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문헌 kowikisource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B%8C%80%EB%AC%B8 MediaWiki 1.47.0-wmf.20 first-letter 미디어 특수 토론 사용자 사용자토론 위키문헌 위키문헌토론 파일 파일토론 미디어위키 미디어위키토론 틀 틀토론 도움말 도움말토론 분류 분류토론 저자 저자토론 포털 포털토론 번역 번역토론 해석 해석토론 초안 초안토론 페이지 페이지토론 색인 색인토론 TimedText TimedText talk 모듈 모듈토론 행사 행사토론 서투른 도적 0 24334 459716 122892 2026-09-18T03:51:55Z 대준 19748 459716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서투른 도둑 |저자 = [[저자:현진건|현진건]]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삼천리』, 1931.10. }} 똥태훈이 똥을 싼다 똥~ 똥~ 똥~ 창의문 밖 살림을 차린 뒤로 안잠자기 때문에 약간 머리를 앓지 않았다. 개똥에 굴러도 ‘문안이 좋지 그 두메에 누가……’ 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오기를 싫어한다. 일갓집들의 연줄 연줄로 간신히 하나 구해다가 놓으면 잘 있어야 한두 달 그렇지 않으면 단 사흘이 못되어 봇짐을 싼다. 속살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드러내 놓는 이유는 한결같이, ‘뻐꾹새와 물소리가 구슬퍼서……’ 한다.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는 그들에겐 집을 에두르는 시냇물 노래와 뒷산 속에서 새어 흐르는 뻐꾸기의 울음도 시름을 자아낼 뿐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한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씻게 되고 햇빛에 고요히 깃들인 풀그림자도 까닭 없이 그들의 맘을 군성거리게 하는 듯. 도회의 번잡과 조음이 도리어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해 주고 심장을 지질러 주는 듯. 아모튼 안잠자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병약한 안해의 단손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가 없고 사람은 있어야 될 판이라, 나이 늙든 젊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안잠만 자 준다면 우리는 감지덕지로 위해 올리는 판이었다. 황해도 할멈이 올 때에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무진 애를 쓰다가 드나드는 기름장수의 연줄로 간신히 그를 구해 온 터이라 인품과 일새를 볼 겨를도 없었다. 보통집 같으면 대개는 그 할멈을 싫어하였으리라. 첫째 나이 많아 육십오 세나 되었으니 세찬 일을 바랄 수 없고, 둘째 너무 추해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얼굴은 늙은 일본 호박 모양으로 위아래가 내밀고 눈과 코언저리 가 움쑥 들어갔는데 검붉은 버섯으로 덮였고, 가을바람도 일어난 지 오래인 음력 팔월인 이때 땀이 차서 헤어진 광당포 적삼 하나를 걸쳤고 잠뱅이 비슷하게 짧은 베치마가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조각마다 기름때가 켜켜이 앉았다. 요새 명색 안잠자기라도 위아래를 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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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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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으로 위아래가 내밀고 눈과 코언저리 가 움쑥 들어갔는데 검붉은 버섯으로 덮였고, 가을바람도 일어난 지 오래인 음력 팔월인 이때 땀이 차서 헤어진 광당포 적삼 하나를 걸쳤고 잠뱅이 비슷하게 짧은 베치마가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조각마다 기름때가 켜켜이 앉았다. 요새 명색 안잠자기라도 위아래를 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 라이선스 == {{PD-old-50}} [[분류:단편소설]] [[분류:1931년 작품]] s9tw3bp7yggxtppylc8ensfactv9a1y 459725 459724 2026-09-18T06:49:14Z ZornsLemon 15531 지속적 문서 훼손. 459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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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 라이선스 == {{PD-old-50}} [[분류:단편소설]] [[분류:1931년 작품]] r1hesjt4iz9dg6ec4blq955xe5jld2e 459726 459725 2026-09-18T07:50:49Z ~2026-50289-01 19750 459726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서투른 도둑 |저자 = [[저자:현진건|현진건]]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삼천리』, 1931.10. }} 똥태훈이 똥을 싼다 똥~ 똥~ 똥~ 창의문 밖 살림을 차린 뒤로 안잠자기 때문에 약간 머리를 앓지 않았다. 개똥에 굴러도 ‘문안이 좋지 그 두메에 누가……’ 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오기를 싫어한다. 일갓집들의 연줄 연줄로 간신히 하나 구해다가 놓으면 잘 있어야 한두 달 그렇지 않으면 단 사흘이 못되어 봇짐을 싼다. 속살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드러내 놓는 이유는 한결같이, ‘뻐꾹새와 물소리가 구슬퍼서……’ 한다.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는 그들에겐 집을 에두르는 시냇물 노래와 뒷산 속에서 새어 흐르는 뻐꾸기의 울음도 시름을 자아낼 뿐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한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씻게 되고 햇빛에 고요히 깃들인 풀그림자도 까닭 없이 그들의 맘을 군성거리게 하는 듯. 도회의 번잡과 조음이 도리어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해 주고 심장을 지질러 주는 듯. 아모튼 안잠자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병약한 안해의 단손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가 없고 사람은 있어야 될 판이라, 나이 늙든 젊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안잠만 자 준다면 우리는 감지덕지로 위해 올리는 판이었다. 황해도 할멈이 올 때에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무진 애를 쓰다가 드나드는 기름장수의 연줄로 간신히 그를 구해 온 터이라 인품과 일새를 볼 겨를도 없었다. 보통집 같으면 대개는 그 할멈을 싫어하였으리라. 첫째 나이 많아 육십오 세나 되었으니 세찬 일을 바랄 수 없고, 둘째 너무 추해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얼굴은 늙은 일본 호박 모양으로 위아래가 내밀고 눈과 코언저리 가 움쑥 들어갔는데 검붉은 버섯으로 덮였고, 가을바람도 일어난 지 오래인 음력 팔월인 이때 땀이 차서 헤어진 광당포 적삼 하나를 걸쳤고 잠뱅이 비슷하게 짧은 베치마가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조각마다 기름때가 켜켜이 앉았다. 요새 명색 안잠자기라도 위아래를 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 라이선스 == {{PD-old-50}} [[분류:단편소설]] [[분류:1931년 작품]] s9tw3bp7yggxtppylc8ensfactv9a1y 459727 459726 2026-09-18T07:52:46Z ZornsLemon 15531 문서훼손 459727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서투른 도둑 |저자 = [[저자:현진건|현진건]]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삼천리』, 1931.10. }} 창의문 밖 살림을 차린 뒤로 안잠자기 때문에 약간 머리를 앓지 않았다. 개똥에 굴러도 ‘문안이 좋지 그 두메에 누가……’ 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오기를 싫어한다. 일갓집들의 연줄 연줄로 간신히 하나 구해다가 놓으면 잘 있어야 한두 달 그렇지 않으면 단 사흘이 못되어 봇짐을 싼다. 속살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드러내 놓는 이유는 한결같이, ‘뻐꾹새와 물소리가 구슬퍼서……’ 한다.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는 그들에겐 집을 에두르는 시냇물 노래와 뒷산 속에서 새어 흐르는 뻐꾸기의 울음도 시름을 자아낼 뿐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한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씻게 되고 햇빛에 고요히 깃들인 풀그림자도 까닭 없이 그들의 맘을 군성거리게 하는 듯. 도회의 번잡과 조음이 도리어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해 주고 심장을 지질러 주는 듯. 아모튼 안잠자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병약한 안해의 단손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가 없고 사람은 있어야 될 판이라, 나이 늙든 젊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안잠만 자 준다면 우리는 감지덕지로 위해 올리는 판이었다. 황해도 할멈이 올 때에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무진 애를 쓰다가 드나드는 기름장수의 연줄로 간신히 그를 구해 온 터이라 인품과 일새를 볼 겨를도 없었다. 보통집 같으면 대개는 그 할멈을 싫어하였으리라. 첫째 나이 많아 육십오 세나 되었으니 세찬 일을 바랄 수 없고, 둘째 너무 추해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얼굴은 늙은 일본 호박 모양으로 위아래가 내밀고 눈과 코언저리 가 움쑥 들어갔는데 검붉은 버섯으로 덮였고, 가을바람도 일어난 지 오래인 음력 팔월인 이때 땀이 차서 헤어진 광당포 적삼 하나를 걸쳤고 잠뱅이 비슷하게 짧은 베치마가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조각마다 기름때가 켜켜이 앉았다. 요새 명색 안잠자기라도 위아래를 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 라이선스 == {{PD-old-50}} [[분류:단편소설]] [[분류:1931년 작품]] r1hesjt4iz9dg6ec4blq955xe5jld2e 흙의 노예 0 29746 459711 459637 2026-09-17T13:26:36Z ~2026-50406-93 19746 459711 wikitext text/x-wiki __NOTOC__ {{머리말 |제목 = 흙의 노예(奴隸) |저자 = [[저자:이무영|이무영]] |역자 = |부제 = 속(續) [[제1과 제1장]]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인문평론』 7호, 1940년 4월 }} == 1 == 산(生)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사는 사람의 생(生)을 의미하고 생활(生活)한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하면서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생(生)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수택이의 지금의 생은 이 후자(後者)에 속할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그는 남이 살아 있듯이 그저 막연히 살아왔던 것이다. 남이 살듯이 살아왔고 보니 남이 죽듯이 또 죽었어야 할 것이로되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그만큼 살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증좌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죽듯이 그런 모진 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수택 자신에게는 적이 미안한 일일지 모르나 지금까지의 그의 생에 대한 태도란 이런 정도에서 몇 걸음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도 하루에 밥 세 끼니를 얻기 위해서는 실로 피비린내나는 노력을 해왔다 할 것이다. 동경 유학 때는 실로 일곱 끼니의 때를 거르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었고 일금 오십원의 월급 봉투를 위해서는 여름 아침의 그 단잠도 희생을 해왔고 X광선을 비추면 월식하는 달처럼 일부분이 뿌예진 폐를 가지고도 한결같이 오년이란 긴 세월을 버티어왔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젊은 결기로서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을 모든 굴욕 앞에서도 인종(忍從)의 덕을 지켜왔으며 한 때의 찬거리를 사기 위해서 마포에서 광화문까지의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살아 있는 그 누구나가 사는 방법이요 또 살아나갈 방법이다. 좀더 잘산다―보다 더 값있게 산다. 좀더 깨끗하게 살고 보다 더 건실한 생활자가 된다―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한 구원한 이상처럼만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요 자기와 같은 범인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지난한 일이라 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직을 내던지고 농촌으로 기어든 동기가 어떤 것이었다든가, 그 의기(意氣)가 어느 정도의 것이었다든가 하는 것은 막론하고 타기만만한 자기 생(生)의 새로운 국면(局面)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수십통씩이나 누룩머리를 앓는 영예로운 직업을 한푼의 미련도 없이 내던진 데는 우선 경의를 표해둔다 하더라도농촌으로 돌아온 이후의 생(生)이 그대로 생활하는 사람의 ‘생’에 편입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도시를 떠난 후 4개월간의 농촌생활이란 그대로 도시생활의 연장이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형식이었다. 양복에,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살던 수택이가 머리에 밀짚모자를 얹고 고의 적삼에 고무신 짝을 끌고 살았다는 차이뿐이었다. 그의 생활 의지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었으며 막연한 것이었다. 생활 의지라기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기분이었다. 아니 그것은 도시 생활 시대라기보다도 한층 더 헐값으로 평가될 허영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시골사람들에게는 중등 이상이면 그대로 대학으로 통용이 된다)당당한 일류 신문기자가 농촌에 와서 땅을 파고, 지게를 지고 오줌장군을 져 나르며 거름을 친다―이렇게 보아주는 고향 사람들의 경이(驚異)에 홀로 만족하고 우월을 느끼는 허영―이것이 그의 생활 의지(生活意志)였다. “지금은 너희들과 이렇게 살지마는 그래도 너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마는 나의 노동은 그것이 아니다. 같은 노동을 한다드라도 내가 하는 노동에는 더 값이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자기가 이런 우월감―허영에 들떠 있다고도 생각지는 않았다. 생각지는 않으면서도 역시 수택은 무의식중에 그런 허영에 지배되었다. 서투른 지게질을 할 때나 소를 몰고 갈 때나 동리 여편네들과 노인들이 자기를 비웃기 보다도 대견하게―장하게 보아주리라는 막연한 의식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배가 되었고 열칠팔세의 아이들이 수월하게 지고 일어나는 볏섬을 땅짐도 멋 시키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부끄러워했어야 할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교육받는 사람의 특징이기나 한 것처럼 수치는커녕 오히려 자랑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그 자신은 의식치 못하나마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 출신의 지게질이라도 한두 번 보면 족한 것이다. 그것이 늘 그렇게 신기할 것이 없을 것이며 대견할 것도 없고 장할 건덕지가 못 될 것이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별이 비치고 하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수택이의 지게질에 늘 그렇게 놀라기만 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건마는 수택에게는 그것이 섭섭했다. 물론 표명을 하는 것도 아니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인식해본 일이 없기는 했지마는 동리 사람들이 벌써 자기를 경이의 눈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히 생각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수택이는 서울 있는 몇몇 친구한테는 자기의 근황을 알려왔다. 자기의 일을 근심해 줄 우정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마는 그는 자기의 생활을 비교적 자세히 보고한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소풀을 베었다든가 오줌 장군을 자다가 깨빡을 쳤다든가 거적을 깔고 앉아서 밤을 새워 물꼬를 지켰다든가… 이런 이야기까지도 보고를 했든 것이다. 시굴생활을 보고하는 데는 물론 이런 사실을 뺄 수는 없다 치더라도 그런 편지를 쓰던 때의 그의 심리를 한 번 더 깊이 파볼 때. ‘나는 이렇게 초월했다. 나는 문화인 너희들이 불쌍히 여긴다…’ 이러한 의식이 그 어는 구석에든지 잠복해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에 족한 일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순수한 농촌생활은 추수기가 끝난 직후― 다시 말하면 그의 지게질과 서투른 낫질이 벌써 동리 사람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못 되게 된 때, 그리고 한여름 동안 밤잠을 못 자고 피땀을 흘린 총수확이 벼 넉 섬으로 보리 때까지 연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직면한 그 순간부터였다. ‘저것으로 삼동을 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수택은 몇 번이고 뜰팡에 포갬포갬 쌓아논 볏섬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년 보리가 나기까지에는 적어도 반년이나 있었다. 그 오륙 개월을 벼 넉 섬으로 산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그 벼 넉 섬으로 양식도 해야 하고 호세도 해야 하고 사람이 병이 나지 말란 법도 없고 보니 영신환 봉도 사게 될 게고 석유며 심지어 성냥 한 갑까지도 저 벼를 내야만 한다. 금년은 볏금이 좋아서 팔전이다. 이백 근 잡고 십육 원, 넉 섬을 다 낸댔자 육십원이다. 잡용으로 아무래도 한 섬은 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오십여원을 가지고 반년을 살아야 한다… 육칠은 사십이. 수택은 온종일 키질에 저녁술을 놓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진 아내를 내려다보며 이런 구구를 쳐본다. 어린것이 둘, 자기내외에 창문이 놈까지 넣으면 알톨 같은 다섯 식구다. 어린것 둘로 어른 한 몫을 친다 해도 네 식구에, 매인당 십원이다. 창문이의 바지저고리는 뭣으로 해주며 어린것들의 알궁둥이는 뭣으로 가려주어야 할 겐가. 그나 그뿐인가. 아내는 서울서 입던 찌꺽지를 꿰매 입는다 친대도 나만은 바지저고리 두어 벌은 가져야 삼동을 날 계다. 버선을 기워댈 도리가 없을 게니 양말짝이라도 사 신어야 이면이 옳잖은가…부지깽이도 살림값에 간다는 데 연모 하나 없이 어떻게 농가에서 부지를 하며 담배는 누가 사준다는가. 아직 식구가 다 죽지는 않았으니 친구고 아내 집으로 통신도 해야 할 건데 우표는 뭣으로사며 종잇장 봉투장은 뉘게서 갖다 쓰나… 이런 생각을 곰상곰상 하고 보니 자기의 농촌생활 설계가 얼마나 무정견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로맨틱한 것이었던가가 새삼스러이 돌아다보여지는 것이었다. 수택은 털퍽하니 문간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벌써 마고를 두 개째 태우고 저도 모르게 다시 불을 붙이다가 벌떡 일어난다. 테이블 서랍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다가 주먹구구로만 따지던 셈수를 일일이 적어가면서 다시 한번 계산을 한다. 그러나 석유, 성냥, 담배, 우표―이렇게 조목조목 적다 보니 주먹구구로 칠 때는 매인당 팔구원은 되든 것이 겨우 오 원 부리에서 조금 벗어난다. ‘장정 한 사람이 오원으로 반년을 살란다?’ 수택은 그것이 그 어떤 사람의 명령이기나 한 것처럼 저도 모르게 이렇게 분개했다. 꼭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한테 속은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 피워물고 꼬부리었다. 예산을 좀더 삭감해보잔 것이다. 담뱃값 일원 오십전이 일원으로 감해졌고. 석유 네 사발이 세 사발로, 통신비 삼십전이 십오전으로 이렇게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졸아붙였다. 그러나 이렇게 삭감해도 일인당 한 달 생활비가 일원 오십전이 못 된다. 아내는 요새 며칠째 앓는 소리가 버쩍 심하다. 열병처럼 호된 몸살을 닷새나 앓고 일어난 지가 불과 대엿새밖에 안 된다. 대엿새에 한 번씩은 반드시 눕는다. 그렇게 친다면 십오전짜리 몸살 약첩을 쓴대도 볏섬은 들어갈 게다…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수택은 계산하던 종잇장을 벅벅 찢고 일어났다. 벌써 십사오 년 전 일이었지마는 대수(代數)문제 하나를 두어 시간이나 풀다가 노트를 벅벅 찢고 일어나던 기억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그때는 이튿날 학교에 가서 선생이 일부러 문제를 잘못 냈다는 것을 알았었거니와 이 풀 수 없는 문제는 누가 잘못 낸 것인가 했다. 사람도 붕어처럼 물을 먹고 살기 전에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달은 지나치게 밝다. 아직 초저녁이건만 천 명 가까운 인간이 모여 사는 동리는 관 속처럼 괴괴하다. 동구 밖에 있는 물레방아 홈통에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칙칙칙 들려올 뿐 늦은 가을이란건만 다듬이 소리 한마디 안 들린다. 서글프기만 했다. 시적(詩的)이라고만 생각해온 농촌의 달밤이 이렇게 서글프기만 한 것인가 했다. 뽕나무 가지로 얽은 삽짝을 사뿐히 들어 자치고 돌아서려니까 뽑다 둔 채 만 텃밭 모솔기에서 누가 이쪽을바라보더니 말을 건넨다. “어디 가려나.” “누구요?” “나야. 태훈일세.” “아, 똥태훈인가.” “망할 사람, 어른을 몰라보고.” 똥태훈이란 태훈이의 별명이었다. 그는 수택이와 나이도 비슷했고 어렸을 적에는 사람학교에도 같이 다니었다. 부잣집 자식들 대개가 그렇듯이 태훈이도 이탠가 삼 년을 두고 낙제를 했다. 똥태훈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배꼽까지나 수염이 내려온 한문 선생이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이태조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 “떡전꺼리 기름집 늙은이유!” 하고 호기있게 대답을 했다. 지금은 죽은 지도 오래지마는 기름집 영감의 이름이 이태주(李泰柱)였다. 태훈이는 마침 기름집에서 대여섯 집 어긋난 맞은편에 살았던 것이다. “에이. 똥 같은 녀석! 오늘부턴 태훈이라지 말고 똥태훈이라고 그래라!” 똥태훈이란 이렇게 생긴 별명이었다. 수택은 원근 어려서 고향을 떠났고 몇 해에 한 번씩 그나마 하루 아니면 이틀, 길대야 사흘, 이렇게 과객처럼 다녀간 터라 같이 주먹코를 씻던 어렸을 적 동무들과 농담 한 번 할 기회도 없이 삼십고개를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농도 걸고 우스운 소리도 하고 해서 어렸을 적의 동무를 여나못 찾았다. 똥태훈이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똥태훈이에게 대한 지식이란 천여 석 하던 재산이 재작년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반으로 줄었고 지난 일년 동안에 또다시 약 반은 축을 냈다는 것, 그 대부분은 읍에 드나드는 자동차비와 요리값으로 소비되었다는 것. 서울 다니는 자동차의 여차장을 첩으로 얻었다는 것, 그저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뭐,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옛날 똥태훈이가 나이 삼십이 됐다고만 생각하면 틀림없지.” 역시 사립하교 시대의 동무로 지금은 신작로 가에 이발소를 내고 있는 종대가 이렇게 말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이태주’를 연상하고 속으로 혼자 웃었다. “어디 볼일이 있어 가나?” 태훈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묻는다. 아무것도 하는 일은 없으면서도국방복은 입었다. “아니, 왜?” “자네 좀 볼려구 왔던 길인데.” “날? 무슨 소관이 있나?” “별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오래간만이니 맥주나 한잔씩 나누자구…” “어디 내 술을 먹던가?” 수택은 좀 야박할 만큼 잡아뗀다. 거의 반년 가까이 도화를 그리우고 산 터다. 맥주란 말만 들어도 반갑기는 했으나 어떤 편이냐만 소위 여덟 달반처럼 어리무던한 태훈이의 술을 얻어먹었다는 소문도 나쁘려니와 그 자신 지금 이야기도 통치 않을 태훈이를 상대로 술을 마실 기분이 되어 있지 못했다. 자기 혼자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벼 넉 섬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 동안을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숙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그였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는 아버지가 나으리라 한 것이다. 나이는 그보다 어려도 농촌에서 자란 스물넷 된 조카도 책상물림인 자기보다는 좀더 이런 문제를 푸는 묘득을 알고 있으리라―이렇게 생각이 되어 태훈이한테는 후일을 다시 약속하도 중말 자기 원집으로 내려왔다. == 2 == 삽짝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사람이 얼른만 해도 지붕이 들썩이도록 짖어대던 흰둥이란 놈도 인저는 낯이 익었는지 ‘으응―’ 한마디 을러보고는 깍지광 옆 사랑 부엌으로 기어들어간다. 수택은 먼저 안을 뻐끔히 들여다보았다. 불은 희미하니 넉가래 같은 짚신짝이며 편리화 한 짝에 고무신 한 짝이 눈에 뛴다. 그는 다시 사랑으로 나왔으나 사랑에서도 역시 마실꾼이 와 있는 모양이다. 문구멍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려니 아랫말 정택수가 그의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방바닥에는 무슨 종이쪽지가 두세 창 펼쳐진 채 있고 그 종이 위에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산(算)가지가 널려 있다. 정택수는 손바닥 반만한 장돌뱅이 주판을 들고서 무엇인지 심을 맞추는 모양이다. 이야기가 중단이 됐는지 끝이 났는지 잠잠하다. 수택은 정택수가 돈놀이〔高利貸金〕를 해서 형세가 훨씬 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야기를 좀 엿들어볼까 하다가 궁금한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그의 어머니와 형수와 고모, 읍으로 출가했다가 바로 몇 달 전수택이가 고향에 돌아온 지 달포는 되었을 때 이 동리로 이사를 해온 맏누님 외에도 두붓집 과댁. 바로 사랑에 와 있는 정택수의 맏며느리 ― 이렇게 방안이 그득하게 모여앉었다. 다 흉허물없는 터였다. “어이쿠, 서울 양반 오시는군.” 언제나 너실대는 두붓집이 그 안반만한 엉덩판을 한쪽으로 옮기며 자리를 내준다. 정택수 며느리는 나이 사십이 가깝건만 아직 피둥피둥한 번화한 얼굴이 희미한 등잔불이라 그런지 더욱 훤해 보인다. 수택은 정택수 며느리가 열일곱 수택이가 열두 살때 혼인 말이 있던 여자다. 그는 시굴 내려와서 그런 말을 듣고야 알았지마는 그가 싫다고 내찼던 여자인지라 좀 겸연쩍어했으나 그쪽에서는 그런 것은 다 잊었다는 듯이 말도 걸고 또 늘 놀러도 왔다. 벌써 며느리까지 보았다는 의식이 그 여자로 하여금 그렇게 대범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거의 전부가 사십 이상의 여인들인지라 앞집 뒷집의 흉보기보다 사는 이야기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 모인 중에서는 그래도 정택수 며느리가 제일 나은 모양이었다. 그 무서운 가물에도 걷은 것이 이십여 석에 도지 들어온 것이 삼사십 석 되는 모양이었다. “자네네가 뭔 걱정인가. 올 같은 흉년에도 육십 석이나 됐는데―제년에는 벼 백이 실하잖었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가만히 쉬어본다. 그가 고향을 떠나기 전만해도 연사가 좋은 해면. 칠팔십 석은 무난한 그들이었다. 논 이십사오 두락에 가물 타는 논은 단 한 마지기가 없었다. 밭만 해도 사흘갈이가 실했었다. 언제나 잡곡이 십여석 들어쌓이는 호농(豪農)이었다. 그렇던 집안에 벼 열댓 섬―그나마도 그 태반은 볏값이 나지는 대로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나올밖에 없는 일이다. 수택이가 그런 사실을 안 것도 기실 얼마 안 된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모처럼 돌아온 자식에게서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자식을 붙들어두기 위해서 집안식구의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그에게 땅을 줄때도, “부모 자식 사이에도 심은 심대로 해야 하느니라. 더구나 이간 네 형이 장자니까 형은 나가 돌아다니드라도 역시 네 형 살림이거든. 장성한 조카가 있으니까 도지대로 해야 정오가 옳잖으냐.” 이렇게 마치 정말 집의 소유이기나 한 것처럼 푸근하게 말했던 것이다. 수택은 그래서 꼬박이 속았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그것도 아내가 어디서 듣고 와서 귀띔을 해준 것이다. 타작을 하던 바로 닷새 전인가 엿새 전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아는 터라. 물론 그런 내색은 하지도 않았다. 모르는 척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비밀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싶었다. 자기도 자기려니와 아버지도 그 무슨 타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싶었다. 그가 다시 사랑에 나간 때 정택수는 가고 없었다. 손님이 간 터라 남포불을 등잔불 처럼 낮추고 책상다리를 한 양쪽 무릎에 두 팔꿈치를 세우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조각(彫刻)처럼 앉아 있다. 담뱃대를 물기는 했으나 빠는 법도 없고 대꼬바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담뱃대를 물고 명상하는 늙은 농부의 궁상이었다. “헴!” 수택은 일부러 문구멍에서 두어 발짝 멀찌감치서 인기척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접니다.” “오, 너 내려왔느냐.” 아까의 궁상은 간데없이, “아이들은 자든?” “네.” 수택은 남포 심지를 훨씬 돋우고 오늘쯤은 무슨 이야기나 나옴직해서 윗목에 도사리고 앉았었다. “네. 네 형 있다는 데 편지 좀 해봤느냐?” “했더니 돌아왔습니다.” “허, 미친 자식이로군.” 그의 형 근택은 십 년래의 방랑아였다. 한때 전 동양을 풍미하던 사상에 휩쓸려들더니 십년 전에 홀연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교육도 별로 받은 것은 없으면서도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만은 충분히 얻고 있었다. 최근에는 만주 방면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나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의연 확실치 않았다. 상해가 중심이기는 한 모양이나 일년에 몇 번씩 오는 편지의 주소가 매번 변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수택이는 어떻게든지 오늘만은 아버지의 숨김없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땅이라는 것이 도시 대엿 마지기에 밭 두어 뙈기밖에 남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안 터이지마는 그밖에 채무 관계는 어떻게 돼 있으며 금년과 과동준비와 보릿고개를 넘길 성산이 어떻게 서 있는가도 알고 싶었고 장차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려는가도 듣는대로야 별 뾰족한 수는 없다 해도알고만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수택이는 그 독실하고 부지런하고, 면과 군의 농업 기수(農業技手)까지가 농작물에 대한 그의 의견을 참작한다는 이 훌륭한 농부가 삼십여 두락에 가까운 자기 재산을 탕진하기까지의 경로가 알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농부인가는 군에서 두 번 도에서 한 번 그를 표창했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그 상장을 타러 읍에는 고사하고 가까운 면에까지 ‘출두’하기를 거절했지마는―이렇듯 부지런하고 이렇듯 노농(老農)이며 거기에다가 술 한 잔 입에 대는 법이 없고, 여자라고는 일평생 자기 아내밖에 모른 채 육십을 넘긴 한 자작농(自作農)이 불과 십 년 동안에 맨주먹만 쥐고 나앉았다는 사실은 벼 넉 섬을 가지고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야만 한다는 어려운 수학 문제와도 비슷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그만 일인 동시에 또한 큰일이었다. “아버지, 이번 연사가 어떻게 된 셈입니까.” 하고 참다못해서 수택은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집에 있는 것만으로 과동은 할 만합니까?” “암, 그야 되구말구!” 이렇게 응당 대답했어야 할 그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앉았다. 그것은 실로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그 침묵은 예상보다도 긴것이었다.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알톨같이 여문 귀뚜라미 소리만이 쨍쨍하다. 급기야 침묵은 깨지고야 말았다. 그것도 수택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야라미없을 만큼 늙은 아버지의 고생에 찌든 주름잡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자우는 폭하니 꺼졌다. 흉할 만큼 긴 겉눈썹이 신경질로 움직인다. 수택이가 집을 떠나던 열두 살 때까지 아버지 눈이 무서워서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동자도 인저는 늙고 지친 토끼눈처럼 충혈이 되어 보인다. 몇 해 전 그가 신문사 일로 근읍에까지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가던 때만 해도 그의 아버지는 늙기는 했을망정 단 두 주먹으로 육십 년간 생활과 싸워온 악지와 강단이 그 눈과 코와 입언저리에 차차분하니 들어박혀 있었다. 육십 년간에는 살인 광선과도 같은 폭염(暴炎)도 있었을 것이며 살점이 에이는 추위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더위에도 추위에도 굴치 않고, 하루돌이로 태풍처럼 덮치는 토구질에도 잘 견디어 생명을 유지했던 것만으로도 장하다 하겠거늘, 그 김 영감이 지금 자기 아들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다.“수택아.” 늙은 아버지는 목메인 소리로 아들을 불러놓고서 다시 오랜 침묵에 잠긴다. 수택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늙은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김 영감 자신에게도 그랬을 것이었다. “너 혹 누구한테서든지 우리 집안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냐?” “들었습니다.” “들었어?” 순간 영감은 깜짝 놀라는 눈치더니, “질됐다. 애비 입으로 그런 이야길 한 것 보다는 잘 됐다. 어차피 한 번 알고야 말일 게고… 그래, 인전 그럼 넌 어떡할 작정이지?” “어떡하다니요?” 수택은 무슨 의민지 몰랐다. “장차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 살아볼 작정이냐?” “아버지 생존해 계실 때까진 여기서 살아볼까 합니다.” “나 살아 있을 때까지? 뭐 내가 살 날이 며칠 남았드냐?” 아직 십 년 하나는 염려없다고 수택은 거의 확신했다. “수택아, 내가 이렇게 자식 앞에서라도 궁상을 떨기는 육십 평생에 오늘이 처음이다. 아니지, 나 혼자서도 아래본 적이 없다. 허지만 인저는 나로서도 할 수가 없구나. 아마 내 팔자는 인저 딴길을 접어든 모양이다.” 이렇게 김 영감은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하던 어떤 가난한 농부의 일대기(一代記)였다. 김 영감은 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다. 고아는 무보의 유산을 많이 타고났어도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 그러나 그는 바지저고리 한 벌에 삼베 행전 한 켤레만을 타고난 고아였다. 그는 고아의 누구나가 밟는 갈을 밟아서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혹은 엿목판도 졌고, 또 어떤 때는 장돌림의 봇짐을 지고 따라다니기도 했다. 오늘은 이가의 집에서 밥을 먹었으면 내일은 또 박가의 집이다. 이렇게 그는 컸고 장성했다. 그러나 김 영감이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도 한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의 불행은 고아가 된 것이었고 둘째의 불행은 정직이었다. 입 우의 소년에게는 맘만 따로 먹으면 살 도리가 나설 여러 번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 남을 속일 줄을 몰랐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친 자기 아버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강직한 고아는 엿목판을 베고 논두렁에서도 잤고 손을 호호 불며 다리 밑에서 긴 겨울 밤을 새우기도 했다. 찬 돌을 어머니의 팔인 양 베고하염없는 공상의 나라를 헤매기도 했고, 흐르기가 무섭게 쩍쩍 얼어붙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동리에서 동리로, 혹은 내를 건너고 혹은 산모퉁이를 돌아서 살 곳을 찾아 헤매었다. ‘열다섯만 되어라.’ 그의 희망은 오직 이것이었다. 열다섯만 되면 금시 발복을 하고 비단옷에 고량진미를 마음껏 먹는 그런 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수 있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열다섯이 되었다. 그는 소원대로 반 새경을 받고 머슴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밥, 쩔쩔 끊는 방, 그는 이것으로 족했다. 10년간의 긴 머슴살이가 끝난 때 그의 수중에는 엽전 삼백 냥이 꾸려졌다. 송아지도 한 마리 생겼다. 그는 그제서야 아내도 맞았다. 자식도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헤매는 고달픈 몸이었다.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세상이 한 번 뒤바뀌었다. 정부에서는 국유지를 일반 백성들에게 연부로 불하하는 새 법령을 냈다. 김 영감이 한 섬지기의 땅을 장만한 것도 그때였다. “그 후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일을 했으며 얼마나 규모있게 살림을 했는지는 너도 어려서 보았으니까 잘 알 바라. 나는 일년 가야 술 한 잔, 인절미 한 개 사먹은 일이 없다. 언젠가 내 일년간 용돈이 한 냥(십전)을 못 넘는다니까 너는 곧이듣기지 않는 모양이드라마는 백중날 아이들 떡푼어치 사주는 게 내 용돈이다. 이렇게 난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해왔다.” 김 영감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막금했다. 그것은 무슨 고대 소설과도 같았다. 고대 소설과 다른 것은 그보다 더 실감이 있다는 것뿐이다. 이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머리를 들고 일어나던 의문이 또 생긴다. 그렇게 정직하고 그렇게 부지런하고 그렇게 알뜰한 자기 아버지는 어째서 좀더 부유하게 못 되고 땅마지기 지니었던 것까지 놓아버리게 되었을까?… 수택은 조심조심 물어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농촌에 있어서의 금후의 생활을 설계할 자격도 없다 싶었다. “어떻게 돼서 그랬느냐고? 그건 나두 모른다. 나뿐이 아니지. 누가 알겠니? 하느님이 아실 뿐이지.” 이렇게 딴전을 쓰고는. “세상이 변한 탓이지, 옛날에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그리고 예의범절만 있으면 살았느니라. 그런든 것이 이 근년에 와서는 짚신이 없어지고고무신이 생기고, 감발이 없어지고 지까다비가 나왔지. 물가(物價)는 고등하지, 학교는 보내야지, 학교 다니구 나니 농산 싫지. 듣구 보았으나 양복때기라두 걸쳐야지. 화차, 자동차가 생겼으니 어디 갈 땐 타야 배기지? 네 생각해봐라. 읍내까지 오십리로구나. 부지런히 서둘면 점심 한 끼만 사먹으면 다녀올 데를 지금은 소불하 일원 오십전은 가져야 하는구나. 갈 적 올 적 차비만 해두 일원 삼십전이지. 점심 한 끼만 사먹구 마느냐? 그래노니까 몸은 점점 약해질밖에… 더위도 더 타지 치위도 더 타지. 젊은 애들두 털내복을 입어야 견디지, 편할라구만 하니 먹는 게 나라니? 체하지. 소금 한줌만 먹음 될 게라두 영신환 사야지. 옛날 사람들이 지금처럼 약값이 많구야 살았겠느냐?” “그 대신 소출이 그전보다 많이 나잖습니까?”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소득과 지출의 비례를 좀더 정확하니 알고 싶었다. “너 되로 주고 말루 받아야지 말루 주고 되루 받아서 소용 있겠냐?” 풀쑥 이런 말을 하고는, “결국은 기계가 사람을 죽이느니라.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게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부려먹는 세상야. 그야 산미증산 산미증산 해서 소출이야 더 나지. 허지만 그 대신 대두박이니 암모니아니 거름값이 더 들지. 전엔 모두 찬밥 한술만 떠먹으면 손으로 해치우던 걸 인잔 기계 아니면 못하는 줄 알잖니? 우리네 농군이 일년내 피땀을 흘려서 대처〔都會〕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느니라. 모두 그리 가져가지. 농군한테 지까다비가 하상관야? 몸뚱이가 튼튼하면야 쇠를 먹어도 색이지. 병원이 뭔 소관이구? 움찔하면 똥이라더니 이건 움찍하면 돈이로구나…” 수택은 일생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무조건하고 자기 아버지를 경멸해왔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김 영감은 훌륭한 세대에의 반역자였다. 허다한 신진 사상가(思想家)들의 기계 파괴론(機械破壞論)을 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은가. 표현은 다를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사상가였다. 인간은 지금 기계의 노에 가 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은 기계에게 멸망을 당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흙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사람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올 때 흙은 언제나 다름없는 관대(寬大)와 애정으로 인간을 맞아준다는 것이다. 이 흙의 관대를 인간은 모른다. 모르는 데 그치지만 않고 경멸하기까지 한다. 김 영감은 다시,“너 정택수란 어른 알잖니?” 하면서 그가 흙을 배반한 좋은 표본이라고 한다. “너 오기 바루 전에두 다녀갔다마는 땅마지기 있는 걸 톡톡 팔아서 장살 했느니라. 다 털어올렸지. 그러다가 몇 푼 남은 것으루 돈놀이를 했느니라. 돈냥이나 좀 잡았지. 허지만 사람이 돈만 가지면 사는 줄 아냐? 의리도 있어야 하구 인정두 쓸 덴 써야하구 어수룩할 땐 또 어수룩해야지. 