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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관한 다음과 같은 명언이나 격언이 있다.
== 어록 ==
*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강력한 위로 수단이다.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잘 넘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80. 〈제4장 잠언과 간주곡〉
[[분류: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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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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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어록 ==
=== 《아침놀》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상의 황혼》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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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어록 ==
=== 《아침놀》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우상의 황혼》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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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죽음]]
[[분류:독일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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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어록 ==
=== 《아침놀》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1886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우상의 황혼》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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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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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아침놀》(1881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1882년)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1886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우상의 황혼》(1888년)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1894년)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1908년)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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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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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아침놀》(1881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1882년)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1886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의 영혼과 그 한계, 이제까지 도달된 인간의 내적 경험의 범위와 높이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깊이와 먼 거리(die Fernen), 영혼이 겪은 '''이제까지의''' 역사 전체와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영혼의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타고난 심리학자이자 '위대한 사냥'을 즐기는 자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사냥터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13. 〈제3장 종교적인 것〉
* 세계를 깊이 통찰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피상성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피상적이고 가볍고 거짓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8. 〈제3장 종교적인 것〉
* 일단 결단을 내리면 제아무리 옳은 반론이 제시되더라도 귀를 닫는 것, 이것은 강한 성격의 특징이다. 따라서 때로는 어리석은 의지가 되기도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5.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통상적인 일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9.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그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일찍이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던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8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p.268~269. 〈제7장 우리의 미덕〉
* '''사람들의 등급을 알아차릴 수 있는 본능'''이야말로 그러한 본능을 갖는 사람이 이미 '''높은 등급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75.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깊은 고뇌를 겪은 모든 인간은 정신적인 긍지와 역겨움을 갖는다. 인간은 '''얼마나''' 깊이 고뇌할 수 있는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깊은 고뇌를 겪은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뇌 덕분에 가장 영리하고 현명한 인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멀고도 무서운 많은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자신은 한때 그것들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는 전율할 만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러한 확신에 철저하게 차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91.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우상의 황혼》(1888년)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1894년)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1908년)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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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죽음]]
[[분류:독일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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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아침놀》(1881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1882년)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1886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의 영혼과 그 한계, 이제까지 도달된 인간의 내적 경험의 범위와 높이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깊이와 먼 거리(die Fernen), 영혼이 겪은 '''이제까지의''' 역사 전체와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영혼의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타고난 심리학자이자 '위대한 사냥'을 즐기는 자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사냥터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13. 〈제3장 종교적인 것〉
* 세계를 깊이 통찰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피상성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피상적이고 가볍고 거짓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8. 〈제3장 종교적인 것〉
* 일단 결단을 내리면 제아무리 옳은 반론이 제시되더라도 귀를 닫는 것, 이것은 강한 성격의 특징이다. 따라서 때로는 어리석은 의지가 되기도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5.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통상적인 일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9.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그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일찍이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던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8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p.268~269. 〈제7장 우리의 미덕〉
* '''사람들의 등급을 알아차릴 수 있는 본능'''이야말로 그러한 본능을 갖는 사람이 이미 '''높은 등급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75.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깊은 고뇌를 겪은 모든 인간은 정신적인 긍지와 역겨움을 갖는다. 인간은 '''얼마나''' 깊이 고뇌할 수 있는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깊은 고뇌를 겪은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뇌 덕분에 가장 영리하고 현명한 인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멀고도 무서운 많은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자신은 한때 그것들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는 전율할 만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러한 확신에 철저하게 차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91.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도덕의 계보》(1887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21). 《도덕의 계보》. 아카넷. ISBN 9788957337356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 탐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11. 〈저자 서문〉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으로 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해하고 혼동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타당하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p.12~13. 〈저자 서문〉
* 나는 도덕을, 다시 말해 이제까지 지상에서 도덕으로 찬양되어 온 모든 것을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은 나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특유한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나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일찍부터 나타났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15. 〈저자 서문〉
* '''원한''' 자체가 창조적인 것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됨으로써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은 시작된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59. 〈'선과 악', '좋음과 나쁨'〉
== 《우상의 황혼》(1888년)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1894년)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1908년)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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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jpg|thumb|right|[[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w: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llang|de|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 《아침놀》(1881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04). 《아침놀》. 책세상. ISBN 9788970134345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 《즐거운 학문》(1882년) ==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옮김. (2005). 《즐거운 학문》. 책세상. ISBN 9788970135441
*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 ==
=== 머리말 ===
*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br>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br>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br>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br>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br>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 제1부 ===
*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파일:Face paint girls.jpg|섬네일|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파일:Pieris rapae small white female in flight.jpg|섬네일|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파일:El Greco 011.jpg|오른쪽|섬네일|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 제2부 ===
[[파일:Vincent 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섬네일|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br>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 제3부 ===
*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 제4부 ===
*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 《선악의 저편》(1886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18). 《선악의 저편》. 아카넷. ISBN 9788957336113
*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철학자가 독단론자인 한 그들은 여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 〈저자 서문〉
* 이제까지의 모든 오류 가운데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한 독단론자의 과오, 즉 순수정신과 선(善) 자체를 날조해낸 플라톤의 오류였다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은혜를 잊지는 말자. 이제 그 오류가 극복되었고 유럽이 악몽에서 깨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최소한 보다 더 건강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오류와 투쟁하면서 육성된 모든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오로지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 〈저자 서문〉
*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는 진리에의 의지, 모든 철학자가 이제까지 경의를 표하면서 언급해온 저 유명한 진실성, 이 같은 진리에의 의지는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던가! 그 기묘하고 곤혹스럽고 미심쩍은 문제들을!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우리는 이러한 의지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묻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의 가치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니면 우리가 그 문제 앞으로 다가간 것일까?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1.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어떤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는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보존하며, 얼마나 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 감정에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저항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의 저편에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29.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8.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인간이 단순화하고 왜곡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가! 일단 이러한 경이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의의 모든 것을 밝고 자유롭고 경쾌하고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왔는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3. 〈제2장 자유정신〉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74. 〈제2장 자유정신〉
*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문체의 템포다. 문체의 템포는 민족의 특성에, 생리학적으로 말해서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원문의 대담하고 경쾌한 템포를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오역에 가까운 것도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82. 〈제2장 자유정신〉
*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저 감정은 너무나 많은 달콤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두 배로 불신을 품게 되며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유혹'''이 아닌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것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단순한 구경꾼에게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하자.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93.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04. 〈제2장 자유정신〉
* 인간의 영혼과 그 한계, 이제까지 도달된 인간의 내적 경험의 범위와 높이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깊이와 먼 거리(die Fernen), 영혼이 겪은 '''이제까지의''' 역사 전체와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영혼의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타고난 심리학자이자 '위대한 사냥'을 즐기는 자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사냥터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13. 〈제3장 종교적인 것〉
* 세계를 깊이 통찰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피상성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피상적이고 가볍고 거짓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38. 〈제3장 종교적인 것〉
* 일단 결단을 내리면 제아무리 옳은 반론이 제시되더라도 귀를 닫는 것, 이것은 강한 성격의 특징이다. 따라서 때로는 어리석은 의지가 되기도 한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65.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통상적인 일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79.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그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일찍이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던가?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87.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p.268~269. 〈제7장 우리의 미덕〉
* '''사람들의 등급을 알아차릴 수 있는 본능'''이야말로 그러한 본능을 갖는 사람이 이미 '''높은 등급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75.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깊은 고뇌를 겪은 모든 인간은 정신적인 긍지와 역겨움을 갖는다. 인간은 '''얼마나''' 깊이 고뇌할 수 있는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깊은 고뇌를 겪은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뇌 덕분에 가장 영리하고 현명한 인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멀고도 무서운 많은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자신은 한때 그것들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는 전율할 만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그러한 확신에 철저하게 차 있다.
**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391.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 《도덕의 계보》(1887년)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2021). 《도덕의 계보》. 아카넷. ISBN 9788957337356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조차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 탐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11. 〈저자 서문〉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으로 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해하고 혼동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타당하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p.12~13. 〈저자 서문〉
* 나는 도덕을, 다시 말해 이제까지 지상에서 도덕으로 찬양되어 온 모든 것을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은 나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특유한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나 자신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일찍부터 나타났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15. 〈저자 서문〉
* '''원한''' 자체가 창조적인 것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됨으로써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은 시작된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59. 〈'선과 악', '좋음과 나쁨'〉
*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동물을 기른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자연이 인간과 관련하여 자신에게 부여한 바로 저 역설적인 과제 자체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해결해야 할 본래적인 문제가 아닐까?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97. 〈'죄', '양심의 가책' 및 기타〉
* 공동체는 힘이 강해짐에 따라 개인의 위법행위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위법행위가 더 이상 이전만큼 전체의 존립에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더 이상 '평화의 울타리 밖으로 내쫓기고' 추방당하지 않게 된다. 일반의 분노도 더 이상 이전처럼 제멋대로 개인에게 퍼부어질 수 없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공동체가 이러한 분노, 특히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자의 분노로부터 범죄자를 용의주도하게 방어하고 보호한다.
