명맥을 잇게 한 크신 공로야말로 천추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만대에 겨레의 제사를 받으리라.
:
:비록 육신의 몸은 마지막 해전에서 최후의 피를 흘렸을지라도 꽃다운 혼은 저 태양이 되어 조국과 함께 길이 살아 계실 것이니 과연 우리 역사의 면류관이요 또 빛과 힘과 자랑이 아니겠느냐.
:
:아! 님이 함께 계시는 이 나라여 복이 있으라.
**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의 건립기
<hr width="50%"/>
*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 대한민국 해군 복무신조 《해군의 다짐》
[[분류:16세기 죽음]]
[[분류:조선 사람]]
[[분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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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장 ==
* [[/연습장]]
== 완성된 문서 ==
* [[수학]]
* [[피아니스트 (2002년 영화)]]
* [[번역]]
* [[천병희]]
* [[허준이]]
* [[논어]]
== 보완이 필요한 문서 ==
* [[공자]]
* [[석가모니]]
* [[이순신]]
* [[구운몽]]
* [[알렉산드르 푸시킨]]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죄와 벌]]
* [[안톤 체호프]]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안네 프랑크]]
* [[한나 아렌트]]
== 문서 완성도 ==
=== 최상 ===
* [[수학]]
* [[피아니스트 (2002년 영화)]]
* [[번역]]
* [[천병희]]
* [[허준이]]
* [[이마누엘 칸트]]
* [[프리드리히 니체]]
* [[플라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논어]]
=== 상 ===
* [[공자]]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나의 아저씨]]
=== 중 ===
* [[안톤 체호프]]
* [[헤르만 헤세]]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안네 프랑크]]
* [[한나 아렌트]]
* [[이순신]]
* [[구운몽]]
* [[볼테르]]
* [[호라티우스]]
* [[일리아스]]
* [[오디세이아]]
* [[율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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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후보들
== 1 ==
*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논어]]》
== 2 ==
* 한 사람을 제게 말씀하옵소서, 무사 여신이시여, 숱하게 변전한 그이는<br/>신성한 도시 트로이아를 무너뜨린 다음, 참 많이도 떠돌았습니다.
《[[오디세이아]]》
== 3 ==
*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비록 산속 깊은 절에 있다 해도 도를 이룰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근본을 잊지 않으면 속세에 푹 빠져도 마침내 돌아올 곳이 있다.
《[[구운몽]]》
== 4 ==
* 과학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이런 자명한 사실은 잊어버리기 쉽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5 ==
* 우리가 80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약 30,000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에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3분의 1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본 적 있으신가요? 쉼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30,000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3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로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 [[허준이]]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
== 6 ==
*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데 오로지 겁을 먹은 탓에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이것이야말로 공리이다... 궁금하군,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새로운 걸음,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하지...
《[[죄와 벌]]》
== 7 ==
* 어떤 수학자들은 넓은 조망만을 좋아합니다. 어떤 결과를 마주하면 그들은 즉시 그것을 일반화하기를 꿈꾸며, 이웃한 결과들과 엮어 더 높은 피라미드의 기초로 삼아 더 멀리 바라보고자 합니다. 반면 이러한 지나치게 광범위한 시각을 꺼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풍경이 아름다울지라도 먼 지평선은 언제나 다소 흐릿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부 사항을 더 잘 보고 이를 완벽의 경지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를 좁은 범위에 한정하기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세공사처럼 일하며, 시인보다는 예술가에 가깝습니다.
** [[앙리 푸앵카레]]
== 8 ==
* 개미와 매미의 우화가 암시해주듯, 씨 뿌린 자는 가을이 되면 거둘 것이 있어도 씨 뿌리지 않은 자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씨란 주로 혼자 책 읽고 사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모임이나 만남은 되도록 줄여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두려워질 때도 있겠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만이 생각이 커지고, 몰려다니면 내 생활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순간 가장 후회스런 것 중 하나는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는 일에 쓰지 않고 허송세월했다는 느낌이 아닐까요? 그러나 의미 있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사람은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할 것입니다.
** [[천병희]]
== 9 ==
*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언제나 인식이 대상들과 관계를 맺든지 간에, 그로써 인식이 직접적으로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고 모든 사고가 수단으로 목표하는 것은 직관이다. 그런데 직관은 오로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질 때만 생기며, 다시금 그러나 이런 일은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대상이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촉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 [[이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 10 ==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데미안]]》
== 11 ==
* 모든 사람들이 몸에 있어서 그리고 영혼에 있어서 임신하고 있고, 어떤 나이에 이르게 되면 우리 본성은 출산하기를 욕망합니다. 그런데 추한 것 안에서는 출산할 수가 없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 [[플라톤]] 《향연》
== 12 ==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3 ==
* 우리 의식 속에 결과가 확정되기까지의 이런 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우리가 뭔가를 관찰했다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그와 관련한 자연법칙을 알아야 하지요. 따라서 이론, 즉 자연법칙을 아는 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감각적 인상을 토대로 배후의 과정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줘요. 따라서 뭔가를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기존의 자연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법칙을 정리해 내는 작업이라 해도, 관찰할 수 있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의식에 이르는 길에서 기존의 자연법칙이 정확히 기능하여 우리가 그 법칙을 신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관찰에 대해 이야기해도 된다는 의미예요.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부분과 전체》 중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의 대화
== 14 ==
*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 15 ==
*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
** [[호라티우스]] 《송시》
== 16 ==
*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소설)|싯다르타]]》
== 17 ==
* 당신에게만은 내 마음속 비밀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나를 격려해주세요.
**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 18 ==
*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 [[안톤 체호프]]
== 19 ==
* 경거망동하지 말라. 산처럼 침착하게 하라.
** [[이순신]]. 1592년 5월 7일.
== 20 ==
* 뱀의 독이 퍼지면 약초로 다스리듯,
:이미 생겨난 분노를 극복하는 수행승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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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div style="box-shadow:0 0 0.2em #999999; border-radius:0.2em; margin:0.5em 0.5em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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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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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싯다르타 (소설)]]
• [[양들의 침묵]]
• [[피아니스트 (2002년 영화)]]
• [[살인의 추억]]
•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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