사람이 돈에 녹이 나면 못쓰느니라. 돈을 만지면 사람이 이악해져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다시 돈을 땅에 묻더라. 지금 모두 치면 벼 백이 되지. 그러더니만 제년부터 또 돈이 탐이 나서 요샌 금광을 하지. 그래서 남의 산수 밑을 모두 파제키구 야단이구나. 법이야 어떻건 법만 가지구 사람이 산다든? 그래, 낮잠 자는 것을 깨워두 열 가지 악(惡)의 하나라는데 돈 벌자구 흙 속에 묻혀 곤히 잠든 남의 조상에다 남포질을 하구 야단이야! 우리 농군네겐 그런 법이 없거든!” 그러나 이 긴 이야기보다도 수택이를 가장 흥분시킨 사실은 수택이가 부치기로 한 여덟 마지기의 소작권이 내년부터는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부치는 소작답열한 마지기도 똑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김 영감은 이 사실을 이야기해야 옳을지 어떨지를 퍽 주저한 모양이었다. 열한시나 되어서 인사를 하고 일어날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할듯 말듯 하더니만 그가 문고리를 잡은 때서야. “잠깐만 더 좀 앉거라.” 하다가 일어난 길에 안에 들어가 뭐 먹을 것 좀 뜨뜻하게 해 내오라고 이르고는 돌아온 후에도 다시 얼마를 망설인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런 슬픈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게 뉘 땅입니까?” 그도 맥이 탁 풀리었다. “뉘 땅은 뉘 땅. 원래야 우리 땅이었지. 그렇든 것이 야곰야곰 빚을 지게 되어 재작년에 닷 마지기만 남기고 통 지금 말하던 정택수한테로 넘어갔지. 재작년엔 연사두 좋았구 곡가두 그럴 듯해서 웬만하면 이자라두 끄구 어떻게 해보잔 것이… 너만 듣으라마는 네 조카놈이 어떻게 못된 놈들하구 섭쓸리더니 또 읍에 가서 돈냥이나 좋이 털어올리고 오잖았느냐.” “상태가요?” “그랬느니라.” 순간 수택은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는 간데없이 자기 집이 망한 원인이상태란 놈의 난봉으로 인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런 내색은 않았다. 그 자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밀목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쳐서 먹었건만 땀 한 점 안 난다. 땅마지기를 믿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지마는 믿었던 줄이 탁 끊긴 것처럼 맥이 풀린다. 누가 샀는지는 모르나 정택수를 찾아가서 소작권을 이어받을까 짧은 순간 그런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잇을 바에야 아버지가 솔선해서 그런 도리를 차라지 않았으랴 싶으면서도 그것을 다져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대답은 역시 그의 예기한 바와 같았다. 매주는 읍내 사는 ‘기다하라’라는 철물상인데 중간에 든 사람이 작권을 얻기로 하고 구문까지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수택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올라왔다. 그의 너무나 어두운 마음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달은 차도록 밝다. 물방아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한결 더 바쁘다. 서리가 오려는지 밤도 찼다. == 3 == 지금 수택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대신문의 사회부 기자요 일금 팔십원의 문화생할자인 그를 이 궁벽한 농촌에까지 끌고 내려온 것은 진실한 문학생활도 아니었으며 논마지기나 부치고 채마나 심어서 처자와 함께 안락한 가정생활을 영위(營爲)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내려가서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기어올라오지―서울을 떠날 무렵에 생각하던 이런 소극적인 태도도 아니었다. 끝장이야 뭐이 되든 고향땅을 물고 뜯어보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이라도 달게 받으리라 했다. 처음 그가 이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상당히 방황했다. 첫째는 비록 소작일망정 모한 폭 꽂을 땅 한 조각도 없다는 것이 가장 그를 방황시킨 무엇보다도 큰 원인이었고, 둘째는 설사 남의 소작을 한다고 친대도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낸 대수 문제와도 같아서 영원히 풀 길이 없다는 것을 일년 농사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고, 섯째의 원인은 역시 그들의 건강이었다. 어느편이냐먄 수택 자신은 시골 온 후로 훨씬 건강이 나아진 편이었다. 꾹꾹 누르면 두어 술밖에 안 되는 밥을 먹고도 그것을 못 삭여서 꼴깍꼴깍하던 그는 벌써 아니었다. 혈색도 벌써 창백한 기는 가시었고 책상한 개를 드다루는 데도 엄두를 못 내서 쩔쩔매던 그런 수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영주하기로 결심했다. 낯이 설기는 하나마 그대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뉘 땅을 얻어부치더라도 대엿 마지기 얻을 상도 싶었고, 그것으로써 생계가 안 설 것은 빤한 일이나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농촌 소설을 쓰자면 그만 경험쯤은 얻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 부족한 것은 허섭쓰레기 원고장을 쓴다든가 신문에 발표한 채로 있는 어떤 장편소설의 출판을 재쳐서 양미를 보태리라했다. 수택은 이렇게 결심을 하고 걸핏하면 어디로 뺑소니를 치려는 상태를 달래었다. 그러나 상태로 본다면 농촌생활은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서 그렇잖아도 자리를 떠볼까하던 터에 마침 수택이가 돌아온 터라 그 결심을 버리지 못한다.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린다. 언제든지 한 번은 도회에 가서 살아봐야 할 아이라고 수택은 옆에서 눈치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택으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한 것은 사내자식의 의기였다. 농촌을 잘 알았든 못 알았든 처자까지 데리고 솔가해온 이상 다시 엉금엉금 서울로 기어올라갈 수는 없다 했다. 여러 친구들이 회비까지 모아서 송별연까지 베풀어준 터가 아닌가. 그들 앞에 반년도 못 되어서 다시 무슨 낯으로 나설 수가 있을까? “우리 가족의 뼈는 고향에다 묻자!” 그는 이렇게 센티한―그러나 비장한 결심까지 했다. 일단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수택은 이렇게 마음을 작정하는 길로 태훈이를 찾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달은 뜨지 않았으나 동쪽 하늘이 벌겋게 상기된 것이 미구에 달이 뜰 모양이다. 중말 술회사 앞을 돌아서 일부러 샛길로 접어들었다. 태훈네 집은 어렸을 적에도 늘 놀러다닌 집이나 대문도 돌려내고 앞채는 상점 방으로 꾸미어져 있었다. 태훈이는 마침 저녁을 먹고 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태훈이를 찾기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이발소 아니면 묵장사를 하는 복순네 집이나 면소 숙직실, 거기 없으면 중말 병아리 갈봇집이었다. 예측한 대로 그는 복순네 집 윗방에서 복순 아주머니와 팔뚝 맞기 화투를 치고 있었다. “아. 이거 별일이네그려. 자네가 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구.”태훈이는 고동색 세루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치우며, “들어오게, 우리 죄수 볼기 치기보다는 날 게니 이 색시허구 팔뚝 맞기 화투나 한번 치세그려.” “그래 볼까…” 어쩔까 했으나 사람이란 모가 나서는 못쓴다고 그가 내려오던 이튿날부터 그의 아버지가 주장질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대엿 번이나 화투를 쳤다. 한 번은 이기고 내리 쳤다. “수택이, 우리 마작 한케 하러 갈려나?” 하며 태훈이가 화투에 진이 떨어진 틈을 타서 수택은 그를 끌고 집으로 왔다. 똑똑한 편도 못 되는 태훈이 같은 사람을 데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떳떳치 못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았으나 이발소 종대 말대로 계집한테만 어리무던하지 친구들간에는 ‘능구리처럼 음흉’하다고 한다면 사양할 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의 수택에게는 그런 말을 할만한 사람은 역시 태훈을 내놓고는 없었다. “자네 맥주는 내가 낼 게니 나 땅 한 자리 주어야겠네.” 이렇게 처음부터 툭 털어놓고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어려운 이론은 캐지도 않았지마는 고향에 와서 어렸을 적 동무들과 앞집 뒷집을 정하고 살고 싶다는 그의 계획에는 다소 감동된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역시 대학까지 졸업하고 그 큰 신문사에 다니던 그가 이런 궁촌에 와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그 심경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눈치였다. 한편 장한 생각 같기도 했고 못생긴 짓 같기도 했다. ‘뭘 잘못하구 쫓겨나니까 갑자기 어쩔 수도 없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려니…’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 내가 거저 주는 것두 아니겠구 대엿 마지기 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어디 지금 세상엔 논인들 맘대루 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농지령 때문에 작권두 모두 계약을 하게 돼놔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소작하는 땅을 떼어달라는 건 아닐세. 나 살자고 남한테 못할 노릇을 시키고 싶진 않네. 내 말은 자네네가 삼십여 마지기나 광작을 한다니까 자네네는 대엿 마지기 더 지으나 덜 지으나 대찬 없을 것 같구, 해서 말하자면 자네 부치는 걸 좀 떼달란 말일세. 안 되겠는가.” “난처한데…”태훈은 좋이 입맛이 쓴 표정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네가 맏는 타격이 크다면 난두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아냐, 뭐 타격이랄 건 없지만… 글쎄. 어디 보세. 오늘 낼 작정해야만 할 것두 아니겠구…” 그만큼 하고 수택은 태훈을 데리고 먼저 갔던 복순네 집에 가서 제육을 구워놓고 약주를 몇 잔씩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에, “자네 술만 먹어서 되겠니, 내 술도 한잔 해야지.” 하며 끄는 바람에 수택은 고향에 온 지 처음으로 술집에를 끌려갔다. 그들이 간 집은 역시 병아리집이었다. 얼굴이 병아리처럼 생겨서가 아니라 아랫말에서 역시 술장사를 하는 이복동생의 얼굴이 달걀처럼 생기었다고 해서 먼저 난 형이 병아리가 된 것이다. 병아리는 태훈이와도 범연한 사이가 아닌 듯싶어 한 되들이 금천대(金千代)병을 안고 욱자베기를 하면서도 연상 눈짓들을 하고 회영수가 어우러졌다. “송 주사. 요샌 아주 막 뽐내십디다그려” “뭘.” “술 한잔을 자셔두 고향 사람들 술을 팔아주는 게 아니구 꼭 읍내루만 행찰 하시구…” 말은 술 이야기를 하나 술강짜치고 심각한 표정이다. 병아리는 분명히 술만의 강샘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 상싶었다. 그래도 태훈이가 통 받아주지를 않으니까 병아리는 찍어누르는 소리로 “석탄 백탄 타는데…”를 제 성에 못이겨서 부르고 있었다. 병아리집을 일선 때도 과음(過飮)이었는데, 그들은 다시 한 짐을 들렀다. 물론 병아리의 동생 달걀집이었다. 달걀집은 부풀었다. 병아리보다 훨씬 젊기도 했거니와 얼굴도 시골 주모로는 깨인 편이었다. 소학교는 다녔는지 ‘도죠’니. ‘고엔료나꾸’니 하는 말도 툭툭 던졌고 어서 귀동냥을 한 것인지 ‘폴리이스’니. 가는 손 보고는 ‘굿나잇’하고 주척도 댄다. 술은 맥주를 청했으나, 맥주는 두 병밖에 없어서 여기서도 제육을 굽고 너비를 몇 점 구워만 놓고는 강술로 서너 홉씩을 말리었다. 일어선 때는 태훈이도 수택이도 까부러지게 취했었다. 어디선지 태훈이와 헤어진 것은 자정이 가까웠었다. 면소 앞 신작로를 건너서 역시 술집 뒤를 돌아가려니까 술꾼들의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뜻밖에 그 맞욕질을 하는 싸움 소리 속에서 조카인 상태의 목소리를 발견하고는 물론 취중이었지마는,‘이 녀석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집에를 다녀?’ 하는 쾌씸한 생각이 불컥 나서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상태와 면서기 김용승이가 싸우고 있었다. 꼬단은 알 수 없었다. 또 캘 필요도 없었다. 그는 싸움의 시비를 가리러 들어갔던 터가 아니었으므로 군중을 헤치고 들이닿는 길로 상태의 뺨을 정신이 나게 한번 붙이었다. “이리 나와!” 상태는 고분고분히 끌리어 나왔다. 상태한테서도 술기운이 마주 확 풍긴다. 그 술내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불끈했었다. 무슨 감정의 관련이었던지는 몰랐어도 상태 입에서 술내가 확 풍긴 그 순간 그는 집안을 들어먹은 것은 상태라는 착각이 일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착각이었다. 논 이십 두락을 털어먹은 것은 김 영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서운 착각인 반면에 그것은 또 무서운 증오였다. 송곳 한 개 꽂을 땅이라도 물고 떨어야 할 처지에 요릿집에다 전재산을 털어올려… ―그는 거의 발작적으로 상태를 무수히 난타했다. 상태는 끽소리 없이 맞았다. 봇둑에 선 포풀러를 의지하고 한 번 말대꾸도 없이 맞으며 울고 섰다. 수택이도 얼만지 조카를 때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도 없는 설움이 걷잡을 수도 없이 내장 저 아래에서 부걱부걱 기어올라온다. 나중에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수택은 얼마 후에는 역시 상태가 기대인 포플러나무에 얼굴을 틀어박고 흑흑 누끼어 울었었다. 상태가 먼저 울음을 그치었다. 그러나 수택이의 울음은 좀처럼 그쳐지지 않았다. 상태는 맞은 설움이었으나 수택의 울음은 때린 설움― 그나마도 일시의 착각으로 감정에 격한 경솔을 뉘우치는 울음이었다. 형도 자기도 없는 동안 어린 나이로 그 크나 큰 림을 도맡아본 상태한테 무슨 죄가 있었으랴?… “작은 아버지, 그만 돌아가시지요. 제가 요릿집에 다니느라고 땅을 팔아먹었다는 건 작은 아버지 오해십니다. 몇 번 가긴 갔었지만 그건 마름이라도 하나 얻어 살림을 벌여볼까 했던 것인데…” 하다 말고 그대로 다시 울어버린다. “안다, 안다. 그만둬라.” 이렇게 말하며 수택은 조카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섧지 않은 때도 곧잘 우는 수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절통할 때라야만 운다― 두 사나이가 맞잡고 우는 정경―그것은 정말 옆에서보기에도 딱한 정경이었다. == 4 == 농한기(農閑期)라는 삼동(三冬)은 그러나 구택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한가로운 기간이 아니었다. 퇴직금 끄트러기가 몇 푼 남기는 했으나 실상 지나보니 그의 예산과는 달랐다. 이제 열댓 된 창문이의 손으로만은 부엌 나무도 댈 길이 없었다. 더욱이 보림령(保林令)은 낙엽 긁는 것까지도 제한이 되어 있어서 그나마도 긁게 되지 않아 ‘나무도 못 긁어댈 바에야―’하고 창문이도 내보내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나마 그는 몇 개의 잡문도 써야 했고 소설도 몇 편 마련해야 할 계제다. 아직 반년도 못 되는 경험으로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농」{老農}이란 장편소설의 제1부만이라도 마물러야 얼마간의 모개돈이 들어올 것 같다. 다행히 신문사에서도 왼편만 되면 검열에 지장이 없는 한 고료를 선불해줄 수도 있다는 회답도 받은 터라 공연히 마음만 바빴다. 수택은 매일 농군들 봉놋방에 가서 살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도 그랬거니와 인저부터는 생활 방편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같이 살고 그들과 같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맷방석을 들여 펴고 밤나무 장작윷도 놀앗고 일찍이 중학에 들어가서 ABC를 배우던 정열과 또 그만 못지않는 노력으로 투전 글자를 배우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서 서울 이야기로 밤도 새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때는 막걸리 내기 화투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대문(南大門)에 써붙인 큰 대(大)자가 아래로 쳐졌더냐 위로 올라붙었더냐―이런 토론으로 욕지거리를 해가며 싸우는 머슴들한테 끌리어가서 남대문이라고 씌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했다. “거들 봐라. 남대문이라고 안 쓰였드라구 그렇게 일러줘두 빡빡 우겨대드니!” 건달 덕문이다 기염을 토한다. “이 자식아, 그래 네가 보면 안단 말야!” 하고 득만이도 지지 않고 대든다. 큰 대자가 내려붙었다고 고집하던 친구였다. “네깐놈이나 내나 남대문이라고 썼는지 북대문이라고 썼는지 보면 알택이 뭐야! 사칠팔(四七八)가보라구 쓰진 않았든, 왜?” “저놈이 글쎄, 양반 행세 한답시구 우리 아버지 포두청이라고 한놈이라니께!” 방안이 떠들썩하게 웃음이 터졌다. 매양 방안에는 열 명 이상의 농군들이 모였다. 어떤 때는 이십 명 가까운 사람이 들구끓은 때도 있었다. 마치 상자 속에 과자를 주워담은 것처럼 포갬포갬 앉는 수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 한쪽에서는 「조웅전」(趙雄傳)「추월색」(秋月色)같은 이야기책을 보고 이 모퉁이에서는 계집 이야기를 하면 저 구석에는 먹는 이야기다. 그러나 매양 화제가 집중되는 데는 역시 음식타령이었다. 모두가 장정들이요, 모두가 일년에 한두 번밖에 허리끈을 끌러놔 보지 못하는 그런 축들이다. 놀음이야기, 나무하다 산감한테 경친 이야기, 읍내 이야기, 이렇게 어수선하던 화제도 어떤 구석 누구 입에서든지 음식 이야기 한번 나면 그대로 좌중의 귀가 다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난 이러니저러니 해두 검정 밤콩을 드문드문 논 마구설기가 좋더라.” 칠성이가 무슨 결론이나 짓듯이 이렇게 말하자 아까부터 칠성이와 토작이던 돌이가 왼새끼를 꼰다. “저 자식이, 그래, 저게 입이야. 떡엔 콩을 노면 겉물이 돌아서 못써! 백설가라야지.” “그래, 저 자식이 왜 아까부터 남의 말이면 쌍지팽이를 짚구 나서는 게야! 그래, 이자식야, 똥구멍으로 막지 않는 바에야 씹는 맛이 좀 있어야지.” “허,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법이야.” 하고 아랫목에서 주의를 시켰음에도 칠성이와 돌이는 기어이 쌈이 되고야 말았다. “에이끼. 동물에 튀해 죽일 자식, 저걸 낳구두 그래 횃대 밑에서 멱국을 먹었을 테지!” 칠성이가 결을 버쩍 세우는데, “그만두세. 인제, 그렇잖어두 우리 어머닌 날 낳구 조당죽이나마 옆집에 가서 얻어 다 먹었다네!” 하고 비장한 소리를 해서 웃는 사람, 언짢아하는 사람, 별 표정이 다 나타났다. 수택이가 여럿한테 인사를 하고 막 문을 닫고 나오려니깐 희만 노인이, “낼 순경 차례니 사람 얻어 보내유.” 하고 소리를 친다. “네― 그럽죠.”그도 길게 대답을 하고 봇독을 타고 올라갔다. 밤 사이에 된내기가 하얗게 내렸다. 뜰팡에 뗘놓았던 자배기 몰에 살엄음이 잡히었다. 간밤은 장편의 첫 장면을 찾지 못해서 거의 밤을 밝히듯시피 했건만 아침은 여전히 일찍 깨었다. 머리가 별로이 무겁지도 않다. 울안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헌 바구니를 들고 동저고릿바람으로 천변에 나갔다. 아삭아삭 서리 기둥을 밟는 발의 감촉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하는 대로 가며오며 소똥 개똥 같은 것을 들고 간 바구니에 담아들고 들어왔다. “아빠, 또 개똥 주웠수.” 필년이라 년의 말소리도 인저는 제법이다. “그래, 너두 낼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빠하구 개똥 주러가 , 가지?” “응, 엄마, 나두 낼부터 아빠하구 개똥 주러 가우!” “오냐.” 아내가 어린것을 업고 부엌에서 나오면서 대답을 한다. “좀 쓰셨수?” “웬걸.” 아침을 치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보았다. 오랜 동안 머리를 쓰지 않아서 그대로 굳어지기나 한 것처럼, 통 풀리지 않는다. 수택은 다시 천변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역시 두서가 풀리지 않는다. “수택이 있나?” 태훈이가 읍내를 또 가는지 국방복도 벗어던지고 자르르 흐르는 능견 두루막에 중절모자를 바드름하니 쓰고 들어왔다. “또 어디 가는가?” “아, 읍에 좀.” “들어오게나그려” “아냐, 첫자루 가얄 겐데. 거 말야. 요전에 말하던 거 거 그렇게 하기루 했네. 자넨 서투른 솜씨구 해서 물길 좀 놈으루 엿 마지길 뗐네.” “고마워.” 한 가지만이라도 낙착이 되고 보니 갑자기 딴힘이 생긴다. 수택은 그 길로 내려가서 아버지한테 태훈이가 말하던 논이 어떤가고 물어보았다. “모이 앞의 엿 마지기? 좋―지, 좋은 논이구말구. 거 그 사람 큰심 썼다. 그래, 도진 얼마라든?”“그건 아직 못 물어봤습니다.” “저런 사람 봐. 농군이 먼저 그걸 알아봐야지. 암만 논이 좋면 뭐하나. 도지가 호되면 천수답만두 못한걸.” “설마 턱없이야 매기겠어요.” 김 영감은 새끼 꼬던 손을 쉬고 쌈지에서 가루가 된 희연을 손바닥애 쏟아놓더니, “담배라구 예전처럼 잎새가 있어야지. 이건 하루만 넣구 다니면 바짝 말라서 가루가 돼버리니―” 하면서 침을 퉤퉤 뱉어 곰방대에 담아 문다. 담배를 피며 새끼를 꼬며 또 이야기까지 하자니까 침을 줄줄 흘러 떨어진다. “거, 뭐하실 겁니까?” “집을 이어야잖니, 금년에 마초(馬草)를 하기 때문에 지붕을 잇재도 허갈 내야 한대서 면장한테 신청을 했는데 모르겠다. 온 , 이집이야 금년쯤 걸러가지고는 별일 없겠다면서두 너 집은 샐 게다. 어리라두 좀 해둬야지.” 수택이도 짚 몇 오리를 맞동여서 발 새에다 끼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다른 일은 대강 흉내는 내나 새끼를 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매맞은 구렁이 몸처럼 고르지가 못하면서도 손바닥은 얼얼하다. 그래도 한 이십 발은 실하게 꼬고서야 일어났다. “왜, 그만 갈테냐?” “네, 올라가서 뭐 좀 써봐야겠습니다.” 수택은 일어나서 안에도 들러보았다. 어머니도 형수도 없다. 뉘 집 아이들인지 조무래기만 서넛이 집을 보고 있다. 집에 올라오니 어머니는 수택의 집에 와 있었다. 형수는 벌써 사흘째 담배 조리(調理)를 다닌다는 것이다. 이 고장은 전 조선에서 제일가는 담배 소산지다. 백여 호 되는 동리에 담배 찌는 곳간이 다섯 채나 있다. 누렇게 된 담배를 새끼에 꿰어서 난방장치가 되어 있는 곳간에다 매어달고 불을 땐다. 그래서 누렇게 마른 담뱃잎을 상엽, 중엽, 막치기―이렇게 세 종류로 나누어서 짝 편다. 편 것을 다시 한 춤 씩 되게 담뱃잎으로 대궁을 싸서 흡사 총채처럼 만든다. 이것을 조리한다고 하는 것이다. 수택이도 어렸을 적에는 매년 여름이면 담배를 엮었다. 다섯 발 가량 되는 새기에 한 잎은 엎고 한 잎은 젖혀서 어금막기로 엮어간다. 열 발에 삼전인가 삼전 오린가 되었으나, 담배를 엮는 기간이 마침 여름방학인 때라 웬만한 집 아이들은 다 머리를 싸들고 덤빈다.“하루 사십전씩인데 아이들은 내 봐줄 게니 아이 어미도 좀 해보잖으련?” 어머니는 아내와 그의 눈치를 번갈아 보면서, “그걸루 큰 보탬이 될 건 아니지만두 잔용은 뜯어 쓰느니라.” “가볼까” 아내는 그의 눈치를 본다. “그까짓 것”하고 내찰 줄 알았던 터라, 그는 적지 않아 의아했다. “정말 해볼려우.” “해볼 테유―” 아내는 이 지방 사투리로 ‘유우’를 길게 잡아 늘인다. “해볼 템 해보구려. 동무들두 사괼 겸.” “그래라. 그래서 어떡허든지 끈을 잡아가지구 살아야지. 너 아버진 아주 너희들 때문에 잠두 통 못 주무신다.” “왜요?” “그렇잖겠니? 모처럼 자식이 이 부모를 바라구 왔는데 땅뙈기나마 다 팔아먹구 집 한 칸 못 장만해주니 어째 너 아버진들 맘이 졸 리가 있겠니. 요샌 아주 죽을 지경이다. 전에야 참 하늘이 무너진대도 눈 한 번 깜짝 않던 양반이 어떻게 맘이 여려졌는지 그저 한숨만 휴휴 내쉬는구나.” “그렇게 걱정을 끼출 줄 알았더면 오지 않을 건데 괜히 왔나봐요. 어머님, 그래두 필년 애비는 우리가 가기만 하면 아버지 어머닌 여간 좋아하시지 않는다구!” “그야 좋지, 좋지 않을 거야 뭐 있니, 단지 살도록 마련을 못해주니까 그렇지.” “뭘요. 인젠 아버님께 얻어먹을랴고 했나요. 그럭저럭 살게 되겠지요.” “암만해두 너 아버지두 몇 해 더 못 살려나부다. 가만히 보니 망령이 나는가봐.” “벌써 뭘.” 하고 수택이가 웃으니까, “벌써가 뭐냐. 네 좀 봐라. 요샌 이슥하도록 좀이 다 먹은 문서 보따리만 끌러놓구 앉으셨구나.” “문서 보따리가 무슨?” “땅문서지 뭐냐. 죽은 자식 나이 헤어보기지. 그건 왜 궁산맞게 들여다보구 앉았담. 이동두 다 해간 빈 문서를 신주 위하듯 하시는구나, 글쎄.”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는 수택에게 이상한 충동을 주었다. 물론 수택이가 나기 전 이야기라 얼굴도 본 일은 없었으나, 번화하게 생겼던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그 형이 사고무친한 김 영감의 첫아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그는 네 살 때 죽고 말았다. 그때도 그는,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죽은 걸 생각하면 살아나나.” 단 한마디 했을 뿐, 일평생을 두고 다시는 죽은 자식의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그랬다. 한 번 단념하면 단념한 순간이 완전한 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가 이미 남의 소유가 된 휴지 조각을 밤마다 들여다보고 앉았다는 것이다… “여기다!” 하고 수택은 그 길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한 자작농(自作農)이던 늙은 농부가 밤을 낮삼아 일을 했건만 한 마지기 두 마지기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이미 완전한 휴지가 된 서류뿐이다. 늙은 농부는 지금 희미한 등잔불에 그 ‘휴지’를 비춰보고 있다. 커다란 도장이 꽉꽉 찍힌 그 종이에는 분명히 자기 이름이 씌어져 있다. 그는 마른 바가지 속처럼 된 자기손등을 내려다본다. 그 손에는 무수한 흉터가 잇고 핏기 없는 굵다란 힘줄만이 기운없이 서리웠다.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 종이를 만질 때마다 버석버석 소리가 난다. 그는 언제까지나 자기 이름 석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한숨이 후유 나오고 고생에 찌든 늙은 얼굴에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나의 육십 평생은 이 종잇장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종잇장을 위해서는 단잠도 못 잤고 허리끈도 졸라매었고 피와 땀도 흘렸다. 남이 쌀밥을 먹을 때는 조밥을 먹었고, 남이 조밥을 먹을 때는 나는 조당죽을 멀거니 끓여 먹었다. 이렇듯 육십 년 동안 정성을 바쳐온 이 종잇장이 아무짝에두 쓸 수 없는 휴지가 돼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겔까?…” 이렇게 한탄할 때 눈물 한 방울이 땅문서에 뚝뚝 떨어진다. ―이런 데서 장편 「노농」(老農)의 첫장면을 시작하리라 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그의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의 사회 기구며 풍습, 인정세태(人情世態), 물가(物價),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동나무로 싼 길이 두 자에 폭 한 자, 높이가 반 자 가량 되는 궤짝 속을 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장방형의 궤짝에서는 수택이가 일찍이 보지 못하던 여러 가지가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장사를 그만두던 해 마지막 쓰던 치부책도 한 권 나왔다. 그것은 장사를 마감하면서 외상값을 받던 것이다. 그가 놀란 것은 기역(ㄱ)자를 씌우지 않은 것이 거의 태반은 되었다. “이런 건 어떻게 그대로 있습니까?” 수택은 책장을 뒤적이며 이렇게 물었다. “그건 다 못 받은 게다. 예나 지금이나 하던 장사를 떨어엎으면 어디 주더냐. 송살(訟事)하면 받기야 받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난 내 일평생 밥은 끓여 먹을 게 되느니라 싶었으니까 그만둔 게지.” “그땐 여유가 좀 있으셨든가요?” “어디 그런 건 아니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논이 이십여 마지기만 있으면 살 때다. 재물이란 탐을 낼 필요가 없는 게거든. 난 지금두 그렇게 생각한다. 재물이란 덜퍽 있어두 되려 액이니라. 그저 밥이나 굶잖으면 그게 상팔자지. 상태(조카)보군 늘 그렇게 일러 왔느니라마는 너두 하루 세끼 밥거리 이왼 아예 바라지를 말아! 먹구 입구 남는 게 있으면 물욕이 자꾸 생기는 법이니라. 먹구 입구 하는 건 한정이 있지만 여유에는 한정이 없거든. 돈이 많아서 못 쓰는 법은 없지만 먹구 입구 하는 덴 조금씩 차인 있으리라두 한정이 있는 법이다. 남은 먹두 입구 못하는데 어떻게 낭비하기 위해서 욕심 낼까부냐. 그렇잖으냐, 사람 사는 이차란 게?” 아버지의 이런 이야기에서 수택은 십오룩 년 전 자기의 중학시대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의 고향은 지리적으로나 산물(産物)로나 도시와는 인연이 먼 농촌이었다. 읍에까지에는 문전에서 자동차가 다니기는 하나 오십리나 되었고 서울을 가재도 자동차길 밖에 없었다. 노정은 삼백리 정도였으나 차임은 십원 각수나 되어 웬만한 사람은 서울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계문명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현대에 살면서도 백 호나 되는 동민 중에는 기차나 전처를 본 사람은 불과 몇이 못 되었다. 경성 유학생이래야 그와 거기서 한 십리 떨어진 화석리(化石里)라는 촌에서 한 사람, 전 면을 통해서 삼사인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자면 조치원까지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조치원까지는 이백삼사십리나 되는 터라 부득이 경성을 갈 사람도 직로인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가본 사람도 기차를 타보지 못한 채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읍이나 서울 갔다 오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물건 한 개만 사가지고 와도 그것이 그대로 굉장한 뉴스가 되어 온 동리에 퍼졌다.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나 어떻게 굴렀던지 기름집 손자가 대판으로 건너가서 메리야쓰 공장에 다니다가 어떤해 여름 자기 집에 돌아왔었다. 그는 팔뚝시게를 찼었고 안경을 쓰고 구두를 신었었다. 이것이 그대로 동리 청년들의 좋은 선망이 되었고, 동리 처녀들의 동경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가 가진 ‘희한한 불’회중전등에 아깝게도 희생이 된 처녀가 둘이나 있었고 뒤이어 예쁘기로 이름이 있던 달룡이 댁이 이 희한한 불을 가진 청년과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문화와는 인연이 먼 샌터였으나, 그땐 전 조선을 휩쓸던 사상은 회중전등 보다도 먼저 이 동리에 들어와 있었다. 동경 가서 유학을 하던 면장의 사위가 이 동리로 들어온 것이었다. ‘신화청년회’(新和靑年會)가 생긴 것도 그때였고 노동야학, 부인야학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수택은 그때 중학 이년이었다. 그는 여름방학에 돌아왔다가 자기 또래의 소년들이 ‘평등’이니, ‘계급’이니, ‘무산자’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을 보고서 어린 마음에도 자기가 뒤진 것을 깨달았었다. 그가 박 선생의 총애를 받는 소년이 된 것은 그 다음해 역시 여름방학부터다. 박 선생은 근동 청년들의 선망의 적(的)이었다. 그러나 겨우 언문 글밖에 못하고 두더지처럼 오십 평생을 두고 흙만 파온 그의 아버지는 이 박 선생을 더 업수이 여겼다. 말 잘하는 사람일수록에 행함이 적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처음 사귄 사람을 길래 사귀지 못하는 것이 그의 둘째 결점이었고, 정말 없는 사람의 ‘편’이 되자면 먼저 저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맘과 몸뚱이가 한뭉치가 되어야지, 맘이 암만 그렇다 해도 제 몸뚱이가 말을 안 들으면 소용있나. 너들 두구 보렴. 그 사람은 변호사나 하라면 잘할지 몰라두 저러다가 마느니라…” 이 무자한 농부의 예언이 오 년도 못 가서 들어맞았던 것이다. 박 선생은 그가 일찍이 옳다 하고, 아름답다 하고, 의(義)라고 말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의 말로가 대개 그렇듯이 그는 그가 일찍이 욕하던 직업을 가졌었고 한번 그런 데로 길을 트기가 무섭게 머리가 좋았더니만큼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김 영감의 말따라 그는 처음 사귄 친구를 길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듯이 한 번 가졌던 생각도 늘 변하는 사람이었다. 말만은 많이 하고 또 잘하나 일평생을 두고 참 말을 몇 마디도 못하고 죽는다는 변호사에다 그를 비교한 자기 아버지의 예언이 근 이십년 후인 오늘날 와서 그와 비슷한 직업인 브로커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점심때는 되어서 수택은 좀이 먹은 그 오동나무 궤짝째 가지고 일어섰다.김 영감은 무슨 큰 보물이나 되는 듯싶게 잘 간수하라고 당부당부하는 것이었다. “거깄는 건 단 한 장이라두 없애지 말아라. 땅은 다 남의 것이 됐다만 그것조차 없어진다면…” 하다가 갑자기 말이 뚝 끊어진다. 그가 문을 열다 말고 돌아다봤을 대 김 영감은 그 궤짝이 자기의 사랑하던 땅이요 그 땅이 지금 자기 손으로부터 영원히 남의 손으로 넘어가기나 하는 듯이 언짢아하는 것이었다. 수택도 아주 마음이 좋지 않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맥이 하나 없이 논둑 지름길을 건너서 삽짝 앞에 이르니까 제 동생을 데리고 흙장난을 하던 필년이란 년이 며칠 못 봤던 듯이 달려들어 안기는 것도 아는 체 만 체하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려니까. “엄마, 아빠 오셨수―인저 닭국 먹을 테야!” 하고 필년이가 쫓아들어온다. “오오냐. 상현이하구 와서 손 씻구.” “닭이 웬 닭이오!” 그의 말소리가 퉁명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의 상심하는 양을 본 때문만도 아니다. 씨한다고 닭 한 마리 남겨둔 것을 잡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예요? 무슨 광장한 보물 궤짝 같구려.” 하다가 남편의 눈치가 좋지 않은 것을 보더니 냉큼 묻던 말에 대답을 한다. “옆집에서 가져왔어요. 간밤에 닭 풍기는 소리가 나구 법석을 하더니 살쾡이란 놈이 암탉 두 마리를 모조리 물어 박질렀다는군요.” 그래도 남편의 얼굴이 퍼지지 않으니까. 그는 마치 무슨 죄나 진 듯이 어리둥절하고 섰다가, 조심조심 또 말을 붙인다. “벌써 메칠 전부터 닭이장을 뱅뱅 돌더래요. 그래 새루 문을 해 달구 야단을 했더니 지붕을 뚫구 들어갔다는군요.” “애들하구 당신이나 먹우.” 수택은 제 방으로 들어가는 길로 번듯이 자빠졌다. 아내가 근심이 되어 바로 뒤따라 들어와서 머리맡에 앉는 것을 알고도 그는 언제까지나 눈을 딱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 5 == 구럭 그믐께까지에는 수택의 장편도 거의 절반까지나 진척이 되어있었다. 낮에는 산감의 눈을 피해서 가까운 사나에 가서 낙엽을 긁어오기도 하고 봉놋방에서 농군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며 보내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마치 자기네를 감시하러 오는 사람처럼 서먹해하던 농군들도 인저는 무관한 동무처럼 만나면, “밥 잡섰이유.” 하고 인사를 했고 원고를 쓰느리고 종일 나가지를 않으면 지나는 길에 찾아와보기도 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대명사도 인저는 없어지고 딸년의 이름을 붙여서 ‘필년아버지’가 되었다. “모두 보령산으루 산나무들을 간다는데 한번 안 가보실래유?”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보령산이라니, 저 까맣게 쳐다보이는 산?” “야―” 보기만 해도 염두가 안 났다. 그러나 가보기로 하고, 그날 밤은 여느때보다 좀 일찍잤다. 여섯시에 일어난 때는 아내는 어느 틈에 일어났는지 벌써 밥을 잦혀놓고 있었다. 김칫국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풀어서 푹푹 퍼먹고 있는 옆에서 아내는, “너무 욕심 내지 마시구 조금만 해 지셔요. 모두들 그러는데 여간 험한 산이 아니래요.” 하고 그만뒀으면 하는 눈치다. “뭘, 아이들만큼야 못해 질라구.” 이렇게 말하면서도 물론 자신은 없었다. 요기를 하고 양말을 버쩍 추키어 감발 대신을 하고 솔버선에 ‘지까다비’를 신고는 곰방대에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아내가 담배 조리를 다닐 때(아내는 보름 남짓하게 하고 말았지마는)황색 엽초(葉草) 부스러기를 두어 뭉치 얻어왔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수택에게는 독했다. 그래서 장수연을 사서 섞어 피운다.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 문 것도 인저는 그리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내는 보고 웃지도 않는다. 이 보령산 나무 덕에 수택이는 이틀이나 앓았으나 그래도 배운 것은 많았다. 그가 먼산나무에 용기를 냈던 것은 소위 하이킹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었으나, 그러한 기술은 먼산 나무에는 조금도 이용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일찍이 학창에서 배운 모든 학문이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응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던 때처럼 우울한 심정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수택이에게 순경 차례가 돌아온 것은 금년 겨울 접어들면서 첫 추이가 시작된 지 사흘 만인가 나흘째 되던 날이다. 마침 그날은 아들놈상현이의 생일날이라고 어머니가 인절미를 해왔다. 그래서 수택은 신문지에다 여나무 개를 싸들고 언 별만이 가상할 만큼 떠는 하늘을 순경 방안 구장 집 사랑으로 내려갔다. “저녁 진지 잡수셨어유?” 마침 구장 집 일꾼 천보가 평북 어떤 철산(鐵山)에 가 있는 자기 형한테 편지를 쓰려고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에도 벌써 무려 이삼십 통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은 안 되었다. 출생 신고도 몇 장 썼고 사망 신고도 한 장 썼다. “안부하시구유, 요전 말한 일은 어떻게나 됐느냐구 알아보시구유, 난 잘 있으나 흉년이 들어서 곤란이라구 쓰시구유.” 천보가 이렇게 사연을 부르는 대로 그는 받아 썼다. 요전 말하던 일이란 천보가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써주고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날 당번인 네 사람은 둘씩 가라서서 한 패는 윗말로 또 한 패는 아랫말로 갂 몽둥이를 짚고 나섰다. 수택이는 득만이라는 그의 집에서 넷째 집 떨어진, 벌써 이태째 중씨름에 광목을 탔다는 장정과 한 패가 되었다. 처음 그들은 윗말이었으나 다음 번에는 아랫말로 섞바뀐다. 순경패를 달래기에는 아직 이쁜 시각이었지마는 득만이는 장난삼아서 집집마다, “패 주―” 소리를 친다. 매일 한 번씩 구장은 순경패를 어떤 집에다 감춘다. 그래서 패를 맡은 집에서는 두 홰 닭이 울어야만 패를 내주도록 마련이었다. “어젯밤엔 꿈을 잘 꾸었으니까 어쩌문 오늘은 한 놈 앙겨들 상두 싶구먼서두.” 득만이가 작대기를 질질 끌면서 혼잣말처럼 한다. “한 놈 앙겨들다니?” “도적놈 말이죠. 한 놈만 붙들면 수가 나는 판이지요. 돈이 댓 냥씩 생기죠. 밤참에 막걸리가 한사발이니 배 뚜들겨가며 먹잖어유?” 하고 들었던 작대기로 삽짝 기둥을 뚜드리며 고함을 친다. “몽동이 가지구 왔으니 패 주―” 수택은 문득 어느 해 겨울 자기 집에서 도적을 잡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감하고 재치있게 도적을 잡은 그의 무용담(武勇談)은 헛되이 아버지의 격분을 샀을 뿐이었다. 장하다는 칭찬 대신에 지겟작대기로 아랫종아리를 얻어맞은 후 수택은 얼마를 두고 해석에 괴로웠었다. 그러나 오래 두고두고 생각할수록에 자기 아버지에게는 그만큼 위대한 일면이 생각되었다.이날 밤 수택은 뜻하지 아니한 것을 발견했다. 두번째는 아랫말 차례라 잠깐 몸을 녹였다가 득만이와 같이 또 나갔다. 별빛도 눈발에 애여서 촌보를 요량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그때 수택은, ‘만일 도적을 잡는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득만이는 돈 오십전과 막걸리 한사발을 위해서 그를 주재소에 넘길 것이다. 물론 자기가 오십전을 내고 술 한사발을 사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지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때리듯이 그만큼 이 득만이를 미워할 수가 있을까? 그런 자신은 역시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을 그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득만이의 뒤를 따라가려니까 득만이가, “필년 아버지, 야학당 구경하구 가세유―” 한다 “야학당?” “야,” “지금두 야학이 있어?” 수택은 실로 의외였다. 이 동리에 야학을 처음 개설한 것은 박 선생이었고 야학이 성황을 이룬 것도 역시 그가 이 동리에 머물러 있던 동안이었다. 그후 청년회는 동 소유가 되어 무슨 회나 공동판매 같은 데 쓰게 되었고 야학도 자취를 감춘 줄로만 그는 생각하고 있는 터이었다. 여름방학이면 그도 야학 선생의 한 사람이었었다. “전엔 청년회를 빌려서 하다가 지금은 못 쓰게 하니까 겨울 동안만 남의 집 사랑방을 빌려서 한대유.” “그래, 선생은 누구구?” “김선달 집 둘째아들이지유.” “걔가!” 그는 놀랐다. 김 선달 둘째 아들이라면 작년에 농업학교를 다니다가 학비 관계로 이 학년에서 퇴학하고 왔다는 빈혈증인 왜소한 소년이었다. 교실이란 두 칸 장방이었다. 아랫목으로 칠이 다 벗겨진 칠판이 걸렸고 그래도 명색의 난로까지 놓였다. 한가운데를 한 줄 비워놓고 사십 명이나 되는 조무래기들이 혹은 쓰고 혹은 책을 보고 있다. 칠판 한복판에 칸이 막힌 것을 보면 두 반인 것이 분명했다. 한쪽 칠판에는 1‧2‧3‧4가 씌어 있고 딴쪽에는 가감 문제가 네 개 붙었다. 수택은 거의 이십 분 동안이나 김 소년의 교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소년의 교수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쓰고 책을 보고 하는학생들을 구경한 것도 아니다. 석유 궤짝에 대패질을 해서 먹칠을 한 칠판과 그 앞에서 선 빈혈증의 소년, 그리고 한 자라도 더 눈여겨두려고 늘어앉은 어린 아이들―이것을 한 번 논 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수택은 이 초라한 교실에서 이십 년 가까운 옛날을 연상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십 년 전 그대로였다. 칠판도, 사람도, 아이들도, 변한 것은 오직 자기뿐이다. 그때의 그 정열을 잃었고, 그만큼 약해졌고 공리적으로 변한 자기가 있을 뿐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과 배우는 사람의 생각도, 이십 년 전 그때와 추호도 다른 게 없을 게며 또 달라질 수도 없을 것이었다. 한 자라도 더, 그리고 잘 가르치자, 한자라도 더, 그리고 또 빨리 배우자―이 진리에 연대가 하관이며 시대 변천이 하관이랴! 오직 거기에는 배우려는 저열과 가르치려는 정열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수택 등이 이려서 심심파적으로 한 ‘교육사업’이 그후 그들의 실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던가를 이십 년 후 지금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집금도 수택은 그때의 야학생들에게서 몇 버너이나 이런 말을 들어오던 터이었다. “참, 그때 그나마 안 배웠더라면 지금쯤은 얘기책 한 권 못 볼 뻔했어유. 그때 중간에서 그만둔 사람들은 지금두 앉으면 한을 하는데유.” 지금 생각해도 좋은 일을 했다 싶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 누가 그런 생각을 하랴 했었다. 첫째 그 자신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터였었다. 그후로는 김 소년과 자주 만났다. 석유만은 아이들이 매달 삼전씩 보태서 사나, 분필과 기타는 김 소년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만은 자기가 떠안았다. 가르치고 싶은 정열에서가 아니라 그런 용기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대한 서글픈 동정에서였다. “그밖에라두 뭣이구 군색한 게 있거든 와 말을 하렴. 큰돈 드는 게야 낸들 어쩔 도리가 없지만…” “뭘요, 기름하구 백분만 있으면 겨울은 나유. 