**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p.124. 〈'죄', '양심의 가책' 및 기타〉
== 《우상의 황혼》(1888년) ==
*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파일:Vatsoc.jpg|오른쪽|섬네일|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 《안티크리스트》(1894년) ==
*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 《이 사람을 보라》(1908년) ==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유고 ==
*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파일:Kant von Meno Hass.jpg|섬네일|right|[[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출처 없음 ==
*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니체 관련 어록 ==
*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파일:Van Gogh - Starry Night - Google Art Project.jpg|244px|thumb|right|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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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죽음]]
[[분류:독일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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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요한 볼프강 폰 괴테|요한 볼프강 폰 괴테]]'''({{llang|de|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안장혁 옮김. (201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ISBN 9788954611824
* 만일 당신이 베르테르와 같은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의 고통에서 위안을 얻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행여 운명이나 자신의 과오로 인해 절친한 친구를 찾기 힘든 처지라면, 이 작은 책을 벗으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서문〉
* 친구, 우리 인간들이—인간들이 어떻게 그런 면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과도한 상상력에 의존해가면서까지 불행했던 지난 추억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로 현재의 삶을 감내하고자 한다면 분명 괴로움은 줄어들 것이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2 (1771년 5월 4일)
* 이곳으로 내 책을 보내도 좋으냐고 물었지? 친구, 제발 그 일만은 말아주게나! 나는 이제 더이상 누구의 자극이나 격려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네. 그러잖아도 내 마음은 몹시 요동치고 있으니 말일세.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자장가일세. 그리고 그 자장가를 내가 좋아하는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원하는 만큼 찾아냈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6 (1771년 5월 13일)
* 나와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여자친구가 결국 세상을 등졌다니! 그토록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건만! 나 자신을 나무라고 싶네. "넌 바보 멍청이다! 이 세상에서는 더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을 무모하게 찾고 있으니!" 그러나 한때 그녀는 내 사람이었지. 나는 그녀의 심장과 그녀의 거룩한 영혼을 느꼈다네. 그 영혼과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던 까닭에 나 자신을 실제의 나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라고 느끼곤 했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9 (1771년 5월 17일)
*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딜 가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20 (1771년 5월 22일)
* 아이들은 뭔가를 원하면서도 왜 그것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학식 있는 교사나 가정교사 들의 의견이 일치하네. 하지만 어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네. 그들도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이 세상을 방황하지. 뿐만 아니라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21 (1771년 5월 22일)
* 빌헬름,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친숙하게 대해주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라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리고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속에서 언젠가는 그들이 필요로 할 모든 덕목과 에너지의 싹이 움트는 것을 보고 있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45 (1771년 6월 29일)
* 빌헬름, 우리가 사랑 없는 세계에서 산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불 꺼진 환등기와 다를 바 없겠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59 (1771년 7월 18일)
* 인간이 사랑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없을 걸세.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77 (1771년 8월 15일)
*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이 불행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과연 불변의 법칙일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78 (1771년 8월 18일)
* 그렇다네. 나는 그저 나그네에 불과해. 세상을 떠도는 순례자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15 (1772년 6월 16일)
* 나만 이 모양으로 사는 건 아닐 테지. 모든 사람이 희망에 속고 기대에 배신당하게 되어 있으니 말일세.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17 (1772년 8월 4일)
* 빌헬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아직은 가치가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을 인식할 줄도, 느낄 줄도 모르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78 (1772년 9월 15일)
* 인간관계라는 게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을 때는, 가끔 내 가슴을 찢고 뇌수를 칼로 찌르고 싶어지네. 사랑도, 기쁨도, 온정도, 즐거움도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는 한 남도 내게 베풀지 않는다네. 그리고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냉정하고 의기소침하다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30 (1772년 10월 27일)
== 《괴테와의 대화》 ==
요한 페터 에커만. 장희창 옮김. (2008).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ISBN 9788937461767
=== 1823년 ===
* 한 가지 일을 분명히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많은 일에도 쓸모가 있는 법이네. 세상사가 어떻게 변할지는 헤아리기 어려운 거야.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45 (1823년 6월 10일 화요일, 바이마르)
* 가능하면 대작은 피하도록 하게.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재능과 탁월한 노력을 겸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작 앞에서는 고생하는 법이기 때문이네. 나도 그런 식으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알고 있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던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만 착실히 했더라면 백 권의 책이라도 썼을 텐데 말이야.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p.55~56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현재는 언제나 현재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네. 시인의 마음속에 날마다 솟아오르는 사상이나 느낌은 그 모두가 표현되기를 원하고 또 표현되어야만 하네. 그러나 보다 큰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사상을 등지고 생활 자체의 안락함까지 잃어버리는 걸세.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56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반면에 시인이 날마다 현재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한결같이 신선한 기분으로 다룬다면 무언가 좋은 걸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네.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56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 노인들의 말을 잘 듣고 행동에 옮기기라도 하던가? 모두들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고 또 그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방황할 시간이 없네. 그건 우리 노인들의 몫이었지. 젊은 사람들이 다시 같은 길을 가고자 한다면 우리의 노력과 방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지!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57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세상은 너무나 넓고 풍부하며 인생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시를 쓸 계기가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어. 하지만 모든 시는 어떤 계기에서 쓰여야 하네. 말하자면 시를 쓰는 동기와 소재가 현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거지.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58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특히 자기 멋대로 커다란 걸 꾸며내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군.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견해를 억지로 나타내려고 하거든. 젊은 시절에 성숙한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도 말일세.
**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60 (1823년 9월 18일 목요일, 예나)
== 관련 언사 ==
* 괴테와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하여 수록한 이 책의 대부분은, 가치 있는 경험이나 진기한 체험을 글로 포착해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자연스러운 충동으로부터 생겨났다. 더욱이 그 뛰어난 인물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물론이고 수년간이나 그 사람과 함께 보낸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겨서 즐거이 기록했고, 그것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자 했다.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p.7
{{기본정렬:괴테, 요한 볼프강}}
[[분류:19세기 죽음]]
[[분류:독일의 시인]]
[[분류:독일의 극작가]]
[[분류:낭만주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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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
{{정리 필요}}
'''시간'''은 사건을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시간에 관한 다음과 같은 명언이나 격언이 있다.
== 어록 ==
* 너는 머뭇거릴 수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 ─ [[벤저민 프랭클린]] <ref>{{뉴스 인용|제목=새 출발 앞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명 인사들 명언30 |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97111|출판사=mk뉴스|저자=김지영|쪽=|작성일자=2011-02-15|확인일자=2011-05-02}}
</ref>
* 오늘 할 수 있는 일에만 전력을 쏟으라.
*: ─ [[뉴턴]]
* 나는 장래의 일을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이 곧 오게 될 테니까.
*: ─ [[아인슈타인]]
*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 ─ [[롱펠로]]
* 오늘이라는 날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 ─ [[단테]]
* 그대의 하루하루를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 ─ [[호라티우스]]
*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
*: ─ [[소포클레스]]
*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
*: ─ [[J.하비스]]
* 시간의 참된 가치를 알라. 그것을 붙잡아라. 억류하라.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즐겨라. 게을리 하지 말며, 헤해지지 말며, 우물거리지 말라.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 ─ [[체스터필드]]
* 오늘 하루 이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하루를 착한 행위로 장식하라.
*: ─ [[루스벨트]]
* 인생은 길지 않다. 그러므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까 하고 이것 저것 생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 ─ [[존슨]]
*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음을 기억하라.
*: ─ [[캠피스]]
*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 있는 인간이 마음을 쓰는 것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 ─ [[쇼펜하우에르]]
* 때가오면 모든것이 분명해진다. 시간은 진리의 아버지이다.
*: ─ [[타블레]]
* 희망과 근심, 공포와 불안 가운데 그대 앞에 빛나고 있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것이다.
*: ─ [[호레스]]
* 내일은 시련에 대응하는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줄 것이다.
*: ─ [[C.힐티]]
* 가라, 달려라, 그리고 세계가 6일 동안에 만들어졌음을 잊지 말라.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에게 청구할 수 있지만 시간만은 안된다.
*: ─ [[나폴레옹]]
* 지금이야말로 일할때다. 지금이야 말로 싸울 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때다.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수 있는가.
*: ─ [[토마스 아켐피스]]
*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은 인생을 구성한 재료니까. 똑같이 출발하였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사람은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거리는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했느냐 이용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냈느냐에 달려 있다.
*: ─ [[벤자민 프랭클린]]
*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 ─ F.실러.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뚜렷이 구분하라. 시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매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유용하게 활용하라. 그러면 젊은 날은 유쾌함으로 가득 찰 것이고 늙어서도 후회할 일이 적어질 것이며 비록 가난할 때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 ─ [[루이사 메이 올콧]]
* 선천적으로 현명한 사람은 없다. 시간이 모든것을 완성한다.
*: ─ [[세르반테스]]
* 시간이 말하는 것을 잘 들어라. 시간은 가장 현명한 법률고문이다.
*: ─ [[페리클레스]]
*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
*: ─ [[알렉산드리아 피네]]
* 사람은 금전을 시간보다 중히 여기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은 금전으론 살 수 없다.
*: ─ [[유태 격언]]
* 계획이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다.
*: ─ [[드래커]]
* 세월은 본래 길건만 바쁜 자는 스스로 줄이고, 천지는 본래 넓건만 천한 자는 스스로 좁히며,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은 본래 한가한 것이건만 악착같은 자는 스스로 분주하니라.
*: ─ [[채근담]]
*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실은 없다.
*: ─ [[그라시안]]
* 시간을 얻는 사람은 만사를 얻는다.
*: ─ [[디즈레일리]]
* 시간은 말로써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멋진 만물의 소재이다.
*: ─ [[아놀드버넷]]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을 잘 이용한 사람에겐 승리가 있다.
*: ─ [[아뷰난드]]
* 지나가는 시간이란 잃어버린 시간이며, 게으름과 무기력한 시간이며, 몇 번이고 맹세를 해도 지키지 못하는 시간이며, 때때로 이사를 하고 끊임없이 돈을 구하는데 분주한 시간이다.
*: ─ [[샤르트르]]
*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그 새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가 되면 마땅히 스스로 공부에 힘써야 하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 [[도연명]]
* 하루하루를 우리의 마지막 날인 듯이 보내야 한다.
*: ─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 ─ [[톨스토이]]
* 전력을 다해서 시간에 대항하라.
*: ─ [[톨스토이]]
* 일은 그것이 쓰일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팽창한다.
*: ─ [[파킨스]]
*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간은 묻지 않았는 데도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다.
*: ─ [[에우리피데스]]
* 오늘 계란 하나를 가지는 것보다 내일 암탉 한마리를 가지는 쪽이 낫다.
*: ─ [[플러]]
* 우리는 일 년 후면 다 잊어 버릴 슬픔을 간직하느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다. 소심하게 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
*: ─ [[카네기]]
*시간의 날개를 타고 슬픔은 날아가 버린다.
*: ─ [[라퐁테느]]
*시간에의 충실, 그것이 행복이다.
*: ─ [[에머슨]]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줄 아는 사람이다.
*: ─ [[에센바흐]]
*오늘 가장좋게 웃는자는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 ─ [[니체]]
* 나에게 나무를 자를 여섯 시간을 준다면, 나는 먼저 네 시간을 도끼를 날카롭게 하는 데에 쓰겠다.
*: {{llang|en|Give me six hours to chop down a tree and I will spend the first four sharpening the axe.}}
*: ─ [[링컨]]
* 한가로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 ─ [[소크라테스]]
* 제일 많이 바쁜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을 가진다.
*: ─ 비네
* 시간은 그 사용 여하에 따라서 금도 되고 납도 된다.
*: ─ 프레보
* 바쁜 사람은 눈물을 흘릴 시간이 없다.
*: ─ 바이런
=== 괴테 ===
* 삼십 분이란 티끌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동안이라도 티끌과 같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함이다.
* 오늘이란 너무 평범한 날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 가장 중요한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ref>고영성, 신영준, <<완벽한 공부법>>, 142쪽</ref>
== 각주 ==
{{위키백과}}
<references/>
[[분류: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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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z az a ház.jpg|섬네일]]
'''인간관계''' 또는 대인관계(對人關係)는 둘 이상의 사람이 빚어 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계는 추론, 사랑, 연대, 일상적인 사업 관계 등의 사회적 약속에 기반을 둔다.
== 어록 ==
* 인간관계라는 게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을 때는, 가끔 내 가슴을 찢고 뇌수를 칼로 찌르고 싶어지네. 사랑도, 기쁨도, 온정도, 즐거움도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는 한 남도 내게 베풀지 않는다네. 그리고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냉정하고 의기소침하다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동네. p.130 (1772년 10월 27일)
[[분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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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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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인라인}}
'''질투'''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언들이 있다.
== 어록 ==
* 인간은 경멸하는 상대를 증오하지는 않고, 자신과 대등하거나 더 높다고 생각하는 자만을 증오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p.184. 〈제4장 잠언과 간주곡〉
== 같이 보기 ==
* [[미움]]
[[분류: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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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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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 1부 ==
*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의 종이 열세 번 울리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턱을 가슴에 처박고 승리 맨션의 유리문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막을 새도 없이 모래 바람이 그 뒤를 따라 들이닥쳤다.
** 《1984》. 민음사. p.9
* 윈스턴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경기가 좋을 때도 좀처럼 가동되지 않았다. 그런 터에 지금은 한낮이라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증오주간(Hate Week)에 대비한 절약 운동 탓이었다.
** 《1984》. 민음사. pp.9~10
*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된 포스터였다. 포스터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 《1984》. 민음사. pp.9~10
* 방 안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쇠 생산과 관계되는 무언가 숫자로 이루어진 목록을 읽는 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뿌연 거울 같은 직사각형의 금속판에서 흘러나왔다. 금속판은 오른쪽 벽에 붙어 있었다. 윈스턴이 스위치를 돌리자 목소리는 약간 작아졌지만 여전히 또렷하게 들렸다. '텔레스크린'이라는 그 금속판은 소리를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끌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 《1984》. 민음사. p.10
* 신어(新語)로 '진부'라고 하는 진리부는 다른 건물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흰색 콘크리트로 번쩍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그 웅장한 건물은 층마다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진 채 300미터나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흰 건물 전면에는 윈스턴이 서있는 곳에서도 훤히 보이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br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 《1984》. 민음사. pp.12~13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갈색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러 댔다.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의 지도급 인물로서 빅 브라더와 거의 맞먹는 지위를 누렸는데,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용케 탈출한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변절자이자 반동분자였다. '이 분 증오'의 프로그램은 날마다 바뀌었지만, 중심인물은 언제나 골드스타인이었다. 그는 최초의 반역자요, 당의 순수성을 처음으로 모독한 인간이었다. 그 후 일어난 모든 반당죄, 즉 반역과 파업 행위, 이단과 탈선 등은 그의 사주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골드스타인은 아직도 어디에선가 생존해 있어 음모를 꾸미고 있을 터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바다 건너 어딘가의 나라에서 외국인 후원자의 보호를 받고 있거나 이 오세아니아의 깊은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
** 《1984》. 민음사. pp.22~23
* 인간은 때에 따라서 의식적으로 증오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 《1984》. 민음사. p.27
* 사상범 체포는 항상 밤에만 이루어진다. 갑자기 잠을 깨워 마구 흔들거나 어깨를 거칠게 휘어잡는 우악스러운 손, 눈에 들이대는 불빛, 침대 주위의 험상궂은 얼굴들은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재판과 체포에 대한 보고서 따위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밤중에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등록부에서 지워지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도 삭제된다. 그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도 부인되고, 끝내는 완전히 잊히고 만다. 그러니까 그는 아예 없어져 버리는데,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증발했다'라고 말한다.
** 《1984》. 민음사. p.32
* 윈스턴은 풍요부의 숫자를 재조정하면서, 이런 일은 사실상 위조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난센스를 또 하나의 난센스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다. 그가 취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현실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인 거짓말과도 무관한 것이었다.
** 《1984》. 민음사. pp.59~60
*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 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걸세."
** 《1984》. 민음사. pp.74~75. 윈스턴과 사임의 대화 중 사임이 한 말.
*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 《1984》. 민음사. p.111. 윈스턴이 쓴 글씨.
*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 《1984》. 민음사. p.113. 윈스턴이 오브라이언 앞으로 쓴 글씨.
== 2부 ==
* "사생활이란 매우 가치 있는 거예요."
:채링턴 씨가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곳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곳을 갖게 되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해요. 그건 상식적인 예의이지요."
:* 《1984》. 민음사. p.192
* 사임이 사라졌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직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결근을 놓고 몇몇 분별없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는 아무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윈스턴은 게시판을 보기 위해 기록국의 현관으로 들어갔다. 게시물 중에는 사임이 소속되어 있던 체스 위원회의 명단도 있었다. 그것은 전에 붙어 있던 것과 똑같아 보였다. 다만 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임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 《1984》. 민음사. p.206
== 3부 ==
* 그는 천장이 높고 하얗게 번들거리는 타일 벽으로 둘러싸인 창 없는 감방 안에 있었다.
** 《1984》. 민음사. p.311
* "자네는 배우는 게 느리군그래."
:오브라이언이 상냥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제 눈앞에 보이는 게 그런데 어떡합니까? 둘 더하기 둘은 넷이잖아요."
:윈스턴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보게, 윈스턴. 때로는 그게 다섯일 수도 있네. 셋일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한꺼번에 세 개도, 네 개도, 다섯 개도 될 수 있다네. 자네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군. 온전한 사람이 되기란 쉽지가 않다네."
** 《1984》. 민음사. p.345
* "빅 브라더가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당도 존재하고 말일세. 빅 브라더는 당의 화신이네."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윈스턴."
** 《1984》. 민음사. p.358
* "우리는 권력을 신봉하는 성직자라네. 신은 권력 그 자체지. 하지만 자네가 보기에 현재의 권력이란 그저 말뿐일 걸세. 이제는 자네가 권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네. 우선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권력이란 집단적이란 사실일세. 개인은 오직 개인임을 포기할 때에만 권력을 갖게 되지. '자유는 예속'이란 당의 슬로건을 알고 있지? 혹시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본 적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일세. 혼자 있는 인간, 다시 말해 자유로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하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능한 존재가 된다네.
** 《1984》. 민음사. p.365
*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流浪)의 삶이여! 진 냄새가 배어 있는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1984》. 민음사. p.412
== 참고 문헌 ==
* [[조지 오웰]]. 정희성 옮김. (2007). 《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ISBN 9788937460777
[[분류:정치물]]
[[분류:디스토피아 작품]]
[[분류: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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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인라인}}
[[파일:Nineteen Eighty-Four cover by Penguin.jpg|섬네일|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1984'''》는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 1부 ==
*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의 종이 열세 번 울리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턱을 가슴에 처박고 승리 맨션의 유리문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막을 새도 없이 모래 바람이 그 뒤를 따라 들이닥쳤다.
** 《1984》. 민음사. p.9
* 윈스턴은 계단 쪽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경기가 좋을 때도 좀처럼 가동되지 않았다. 그런 터에 지금은 한낮이라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증오주간(Hate Week)에 대비한 절약 운동 탓이었다.