나무는 저희들이 날마다 삭정이를 한개피씩 들구 오니까요. 그보다두 아이들이 통 굶어서요―하루 죽 한 끼두 못 먹는 아이들이 파다한걸요. 뭐. 선생님 댁 바루 옆집 정 서방네 아이들도 요샌 통 굶구 다니나 봐요.” 김 소년은 이런 말을 하며 소년답지도 않게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정 서방 집이란 늦은 가을에 닭 두마리를 살쾡이한테 죽이고 닭국을 가져오던 바로 그의 옆집이었다. 그 송아지처럼 위하던 닭을 두 마리나잡아죽인 살쾡이를 못 잡아서 겨우내 애를 박박 쓰는 심정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김 소년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마음에 사무쳤다. 뻔히 굶으면서도 여전히 책보를 끼고 늦도록 그 찬 방바닥에 앉아서 한 자라도 더 배우겠노라고 눈이 발개서 덤비는 정상이 딱하다 못해서 되려 밉기까지 했다. ‘그걸 배우면 뭐 그리 잘된다고 그렇게까지 들 하는 겐고?…’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 가상한 닭을 얻어먹고도 시치미를 떼였나보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수택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정 서방을 불러서 쌀 한 말을 퍼주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아요… 인저 낼부턴 구제 공사가 시작이 되니까 벌면 팔아먹을 걸요.” 정 서방이 굳이 사양하는 것을 수택은, “사양두 두 번 이상 하면 변덕이라우. 받어두슈. 그리구 그놈의 살쾡이 잡을 궁리나 차리시구려.” 이렇게 웃음엣말을 해서 말문을 막는다는 것이 정 서방의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다. 그는 살쾡이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이를 북 갈며, “염려 마시유. 내 어떻게 하든지 그놈의 살쾡이를 살려둘 줄 아시유…한 마리만 그랬어두 내 참아요. 저두 오죽 먹구 싶어야 초가을부터 눈독을 들였겠어유. 허지만… 안 되지유. 제 목숨에 못 죽을걸유! 못 죽지!” ―수택은 여러 친구들로부터 그의 소설은 언제나 뼈가 너무 앙상하니 드러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결점이라는 평을 들어온 터라 그는 이번 장편에서만은 동리에서 생긴 이런 삽화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다가 살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6 == 봄비치고는 철이 좀 이른 것 같아서 또다시 으르르 얼어붙으면 보리마저 바닥 다 본다고 밤새도록 걱정들을 했던 것이 다행히 비가 개이면서 그대로 날이 확 풀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어디서고 종달새의 소리가 들려오기나 할 것처럼 다정한 맛이 느껴진다. “이대로만 간다면 보리는 먹겠군.” 동리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가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든 세대가 바뀌든간에 벼가 잘되고 보리가 얼어죽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니거나 그런 것도 그들에게는 인연이 없는이야기다. 오직 배불리 먹고 추운 때는 따뜻하게 더운 때는 시원하게 입으면 그만인 것이다. 양지바른 밭둑에 냉이잎이 파아랗게 돋아나고 솜옷 입은 등떠리에 소몰소몰 땀이 솟기 시작할 때는 춘경(春耕)준비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겨우내 외양간에서만 웅숭그리고 앉았다 섰다 우기우기 반추(反芻)만을 일삼던 소가 마당으로 끌리어 나간다. 농부들은 몽당싸리비를 들고 겨울 털빛이 변해보이도록 쌓인 소 등의 먼지를 쓰윽쓰윽 쓸어준다. 그러면 소란 놈은 생기가 난다는 듯이 꼬리로 제 엉덩판을 치며 혀끝으로 콧구멍을 쓱쓱 핥아낸다. 흙을 파제키는 닭의 발도 한창 바쁘고 흰둥이란 놈이 번듯이 누워서 양지받이를 하던 울타리 밑 풍경도 한결 한가로워 보인다. 이런 즈음이면 반드시 앞집에고 뒷집에서, “꼬댁 꼬댁 꼬댁댁…” 하고 알 낳이하는 암탉의 환성이 나른한 춘곤(春困)을 깨뜨려준다. “봄이군!” 하고 수택이도 거의 다 끝나가는 소설을 쓰는 마음도 바빠진다. 이제 한 삼사십 매만 더 쓰면 손을 떼겄건마 그동안이 더없이 안타까웠다. “나도 빨리 논길이두 하구 김장밭두 부치구. 밭이랑도 세워놔야지!” 그는 제법 의젓한 농군처럼 이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수택에게는 이 봄이 더없이 즐거웠다. 일평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하는 기쁨으로 봄철이 마치 그 무슨 절대의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은근히 기다려졌던 것이다. 몸이 우둔할만큼 껴입었던 내복이며, 솜바지저고리를 훌훌 벗어 내던지고 사랑하는 처녀의 손길처럼 포근한 양광(陽光)의 애무를 받아가며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가 감추어진 흙을 척척 갈아붙이는 기쁨, 삼십 년간 가죽에 싸여져서 흙과 접촉해보지 못하던 맨발로 징검징검 고랑을 타넘으며 씨를 뿌리는 행복―아런 것을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아니 일생의 절반을 돌 위에서 살아온 이 도시의 청년은 춘경(春耕)이라는 두 글자에서만도 형언치 못하는 매력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 인간층이 싫건 좋건간에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운명지어진 사람들에게 즐기어 사용하는‘노동의 신성’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었고, 일찍이 그가 품고 있던 도시생활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된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농터가 아니요. 자기 손으로 가꾼 곡식이 아니건만 누우렇게 익은 곡식을 보고는 푸근해하는심정과도 비슷한 그런 무조건의 기쁨이었고 환희였다. 이러한 그의 기쁨은 두푼 정방형의 좁은 칸살이 빽빽하니 들어박힌 원고지에서 해방되던 날 그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저녁에 정 서방과 일을 맞추어놓고 돌아와서도 그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어렸을 때의 섣달 그믐날 밤과도 같은 흥분이었다. 무한한 행복이 그대로 쏟아질 아침을 기다리는 초조다. “여보. 당신두 우리 같이 나갑시다. 나는 갈아붙이고 다아신은 흙을 고르고 나는 씨를 뿌리면 당신은 덮고…” 그는 마치 사랑하는 시구(詩句)아 외듯이 이렇게 말하고는, “필년아, 너두 낼 아빠하구 엄마 따라서 씨부리러 간다구?” 필년이는 바느질을 한다고 꿰매는 시늉을 하던 손을 쉬고 빠안히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쪼꼬레트 사줌 가지.” “쪼코레트?” “응.” “허, 농군의 딸 입에 쪼꼬렛이 당한 개냐. 엿 사주지, 엿. 깨엿 말야, 응.” “나 엿.” 자는 줄만 알았던 상현이란 놈도 발딱 일어났다. 수택 부처는 어린것들이 잠이 든 후에도 늦도록 생활설계를 했다. 액속대로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선불해준다면 사백원의 모개돈이 들어온다. 거기에 정편을 쓰는 여가에 마련한 단편 두 편과 편지 형식으로 된 잡문이 한 편, 무두 합치면 그럭저럭 오백원은 될 것이었다. 그 오백원으로 마땅한 것이 나면 논을 서너 마지기 사든가 밭을 몇뙈기 사기로 했다. “참. 내 벌써부터 이야기한다면서…” 그의 처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저기요, 우리 장 말이요, 양복장하구 이불장 말야, 팔아버릴까?” “건, 왜 갑자기, 누구 소설대로 다 팔아가지구 서울루 달아나려우?” “그럴 용기나 있다면 오죽 좋겠수.” 하며 아내는 웃는다. 수택은 언제나 자기 처의 웃는 입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희미한 불 속에서 그 흰 이를 내다보이며 나긋이 웃고 보니 더한층 아름다웠다. “당신은 웃으며 참 이뻐.”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하고 나서.“왜 누가 사잡디까?” “심구영 씨 소실이 여간 탐을 내잖어요. 접때 일부러 양복장을 살랴고 읍에까지 갔더라나. 그랬더니 모두 너절해서 그냥 왔대. 두 개 몰아서 일백오십원 주겠다니 팔아버릴까?” “걸 팔아치우면…” 그는 일백오십원이란 말에 구미도 당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사 년 전에 두 개에 팔십원을 준 것이었다.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난 이렇겠으믄 좋겠어요. 기왕 시골 와서 농사질랴믄 정말 농군처럼 그런 세간 다 팔아치우구, 이 집두 이삼십원은 다 받겠다니 남한테 넘기군 아버님네하구 합소를 하지. 골방을 우리가 쓰구 당신은 사랑 윗방을 내라구 해서 쓰시구려. 말만 세간이지 뭐 들여놀 데가 있나, 봉당에다 놔두는 거, 게 발에 편자지.” 아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이제 농사철 접어들었으니 어느 하가에 책상 파에 앉아보랴 싶기도 했고 집이구 뭐고 다 쓸어 팔면 그럭저럭 팔구백원 돈이 되는 셈이니 그것으로 땅뙈기나 마련하는 것이 상책일 것도 같았다. “그까짓 거 테이블이구 의자구 다 쓸어가라지. 농구 녀석이 회전의 잔 있어 뭐하겠수.” “그렇잖어두 심구영 씨 소설은 찻종하며 다 탐을 낸다우! 심씨가 지금첩한테 홀딱 반해서 그러니까 그런 동안에 살림이라두 장만하잔 수작이지 뭐유.” 심구영이란 포목, 잡화로 이 동리서 돈푼이나 모은 오십객이었다. 그런 거추장스런 세간을 처리하는 데 수택이는 물론 이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하기는 하나 그래도 여자 마음을 생각해서 찬장이니 얌전한 그릇 같은 것은 남기고 거추장스러운 것만을 넘겨주기로 하고 잠을 든 것은 자정도 훨씬 지나서다. 그러나 눈을 붙인 지 얼마가 못 돼서 그는 또 깨었다. “필년 아버지, 주무셔유.” 하고 정 서방이 울타리 밖에서 소리를 친다. 수택은 몸재게 허리 골춤을 움켜쥔 채 뛰어나갔다. 며칠 달인 뜨느라고 동편 하늘이 막 훤하다. “정 서방요?” “야. 이거 주무시는 줄 알았더면 안 올 걸 그랬어유.” “웬걸요. 아직―” 하며 삽짝을 열고 나가려니까,“이거 좀 보셔유! 이눔 좀.” 하고 뭣인지 시커먼 놈을 눈앞에다 풀쑥 다민다. 수택은 덧없이 주춤하고 물러섰다. “게 뭐요?” “뭔가 봅쇼! 흐흐흐흐.” 하고 좋아서 웃는다. “거, 괭이가?” “흐흐흐흐… 고양이요? 천만에요, 아주 어젓한 살쾡이올씨다유!” 하면서 살쾡이를 다시 한번 번쩍 들고 아래위를 쓱 훑어보며, “이눔! 네가 내 닭을 잡아죽이구 무사할 줄 알았드냐! 이눔, 흐흐흐흐…” 허들겁스럽게 한참을 웃어붙이고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덜컥합디다유! 그래 잠결에두 뛰어나와 봤더니, 아, 이런 놈 좀 봐유, 모가지가 요렇게 덫에다 치어가지곤 ‘캐캐’ 하겠지유! 그래, ‘네 요놈, 잘 만났구나.’하군 지겟작대기루 해골을 한 번 후려갈겼더니 그저 외마디소릴 ‘캥―’하구질르곤 발버둥을 칩디다유! 그래…” 정 서방은 이렇게 한참이나 늘어놓고야, “주무시는데 이거 참…” 하고는 살쾡이를 추썩대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러구러 잠이 든 것은 첫닭이 울고도 한참이나 있어서였으나 깬 때는 몸도 그리무겁지 않았다. 여자들이 생명같이 여기는 방 세간을 자진해서 처리해버린 일이며 정 서방이 겨우내 치를 떨며 통분해하던 살괭이한테 복수랄 한 일이며 그에게는 다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쾌한 일은 일평생 처음으로 씨를 뿌리러 가는 그날 아침은 또한 금년 저어들고서는 가장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정 서방은 새벽같이 달려왔다. 그는 그래도 이야기가 다 끝이 못 났는지 간밤의 이야기를 밥을 먹으면서도 하고 하고 한다. “그까놈의 닭 몇 마리가 아껍다느니보다도 그놈의 소위가 괘씸하단 말이거든요!” “하여튼 분풀이는 잘했쇠다. 그깐 살쾡이란 놈한테까지 분풀일 못한다면 억울해 살겠소.” 수택이도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수택은 집으로 내려가서 상태도 끌고 왔다.상태는 요새 갑자기 고향을 뜰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도회 생활의 환멸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달래도 보았고 을러도 보았다. 그러나 농촌에서 생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은 그보다도 상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태는 고향에 돌아온 수택이를 은근히 비웃고 있는 눈치다. 그는 다시 그 길로 해서 구장 집에 가서 소를 얻어 몰고 큰집에 들러서 쟁기도 소 등에 얹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벌써 며칠째 몸살도 누워 있는 터였다. 웬만한 병에는 꾹하니 드러누워 있지 못하는 김 영감의 성미에 더욱이 오늘은 수택이가 처음 씨뿌리는 날이고 보니 웬만만 하면 툭툭 털고 일어서련만, “정 서방더러 잘 알아서 하라구 그래라.” 이불을 벗기지도 않고 한마디 할 뿐이다. “네.” 수택은 병들어 누운 아버지를 본 일이 없던 터라 우울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않으리라고 박 주부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달이도록 상태한테 일러만 두고 부리나케 동리 뒤 개울의 징검다리를 뛰어 건넜다. 상태가 박 주부를 데리고 진맥을 하려 했을 때 김 영감은 웬일인지, “아니다. 약이 무슨 약. 내가 어디 몸이 아퍼 그런다더냐!”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었다. 의원 뿐이 아니었다. 손자고 며느리고 아내고 일체 방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안으로 문을 걸어잠그고는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 온 집안이 겁을 집어먹고 수선을 피우니까. “왜 이렇게 수선들을 대는냐. 잠 좀 자게 내버려둬라.” 하고 고함을 치는 것이다. 문 밖에서 서성대던 가족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 영감은 자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거동을 못할 만큼 병이 난 것도 아니었다. 삼사 일 동안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 오직 매적지근할 뿐이었다. 아무도 김 영감의 병 원인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해동이 되면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간다. 동구를 빠져서 대장간 앞을 왼쪽으로 꼬부라지면 천변으로 나선다. 개울을 건너서면 조그만 아카시아 숲이 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모르게 이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에는 잔솔 여남은 개가 섰고 사람 하나 숨겨줄 만한 반송도 한 개 섰다.―이 반송 밑이 그가 매일시간을 보내는 자리였다. 먼저 그는 숲속에 들어서면 이 반송 밑으로 온다. 대개는 반송 밑에 두 무릎을 세우고 무릎을 끌어안아서 깍지를 낀다. 그러고는 우두머니―무엇을 보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조는가 하면 조는 것도 아닌 자세로 언제까지나 한 곳만 내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얼굴은 지극히도 행복스럽던 옛 꿈을 더듬는 것같이도 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그는 최후를 장식하는 자기만의 추억에 잠겨 있는 것같이도 보인다. 웃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니다. 격하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의 평온을 얻은 사람의 표정도 아닌―그런 때가 많았다. 그는 오직 앉았을 따름이요 앞을 내다볼 뿐이다. 그는 별로 동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꺼리었다. 어쩌다 누가 그리 지나다가, “어째 치운데 거 와 그러구 계시유?” 하고 물을라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누구 말이 이 숲속이 집터가 좋대서 보고 있는 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기 싫으니까 그는 자기가 거기와 있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아카시아 숲에서 두 다랑이 건너에 이미 완전히 한 장의 휴지가 되어버린 그의 사랑하던 땅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반생―아니 육십 평생을 완전히 바친 논과 밭―그러나 그것은 이미 남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소유권이 이전된 데만 그치지 않고 소작권까지도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저 논다랑이와 뽕나무가 둘러선 밭은 확실히 내 땅이었다. 그것은 이 동리 사람들이 다 잘 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나는 손을 대어도 안 되고 씨를 뿌려도 안 된다…황차, 이 땅에 심은 곡식이랴…” 이렇게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김 영감이었다. 더욱이 이번 비로 해서 논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니 괴어 있었다. 작년 같은 가뭄에도 편작은 된 놈이었다. 꺼뭇꺼뭇한 땅, 홍건한 논물, 가래를 지르기만 해도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 바닥 흙이 철컥철컥 나자빠질 것 같다.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아랫종아리에 흙과 물이 뛸 때의 그 감촉, 띄엄띄엄 소가 발을 드놓을 때마다 철벅거리는 물소리…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늙은 이 농부에게는 논과 밭 가는 사람의 팔자는 그대로 신선이었다. 이런 농부에게 있어서는 흙―땅은 그대로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그것은그대로 종교였다. 이 늙은 농부의 손으로부터 땅은 멀리 떠나갔고 인저는 자기 땅이던 이 기름진 흙덩이를 만지는 자유까지도 박탈된 것이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특권은 오직 자기 땅에 자기 아닌 딴사람이 씨를 뿌리고 김매이를 하고 이듬을 매고 물을 대고 대궁이 척척 휘도록 여문 벼를 베어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볼 수만은 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었다. 김 영감은 마침 오늘 신작인(新作人)인 춘성네가 논갈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내 땅에 딴놈이 들어선 꼴은 안 보리라!’ 김 영감이 이렇게 결심을 한 데는 조그마한 부자연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 영감은 역시 흙의 아들이었다. 아니 그는 비열한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제 땅을 남의 쟁기가 들어가 파제키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농부에게는 참을 수 없는 그 굴욕도 며칠을 굶어가며 이를 악문 그 결심도 멀리 풍기어 오는 구수한 흙내만은 어쩔 도리도 없었다. 흙에서 받는 굴욕보다도 흙에서 풍기는 그 향훈이 몇 백 배 그에게는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 ―흙의 완전한 포로가 되어 있는 이 늙은 농부는 모든 굴욕감을 물리치고 오직 흙내를 더듬어 헌청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금 아카시아 숲속에 나타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든 그에게도 햇살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는 언제나 앉는 그 자리에 등을 소나무에 기대고 벌을 향하고 앉았다. 상방 십리라는 샌골 벌은 농부들로 찼다. 소 모는 소리와 방울소리와 철벅이는 물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들려온다. 겨우 알아볼 만한 위치에 수택이네도 보였다. 수택이는 머리에다 수건을 질끈 동이고 쟁기질을 하고 있고 정 서방은 밭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밭머리에는 자기 아내가 상현이 남매를 데리고 놀고 있고 서울 며느리는 얼굴도 잘 안 보일 만큼 수건을 푹 내려쓰고 고무래로 흙덩이를 바수고 있었다. 수택의 처는 그래도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수택의 쟁기질에는 소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가끔 우두머니 서서 쟁기가 바로 대어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억지로 그린 자유화(自由畵)와도 같은 것이다. 쟁기가 빗가면 정 서방이 담뱃대를 문채로 이러구저러구 가르치는 모양이다. 바로 그의 앞에는 일찍이 자기의 땅이던 논에 춘성네 부자가 신이 나서 거름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지금 거기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뽐내느라고 더 떠들고 퉁탕거리는 것만 같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춘성네 부자가 더없이 얄미웠다. 미운 대로 한다면 당장 뛰어들어 가서 아비와 자식을 논구럭에다 거꾸로 처박고 짓밟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흥, 되잖은 놈들! 그놈들 아주 제 땅이나 되는 상싶은가베! 아니꼽살스런 놈들 같으니루!” 무엇이 되잖은지 무엇이 아니꼬운지 모른다. 그러나 김 영감한테는 그렇게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수택이가 뭐라고인지 외마디소리를 쳤다. 영감은 깜짝 놀라서 그쪽을 건너다보았다. 소도 쟁기질꾼을 업수이 여기는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자국도 안 떼놓는다. 정 서방과 수택의 처는 옆에서 깔깔대고 있다. 정 서방이 쟁기를 내라고 그러는 모양이나 수택은 고집을 세고 소만 몰구친다. 겨우 소는 움직였다. 그러나 소는 또다시 딱 섰다. 쟁기는 쟁기대로 놀고 소는 소대로 가고 사람은 사람대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쟁기가 사람을 끌고 가는 형상이었다. 이런 꼴을 얼마동안 바라다보고만 있던 김 영감은 이상한 마음의 충동을 받아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기가 벌써 며칠째 변변히 먹지도 않고 누워 있던―그나마도 환갑이 지난 늙은이라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그는 벌써 병자도 아니요, 굶은 사람도 아니요, 늙은이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농부였다. 비열할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그는 허우단심 쫓아가서 아들의 손에서 쟁기를 뺏이들고는 신이 나서 흙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 봐라. 쟁기날을 이렇게 대고는 사람은 여기 서야지. 그래야만 소가 힘을 제대루 쓰지. 사람이 한쪽으루 기울어져 노면 소가 한쪽에만 힘을 써야잖는냐. 정 서방, 자넨 골을 치게. 얘, 아가. 고무랜 또 없느냐!” 지금의 그에게는 굴욕도 없었고 흙에 대한 원한도 없었다. 오직 기뻤고 즐거웠다. 육십 평생을 두고 한결같은 충성을 다해왔건만 또 한결같이 육십 년을 두고 모욕하고 혹사(酷使)해온 나머지 핏기 하나 없는 늙은 병든 육체만을 그에게 떠안긴 흙이건 마는 그 흙에 대해서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그는 지난 육십 평생에 땅을 치며 울기도 했었다. 원망도 해왔고 저주도 해왔다. 그 극진한 충성에 비해서 너무도 가혹한, 너무도 알아주지 않는 흙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격분도 느껴왔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에 넘쳐흐르고 있는 감정은 오직 흙에 대한 감사였다. 그는 그만큼 흙을 사랑했다. 아니 그만큼 그는 흙의 너무나 충실한 노예였다. == 7 == 한식(寒食)이 지난 이후의 농군들에게 있어서 된내기가 올 때까지의 팔구 개월 동안은 터진 모래 제방(堤防)을 막는 것과도 같이 눈코 뜰 사이 없는 그날그날을 보낸다. 봄보리밭에 호미질을 하기가 무섭게 논갈이에 이어 거름내기가 시작되고 연달아서 못자리를 붓는 한편 밭을 일구어야 하고 밭곡의 파종이 끝나기도 전에 벌모 내기가 시작된다. “박 서방, 낼 어디 일 마쳤지유?” 그들은 해만 지면 이렇게 일꾼 얻기에 바쁘다. 일꾼을 어어야 하고 일꾼을 얻어노면 이집 저집 다니며 쌀, 보리를 꾸어야 한다. 일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기쁜 날이니 하다 못해 북어 꽁댕이 하나라도 찢어놓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요 또 관습이다. 그들의 농사란 생나무 휘어잡기다. 억지 춘향으로 끌어내고 꾸어대고 휘어잡고―마치 아닌밤중에 물난리나 치르듯이 모심이를 끝내노면 또 딴쪽 일고가 터진다. 채소밭도 손질을 해야 하고 기장이나 수수밭도 매주어야 하고 논에 물도 끌어야 한다. 철맞추어 참외포고 심어야 하며, 밭골에 강남콩에 새새 묻어두어야 한다. 논둑의 그루콩은 누가 심어주며 엉터리로 끌어다댄 일꾼은 누가 앗아주나. 파 한 뿌리, 마늘 한 쪽까지도 자기 손으로 심어야 하고 매주어야 하고 가꾸어야 한다. 심지어 옥수수, 깨, 아주까리 같은 일용품까지도 제철에 손을 못 대면 알톨 같은 벼를 주고 바꾸어 들여야 한다. 이 무섭게 많은 일거리가 한 집에 하나 아니면 둘밖에 없는 농군의 손을 거쳐야 하는 터라 마치 손을 떼기도 전에 일꼬가 터져 마음만 바쁜 때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걷어 챙겨놓고 추운 삼동은 뜨끈하니 불을 때고 드러누리라.’이렇게만 단순히 생각해온 수택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봄을 지냈다. 물론 농촌생활이라고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것쯤은 생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 한 것은 사실이었다. 씨를 뿌리고 한두 번 매주고 그러고 걷어들이면… 그만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택 부처는 당해보고서야 알았다. 돈만 있으면 가지고 나가서 쌀도 사고 기름도 사고, 고기·파·마늘, 무엇이고 사오분이면 광주리에 담아들고 들어오던 도시 생활의 고마움을 그들은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그러나 자급자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촌에서는 그 허다한 생활품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손으로 시어야 했고, 가꾸어야 했고, 걷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걷어들인 그대로 먹는 것도 아니다. 말려야 했고 찧어야 했고 까불러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불리한 조건은 모든 일에 서투른 점이었다. 그만큼 애도 더 키었고 노력도 더 들었으며 시간도 더 요구되었다. 이렇듯 일에 치여서 경황이 없는 그들에게 또 한 가지 일이 덮쳐 있었던 것이었다. ―봄내 개량개량하던 김 영감이 모내기를 한 길로 그대로 싸매고 눕고 말았던 것이다. 수택 부처는 아침 저녁은 물론 논이나 밭에 나갔다가도 몇 차례씩 들어가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수택이네도 딴집 살림을 계획대로 걷어치우고 합소를 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교섭중이던 소살도 달포째 살리는 중이었고 고료도 반만은 손에 들어와 있었고 집이 예상 외로 일백구십원이나 평가가 되어 그의 수중에는 이럭저럭 팔백원 돈이 있던 터라 쓸 만큼 약도 써보기는 했으나 김 영감의 병은 시약(施藥)만으로 완치될 병은 아니었다. 김 영감은 생리적으로 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큰 병을 얻고 있었다. 그 사랑하던 땅에 대한 억제할 길 없는 미련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했고 괴롭게 했고 드디어 생리적으로까지 이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수택이는 김 영감이 눕는 그 길로 이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들의 시약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내 병은 약으로는 안 된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아들의 돈을 없애주는 것이 딱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었다. 또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지난 때 거의 정신은 못 차리면서도 김 영감은 논 구경을 간다고 온종일 애를 먹었다. “수택아, 자, 날 좀 일으켜라. 내 병엔 약보다도 그게 더 낫다. 구수한흙내. 퍼언한 들. 익어가는 보리…”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얘들아, 모싹이 어떻든? 자꾸 돌아봐라. 곡식이란 갓난애와 같으니라. 갓난앤 물기나 하지. 얼마 안 있어서 강충이가 생긴다. 고놈 참 귀신같이 파먹느라. 이번 맬땐 암모니알 푹 질러둬라, 응?” 하고 딴소리를 한다. 아픈 곳도 어딘지 통 집증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허리가 끊어진다고 소리를 지른다. 또 어떤 때는 팔다리가 쑤시어서 옆에서 보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못견디어한다. 그런가 하면 열이 바쩍 오르고 또 어쩌다 보면 전신이 얼음처럼 차다. “여기다, 여기! 아규규…” 이렇게 하소연을 하며 가리키는 곳은 분명히 허리다. 그러나 병자 자신 어디가 아픈지 적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밖에, 전신에 안 아픈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모양이었다. 육십 년간의 긴 노동에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그의 육체는 성한 데가 없이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강단으로 버티어왔다. 살려는 욕심과,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당장 일하지 않으면 조석 끼니가 간데 없다는 무서운 긴장으로 버티어온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오랜 동안의 긴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긴장이 일시에 확 풀려버린 것이다. 땅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갔고 작권까지도 잃어진 오늘날 긴장은 그 자신의 심신을 파괴시키는 이외에 다른 아무런 성능(性能)도 갖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수택은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의무적인 사랑이었다. 자식 된 자 마땅히 어버이를 공경해야 한다. ―이러한 도덕이 요구하는 극히 제한된 애정으로 김 여감을 사랑해온 것이었다. 이전― 그가 직업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되려 경멸해왔었다. 아니 그것은 경멸이라고 이름질 성질도 못되었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경멸이란 존경의 반동이니까. 그는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존경해보겠다고 생각한 일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농부의 아들 ― 양복을 입고 동경유학을 하고 이름이 신문에도 나고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르고(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기가 두더지처럼 일평생 흙만 파는 일개 무지한 농부의아들이라는 데 일종의 모욕까지 느끼어온 수택이었다. 양복때기만 입은 사람 앞이면 그저“네, 네”하고 굽실거리는 것은(김 영감 자신은 똥이 무서워 피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에도 수택은 그가 오직 무지한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자기의 위신이 깍이는 일이라 했었다. 남의 아버지처럼 책이나 보고 장죽이나 물고 앉아서 호령이나 하고 남을 보고도 “여보게, 여봐라!”하며, 호호 백발의 노인을 보고도 “자네, 어쩌구, 어쨌나?”하는 그런 아버지가 못 되고 일평생 흙만 파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할 아무런 의무도 그에게는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새파랗게 젊은 애들한테도 ‘허우’를 하고 또 그런 아이들한테서 반말지거리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는 자기 아버지를 그는 일종의 군더더기로까지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아니었다. 물론 다른 부자간들처럼 아기자기한 애정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적어도 자기 아버지가 자기의 위신을 해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은 깨닫고 있었다. 비록 땅은 팔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철학자였다. 그 자신과 같이 김 영감을 업수이 여겨온 모든 인가보다는 분명히 그는 위대했다. 오직 근면하고 오직 겸손하고, 그리고 오직 청렴한 일생에. 일년 동안에 십전 미만의 용돈을 쓰면서도 ‘거지〔乞人〕도갓집’이라는 별명을 일평생 면치 못했으리만큼, 거지들의 시중을 든 일이며 자기 물건을 훔치러 온 도적을 때렸다고 자기 아들을 사그리 내려 퍈 시설이며, 하루 밥 세 끼를 끓이는 이외의 재물을 탐하는 것은 욕심이라 하고 모든 채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런 모든 것은 지금 유식한 아들로 하여금 무식한 아버지를 재인식시키는 좋은 자료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지금 수택의 가슴속은 아버지에게 대한 새로운 감격으로 차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존경해온 그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도 일개 무식한 농부인 자기 아버지한테 감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구하자 했다. 그는 지금 일시적인 감격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 애지중지하는 삼십 평생에 처음 만지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팔백원의 ‘큰돈’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이름과 지위를 일시에 몽땅 잃어버린대도 조금도 사양치 않으리라 했다. 아버지의 ‘무지’는 자기의 ‘학문’보다도 몇십 배 아니 몇 백 내나 값이 있다는 것을 이 아들은 뒤늦게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아버지.”하고 그는 며칠을 두고 김 영감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 맘을 돌리시구 약도 좀 잡수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겠습니다.” “땅을 찾아?” 김 영감은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찾지요! 지금 제게 천원 돈이 있잖습니까. 인저 신문사에서 또 돈이 옵니다. 지금 사기로 매마지기에 일백삼사십원이면 되니까, 우선 이 달 안으로 열 마지기만 찾지요.” “그 사람이 큰 부자라는데 그 땅을 팔까?” 김 영감의 말에는 금시로 생기가 났다. “판답니다!” 수택은 거짓말을 했다. “되판대?” “매평에 오 전씩만 남겨주면 지금이라두 판답니다!” “오전씩 이오 십―한 마지기에 십원이로구나! 얘,사자, 그럼! 위선 아카시아 숲 앞의 여덟 마지기라두 찾자!” “그러구 나머진 필년 어미가 저 집에 가서 말을 좀 해본다구 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또 그만한 여유가 있는 집도 못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안위시키기 위해서는 이만 거짓말쯤은 주저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영감은, “필년 어미가 말이냐?” 하고 다지더니만, “에이끼, 못생긴 자식! 요대루 굶어죽으면 죽었지 사둔한테 손을 내밀어!”하고는 그대루 홱 돌아누워버리는 것이다. 수택은 인사하다가 뺨맞은 격이었다. 그래서 터진 모래둑을 막듯이 변명을 했다. 처는 그렇게 말하나 자기는 단연코 거절을 했다. 이렇게 꾸며대는 도리밖에 없었다. “잘했다.” 얼마 후에는 김 영감도 기분을 돌리었다. 만일 그날 밤, 여기에서 이야기를 막음하고 수택이가 쓰러져 자기만 했었더라면 혹 어땠을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감격에 잠긴 아들은 어쩐지 그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약을 잘 잡수셔서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그래야만 약값도 덜 든다. 약값을 아끼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이렇게 약을 쓰도록 강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김 영감은 자기 아들의 이렇듯 알뜰한 애정을 칼로 치는 듯이 거부했던 것이었다. 센터 벌의 벼가 한참 어울리고 보리가 구수한 내를 풍기며 익어가던 어느 날 밤, 김 영감은 고달프던 일생애를 청산하기 위해서 쓴 잔〔盃〕을 들었던 것이었다. 써도써도 낫지 않는 병에 그 소중한 돈을 자꾸 퍼넣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이 단념을 해서 약을 쓰는 한 푼이라도 수택으로 하여금 땅을 찾는 데 보태게 하리라―이렇게 생각을 하고 김 영감은 자진해서 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가 고달프던 생을 청산한 데 쓰여진 약은 양잿물이었다. 그것은 이른 봄, 그가 자리에 눕던 바로 그날 심구영네 상점에서 사다 두었던 것이었다. 수택이가 약그릇을 발견한 것은 시간도 모르는 밤중이었다. 그는 김영감의 고민하는 소리에 눈이 뜨여 아랫방으로 뛰어내려갔다. 원근 다량이었다. 몇 시간 후에는 혀가 굳었고 생선 내장 썩은 물 같은 불그레한 피가 입으로 철철 흘러넘쳤다. 그는 몇 번이나 아들과 손짓을 해서 불러놓고는 말도 한마디 하지도 못한 채 숨을 걷고 말았다. “찾어―땅―” 정신은 멀쩡한 모양이다. 그는 혀가 헤어져서 말은 못하나 연방 손으로 머리맡의 궤짝을 가리키었다. ‘휴지’가 들어 있는 오동나무로 짠 궤짝이었다. 전화를 해서 공의가 달려온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그러나 그때 김영감은 이미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의는 손을 댈 여지도 없다고 했다. 김 영감이 숨을 거둔 것은 그날 밤중이다. 꼭 돌 만이었다. == 8 == 모든 것이 꿈이었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어떻게 산에서 돌아왔는지 수택에게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장례가 지나고도 십여 일 간은 집안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꿈 같다. 꿈이었던가 하고 나면 꿈이 아니다. 수택은 울음소리를 낸다고 집안 식구를 주장질하면서 자기도 울었다. 그 슬픔은 아버지를 생각하는아들의 슬픔이기도 했지마는 ‘학문’을 조상하는 ‘무지’의 슬픔이기도 했다. ‘무지’를 경멸해온 ‘학문’의 참회였다. 수택은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이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조카 상태만이 신푸장하게 매일 들에 나갔다. 상태는 아직도 농촌 탈출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되려 최근에 와서 더욱 그런 결심을 굳게 한 모양이었다. “너두 생각이 없는 아이지, 할아버지나 생존해 계시다면 또 물라도 집안이 이꼴이 되는데 너만 쓱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된단 말이냐?” 이렇게 사정을 하듯이 하는 수택의 말에, “그럼 집에만 엎드려 있으면 뭘해유! 작은아버진 몰르시니까 농사 농사 하시지만 제 땅 가지구 농살 지어두 안 되는게 남의 땅 소작을 해서 우리 십여 명 식구가 먹구 살어유?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수택이도 더 할말이 없었다. 간다면 어디고 보내리라 했다. 나는 도시에서 기어들었으니까 너는 한번 도시로 나가보아라 했다. 그래서 네가 다시 농촌으로 기어들든지 내가 다시 도시로 기어나가든지 사람은 체험을 해보아야 안다했다. “그러나 난 이 동리에서 단 한 발자욱 움찍두 않을 게다!” 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땅을 찾는 것이 내 일생의 사명이다. 매 평에 일원은 고사하고 오원이 간다더라도 찾으리라 했다. 아버지는 내게 그것을 당부하고 가셨다. 믿고 가셨다.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도 바치셨다. 이 아버지가 어디가 무식하냐! 했다. ‘어디로 보나 소설줄이나 끼적이는 자식한테 멸시를 받을 존재냐!’ 수택은 벽에 걸릴 노출(露出)도 분명치 못한 김 영감의 사진을 쳐다보며 이렇게 마음에 부르짖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방안에 엎드려 있는 동안에 수택은 금후의 방침을 딱 세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장만했던 땅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 시가(時價)로 약 삼천원어치다. 지금그의 수중에는 약 팔백원의 현금이 있었다. 신문사의 고료가 마저 왔었고 장례에는 이백원 돈도 다 못 들었다. 그러나 그중 약 반은 부의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팔백원이나마 살리리라 했다. 그는 먼저 현재 이 집을 조그만 집과 바꾸기로 했다. 장터 한복판에 이렇게 거추장스런 집을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제 지단이 끼어 있으니만큼 육칠백원 시가는 되었다. 이것으로 구석진 집을 산다면사오백원은 떨어졌다. 일천삼백원이면 우선 아카시아 숲 앞 여덟 마지기 값은 된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그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이야기가 그의 계획대로 아물어지자 그는 심구영을 찾았다. N면으로 통하는 신작로가 그의 바로 문전을 기점(起點)으로 하고 뚫릴 것이요 장터에서 면소로 들르는 길도 그의 집 앞을 지나갈 계획이고 보니 현재 심구영네 상점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자리가 날 것이다. 처음부터 잠자코 그의 계획을 듣고만 있던 심구영은, “참 장한 일이시오! 훌륭한 생각이시오!” 이렇게 찬성을 해주었다. “내 처지가 이렇게 되어 내가 자진해서 청하는 게니만큼 정당한 값을 달라는 것두 아닙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셔서 편의만 좀 보아주십시오.” 수택이가 말한 값은 칠백원이었다. “긴상두 잘 아시겠지만 그 자리가 그만 값은 됩니다. 첫째 제 터전이 삼백 평이나 되구 집이 그만하겠다 터두 좋지요. 그 값에 내맡아드리리다…” 거짓말처럼 이야기는 순조로이 진행이 되었다. 그럴밖에 없었다. 심구영은 영리(營利)에 눈이 밝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가다라하상이 그 논을 되판답디까?” “건 아직 못 알아봤습니다. 허지만 내 심경을 잘 이야기하구 한번 졸라보렵니다.” “글쎄, 그 사람이 놓을까? 땅이 원근 좋아노니까!” 이렇게 말말끝에 읍내 새 지주의 면장과의 사이가 퍽 절친한 사이라는 말이 나서 그는 먼저 면장을 찾았다. 면장은 이전 철도국에도 다년간 있은 일이 있는 비교적 지식계급이었다. 성은 그는 처음 보는 경(慶)씨였다. 경 면장과는 일찍이 안면도 있는 터고 김 영감과도 자별한 사이였다. 이 동리서 김 영감을 존경할 사람도 오직 그뿐이었다. 그러니만큼 이야기는 훨씬 쉬웠다, 그도 역시 수택의 계획에 감동한 빛으로, “긴상 같은 청년이 우리 면에 자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턱도 없이 농촌들을 싫어해서 큰 탈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면에 한한 것이 아니고 우리 국가로 본대도 크게 찬동할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런 의기를 농촌 청년이 본받도록 해달라고 당부당부하며 신 지주한테 보내는 긴 편지도 써주었다.“기다하라상두 기꺼이 응할 겝니다. 값도 산 값으루 넘기도록 잘 말했습니다. 만일 안 된다면 내라두 가 드리리다. 내 말이면 못 떼겠지요. 나와는 전에 철도국에 있을 적부터의 친구인 터니까… 하여튼 긴상 같은 분이 우리 농촌 진흥 운동에 좋은 표본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이렇게 해서 며칠 수 수택은 심구영에게서 현금 칠백원을 받아쥐었다. 