** 《1984》. 민음사. pp.9~10
[[파일:Big Brother graffiti in France.JPG|섬네일|"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된 포스터였다. 포스터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 《1984》. 민음사. pp.9~10
* 방 안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쇠 생산과 관계되는 무언가 숫자로 이루어진 목록을 읽는 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뿌연 거울 같은 직사각형의 금속판에서 흘러나왔다. 금속판은 오른쪽 벽에 붙어 있었다. 윈스턴이 스위치를 돌리자 목소리는 약간 작아졌지만 여전히 또렷하게 들렸다. '텔레스크린'이라는 그 금속판은 소리를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끌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 《1984》. 민음사. p.10
* 신어(新語)로 '진부'라고 하는 진리부는 다른 건물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흰색 콘크리트로 번쩍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그 웅장한 건물은 층마다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진 채 300미터나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흰 건물 전면에는 윈스턴이 서있는 곳에서도 훤히 보이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br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 《1984》. 민음사. pp.12~13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갈색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러 댔다.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의 지도급 인물로서 빅 브라더와 거의 맞먹는 지위를 누렸는데,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용케 탈출한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변절자이자 반동분자였다. '이 분 증오'의 프로그램은 날마다 바뀌었지만, 중심인물은 언제나 골드스타인이었다. 그는 최초의 반역자요, 당의 순수성을 처음으로 모독한 인간이었다. 그 후 일어난 모든 반당죄, 즉 반역과 파업 행위, 이단과 탈선 등은 그의 사주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골드스타인은 아직도 어디에선가 생존해 있어 음모를 꾸미고 있을 터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바다 건너 어딘가의 나라에서 외국인 후원자의 보호를 받고 있거나 이 오세아니아의 깊은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
** 《1984》. 민음사. pp.22~23
* 인간은 때에 따라서 의식적으로 증오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 《1984》. 민음사. p.27
* 사상범 체포는 항상 밤에만 이루어진다. 갑자기 잠을 깨워 마구 흔들거나 어깨를 거칠게 휘어잡는 우악스러운 손, 눈에 들이대는 불빛, 침대 주위의 험상궂은 얼굴들은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재판과 체포에 대한 보고서 따위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밤중에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등록부에서 지워지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도 삭제된다. 그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도 부인되고, 끝내는 완전히 잊히고 만다. 그러니까 그는 아예 없어져 버리는데, 이런 것을 두고 흔히 '증발했다'라고 말한다.
** 《1984》. 민음사. p.32
* 윈스턴은 풍요부의 숫자를 재조정하면서, 이런 일은 사실상 위조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난센스를 또 하나의 난센스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다. 그가 취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현실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인 거짓말과도 무관한 것이었다.
** 《1984》. 민음사. pp.59~60
*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 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걸세."
** 《1984》. 민음사. pp.74~75. 윈스턴과 사임의 대화 중 사임이 한 말.
*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 《1984》. 민음사. p.111. 윈스턴이 쓴 글씨.
*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 《1984》. 민음사. p.113. 윈스턴이 오브라이언 앞으로 쓴 글씨.
== 2부 ==
* "사생활이란 매우 가치 있는 거예요."
:채링턴 씨가 말했다.
:"누구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곳을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곳을 갖게 되면,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해요. 그건 상식적인 예의이지요."
:* 《1984》. 민음사. p.192
* 사임이 사라졌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직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결근을 놓고 몇몇 분별없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는 아무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윈스턴은 게시판을 보기 위해 기록국의 현관으로 들어갔다. 게시물 중에는 사임이 소속되어 있던 체스 위원회의 명단도 있었다. 그것은 전에 붙어 있던 것과 똑같아 보였다. 다만 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임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 《1984》. 민음사. p.206
== 3부 ==
[[파일:Ingsoc Oceania flag 1984.svg|섬네일|"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그는 천장이 높고 하얗게 번들거리는 타일 벽으로 둘러싸인 창 없는 감방 안에 있었다.
** 《1984》. 민음사. p.311
* "자네는 배우는 게 느리군그래."
:오브라이언이 상냥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제 눈앞에 보이는 게 그런데 어떡합니까? 둘 더하기 둘은 넷이잖아요."
:윈스턴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보게, 윈스턴. 때로는 그게 다섯일 수도 있네. 셋일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한꺼번에 세 개도, 네 개도, 다섯 개도 될 수 있다네. 자네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군. 온전한 사람이 되기란 쉽지가 않다네."
** 《1984》. 민음사. p.345
* "빅 브라더가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당도 존재하고 말일세. 빅 브라더는 당의 화신이네."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윈스턴."
** 《1984》. 민음사. p.358
* "우리는 권력을 신봉하는 성직자라네. 신은 권력 그 자체지. 하지만 자네가 보기에 현재의 권력이란 그저 말뿐일 걸세. 이제는 자네가 권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네. 우선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권력이란 집단적이란 사실일세. 개인은 오직 개인임을 포기할 때에만 권력을 갖게 되지. '자유는 예속'이란 당의 슬로건을 알고 있지? 혹시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본 적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일세. 혼자 있는 인간, 다시 말해 자유로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하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능한 존재가 된다네.
** 《1984》. 민음사. p.365
*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流浪)의 삶이여! 진 냄새가 배어 있는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 《1984》. 민음사. p.412
== 참고 문헌 ==
* [[조지 오웰]]. 정희성 옮김. (2007). 《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ISBN 9788937460777
[[분류:정치물]]
[[분류:디스토피아 작품]]
[[분류: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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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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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만의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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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orzugsausgabe der Erstauflage von 1922.JPG|섬네일|"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4]]
{{위키백과}}
《'''싯다르타: 인도의 시문학'''》은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헤르만 헤세]]가 1922년 발표한 종교소설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제1계급에 속하는 성직자 계급의 아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출가, 이후 먼저 해탈에 경지에 오른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를 만나 그의 깨달음에 균열이 있음을 인지한다. 이후 수행이 아닌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 제1부 ==
=== 브라만의 아들 ===
* 집의 그늘진 곳에서, 나룻배들이 떠 있는 강가의 햇살 속에서, 사라수 숲의 응달에서, 보리수 그늘 아래서, 브라만의 수려한 아들이자 어린 매 같은 싯다르타는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자랐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1
* 싯다르타의 마음에서 불만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중략)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들을 부르는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하지만 그것이 전부란 말인가? 제사를 드리는 일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그게 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세계를 창조한 이가 정말 프라야파티일까? 유일자이자 단독자인 아트만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닐까? 신들도 너와 나처럼 시간에 예속된 존재, 무상한 피조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이 훌륭하고 올바르고 의미 있고 최상의 가치를 지닌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그분, 유일자인 아트만 외에 대체 어떤 존재에게 제사를 드리고 경배를 올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트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분은 어디에 있는가? 그분의 영원한 심장이 각자의 자아,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불멸의 핵에서 고동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고동친다는 말인가? 이 자아, 가장 내적인 부분, 가장 궁극적인 부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 《싯다르타》. 문학동네. pp.14~15
* 싯다르타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내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행자 무리로 간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사문이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부디 아버지께서 반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9
* "너는 숲으로 들어가 사문이 되도록 해라." 아버지가 말했다. "숲속에서 네가 참된 행복을 얻는다면, 돌아와 내게도 그 행복을 가르쳐다오. 만약 네가 환멸을 느끼게 된다면,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신들에게 제물을 올리도록 하자꾸나. 이제 가서 어머니께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네가 어디로 가려는지 말씀드려라. 나는 이제 강에 나가 첫 목욕재계를 해야겠구나"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2
=== 사문들 곁에서 ===
*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거짓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와 행복,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부패해 있었다. 세상은 쓴맛이었다. 삶은 고통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4
* 싯다르타에게는 하나의 목표,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비우는 것, 갈증을 비우고, 소망을 비우고, 꿈을 비우고, 기쁨이나 고통을 비우는 것이었다. 자아를 죽이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것, 마음을 비운 상태로 안식을 얻는 것, 자아를 초월하는 묵상을 하면서 경이의 세계를 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소멸될 때, 마음속의 모든 욕망과 충동이 침묵할 때, 그때 비로소 가장 궁극적인 부분, 자아를 초탈한 존재의 가장 심오한 부분, 그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4
* 싯다르타는 수천 번 자아로부터 도망쳐 무의 세계에 머무르기도 하고 짐승이나 돌 속에 머물러보기도 했지만, 자아로 돌아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햇빛 속에서나 달빛 속에서, 그늘에서 또는 빗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자신이, 싯다르타가 되어 자신에게 부과된 윤회의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되는 그 시간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6
=== 고타마 ===
* "하지만 지식을 갈구하는 그대여, 무성한 의견을, 언쟁을 경계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의견이 아닙니다. 의견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으며, 현명할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 그것을 따를 수 있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한테서 들은 가르침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고, 가르침의 목적은 지식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의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것입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46. 고타마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부처는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 싯다르타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내게서 무언가 앗아갔지만 그 이상의 것을 선사해주었지. 그는 나의 친구를 앗아갔다. 그 친구는 한때 나를 믿었으나 이제는 그분을 믿게 되었고, 한때 나의 그림자였으나 이제는 고타마의 그림자가 되었지. 하지만 그분은 내게 싯다르타를, 즉 나 자신을 선사해주었어.