그러나 그가 현금을 받기 전에 그의 집은 심구영의 손을 거치어 벌써 제삼자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의 집 일대가 장차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그 자리에는 자동차부가 설치된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던 터였다. 칠백원은 며칠 새에 오백원의 새끼를 쳤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르는 수택은 심구영에게 그 호의를 눈물이 나게 치하를 했다. 사흘 후 수택은 착착 개커서 버들상자 속 깊이 간직해두었던 여름 양복을 꺼내 입었다. 만 일년 만에 입는 양복이었다. 읍에 가서 새 지주를 만나보려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신발에 손질을 하는 동안에 역시 양복을 입고 안마당 한가운데 넋잃은 사람처럼 서 있는 상태를 방안으로 불렀다. “너 언제 올지도 모르니 할아버지께 다녀가거라. 나두 가뵙겠다.” 이렇게 조카한테 말을 하고 자기도 일어서 제청으로 들어갔다. 절을 하는데 그대로 눈물이 좌르르 쏟아진다. 아버지가 한 달만 더 살아 계셨던들 싶었다. 여름 햇살은 아침부터 뜨겁다. 그는 모자를 든 채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로 나왔다. 자동차 정류소 앞에는 그의 가족이 벌써 죽 모여서 있었다. 상태가 기어코 서울로 가는 것이었다. 그의 수중에는 돈 백원이 들어 있다. 그 돈 백원이 없어져도 직업을 못 얻는 때는 두말없이 돌아온다는 조건부로 수택은 몇몇 친구한테 편지도 써주어 보내는 것이다. “그럼 잘 가 있다 오너라. 난 오늘 되돌아와야 할 게니까 떠나는 것 못 보겠다―” “네―” 하는데 상태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히 괸다, “부디 몸을 조심해!” 이렇게 다시 당부를 하고 자전차에 올랐다. 비탈길이요 면소 앞인 터라 길도 골라서 자전차 바퀴가 그지없이 여하게 돈다. 수택은 발에 힘을 부쩍 주어 페달을 밟았다. ==라이선스== {{PD-old-50}} iq4wvs2u0xugos5mu01py289jak22mj 459712 459711 2026-09-17T13:28:49Z ZornsLemon 15531 반달. 문서보호 요청합니다. 459712 wikitext text/x-wiki __NOTOC__ {{머리말 |제목 = 흙의 노예(奴隸) |저자 = [[저자:이무영|이무영]] |역자 = |부제 = 속(續) [[제1과 제1장]]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인문평론』 7호, 1940년 4월 }} == 1 == 산(生)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사는 사람의 생(生)을 의미하고 생활(生活)한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하면서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생(生)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수택이의 지금의 생은 이 후자(後者)에 속할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그는 남이 살아 있듯이 그저 막연히 살아왔던 것이다. 남이 살듯이 살아왔고 보니 남이 죽듯이 또 죽었어야 할 것이로되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그만큼 살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증좌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죽듯이 그런 모진 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수택 자신에게는 적이 미안한 일일지 모르나 지금까지의 그의 생에 대한 태도란 이런 정도에서 몇 걸음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도 하루에 밥 세 끼니를 얻기 위해서는 실로 피비린내나는 노력을 해왔다 할 것이다. 동경 유학 때는 실로 일곱 끼니의 때를 거르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었고 일금 오십원의 월급 봉투를 위해서는 여름 아침의 그 단잠도 희생을 해왔고 X광선을 비추면 월식하는 달처럼 일부분이 뿌예진 폐를 가지고도 한결같이 오년이란 긴 세월을 버티어왔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젊은 결기로서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을 모든 굴욕 앞에서도 인종(忍從)의 덕을 지켜왔으며 한 때의 찬거리를 사기 위해서 마포에서 광화문까지의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살아 있는 그 누구나가 사는 방법이요 또 살아나갈 방법이다. 좀더 잘산다―보다 더 값있게 산다. 좀더 깨끗하게 살고 보다 더 건실한 생활자가 된다―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한 구원한 이상처럼만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요 자기와 같은 범인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지난한 일이라 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직을 내던지고 농촌으로 기어든 동기가 어떤 것이었다든가, 그 의기(意氣)가 어느 정도의 것이었다든가 하는 것은 막론하고 타기만만한 자기 생(生)의 새로운 국면(局面)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수십통씩이나 누룩머리를 앓는 영예로운 직업을 한푼의 미련도 없이 내던진 데는 우선 경의를 표해둔다 하더라도농촌으로 돌아온 이후의 생(生)이 그대로 생활하는 사람의 ‘생’에 편입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도시를 떠난 후 4개월간의 농촌생활이란 그대로 도시생활의 연장이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형식이었다. 양복에,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살던 수택이가 머리에 밀짚모자를 얹고 고의 적삼에 고무신 짝을 끌고 살았다는 차이뿐이었다. 그의 생활 의지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었으며 막연한 것이었다. 생활 의지라기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기분이었다. 아니 그것은 도시 생활 시대라기보다도 한층 더 헐값으로 평가될 허영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시골사람들에게는 중등 이상이면 그대로 대학으로 통용이 된다)당당한 일류 신문기자가 농촌에 와서 땅을 파고, 지게를 지고 오줌장군을 져 나르며 거름을 친다―이렇게 보아주는 고향 사람들의 경이(驚異)에 홀로 만족하고 우월을 느끼는 허영―이것이 그의 생활 의지(生活意志)였다. “지금은 너희들과 이렇게 살지마는 그래도 너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마는 나의 노동은 그것이 아니다. 같은 노동을 한다드라도 내가 하는 노동에는 더 값이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자기가 이런 우월감―허영에 들떠 있다고도 생각지는 않았다. 생각지는 않으면서도 역시 수택은 무의식중에 그런 허영에 지배되었다. 서투른 지게질을 할 때나 소를 몰고 갈 때나 동리 여편네들과 노인들이 자기를 비웃기 보다도 대견하게―장하게 보아주리라는 막연한 의식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배가 되었고 열칠팔세의 아이들이 수월하게 지고 일어나는 볏섬을 땅짐도 멋 시키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부끄러워했어야 할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교육받는 사람의 특징이기나 한 것처럼 수치는커녕 오히려 자랑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그 자신은 의식치 못하나마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 출신의 지게질이라도 한두 번 보면 족한 것이다. 그것이 늘 그렇게 신기할 것이 없을 것이며 대견할 것도 없고 장할 건덕지가 못 될 것이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별이 비치고 하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수택이의 지게질에 늘 그렇게 놀라기만 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건마는 수택에게는 그것이 섭섭했다. 물론 표명을 하는 것도 아니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인식해본 일이 없기는 했지마는 동리 사람들이 벌써 자기를 경이의 눈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히 생각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수택이는 서울 있는 몇몇 친구한테는 자기의 근황을 알려왔다. 자기의 일을 근심해 줄 우정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마는 그는 자기의 생활을 비교적 자세히 보고한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소풀을 베었다든가 오줌 장군을 자다가 깨빡을 쳤다든가 거적을 깔고 앉아서 밤을 새워 물꼬를 지켰다든가… 이런 이야기까지도 보고를 했든 것이다. 시굴생활을 보고하는 데는 물론 이런 사실을 뺄 수는 없다 치더라도 그런 편지를 쓰던 때의 그의 심리를 한 번 더 깊이 파볼 때. ‘나는 이렇게 초월했다. 나는 문화인 너희들이 불쌍히 여긴다…’ 이러한 의식이 그 어는 구석에든지 잠복해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에 족한 일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순수한 농촌생활은 추수기가 끝난 직후― 다시 말하면 그의 지게질과 서투른 낫질이 벌써 동리 사람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못 되게 된 때, 그리고 한여름 동안 밤잠을 못 자고 피땀을 흘린 총수확이 벼 넉 섬으로 보리 때까지 연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직면한 그 순간부터였다. ‘저것으로 삼동을 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수택은 몇 번이고 뜰팡에 포갬포갬 쌓아논 볏섬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년 보리가 나기까지에는 적어도 반년이나 있었다. 그 오륙 개월을 벼 넉 섬으로 산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그 벼 넉 섬으로 양식도 해야 하고 호세도 해야 하고 사람이 병이 나지 말란 법도 없고 보니 영신환 봉도 사게 될 게고 석유며 심지어 성냥 한 갑까지도 저 벼를 내야만 한다. 금년은 볏금이 좋아서 팔전이다. 이백 근 잡고 십육 원, 넉 섬을 다 낸댔자 육십원이다. 잡용으로 아무래도 한 섬은 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오십여원을 가지고 반년을 살아야 한다… 육칠은 사십이. 수택은 온종일 키질에 저녁술을 놓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진 아내를 내려다보며 이런 구구를 쳐본다. 어린것이 둘, 자기내외에 창문이 놈까지 넣으면 알톨 같은 다섯 식구다. 어린것 둘로 어른 한 몫을 친다 해도 네 식구에, 매인당 십원이다. 창문이의 바지저고리는 뭣으로 해주며 어린것들의 알궁둥이는 뭣으로 가려주어야 할 겐가. 그나 그뿐인가. 아내는 서울서 입던 찌꺽지를 꿰매 입는다 친대도 나만은 바지저고리 두어 벌은 가져야 삼동을 날 계다. 버선을 기워댈 도리가 없을 게니 양말짝이라도 사 신어야 이면이 옳잖은가…부지깽이도 살림값에 간다는 데 연모 하나 없이 어떻게 농가에서 부지를 하며 담배는 누가 사준다는가. 아직 식구가 다 죽지는 않았으니 친구고 아내 집으로 통신도 해야 할 건데 우표는 뭣으로사며 종잇장 봉투장은 뉘게서 갖다 쓰나… 이런 생각을 곰상곰상 하고 보니 자기의 농촌생활 설계가 얼마나 무정견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로맨틱한 것이었던가가 새삼스러이 돌아다보여지는 것이었다. 수택은 털퍽하니 문간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벌써 마고를 두 개째 태우고 저도 모르게 다시 불을 붙이다가 벌떡 일어난다. 테이블 서랍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다가 주먹구구로만 따지던 셈수를 일일이 적어가면서 다시 한번 계산을 한다. 그러나 석유, 성냥, 담배, 우표―이렇게 조목조목 적다 보니 주먹구구로 칠 때는 매인당 팔구원은 되든 것이 겨우 오 원 부리에서 조금 벗어난다. ‘장정 한 사람이 오원으로 반년을 살란다?’ 수택은 그것이 그 어떤 사람의 명령이기나 한 것처럼 저도 모르게 이렇게 분개했다. 꼭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한테 속은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 피워물고 꼬부리었다. 예산을 좀더 삭감해보잔 것이다. 담뱃값 일원 오십전이 일원으로 감해졌고. 석유 네 사발이 세 사발로, 통신비 삼십전이 십오전으로 이렇게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졸아붙였다. 그러나 이렇게 삭감해도 일인당 한 달 생활비가 일원 오십전이 못 된다. 아내는 요새 며칠째 앓는 소리가 버쩍 심하다. 열병처럼 호된 몸살을 닷새나 앓고 일어난 지가 불과 대엿새밖에 안 된다. 대엿새에 한 번씩은 반드시 눕는다. 그렇게 친다면 십오전짜리 몸살 약첩을 쓴대도 볏섬은 들어갈 게다…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수택은 계산하던 종잇장을 벅벅 찢고 일어났다. 벌써 십사오 년 전 일이었지마는 대수(代數)문제 하나를 두어 시간이나 풀다가 노트를 벅벅 찢고 일어나던 기억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그때는 이튿날 학교에 가서 선생이 일부러 문제를 잘못 냈다는 것을 알았었거니와 이 풀 수 없는 문제는 누가 잘못 낸 것인가 했다. 사람도 붕어처럼 물을 먹고 살기 전에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달은 지나치게 밝다. 아직 초저녁이건만 천 명 가까운 인간이 모여 사는 동리는 관 속처럼 괴괴하다. 동구 밖에 있는 물레방아 홈통에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칙칙칙 들려올 뿐 늦은 가을이란건만 다듬이 소리 한마디 안 들린다. 서글프기만 했다. 시적(詩的)이라고만 생각해온 농촌의 달밤이 이렇게 서글프기만 한 것인가 했다. 뽕나무 가지로 얽은 삽짝을 사뿐히 들어 자치고 돌아서려니까 뽑다 둔 채 만 텃밭 모솔기에서 누가 이쪽을바라보더니 말을 건넨다. “어디 가려나.” “누구요?” “나야. 용훈일세.” “아, 똥훈인가.” “망할 사람, 어른을 몰라보고.” 똥훈이란 용훈이의 별명이었다. 그는 수택이와 나이도 비슷했고 어렸을 적에는 사람학교에도 같이 다니었다. 부잣집 자식들 대개가 그렇듯이 용훈이도 이탠가 삼 년을 두고 낙제를 했다. 똥훈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배꼽까지나 수염이 내려온 한문 선생이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이태조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 “떡전꺼리 기름집 늙은이유!” 하고 호기있게 대답을 했다. 지금은 죽은 지도 오래지마는 기름집 영감의 이름이 이태주(李泰柱)였다. 용훈이는 마침 기름집에서 대여섯 집 어긋난 맞은편에 살았던 것이다. “에이. 똥 같은 녀석! 오늘부턴 용훈이라지 말고 똥훈이라고 그래라!” 똥훈이란 이렇게 생긴 별명이었다. 수택은 원근 어려서 고향을 떠났고 몇 해에 한 번씩 그나마 하루 아니면 이틀, 길대야 사흘, 이렇게 과객처럼 다녀간 터라 같이 주먹코를 씻던 어렸을 적 동무들과 농담 한 번 할 기회도 없이 삼십고개를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농도 걸고 우스운 소리도 하고 해서 어렸을 적의 동무를 여나못 찾았다. 똥훈이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똥훈이에게 대한 지식이란 천여 석 하던 재산이 재작년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반으로 줄었고 지난 일년 동안에 또다시 약 반은 축을 냈다는 것, 그 대부분은 읍에 드나드는 자동차비와 요리값으로 소비되었다는 것. 서울 다니는 자동차의 여차장을 첩으로 얻었다는 것, 그저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뭐,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옛날 똥훈이가 나이 삼십이 됐다고만 생각하면 틀림없지.” 역시 사립하교 시대의 동무로 지금은 신작로 가에 이발소를 내고 있는 종대가 이렇게 말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이태주’를 연상하고 속으로 혼자 웃었다. “어디 볼일이 있어 가나?” 용훈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묻는다. 아무것도 하는 일은 없으면서도국방복은 입었다. “아니, 왜?” “자네 좀 볼려구 왔던 길인데.” “날? 무슨 소관이 있나?” “별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오래간만이니 맥주나 한잔씩 나누자구…” “어디 내 술을 먹던가?” 수택은 좀 야박할 만큼 잡아뗀다. 거의 반년 가까이 도화를 그리우고 산 터다. 맥주란 말만 들어도 반갑기는 했으나 어떤 편이냐만 소위 여덟 달반처럼 어리무던한 용훈이의 술을 얻어먹었다는 소문도 나쁘려니와 그 자신 지금 이야기도 통치 않을 용훈이를 상대로 술을 마실 기분이 되어 있지 못했다. 자기 혼자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벼 넉 섬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 동안을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숙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그였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는 아버지가 나으리라 한 것이다. 나이는 그보다 어려도 농촌에서 자란 스물넷 된 조카도 책상물림인 자기보다는 좀더 이런 문제를 푸는 묘득을 알고 있으리라―이렇게 생각이 되어 용훈이한테는 후일을 다시 약속하도 중말 자기 원집으로 내려왔다. == 2 == 삽짝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사람이 얼른만 해도 지붕이 들썩이도록 짖어대던 흰둥이란 놈도 인저는 낯이 익었는지 ‘으응―’ 한마디 을러보고는 깍지광 옆 사랑 부엌으로 기어들어간다. 수택은 먼저 안을 뻐끔히 들여다보았다. 불은 희미하니 넉가래 같은 짚신짝이며 편리화 한 짝에 고무신 한 짝이 눈에 뛴다. 그는 다시 사랑으로 나왔으나 사랑에서도 역시 마실꾼이 와 있는 모양이다. 문구멍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려니 아랫말 정택수가 그의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방바닥에는 무슨 종이쪽지가 두세 창 펼쳐진 채 있고 그 종이 위에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산(算)가지가 널려 있다. 정택수는 손바닥 반만한 장돌뱅이 주판을 들고서 무엇인지 심을 맞추는 모양이다. 이야기가 중단이 됐는지 끝이 났는지 잠잠하다. 수택은 정택수가 돈놀이〔高利貸金〕를 해서 형세가 훨씬 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야기를 좀 엿들어볼까 하다가 궁금한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그의 어머니와 형수와 고모, 읍으로 출가했다가 바로 몇 달 전수택이가 고향에 돌아온 지 달포는 되었을 때 이 동리로 이사를 해온 맏누님 외에도 두붓집 과댁. 바로 사랑에 와 있는 정택수의 맏며느리 ― 이렇게 방안이 그득하게 모여앉었다. 다 흉허물없는 터였다. “어이쿠, 서울 양반 오시는군.” 언제나 너실대는 두붓집이 그 안반만한 엉덩판을 한쪽으로 옮기며 자리를 내준다. 정택수 며느리는 나이 사십이 가깝건만 아직 피둥피둥한 번화한 얼굴이 희미한 등잔불이라 그런지 더욱 훤해 보인다. 수택은 정택수 며느리가 열일곱 수택이가 열두 살때 혼인 말이 있던 여자다. 그는 시굴 내려와서 그런 말을 듣고야 알았지마는 그가 싫다고 내찼던 여자인지라 좀 겸연쩍어했으나 그쪽에서는 그런 것은 다 잊었다는 듯이 말도 걸고 또 늘 놀러도 왔다. 벌써 며느리까지 보았다는 의식이 그 여자로 하여금 그렇게 대범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거의 전부가 사십 이상의 여인들인지라 앞집 뒷집의 흉보기보다 사는 이야기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 모인 중에서는 그래도 정택수 며느리가 제일 나은 모양이었다. 그 무서운 가물에도 걷은 것이 이십여 석에 도지 들어온 것이 삼사십 석 되는 모양이었다. “자네네가 뭔 걱정인가. 올 같은 흉년에도 육십 석이나 됐는데―제년에는 벼 백이 실하잖었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가만히 쉬어본다. 그가 고향을 떠나기 전만해도 연사가 좋은 해면. 칠팔십 석은 무난한 그들이었다. 논 이십사오 두락에 가물 타는 논은 단 한 마지기가 없었다. 밭만 해도 사흘갈이가 실했었다. 언제나 잡곡이 십여석 들어쌓이는 호농(豪農)이었다. 그렇던 집안에 벼 열댓 섬―그나마도 그 태반은 볏값이 나지는 대로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나올밖에 없는 일이다. 수택이가 그런 사실을 안 것도 기실 얼마 안 된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모처럼 돌아온 자식에게서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자식을 붙들어두기 위해서 집안식구의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그에게 땅을 줄때도, “부모 자식 사이에도 심은 심대로 해야 하느니라. 더구나 이간 네 형이 장자니까 형은 나가 돌아다니드라도 역시 네 형 살림이거든. 장성한 조카가 있으니까 도지대로 해야 정오가 옳잖으냐.” 이렇게 마치 정말 집의 소유이기나 한 것처럼 푸근하게 말했던 것이다. 수택은 그래서 꼬박이 속았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그것도 아내가 어디서 듣고 와서 귀띔을 해준 것이다. 타작을 하던 바로 닷새 전인가 엿새 전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아는 터라. 물론 그런 내색은 하지도 않았다. 모르는 척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비밀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싶었다. 자기도 자기려니와 아버지도 그 무슨 타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싶었다. 그가 다시 사랑에 나간 때 정택수는 가고 없었다. 손님이 간 터라 남포불을 등잔불 처럼 낮추고 책상다리를 한 양쪽 무릎에 두 팔꿈치를 세우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조각(彫刻)처럼 앉아 있다. 담뱃대를 물기는 했으나 빠는 법도 없고 대꼬바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담뱃대를 물고 명상하는 늙은 농부의 궁상이었다. “헴!” 수택은 일부러 문구멍에서 두어 발짝 멀찌감치서 인기척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접니다.” “오, 너 내려왔느냐.” 아까의 궁상은 간데없이, “아이들은 자든?” “네.” 수택은 남포 심지를 훨씬 돋우고 오늘쯤은 무슨 이야기나 나옴직해서 윗목에 도사리고 앉았었다. “네. 네 형 있다는 데 편지 좀 해봤느냐?” “했더니 돌아왔습니다.” “허, 미친 자식이로군.” 그의 형 근택은 십 년래의 방랑아였다. 한때 전 동양을 풍미하던 사상에 휩쓸려들더니 십년 전에 홀연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교육도 별로 받은 것은 없으면서도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만은 충분히 얻고 있었다. 최근에는 만주 방면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나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의연 확실치 않았다. 상해가 중심이기는 한 모양이나 일년에 몇 번씩 오는 편지의 주소가 매번 변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수택이는 어떻게든지 오늘만은 아버지의 숨김없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땅이라는 것이 도시 대엿 마지기에 밭 두어 뙈기밖에 남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안 터이지마는 그밖에 채무 관계는 어떻게 돼 있으며 금년과 과동준비와 보릿고개를 넘길 성산이 어떻게 서 있는가도 알고 싶었고 장차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려는가도 듣는대로야 별 뾰족한 수는 없다 해도알고만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수택이는 그 독실하고 부지런하고, 면과 군의 농업 기수(農業技手)까지가 농작물에 대한 그의 의견을 참작한다는 이 훌륭한 농부가 삼십여 두락에 가까운 자기 재산을 탕진하기까지의 경로가 알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농부인가는 군에서 두 번 도에서 한 번 그를 표창했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그 상장을 타러 읍에는 고사하고 가까운 면에까지 ‘출두’하기를 거절했지마는―이렇듯 부지런하고 이렇듯 노농(老農)이며 거기에다가 술 한 잔 입에 대는 법이 없고, 여자라고는 일평생 자기 아내밖에 모른 채 육십을 넘긴 한 자작농(自作農)이 불과 십 년 동안에 맨주먹만 쥐고 나앉았다는 사실은 벼 넉 섬을 가지고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야만 한다는 어려운 수학 문제와도 비슷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그만 일인 동시에 또한 큰일이었다. “아버지, 이번 연사가 어떻게 된 셈입니까.” 하고 참다못해서 수택은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집에 있는 것만으로 과동은 할 만합니까?” “암, 그야 되구말구!” 이렇게 응당 대답했어야 할 그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앉았다. 그것은 실로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그 침묵은 예상보다도 긴것이었다.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알톨같이 여문 귀뚜라미 소리만이 쨍쨍하다. 급기야 침묵은 깨지고야 말았다. 그것도 수택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야라미없을 만큼 늙은 아버지의 고생에 찌든 주름잡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자우는 폭하니 꺼졌다. 흉할 만큼 긴 겉눈썹이 신경질로 움직인다. 수택이가 집을 떠나던 열두 살 때까지 아버지 눈이 무서워서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동자도 인저는 늙고 지친 토끼눈처럼 충혈이 되어 보인다. 몇 해 전 그가 신문사 일로 근읍에까지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가던 때만 해도 그의 아버지는 늙기는 했을망정 단 두 주먹으로 육십 년간 생활과 싸워온 악지와 강단이 그 눈과 코와 입언저리에 차차분하니 들어박혀 있었다. 육십 년간에는 살인 광선과도 같은 폭염(暴炎)도 있었을 것이며 살점이 에이는 추위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더위에도 추위에도 굴치 않고, 하루돌이로 태풍처럼 덮치는 토구질에도 잘 견디어 생명을 유지했던 것만으로도 장하다 하겠거늘, 그 김 영감이 지금 자기 아들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다.“수택아.” 늙은 아버지는 목메인 소리로 아들을 불러놓고서 다시 오랜 침묵에 잠긴다. 수택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늙은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김 영감 자신에게도 그랬을 것이었다. “너 혹 누구한테서든지 우리 집안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냐?” “들었습니다.” “들었어?” 순간 영감은 깜짝 놀라는 눈치더니, “질됐다. 애비 입으로 그런 이야길 한 것 보다는 잘 됐다. 어차피 한 번 알고야 말일 게고… 그래, 인전 그럼 넌 어떡할 작정이지?” “어떡하다니요?” 수택은 무슨 의민지 몰랐다. “장차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 살아볼 작정이냐?” “아버지 생존해 계실 때까진 여기서 살아볼까 합니다.” “나 살아 있을 때까지? 뭐 내가 살 날이 며칠 남았드냐?” 아직 십 년 하나는 염려없다고 수택은 거의 확신했다. “수택아, 내가 이렇게 자식 앞에서라도 궁상을 떨기는 육십 평생에 오늘이 처음이다. 아니지, 나 혼자서도 아래본 적이 없다. 허지만 인저는 나로서도 할 수가 없구나. 아마 내 팔자는 인저 딴길을 접어든 모양이다.” 이렇게 김 영감은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하던 어떤 가난한 농부의 일대기(一代記)였다. 김 영감은 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다. 고아는 무보의 유산을 많이 타고났어도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 그러나 그는 바지저고리 한 벌에 삼베 행전 한 켤레만을 타고난 고아였다. 그는 고아의 누구나가 밟는 갈을 밟아서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혹은 엿목판도 졌고, 또 어떤 때는 장돌림의 봇짐을 지고 따라다니기도 했다. 오늘은 이가의 집에서 밥을 먹었으면 내일은 또 박가의 집이다. 이렇게 그는 컸고 장성했다. 그러나 김 영감이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도 한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의 불행은 고아가 된 것이었고 둘째의 불행은 정직이었다. 입 우의 소년에게는 맘만 따로 먹으면 살 도리가 나설 여러 번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 남을 속일 줄을 몰랐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친 자기 아버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강직한 고아는 엿목판을 베고 논두렁에서도 잤고 손을 호호 불며 다리 밑에서 긴 겨울 밤을 새우기도 했다. 찬 돌을 어머니의 팔인 양 베고하염없는 공상의 나라를 헤매기도 했고, 흐르기가 무섭게 쩍쩍 얼어붙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동리에서 동리로, 혹은 내를 건너고 혹은 산모퉁이를 돌아서 살 곳을 찾아 헤매었다. ‘열다섯만 되어라.’ 그의 희망은 오직 이것이었다. 열다섯만 되면 금시 발복을 하고 비단옷에 고량진미를 마음껏 먹는 그런 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수 있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열다섯이 되었다. 그는 소원대로 반 새경을 받고 머슴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밥, 쩔쩔 끊는 방, 그는 이것으로 족했다. 10년간의 긴 머슴살이가 끝난 때 그의 수중에는 엽전 삼백 냥이 꾸려졌다. 송아지도 한 마리 생겼다. 그는 그제서야 아내도 맞았다. 자식도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헤매는 고달픈 몸이었다.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세상이 한 번 뒤바뀌었다. 정부에서는 국유지를 일반 백성들에게 연부로 불하하는 새 법령을 냈다. 김 영감이 한 섬지기의 땅을 장만한 것도 그때였다. “그 후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일을 했으며 얼마나 규모있게 살림을 했는지는 너도 어려서 보았으니까 잘 알 바라. 나는 일년 가야 술 한 잔, 인절미 한 개 사먹은 일이 없다. 언젠가 내 일년간 용돈이 한 냥(십전)을 못 넘는다니까 너는 곧이듣기지 않는 모양이드라마는 백중날 아이들 떡푼어치 사주는 게 내 용돈이다. 이렇게 난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해왔다.” 김 영감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막금했다. 그것은 무슨 고대 소설과도 같았다. 고대 소설과 다른 것은 그보다 더 실감이 있다는 것뿐이다. 이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머리를 들고 일어나던 의문이 또 생긴다. 그렇게 정직하고 그렇게 부지런하고 그렇게 알뜰한 자기 아버지는 어째서 좀더 부유하게 못 되고 땅마지기 지니었던 것까지 놓아버리게 되었을까?… 수택은 조심조심 물어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농촌에 있어서의 금후의 생활을 설계할 자격도 없다 싶었다. “어떻게 돼서 그랬느냐고? 그건 나두 모른다. 나뿐이 아니지. 누가 알겠니? 하느님이 아실 뿐이지.” 이렇게 딴전을 쓰고는. “세상이 변한 탓이지, 옛날에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그리고 예의범절만 있으면 살았느니라. 그런든 것이 이 근년에 와서는 짚신이 없어지고고무신이 생기고, 감발이 없어지고 지까다비가 나왔지. 물가(物價)는 고등하지, 학교는 보내야지, 학교 다니구 나니 농산 싫지. 듣구 보았으나 양복때기라두 걸쳐야지. 화차, 자동차가 생겼으니 어디 갈 땐 타야 배기지? 네 생각해봐라. 읍내까지 오십리로구나. 부지런히 서둘면 점심 한 끼만 사먹으면 다녀올 데를 지금은 소불하 일원 오십전은 가져야 하는구나. 갈 적 올 적 차비만 해두 일원 삼십전이지. 점심 한 끼만 사먹구 마느냐? 그래노니까 몸은 점점 약해질밖에… 더위도 더 타지 치위도 더 타지. 젊은 애들두 털내복을 입어야 견디지, 편할라구만 하니 먹는 게 나라니? 체하지. 소금 한줌만 먹음 될 게라두 영신환 사야지. 옛날 사람들이 지금처럼 약값이 많구야 살았겠느냐?” “그 대신 소출이 그전보다 많이 나잖습니까?”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소득과 지출의 비례를 좀더 정확하니 알고 싶었다. “너 되로 주고 말루 받아야지 말루 주고 되루 받아서 소용 있겠냐?” 풀쑥 이런 말을 하고는, “결국은 기계가 사람을 죽이느니라.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게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부려먹는 세상야. 그야 산미증산 산미증산 해서 소출이야 더 나지. 허지만 그 대신 대두박이니 암모니아니 거름값이 더 들지. 전엔 모두 찬밥 한술만 떠먹으면 손으로 해치우던 걸 인잔 기계 아니면 못하는 줄 알잖니? 우리네 농군이 일년내 피땀을 흘려서 대처〔都會〕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느니라. 모두 그리 가져가지. 농군한테 지까다비가 하상관야? 몸뚱이가 튼튼하면야 쇠를 먹어도 색이지. 병원이 뭔 소관이구? 움찔하면 똥이라더니 이건 움찍하면 돈이로구나…” 수택은 일생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무조건하고 자기 아버지를 경멸해왔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김 영감은 훌륭한 세대에의 반역자였다. 허다한 신진 사상가(思想家)들의 기계 파괴론(機械破壞論)을 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은가. 표현은 다를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사상가였다. 인간은 지금 기계의 노에 가 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은 기계에게 멸망을 당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흙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사람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올 때 흙은 언제나 다름없는 관대(寬大)와 애정으로 인간을 맞아준다는 것이다. 이 흙의 관대를 인간은 모른다. 모르는 데 그치지만 않고 경멸하기까지 한다. 김 영감은 다시,“너 정택수란 어른 알잖니?” 하면서 그가 흙을 배반한 좋은 표본이라고 한다. “너 오기 바루 전에두 다녀갔다마는 땅마지기 있는 걸 톡톡 팔아서 장살 했느니라. 다 털어올렸지. 그러다가 몇 푼 남은 것으루 돈놀이를 했느니라. 돈냥이나 좀 잡았지. 허지만 사람이 돈만 가지면 사는 줄 아냐? 의리도 있어야 하구 인정두 쓸 덴 써야하구 어수룩할 땐 또 어수룩해야지. 사람이 돈에 녹이 나면 못쓰느니라. 돈을 만지면 사람이 이악해져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다시 돈을 땅에 묻더라. 지금 모두 치면 벼 백이 되지. 그러더니만 제년부터 또 돈이 탐이 나서 요샌 금광을 하지. 그래서 남의 산수 밑을 모두 파제키구 야단이구나. 법이야 어떻건 법만 가지구 사람이 산다든? 그래, 낮잠 자는 것을 깨워두 열 가지 악(惡)의 하나라는데 돈 벌자구 흙 속에 묻혀 곤히 잠든 남의 조상에다 남포질을 하구 야단이야! 우리 농군네겐 그런 법이 없거든!” 그러나 이 긴 이야기보다도 수택이를 가장 흥분시킨 사실은 수택이가 부치기로 한 여덟 마지기의 소작권이 내년부터는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부치는 소작답열한 마지기도 똑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김 영감은 이 사실을 이야기해야 옳을지 어떨지를 퍽 주저한 모양이었다. 열한시나 되어서 인사를 하고 일어날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할듯 말듯 하더니만 그가 문고리를 잡은 때서야. “잠깐만 더 좀 앉거라.” 하다가 일어난 길에 안에 들어가 뭐 먹을 것 좀 뜨뜻하게 해 내오라고 이르고는 돌아온 후에도 다시 얼마를 망설인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런 슬픈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게 뉘 땅입니까?” 그도 맥이 탁 풀리었다. “뉘 땅은 뉘 땅. 원래야 우리 땅이었지. 그렇든 것이 야곰야곰 빚을 지게 되어 재작년에 닷 마지기만 남기고 통 지금 말하던 정택수한테로 넘어갔지. 재작년엔 연사두 좋았구 곡가두 그럴 듯해서 웬만하면 이자라두 끄구 어떻게 해보잔 것이… 너만 듣으라마는 네 조카놈이 어떻게 못된 놈들하구 섭쓸리더니 또 읍에 가서 돈냥이나 좋이 털어올리고 오잖았느냐.” “상태가요?” “그랬느니라.” 순간 수택은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는 간데없이 자기 집이 망한 원인이상태란 놈의 난봉으로 인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런 내색은 않았다. 그 자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밀목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쳐서 먹었건만 땀 한 점 안 난다. 땅마지기를 믿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지마는 믿었던 줄이 탁 끊긴 것처럼 맥이 풀린다. 누가 샀는지는 모르나 정택수를 찾아가서 소작권을 이어받을까 짧은 순간 그런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잇을 바에야 아버지가 솔선해서 그런 도리를 차라지 않았으랴 싶으면서도 그것을 다져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대답은 역시 그의 예기한 바와 같았다. 매주는 읍내 사는 ‘기다하라’라는 철물상인데 중간에 든 사람이 작권을 얻기로 하고 구문까지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수택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올라왔다. 그의 너무나 어두운 마음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달은 차도록 밝다. 물방아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한결 더 바쁘다. 서리가 오려는지 밤도 찼다. == 3 == 지금 수택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대신문의 사회부 기자요 일금 팔십원의 문화생할자인 그를 이 궁벽한 농촌에까지 끌고 내려온 것은 진실한 문학생활도 아니었으며 논마지기나 부치고 채마나 심어서 처자와 함께 안락한 가정생활을 영위(營爲)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내려가서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기어올라오지―서울을 떠날 무렵에 생각하던 이런 소극적인 태도도 아니었다. 끝장이야 뭐이 되든 고향땅을 물고 뜯어보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이라도 달게 받으리라 했다. 처음 그가 이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상당히 방황했다. 첫째는 비록 소작일망정 모한 폭 꽂을 땅 한 조각도 없다는 것이 가장 그를 방황시킨 무엇보다도 큰 원인이었고, 둘째는 설사 남의 소작을 한다고 친대도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낸 대수 문제와도 같아서 영원히 풀 길이 없다는 것을 일년 농사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고, 섯째의 원인은 역시 그들의 건강이었다. 어느편이냐먄 수택 자신은 시골 온 후로 훨씬 건강이 나아진 편이었다. 꾹꾹 누르면 두어 술밖에 안 되는 밥을 먹고도 그것을 못 삭여서 꼴깍꼴깍하던 그는 벌써 아니었다. 혈색도 벌써 창백한 기는 가시었고 책상한 개를 드다루는 데도 엄두를 못 내서 쩔쩔매던 그런 수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영주하기로 결심했다. 낯이 설기는 하나마 그대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뉘 땅을 얻어부치더라도 대엿 마지기 얻을 상도 싶었고, 그것으로써 생계가 안 설 것은 빤한 일이나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농촌 소설을 쓰자면 그만 경험쯤은 얻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 부족한 것은 허섭쓰레기 원고장을 쓴다든가 신문에 발표한 채로 있는 어떤 장편소설의 출판을 재쳐서 양미를 보태리라했다. 수택은 이렇게 결심을 하고 걸핏하면 어디로 뺑소니를 치려는 상태를 달래었다. 그러나 상태로 본다면 농촌생활은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서 그렇잖아도 자리를 떠볼까하던 터에 마침 수택이가 돌아온 터라 그 결심을 버리지 못한다.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린다. 언제든지 한 번은 도회에 가서 살아봐야 할 아이라고 수택은 옆에서 눈치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택으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한 것은 사내자식의 의기였다. 농촌을 잘 알았든 못 알았든 처자까지 데리고 솔가해온 이상 다시 엉금엉금 서울로 기어올라갈 수는 없다 했다. 여러 친구들이 회비까지 모아서 송별연까지 베풀어준 터가 아닌가. 그들 앞에 반년도 못 되어서 다시 무슨 낯으로 나설 수가 있을까? “우리 가족의 뼈는 고향에다 묻자!” 그는 이렇게 센티한―그러나 비장한 결심까지 했다. 일단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수택은 이렇게 마음을 작정하는 길로 용훈이를 찾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달은 뜨지 않았으나 동쪽 하늘이 벌겋게 상기된 것이 미구에 달이 뜰 모양이다. 중말 술회사 앞을 돌아서 일부러 샛길로 접어들었다. 용훈네 집은 어렸을 적에도 늘 놀러다닌 집이나 대문도 돌려내고 앞채는 상점 방으로 꾸미어져 있었다. 용훈이는 마침 저녁을 먹고 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용훈이를 찾기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이발소 아니면 묵장사를 하는 복순네 집이나 면소 숙직실, 거기 없으면 중말 병아리 갈봇집이었다. 예측한 대로 그는 복순네 집 윗방에서 복순 아주머니와 팔뚝 맞기 화투를 치고 있었다. “아. 이거 별일이네그려. 자네가 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구.”용훈이는 고동색 세루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치우며, “들어오게, 우리 죄수 볼기 치기보다는 날 게니 이 색시허구 팔뚝 맞기 화투나 한번 치세그려.” “그래 볼까…” 어쩔까 했으나 사람이란 모가 나서는 못쓴다고 그가 내려오던 이튿날부터 그의 아버지가 주장질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대엿 번이나 화투를 쳤다. 한 번은 이기고 내리 쳤다. “수택이, 우리 마작 한케 하러 갈려나?” 하며 용훈이가 화투에 진이 떨어진 틈을 타서 수택은 그를 끌고 집으로 왔다. 똑똑한 편도 못 되는 용훈이 같은 사람을 데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떳떳치 못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았으나 이발소 종대 말대로 계집한테만 어리무던하지 친구들간에는 ‘능구리처럼 음흉’하다고 한다면 사양할 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의 수택에게는 그런 말을 할만한 사람은 역시 용훈을 내놓고는 없었다. “자네 맥주는 내가 낼 게니 나 땅 한 자리 주어야겠네.” 이렇게 처음부터 툭 털어놓고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어려운 이론은 캐지도 않았지마는 고향에 와서 어렸을 적 동무들과 앞집 뒷집을 정하고 살고 싶다는 그의 계획에는 다소 감동된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역시 대학까지 졸업하고 그 큰 신문사에 다니던 그가 이런 궁촌에 와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그 심경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눈치였다. 한편 장한 생각 같기도 했고 못생긴 짓 같기도 했다. ‘뭘 잘못하구 쫓겨나니까 갑자기 어쩔 수도 없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려니…’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 내가 거저 주는 것두 아니겠구 대엿 마지기 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어디 지금 세상엔 논인들 맘대루 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농지령 때문에 작권두 모두 계약을 하게 돼놔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소작하는 땅을 떼어달라는 건 아닐세. 나 살자고 남한테 못할 노릇을 시키고 싶진 않네. 내 말은 자네네가 삼십여 마지기나 광작을 한다니까 자네네는 대엿 마지기 더 지으나 덜 지으나 대찬 없을 것 같구, 해서 말하자면 자네 부치는 걸 좀 떼달란 말일세. 안 되겠는가.” “난처한데…”용훈은 좋이 입맛이 쓴 표정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네가 맏는 타격이 크다면 난두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아냐, 뭐 타격이랄 건 없지만… 글쎄. 어디 보세. 오늘 낼 작정해야만 할 것두 아니겠구…” 그만큼 하고 수택은 용훈을 데리고 먼저 갔던 복순네 집에 가서 제육을 구워놓고 약주를 몇 잔씩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에, “자네 술만 먹어서 되겠니, 내 술도 한잔 해야지.” 하며 끄는 바람에 수택은 고향에 온 지 처음으로 술집에를 끌려갔다. 그들이 간 집은 역시 병아리집이었다. 얼굴이 병아리처럼 생겨서가 아니라 아랫말에서 역시 술장사를 하는 이복동생의 얼굴이 달걀처럼 생기었다고 해서 먼저 난 형이 병아리가 된 것이다. 병아리는 용훈이와도 범연한 사이가 아닌 듯싶어 한 되들이 금천대(金千代)병을 안고 욱자베기를 하면서도 연상 눈짓들을 하고 회영수가 어우러졌다. “송 주사. 요샌 아주 막 뽐내십디다그려” “뭘.” “술 한잔을 자셔두 고향 사람들 술을 팔아주는 게 아니구 꼭 읍내루만 행찰 하시구…” 말은 술 이야기를 하나 술강짜치고 심각한 표정이다. 병아리는 분명히 술만의 강샘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 상싶었다. 그래도 용훈이가 통 받아주지를 않으니까 병아리는 찍어누르는 소리로 “석탄 백탄 타는데…”를 제 성에 못이겨서 부르고 있었다. 병아리집을 일선 때도 과음(過飮)이었는데, 그들은 다시 한 짐을 들렀다. 물론 병아리의 동생 달걀집이었다. 달걀집은 부풀었다. 병아리보다 훨씬 젊기도 했거니와 얼굴도 시골 주모로는 깨인 편이었다. 소학교는 다녔는지 ‘도죠’니. ‘고엔료나꾸’니 하는 말도 툭툭 던졌고 어서 귀동냥을 한 것인지 ‘폴리이스’니. 가는 손 보고는 ‘굿나잇’하고 주척도 댄다. 술은 맥주를 청했으나, 맥주는 두 병밖에 없어서 여기서도 제육을 굽고 너비를 몇 점 구워만 놓고는 강술로 서너 홉씩을 말리었다. 일어선 때는 용훈이도 수택이도 까부러지게 취했었다. 어디선지 용훈이와 헤어진 것은 자정이 가까웠었다. 면소 앞 신작로를 건너서 역시 술집 뒤를 돌아가려니까 술꾼들의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뜻밖에 그 맞욕질을 하는 싸움 소리 속에서 조카인 상태의 목소리를 발견하고는 물론 취중이었지마는,‘이 녀석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집에를 다녀?’ 하는 쾌씸한 생각이 불컥 나서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상태와 면서기 김용승이가 싸우고 있었다. 꼬단은 알 수 없었다. 또 캘 필요도 없었다. 그는 싸움의 시비를 가리러 들어갔던 터가 아니었으므로 군중을 헤치고 들이닿는 길로 상태의 뺨을 정신이 나게 한번 붙이었다. “이리 나와!” 상태는 고분고분히 끌리어 나왔다. 상태한테서도 술기운이 마주 확 풍긴다. 그 술내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불끈했었다. 무슨 감정의 관련이었던지는 몰랐어도 상태 입에서 술내가 확 풍긴 그 순간 그는 집안을 들어먹은 것은 상태라는 착각이 일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착각이었다. 논 이십 두락을 털어먹은 것은 김 영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서운 착각인 반면에 그것은 또 무서운 증오였다. 송곳 한 개 꽂을 땅이라도 물고 떨어야 할 처지에 요릿집에다 전재산을 털어올려… ―그는 거의 발작적으로 상태를 무수히 난타했다. 상태는 끽소리 없이 맞았다. 봇둑에 선 포풀러를 의지하고 한 번 말대꾸도 없이 맞으며 울고 섰다. 수택이도 얼만지 조카를 때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도 없는 설움이 걷잡을 수도 없이 내장 저 아래에서 부걱부걱 기어올라온다. 나중에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수택은 얼마 후에는 역시 상태가 기대인 포플러나무에 얼굴을 틀어박고 흑흑 누끼어 울었었다. 상태가 먼저 울음을 그치었다. 그러나 수택이의 울음은 좀처럼 그쳐지지 않았다. 상태는 맞은 설움이었으나 수택의 울음은 때린 설움― 그나마도 일시의 착각으로 감정에 격한 경솔을 뉘우치는 울음이었다. 형도 자기도 없는 동안 어린 나이로 그 크나 큰 림을 도맡아본 상태한테 무슨 죄가 있었으랴?… “작은 아버지, 그만 돌아가시지요. 제가 요릿집에 다니느라고 땅을 팔아먹었다는 건 작은 아버지 오해십니다. 몇 번 가긴 갔었지만 그건 마름이라도 하나 얻어 살림을 벌여볼까 했던 것인데…” 하다 말고 그대로 다시 울어버린다. “안다, 안다. 그만둬라.” 이렇게 말하며 수택은 조카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섧지 않은 때도 곧잘 우는 수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절통할 때라야만 운다― 두 사나이가 맞잡고 우는 정경―그것은 정말 옆에서보기에도 딱한 정경이었다. == 4 == 농한기(農閑期)라는 삼동(三冬)은 그러나 구택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한가로운 기간이 아니었다. 퇴직금 끄트러기가 몇 푼 남기는 했으나 실상 지나보니 그의 예산과는 달랐다. 이제 열댓 된 창문이의 손으로만은 부엌 나무도 댈 길이 없었다. 더욱이 보림령(保林令)은 낙엽 긁는 것까지도 제한이 되어 있어서 그나마도 긁게 되지 않아 ‘나무도 못 긁어댈 바에야―’하고 창문이도 내보내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나마 그는 몇 개의 잡문도 써야 했고 소설도 몇 편 마련해야 할 계제다. 아직 반년도 못 되는 경험으로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농」{老農}이란 장편소설의 제1부만이라도 마물러야 얼마간의 모개돈이 들어올 것 같다. 다행히 신문사에서도 왼편만 되면 검열에 지장이 없는 한 고료를 선불해줄 수도 있다는 회답도 받은 터라 공연히 마음만 바빴다. 수택은 매일 농군들 봉놋방에 가서 살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도 그랬거니와 인저부터는 생활 방편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같이 살고 그들과 같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맷방석을 들여 펴고 밤나무 장작윷도 놀앗고 일찍이 중학에 들어가서 ABC를 배우던 정열과 또 그만 못지않는 노력으로 투전 글자를 배우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서 서울 이야기로 밤도 새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때는 막걸리 내기 화투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대문(南大門)에 써붙인 큰 대(大)자가 아래로 쳐졌더냐 위로 올라붙었더냐―이런 토론으로 욕지거리를 해가며 싸우는 머슴들한테 끌리어가서 남대문이라고 씌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했다. “거들 봐라. 남대문이라고 안 쓰였드라구 그렇게 일러줘두 빡빡 우겨대드니!” 건달 덕문이다 기염을 토한다. “이 자식아, 그래 네가 보면 안단 말야!” 하고 득만이도 지지 않고 대든다. 큰 대자가 내려붙었다고 고집하던 친구였다. “네깐놈이나 내나 남대문이라고 썼는지 북대문이라고 썼는지 보면 알택이 뭐야! 사칠팔(四七八)가보라구 쓰진 않았든, 왜?” “저놈이 글쎄, 양반 행세 한답시구 우리 아버지 포두청이라고 한놈이라니께!” 방안이 떠들썩하게 웃음이 터졌다. 매양 방안에는 열 명 이상의 농군들이 모였다. 어떤 때는 이십 명 가까운 사람이 들구끓은 때도 있었다. 마치 상자 속에 과자를 주워담은 것처럼 포갬포갬 앉는 수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 한쪽에서는 「조웅전」(趙雄傳)「추월색」(秋月色)같은 이야기책을 보고 이 모퉁이에서는 계집 이야기를 하면 저 구석에는 먹는 이야기다. 그러나 매양 화제가 집중되는 데는 역시 음식타령이었다. 모두가 장정들이요, 모두가 일년에 한두 번밖에 허리끈을 끌러놔 보지 못하는 그런 축들이다. 놀음이야기, 나무하다 산감한테 경친 이야기, 읍내 이야기, 이렇게 어수선하던 화제도 어떤 구석 누구 입에서든지 음식 이야기 한번 나면 그대로 좌중의 귀가 다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난 이러니저러니 해두 검정 밤콩을 드문드문 논 마구설기가 좋더라.” 칠성이가 무슨 결론이나 짓듯이 이렇게 말하자 아까부터 칠성이와 토작이던 돌이가 왼새끼를 꼰다. “저 자식이, 그래, 저게 입이야. 떡엔 콩을 노면 겉물이 돌아서 못써! 백설가라야지.” “그래, 저 자식이 왜 아까부터 남의 말이면 쌍지팽이를 짚구 나서는 게야! 그래, 이자식야, 똥구멍으로 막지 않는 바에야 씹는 맛이 좀 있어야지.” “허,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법이야.” 하고 아랫목에서 주의를 시켰음에도 칠성이와 돌이는 기어이 쌈이 되고야 말았다. “에이끼. 동물에 튀해 죽일 자식, 저걸 낳구두 그래 횃대 밑에서 멱국을 먹었을 테지!” 칠성이가 결을 버쩍 세우는데, “그만두세. 인제, 그렇잖어두 우리 어머닌 날 낳구 조당죽이나마 옆집에 가서 얻어 다 먹었다네!” 하고 비장한 소리를 해서 웃는 사람, 언짢아하는 사람, 별 표정이 다 나타났다. 수택이가 여럿한테 인사를 하고 막 문을 닫고 나오려니깐 희만 노인이, “낼 순경 차례니 사람 얻어 보내유.” 하고 소리를 친다. “네― 그럽죠.”그도 길게 대답을 하고 봇독을 타고 올라갔다. 밤 사이에 된내기가 하얗게 내렸다. 뜰팡에 뗘놓았던 자배기 몰에 살엄음이 잡히었다. 간밤은 장편의 첫 장면을 찾지 못해서 거의 밤을 밝히듯시피 했건만 아침은 여전히 일찍 깨었다. 머리가 별로이 무겁지도 않다. 울안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헌 바구니를 들고 동저고릿바람으로 천변에 나갔다. 아삭아삭 서리 기둥을 밟는 발의 감촉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하는 대로 가며오며 소똥 개똥 같은 것을 들고 간 바구니에 담아들고 들어왔다. “아빠, 또 개똥 주웠수.” 필년이라 년의 말소리도 인저는 제법이다. “그래, 너두 낼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빠하구 개똥 주러가 , 가지?” “응, 엄마, 나두 낼부터 아빠하구 개똥 주러 가우!” “오냐.” 아내가 어린것을 업고 부엌에서 나오면서 대답을 한다. “좀 쓰셨수?” “웬걸.” 아침을 치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보았다. 오랜 동안 머리를 쓰지 않아서 그대로 굳어지기나 한 것처럼, 통 풀리지 않는다. 수택은 다시 천변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역시 두서가 풀리지 않는다. “수택이 있나?” 용훈이가 읍내를 또 가는지 국방복도 벗어던지고 자르르 흐르는 능견 두루막에 중절모자를 바드름하니 쓰고 들어왔다. “또 어디 가는가?” “아, 읍에 좀.” “들어오게나그려” “아냐, 첫자루 가얄 겐데. 거 말야. 요전에 말하던 거 거 그렇게 하기루 했네. 자넨 서투른 솜씨구 해서 물길 좀 놈으루 엿 마지길 뗐네.” “고마워.” 한 가지만이라도 낙착이 되고 보니 갑자기 딴힘이 생긴다. 수택은 그 길로 내려가서 아버지한테 용훈이가 말하던 논이 어떤가고 물어보았다. “모이 앞의 엿 마지기? 좋―지, 좋은 논이구말구. 거 그 사람 큰심 썼다. 그래, 도진 얼마라든?”“그건 아직 못 물어봤습니다.” “저런 사람 봐. 농군이 먼저 그걸 알아봐야지. 암만 논이 좋면 뭐하나. 도지가 호되면 천수답만두 못한걸.” “설마 턱없이야 매기겠어요.” 김 영감은 새끼 꼬던 손을 쉬고 쌈지에서 가루가 된 희연을 손바닥애 쏟아놓더니, “담배라구 예전처럼 잎새가 있어야지. 이건 하루만 넣구 다니면 바짝 말라서 가루가 돼버리니―” 하면서 침을 퉤퉤 뱉어 곰방대에 담아 문다. 담배를 피며 새끼를 꼬며 또 이야기까지 하자니까 침을 줄줄 흘러 떨어진다. “거, 뭐하실 겁니까?” “집을 이어야잖니, 금년에 마초(馬草)를 하기 때문에 지붕을 잇재도 허갈 내야 한대서 면장한테 신청을 했는데 모르겠다. 온 , 이집이야 금년쯤 걸러가지고는 별일 없겠다면서두 너 집은 샐 게다. 어리라두 좀 해둬야지.” 수택이도 짚 몇 오리를 맞동여서 발 새에다 끼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다른 일은 대강 흉내는 내나 새끼를 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매맞은 구렁이 몸처럼 고르지가 못하면서도 손바닥은 얼얼하다. 그래도 한 이십 발은 실하게 꼬고서야 일어났다. “왜, 그만 갈테냐?” “네, 올라가서 뭐 좀 써봐야겠습니다.” 수택은 일어나서 안에도 들러보았다. 어머니도 형수도 없다. 뉘 집 아이들인지 조무래기만 서넛이 집을 보고 있다. 집에 올라오니 어머니는 수택의 집에 와 있었다. 형수는 벌써 사흘째 담배 조리(調理)를 다닌다는 것이다. 이 고장은 전 조선에서 제일가는 담배 소산지다. 백여 호 되는 동리에 담배 찌는 곳간이 다섯 채나 있다. 누렇게 된 담배를 새끼에 꿰어서 난방장치가 되어 있는 곳간에다 매어달고 불을 땐다. 그래서 누렇게 마른 담뱃잎을 상엽, 중엽, 막치기―이렇게 세 종류로 나누어서 짝 편다. 편 것을 다시 한 춤 씩 되게 담뱃잎으로 대궁을 싸서 흡사 총채처럼 만든다. 이것을 조리한다고 하는 것이다. 수택이도 어렸을 적에는 매년 여름이면 담배를 엮었다. 다섯 발 가량 되는 새기에 한 잎은 엎고 한 잎은 젖혀서 어금막기로 엮어간다. 열 발에 삼전인가 삼전 오린가 되었으나, 담배를 엮는 기간이 마침 여름방학인 때라 웬만한 집 아이들은 다 머리를 싸들고 덤빈다.“하루 사십전씩인데 아이들은 내 봐줄 게니 아이 어미도 좀 해보잖으련?” 어머니는 아내와 그의 눈치를 번갈아 보면서, “그걸루 큰 보탬이 될 건 아니지만두 잔용은 뜯어 쓰느니라.” “가볼까” 아내는 그의 눈치를 본다. “그까짓 것”하고 내찰 줄 알았던 터라, 그는 적지 않아 의아했다. “정말 해볼려우.” “해볼 테유―” 아내는 이 지방 사투리로 ‘유우’를 길게 잡아 늘인다. “해볼 템 해보구려. 동무들두 사괼 겸.” “그래라. 그래서 어떡허든지 끈을 잡아가지구 살아야지. 너 아버진 아주 너희들 때문에 잠두 통 못 주무신다.” “왜요?” “그렇잖겠니? 모처럼 자식이 이 부모를 바라구 왔는데 땅뙈기나마 다 팔아먹구 집 한 칸 못 장만해주니 어째 너 아버진들 맘이 졸 리가 있겠니. 요샌 아주 죽을 지경이다. 전에야 참 하늘이 무너진대도 눈 한 번 깜짝 않던 양반이 어떻게 맘이 여려졌는지 그저 한숨만 휴휴 내쉬는구나.” “그렇게 걱정을 끼출 줄 알았더면 오지 않을 건데 괜히 왔나봐요. 어머님, 그래두 필년 애비는 우리가 가기만 하면 아버지 어머닌 여간 좋아하시지 않는다구!” “그야 좋지, 좋지 않을 거야 뭐 있니, 단지 살도록 마련을 못해주니까 그렇지.” “뭘요. 인젠 아버님께 얻어먹을랴고 했나요. 그럭저럭 살게 되겠지요.” “암만해두 너 아버지두 몇 해 더 못 살려나부다. 가만히 보니 망령이 나는가봐.” “벌써 뭘.” 하고 수택이가 웃으니까, “벌써가 뭐냐. 네 좀 봐라. 요샌 이슥하도록 좀이 다 먹은 문서 보따리만 끌러놓구 앉으셨구나.” “문서 보따리가 무슨?” “땅문서지 뭐냐. 죽은 자식 나이 헤어보기지. 그건 왜 궁산맞게 들여다보구 앉았담. 이동두 다 해간 빈 문서를 신주 위하듯 하시는구나, 글쎄.”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는 수택에게 이상한 충동을 주었다. 물론 수택이가 나기 전 이야기라 얼굴도 본 일은 없었으나, 번화하게 생겼던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그 형이 사고무친한 김 영감의 첫아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그는 네 살 때 죽고 말았다. 그때도 그는,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죽은 걸 생각하면 살아나나.” 단 한마디 했을 뿐, 일평생을 두고 다시는 죽은 자식의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그랬다. 한 번 단념하면 단념한 순간이 완전한 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가 이미 남의 소유가 된 휴지 조각을 밤마다 들여다보고 앉았다는 것이다… “여기다!” 하고 수택은 그 길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한 자작농(自作農)이던 늙은 농부가 밤을 낮삼아 일을 했건만 한 마지기 두 마지기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이미 완전한 휴지가 된 서류뿐이다. 늙은 농부는 지금 희미한 등잔불에 그 ‘휴지’를 비춰보고 있다. 커다란 도장이 꽉꽉 찍힌 그 종이에는 분명히 자기 이름이 씌어져 있다. 그는 마른 바가지 속처럼 된 자기손등을 내려다본다. 그 손에는 무수한 흉터가 잇고 핏기 없는 굵다란 힘줄만이 기운없이 서리웠다.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 종이를 만질 때마다 버석버석 소리가 난다. 그는 언제까지나 자기 이름 석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한숨이 후유 나오고 고생에 찌든 늙은 얼굴에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나의 육십 평생은 이 종잇장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종잇장을 위해서는 단잠도 못 잤고 허리끈도 졸라매었고 피와 땀도 흘렸다. 남이 쌀밥을 먹을 때는 조밥을 먹었고, 남이 조밥을 먹을 때는 나는 조당죽을 멀거니 끓여 먹었다. 이렇듯 육십 년 동안 정성을 바쳐온 이 종잇장이 아무짝에두 쓸 수 없는 휴지가 돼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겔까?…” 이렇게 한탄할 때 눈물 한 방울이 땅문서에 뚝뚝 떨어진다. ―이런 데서 장편 「노농」(老農)의 첫장면을 시작하리라 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그의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의 사회 기구며 풍습, 인정세태(人情世態), 물가(物價),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동나무로 싼 길이 두 자에 폭 한 자, 높이가 반 자 가량 되는 궤짝 속을 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장방형의 궤짝에서는 수택이가 일찍이 보지 못하던 여러 가지가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장사를 그만두던 해 마지막 쓰던 치부책도 한 권 나왔다. 그것은 장사를 마감하면서 외상값을 받던 것이다. 그가 놀란 것은 기역(ㄱ)자를 씌우지 않은 것이 거의 태반은 되었다. “이런 건 어떻게 그대로 있습니까?” 수택은 책장을 뒤적이며 이렇게 물었다. “그건 다 못 받은 게다. 예나 지금이나 하던 장사를 떨어엎으면 어디 주더냐. 송살(訟事)하면 받기야 받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난 내 일평생 밥은 끓여 먹을 게 되느니라 싶었으니까 그만둔 게지.” “그땐 여유가 좀 있으셨든가요?” “어디 그런 건 아니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논이 이십여 마지기만 있으면 살 때다. 재물이란 탐을 낼 필요가 없는 게거든. 난 지금두 그렇게 생각한다. 재물이란 덜퍽 있어두 되려 액이니라. 그저 밥이나 굶잖으면 그게 상팔자지. 상태(조카)보군 늘 그렇게 일러 왔느니라마는 너두 하루 세끼 밥거리 이왼 아예 바라지를 말아! 먹구 입구 남는 게 있으면 물욕이 자꾸 생기는 법이니라. 먹구 입구 하는 건 한정이 있지만 여유에는 한정이 없거든. 돈이 많아서 못 쓰는 법은 없지만 먹구 입구 하는 덴 조금씩 차인 있으리라두 한정이 있는 법이다. 남은 먹두 입구 못하는데 어떻게 낭비하기 위해서 욕심 낼까부냐. 그렇잖으냐, 사람 사는 이차란 게?” 아버지의 이런 이야기에서 수택은 십오룩 년 전 자기의 중학시대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의 고향은 지리적으로나 산물(産物)로나 도시와는 인연이 먼 농촌이었다. 읍에까지에는 문전에서 자동차가 다니기는 하나 오십리나 되었고 서울을 가재도 자동차길 밖에 없었다. 노정은 삼백리 정도였으나 차임은 십원 각수나 되어 웬만한 사람은 서울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계문명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현대에 살면서도 백 호나 되는 동민 중에는 기차나 전처를 본 사람은 불과 몇이 못 되었다. 경성 유학생이래야 그와 거기서 한 십리 떨어진 화석리(化石里)라는 촌에서 한 사람, 전 면을 통해서 삼사인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자면 조치원까지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조치원까지는 이백삼사십리나 되는 터라 부득이 경성을 갈 사람도 직로인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가본 사람도 기차를 타보지 못한 채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읍이나 서울 갔다 오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물건 한 개만 사가지고 와도 그것이 그대로 굉장한 뉴스가 되어 온 동리에 퍼졌다.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나 어떻게 굴렀던지 기름집 손자가 대판으로 건너가서 메리야쓰 공장에 다니다가 어떤해 여름 자기 집에 돌아왔었다. 그는 팔뚝시게를 찼었고 안경을 쓰고 구두를 신었었다. 이것이 그대로 동리 청년들의 좋은 선망이 되었고, 동리 처녀들의 동경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가 가진 ‘희한한 불’회중전등에 아깝게도 희생이 된 처녀가 둘이나 있었고 뒤이어 예쁘기로 이름이 있던 달룡이 댁이 이 희한한 불을 가진 청년과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문화와는 인연이 먼 샌터였으나, 그땐 전 조선을 휩쓸던 사상은 회중전등 보다도 먼저 이 동리에 들어와 있었다. 동경 가서 유학을 하던 면장의 사위가 이 동리로 들어온 것이었다. ‘신화청년회’(新和靑年會)가 생긴 것도 그때였고 노동야학, 부인야학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수택은 그때 중학 이년이었다. 그는 여름방학에 돌아왔다가 자기 또래의 소년들이 ‘평등’이니, ‘계급’이니, ‘무산자’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을 보고서 어린 마음에도 자기가 뒤진 것을 깨달았었다. 그가 박 선생의 총애를 받는 소년이 된 것은 그 다음해 역시 여름방학부터다. 박 선생은 근동 청년들의 선망의 적(的)이었다. 그러나 겨우 언문 글밖에 못하고 두더지처럼 오십 평생을 두고 흙만 파온 그의 아버지는 이 박 선생을 더 업수이 여겼다. 말 잘하는 사람일수록에 행함이 적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처음 사귄 사람을 길래 사귀지 못하는 것이 그의 둘째 결점이었고, 정말 없는 사람의 ‘편’이 되자면 먼저 저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맘과 몸뚱이가 한뭉치가 되어야지, 맘이 암만 그렇다 해도 제 몸뚱이가 말을 안 들으면 소용있나. 너들 두구 보렴. 그 사람은 변호사나 하라면 잘할지 몰라두 저러다가 마느니라…” 이 무자한 농부의 예언이 오 년도 못 가서 들어맞았던 것이다. 박 선생은 그가 일찍이 옳다 하고, 아름답다 하고, 의(義)라고 말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의 말로가 대개 그렇듯이 그는 그가 일찍이 욕하던 직업을 가졌었고 한번 그런 데로 길을 트기가 무섭게 머리가 좋았더니만큼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김 영감의 말따라 그는 처음 사귄 친구를 길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듯이 한 번 가졌던 생각도 늘 변하는 사람이었다. 말만은 많이 하고 또 잘하나 일평생을 두고 참 말을 몇 마디도 못하고 죽는다는 변호사에다 그를 비교한 자기 아버지의 예언이 근 이십년 후인 오늘날 와서 그와 비슷한 직업인 브로커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점심때는 되어서 수택은 좀이 먹은 그 오동나무 궤짝째 가지고 일어섰다.김 영감은 무슨 큰 보물이나 되는 듯싶게 잘 간수하라고 당부당부하는 것이었다. “거깄는 건 단 한 장이라두 없애지 말아라. 땅은 다 남의 것이 됐다만 그것조차 없어진다면…” 하다가 갑자기 말이 뚝 끊어진다. 그가 문을 열다 말고 돌아다봤을 대 김 영감은 그 궤짝이 자기의 사랑하던 땅이요 그 땅이 지금 자기 손으로부터 영원히 남의 손으로 넘어가기나 하는 듯이 언짢아하는 것이었다. 수택도 아주 마음이 좋지 않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맥이 하나 없이 논둑 지름길을 건너서 삽짝 앞에 이르니까 제 동생을 데리고 흙장난을 하던 필년이란 년이 며칠 못 봤던 듯이 달려들어 안기는 것도 아는 체 만 체하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려니까. “엄마, 아빠 오셨수―인저 닭국 먹을 테야!” 하고 필년이가 쫓아들어온다. “오오냐. 상현이하구 와서 손 씻구.” “닭이 웬 닭이오!” 그의 말소리가 퉁명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의 상심하는 양을 본 때문만도 아니다. 씨한다고 닭 한 마리 남겨둔 것을 잡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예요? 무슨 광장한 보물 궤짝 같구려.” 하다가 남편의 눈치가 좋지 않은 것을 보더니 냉큼 묻던 말에 대답을 한다. “옆집에서 가져왔어요. 간밤에 닭 풍기는 소리가 나구 법석을 하더니 살쾡이란 놈이 암탉 두 마리를 모조리 물어 박질렀다는군요.” 그래도 남편의 얼굴이 퍼지지 않으니까. 그는 마치 무슨 죄나 진 듯이 어리둥절하고 섰다가, 조심조심 또 말을 붙인다. “벌써 메칠 전부터 닭이장을 뱅뱅 돌더래요. 그래 새루 문을 해 달구 야단을 했더니 지붕을 뚫구 들어갔다는군요.” “애들하구 당신이나 먹우.” 수택은 제 방으로 들어가는 길로 번듯이 자빠졌다. 아내가 근심이 되어 바로 뒤따라 들어와서 머리맡에 앉는 것을 알고도 그는 언제까지나 눈을 딱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 5 == 구럭 그믐께까지에는 수택의 장편도 거의 절반까지나 진척이 되어있었다. 낮에는 산감의 눈을 피해서 가까운 사나에 가서 낙엽을 긁어오기도 하고 봉놋방에서 농군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며 보내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마치 자기네를 감시하러 오는 사람처럼 서먹해하던 농군들도 인저는 무관한 동무처럼 만나면, “밥 잡섰이유.” 하고 인사를 했고 원고를 쓰느리고 종일 나가지를 않으면 지나는 길에 찾아와보기도 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대명사도 인저는 없어지고 딸년의 이름을 붙여서 ‘필년아버지’가 되었다. “모두 보령산으루 산나무들을 간다는데 한번 안 가보실래유?”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보령산이라니, 저 까맣게 쳐다보이는 산?” “야―” 보기만 해도 염두가 안 났다. 그러나 가보기로 하고, 그날 밤은 여느때보다 좀 일찍잤다. 여섯시에 일어난 때는 아내는 어느 틈에 일어났는지 벌써 밥을 잦혀놓고 있었다. 김칫국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풀어서 푹푹 퍼먹고 있는 옆에서 아내는, “너무 욕심 내지 마시구 조금만 해 지셔요. 모두들 그러는데 여간 험한 산이 아니래요.” 하고 그만뒀으면 하는 눈치다. “뭘, 아이들만큼야 못해 질라구.” 이렇게 말하면서도 물론 자신은 없었다. 요기를 하고 양말을 버쩍 추키어 감발 대신을 하고 솔버선에 ‘지까다비’를 신고는 곰방대에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아내가 담배 조리를 다닐 때(아내는 보름 남짓하게 하고 말았지마는)황색 엽초(葉草) 부스러기를 두어 뭉치 얻어왔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수택에게는 독했다. 그래서 장수연을 사서 섞어 피운다.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 문 것도 인저는 그리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내는 보고 웃지도 않는다. 이 보령산 나무 덕에 수택이는 이틀이나 앓았으나 그래도 배운 것은 많았다. 그가 먼산나무에 용기를 냈던 것은 소위 하이킹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었으나, 그러한 기술은 먼산 나무에는 조금도 이용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일찍이 학창에서 배운 모든 학문이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응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던 때처럼 우울한 심정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수택이에게 순경 차례가 돌아온 것은 금년 겨울 접어들면서 첫 추이가 시작된 지 사흘 만인가 나흘째 되던 날이다. 마침 그날은 아들놈상현이의 생일날이라고 어머니가 인절미를 해왔다. 그래서 수택은 신문지에다 여나무 개를 싸들고 언 별만이 가상할 만큼 떠는 하늘을 순경 방안 구장 집 사랑으로 내려갔다. “저녁 진지 잡수셨어유?” 마침 구장 집 일꾼 천보가 평북 어떤 철산(鐵山)에 가 있는 자기 형한테 편지를 쓰려고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에도 벌써 무려 이삼십 통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은 안 되었다. 출생 신고도 몇 장 썼고 사망 신고도 한 장 썼다. “안부하시구유, 요전 말한 일은 어떻게나 됐느냐구 알아보시구유, 난 잘 있으나 흉년이 들어서 곤란이라구 쓰시구유.” 천보가 이렇게 사연을 부르는 대로 그는 받아 썼다. 요전 말하던 일이란 천보가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써주고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날 당번인 네 사람은 둘씩 가라서서 한 패는 윗말로 또 한 패는 아랫말로 갂 몽둥이를 짚고 나섰다. 수택이는 득만이라는 그의 집에서 넷째 집 떨어진, 벌써 이태째 중씨름에 광목을 탔다는 장정과 한 패가 되었다. 처음 그들은 윗말이었으나 다음 번에는 아랫말로 섞바뀐다. 순경패를 달래기에는 아직 이쁜 시각이었지마는 득만이는 장난삼아서 집집마다, “패 주―” 소리를 친다. 매일 한 번씩 구장은 순경패를 어떤 집에다 감춘다. 그래서 패를 맡은 집에서는 두 홰 닭이 울어야만 패를 내주도록 마련이었다. “어젯밤엔 꿈을 잘 꾸었으니까 어쩌문 오늘은 한 놈 앙겨들 상두 싶구먼서두.” 득만이가 작대기를 질질 끌면서 혼잣말처럼 한다. “한 놈 앙겨들다니?” “도적놈 말이죠. 한 놈만 붙들면 수가 나는 판이지요. 돈이 댓 냥씩 생기죠. 밤참에 막걸리가 한사발이니 배 뚜들겨가며 먹잖어유?” 하고 들었던 작대기로 삽짝 기둥을 뚜드리며 고함을 친다. “몽동이 가지구 왔으니 패 주―” 수택은 문득 어느 해 겨울 자기 집에서 도적을 잡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감하고 재치있게 도적을 잡은 그의 무용담(武勇談)은 헛되이 아버지의 격분을 샀을 뿐이었다. 장하다는 칭찬 대신에 지겟작대기로 아랫종아리를 얻어맞은 후 수택은 얼마를 두고 해석에 괴로웠었다. 그러나 오래 두고두고 생각할수록에 자기 아버지에게는 그만큼 위대한 일면이 생각되었다.이날 밤 수택은 뜻하지 아니한 것을 발견했다. 두번째는 아랫말 차례라 잠깐 몸을 녹였다가 득만이와 같이 또 나갔다. 별빛도 눈발에 애여서 촌보를 요량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그때 수택은, ‘만일 도적을 잡는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득만이는 돈 오십전과 막걸리 한사발을 위해서 그를 주재소에 넘길 것이다. 물론 자기가 오십전을 내고 술 한사발을 사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지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때리듯이 그만큼 이 득만이를 미워할 수가 있을까? 그런 자신은 역시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을 그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득만이의 뒤를 따라가려니까 득만이가, “필년 아버지, 야학당 구경하구 가세유―” 한다 “야학당?” “야,” “지금두 야학이 있어?” 수택은 실로 의외였다. 이 동리에 야학을 처음 개설한 것은 박 선생이었고 야학이 성황을 이룬 것도 역시 그가 이 동리에 머물러 있던 동안이었다. 그후 청년회는 동 소유가 되어 무슨 회나 공동판매 같은 데 쓰게 되었고 야학도 자취를 감춘 줄로만 그는 생각하고 있는 터이었다. 여름방학이면 그도 야학 선생의 한 사람이었었다. “전엔 청년회를 빌려서 하다가 지금은 못 쓰게 하니까 겨울 동안만 남의 집 사랑방을 빌려서 한대유.” “그래, 선생은 누구구?” “김선달 집 둘째아들이지유.” “걔가!” 그는 놀랐다. 김 선달 둘째 아들이라면 작년에 농업학교를 다니다가 학비 관계로 이 학년에서 퇴학하고 왔다는 빈혈증인 왜소한 소년이었다. 교실이란 두 칸 장방이었다. 아랫목으로 칠이 다 벗겨진 칠판이 걸렸고 그래도 명색의 난로까지 놓였다. 한가운데를 한 줄 비워놓고 사십 명이나 되는 조무래기들이 혹은 쓰고 혹은 책을 보고 있다. 칠판 한복판에 칸이 막힌 것을 보면 두 반인 것이 분명했다. 한쪽 칠판에는 1‧2‧3‧4가 씌어 있고 딴쪽에는 가감 문제가 네 개 붙었다. 수택은 거의 이십 분 동안이나 김 소년의 교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소년의 교수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쓰고 책을 보고 하는학생들을 구경한 것도 아니다. 석유 궤짝에 대패질을 해서 먹칠을 한 칠판과 그 앞에서 선 빈혈증의 소년, 그리고 한 자라도 더 눈여겨두려고 늘어앉은 어린 아이들―이것을 한 번 논 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수택은 이 초라한 교실에서 이십 년 가까운 옛날을 연상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십 년 전 그대로였다. 칠판도, 사람도, 아이들도, 변한 것은 오직 자기뿐이다. 그때의 그 정열을 잃었고, 그만큼 약해졌고 공리적으로 변한 자기가 있을 뿐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과 배우는 사람의 생각도, 이십 년 전 그때와 추호도 다른 게 없을 게며 또 달라질 수도 없을 것이었다. 한 자라도 더, 그리고 잘 가르치자, 한자라도 더, 그리고 또 빨리 배우자―이 진리에 연대가 하관이며 시대 변천이 하관이랴! 오직 거기에는 배우려는 저열과 가르치려는 정열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수택 등이 이려서 심심파적으로 한 ‘교육사업’이 그후 그들의 실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던가를 이십 년 후 지금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집금도 수택은 그때의 야학생들에게서 몇 버너이나 이런 말을 들어오던 터이었다. “참, 그때 그나마 안 배웠더라면 지금쯤은 얘기책 한 권 못 볼 뻔했어유. 그때 중간에서 그만둔 사람들은 지금두 앉으면 한을 하는데유.” 지금 생각해도 좋은 일을 했다 싶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 누가 그런 생각을 하랴 했었다. 첫째 그 자신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터였었다. 그후로는 김 소년과 자주 만났다. 석유만은 아이들이 매달 삼전씩 보태서 사나, 분필과 기타는 김 소년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만은 자기가 떠안았다. 가르치고 싶은 정열에서가 아니라 그런 용기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대한 서글픈 동정에서였다. “그밖에라두 뭣이구 군색한 게 있거든 와 말을 하렴. 큰돈 드는 게야 낸들 어쩔 도리가 없지만…” “뭘요, 기름하구 백분만 있으면 겨울은 나유. 나무는 저희들이 날마다 삭정이를 한개피씩 들구 오니까요. 그보다두 아이들이 통 굶어서요―하루 죽 한 끼두 못 먹는 아이들이 파다한걸요. 뭐. 선생님 댁 바루 옆집 정 서방네 아이들도 요샌 통 굶구 다니나 봐요.” 김 소년은 이런 말을 하며 소년답지도 않게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정 서방 집이란 늦은 가을에 닭 두마리를 살쾡이한테 죽이고 닭국을 가져오던 바로 그의 옆집이었다. 그 송아지처럼 위하던 닭을 두 마리나잡아죽인 살쾡이를 못 잡아서 겨우내 애를 박박 쓰는 심정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김 소년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마음에 사무쳤다. 뻔히 굶으면서도 여전히 책보를 끼고 늦도록 그 찬 방바닥에 앉아서 한 자라도 더 배우겠노라고 눈이 발개서 덤비는 정상이 딱하다 못해서 되려 밉기까지 했다. ‘그걸 배우면 뭐 그리 잘된다고 그렇게까지 들 하는 겐고?…’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 가상한 닭을 얻어먹고도 시치미를 떼였나보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수택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정 서방을 불러서 쌀 한 말을 퍼주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아요… 인저 낼부턴 구제 공사가 시작이 되니까 벌면 팔아먹을 걸요.” 정 서방이 굳이 사양하는 것을 수택은, “사양두 두 번 이상 하면 변덕이라우. 받어두슈. 그리구 그놈의 살쾡이 잡을 궁리나 차리시구려.” 이렇게 웃음엣말을 해서 말문을 막는다는 것이 정 서방의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다. 그는 살쾡이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이를 북 갈며, “염려 마시유. 내 어떻게 하든지 그놈의 살쾡이를 살려둘 줄 아시유…한 마리만 그랬어두 내 참아요. 저두 오죽 먹구 싶어야 초가을부터 눈독을 들였겠어유. 허지만… 안 되지유. 제 목숨에 못 죽을걸유! 못 죽지!” ―수택은 여러 친구들로부터 그의 소설은 언제나 뼈가 너무 앙상하니 드러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결점이라는 평을 들어온 터라 그는 이번 장편에서만은 동리에서 생긴 이런 삽화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다가 살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6 == 봄비치고는 철이 좀 이른 것 같아서 또다시 으르르 얼어붙으면 보리마저 바닥 다 본다고 밤새도록 걱정들을 했던 것이 다행히 비가 개이면서 그대로 날이 확 풀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어디서고 종달새의 소리가 들려오기나 할 것처럼 다정한 맛이 느껴진다. “이대로만 간다면 보리는 먹겠군.” 동리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가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든 세대가 바뀌든간에 벼가 잘되고 보리가 얼어죽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니거나 그런 것도 그들에게는 인연이 없는이야기다. 오직 배불리 먹고 추운 때는 따뜻하게 더운 때는 시원하게 입으면 그만인 것이다. 양지바른 밭둑에 냉이잎이 파아랗게 돋아나고 솜옷 입은 등떠리에 소몰소몰 땀이 솟기 시작할 때는 춘경(春耕)준비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겨우내 외양간에서만 웅숭그리고 앉았다 섰다 우기우기 반추(反芻)만을 일삼던 소가 마당으로 끌리어 나간다. 농부들은 몽당싸리비를 들고 겨울 털빛이 변해보이도록 쌓인 소 등의 먼지를 쓰윽쓰윽 쓸어준다. 그러면 소란 놈은 생기가 난다는 듯이 꼬리로 제 엉덩판을 치며 혀끝으로 콧구멍을 쓱쓱 핥아낸다. 흙을 파제키는 닭의 발도 한창 바쁘고 흰둥이란 놈이 번듯이 누워서 양지받이를 하던 울타리 밑 풍경도 한결 한가로워 보인다. 이런 즈음이면 반드시 앞집에고 뒷집에서, “꼬댁 꼬댁 꼬댁댁…” 하고 알 낳이하는 암탉의 환성이 나른한 춘곤(春困)을 깨뜨려준다. “봄이군!” 하고 수택이도 거의 다 끝나가는 소설을 쓰는 마음도 바빠진다. 이제 한 삼사십 매만 더 쓰면 손을 떼겄건마 그동안이 더없이 안타까웠다. “나도 빨리 논길이두 하구 김장밭두 부치구. 밭이랑도 세워놔야지!” 그는 제법 의젓한 농군처럼 이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수택에게는 이 봄이 더없이 즐거웠다. 일평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하는 기쁨으로 봄철이 마치 그 무슨 절대의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은근히 기다려졌던 것이다. 몸이 우둔할만큼 껴입었던 내복이며, 솜바지저고리를 훌훌 벗어 내던지고 사랑하는 처녀의 손길처럼 포근한 양광(陽光)의 애무를 받아가며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가 감추어진 흙을 척척 갈아붙이는 기쁨, 삼십 년간 가죽에 싸여져서 흙과 접촉해보지 못하던 맨발로 징검징검 고랑을 타넘으며 씨를 뿌리는 행복―아런 것을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아니 일생의 절반을 돌 위에서 살아온 이 도시의 청년은 춘경(春耕)이라는 두 글자에서만도 형언치 못하는 매력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 인간층이 싫건 좋건간에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운명지어진 사람들에게 즐기어 사용하는‘노동의 신성’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었고, 일찍이 그가 품고 있던 도시생활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된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농터가 아니요. 자기 손으로 가꾼 곡식이 아니건만 누우렇게 익은 곡식을 보고는 푸근해하는심정과도 비슷한 그런 무조건의 기쁨이었고 환희였다. 이러한 그의 기쁨은 두푼 정방형의 좁은 칸살이 빽빽하니 들어박힌 원고지에서 해방되던 날 그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저녁에 정 서방과 일을 맞추어놓고 돌아와서도 그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어렸을 때의 섣달 그믐날 밤과도 같은 흥분이었다. 무한한 행복이 그대로 쏟아질 아침을 기다리는 초조다. “여보. 당신두 우리 같이 나갑시다. 나는 갈아붙이고 다아신은 흙을 고르고 나는 씨를 뿌리면 당신은 덮고…” 그는 마치 사랑하는 시구(詩句)아 외듯이 이렇게 말하고는, “필년아, 너두 낼 아빠하구 엄마 따라서 씨부리러 간다구?” 필년이는 바느질을 한다고 꿰매는 시늉을 하던 손을 쉬고 빠안히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쪼꼬레트 사줌 가지.” “쪼코레트?” “응.” “허, 농군의 딸 입에 쪼꼬렛이 당한 개냐. 엿 사주지, 엿. 깨엿 말야, 응.” “나 엿.” 자는 줄만 알았던 상현이란 놈도 발딱 일어났다. 수택 부처는 어린것들이 잠이 든 후에도 늦도록 생활설계를 했다. 액속대로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선불해준다면 사백원의 모개돈이 들어온다. 거기에 정편을 쓰는 여가에 마련한 단편 두 편과 편지 형식으로 된 잡문이 한 편, 무두 합치면 그럭저럭 오백원은 될 것이었다. 그 오백원으로 마땅한 것이 나면 논을 서너 마지기 사든가 밭을 몇뙈기 사기로 했다. “참. 내 벌써부터 이야기한다면서…” 그의 처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저기요, 우리 장 말이요, 양복장하구 이불장 말야, 팔아버릴까?” “건, 왜 갑자기, 누구 소설대로 다 팔아가지구 서울루 달아나려우?” “그럴 용기나 있다면 오죽 좋겠수.” 하며 아내는 웃는다. 수택은 언제나 자기 처의 웃는 입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희미한 불 속에서 그 흰 이를 내다보이며 나긋이 웃고 보니 더한층 아름다웠다. “당신은 웃으며 참 이뻐.”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하고 나서.“왜 누가 사잡디까?” “심구영 씨 소실이 여간 탐을 내잖어요. 접때 일부러 양복장을 살랴고 읍에까지 갔더라나. 그랬더니 모두 너절해서 그냥 왔대. 두 개 몰아서 일백오십원 주겠다니 팔아버릴까?” “걸 팔아치우면…” 그는 일백오십원이란 말에 구미도 당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사 년 전에 두 개에 팔십원을 준 것이었다.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난 이렇겠으믄 좋겠어요. 기왕 시골 와서 농사질랴믄 정말 농군처럼 그런 세간 다 팔아치우구, 이 집두 이삼십원은 다 받겠다니 남한테 넘기군 아버님네하구 합소를 하지. 골방을 우리가 쓰구 당신은 사랑 윗방을 내라구 해서 쓰시구려. 말만 세간이지 뭐 들여놀 데가 있나, 봉당에다 놔두는 거, 게 발에 편자지.” 