** 《싯다르타》. 문학동네. p.49
=== 깨달음 ===
* '나는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 했던 거야. 나는 다름 아닌 자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 자아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아를 극복할 수는 없었지. 다만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자아를 피해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51
* 문득 분명하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스스로를 진실로 방금 눈뜬 자이자 새로 태어난 자라고 한다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54
== 제2부 ==
=== 카말라 ===
* 싯다르타는 길을 가면서 기원정사에서 겪었던 모든 일, 그곳에서 들었던 가르침, 신적인 부처, 고빈다와의 작별, 세존과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자신이 세존에게 했던 말도 다시금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던 말들을 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63
===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곁에서 ===
*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아마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 있지요. 그게 바로 그들이 가진 비밀이에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92. 카말라에게 싯다르타가 전하는 말.
=== 윤회 ===
* "네 앞에 하나의 길이 놓여 있다. 너는 그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았고, 신들이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01.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 울린 소리.
=== 강가에서 ===
* 바로 그 순간 그의 영혼의 외진 구석에서, 지금은 피곤에 지친 그의 삶의 아득한 과거로부터 어떤 소리가 전율하며 울려왔다. 단 한 마디, 한 음절에 불과한 울림이었다. 싯다르타는 무심코 그 말을 웅얼거리며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것은 예로부터 브라만들이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 말, '완전한 것' 또는 '완성'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옴'이었다. '옴'이라는 소리가 싯다르타의 귓전에 울리는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 갑자기 깨어났고 그가 지금 하려는 행동이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07
=== 뱃사공 ===
* "친구여, 이 강은 아주 많은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왕의 소리, 전사의 소리, 황소의 소리, 밤새의 소리, 아이를 낳는 여인의 소리, 탄식하는 사람의 소리, 그 밖에도 수천 가지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28.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아들 ===
* "당신의 아들은,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 어린 새는 이곳과는 다른 생활, 다른 보금자리에 익숙해요. 저 아이는 당신처럼 구역질나고 질린 나머지 부와 도시로부터 도망쳐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그 모든 것에서 떠나오게 됐지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39.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물은 물과 어울리고, 청춘은 청춘끼리 어울리는 법인데, 당신의 아들은 지금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39.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옴 ===
* 싯다르타의 내면에서는 대체 지혜가 진정 무엇인지,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목표가 무엇인지에 관한 깨달음과 인식이 서서히 피어나고 서서히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매 순간마다, 삶의 한가운데서 단일성의 사상을 생각하고 단일성을 느끼고 내면으로 흡입할 수 있는 영혼의 자세, 그런 능력, 그런 비밀스러운 기술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2
*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다채로운 소리가 어우러진 강물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싯다르타는 강물을 들여다보았고, 흘러가는 물결 속에는 여러 형상이 떠올랐다. 아들 때문에 슬퍼하는 외로운 아버지가 떠올랐고, 멀리 떠나간 아들을 향한 그리움의 끈에 묶여 있는 외로운 자기 자신도 떠올랐다. 젊은 열망에 사로잡혀 미친듯이 자신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 아들 또한 외로운 모습으로 떠올랐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향하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목표에 사로잡혀 있으며,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6
* 강물은 목표를 향해 계속 흘렀고, 싯다르타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강물이 서둘러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물결은 고통스러워하며 제각기 여러 목표를 향해, 폭포를 향해, 호수를 향해, 여울을 향해, 바다를 향해 급히 흘러갔고 모두가 나름대로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새로운 목적지가 나타났다.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다시 하늘에서 떨어지고, 샘이 되고,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또다시 흘러갔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7
*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고,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동경,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선과 악, 그 모든 것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사건의 강을 이루었고, 삶의 음악을 이루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7
* 그 순간 싯다르타는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일을 단념했고, 번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의지도 거역할 수 없는 깨달음, 완성을 아는 깨달음에서 생겨난 명랑함이 흘러나왔다. 사건의 강, 삶의 흐름과 하나가 되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끼며, 강물에 자신을 내주고 단일성에 속하게 되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8
=== 고빈다 ===
* 싯다르타가 말했다. "당신 같은 고승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깨달음을 구하는 데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1
*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4
* 고빈다의 눈에 친구 싯다르타의 얼굴이 더이상 보이지 않고, 대신 다른 사람들의 얼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길게 열을 지어 나타났다. 수백, 수천의 얼굴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이루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지만, 모든 얼굴이 동시에 거기 현존하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얼굴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으며, 그 모든 얼굴은 싯다르타의 얼굴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p.172~173
*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항상 무엇인가 얇은 것, 실체는 없지만 현존하는 무언가가 마치 유리나 살얼음처럼, 혹은 투명한 막처럼, 마치 물로 된 껍질이나 표면 또는 가면처럼 덮여 있었다. 그 가면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바로 싯다르타의 미소 짓는 얼굴, 고빈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입맞춤하고 있는 싯다르타의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74
* 그는 꼼짝하지 않고 미소만 머금은 채 앉아 있는 이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몸을 숙여 인사했는데, 싯다르타의 미소는 고빈다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 그의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했던 모든 것을 떠오르게 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75
== 참고 문헌 ==
* 헤르만 헤세. 권혁준 번역. (2025). 《싯다르타》. 문학동네. ISBN 978895465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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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철학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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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orzugsausgabe der Erstauflage von 1922.JPG|섬네일|"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4]]
《'''싯다르타: 인도의 시문학'''》은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헤르만 헤세]]가 1922년 발표한 종교소설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제1계급에 속하는 성직자 계급의 아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출가, 이후 먼저 해탈에 경지에 오른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를 만나 그의 깨달음에 균열이 있음을 인지한다. 이후 수행이 아닌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 제1부 ==
=== 브라만의 아들 ===
* 집의 그늘진 곳에서, 나룻배들이 떠 있는 강가의 햇살 속에서, 사라수 숲의 응달에서, 보리수 그늘 아래서, 브라만의 수려한 아들이자 어린 매 같은 싯다르타는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자랐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1
* 싯다르타의 마음에서 불만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중략)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들을 부르는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하지만 그것이 전부란 말인가? 제사를 드리는 일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그게 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세계를 창조한 이가 정말 프라야파티일까? 유일자이자 단독자인 아트만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닐까? 신들도 너와 나처럼 시간에 예속된 존재, 무상한 피조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이 훌륭하고 올바르고 의미 있고 최상의 가치를 지닌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그분, 유일자인 아트만 외에 대체 어떤 존재에게 제사를 드리고 경배를 올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트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분은 어디에 있는가? 그분의 영원한 심장이 각자의 자아,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불멸의 핵에서 고동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고동친다는 말인가? 이 자아, 가장 내적인 부분, 가장 궁극적인 부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 《싯다르타》. 문학동네. pp.14~15
* 싯다르타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내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행자 무리로 간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사문이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부디 아버지께서 반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9
* "너는 숲으로 들어가 사문이 되도록 해라." 아버지가 말했다. "숲속에서 네가 참된 행복을 얻는다면, 돌아와 내게도 그 행복을 가르쳐다오. 만약 네가 환멸을 느끼게 된다면,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신들에게 제물을 올리도록 하자꾸나. 이제 가서 어머니께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네가 어디로 가려는지 말씀드려라. 나는 이제 강에 나가 첫 목욕재계를 해야겠구나"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2
=== 사문들 곁에서 ===
*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거짓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와 행복,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었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부패해 있었다. 세상은 쓴맛이었다. 삶은 고통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4
* 싯다르타에게는 하나의 목표,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비우는 것, 갈증을 비우고, 소망을 비우고, 꿈을 비우고, 기쁨이나 고통을 비우는 것이었다. 자아를 죽이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것, 마음을 비운 상태로 안식을 얻는 것, 자아를 초월하는 묵상을 하면서 경이의 세계를 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소멸될 때, 마음속의 모든 욕망과 충동이 침묵할 때, 그때 비로소 가장 궁극적인 부분, 자아를 초탈한 존재의 가장 심오한 부분, 그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4
* 싯다르타는 수천 번 자아로부터 도망쳐 무의 세계에 머무르기도 하고 짐승이나 돌 속에 머물러보기도 했지만, 자아로 돌아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햇빛 속에서나 달빛 속에서, 그늘에서 또는 빗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자신이, 싯다르타가 되어 자신에게 부과된 윤회의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되는 그 시간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26
=== 고타마 ===
* "하지만 지식을 갈구하는 그대여, 무성한 의견을, 언쟁을 경계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의견이 아닙니다. 의견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으며, 현명할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 그것을 따를 수 있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한테서 들은 가르침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고, 가르침의 목적은 지식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의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것입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46. 고타마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부처는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 싯다르타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내게서 무언가 앗아갔지만 그 이상의 것을 선사해주었지. 그는 나의 친구를 앗아갔다. 그 친구는 한때 나를 믿었으나 이제는 그분을 믿게 되었고, 한때 나의 그림자였으나 이제는 고타마의 그림자가 되었지. 하지만 그분은 내게 싯다르타를, 즉 나 자신을 선사해주었어.
** 《싯다르타》. 문학동네. p.49
=== 깨달음 ===
* '나는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 했던 거야. 나는 다름 아닌 자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 자아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아를 극복할 수는 없었지. 다만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자아를 피해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51
* 문득 분명하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스스로를 진실로 방금 눈뜬 자이자 새로 태어난 자라고 한다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54
== 제2부 ==
=== 카말라 ===
* 싯다르타는 길을 가면서 기원정사에서 겪었던 모든 일, 그곳에서 들었던 가르침, 신적인 부처, 고빈다와의 작별, 세존과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자신이 세존에게 했던 말도 다시금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던 말들을 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63
===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곁에서 ===
*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아마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 있지요. 그게 바로 그들이 가진 비밀이에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92. 카말라에게 싯다르타가 전하는 말.