아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이제 농사철 접어들었으니 어느 하가에 책상 파에 앉아보랴 싶기도 했고 집이구 뭐고 다 쓸어 팔면 그럭저럭 팔구백원 돈이 되는 셈이니 그것으로 땅뙈기나 마련하는 것이 상책일 것도 같았다. “그까짓 거 테이블이구 의자구 다 쓸어가라지. 농구 녀석이 회전의 잔 있어 뭐하겠수.” “그렇잖어두 심구영 씨 소설은 찻종하며 다 탐을 낸다우! 심씨가 지금첩한테 홀딱 반해서 그러니까 그런 동안에 살림이라두 장만하잔 수작이지 뭐유.” 심구영이란 포목, 잡화로 이 동리서 돈푼이나 모은 오십객이었다. 그런 거추장스런 세간을 처리하는 데 수택이는 물론 이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하기는 하나 그래도 여자 마음을 생각해서 찬장이니 얌전한 그릇 같은 것은 남기고 거추장스러운 것만을 넘겨주기로 하고 잠을 든 것은 자정도 훨씬 지나서다. 그러나 눈을 붙인 지 얼마가 못 돼서 그는 또 깨었다. “필년 아버지, 주무셔유.” 하고 정 서방이 울타리 밖에서 소리를 친다. 수택은 몸재게 허리 골춤을 움켜쥔 채 뛰어나갔다. 며칠 달인 뜨느라고 동편 하늘이 막 훤하다. “정 서방요?” “야. 이거 주무시는 줄 알았더면 안 올 걸 그랬어유.” “웬걸요. 아직―” 하며 삽짝을 열고 나가려니까,“이거 좀 보셔유! 이눔 좀.” 하고 뭣인지 시커먼 놈을 눈앞에다 풀쑥 다민다. 수택은 덧없이 주춤하고 물러섰다. “게 뭐요?” “뭔가 봅쇼! 흐흐흐흐.” 하고 좋아서 웃는다. “거, 괭이가?” “흐흐흐흐… 고양이요? 천만에요, 아주 어젓한 살쾡이올씨다유!” 하면서 살쾡이를 다시 한번 번쩍 들고 아래위를 쓱 훑어보며, “이눔! 네가 내 닭을 잡아죽이구 무사할 줄 알았드냐! 이눔, 흐흐흐흐…” 허들겁스럽게 한참을 웃어붙이고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덜컥합디다유! 그래 잠결에두 뛰어나와 봤더니, 아, 이런 놈 좀 봐유, 모가지가 요렇게 덫에다 치어가지곤 ‘캐캐’ 하겠지유! 그래, ‘네 요놈, 잘 만났구나.’하군 지겟작대기루 해골을 한 번 후려갈겼더니 그저 외마디소릴 ‘캥―’하구질르곤 발버둥을 칩디다유! 그래…” 정 서방은 이렇게 한참이나 늘어놓고야, “주무시는데 이거 참…” 하고는 살쾡이를 추썩대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러구러 잠이 든 것은 첫닭이 울고도 한참이나 있어서였으나 깬 때는 몸도 그리무겁지 않았다. 여자들이 생명같이 여기는 방 세간을 자진해서 처리해버린 일이며 정 서방이 겨우내 치를 떨며 통분해하던 살괭이한테 복수랄 한 일이며 그에게는 다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쾌한 일은 일평생 처음으로 씨를 뿌리러 가는 그날 아침은 또한 금년 저어들고서는 가장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정 서방은 새벽같이 달려왔다. 그는 그래도 이야기가 다 끝이 못 났는지 간밤의 이야기를 밥을 먹으면서도 하고 하고 한다. “그까놈의 닭 몇 마리가 아껍다느니보다도 그놈의 소위가 괘씸하단 말이거든요!” “하여튼 분풀이는 잘했쇠다. 그깐 살쾡이란 놈한테까지 분풀일 못한다면 억울해 살겠소.” 수택이도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수택은 집으로 내려가서 상태도 끌고 왔다.상태는 요새 갑자기 고향을 뜰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도회 생활의 환멸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달래도 보았고 을러도 보았다. 그러나 농촌에서 생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은 그보다도 상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태는 고향에 돌아온 수택이를 은근히 비웃고 있는 눈치다. 그는 다시 그 길로 해서 구장 집에 가서 소를 얻어 몰고 큰집에 들러서 쟁기도 소 등에 얹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벌써 며칠째 몸살도 누워 있는 터였다. 웬만한 병에는 꾹하니 드러누워 있지 못하는 김 영감의 성미에 더욱이 오늘은 수택이가 처음 씨뿌리는 날이고 보니 웬만만 하면 툭툭 털고 일어서련만, “정 서방더러 잘 알아서 하라구 그래라.” 이불을 벗기지도 않고 한마디 할 뿐이다. “네.” 수택은 병들어 누운 아버지를 본 일이 없던 터라 우울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않으리라고 박 주부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달이도록 상태한테 일러만 두고 부리나케 동리 뒤 개울의 징검다리를 뛰어 건넜다. 상태가 박 주부를 데리고 진맥을 하려 했을 때 김 영감은 웬일인지, “아니다. 약이 무슨 약. 내가 어디 몸이 아퍼 그런다더냐!”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었다. 의원 뿐이 아니었다. 손자고 며느리고 아내고 일체 방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안으로 문을 걸어잠그고는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 온 집안이 겁을 집어먹고 수선을 피우니까. “왜 이렇게 수선들을 대는냐. 잠 좀 자게 내버려둬라.” 하고 고함을 치는 것이다. 문 밖에서 서성대던 가족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 영감은 자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거동을 못할 만큼 병이 난 것도 아니었다. 삼사 일 동안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 오직 매적지근할 뿐이었다. 아무도 김 영감의 병 원인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해동이 되면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간다. 동구를 빠져서 대장간 앞을 왼쪽으로 꼬부라지면 천변으로 나선다. 개울을 건너서면 조그만 아카시아 숲이 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모르게 이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에는 잔솔 여남은 개가 섰고 사람 하나 숨겨줄 만한 반송도 한 개 섰다.―이 반송 밑이 그가 매일시간을 보내는 자리였다. 먼저 그는 숲속에 들어서면 이 반송 밑으로 온다. 대개는 반송 밑에 두 무릎을 세우고 무릎을 끌어안아서 깍지를 낀다. 그러고는 우두머니―무엇을 보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조는가 하면 조는 것도 아닌 자세로 언제까지나 한 곳만 내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얼굴은 지극히도 행복스럽던 옛 꿈을 더듬는 것같이도 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그는 최후를 장식하는 자기만의 추억에 잠겨 있는 것같이도 보인다. 웃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니다. 격하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의 평온을 얻은 사람의 표정도 아닌―그런 때가 많았다. 그는 오직 앉았을 따름이요 앞을 내다볼 뿐이다. 그는 별로 동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꺼리었다. 어쩌다 누가 그리 지나다가, “어째 치운데 거 와 그러구 계시유?” 하고 물을라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누구 말이 이 숲속이 집터가 좋대서 보고 있는 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기 싫으니까 그는 자기가 거기와 있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아카시아 숲에서 두 다랑이 건너에 이미 완전히 한 장의 휴지가 되어버린 그의 사랑하던 땅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반생―아니 육십 평생을 완전히 바친 논과 밭―그러나 그것은 이미 남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소유권이 이전된 데만 그치지 않고 소작권까지도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저 논다랑이와 뽕나무가 둘러선 밭은 확실히 내 땅이었다. 그것은 이 동리 사람들이 다 잘 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나는 손을 대어도 안 되고 씨를 뿌려도 안 된다…황차, 이 땅에 심은 곡식이랴…” 이렇게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김 영감이었다. 더욱이 이번 비로 해서 논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니 괴어 있었다. 작년 같은 가뭄에도 편작은 된 놈이었다. 꺼뭇꺼뭇한 땅, 홍건한 논물, 가래를 지르기만 해도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 바닥 흙이 철컥철컥 나자빠질 것 같다.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아랫종아리에 흙과 물이 뛸 때의 그 감촉, 띄엄띄엄 소가 발을 드놓을 때마다 철벅거리는 물소리…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늙은 이 농부에게는 논과 밭 가는 사람의 팔자는 그대로 신선이었다. 이런 농부에게 있어서는 흙―땅은 그대로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그것은그대로 종교였다. 이 늙은 농부의 손으로부터 땅은 멀리 떠나갔고 인저는 자기 땅이던 이 기름진 흙덩이를 만지는 자유까지도 박탈된 것이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특권은 오직 자기 땅에 자기 아닌 딴사람이 씨를 뿌리고 김매이를 하고 이듬을 매고 물을 대고 대궁이 척척 휘도록 여문 벼를 베어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볼 수만은 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었다. 김 영감은 마침 오늘 신작인(新作人)인 춘성네가 논갈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내 땅에 딴놈이 들어선 꼴은 안 보리라!’ 김 영감이 이렇게 결심을 한 데는 조그마한 부자연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 영감은 역시 흙의 아들이었다. 아니 그는 비열한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제 땅을 남의 쟁기가 들어가 파제키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농부에게는 참을 수 없는 그 굴욕도 며칠을 굶어가며 이를 악문 그 결심도 멀리 풍기어 오는 구수한 흙내만은 어쩔 도리도 없었다. 흙에서 받는 굴욕보다도 흙에서 풍기는 그 향훈이 몇 백 배 그에게는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 ―흙의 완전한 포로가 되어 있는 이 늙은 농부는 모든 굴욕감을 물리치고 오직 흙내를 더듬어 헌청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금 아카시아 숲속에 나타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든 그에게도 햇살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는 언제나 앉는 그 자리에 등을 소나무에 기대고 벌을 향하고 앉았다. 상방 십리라는 샌골 벌은 농부들로 찼다. 소 모는 소리와 방울소리와 철벅이는 물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들려온다. 겨우 알아볼 만한 위치에 수택이네도 보였다. 수택이는 머리에다 수건을 질끈 동이고 쟁기질을 하고 있고 정 서방은 밭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밭머리에는 자기 아내가 상현이 남매를 데리고 놀고 있고 서울 며느리는 얼굴도 잘 안 보일 만큼 수건을 푹 내려쓰고 고무래로 흙덩이를 바수고 있었다. 수택의 처는 그래도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수택의 쟁기질에는 소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가끔 우두머니 서서 쟁기가 바로 대어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억지로 그린 자유화(自由畵)와도 같은 것이다. 쟁기가 빗가면 정 서방이 담뱃대를 문채로 이러구저러구 가르치는 모양이다. 바로 그의 앞에는 일찍이 자기의 땅이던 논에 춘성네 부자가 신이 나서 거름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지금 거기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뽐내느라고 더 떠들고 퉁탕거리는 것만 같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춘성네 부자가 더없이 얄미웠다. 미운 대로 한다면 당장 뛰어들어 가서 아비와 자식을 논구럭에다 거꾸로 처박고 짓밟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흥, 되잖은 놈들! 그놈들 아주 제 땅이나 되는 상싶은가베! 아니꼽살스런 놈들 같으니루!” 무엇이 되잖은지 무엇이 아니꼬운지 모른다. 그러나 김 영감한테는 그렇게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수택이가 뭐라고인지 외마디소리를 쳤다. 영감은 깜짝 놀라서 그쪽을 건너다보았다. 소도 쟁기질꾼을 업수이 여기는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자국도 안 떼놓는다. 정 서방과 수택의 처는 옆에서 깔깔대고 있다. 정 서방이 쟁기를 내라고 그러는 모양이나 수택은 고집을 세고 소만 몰구친다. 겨우 소는 움직였다. 그러나 소는 또다시 딱 섰다. 쟁기는 쟁기대로 놀고 소는 소대로 가고 사람은 사람대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쟁기가 사람을 끌고 가는 형상이었다. 이런 꼴을 얼마동안 바라다보고만 있던 김 영감은 이상한 마음의 충동을 받아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기가 벌써 며칠째 변변히 먹지도 않고 누워 있던―그나마도 환갑이 지난 늙은이라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그는 벌써 병자도 아니요, 굶은 사람도 아니요, 늙은이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농부였다. 비열할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그는 허우단심 쫓아가서 아들의 손에서 쟁기를 뺏이들고는 신이 나서 흙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 봐라. 쟁기날을 이렇게 대고는 사람은 여기 서야지. 그래야만 소가 힘을 제대루 쓰지. 사람이 한쪽으루 기울어져 노면 소가 한쪽에만 힘을 써야잖는냐. 정 서방, 자넨 골을 치게. 얘, 아가. 고무랜 또 없느냐!” 지금의 그에게는 굴욕도 없었고 흙에 대한 원한도 없었다. 오직 기뻤고 즐거웠다. 육십 평생을 두고 한결같은 충성을 다해왔건만 또 한결같이 육십 년을 두고 모욕하고 혹사(酷使)해온 나머지 핏기 하나 없는 늙은 병든 육체만을 그에게 떠안긴 흙이건 마는 그 흙에 대해서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그는 지난 육십 평생에 땅을 치며 울기도 했었다. 원망도 해왔고 저주도 해왔다. 그 극진한 충성에 비해서 너무도 가혹한, 너무도 알아주지 않는 흙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격분도 느껴왔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에 넘쳐흐르고 있는 감정은 오직 흙에 대한 감사였다. 그는 그만큼 흙을 사랑했다. 아니 그만큼 그는 흙의 너무나 충실한 노예였다. == 7 == 한식(寒食)이 지난 이후의 농군들에게 있어서 된내기가 올 때까지의 팔구 개월 동안은 터진 모래 제방(堤防)을 막는 것과도 같이 눈코 뜰 사이 없는 그날그날을 보낸다. 봄보리밭에 호미질을 하기가 무섭게 논갈이에 이어 거름내기가 시작되고 연달아서 못자리를 붓는 한편 밭을 일구어야 하고 밭곡의 파종이 끝나기도 전에 벌모 내기가 시작된다. “박 서방, 낼 어디 일 마쳤지유?” 그들은 해만 지면 이렇게 일꾼 얻기에 바쁘다. 일꾼을 어어야 하고 일꾼을 얻어노면 이집 저집 다니며 쌀, 보리를 꾸어야 한다. 일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기쁜 날이니 하다 못해 북어 꽁댕이 하나라도 찢어놓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요 또 관습이다. 그들의 농사란 생나무 휘어잡기다. 억지 춘향으로 끌어내고 꾸어대고 휘어잡고―마치 아닌밤중에 물난리나 치르듯이 모심이를 끝내노면 또 딴쪽 일고가 터진다. 채소밭도 손질을 해야 하고 기장이나 수수밭도 매주어야 하고 논에 물도 끌어야 한다. 철맞추어 참외포고 심어야 하며, 밭골에 강남콩에 새새 묻어두어야 한다. 논둑의 그루콩은 누가 심어주며 엉터리로 끌어다댄 일꾼은 누가 앗아주나. 파 한 뿌리, 마늘 한 쪽까지도 자기 손으로 심어야 하고 매주어야 하고 가꾸어야 한다. 심지어 옥수수, 깨, 아주까리 같은 일용품까지도 제철에 손을 못 대면 알톨 같은 벼를 주고 바꾸어 들여야 한다. 이 무섭게 많은 일거리가 한 집에 하나 아니면 둘밖에 없는 농군의 손을 거쳐야 하는 터라 마치 손을 떼기도 전에 일꼬가 터져 마음만 바쁜 때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걷어 챙겨놓고 추운 삼동은 뜨끈하니 불을 때고 드러누리라.’이렇게만 단순히 생각해온 수택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봄을 지냈다. 물론 농촌생활이라고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것쯤은 생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 한 것은 사실이었다. 씨를 뿌리고 한두 번 매주고 그러고 걷어들이면… 그만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택 부처는 당해보고서야 알았다. 돈만 있으면 가지고 나가서 쌀도 사고 기름도 사고, 고기·파·마늘, 무엇이고 사오분이면 광주리에 담아들고 들어오던 도시 생활의 고마움을 그들은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그러나 자급자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촌에서는 그 허다한 생활품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손으로 시어야 했고, 가꾸어야 했고, 걷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걷어들인 그대로 먹는 것도 아니다. 말려야 했고 찧어야 했고 까불러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불리한 조건은 모든 일에 서투른 점이었다. 그만큼 애도 더 키었고 노력도 더 들었으며 시간도 더 요구되었다. 이렇듯 일에 치여서 경황이 없는 그들에게 또 한 가지 일이 덮쳐 있었던 것이었다. ―봄내 개량개량하던 김 영감이 모내기를 한 길로 그대로 싸매고 눕고 말았던 것이다. 수택 부처는 아침 저녁은 물론 논이나 밭에 나갔다가도 몇 차례씩 들어가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수택이네도 딴집 살림을 계획대로 걷어치우고 합소를 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교섭중이던 소살도 달포째 살리는 중이었고 고료도 반만은 손에 들어와 있었고 집이 예상 외로 일백구십원이나 평가가 되어 그의 수중에는 이럭저럭 팔백원 돈이 있던 터라 쓸 만큼 약도 써보기는 했으나 김 영감의 병은 시약(施藥)만으로 완치될 병은 아니었다. 김 영감은 생리적으로 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큰 병을 얻고 있었다. 그 사랑하던 땅에 대한 억제할 길 없는 미련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했고 괴롭게 했고 드디어 생리적으로까지 이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수택이는 김 영감이 눕는 그 길로 이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들의 시약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내 병은 약으로는 안 된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아들의 돈을 없애주는 것이 딱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었다. 또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지난 때 거의 정신은 못 차리면서도 김 영감은 논 구경을 간다고 온종일 애를 먹었다. “수택아, 자, 날 좀 일으켜라. 내 병엔 약보다도 그게 더 낫다. 구수한흙내. 퍼언한 들. 익어가는 보리…”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얘들아, 모싹이 어떻든? 자꾸 돌아봐라. 곡식이란 갓난애와 같으니라. 갓난앤 물기나 하지. 얼마 안 있어서 강충이가 생긴다. 고놈 참 귀신같이 파먹느라. 이번 맬땐 암모니알 푹 질러둬라, 응?” 하고 딴소리를 한다. 아픈 곳도 어딘지 통 집증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허리가 끊어진다고 소리를 지른다. 또 어떤 때는 팔다리가 쑤시어서 옆에서 보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못견디어한다. 그런가 하면 열이 바쩍 오르고 또 어쩌다 보면 전신이 얼음처럼 차다. “여기다, 여기! 아규규…” 이렇게 하소연을 하며 가리키는 곳은 분명히 허리다. 그러나 병자 자신 어디가 아픈지 적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밖에, 전신에 안 아픈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모양이었다. 육십 년간의 긴 노동에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그의 육체는 성한 데가 없이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강단으로 버티어왔다. 살려는 욕심과,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당장 일하지 않으면 조석 끼니가 간데 없다는 무서운 긴장으로 버티어온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오랜 동안의 긴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긴장이 일시에 확 풀려버린 것이다. 땅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갔고 작권까지도 잃어진 오늘날 긴장은 그 자신의 심신을 파괴시키는 이외에 다른 아무런 성능(性能)도 갖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수택은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의무적인 사랑이었다. 자식 된 자 마땅히 어버이를 공경해야 한다. ―이러한 도덕이 요구하는 극히 제한된 애정으로 김 여감을 사랑해온 것이었다. 이전― 그가 직업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되려 경멸해왔었다. 아니 그것은 경멸이라고 이름질 성질도 못되었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경멸이란 존경의 반동이니까. 그는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존경해보겠다고 생각한 일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농부의 아들 ― 양복을 입고 동경유학을 하고 이름이 신문에도 나고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르고(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기가 두더지처럼 일평생 흙만 파는 일개 무지한 농부의아들이라는 데 일종의 모욕까지 느끼어온 수택이었다. 양복때기만 입은 사람 앞이면 그저“네, 네”하고 굽실거리는 것은(김 영감 자신은 똥이 무서워 피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에도 수택은 그가 오직 무지한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자기의 위신이 깍이는 일이라 했었다. 남의 아버지처럼 책이나 보고 장죽이나 물고 앉아서 호령이나 하고 남을 보고도 “여보게, 여봐라!”하며, 호호 백발의 노인을 보고도 “자네, 어쩌구, 어쨌나?”하는 그런 아버지가 못 되고 일평생 흙만 파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할 아무런 의무도 그에게는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새파랗게 젊은 애들한테도 ‘허우’를 하고 또 그런 아이들한테서 반말지거리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는 자기 아버지를 그는 일종의 군더더기로까지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아니었다. 물론 다른 부자간들처럼 아기자기한 애정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적어도 자기 아버지가 자기의 위신을 해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은 깨닫고 있었다. 비록 땅은 팔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철학자였다. 그 자신과 같이 김 영감을 업수이 여겨온 모든 인가보다는 분명히 그는 위대했다. 오직 근면하고 오직 겸손하고, 그리고 오직 청렴한 일생에. 일년 동안에 십전 미만의 용돈을 쓰면서도 ‘거지〔乞人〕도갓집’이라는 별명을 일평생 면치 못했으리만큼, 거지들의 시중을 든 일이며 자기 물건을 훔치러 온 도적을 때렸다고 자기 아들을 사그리 내려 퍈 시설이며, 하루 밥 세 끼를 끓이는 이외의 재물을 탐하는 것은 욕심이라 하고 모든 채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런 모든 것은 지금 유식한 아들로 하여금 무식한 아버지를 재인식시키는 좋은 자료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지금 수택의 가슴속은 아버지에게 대한 새로운 감격으로 차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존경해온 그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도 일개 무식한 농부인 자기 아버지한테 감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구하자 했다. 그는 지금 일시적인 감격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 애지중지하는 삼십 평생에 처음 만지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팔백원의 ‘큰돈’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이름과 지위를 일시에 몽땅 잃어버린대도 조금도 사양치 않으리라 했다. 아버지의 ‘무지’는 자기의 ‘학문’보다도 몇십 배 아니 몇 백 내나 값이 있다는 것을 이 아들은 뒤늦게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아버지.”하고 그는 며칠을 두고 김 영감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 맘을 돌리시구 약도 좀 잡수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겠습니다.” “땅을 찾아?” 김 영감은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찾지요! 지금 제게 천원 돈이 있잖습니까. 인저 신문사에서 또 돈이 옵니다. 지금 사기로 매마지기에 일백삼사십원이면 되니까, 우선 이 달 안으로 열 마지기만 찾지요.” “그 사람이 큰 부자라는데 그 땅을 팔까?” 김 영감의 말에는 금시로 생기가 났다. “판답니다!” 수택은 거짓말을 했다. “되판대?” “매평에 오 전씩만 남겨주면 지금이라두 판답니다!” “오전씩 이오 십―한 마지기에 십원이로구나! 얘,사자, 그럼! 위선 아카시아 숲 앞의 여덟 마지기라두 찾자!” “그러구 나머진 필년 어미가 저 집에 가서 말을 좀 해본다구 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또 그만한 여유가 있는 집도 못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안위시키기 위해서는 이만 거짓말쯤은 주저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영감은, “필년 어미가 말이냐?” 하고 다지더니만, “에이끼, 못생긴 자식! 요대루 굶어죽으면 죽었지 사둔한테 손을 내밀어!”하고는 그대루 홱 돌아누워버리는 것이다. 수택은 인사하다가 뺨맞은 격이었다. 그래서 터진 모래둑을 막듯이 변명을 했다. 처는 그렇게 말하나 자기는 단연코 거절을 했다. 이렇게 꾸며대는 도리밖에 없었다. “잘했다.” 얼마 후에는 김 영감도 기분을 돌리었다. 만일 그날 밤, 여기에서 이야기를 막음하고 수택이가 쓰러져 자기만 했었더라면 혹 어땠을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감격에 잠긴 아들은 어쩐지 그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약을 잘 잡수셔서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그래야만 약값도 덜 든다. 약값을 아끼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이렇게 약을 쓰도록 강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김 영감은 자기 아들의 이렇듯 알뜰한 애정을 칼로 치는 듯이 거부했던 것이었다. 센터 벌의 벼가 한참 어울리고 보리가 구수한 내를 풍기며 익어가던 어느 날 밤, 김 영감은 고달프던 일생애를 청산하기 위해서 쓴 잔〔盃〕을 들었던 것이었다. 써도써도 낫지 않는 병에 그 소중한 돈을 자꾸 퍼넣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이 단념을 해서 약을 쓰는 한 푼이라도 수택으로 하여금 땅을 찾는 데 보태게 하리라―이렇게 생각을 하고 김 영감은 자진해서 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가 고달프던 생을 청산한 데 쓰여진 약은 양잿물이었다. 그것은 이른 봄, 그가 자리에 눕던 바로 그날 심구영네 상점에서 사다 두었던 것이었다. 수택이가 약그릇을 발견한 것은 시간도 모르는 밤중이었다. 그는 김영감의 고민하는 소리에 눈이 뜨여 아랫방으로 뛰어내려갔다. 원근 다량이었다. 몇 시간 후에는 혀가 굳었고 생선 내장 썩은 물 같은 불그레한 피가 입으로 철철 흘러넘쳤다. 그는 몇 번이나 아들과 손짓을 해서 불러놓고는 말도 한마디 하지도 못한 채 숨을 걷고 말았다. “찾어―땅―” 정신은 멀쩡한 모양이다. 그는 혀가 헤어져서 말은 못하나 연방 손으로 머리맡의 궤짝을 가리키었다. ‘휴지’가 들어 있는 오동나무로 짠 궤짝이었다. 전화를 해서 공의가 달려온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그러나 그때 김영감은 이미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의는 손을 댈 여지도 없다고 했다. 김 영감이 숨을 거둔 것은 그날 밤중이다. 꼭 돌 만이었다. == 8 == 모든 것이 꿈이었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어떻게 산에서 돌아왔는지 수택에게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장례가 지나고도 십여 일 간은 집안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꿈 같다. 꿈이었던가 하고 나면 꿈이 아니다. 수택은 울음소리를 낸다고 집안 식구를 주장질하면서 자기도 울었다. 그 슬픔은 아버지를 생각하는아들의 슬픔이기도 했지마는 ‘학문’을 조상하는 ‘무지’의 슬픔이기도 했다. ‘무지’를 경멸해온 ‘학문’의 참회였다. 수택은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이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조카 상태만이 신푸장하게 매일 들에 나갔다. 상태는 아직도 농촌 탈출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되려 최근에 와서 더욱 그런 결심을 굳게 한 모양이었다. “너두 생각이 없는 아이지, 할아버지나 생존해 계시다면 또 물라도 집안이 이꼴이 되는데 너만 쓱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된단 말이냐?” 이렇게 사정을 하듯이 하는 수택의 말에, “그럼 집에만 엎드려 있으면 뭘해유! 작은아버진 몰르시니까 농사 농사 하시지만 제 땅 가지구 농살 지어두 안 되는게 남의 땅 소작을 해서 우리 십여 명 식구가 먹구 살어유?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수택이도 더 할말이 없었다. 간다면 어디고 보내리라 했다. 나는 도시에서 기어들었으니까 너는 한번 도시로 나가보아라 했다. 그래서 네가 다시 농촌으로 기어들든지 내가 다시 도시로 기어나가든지 사람은 체험을 해보아야 안다했다. “그러나 난 이 동리에서 단 한 발자욱 움찍두 않을 게다!” 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땅을 찾는 것이 내 일생의 사명이다. 매 평에 일원은 고사하고 오원이 간다더라도 찾으리라 했다. 아버지는 내게 그것을 당부하고 가셨다. 믿고 가셨다.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도 바치셨다. 이 아버지가 어디가 무식하냐! 했다. ‘어디로 보나 소설줄이나 끼적이는 자식한테 멸시를 받을 존재냐!’ 수택은 벽에 걸릴 노출(露出)도 분명치 못한 김 영감의 사진을 쳐다보며 이렇게 마음에 부르짖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방안에 엎드려 있는 동안에 수택은 금후의 방침을 딱 세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장만했던 땅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 시가(時價)로 약 삼천원어치다. 지금그의 수중에는 약 팔백원의 현금이 있었다. 신문사의 고료가 마저 왔었고 장례에는 이백원 돈도 다 못 들었다. 그러나 그중 약 반은 부의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팔백원이나마 살리리라 했다. 그는 먼저 현재 이 집을 조그만 집과 바꾸기로 했다. 장터 한복판에 이렇게 거추장스런 집을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제 지단이 끼어 있으니만큼 육칠백원 시가는 되었다. 이것으로 구석진 집을 산다면사오백원은 떨어졌다. 일천삼백원이면 우선 아카시아 숲 앞 여덟 마지기 값은 된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그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이야기가 그의 계획대로 아물어지자 그는 심구영을 찾았다. N면으로 통하는 신작로가 그의 바로 문전을 기점(起點)으로 하고 뚫릴 것이요 장터에서 면소로 들르는 길도 그의 집 앞을 지나갈 계획이고 보니 현재 심구영네 상점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자리가 날 것이다. 처음부터 잠자코 그의 계획을 듣고만 있던 심구영은, “참 장한 일이시오! 훌륭한 생각이시오!” 이렇게 찬성을 해주었다. “내 처지가 이렇게 되어 내가 자진해서 청하는 게니만큼 정당한 값을 달라는 것두 아닙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셔서 편의만 좀 보아주십시오.” 수택이가 말한 값은 칠백원이었다. “긴상두 잘 아시겠지만 그 자리가 그만 값은 됩니다. 첫째 제 터전이 삼백 평이나 되구 집이 그만하겠다 터두 좋지요. 그 값에 내맡아드리리다…” 거짓말처럼 이야기는 순조로이 진행이 되었다. 그럴밖에 없었다. 심구영은 영리(營利)에 눈이 밝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가다라하상이 그 논을 되판답디까?” “건 아직 못 알아봤습니다. 허지만 내 심경을 잘 이야기하구 한번 졸라보렵니다.” “글쎄, 그 사람이 놓을까? 땅이 원근 좋아노니까!” 이렇게 말말끝에 읍내 새 지주의 면장과의 사이가 퍽 절친한 사이라는 말이 나서 그는 먼저 면장을 찾았다. 면장은 이전 철도국에도 다년간 있은 일이 있는 비교적 지식계급이었다. 성은 그는 처음 보는 경(慶)씨였다. 경 면장과는 일찍이 안면도 있는 터고 김 영감과도 자별한 사이였다. 이 동리서 김 영감을 존경할 사람도 오직 그뿐이었다. 그러니만큼 이야기는 훨씬 쉬웠다, 그도 역시 수택의 계획에 감동한 빛으로, “긴상 같은 청년이 우리 면에 자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턱도 없이 농촌들을 싫어해서 큰 탈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면에 한한 것이 아니고 우리 국가로 본대도 크게 찬동할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런 의기를 농촌 청년이 본받도록 해달라고 당부당부하며 신 지주한테 보내는 긴 편지도 써주었다.“기다하라상두 기꺼이 응할 겝니다. 값도 산 값으루 넘기도록 잘 말했습니다. 만일 안 된다면 내라두 가 드리리다. 내 말이면 못 떼겠지요. 나와는 전에 철도국에 있을 적부터의 친구인 터니까… 하여튼 긴상 같은 분이 우리 농촌 진흥 운동에 좋은 표본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이렇게 해서 며칠 수 수택은 심구영에게서 현금 칠백원을 받아쥐었다. 그러나 그가 현금을 받기 전에 그의 집은 심구영의 손을 거치어 벌써 제삼자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의 집 일대가 장차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그 자리에는 자동차부가 설치된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던 터였다. 칠백원은 며칠 새에 오백원의 새끼를 쳤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르는 수택은 심구영에게 그 호의를 눈물이 나게 치하를 했다. 사흘 후 수택은 착착 개커서 버들상자 속 깊이 간직해두었던 여름 양복을 꺼내 입었다. 만 일년 만에 입는 양복이었다. 읍에 가서 새 지주를 만나보려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신발에 손질을 하는 동안에 역시 양복을 입고 안마당 한가운데 넋잃은 사람처럼 서 있는 상태를 방안으로 불렀다. “너 언제 올지도 모르니 할아버지께 다녀가거라. 나두 가뵙겠다.” 이렇게 조카한테 말을 하고 자기도 일어서 제청으로 들어갔다. 절을 하는데 그대로 눈물이 좌르르 쏟아진다. 아버지가 한 달만 더 살아 계셨던들 싶었다. 여름 햇살은 아침부터 뜨겁다. 그는 모자를 든 채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로 나왔다. 자동차 정류소 앞에는 그의 가족이 벌써 죽 모여서 있었다. 상태가 기어코 서울로 가는 것이었다. 그의 수중에는 돈 백원이 들어 있다. 그 돈 백원이 없어져도 직업을 못 얻는 때는 두말없이 돌아온다는 조건부로 수택은 몇몇 친구한테 편지도 써주어 보내는 것이다. “그럼 잘 가 있다 오너라. 난 오늘 되돌아와야 할 게니까 떠나는 것 못 보겠다―” “네―” 하는데 상태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히 괸다, “부디 몸을 조심해!” 이렇게 다시 당부를 하고 자전차에 올랐다. 비탈길이요 면소 앞인 터라 길도 골라서 자전차 바퀴가 그지없이 여하게 돈다. 수택은 발에 힘을 부쩍 주어 페달을 밟았다. ==라이선스== {{PD-old-50}} 8f9i9u5r0freodh0j5ixbo8r9jzb16p 459713 459712 2026-09-17T14:49:50Z Aspere 5453 "[[흙의 노예]]" 문서를 보호했습니다: 빈번한 훼손 행위 ([편집=자동 인증된 사용자만 허용] (2026년 12월 17일 (목) 14:49 (UTC)에 만료) [이동=자동 인증된 사용자만 허용] (2026년 12월 17일 (목) 14:49 (UTC)에 만료)) 459712 wikitext text/x-wiki __NOTOC__ {{머리말 |제목 = 흙의 노예(奴隸) |저자 = [[저자:이무영|이무영]] |역자 = |부제 = 속(續) [[제1과 제1장]] |이전 = |다음 = |설명 = 출전: 『인문평론』 7호, 1940년 4월 }} == 1 == 산(生)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사는 사람의 생(生)을 의미하고 생활(生活)한다는 말은 그저 막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하면서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생(生)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수택이의 지금의 생은 이 후자(後者)에 속할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그는 남이 살아 있듯이 그저 막연히 살아왔던 것이다. 남이 살듯이 살아왔고 보니 남이 죽듯이 또 죽었어야 할 것이로되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그만큼 살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증좌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죽듯이 그런 모진 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수택 자신에게는 적이 미안한 일일지 모르나 지금까지의 그의 생에 대한 태도란 이런 정도에서 몇 걸음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도 하루에 밥 세 끼니를 얻기 위해서는 실로 피비린내나는 노력을 해왔다 할 것이다. 동경 유학 때는 실로 일곱 끼니의 때를 거르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었고 일금 오십원의 월급 봉투를 위해서는 여름 아침의 그 단잠도 희생을 해왔고 X광선을 비추면 월식하는 달처럼 일부분이 뿌예진 폐를 가지고도 한결같이 오년이란 긴 세월을 버티어왔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젊은 결기로서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을 모든 굴욕 앞에서도 인종(忍從)의 덕을 지켜왔으며 한 때의 찬거리를 사기 위해서 마포에서 광화문까지의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살아 있는 그 누구나가 사는 방법이요 또 살아나갈 방법이다. 좀더 잘산다―보다 더 값있게 산다. 좀더 깨끗하게 살고 보다 더 건실한 생활자가 된다―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한 구원한 이상처럼만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요 자기와 같은 범인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지난한 일이라 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직을 내던지고 농촌으로 기어든 동기가 어떤 것이었다든가, 그 의기(意氣)가 어느 정도의 것이었다든가 하는 것은 막론하고 타기만만한 자기 생(生)의 새로운 국면(局面)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수십통씩이나 누룩머리를 앓는 영예로운 직업을 한푼의 미련도 없이 내던진 데는 우선 경의를 표해둔다 하더라도농촌으로 돌아온 이후의 생(生)이 그대로 생활하는 사람의 ‘생’에 편입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도시를 떠난 후 4개월간의 농촌생활이란 그대로 도시생활의 연장이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형식이었다. 양복에,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살던 수택이가 머리에 밀짚모자를 얹고 고의 적삼에 고무신 짝을 끌고 살았다는 차이뿐이었다. 그의 생활 의지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었으며 막연한 것이었다. 생활 의지라기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기분이었다. 아니 그것은 도시 생활 시대라기보다도 한층 더 헐값으로 평가될 허영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시골사람들에게는 중등 이상이면 그대로 대학으로 통용이 된다)당당한 일류 신문기자가 농촌에 와서 땅을 파고, 지게를 지고 오줌장군을 져 나르며 거름을 친다―이렇게 보아주는 고향 사람들의 경이(驚異)에 홀로 만족하고 우월을 느끼는 허영―이것이 그의 생활 의지(生活意志)였다. “지금은 너희들과 이렇게 살지마는 그래도 너희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마는 나의 노동은 그것이 아니다. 같은 노동을 한다드라도 내가 하는 노동에는 더 값이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자기가 이런 우월감―허영에 들떠 있다고도 생각지는 않았다. 생각지는 않으면서도 역시 수택은 무의식중에 그런 허영에 지배되었다. 서투른 지게질을 할 때나 소를 몰고 갈 때나 동리 여편네들과 노인들이 자기를 비웃기 보다도 대견하게―장하게 보아주리라는 막연한 의식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배가 되었고 열칠팔세의 아이들이 수월하게 지고 일어나는 볏섬을 땅짐도 멋 시키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부끄러워했어야 할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교육받는 사람의 특징이기나 한 것처럼 수치는커녕 오히려 자랑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그 자신은 의식치 못하나마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 출신의 지게질이라도 한두 번 보면 족한 것이다. 그것이 늘 그렇게 신기할 것이 없을 것이며 대견할 것도 없고 장할 건덕지가 못 될 것이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별이 비치고 하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수택이의 지게질에 늘 그렇게 놀라기만 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건마는 수택에게는 그것이 섭섭했다. 물론 표명을 하는 것도 아니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인식해본 일이 없기는 했지마는 동리 사람들이 벌써 자기를 경이의 눈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히 생각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수택이는 서울 있는 몇몇 친구한테는 자기의 근황을 알려왔다. 