=== 윤회 ===
* "네 앞에 하나의 길이 놓여 있다. 너는 그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았고, 신들이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01. 싯다르타의 마음 속에 울린 소리.
=== 강가에서 ===
* 바로 그 순간 그의 영혼의 외진 구석에서, 지금은 피곤에 지친 그의 삶의 아득한 과거로부터 어떤 소리가 전율하며 울려왔다. 단 한 마디, 한 음절에 불과한 울림이었다. 싯다르타는 무심코 그 말을 웅얼거리며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것은 예로부터 브라만들이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 말, '완전한 것' 또는 '완성'을 의미하는 성스러운 '옴'이었다. '옴'이라는 소리가 싯다르타의 귓전에 울리는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 갑자기 깨어났고 그가 지금 하려는 행동이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07
=== 뱃사공 ===
* "친구여, 이 강은 아주 많은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왕의 소리, 전사의 소리, 황소의 소리, 밤새의 소리, 아이를 낳는 여인의 소리, 탄식하는 사람의 소리, 그 밖에도 수천 가지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지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28.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아들 ===
* "당신의 아들은,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 어린 새는 이곳과는 다른 생활, 다른 보금자리에 익숙해요. 저 아이는 당신처럼 구역질나고 질린 나머지 부와 도시로부터 도망쳐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그 모든 것에서 떠나오게 됐지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39.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물은 물과 어울리고, 청춘은 청춘끼리 어울리는 법인데, 당신의 아들은 지금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39. 바수데바가 싯다르타에게 전하는 말.
=== 옴 ===
* 싯다르타의 내면에서는 대체 지혜가 진정 무엇인지,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목표가 무엇인지에 관한 깨달음과 인식이 서서히 피어나고 서서히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매 순간마다, 삶의 한가운데서 단일성의 사상을 생각하고 단일성을 느끼고 내면으로 흡입할 수 있는 영혼의 자세, 그런 능력, 그런 비밀스러운 기술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2
*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다채로운 소리가 어우러진 강물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싯다르타는 강물을 들여다보았고, 흘러가는 물결 속에는 여러 형상이 떠올랐다. 아들 때문에 슬퍼하는 외로운 아버지가 떠올랐고, 멀리 떠나간 아들을 향한 그리움의 끈에 묶여 있는 외로운 자기 자신도 떠올랐다. 젊은 열망에 사로잡혀 미친듯이 자신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 아들 또한 외로운 모습으로 떠올랐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향하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목표에 사로잡혀 있으며,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6
* 강물은 목표를 향해 계속 흘렀고, 싯다르타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강물이 서둘러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물결은 고통스러워하며 제각기 여러 목표를 향해, 폭포를 향해, 호수를 향해, 여울을 향해, 바다를 향해 급히 흘러갔고 모두가 나름대로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새로운 목적지가 나타났다.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다시 하늘에서 떨어지고, 샘이 되고,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또다시 흘러갔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7
*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고,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동경,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선과 악, 그 모든 것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사건의 강을 이루었고, 삶의 음악을 이루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7
* 그 순간 싯다르타는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일을 단념했고, 번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의지도 거역할 수 없는 깨달음, 완성을 아는 깨달음에서 생겨난 명랑함이 흘러나왔다. 사건의 강, 삶의 흐름과 하나가 되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끼며, 강물에 자신을 내주고 단일성에 속하게 되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58
=== 고빈다 ===
* 싯다르타가 말했다. "당신 같은 고승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깨달음을 구하는 데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1
*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따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64
* 고빈다의 눈에 친구 싯다르타의 얼굴이 더이상 보이지 않고, 대신 다른 사람들의 얼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길게 열을 지어 나타났다. 수백, 수천의 얼굴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이루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지만, 모든 얼굴이 동시에 거기 현존하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얼굴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으며, 그 모든 얼굴은 싯다르타의 얼굴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p.172~173
*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항상 무엇인가 얇은 것, 실체는 없지만 현존하는 무언가가 마치 유리나 살얼음처럼, 혹은 투명한 막처럼, 마치 물로 된 껍질이나 표면 또는 가면처럼 덮여 있었다. 그 가면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바로 싯다르타의 미소 짓는 얼굴, 고빈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입맞춤하고 있는 싯다르타의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74
* 그는 꼼짝하지 않고 미소만 머금은 채 앉아 있는 이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몸을 숙여 인사했는데, 싯다르타의 미소는 고빈다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 그의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했던 모든 것을 떠오르게 했다.
** 《싯다르타》. 문학동네. p.175
== 참고 문헌 ==
* 헤르만 헤세. 권혁준 번역. (2025). 《싯다르타》. 문학동네. ISBN 9788954654418
[[분류:독일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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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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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호실》(18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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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nton Chekhov 1889.jpg|섬네일]]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제국의 소설가, 극작가, 의사이다. 러시아 문학 황금 시대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체호프는 단편 소설과 희곡에서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그의 저작들은 21세기에도 전세계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고전이 되었다.
== 단편 소설 ==
안톤 체호프. 박현섭 역. (2024).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ISBN 9791141600068
=== 《굴》(1884년) ===
* 그 비 내리는 가을 황혼녘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애를 쓸 것도 없다. 아버지와 함께 인파가 북적거리는 모스크바의 거리에 서 있던 나는 어떤 이상한 병적 상태에 점차 빠져들어가는 걸 느낀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9
* 우리 맞은 편에는 '주점'이라는 푸른색 간판이 걸린 커다란 삼층 건물이 있다. 내 머리는 힘없이 기우뚱하게 젖혀져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 주점의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창문들 너머로 사람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오르간의 오른쪽 부분과 두 점의 삭판화와 천장에 매달린 램프들이 보인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0
* 나는 단번에 이 미지의 바다 생물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필경 물고기와 바닷가재의 중간쯤 되는 놈이리라. 바다 생물이니까 향긋한 통후추와 월계수 잎을 넣어서 생선 수프를 끓이면 틀림없이 아주 뜨끈하고 맛있을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1
* 그래, 굴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였군! 나는 개구리를 닮은 생물을 상상한다. 개구리 한 마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번들거리는 커다란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징그러운 주둥이를 움찔거린다. 나는 조개껍질 속에 든 이 생물을 시장에서 가져오는 광경을 떠올린다. 집게발과 번들거리는 눈, 미끄덩거리는 피부......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13
* 아침이 돼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꿈속에서 집게발이 달린 개구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한낮에 목이 타서 잠을 깬 나는 눈으로 아버지를 찾는다. 그는 아직까지도 방안을 돌아다니며 뭐라 손짓을 하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5
=== 《아뉴타》(1886년) ===
* 복도의 시계는 갈라진 소리로 오후 두시 종을 쳤지만 방안은 아직도 어질러진 채였다. 구겨진 이불,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베개와 책들, 옷, 구정물이 가득 담긴 커다랗고 지저분한 대야, 그 위를 떠다니는 담배꽁초들, 바닥에 쌓인 먼지—모든 것이 마치 한꺼번에 내던져서 일부러 뒤섞어놓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0
* 의학생은 다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암기를 시작했다. 아뉴타는 마치 가슴에 까만 줄무늬 문신을 한 것 같은 모습으로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앉아서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말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기만 할 뿐......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1
=== 《반카》(1886년) ===
* 세 달 전 구두장이 알랴힌에게 견습공으로 보내진 아홉 살 소년 반카 주코프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는 주인 내외와 다른 견습공들이 새벽 예배를 보러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인집 벽장에서 잉크병과 녹슨 촉이 달린 펜을 꺼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펼쳐놓고 편지 쓸 준비를 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9
* '저는 어제 매를 맞았어요. 주인이 제 머리채를 끌고 마당으로 나가더니 가죽끈으로 저를 마구 때렸어요. 주인집 아기를 요람에 눕히고 흔들어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었거든요. 지난주에는 여주인이 저 보고 청어를 손질하라고 했는데 제가 꼬리 쪽부터 손질하니까, 그걸 집어들더니 청어 대가리로 제 얼굴을 찔러댔어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1
* '사랑하는 할아버지, 제겐 아무 희망이 없어요. 언제까지라도 무릎 꿇고 기도드릴게요. 제발 저를 여기서 데려가주세요.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2
=== 《6호실》(1892년) ===
* 병원 앞마당에 우엉이며 쐐기풀이며 야생대마의 무성한 수풀로 둘러싸인 작은 별관이 서 있다. 지붕은 녹슬어 불그죽죽하고, 굴뚝은 반쯤 허물어졌으며, 잡초로 뒤덮인 채 썩어가는 현관 계단에는 희미한 회칠 흔적만 남아 있다. 건물 전면은 병원 본관 쪽을 향해 있고 후면은 들판에 접해 있는데, 그 사이를 촘촘하게 못이 박힌 회색 병원 담장이 가로지르고 있다. 삐죽삐죽 위로 솟아 있는 못들과 담장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별관의 생김새 자체가 딱 병원이나 감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음산하고 불길한 형상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1
* 첫번째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보자. 벽과 페치카 주변에 병원의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매트리스, 너덜너덜해진 환자복과 바지와 푸른 줄무늬 셔츠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진 신발들. 이런 온갖 넝마들이 뒤죽박죽 엉킨 채 한 무더기로 썩어가면서 숨이 막힐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1~52
* 병원의 침대들은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그 위에 파란 환자복을 입고 옛날식으로 나이트캡을 쓴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이들이 바로 정신병자들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2~53
* 여느 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의 기분은 우울했다. 어느 골목에서 그는 쇠고랑을 찬 두 죄수와 마주쳤다. 총을 든 네 명의 호송병이 두 죄수를 데려가고 있었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예전에도 길에서 죄수들을 본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그에게 동정심과 거북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만남은 그에게 특별하고도 묘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현듯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쇠고랑을 차고 진창길을 따라 감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9
* "감옥과 정신병원이 일단 존재하게 되었으면 누군가는 거기 갇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제가, 제가 아니라면 어떤 제삼자겠지요. 두고 봅시다, 언젠가 먼 미래에 감옥과 정신병원이 없어질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창문의 쇠창살도, 이런 환자복도 없어지겠지요. 이르건 늦건 결국엔 그런 시대가 올 겁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88
* "어디로도 벗어날 곳이 없어요. 우리는 나약합니다, 친구...... 저는 속세에 초연한 채 원기 왕성하게 세상의 이치를 탐구했어요. 하지만 삶이 저에게 그 거친 손길을 댄 순간 영혼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탈진도 했어요...... 나약하고 시시한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9~130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1894년) ===
* 그곳은 시골 마을보다도 못한 작은 도시였다. 주민들 대다수가 노인네들인데도 죽는 사람이 좀처럼 없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병원에서도, 감옥에서도 관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업 환경이 형편없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37
=== 《상자 속의 사나이》(1898년) ===
*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85
===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년) ===
* 해변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했다. 얄타에서 이미 두 주일을 보낸 터라 이곳에 심드렁해진 드미트리 드미트로비치 구로프 또한 새로운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베르네 식당의 정자에 앉아 있던 구로프는 크지 않은 키에 베레모를 쓴 젊은 금발 여인이 해변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의 뒤로는 하얀 스피츠 한 마리가 따라가고 있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49
[[분류:러시아의 소설가]]
[[분류:러시아의 극작가]]
[[분류:단편 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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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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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인라인}}
[[파일:Anton Chekhov 1889.jpg|섬네일]]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 제국의 소설가, 극작가, 의사이다. 러시아 문학 황금 시대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체호프는 단편 소설과 희곡에서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그의 저작들은 21세기에도 전세계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고전이 되었다.