자기의 일을 근심해 줄 우정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마는 그는 자기의 생활을 비교적 자세히 보고한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소풀을 베었다든가 오줌 장군을 자다가 깨빡을 쳤다든가 거적을 깔고 앉아서 밤을 새워 물꼬를 지켰다든가… 이런 이야기까지도 보고를 했든 것이다. 시굴생활을 보고하는 데는 물론 이런 사실을 뺄 수는 없다 치더라도 그런 편지를 쓰던 때의 그의 심리를 한 번 더 깊이 파볼 때. ‘나는 이렇게 초월했다. 나는 문화인 너희들이 불쌍히 여긴다…’ 이러한 의식이 그 어는 구석에든지 잠복해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에 족한 일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순수한 농촌생활은 추수기가 끝난 직후― 다시 말하면 그의 지게질과 서투른 낫질이 벌써 동리 사람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못 되게 된 때, 그리고 한여름 동안 밤잠을 못 자고 피땀을 흘린 총수확이 벼 넉 섬으로 보리 때까지 연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직면한 그 순간부터였다. ‘저것으로 삼동을 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수택은 몇 번이고 뜰팡에 포갬포갬 쌓아논 볏섬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년 보리가 나기까지에는 적어도 반년이나 있었다. 그 오륙 개월을 벼 넉 섬으로 산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그 벼 넉 섬으로 양식도 해야 하고 호세도 해야 하고 사람이 병이 나지 말란 법도 없고 보니 영신환 봉도 사게 될 게고 석유며 심지어 성냥 한 갑까지도 저 벼를 내야만 한다. 금년은 볏금이 좋아서 팔전이다. 이백 근 잡고 십육 원, 넉 섬을 다 낸댔자 육십원이다. 잡용으로 아무래도 한 섬은 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오십여원을 가지고 반년을 살아야 한다… 육칠은 사십이. 수택은 온종일 키질에 저녁술을 놓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진 아내를 내려다보며 이런 구구를 쳐본다. 어린것이 둘, 자기내외에 창문이 놈까지 넣으면 알톨 같은 다섯 식구다. 어린것 둘로 어른 한 몫을 친다 해도 네 식구에, 매인당 십원이다. 창문이의 바지저고리는 뭣으로 해주며 어린것들의 알궁둥이는 뭣으로 가려주어야 할 겐가. 그나 그뿐인가. 아내는 서울서 입던 찌꺽지를 꿰매 입는다 친대도 나만은 바지저고리 두어 벌은 가져야 삼동을 날 계다. 버선을 기워댈 도리가 없을 게니 양말짝이라도 사 신어야 이면이 옳잖은가…부지깽이도 살림값에 간다는 데 연모 하나 없이 어떻게 농가에서 부지를 하며 담배는 누가 사준다는가. 아직 식구가 다 죽지는 않았으니 친구고 아내 집으로 통신도 해야 할 건데 우표는 뭣으로사며 종잇장 봉투장은 뉘게서 갖다 쓰나… 이런 생각을 곰상곰상 하고 보니 자기의 농촌생활 설계가 얼마나 무정견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로맨틱한 것이었던가가 새삼스러이 돌아다보여지는 것이었다. 수택은 털퍽하니 문간에 앉아서 턱을 괴었다. 벌써 마고를 두 개째 태우고 저도 모르게 다시 불을 붙이다가 벌떡 일어난다. 테이블 서랍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다가 주먹구구로만 따지던 셈수를 일일이 적어가면서 다시 한번 계산을 한다. 그러나 석유, 성냥, 담배, 우표―이렇게 조목조목 적다 보니 주먹구구로 칠 때는 매인당 팔구원은 되든 것이 겨우 오 원 부리에서 조금 벗어난다. ‘장정 한 사람이 오원으로 반년을 살란다?’ 수택은 그것이 그 어떤 사람의 명령이기나 한 것처럼 저도 모르게 이렇게 분개했다. 꼭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한테 속은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 피워물고 꼬부리었다. 예산을 좀더 삭감해보잔 것이다. 담뱃값 일원 오십전이 일원으로 감해졌고. 석유 네 사발이 세 사발로, 통신비 삼십전이 십오전으로 이렇게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졸아붙였다. 그러나 이렇게 삭감해도 일인당 한 달 생활비가 일원 오십전이 못 된다. 아내는 요새 며칠째 앓는 소리가 버쩍 심하다. 열병처럼 호된 몸살을 닷새나 앓고 일어난 지가 불과 대엿새밖에 안 된다. 대엿새에 한 번씩은 반드시 눕는다. 그렇게 친다면 십오전짜리 몸살 약첩을 쓴대도 볏섬은 들어갈 게다…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수택은 계산하던 종잇장을 벅벅 찢고 일어났다. 벌써 십사오 년 전 일이었지마는 대수(代數)문제 하나를 두어 시간이나 풀다가 노트를 벅벅 찢고 일어나던 기억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그때는 이튿날 학교에 가서 선생이 일부러 문제를 잘못 냈다는 것을 알았었거니와 이 풀 수 없는 문제는 누가 잘못 낸 것인가 했다. 사람도 붕어처럼 물을 먹고 살기 전에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달은 지나치게 밝다. 아직 초저녁이건만 천 명 가까운 인간이 모여 사는 동리는 관 속처럼 괴괴하다. 동구 밖에 있는 물레방아 홈통에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칙칙칙 들려올 뿐 늦은 가을이란건만 다듬이 소리 한마디 안 들린다. 서글프기만 했다. 시적(詩的)이라고만 생각해온 농촌의 달밤이 이렇게 서글프기만 한 것인가 했다. 뽕나무 가지로 얽은 삽짝을 사뿐히 들어 자치고 돌아서려니까 뽑다 둔 채 만 텃밭 모솔기에서 누가 이쪽을바라보더니 말을 건넨다. “어디 가려나.” “누구요?” “나야. 용훈일세.” “아, 똥훈인가.” “망할 사람, 어른을 몰라보고.” 똥훈이란 용훈이의 별명이었다. 그는 수택이와 나이도 비슷했고 어렸을 적에는 사람학교에도 같이 다니었다. 부잣집 자식들 대개가 그렇듯이 용훈이도 이탠가 삼 년을 두고 낙제를 했다. 똥훈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배꼽까지나 수염이 내려온 한문 선생이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이태조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 “떡전꺼리 기름집 늙은이유!” 하고 호기있게 대답을 했다. 지금은 죽은 지도 오래지마는 기름집 영감의 이름이 이태주(李泰柱)였다. 용훈이는 마침 기름집에서 대여섯 집 어긋난 맞은편에 살았던 것이다. “에이. 똥 같은 녀석! 오늘부턴 용훈이라지 말고 똥훈이라고 그래라!” 똥훈이란 이렇게 생긴 별명이었다. 수택은 원근 어려서 고향을 떠났고 몇 해에 한 번씩 그나마 하루 아니면 이틀, 길대야 사흘, 이렇게 과객처럼 다녀간 터라 같이 주먹코를 씻던 어렸을 적 동무들과 농담 한 번 할 기회도 없이 삼십고개를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농도 걸고 우스운 소리도 하고 해서 어렸을 적의 동무를 여나못 찾았다. 똥훈이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똥훈이에게 대한 지식이란 천여 석 하던 재산이 재작년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반으로 줄었고 지난 일년 동안에 또다시 약 반은 축을 냈다는 것, 그 대부분은 읍에 드나드는 자동차비와 요리값으로 소비되었다는 것. 서울 다니는 자동차의 여차장을 첩으로 얻었다는 것, 그저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뭐,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옛날 똥훈이가 나이 삼십이 됐다고만 생각하면 틀림없지.” 역시 사립하교 시대의 동무로 지금은 신작로 가에 이발소를 내고 있는 종대가 이렇게 말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이태주’를 연상하고 속으로 혼자 웃었다. “어디 볼일이 있어 가나?” 용훈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묻는다. 아무것도 하는 일은 없으면서도국방복은 입었다. “아니, 왜?” “자네 좀 볼려구 왔던 길인데.” “날? 무슨 소관이 있나?” “별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오래간만이니 맥주나 한잔씩 나누자구…” “어디 내 술을 먹던가?” 수택은 좀 야박할 만큼 잡아뗀다. 거의 반년 가까이 도화를 그리우고 산 터다. 맥주란 말만 들어도 반갑기는 했으나 어떤 편이냐만 소위 여덟 달반처럼 어리무던한 용훈이의 술을 얻어먹었다는 소문도 나쁘려니와 그 자신 지금 이야기도 통치 않을 용훈이를 상대로 술을 마실 기분이 되어 있지 못했다. 자기 혼자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벼 넉 섬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 동안을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숙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그였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는 아버지가 나으리라 한 것이다. 나이는 그보다 어려도 농촌에서 자란 스물넷 된 조카도 책상물림인 자기보다는 좀더 이런 문제를 푸는 묘득을 알고 있으리라―이렇게 생각이 되어 용훈이한테는 후일을 다시 약속하도 중말 자기 원집으로 내려왔다. == 2 == 삽짝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사람이 얼른만 해도 지붕이 들썩이도록 짖어대던 흰둥이란 놈도 인저는 낯이 익었는지 ‘으응―’ 한마디 을러보고는 깍지광 옆 사랑 부엌으로 기어들어간다. 수택은 먼저 안을 뻐끔히 들여다보았다. 불은 희미하니 넉가래 같은 짚신짝이며 편리화 한 짝에 고무신 한 짝이 눈에 뛴다. 그는 다시 사랑으로 나왔으나 사랑에서도 역시 마실꾼이 와 있는 모양이다. 문구멍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려니 아랫말 정택수가 그의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방바닥에는 무슨 종이쪽지가 두세 창 펼쳐진 채 있고 그 종이 위에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산(算)가지가 널려 있다. 정택수는 손바닥 반만한 장돌뱅이 주판을 들고서 무엇인지 심을 맞추는 모양이다. 이야기가 중단이 됐는지 끝이 났는지 잠잠하다. 수택은 정택수가 돈놀이〔高利貸金〕를 해서 형세가 훨씬 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야기를 좀 엿들어볼까 하다가 궁금한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그의 어머니와 형수와 고모, 읍으로 출가했다가 바로 몇 달 전수택이가 고향에 돌아온 지 달포는 되었을 때 이 동리로 이사를 해온 맏누님 외에도 두붓집 과댁. 바로 사랑에 와 있는 정택수의 맏며느리 ― 이렇게 방안이 그득하게 모여앉었다. 다 흉허물없는 터였다. “어이쿠, 서울 양반 오시는군.” 언제나 너실대는 두붓집이 그 안반만한 엉덩판을 한쪽으로 옮기며 자리를 내준다. 정택수 며느리는 나이 사십이 가깝건만 아직 피둥피둥한 번화한 얼굴이 희미한 등잔불이라 그런지 더욱 훤해 보인다. 수택은 정택수 며느리가 열일곱 수택이가 열두 살때 혼인 말이 있던 여자다. 그는 시굴 내려와서 그런 말을 듣고야 알았지마는 그가 싫다고 내찼던 여자인지라 좀 겸연쩍어했으나 그쪽에서는 그런 것은 다 잊었다는 듯이 말도 걸고 또 늘 놀러도 왔다. 벌써 며느리까지 보았다는 의식이 그 여자로 하여금 그렇게 대범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거의 전부가 사십 이상의 여인들인지라 앞집 뒷집의 흉보기보다 사는 이야기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 모인 중에서는 그래도 정택수 며느리가 제일 나은 모양이었다. 그 무서운 가물에도 걷은 것이 이십여 석에 도지 들어온 것이 삼사십 석 되는 모양이었다. “자네네가 뭔 걱정인가. 올 같은 흉년에도 육십 석이나 됐는데―제년에는 벼 백이 실하잖었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가만히 쉬어본다. 그가 고향을 떠나기 전만해도 연사가 좋은 해면. 칠팔십 석은 무난한 그들이었다. 논 이십사오 두락에 가물 타는 논은 단 한 마지기가 없었다. 밭만 해도 사흘갈이가 실했었다. 언제나 잡곡이 십여석 들어쌓이는 호농(豪農)이었다. 그렇던 집안에 벼 열댓 섬―그나마도 그 태반은 볏값이 나지는 대로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나올밖에 없는 일이다. 수택이가 그런 사실을 안 것도 기실 얼마 안 된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모처럼 돌아온 자식에게서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자식을 붙들어두기 위해서 집안식구의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그에게 땅을 줄때도, “부모 자식 사이에도 심은 심대로 해야 하느니라. 더구나 이간 네 형이 장자니까 형은 나가 돌아다니드라도 역시 네 형 살림이거든. 장성한 조카가 있으니까 도지대로 해야 정오가 옳잖으냐.” 이렇게 마치 정말 집의 소유이기나 한 것처럼 푸근하게 말했던 것이다. 수택은 그래서 꼬박이 속았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그것도 아내가 어디서 듣고 와서 귀띔을 해준 것이다. 타작을 하던 바로 닷새 전인가 엿새 전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아는 터라. 물론 그런 내색은 하지도 않았다. 모르는 척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비밀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싶었다. 자기도 자기려니와 아버지도 그 무슨 타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싶었다. 그가 다시 사랑에 나간 때 정택수는 가고 없었다. 손님이 간 터라 남포불을 등잔불 처럼 낮추고 책상다리를 한 양쪽 무릎에 두 팔꿈치를 세우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조각(彫刻)처럼 앉아 있다. 담뱃대를 물기는 했으나 빠는 법도 없고 대꼬바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담뱃대를 물고 명상하는 늙은 농부의 궁상이었다. “헴!” 수택은 일부러 문구멍에서 두어 발짝 멀찌감치서 인기척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접니다.” “오, 너 내려왔느냐.” 아까의 궁상은 간데없이, “아이들은 자든?” “네.” 수택은 남포 심지를 훨씬 돋우고 오늘쯤은 무슨 이야기나 나옴직해서 윗목에 도사리고 앉았었다. “네. 네 형 있다는 데 편지 좀 해봤느냐?” “했더니 돌아왔습니다.” “허, 미친 자식이로군.” 그의 형 근택은 십 년래의 방랑아였다. 한때 전 동양을 풍미하던 사상에 휩쓸려들더니 십년 전에 홀연 집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교육도 별로 받은 것은 없으면서도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만은 충분히 얻고 있었다. 최근에는 만주 방면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나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의연 확실치 않았다. 상해가 중심이기는 한 모양이나 일년에 몇 번씩 오는 편지의 주소가 매번 변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상상할 수 있었다. 수택이는 어떻게든지 오늘만은 아버지의 숨김없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땅이라는 것이 도시 대엿 마지기에 밭 두어 뙈기밖에 남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안 터이지마는 그밖에 채무 관계는 어떻게 돼 있으며 금년과 과동준비와 보릿고개를 넘길 성산이 어떻게 서 있는가도 알고 싶었고 장차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려는가도 듣는대로야 별 뾰족한 수는 없다 해도알고만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수택이는 그 독실하고 부지런하고, 면과 군의 농업 기수(農業技手)까지가 농작물에 대한 그의 의견을 참작한다는 이 훌륭한 농부가 삼십여 두락에 가까운 자기 재산을 탕진하기까지의 경로가 알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농부인가는 군에서 두 번 도에서 한 번 그를 표창했다는 것만으로도 족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그 상장을 타러 읍에는 고사하고 가까운 면에까지 ‘출두’하기를 거절했지마는―이렇듯 부지런하고 이렇듯 노농(老農)이며 거기에다가 술 한 잔 입에 대는 법이 없고, 여자라고는 일평생 자기 아내밖에 모른 채 육십을 넘긴 한 자작농(自作農)이 불과 십 년 동안에 맨주먹만 쥐고 나앉았다는 사실은 벼 넉 섬을 가지고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야만 한다는 어려운 수학 문제와도 비슷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그만 일인 동시에 또한 큰일이었다. “아버지, 이번 연사가 어떻게 된 셈입니까.” 하고 참다못해서 수택은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집에 있는 것만으로 과동은 할 만합니까?” “암, 그야 되구말구!” 이렇게 응당 대답했어야 할 그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앉았다. 그것은 실로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그 침묵은 예상보다도 긴것이었다.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알톨같이 여문 귀뚜라미 소리만이 쨍쨍하다. 급기야 침묵은 깨지고야 말았다. 그것도 수택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야라미없을 만큼 늙은 아버지의 고생에 찌든 주름잡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자우는 폭하니 꺼졌다. 흉할 만큼 긴 겉눈썹이 신경질로 움직인다. 수택이가 집을 떠나던 열두 살 때까지 아버지 눈이 무서워서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동자도 인저는 늙고 지친 토끼눈처럼 충혈이 되어 보인다. 몇 해 전 그가 신문사 일로 근읍에까지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가던 때만 해도 그의 아버지는 늙기는 했을망정 단 두 주먹으로 육십 년간 생활과 싸워온 악지와 강단이 그 눈과 코와 입언저리에 차차분하니 들어박혀 있었다. 육십 년간에는 살인 광선과도 같은 폭염(暴炎)도 있었을 것이며 살점이 에이는 추위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더위에도 추위에도 굴치 않고, 하루돌이로 태풍처럼 덮치는 토구질에도 잘 견디어 생명을 유지했던 것만으로도 장하다 하겠거늘, 그 김 영감이 지금 자기 아들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다.“수택아.” 늙은 아버지는 목메인 소리로 아들을 불러놓고서 다시 오랜 침묵에 잠긴다. 수택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늙은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김 영감 자신에게도 그랬을 것이었다. “너 혹 누구한테서든지 우리 집안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냐?” “들었습니다.” “들었어?” 순간 영감은 깜짝 놀라는 눈치더니, “질됐다. 애비 입으로 그런 이야길 한 것 보다는 잘 됐다. 어차피 한 번 알고야 말일 게고… 그래, 인전 그럼 넌 어떡할 작정이지?” “어떡하다니요?” 수택은 무슨 의민지 몰랐다. “장차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 살아볼 작정이냐?” “아버지 생존해 계실 때까진 여기서 살아볼까 합니다.” “나 살아 있을 때까지? 뭐 내가 살 날이 며칠 남았드냐?” 아직 십 년 하나는 염려없다고 수택은 거의 확신했다. “수택아, 내가 이렇게 자식 앞에서라도 궁상을 떨기는 육십 평생에 오늘이 처음이다. 아니지, 나 혼자서도 아래본 적이 없다. 허지만 인저는 나로서도 할 수가 없구나. 아마 내 팔자는 인저 딴길을 접어든 모양이다.” 이렇게 김 영감은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하던 어떤 가난한 농부의 일대기(一代記)였다. 김 영감은 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다. 고아는 무보의 유산을 많이 타고났어도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 그러나 그는 바지저고리 한 벌에 삼베 행전 한 켤레만을 타고난 고아였다. 그는 고아의 누구나가 밟는 갈을 밟아서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혹은 엿목판도 졌고, 또 어떤 때는 장돌림의 봇짐을 지고 따라다니기도 했다. 오늘은 이가의 집에서 밥을 먹었으면 내일은 또 박가의 집이다. 이렇게 그는 컸고 장성했다. 그러나 김 영감이 고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도 한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의 불행은 고아가 된 것이었고 둘째의 불행은 정직이었다. 입 우의 소년에게는 맘만 따로 먹으면 살 도리가 나설 여러 번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 남을 속일 줄을 몰랐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친 자기 아버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강직한 고아는 엿목판을 베고 논두렁에서도 잤고 손을 호호 불며 다리 밑에서 긴 겨울 밤을 새우기도 했다. 찬 돌을 어머니의 팔인 양 베고하염없는 공상의 나라를 헤매기도 했고, 흐르기가 무섭게 쩍쩍 얼어붙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동리에서 동리로, 혹은 내를 건너고 혹은 산모퉁이를 돌아서 살 곳을 찾아 헤매었다. ‘열다섯만 되어라.’ 그의 희망은 오직 이것이었다. 열다섯만 되면 금시 발복을 하고 비단옷에 고량진미를 마음껏 먹는 그런 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수 있게 되겠기 때문이었다. 열다섯이 되었다. 그는 소원대로 반 새경을 받고 머슴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밥, 쩔쩔 끊는 방, 그는 이것으로 족했다. 10년간의 긴 머슴살이가 끝난 때 그의 수중에는 엽전 삼백 냥이 꾸려졌다. 송아지도 한 마리 생겼다. 그는 그제서야 아내도 맞았다. 자식도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헤매는 고달픈 몸이었다. 장돌뱅이가 된 것이다. 세상이 한 번 뒤바뀌었다. 정부에서는 국유지를 일반 백성들에게 연부로 불하하는 새 법령을 냈다. 김 영감이 한 섬지기의 땅을 장만한 것도 그때였다. “그 후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일을 했으며 얼마나 규모있게 살림을 했는지는 너도 어려서 보았으니까 잘 알 바라. 나는 일년 가야 술 한 잔, 인절미 한 개 사먹은 일이 없다. 언젠가 내 일년간 용돈이 한 냥(십전)을 못 넘는다니까 너는 곧이듣기지 않는 모양이드라마는 백중날 아이들 떡푼어치 사주는 게 내 용돈이다. 이렇게 난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해왔다.” 김 영감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막금했다. 그것은 무슨 고대 소설과도 같았다. 고대 소설과 다른 것은 그보다 더 실감이 있다는 것뿐이다. 이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머리를 들고 일어나던 의문이 또 생긴다. 그렇게 정직하고 그렇게 부지런하고 그렇게 알뜰한 자기 아버지는 어째서 좀더 부유하게 못 되고 땅마지기 지니었던 것까지 놓아버리게 되었을까?… 수택은 조심조심 물어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농촌에 있어서의 금후의 생활을 설계할 자격도 없다 싶었다. “어떻게 돼서 그랬느냐고? 그건 나두 모른다. 나뿐이 아니지. 누가 알겠니? 하느님이 아실 뿐이지.” 이렇게 딴전을 쓰고는. “세상이 변한 탓이지, 옛날에야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그리고 예의범절만 있으면 살았느니라. 그런든 것이 이 근년에 와서는 짚신이 없어지고고무신이 생기고, 감발이 없어지고 지까다비가 나왔지. 물가(物價)는 고등하지, 학교는 보내야지, 학교 다니구 나니 농산 싫지. 듣구 보았으나 양복때기라두 걸쳐야지. 화차, 자동차가 생겼으니 어디 갈 땐 타야 배기지? 네 생각해봐라. 읍내까지 오십리로구나. 부지런히 서둘면 점심 한 끼만 사먹으면 다녀올 데를 지금은 소불하 일원 오십전은 가져야 하는구나. 갈 적 올 적 차비만 해두 일원 삼십전이지. 점심 한 끼만 사먹구 마느냐? 그래노니까 몸은 점점 약해질밖에… 더위도 더 타지 치위도 더 타지. 젊은 애들두 털내복을 입어야 견디지, 편할라구만 하니 먹는 게 나라니? 체하지. 소금 한줌만 먹음 될 게라두 영신환 사야지. 옛날 사람들이 지금처럼 약값이 많구야 살았겠느냐?” “그 대신 소출이 그전보다 많이 나잖습니까?”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소득과 지출의 비례를 좀더 정확하니 알고 싶었다. “너 되로 주고 말루 받아야지 말루 주고 되루 받아서 소용 있겠냐?” 풀쑥 이런 말을 하고는, “결국은 기계가 사람을 죽이느니라.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게 아니라 기계가 사람을 부려먹는 세상야. 그야 산미증산 산미증산 해서 소출이야 더 나지. 허지만 그 대신 대두박이니 암모니아니 거름값이 더 들지. 전엔 모두 찬밥 한술만 떠먹으면 손으로 해치우던 걸 인잔 기계 아니면 못하는 줄 알잖니? 우리네 농군이 일년내 피땀을 흘려서 대처〔都會〕 사람 좋은 일만 시키느니라. 모두 그리 가져가지. 농군한테 지까다비가 하상관야? 몸뚱이가 튼튼하면야 쇠를 먹어도 색이지. 병원이 뭔 소관이구? 움찔하면 똥이라더니 이건 움찍하면 돈이로구나…” 수택은 일생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무조건하고 자기 아버지를 경멸해왔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김 영감은 훌륭한 세대에의 반역자였다. 허다한 신진 사상가(思想家)들의 기계 파괴론(機械破壞論)을 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은가. 표현은 다를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사상가였다. 인간은 지금 기계의 노에 가 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은 기계에게 멸망을 당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흙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사람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올 때 흙은 언제나 다름없는 관대(寬大)와 애정으로 인간을 맞아준다는 것이다. 이 흙의 관대를 인간은 모른다. 모르는 데 그치지만 않고 경멸하기까지 한다. 김 영감은 다시,“너 정택수란 어른 알잖니?” 하면서 그가 흙을 배반한 좋은 표본이라고 한다. “너 오기 바루 전에두 다녀갔다마는 땅마지기 있는 걸 톡톡 팔아서 장살 했느니라. 다 털어올렸지. 그러다가 몇 푼 남은 것으루 돈놀이를 했느니라. 돈냥이나 좀 잡았지. 허지만 사람이 돈만 가지면 사는 줄 아냐? 의리도 있어야 하구 인정두 쓸 덴 써야하구 어수룩할 땐 또 어수룩해야지. 사람이 돈에 녹이 나면 못쓰느니라. 돈을 만지면 사람이 이악해져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다시 돈을 땅에 묻더라. 지금 모두 치면 벼 백이 되지. 그러더니만 제년부터 또 돈이 탐이 나서 요샌 금광을 하지. 그래서 남의 산수 밑을 모두 파제키구 야단이구나. 법이야 어떻건 법만 가지구 사람이 산다든? 그래, 낮잠 자는 것을 깨워두 열 가지 악(惡)의 하나라는데 돈 벌자구 흙 속에 묻혀 곤히 잠든 남의 조상에다 남포질을 하구 야단이야! 우리 농군네겐 그런 법이 없거든!” 그러나 이 긴 이야기보다도 수택이를 가장 흥분시킨 사실은 수택이가 부치기로 한 여덟 마지기의 소작권이 내년부터는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부치는 소작답열한 마지기도 똑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김 영감은 이 사실을 이야기해야 옳을지 어떨지를 퍽 주저한 모양이었다. 열한시나 되어서 인사를 하고 일어날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할듯 말듯 하더니만 그가 문고리를 잡은 때서야. “잠깐만 더 좀 앉거라.” 하다가 일어난 길에 안에 들어가 뭐 먹을 것 좀 뜨뜻하게 해 내오라고 이르고는 돌아온 후에도 다시 얼마를 망설인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런 슬픈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게 뉘 땅입니까?” 그도 맥이 탁 풀리었다. “뉘 땅은 뉘 땅. 원래야 우리 땅이었지. 그렇든 것이 야곰야곰 빚을 지게 되어 재작년에 닷 마지기만 남기고 통 지금 말하던 정택수한테로 넘어갔지. 재작년엔 연사두 좋았구 곡가두 그럴 듯해서 웬만하면 이자라두 끄구 어떻게 해보잔 것이… 너만 듣으라마는 네 조카놈이 어떻게 못된 놈들하구 섭쓸리더니 또 읍에 가서 돈냥이나 좋이 털어올리고 오잖았느냐.” “상태가요?” “그랬느니라.” 순간 수택은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는 간데없이 자기 집이 망한 원인이상태란 놈의 난봉으로 인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런 내색은 않았다. 그 자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밀목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쳐서 먹었건만 땀 한 점 안 난다. 땅마지기를 믿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지마는 믿었던 줄이 탁 끊긴 것처럼 맥이 풀린다. 누가 샀는지는 모르나 정택수를 찾아가서 소작권을 이어받을까 짧은 순간 그런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잇을 바에야 아버지가 솔선해서 그런 도리를 차라지 않았으랴 싶으면서도 그것을 다져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대답은 역시 그의 예기한 바와 같았다. 매주는 읍내 사는 ‘기다하라’라는 철물상인데 중간에 든 사람이 작권을 얻기로 하고 구문까지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수택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올라왔다. 그의 너무나 어두운 마음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달은 차도록 밝다. 물방아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한결 더 바쁘다. 서리가 오려는지 밤도 찼다. == 3 == 지금 수택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대신문의 사회부 기자요 일금 팔십원의 문화생할자인 그를 이 궁벽한 농촌에까지 끌고 내려온 것은 진실한 문학생활도 아니었으며 논마지기나 부치고 채마나 심어서 처자와 함께 안락한 가정생활을 영위(營爲)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내려가서 해보다가 안 되면 다시 기어올라오지―서울을 떠날 무렵에 생각하던 이런 소극적인 태도도 아니었다. 끝장이야 뭐이 되든 고향땅을 물고 뜯어보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이라도 달게 받으리라 했다. 처음 그가 이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상당히 방황했다. 첫째는 비록 소작일망정 모한 폭 꽂을 땅 한 조각도 없다는 것이 가장 그를 방황시킨 무엇보다도 큰 원인이었고, 둘째는 설사 남의 소작을 한다고 친대도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낸 대수 문제와도 같아서 영원히 풀 길이 없다는 것을 일년 농사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고, 섯째의 원인은 역시 그들의 건강이었다. 어느편이냐먄 수택 자신은 시골 온 후로 훨씬 건강이 나아진 편이었다. 꾹꾹 누르면 두어 술밖에 안 되는 밥을 먹고도 그것을 못 삭여서 꼴깍꼴깍하던 그는 벌써 아니었다. 혈색도 벌써 창백한 기는 가시었고 책상한 개를 드다루는 데도 엄두를 못 내서 쩔쩔매던 그런 수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영주하기로 결심했다. 낯이 설기는 하나마 그대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뉘 땅을 얻어부치더라도 대엿 마지기 얻을 상도 싶었고, 그것으로써 생계가 안 설 것은 빤한 일이나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농촌 소설을 쓰자면 그만 경험쯤은 얻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정 부족한 것은 허섭쓰레기 원고장을 쓴다든가 신문에 발표한 채로 있는 어떤 장편소설의 출판을 재쳐서 양미를 보태리라했다. 수택은 이렇게 결심을 하고 걸핏하면 어디로 뺑소니를 치려는 상태를 달래었다. 그러나 상태로 본다면 농촌생활은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서 그렇잖아도 자리를 떠볼까하던 터에 마침 수택이가 돌아온 터라 그 결심을 버리지 못한다.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린다. 언제든지 한 번은 도회에 가서 살아봐야 할 아이라고 수택은 옆에서 눈치만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택으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한 것은 사내자식의 의기였다. 농촌을 잘 알았든 못 알았든 처자까지 데리고 솔가해온 이상 다시 엉금엉금 서울로 기어올라갈 수는 없다 했다. 여러 친구들이 회비까지 모아서 송별연까지 베풀어준 터가 아닌가. 그들 앞에 반년도 못 되어서 다시 무슨 낯으로 나설 수가 있을까? “우리 가족의 뼈는 고향에다 묻자!” 그는 이렇게 센티한―그러나 비장한 결심까지 했다. 일단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수택은 이렇게 마음을 작정하는 길로 용훈이를 찾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달은 뜨지 않았으나 동쪽 하늘이 벌겋게 상기된 것이 미구에 달이 뜰 모양이다. 중말 술회사 앞을 돌아서 일부러 샛길로 접어들었다. 용훈네 집은 어렸을 적에도 늘 놀러다닌 집이나 대문도 돌려내고 앞채는 상점 방으로 꾸미어져 있었다. 용훈이는 마침 저녁을 먹고 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용훈이를 찾기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이발소 아니면 묵장사를 하는 복순네 집이나 면소 숙직실, 거기 없으면 중말 병아리 갈봇집이었다. 예측한 대로 그는 복순네 집 윗방에서 복순 아주머니와 팔뚝 맞기 화투를 치고 있었다. “아. 이거 별일이네그려. 자네가 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구.”용훈이는 고동색 세루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치우며, “들어오게, 우리 죄수 볼기 치기보다는 날 게니 이 색시허구 팔뚝 맞기 화투나 한번 치세그려.” “그래 볼까…” 어쩔까 했으나 사람이란 모가 나서는 못쓴다고 그가 내려오던 이튿날부터 그의 아버지가 주장질하던 생각이 나서 수택은 대엿 번이나 화투를 쳤다. 한 번은 이기고 내리 쳤다. “수택이, 우리 마작 한케 하러 갈려나?” 하며 용훈이가 화투에 진이 떨어진 틈을 타서 수택은 그를 끌고 집으로 왔다. 똑똑한 편도 못 되는 용훈이 같은 사람을 데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떳떳치 못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았으나 이발소 종대 말대로 계집한테만 어리무던하지 친구들간에는 ‘능구리처럼 음흉’하다고 한다면 사양할 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의 수택에게는 그런 말을 할만한 사람은 역시 용훈을 내놓고는 없었다. “자네 맥주는 내가 낼 게니 나 땅 한 자리 주어야겠네.” 이렇게 처음부터 툭 털어놓고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어려운 이론은 캐지도 않았지마는 고향에 와서 어렸을 적 동무들과 앞집 뒷집을 정하고 살고 싶다는 그의 계획에는 다소 감동된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역시 대학까지 졸업하고 그 큰 신문사에 다니던 그가 이런 궁촌에 와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그 심경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눈치였다. 한편 장한 생각 같기도 했고 못생긴 짓 같기도 했다. ‘뭘 잘못하구 쫓겨나니까 갑자기 어쩔 수도 없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려니…’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 내가 거저 주는 것두 아니겠구 대엿 마지기 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어디 지금 세상엔 논인들 맘대루 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농지령 때문에 작권두 모두 계약을 하게 돼놔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소작하는 땅을 떼어달라는 건 아닐세. 나 살자고 남한테 못할 노릇을 시키고 싶진 않네. 내 말은 자네네가 삼십여 마지기나 광작을 한다니까 자네네는 대엿 마지기 더 지으나 덜 지으나 대찬 없을 것 같구, 해서 말하자면 자네 부치는 걸 좀 떼달란 말일세. 안 되겠는가.” “난처한데…”용훈은 좋이 입맛이 쓴 표정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네가 맏는 타격이 크다면 난두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아냐, 뭐 타격이랄 건 없지만… 글쎄. 어디 보세. 오늘 낼 작정해야만 할 것두 아니겠구…” 그만큼 하고 수택은 용훈을 데리고 먼저 갔던 복순네 집에 가서 제육을 구워놓고 약주를 몇 잔씩 나누었다. 헤어질 무렵에, “자네 술만 먹어서 되겠니, 내 술도 한잔 해야지.” 하며 끄는 바람에 수택은 고향에 온 지 처음으로 술집에를 끌려갔다. 그들이 간 집은 역시 병아리집이었다. 얼굴이 병아리처럼 생겨서가 아니라 아랫말에서 역시 술장사를 하는 이복동생의 얼굴이 달걀처럼 생기었다고 해서 먼저 난 형이 병아리가 된 것이다. 병아리는 용훈이와도 범연한 사이가 아닌 듯싶어 한 되들이 금천대(金千代)병을 안고 욱자베기를 하면서도 연상 눈짓들을 하고 회영수가 어우러졌다. “송 주사. 요샌 아주 막 뽐내십디다그려” “뭘.” “술 한잔을 자셔두 고향 사람들 술을 팔아주는 게 아니구 꼭 읍내루만 행찰 하시구…” 말은 술 이야기를 하나 술강짜치고 심각한 표정이다. 병아리는 분명히 술만의 강샘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 상싶었다. 그래도 용훈이가 통 받아주지를 않으니까 병아리는 찍어누르는 소리로 “석탄 백탄 타는데…”를 제 성에 못이겨서 부르고 있었다. 병아리집을 일선 때도 과음(過飮)이었는데, 그들은 다시 한 짐을 들렀다. 물론 병아리의 동생 달걀집이었다. 달걀집은 부풀었다. 병아리보다 훨씬 젊기도 했거니와 얼굴도 시골 주모로는 깨인 편이었다. 소학교는 다녔는지 ‘도죠’니. ‘고엔료나꾸’니 하는 말도 툭툭 던졌고 어서 귀동냥을 한 것인지 ‘폴리이스’니. 가는 손 보고는 ‘굿나잇’하고 주척도 댄다. 술은 맥주를 청했으나, 맥주는 두 병밖에 없어서 여기서도 제육을 굽고 너비를 몇 점 구워만 놓고는 강술로 서너 홉씩을 말리었다. 일어선 때는 용훈이도 수택이도 까부러지게 취했었다. 어디선지 용훈이와 헤어진 것은 자정이 가까웠었다. 면소 앞 신작로를 건너서 역시 술집 뒤를 돌아가려니까 술꾼들의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뜻밖에 그 맞욕질을 하는 싸움 소리 속에서 조카인 상태의 목소리를 발견하고는 물론 취중이었지마는,‘이 녀석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집에를 다녀?’ 하는 쾌씸한 생각이 불컥 나서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상태와 면서기 김용승이가 싸우고 있었다. 꼬단은 알 수 없었다. 또 캘 필요도 없었다. 그는 싸움의 시비를 가리러 들어갔던 터가 아니었으므로 군중을 헤치고 들이닿는 길로 상태의 뺨을 정신이 나게 한번 붙이었다. “이리 나와!” 상태는 고분고분히 끌리어 나왔다. 상태한테서도 술기운이 마주 확 풍긴다. 그 술내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불끈했었다. 무슨 감정의 관련이었던지는 몰랐어도 상태 입에서 술내가 확 풍긴 그 순간 그는 집안을 들어먹은 것은 상태라는 착각이 일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착각이었다. 논 이십 두락을 털어먹은 것은 김 영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서운 착각인 반면에 그것은 또 무서운 증오였다. 송곳 한 개 꽂을 땅이라도 물고 떨어야 할 처지에 요릿집에다 전재산을 털어올려… ―그는 거의 발작적으로 상태를 무수히 난타했다. 상태는 끽소리 없이 맞았다. 봇둑에 선 포풀러를 의지하고 한 번 말대꾸도 없이 맞으며 울고 섰다. 수택이도 얼만지 조카를 때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도 없는 설움이 걷잡을 수도 없이 내장 저 아래에서 부걱부걱 기어올라온다. 나중에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수택은 얼마 후에는 역시 상태가 기대인 포플러나무에 얼굴을 틀어박고 흑흑 누끼어 울었었다. 상태가 먼저 울음을 그치었다. 그러나 수택이의 울음은 좀처럼 그쳐지지 않았다. 상태는 맞은 설움이었으나 수택의 울음은 때린 설움― 그나마도 일시의 착각으로 감정에 격한 경솔을 뉘우치는 울음이었다. 형도 자기도 없는 동안 어린 나이로 그 크나 큰 림을 도맡아본 상태한테 무슨 죄가 있었으랴?… “작은 아버지, 그만 돌아가시지요. 제가 요릿집에 다니느라고 땅을 팔아먹었다는 건 작은 아버지 오해십니다. 몇 번 가긴 갔었지만 그건 마름이라도 하나 얻어 살림을 벌여볼까 했던 것인데…” 하다 말고 그대로 다시 울어버린다. “안다, 안다. 그만둬라.” 이렇게 말하며 수택은 조카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섧지 않은 때도 곧잘 우는 수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절통할 때라야만 운다― 두 사나이가 맞잡고 우는 정경―그것은 정말 옆에서보기에도 딱한 정경이었다. == 4 == 농한기(農閑期)라는 삼동(三冬)은 그러나 구택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한가로운 기간이 아니었다. 퇴직금 끄트러기가 몇 푼 남기는 했으나 실상 지나보니 그의 예산과는 달랐다. 이제 열댓 된 창문이의 손으로만은 부엌 나무도 댈 길이 없었다. 더욱이 보림령(保林令)은 낙엽 긁는 것까지도 제한이 되어 있어서 그나마도 긁게 되지 않아 ‘나무도 못 긁어댈 바에야―’하고 창문이도 내보내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나마 그는 몇 개의 잡문도 써야 했고 소설도 몇 편 마련해야 할 계제다. 아직 반년도 못 되는 경험으로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농」{老農}이란 장편소설의 제1부만이라도 마물러야 얼마간의 모개돈이 들어올 것 같다. 다행히 신문사에서도 왼편만 되면 검열에 지장이 없는 한 고료를 선불해줄 수도 있다는 회답도 받은 터라 공연히 마음만 바빴다. 수택은 매일 농군들 봉놋방에 가서 살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도 그랬거니와 인저부터는 생활 방편을 위해서라도 그들과 같이 살고 그들과 같이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맷방석을 들여 펴고 밤나무 장작윷도 놀앗고 일찍이 중학에 들어가서 ABC를 배우던 정열과 또 그만 못지않는 노력으로 투전 글자를 배우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서 서울 이야기로 밤도 새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때는 막걸리 내기 화투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대문(南大門)에 써붙인 큰 대(大)자가 아래로 쳐졌더냐 위로 올라붙었더냐―이런 토론으로 욕지거리를 해가며 싸우는 머슴들한테 끌리어가서 남대문이라고 씌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도 했다. “거들 봐라. 남대문이라고 안 쓰였드라구 그렇게 일러줘두 빡빡 우겨대드니!” 건달 덕문이다 기염을 토한다. “이 자식아, 그래 네가 보면 안단 말야!” 하고 득만이도 지지 않고 대든다. 큰 대자가 내려붙었다고 고집하던 친구였다. “네깐놈이나 내나 남대문이라고 썼는지 북대문이라고 썼는지 보면 알택이 뭐야! 사칠팔(四七八)가보라구 쓰진 않았든, 왜?” “저놈이 글쎄, 양반 행세 한답시구 우리 아버지 포두청이라고 한놈이라니께!” 방안이 떠들썩하게 웃음이 터졌다. 매양 방안에는 열 명 이상의 농군들이 모였다. 어떤 때는 이십 명 가까운 사람이 들구끓은 때도 있었다. 마치 상자 속에 과자를 주워담은 것처럼 포갬포갬 앉는 수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 한쪽에서는 「조웅전」(趙雄傳)「추월색」(秋月色)같은 이야기책을 보고 이 모퉁이에서는 계집 이야기를 하면 저 구석에는 먹는 이야기다. 그러나 매양 화제가 집중되는 데는 역시 음식타령이었다. 모두가 장정들이요, 모두가 일년에 한두 번밖에 허리끈을 끌러놔 보지 못하는 그런 축들이다. 놀음이야기, 나무하다 산감한테 경친 이야기, 읍내 이야기, 이렇게 어수선하던 화제도 어떤 구석 누구 입에서든지 음식 이야기 한번 나면 그대로 좌중의 귀가 다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난 이러니저러니 해두 검정 밤콩을 드문드문 논 마구설기가 좋더라.” 