== 단편 소설 ==
안톤 체호프. 박현섭 역. (2024).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ISBN 9791141600068
=== 《굴》(1884년) ===
* 그 비 내리는 가을 황혼녘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애를 쓸 것도 없다. 아버지와 함께 인파가 북적거리는 모스크바의 거리에 서 있던 나는 어떤 이상한 병적 상태에 점차 빠져들어가는 걸 느낀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9
* 우리 맞은 편에는 '주점'이라는 푸른색 간판이 걸린 커다란 삼층 건물이 있다. 내 머리는 힘없이 기우뚱하게 젖혀져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 주점의 불 켜진 창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창문들 너머로 사람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오르간의 오른쪽 부분과 두 점의 삭판화와 천장에 매달린 램프들이 보인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0
* 나는 단번에 이 미지의 바다 생물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필경 물고기와 바닷가재의 중간쯤 되는 놈이리라. 바다 생물이니까 향긋한 통후추와 월계수 잎을 넣어서 생선 수프를 끓이면 틀림없이 아주 뜨끈하고 맛있을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1
* 그래, 굴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였군! 나는 개구리를 닮은 생물을 상상한다. 개구리 한 마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번들거리는 커다란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며 징그러운 주둥이를 움찔거린다. 나는 조개껍질 속에 든 이 생물을 시장에서 가져오는 광경을 떠올린다. 집게발과 번들거리는 눈, 미끄덩거리는 피부......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13
* 아침이 돼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꿈속에서 집게발이 달린 개구리가 조개껍질 속에 앉아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한낮에 목이 타서 잠을 깬 나는 눈으로 아버지를 찾는다. 그는 아직까지도 방안을 돌아다니며 뭐라 손짓을 하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5
=== 《아뉴타》(1886년) ===
* 복도의 시계는 갈라진 소리로 오후 두시 종을 쳤지만 방안은 아직도 어질러진 채였다. 구겨진 이불,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베개와 책들, 옷, 구정물이 가득 담긴 커다랗고 지저분한 대야, 그 위를 떠다니는 담배꽁초들, 바닥에 쌓인 먼지—모든 것이 마치 한꺼번에 내던져서 일부러 뒤섞어놓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0
* 의학생은 다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암기를 시작했다. 아뉴타는 마치 가슴에 까만 줄무늬 문신을 한 것 같은 모습으로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앉아서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항상 말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기만 할 뿐......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1
=== 《반카》(1886년) ===
* 세 달 전 구두장이 알랴힌에게 견습공으로 보내진 아홉 살 소년 반카 주코프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는 주인 내외와 다른 견습공들이 새벽 예배를 보러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인집 벽장에서 잉크병과 녹슨 촉이 달린 펜을 꺼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펼쳐놓고 편지 쓸 준비를 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9
* '저는 어제 매를 맞았어요. 주인이 제 머리채를 끌고 마당으로 나가더니 가죽끈으로 저를 마구 때렸어요. 주인집 아기를 요람에 눕히고 흔들어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었거든요. 지난주에는 여주인이 저 보고 청어를 손질하라고 했는데 제가 꼬리 쪽부터 손질하니까, 그걸 집어들더니 청어 대가리로 제 얼굴을 찔러댔어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1
* '사랑하는 할아버지, 제겐 아무 희망이 없어요. 언제까지라도 무릎 꿇고 기도드릴게요. 제발 저를 여기서 데려가주세요.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32
=== 《6호실》(1892년) ===
* 병원 앞마당에 우엉이며 쐐기풀이며 야생대마의 무성한 수풀로 둘러싸인 작은 별관이 서 있다. 지붕은 녹슬어 불그죽죽하고, 굴뚝은 반쯤 허물어졌으며, 잡초로 뒤덮인 채 썩어가는 현관 계단에는 희미한 회칠 흔적만 남아 있다. 건물 전면은 병원 본관 쪽을 향해 있고 후면은 들판에 접해 있는데, 그 사이를 촘촘하게 못이 박힌 회색 병원 담장이 가로지르고 있다. 삐죽삐죽 위로 솟아 있는 못들과 담장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별관의 생김새 자체가 딱 병원이나 감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음산하고 불길한 형상이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1
* 첫번째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보자. 벽과 페치카 주변에 병원의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매트리스, 너덜너덜해진 환자복과 바지와 푸른 줄무늬 셔츠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진 신발들. 이런 온갖 넝마들이 뒤죽박죽 엉킨 채 한 무더기로 썩어가면서 숨이 막힐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1~52
* 병원의 침대들은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그 위에 파란 환자복을 입고 옛날식으로 나이트캡을 쓴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 이들이 바로 정신병자들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52~53
* 여느 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의 기분은 우울했다. 어느 골목에서 그는 쇠고랑을 찬 두 죄수와 마주쳤다. 총을 든 네 명의 호송병이 두 죄수를 데려가고 있었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예전에도 길에서 죄수들을 본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그에게 동정심과 거북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만남은 그에게 특별하고도 묘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현듯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쇠고랑을 차고 진창길을 따라 감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59
* "감옥과 정신병원이 일단 존재하게 되었으면 누군가는 거기 갇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제가, 제가 아니라면 어떤 제삼자겠지요. 두고 봅시다, 언젠가 먼 미래에 감옥과 정신병원이 없어질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창문의 쇠창살도, 이런 환자복도 없어지겠지요. 이르건 늦건 결국엔 그런 시대가 올 겁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88
* "어디로도 벗어날 곳이 없어요. 우리는 나약합니다, 친구...... 저는 속세에 초연한 채 원기 왕성하게 세상의 이치를 탐구했어요. 하지만 삶이 저에게 그 거친 손길을 댄 순간 영혼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탈진도 했어요...... 나약하고 시시한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p.129~130
=== 《로트실트의 바이올린》(1894년) ===
* 그곳은 시골 마을보다도 못한 작은 도시였다. 주민들 대다수가 노인네들인데도 죽는 사람이 좀처럼 없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병원에서도, 감옥에서도 관을 주문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업 환경이 형편없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37
=== 《상자 속의 사나이》(1898년) ===
* "'''그런데 우리가 답답하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하잘것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건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185
===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년) ===
* 해변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했다. 얄타에서 이미 두 주일을 보낸 터라 이곳에 심드렁해진 드미트리 드미트로비치 구로프 또한 새로운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베르네 식당의 정자에 앉아 있던 구로프는 크지 않은 키에 베레모를 쓴 젊은 금발 여인이 해변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의 뒤로는 하얀 스피츠 한 마리가 따라가고 있었다.
** 《상자 속의 사나이》. 문학동네. p.249
== 희곡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2010).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ISBN 9788952760074
=== 《고니의 노래》(1887년) ===
* 노년이라...... 아무리 속이고, 아무리 허장성세를 부리거나 바보인 척해도 이미 인생은 다 지나가버렸어...... 이미 68년이 사라진 거야. 잘 가시오! 돌이킬 수 없어...... 이미 거의 다 마셨고, 바닥에 남은 것도 거의 없어...... 찌꺼기만 조금 남았어...... 그래...... 일이 그렇게 된 거야, 바슈샤......
**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p.46. 〈고니의 노래〉
* '''스베틀로비도프''' 나한텐 아무도 없어, 니키투쉬카. 친척도, 마누라도, 자식도 없어...... 들판의 바람처럼 혼자라니까...... 내가 죽어도 누구 하나 기억하지 않을 거야...... 혼자라는 게 무서워...... 덥혀주고 달래줄 사람 하나 없고, 술 취한 나를 침대로 누일 사람 하나 없어...... 난 누구의 사람일까? 누구한테 내가 필요하지? 누가 날 사랑하느냐고? 어느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니키투쉬카!
**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p.48. 〈고니의 노래〉
[[분류:러시아의 소설가]]
[[분류:러시아의 극작가]]
[[분류:단편 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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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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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희의 질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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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인라인}}
[[파일:Bong Joon Ho at Busan Film Festival, smaller.jpg|섬네일]]
'''봉준호'''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애니메이션 제작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인터뷰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https://www.youtube.com/watch?v=DWYXS3sA1Lk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 영화창작과정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2017년 4월 19일.
* (스탠리) 큐브릭이 (스티븐) 스필버그한테 물어봤대요. "너는 어떨 때.. 영화 찍는 과정에서 어떨 때 제일 싫냐?" 그랬더니 스필버그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서 내릴 때." 감독의 직업을 가지고 계시거나, 아마 영화 현장에 계신 분들은 뭔 말인지 알 거에요. 스필버그 같은 사람도 우리가 보면 뭐.. '영화의 신'에 근접한 사람인데, 아침에 차에서 내리기 싫은 거죠. 수백명의 스텝과 배우들이 (감독을) 잡아먹을 듯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현장에 도착하면은 이미 질문이 200개씩 쌓여있고 그러거든요. "안제이 바이다"라고 있어요. 폴란드의 진짜 거장이신 (감독인데), 엑스트라 500명이 대기하고 있는 촬영장으로 가면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 뒤에 차에서 내려서 토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현장에 가기가 너무 싫어가지고.
* 왜 그럴까? 특히나 영화를 잘 찍는다는 양반들이..? 집착이 있는 거에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에요. 그니까 공포의 근원이 '집착'이다. 집착이 있기 때문에 공포가 생기는 거에요. 그 집착이 해소되지 않을까봐.. 찍고 싶은 어떤 장면이 있을 거예요. 어떨 때는 그 장면을 찍기 위한 핑계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잖아요. 그걸 찍어서 그 화면을 소유하고 싶은 거죠. 그 시점이 올 때까지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거에요.
* 《에이리언》같은 영화도 있었고 많은 몬스터 영화들이 있었지만, 항상 괴물의 신체 일부를 보려면 한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런 기다림이 너무 싫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괴물)는 무조건 시작한지 15분 이내에 백주대낮에 햇빛아래에 괴물을 통째로 전신 다 보여주마. 보여준 후에 시작하리."라는 이상한 객기가 있었어요.
=== 손석희의 질문들 ===
:MBC PLAYGROUND. [https://www.youtube.com/watch?v=nIG8XRLUIqw 영화 <미키17> 손석희의 찐 리액션 MBC 250218 방송]
:MBC PLAYGROUND. [https://www.youtube.com/watch?v=Hb33iNu3hnU 영화<기생충> 탄생의 비밀 MBC 250218 방송]
* 영화를 찍다 보면, 영화 속 뉴스 장면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게 어설프게 기자 흉내를 내면서 찍으면 보기에 되게 안 좋고, 어설플 때가 많거든요..? 저같은 경우에는 항상 실제 기자분들이나, 실제 보도국분들을 모셔서 이렇게 찍은 적이 많았었어요.
* Q: 아무튼 요즘 또 보니까, 그..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계엄하고 탄핵에 대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이럴 때는 또 극장 찾는 분들이 아무래도 좀 영향을 받는다는 게 통설이어서.. 이런 상황을 《미키 17》이 잘 돌파할지도 궁금합니다. 계엄 소식은 뭐.. 한국에 있으셨을 때도 들으셨나요?
:A: 네, 12월 3일에 한국에 있었고요. (중략) 계엄.. 영어로 하면 뭐.. 'Martial law'(마샬 로우).. 같이 일했던 배우들.. 뭐.. 외국 배우들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미국 쪽 프로듀서들도 있고 다들 되게 당황해했죠. 한국에 대해서 뭔가 얘기할 때 항상 나오던 단어들이 있거든요? 뭐.. 로제 - APT라던가, BTS가 언제 군에서 제대하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 《오징어 게임》 속편이 나왔다. 지금 나열한 그런 단어들이었습니다. 한국.. South Korea에 대한.. 갑자기 이제 'Martial law'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너무 생경해서 황당해하고... (계엄은) 70~80년대 제3세계 군사 쿠데타 영화 같은 데서 보던 단어잖아요..? 그 이질감때문에 너무.. 뭐.. (중략) 너무 초현실적으로, 그거야말로 정말 SF처럼 받아들이고, 황당해하고.. (해외 지인이) "지금 뭐 감옥에서 전화 받는 거야?" 물론 농담인데 ㅎㅎ (중략)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뤄진 12.12 군사 반란 이런 것들이 제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였나요? (중략) 그 후로 45년 간 우리 세대가, 우리 생애에 다시 한번 계엄령을 겪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죠.
* 뭔가 풀리지 않는 열쇠같은.. 열어야 할 문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손잡이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잡고 딱 열면 될 것 같은데, 잡힐 듯 말 듯 할 때가 있거든요? 시나리오 쓰시는 분들은 다 아실 텐데.. 그러던 차에, 2017년 여름에 제가 잘 아는 선배 배우님 가족과 식사하러 가던 차 안에서 "아, 부잣집 지하에 제3의 가족이 지하실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 영화의 후반부는 완전히 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을 그 식당으로 운전하면서 가다가 떠오르게 됐어요. 그래서 빨리 그것을 캐치해서(잡아서) 정리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일단 차를 세우고 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근처 가장 가까운 카페 들어가서 막~ 정리를 했어요. 그때 한꺼번에 쫙 감자 넝쿨 캐듯이 쭉 달려서 나오는.. 그게 분기점이었죠. (중략) 그 문을 열게 되면서 영화 후반부 모든 것들이 급물살처럼 훵~ 뚤렸죠.
== 관련 언사 ==
* "내가 만난 봉준호 감독님은 '심리 상담사'다." 봉 감독님이 다른 감독님이랑 뭐가 다른지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처음에 가면 "밥 뭐 먹었어?", "오늘 컨디션은 어때?" 배우보단 인간 최우식을 알려고 하셨던 것 같고.. 그게 저한테는 용기가 나는.. 지점인 것 같아요.
** 최우식 배우. MBC PLAYGROUND. [https://www.youtube.com/watch?v=Hb33iNu3hnU 영화<기생충> 탄생의 비밀 MBC 250218 방송]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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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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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7T13:28:5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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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아들》(18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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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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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urgenev by Repin.jpg|섬네일]]
'''이반 투르게네프'''는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소설가이다. 다음은 투르게네프와 관련된 명언들이다.
== 《아버지와 아들》(1862년) ==
이반 투르게네프. 이항재 옮김. (2011).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ISBN 9788954613934
* 그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곳은 그림같이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었다. 끝없는 벌판이 때로는 살짝 솟아올랐다가 때로는 다시 낮아지면서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에 조그만 숲이 보였고, 키 작은 관목들이 드문드문 자란 골짜기가 굽이치고 있었다.
**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p.22~23
* "니힐리스트라고?" 니콜라이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건 라틴어 '니힐(nihil)', 즉 '무(無)'에서 나온 말인데, 그러면 그 단어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39
* "그러냐. 어쨌든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것 같구나. 우리는 구시대의 사람들이라서 웡칙(파벨 페트로비치는 이 단어를 프랑스식으로 부드럽게 발음했지만, 반대로 아르카디는 첫음절에 힘을 주어 '원칙'이라고 발음했다) 없이는, 네가 말하는 대로 웡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고 숨을 쉴 수가 없다. Vous avez change tout cela(너희들은 모든 걸 바꿔놓았구나.) 제발 건강하게 살아서 장군 직위나 받으렴. 그러면 우리는 너만 바라보고 살 거다."
**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p.39~40
* "인간은 모두 스스로를 교육해야만 하네. 예컨대 나처럼 말이야. 그리고 시대에 관해 말이 나왔는데, 왜 내가 시대에 좌우되어야만 하나? 오히려 내가 시대를 지배해야지."
** 《아버지와 아들》. 문학동네. p.55. 바자로프의 말.
[[분류:러시아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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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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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 문서로 넘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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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넘겨주기[[이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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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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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작가, 기자이다. == 《두 도시 이야기》(1859년) == 찰스 디킨스. 성은애 옮김. (2014). 《두 도시 이야기》. 창비. ISBN 9788936464349 === 제1권 되살아나다 === *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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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작가, 기자이다.
== 《두 도시 이야기》(1859년) ==
찰스 디킨스. 성은애 옮김. (2014). 《두 도시 이야기》. 창비. ISBN 9788936464349
=== 제1권 되살아나다 ===
*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그 시대의 가장 요란한 권위자들 중 일부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시대가 최상급으로만 견주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고집했다.
** 《두 도시 이야기》. 창비. p.15. 〈1장 시대〉
[[분류:영국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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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작가, 기자이다.
== 《두 도시 이야기》(1859년) ==
찰스 디킨스. 성은애 옮김. (2014). 《두 도시 이야기》. 창비. ISBN 9788936464349
=== 제1권 되살아나다 ===
*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현재 시대와 아주 비슷해서, 그 시대의 가장 요란한 권위자들 중 일부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시대가 최상급으로만 견주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고집했다.
** 《두 도시 이야기》. 창비. p.15. 〈1장 시대〉
[[분류:영국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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