칠성이가 무슨 결론이나 짓듯이 이렇게 말하자 아까부터 칠성이와 토작이던 돌이가 왼새끼를 꼰다. “저 자식이, 그래, 저게 입이야. 떡엔 콩을 노면 겉물이 돌아서 못써! 백설가라야지.” “그래, 저 자식이 왜 아까부터 남의 말이면 쌍지팽이를 짚구 나서는 게야! 그래, 이자식야, 똥구멍으로 막지 않는 바에야 씹는 맛이 좀 있어야지.” “허,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법이야.” 하고 아랫목에서 주의를 시켰음에도 칠성이와 돌이는 기어이 쌈이 되고야 말았다. “에이끼. 동물에 튀해 죽일 자식, 저걸 낳구두 그래 횃대 밑에서 멱국을 먹었을 테지!” 칠성이가 결을 버쩍 세우는데, “그만두세. 인제, 그렇잖어두 우리 어머닌 날 낳구 조당죽이나마 옆집에 가서 얻어 다 먹었다네!” 하고 비장한 소리를 해서 웃는 사람, 언짢아하는 사람, 별 표정이 다 나타났다. 수택이가 여럿한테 인사를 하고 막 문을 닫고 나오려니깐 희만 노인이, “낼 순경 차례니 사람 얻어 보내유.” 하고 소리를 친다. “네― 그럽죠.”그도 길게 대답을 하고 봇독을 타고 올라갔다. 밤 사이에 된내기가 하얗게 내렸다. 뜰팡에 뗘놓았던 자배기 몰에 살엄음이 잡히었다. 간밤은 장편의 첫 장면을 찾지 못해서 거의 밤을 밝히듯시피 했건만 아침은 여전히 일찍 깨었다. 머리가 별로이 무겁지도 않다. 울안 우물에 가서 세수를 하고 헌 바구니를 들고 동저고릿바람으로 천변에 나갔다. 아삭아삭 서리 기둥을 밟는 발의 감촉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하는 대로 가며오며 소똥 개똥 같은 것을 들고 간 바구니에 담아들고 들어왔다. “아빠, 또 개똥 주웠수.” 필년이라 년의 말소리도 인저는 제법이다. “그래, 너두 낼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빠하구 개똥 주러가 , 가지?” “응, 엄마, 나두 낼부터 아빠하구 개똥 주러 가우!” “오냐.” 아내가 어린것을 업고 부엌에서 나오면서 대답을 한다. “좀 쓰셨수?” “웬걸.” 아침을 치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보았다. 오랜 동안 머리를 쓰지 않아서 그대로 굳어지기나 한 것처럼, 통 풀리지 않는다. 수택은 다시 천변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역시 두서가 풀리지 않는다. “수택이 있나?” 용훈이가 읍내를 또 가는지 국방복도 벗어던지고 자르르 흐르는 능견 두루막에 중절모자를 바드름하니 쓰고 들어왔다. “또 어디 가는가?” “아, 읍에 좀.” “들어오게나그려” “아냐, 첫자루 가얄 겐데. 거 말야. 요전에 말하던 거 거 그렇게 하기루 했네. 자넨 서투른 솜씨구 해서 물길 좀 놈으루 엿 마지길 뗐네.” “고마워.” 한 가지만이라도 낙착이 되고 보니 갑자기 딴힘이 생긴다. 수택은 그 길로 내려가서 아버지한테 용훈이가 말하던 논이 어떤가고 물어보았다. “모이 앞의 엿 마지기? 좋―지, 좋은 논이구말구. 거 그 사람 큰심 썼다. 그래, 도진 얼마라든?”“그건 아직 못 물어봤습니다.” “저런 사람 봐. 농군이 먼저 그걸 알아봐야지. 암만 논이 좋면 뭐하나. 도지가 호되면 천수답만두 못한걸.” “설마 턱없이야 매기겠어요.” 김 영감은 새끼 꼬던 손을 쉬고 쌈지에서 가루가 된 희연을 손바닥애 쏟아놓더니, “담배라구 예전처럼 잎새가 있어야지. 이건 하루만 넣구 다니면 바짝 말라서 가루가 돼버리니―” 하면서 침을 퉤퉤 뱉어 곰방대에 담아 문다. 담배를 피며 새끼를 꼬며 또 이야기까지 하자니까 침을 줄줄 흘러 떨어진다. “거, 뭐하실 겁니까?” “집을 이어야잖니, 금년에 마초(馬草)를 하기 때문에 지붕을 잇재도 허갈 내야 한대서 면장한테 신청을 했는데 모르겠다. 온 , 이집이야 금년쯤 걸러가지고는 별일 없겠다면서두 너 집은 샐 게다. 어리라두 좀 해둬야지.” 수택이도 짚 몇 오리를 맞동여서 발 새에다 끼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다른 일은 대강 흉내는 내나 새끼를 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매맞은 구렁이 몸처럼 고르지가 못하면서도 손바닥은 얼얼하다. 그래도 한 이십 발은 실하게 꼬고서야 일어났다. “왜, 그만 갈테냐?” “네, 올라가서 뭐 좀 써봐야겠습니다.” 수택은 일어나서 안에도 들러보았다. 어머니도 형수도 없다. 뉘 집 아이들인지 조무래기만 서넛이 집을 보고 있다. 집에 올라오니 어머니는 수택의 집에 와 있었다. 형수는 벌써 사흘째 담배 조리(調理)를 다닌다는 것이다. 이 고장은 전 조선에서 제일가는 담배 소산지다. 백여 호 되는 동리에 담배 찌는 곳간이 다섯 채나 있다. 누렇게 된 담배를 새끼에 꿰어서 난방장치가 되어 있는 곳간에다 매어달고 불을 땐다. 그래서 누렇게 마른 담뱃잎을 상엽, 중엽, 막치기―이렇게 세 종류로 나누어서 짝 편다. 편 것을 다시 한 춤 씩 되게 담뱃잎으로 대궁을 싸서 흡사 총채처럼 만든다. 이것을 조리한다고 하는 것이다. 수택이도 어렸을 적에는 매년 여름이면 담배를 엮었다. 다섯 발 가량 되는 새기에 한 잎은 엎고 한 잎은 젖혀서 어금막기로 엮어간다. 열 발에 삼전인가 삼전 오린가 되었으나, 담배를 엮는 기간이 마침 여름방학인 때라 웬만한 집 아이들은 다 머리를 싸들고 덤빈다.“하루 사십전씩인데 아이들은 내 봐줄 게니 아이 어미도 좀 해보잖으련?” 어머니는 아내와 그의 눈치를 번갈아 보면서, “그걸루 큰 보탬이 될 건 아니지만두 잔용은 뜯어 쓰느니라.” “가볼까” 아내는 그의 눈치를 본다. “그까짓 것”하고 내찰 줄 알았던 터라, 그는 적지 않아 의아했다. “정말 해볼려우.” “해볼 테유―” 아내는 이 지방 사투리로 ‘유우’를 길게 잡아 늘인다. “해볼 템 해보구려. 동무들두 사괼 겸.” “그래라. 그래서 어떡허든지 끈을 잡아가지구 살아야지. 너 아버진 아주 너희들 때문에 잠두 통 못 주무신다.” “왜요?” “그렇잖겠니? 모처럼 자식이 이 부모를 바라구 왔는데 땅뙈기나마 다 팔아먹구 집 한 칸 못 장만해주니 어째 너 아버진들 맘이 졸 리가 있겠니. 요샌 아주 죽을 지경이다. 전에야 참 하늘이 무너진대도 눈 한 번 깜짝 않던 양반이 어떻게 맘이 여려졌는지 그저 한숨만 휴휴 내쉬는구나.” “그렇게 걱정을 끼출 줄 알았더면 오지 않을 건데 괜히 왔나봐요. 어머님, 그래두 필년 애비는 우리가 가기만 하면 아버지 어머닌 여간 좋아하시지 않는다구!” “그야 좋지, 좋지 않을 거야 뭐 있니, 단지 살도록 마련을 못해주니까 그렇지.” “뭘요. 인젠 아버님께 얻어먹을랴고 했나요. 그럭저럭 살게 되겠지요.” “암만해두 너 아버지두 몇 해 더 못 살려나부다. 가만히 보니 망령이 나는가봐.” “벌써 뭘.” 하고 수택이가 웃으니까, “벌써가 뭐냐. 네 좀 봐라. 요샌 이슥하도록 좀이 다 먹은 문서 보따리만 끌러놓구 앉으셨구나.” “문서 보따리가 무슨?” “땅문서지 뭐냐. 죽은 자식 나이 헤어보기지. 그건 왜 궁산맞게 들여다보구 앉았담. 이동두 다 해간 빈 문서를 신주 위하듯 하시는구나, 글쎄.” 어머니의 이런 이야기는 수택에게 이상한 충동을 주었다. 물론 수택이가 나기 전 이야기라 얼굴도 본 일은 없었으나, 번화하게 생겼던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그 형이 사고무친한 김 영감의 첫아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그는 네 살 때 죽고 말았다. 그때도 그는,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죽은 걸 생각하면 살아나나.” 단 한마디 했을 뿐, 일평생을 두고 다시는 죽은 자식의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그랬다. 한 번 단념하면 단념한 순간이 완전한 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가 이미 남의 소유가 된 휴지 조각을 밤마다 들여다보고 앉았다는 것이다… “여기다!” 하고 수택은 그 길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한 자작농(自作農)이던 늙은 농부가 밤을 낮삼아 일을 했건만 한 마지기 두 마지기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이미 완전한 휴지가 된 서류뿐이다. 늙은 농부는 지금 희미한 등잔불에 그 ‘휴지’를 비춰보고 있다. 커다란 도장이 꽉꽉 찍힌 그 종이에는 분명히 자기 이름이 씌어져 있다. 그는 마른 바가지 속처럼 된 자기손등을 내려다본다. 그 손에는 무수한 흉터가 잇고 핏기 없는 굵다란 힘줄만이 기운없이 서리웠다.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 종이를 만질 때마다 버석버석 소리가 난다. 그는 언제까지나 자기 이름 석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한숨이 후유 나오고 고생에 찌든 늙은 얼굴에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나의 육십 평생은 이 종잇장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종잇장을 위해서는 단잠도 못 잤고 허리끈도 졸라매었고 피와 땀도 흘렸다. 남이 쌀밥을 먹을 때는 조밥을 먹었고, 남이 조밥을 먹을 때는 나는 조당죽을 멀거니 끓여 먹었다. 이렇듯 육십 년 동안 정성을 바쳐온 이 종잇장이 아무짝에두 쓸 수 없는 휴지가 돼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겔까?…” 이렇게 한탄할 때 눈물 한 방울이 땅문서에 뚝뚝 떨어진다. ―이런 데서 장편 「노농」(老農)의 첫장면을 시작하리라 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그의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의 사회 기구며 풍습, 인정세태(人情世態), 물가(物價),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동나무로 싼 길이 두 자에 폭 한 자, 높이가 반 자 가량 되는 궤짝 속을 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장방형의 궤짝에서는 수택이가 일찍이 보지 못하던 여러 가지가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장사를 그만두던 해 마지막 쓰던 치부책도 한 권 나왔다. 그것은 장사를 마감하면서 외상값을 받던 것이다. 그가 놀란 것은 기역(ㄱ)자를 씌우지 않은 것이 거의 태반은 되었다. “이런 건 어떻게 그대로 있습니까?” 수택은 책장을 뒤적이며 이렇게 물었다. “그건 다 못 받은 게다. 예나 지금이나 하던 장사를 떨어엎으면 어디 주더냐. 송살(訟事)하면 받기야 받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난 내 일평생 밥은 끓여 먹을 게 되느니라 싶었으니까 그만둔 게지.” “그땐 여유가 좀 있으셨든가요?” “어디 그런 건 아니지. 허지만 그때만 해두 논이 이십여 마지기만 있으면 살 때다. 재물이란 탐을 낼 필요가 없는 게거든. 난 지금두 그렇게 생각한다. 재물이란 덜퍽 있어두 되려 액이니라. 그저 밥이나 굶잖으면 그게 상팔자지. 상태(조카)보군 늘 그렇게 일러 왔느니라마는 너두 하루 세끼 밥거리 이왼 아예 바라지를 말아! 먹구 입구 남는 게 있으면 물욕이 자꾸 생기는 법이니라. 먹구 입구 하는 건 한정이 있지만 여유에는 한정이 없거든. 돈이 많아서 못 쓰는 법은 없지만 먹구 입구 하는 덴 조금씩 차인 있으리라두 한정이 있는 법이다. 남은 먹두 입구 못하는데 어떻게 낭비하기 위해서 욕심 낼까부냐. 그렇잖으냐, 사람 사는 이차란 게?” 아버지의 이런 이야기에서 수택은 십오룩 년 전 자기의 중학시대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의 고향은 지리적으로나 산물(産物)로나 도시와는 인연이 먼 농촌이었다. 읍에까지에는 문전에서 자동차가 다니기는 하나 오십리나 되었고 서울을 가재도 자동차길 밖에 없었다. 노정은 삼백리 정도였으나 차임은 십원 각수나 되어 웬만한 사람은 서울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계문명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현대에 살면서도 백 호나 되는 동민 중에는 기차나 전처를 본 사람은 불과 몇이 못 되었다. 경성 유학생이래야 그와 거기서 한 십리 떨어진 화석리(化石里)라는 촌에서 한 사람, 전 면을 통해서 삼사인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자면 조치원까지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조치원까지는 이백삼사십리나 되는 터라 부득이 경성을 갈 사람도 직로인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가본 사람도 기차를 타보지 못한 채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읍이나 서울 갔다 오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한 물건 한 개만 사가지고 와도 그것이 그대로 굉장한 뉴스가 되어 온 동리에 퍼졌다.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나 어떻게 굴렀던지 기름집 손자가 대판으로 건너가서 메리야쓰 공장에 다니다가 어떤해 여름 자기 집에 돌아왔었다. 그는 팔뚝시게를 찼었고 안경을 쓰고 구두를 신었었다. 이것이 그대로 동리 청년들의 좋은 선망이 되었고, 동리 처녀들의 동경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그가 가진 ‘희한한 불’회중전등에 아깝게도 희생이 된 처녀가 둘이나 있었고 뒤이어 예쁘기로 이름이 있던 달룡이 댁이 이 희한한 불을 가진 청년과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문화와는 인연이 먼 샌터였으나, 그땐 전 조선을 휩쓸던 사상은 회중전등 보다도 먼저 이 동리에 들어와 있었다. 동경 가서 유학을 하던 면장의 사위가 이 동리로 들어온 것이었다. ‘신화청년회’(新和靑年會)가 생긴 것도 그때였고 노동야학, 부인야학이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수택은 그때 중학 이년이었다. 그는 여름방학에 돌아왔다가 자기 또래의 소년들이 ‘평등’이니, ‘계급’이니, ‘무산자’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을 보고서 어린 마음에도 자기가 뒤진 것을 깨달았었다. 그가 박 선생의 총애를 받는 소년이 된 것은 그 다음해 역시 여름방학부터다. 박 선생은 근동 청년들의 선망의 적(的)이었다. 그러나 겨우 언문 글밖에 못하고 두더지처럼 오십 평생을 두고 흙만 파온 그의 아버지는 이 박 선생을 더 업수이 여겼다. 말 잘하는 사람일수록에 행함이 적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처음 사귄 사람을 길래 사귀지 못하는 것이 그의 둘째 결점이었고, 정말 없는 사람의 ‘편’이 되자면 먼저 저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맘과 몸뚱이가 한뭉치가 되어야지, 맘이 암만 그렇다 해도 제 몸뚱이가 말을 안 들으면 소용있나. 너들 두구 보렴. 그 사람은 변호사나 하라면 잘할지 몰라두 저러다가 마느니라…” 이 무자한 농부의 예언이 오 년도 못 가서 들어맞았던 것이다. 박 선생은 그가 일찍이 옳다 하고, 아름답다 하고, 의(義)라고 말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의 말로가 대개 그렇듯이 그는 그가 일찍이 욕하던 직업을 가졌었고 한번 그런 데로 길을 트기가 무섭게 머리가 좋았더니만큼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김 영감의 말따라 그는 처음 사귄 친구를 길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듯이 한 번 가졌던 생각도 늘 변하는 사람이었다. 말만은 많이 하고 또 잘하나 일평생을 두고 참 말을 몇 마디도 못하고 죽는다는 변호사에다 그를 비교한 자기 아버지의 예언이 근 이십년 후인 오늘날 와서 그와 비슷한 직업인 브로커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점심때는 되어서 수택은 좀이 먹은 그 오동나무 궤짝째 가지고 일어섰다.김 영감은 무슨 큰 보물이나 되는 듯싶게 잘 간수하라고 당부당부하는 것이었다. “거깄는 건 단 한 장이라두 없애지 말아라. 땅은 다 남의 것이 됐다만 그것조차 없어진다면…” 하다가 갑자기 말이 뚝 끊어진다. 그가 문을 열다 말고 돌아다봤을 대 김 영감은 그 궤짝이 자기의 사랑하던 땅이요 그 땅이 지금 자기 손으로부터 영원히 남의 손으로 넘어가기나 하는 듯이 언짢아하는 것이었다. 수택도 아주 마음이 좋지 않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맥이 하나 없이 논둑 지름길을 건너서 삽짝 앞에 이르니까 제 동생을 데리고 흙장난을 하던 필년이란 년이 며칠 못 봤던 듯이 달려들어 안기는 것도 아는 체 만 체하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려니까. “엄마, 아빠 오셨수―인저 닭국 먹을 테야!” 하고 필년이가 쫓아들어온다. “오오냐. 상현이하구 와서 손 씻구.” “닭이 웬 닭이오!” 그의 말소리가 퉁명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의 상심하는 양을 본 때문만도 아니다. 씨한다고 닭 한 마리 남겨둔 것을 잡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예요? 무슨 광장한 보물 궤짝 같구려.” 하다가 남편의 눈치가 좋지 않은 것을 보더니 냉큼 묻던 말에 대답을 한다. “옆집에서 가져왔어요. 간밤에 닭 풍기는 소리가 나구 법석을 하더니 살쾡이란 놈이 암탉 두 마리를 모조리 물어 박질렀다는군요.” 그래도 남편의 얼굴이 퍼지지 않으니까. 그는 마치 무슨 죄나 진 듯이 어리둥절하고 섰다가, 조심조심 또 말을 붙인다. “벌써 메칠 전부터 닭이장을 뱅뱅 돌더래요. 그래 새루 문을 해 달구 야단을 했더니 지붕을 뚫구 들어갔다는군요.” “애들하구 당신이나 먹우.” 수택은 제 방으로 들어가는 길로 번듯이 자빠졌다. 아내가 근심이 되어 바로 뒤따라 들어와서 머리맡에 앉는 것을 알고도 그는 언제까지나 눈을 딱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 5 == 구럭 그믐께까지에는 수택의 장편도 거의 절반까지나 진척이 되어있었다. 낮에는 산감의 눈을 피해서 가까운 사나에 가서 낙엽을 긁어오기도 하고 봉놋방에서 농군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며 보내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마치 자기네를 감시하러 오는 사람처럼 서먹해하던 농군들도 인저는 무관한 동무처럼 만나면, “밥 잡섰이유.” 하고 인사를 했고 원고를 쓰느리고 종일 나가지를 않으면 지나는 길에 찾아와보기도 한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대명사도 인저는 없어지고 딸년의 이름을 붙여서 ‘필년아버지’가 되었다. “모두 보령산으루 산나무들을 간다는데 한번 안 가보실래유?”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보령산이라니, 저 까맣게 쳐다보이는 산?” “야―” 보기만 해도 염두가 안 났다. 그러나 가보기로 하고, 그날 밤은 여느때보다 좀 일찍잤다. 여섯시에 일어난 때는 아내는 어느 틈에 일어났는지 벌써 밥을 잦혀놓고 있었다. 김칫국에 고춧가루를 얼근히 풀어서 푹푹 퍼먹고 있는 옆에서 아내는, “너무 욕심 내지 마시구 조금만 해 지셔요. 모두들 그러는데 여간 험한 산이 아니래요.” 하고 그만뒀으면 하는 눈치다. “뭘, 아이들만큼야 못해 질라구.” 이렇게 말하면서도 물론 자신은 없었다. 요기를 하고 양말을 버쩍 추키어 감발 대신을 하고 솔버선에 ‘지까다비’를 신고는 곰방대에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아내가 담배 조리를 다닐 때(아내는 보름 남짓하게 하고 말았지마는)황색 엽초(葉草) 부스러기를 두어 뭉치 얻어왔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수택에게는 독했다. 그래서 장수연을 사서 섞어 피운다.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 문 것도 인저는 그리 어색하지도 않은지 아내는 보고 웃지도 않는다. 이 보령산 나무 덕에 수택이는 이틀이나 앓았으나 그래도 배운 것은 많았다. 그가 먼산나무에 용기를 냈던 것은 소위 하이킹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었으나, 그러한 기술은 먼산 나무에는 조금도 이용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일찍이 학창에서 배운 모든 학문이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응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던 때처럼 우울한 심정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수택이에게 순경 차례가 돌아온 것은 금년 겨울 접어들면서 첫 추이가 시작된 지 사흘 만인가 나흘째 되던 날이다. 마침 그날은 아들놈상현이의 생일날이라고 어머니가 인절미를 해왔다. 그래서 수택은 신문지에다 여나무 개를 싸들고 언 별만이 가상할 만큼 떠는 하늘을 순경 방안 구장 집 사랑으로 내려갔다. “저녁 진지 잡수셨어유?” 마침 구장 집 일꾼 천보가 평북 어떤 철산(鐵山)에 가 있는 자기 형한테 편지를 쓰려고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에도 벌써 무려 이삼십 통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은 안 되었다. 출생 신고도 몇 장 썼고 사망 신고도 한 장 썼다. “안부하시구유, 요전 말한 일은 어떻게나 됐느냐구 알아보시구유, 난 잘 있으나 흉년이 들어서 곤란이라구 쓰시구유.” 천보가 이렇게 사연을 부르는 대로 그는 받아 썼다. 요전 말하던 일이란 천보가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써주고 잠시 잡담을 하다가 그날 당번인 네 사람은 둘씩 가라서서 한 패는 윗말로 또 한 패는 아랫말로 갂 몽둥이를 짚고 나섰다. 수택이는 득만이라는 그의 집에서 넷째 집 떨어진, 벌써 이태째 중씨름에 광목을 탔다는 장정과 한 패가 되었다. 처음 그들은 윗말이었으나 다음 번에는 아랫말로 섞바뀐다. 순경패를 달래기에는 아직 이쁜 시각이었지마는 득만이는 장난삼아서 집집마다, “패 주―” 소리를 친다. 매일 한 번씩 구장은 순경패를 어떤 집에다 감춘다. 그래서 패를 맡은 집에서는 두 홰 닭이 울어야만 패를 내주도록 마련이었다. “어젯밤엔 꿈을 잘 꾸었으니까 어쩌문 오늘은 한 놈 앙겨들 상두 싶구먼서두.” 득만이가 작대기를 질질 끌면서 혼잣말처럼 한다. “한 놈 앙겨들다니?” “도적놈 말이죠. 한 놈만 붙들면 수가 나는 판이지요. 돈이 댓 냥씩 생기죠. 밤참에 막걸리가 한사발이니 배 뚜들겨가며 먹잖어유?” 하고 들었던 작대기로 삽짝 기둥을 뚜드리며 고함을 친다. “몽동이 가지구 왔으니 패 주―” 수택은 문득 어느 해 겨울 자기 집에서 도적을 잡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감하고 재치있게 도적을 잡은 그의 무용담(武勇談)은 헛되이 아버지의 격분을 샀을 뿐이었다. 장하다는 칭찬 대신에 지겟작대기로 아랫종아리를 얻어맞은 후 수택은 얼마를 두고 해석에 괴로웠었다. 그러나 오래 두고두고 생각할수록에 자기 아버지에게는 그만큼 위대한 일면이 생각되었다.이날 밤 수택은 뜻하지 아니한 것을 발견했다. 두번째는 아랫말 차례라 잠깐 몸을 녹였다가 득만이와 같이 또 나갔다. 별빛도 눈발에 애여서 촌보를 요량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그때 수택은, ‘만일 도적을 잡는다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득만이는 돈 오십전과 막걸리 한사발을 위해서 그를 주재소에 넘길 것이다. 물론 자기가 오십전을 내고 술 한사발을 사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제지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때리듯이 그만큼 이 득만이를 미워할 수가 있을까? 그런 자신은 역시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을 그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득만이의 뒤를 따라가려니까 득만이가, “필년 아버지, 야학당 구경하구 가세유―” 한다 “야학당?” “야,” “지금두 야학이 있어?” 수택은 실로 의외였다. 이 동리에 야학을 처음 개설한 것은 박 선생이었고 야학이 성황을 이룬 것도 역시 그가 이 동리에 머물러 있던 동안이었다. 그후 청년회는 동 소유가 되어 무슨 회나 공동판매 같은 데 쓰게 되었고 야학도 자취를 감춘 줄로만 그는 생각하고 있는 터이었다. 여름방학이면 그도 야학 선생의 한 사람이었었다. “전엔 청년회를 빌려서 하다가 지금은 못 쓰게 하니까 겨울 동안만 남의 집 사랑방을 빌려서 한대유.” “그래, 선생은 누구구?” “김선달 집 둘째아들이지유.” “걔가!” 그는 놀랐다. 김 선달 둘째 아들이라면 작년에 농업학교를 다니다가 학비 관계로 이 학년에서 퇴학하고 왔다는 빈혈증인 왜소한 소년이었다. 교실이란 두 칸 장방이었다. 아랫목으로 칠이 다 벗겨진 칠판이 걸렸고 그래도 명색의 난로까지 놓였다. 한가운데를 한 줄 비워놓고 사십 명이나 되는 조무래기들이 혹은 쓰고 혹은 책을 보고 있다. 칠판 한복판에 칸이 막힌 것을 보면 두 반인 것이 분명했다. 한쪽 칠판에는 1‧2‧3‧4가 씌어 있고 딴쪽에는 가감 문제가 네 개 붙었다. 수택은 거의 이십 분 동안이나 김 소년의 교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소년의 교수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쓰고 책을 보고 하는학생들을 구경한 것도 아니다. 석유 궤짝에 대패질을 해서 먹칠을 한 칠판과 그 앞에서 선 빈혈증의 소년, 그리고 한 자라도 더 눈여겨두려고 늘어앉은 어린 아이들―이것을 한 번 논 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수택은 이 초라한 교실에서 이십 년 가까운 옛날을 연상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십 년 전 그대로였다. 칠판도, 사람도, 아이들도, 변한 것은 오직 자기뿐이다. 그때의 그 정열을 잃었고, 그만큼 약해졌고 공리적으로 변한 자기가 있을 뿐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과 배우는 사람의 생각도, 이십 년 전 그때와 추호도 다른 게 없을 게며 또 달라질 수도 없을 것이었다. 한 자라도 더, 그리고 잘 가르치자, 한자라도 더, 그리고 또 빨리 배우자―이 진리에 연대가 하관이며 시대 변천이 하관이랴! 오직 거기에는 배우려는 저열과 가르치려는 정열이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수택 등이 이려서 심심파적으로 한 ‘교육사업’이 그후 그들의 실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던가를 이십 년 후 지금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집금도 수택은 그때의 야학생들에게서 몇 버너이나 이런 말을 들어오던 터이었다. “참, 그때 그나마 안 배웠더라면 지금쯤은 얘기책 한 권 못 볼 뻔했어유. 그때 중간에서 그만둔 사람들은 지금두 앉으면 한을 하는데유.” 지금 생각해도 좋은 일을 했다 싶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 누가 그런 생각을 하랴 했었다. 첫째 그 자신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터였었다. 그후로는 김 소년과 자주 만났다. 석유만은 아이들이 매달 삼전씩 보태서 사나, 분필과 기타는 김 소년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만은 자기가 떠안았다. 가르치고 싶은 정열에서가 아니라 그런 용기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대한 서글픈 동정에서였다. “그밖에라두 뭣이구 군색한 게 있거든 와 말을 하렴. 큰돈 드는 게야 낸들 어쩔 도리가 없지만…” “뭘요, 기름하구 백분만 있으면 겨울은 나유. 나무는 저희들이 날마다 삭정이를 한개피씩 들구 오니까요. 그보다두 아이들이 통 굶어서요―하루 죽 한 끼두 못 먹는 아이들이 파다한걸요. 뭐. 선생님 댁 바루 옆집 정 서방네 아이들도 요샌 통 굶구 다니나 봐요.” 김 소년은 이런 말을 하며 소년답지도 않게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정 서방 집이란 늦은 가을에 닭 두마리를 살쾡이한테 죽이고 닭국을 가져오던 바로 그의 옆집이었다. 그 송아지처럼 위하던 닭을 두 마리나잡아죽인 살쾡이를 못 잡아서 겨우내 애를 박박 쓰는 심정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김 소년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마음에 사무쳤다. 뻔히 굶으면서도 여전히 책보를 끼고 늦도록 그 찬 방바닥에 앉아서 한 자라도 더 배우겠노라고 눈이 발개서 덤비는 정상이 딱하다 못해서 되려 밉기까지 했다. ‘그걸 배우면 뭐 그리 잘된다고 그렇게까지 들 하는 겐고?…’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 가상한 닭을 얻어먹고도 시치미를 떼였나보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수택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정 서방을 불러서 쌀 한 말을 퍼주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아요… 인저 낼부턴 구제 공사가 시작이 되니까 벌면 팔아먹을 걸요.” 정 서방이 굳이 사양하는 것을 수택은, “사양두 두 번 이상 하면 변덕이라우. 받어두슈. 그리구 그놈의 살쾡이 잡을 궁리나 차리시구려.” 이렇게 웃음엣말을 해서 말문을 막는다는 것이 정 서방의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다. 그는 살쾡이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이를 북 갈며, “염려 마시유. 내 어떻게 하든지 그놈의 살쾡이를 살려둘 줄 아시유…한 마리만 그랬어두 내 참아요. 저두 오죽 먹구 싶어야 초가을부터 눈독을 들였겠어유. 허지만… 안 되지유. 제 목숨에 못 죽을걸유! 못 죽지!” ―수택은 여러 친구들로부터 그의 소설은 언제나 뼈가 너무 앙상하니 드러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결점이라는 평을 들어온 터라 그는 이번 장편에서만은 동리에서 생긴 이런 삽화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다가 살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6 == 봄비치고는 철이 좀 이른 것 같아서 또다시 으르르 얼어붙으면 보리마저 바닥 다 본다고 밤새도록 걱정들을 했던 것이 다행히 비가 개이면서 그대로 날이 확 풀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어디서고 종달새의 소리가 들려오기나 할 것처럼 다정한 맛이 느껴진다. “이대로만 간다면 보리는 먹겠군.” 동리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가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든 세대가 바뀌든간에 벼가 잘되고 보리가 얼어죽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기어다니거나 날아다니거나 그런 것도 그들에게는 인연이 없는이야기다. 오직 배불리 먹고 추운 때는 따뜻하게 더운 때는 시원하게 입으면 그만인 것이다. 양지바른 밭둑에 냉이잎이 파아랗게 돋아나고 솜옷 입은 등떠리에 소몰소몰 땀이 솟기 시작할 때는 춘경(春耕)준비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겨우내 외양간에서만 웅숭그리고 앉았다 섰다 우기우기 반추(反芻)만을 일삼던 소가 마당으로 끌리어 나간다. 농부들은 몽당싸리비를 들고 겨울 털빛이 변해보이도록 쌓인 소 등의 먼지를 쓰윽쓰윽 쓸어준다. 그러면 소란 놈은 생기가 난다는 듯이 꼬리로 제 엉덩판을 치며 혀끝으로 콧구멍을 쓱쓱 핥아낸다. 흙을 파제키는 닭의 발도 한창 바쁘고 흰둥이란 놈이 번듯이 누워서 양지받이를 하던 울타리 밑 풍경도 한결 한가로워 보인다. 이런 즈음이면 반드시 앞집에고 뒷집에서, “꼬댁 꼬댁 꼬댁댁…” 하고 알 낳이하는 암탉의 환성이 나른한 춘곤(春困)을 깨뜨려준다. “봄이군!” 하고 수택이도 거의 다 끝나가는 소설을 쓰는 마음도 바빠진다. 이제 한 삼사십 매만 더 쓰면 손을 떼겄건마 그동안이 더없이 안타까웠다. “나도 빨리 논길이두 하구 김장밭두 부치구. 밭이랑도 세워놔야지!” 그는 제법 의젓한 농군처럼 이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수택에게는 이 봄이 더없이 즐거웠다. 일평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뿌리고 하는 기쁨으로 봄철이 마치 그 무슨 절대의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은근히 기다려졌던 것이다. 몸이 우둔할만큼 껴입었던 내복이며, 솜바지저고리를 훌훌 벗어 내던지고 사랑하는 처녀의 손길처럼 포근한 양광(陽光)의 애무를 받아가며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가 감추어진 흙을 척척 갈아붙이는 기쁨, 삼십 년간 가죽에 싸여져서 흙과 접촉해보지 못하던 맨발로 징검징검 고랑을 타넘으며 씨를 뿌리는 행복―아런 것을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아니 일생의 절반을 돌 위에서 살아온 이 도시의 청년은 춘경(春耕)이라는 두 글자에서만도 형언치 못하는 매력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 인간층이 싫건 좋건간에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운명지어진 사람들에게 즐기어 사용하는‘노동의 신성’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었고, 일찍이 그가 품고 있던 도시생활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된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농터가 아니요. 자기 손으로 가꾼 곡식이 아니건만 누우렇게 익은 곡식을 보고는 푸근해하는심정과도 비슷한 그런 무조건의 기쁨이었고 환희였다. 이러한 그의 기쁨은 두푼 정방형의 좁은 칸살이 빽빽하니 들어박힌 원고지에서 해방되던 날 그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저녁에 정 서방과 일을 맞추어놓고 돌아와서도 그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어렸을 때의 섣달 그믐날 밤과도 같은 흥분이었다. 무한한 행복이 그대로 쏟아질 아침을 기다리는 초조다. “여보. 당신두 우리 같이 나갑시다. 나는 갈아붙이고 다아신은 흙을 고르고 나는 씨를 뿌리면 당신은 덮고…” 그는 마치 사랑하는 시구(詩句)아 외듯이 이렇게 말하고는, “필년아, 너두 낼 아빠하구 엄마 따라서 씨부리러 간다구?” 필년이는 바느질을 한다고 꿰매는 시늉을 하던 손을 쉬고 빠안히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쪼꼬레트 사줌 가지.” “쪼코레트?” “응.” “허, 농군의 딸 입에 쪼꼬렛이 당한 개냐. 엿 사주지, 엿. 깨엿 말야, 응.” “나 엿.” 자는 줄만 알았던 상현이란 놈도 발딱 일어났다. 수택 부처는 어린것들이 잠이 든 후에도 늦도록 생활설계를 했다. 액속대로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선불해준다면 사백원의 모개돈이 들어온다. 거기에 정편을 쓰는 여가에 마련한 단편 두 편과 편지 형식으로 된 잡문이 한 편, 무두 합치면 그럭저럭 오백원은 될 것이었다. 그 오백원으로 마땅한 것이 나면 논을 서너 마지기 사든가 밭을 몇뙈기 사기로 했다. “참. 내 벌써부터 이야기한다면서…” 그의 처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저기요, 우리 장 말이요, 양복장하구 이불장 말야, 팔아버릴까?” “건, 왜 갑자기, 누구 소설대로 다 팔아가지구 서울루 달아나려우?” “그럴 용기나 있다면 오죽 좋겠수.” 하며 아내는 웃는다. 수택은 언제나 자기 처의 웃는 입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희미한 불 속에서 그 흰 이를 내다보이며 나긋이 웃고 보니 더한층 아름다웠다. “당신은 웃으며 참 이뻐.”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하고 나서.“왜 누가 사잡디까?” “심구영 씨 소실이 여간 탐을 내잖어요. 접때 일부러 양복장을 살랴고 읍에까지 갔더라나. 그랬더니 모두 너절해서 그냥 왔대. 두 개 몰아서 일백오십원 주겠다니 팔아버릴까?” “걸 팔아치우면…” 그는 일백오십원이란 말에 구미도 당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사 년 전에 두 개에 팔십원을 준 것이었다.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난 이렇겠으믄 좋겠어요. 기왕 시골 와서 농사질랴믄 정말 농군처럼 그런 세간 다 팔아치우구, 이 집두 이삼십원은 다 받겠다니 남한테 넘기군 아버님네하구 합소를 하지. 골방을 우리가 쓰구 당신은 사랑 윗방을 내라구 해서 쓰시구려. 말만 세간이지 뭐 들여놀 데가 있나, 봉당에다 놔두는 거, 게 발에 편자지.” 아내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이제 농사철 접어들었으니 어느 하가에 책상 파에 앉아보랴 싶기도 했고 집이구 뭐고 다 쓸어 팔면 그럭저럭 팔구백원 돈이 되는 셈이니 그것으로 땅뙈기나 마련하는 것이 상책일 것도 같았다. “그까짓 거 테이블이구 의자구 다 쓸어가라지. 농구 녀석이 회전의 잔 있어 뭐하겠수.” “그렇잖어두 심구영 씨 소설은 찻종하며 다 탐을 낸다우! 심씨가 지금첩한테 홀딱 반해서 그러니까 그런 동안에 살림이라두 장만하잔 수작이지 뭐유.” 심구영이란 포목, 잡화로 이 동리서 돈푼이나 모은 오십객이었다. 그런 거추장스런 세간을 처리하는 데 수택이는 물론 이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하기는 하나 그래도 여자 마음을 생각해서 찬장이니 얌전한 그릇 같은 것은 남기고 거추장스러운 것만을 넘겨주기로 하고 잠을 든 것은 자정도 훨씬 지나서다. 그러나 눈을 붙인 지 얼마가 못 돼서 그는 또 깨었다. “필년 아버지, 주무셔유.” 하고 정 서방이 울타리 밖에서 소리를 친다. 수택은 몸재게 허리 골춤을 움켜쥔 채 뛰어나갔다. 며칠 달인 뜨느라고 동편 하늘이 막 훤하다. “정 서방요?” “야. 이거 주무시는 줄 알았더면 안 올 걸 그랬어유.” “웬걸요. 아직―” 하며 삽짝을 열고 나가려니까,“이거 좀 보셔유! 이눔 좀.” 하고 뭣인지 시커먼 놈을 눈앞에다 풀쑥 다민다. 수택은 덧없이 주춤하고 물러섰다. “게 뭐요?” “뭔가 봅쇼! 흐흐흐흐.” 하고 좋아서 웃는다. “거, 괭이가?” “흐흐흐흐… 고양이요? 천만에요, 아주 어젓한 살쾡이올씨다유!” 하면서 살쾡이를 다시 한번 번쩍 들고 아래위를 쓱 훑어보며, “이눔! 네가 내 닭을 잡아죽이구 무사할 줄 알았드냐! 이눔, 흐흐흐흐…” 허들겁스럽게 한참을 웃어붙이고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덜컥합디다유! 그래 잠결에두 뛰어나와 봤더니, 아, 이런 놈 좀 봐유, 모가지가 요렇게 덫에다 치어가지곤 ‘캐캐’ 하겠지유! 그래, ‘네 요놈, 잘 만났구나.’하군 지겟작대기루 해골을 한 번 후려갈겼더니 그저 외마디소릴 ‘캥―’하구질르곤 발버둥을 칩디다유! 그래…” 정 서방은 이렇게 한참이나 늘어놓고야, “주무시는데 이거 참…” 하고는 살쾡이를 추썩대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러구러 잠이 든 것은 첫닭이 울고도 한참이나 있어서였으나 깬 때는 몸도 그리무겁지 않았다. 여자들이 생명같이 여기는 방 세간을 자진해서 처리해버린 일이며 정 서방이 겨우내 치를 떨며 통분해하던 살괭이한테 복수랄 한 일이며 그에게는 다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쾌한 일은 일평생 처음으로 씨를 뿌리러 가는 그날 아침은 또한 금년 저어들고서는 가장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정 서방은 새벽같이 달려왔다. 그는 그래도 이야기가 다 끝이 못 났는지 간밤의 이야기를 밥을 먹으면서도 하고 하고 한다. “그까놈의 닭 몇 마리가 아껍다느니보다도 그놈의 소위가 괘씸하단 말이거든요!” “하여튼 분풀이는 잘했쇠다. 그깐 살쾡이란 놈한테까지 분풀일 못한다면 억울해 살겠소.” 수택이도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수택은 집으로 내려가서 상태도 끌고 왔다.상태는 요새 갑자기 고향을 뜰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도회 생활의 환멸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달래도 보았고 을러도 보았다. 그러나 농촌에서 생활 유지가 안 된다는 것은 그보다도 상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태는 고향에 돌아온 수택이를 은근히 비웃고 있는 눈치다. 그는 다시 그 길로 해서 구장 집에 가서 소를 얻어 몰고 큰집에 들러서 쟁기도 소 등에 얹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벌써 며칠째 몸살도 누워 있는 터였다. 웬만한 병에는 꾹하니 드러누워 있지 못하는 김 영감의 성미에 더욱이 오늘은 수택이가 처음 씨뿌리는 날이고 보니 웬만만 하면 툭툭 털고 일어서련만, “정 서방더러 잘 알아서 하라구 그래라.” 이불을 벗기지도 않고 한마디 할 뿐이다. “네.” 수택은 병들어 누운 아버지를 본 일이 없던 터라 우울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않으리라고 박 주부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달이도록 상태한테 일러만 두고 부리나케 동리 뒤 개울의 징검다리를 뛰어 건넜다. 상태가 박 주부를 데리고 진맥을 하려 했을 때 김 영감은 웬일인지, “아니다. 약이 무슨 약. 내가 어디 몸이 아퍼 그런다더냐!”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었다. 의원 뿐이 아니었다. 손자고 며느리고 아내고 일체 방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안으로 문을 걸어잠그고는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 온 집안이 겁을 집어먹고 수선을 피우니까. “왜 이렇게 수선들을 대는냐. 잠 좀 자게 내버려둬라.” 하고 고함을 치는 것이다. 문 밖에서 서성대던 가족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 영감은 자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거동을 못할 만큼 병이 난 것도 아니었다. 삼사 일 동안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 오직 매적지근할 뿐이었다. 아무도 김 영감의 병 원인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해동이 되면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간다. 동구를 빠져서 대장간 앞을 왼쪽으로 꼬부라지면 천변으로 나선다. 개울을 건너서면 조그만 아카시아 숲이 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모르게 이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에는 잔솔 여남은 개가 섰고 사람 하나 숨겨줄 만한 반송도 한 개 섰다.―이 반송 밑이 그가 매일시간을 보내는 자리였다. 먼저 그는 숲속에 들어서면 이 반송 밑으로 온다. 대개는 반송 밑에 두 무릎을 세우고 무릎을 끌어안아서 깍지를 낀다. 그러고는 우두머니―무엇을 보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조는가 하면 조는 것도 아닌 자세로 언제까지나 한 곳만 내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얼굴은 지극히도 행복스럽던 옛 꿈을 더듬는 것같이도 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그는 최후를 장식하는 자기만의 추억에 잠겨 있는 것같이도 보인다. 웃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니다. 격하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의 평온을 얻은 사람의 표정도 아닌―그런 때가 많았다. 그는 오직 앉았을 따름이요 앞을 내다볼 뿐이다. 그는 별로 동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꺼리었다. 어쩌다 누가 그리 지나다가, “어째 치운데 거 와 그러구 계시유?” 하고 물을라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누구 말이 이 숲속이 집터가 좋대서 보고 있는 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기 싫으니까 그는 자기가 거기와 있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아카시아 숲에서 두 다랑이 건너에 이미 완전히 한 장의 휴지가 되어버린 그의 사랑하던 땅이 있는 것이다. 그의 반생―아니 육십 평생을 완전히 바친 논과 밭―그러나 그것은 이미 남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소유권이 이전된 데만 그치지 않고 소작권까지도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저 논다랑이와 뽕나무가 둘러선 밭은 확실히 내 땅이었다. 그것은 이 동리 사람들이 다 잘 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나는 손을 대어도 안 되고 씨를 뿌려도 안 된다…황차, 이 땅에 심은 곡식이랴…” 이렇게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의 김 영감이었다. 더욱이 이번 비로 해서 논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니 괴어 있었다. 작년 같은 가뭄에도 편작은 된 놈이었다. 꺼뭇꺼뭇한 땅, 홍건한 논물, 가래를 지르기만 해도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 바닥 흙이 철컥철컥 나자빠질 것 같다.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아랫종아리에 흙과 물이 뛸 때의 그 감촉, 띄엄띄엄 소가 발을 드놓을 때마다 철벅거리는 물소리…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늙은 이 농부에게는 논과 밭 가는 사람의 팔자는 그대로 신선이었다. 이런 농부에게 있어서는 흙―땅은 그대로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그것은그대로 종교였다. 이 늙은 농부의 손으로부터 땅은 멀리 떠나갔고 인저는 자기 땅이던 이 기름진 흙덩이를 만지는 자유까지도 박탈된 것이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특권은 오직 자기 땅에 자기 아닌 딴사람이 씨를 뿌리고 김매이를 하고 이듬을 매고 물을 대고 대궁이 척척 휘도록 여문 벼를 베어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볼 수만은 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었다. 김 영감은 마침 오늘 신작인(新作人)인 춘성네가 논갈이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내 땅에 딴놈이 들어선 꼴은 안 보리라!’ 김 영감이 이렇게 결심을 한 데는 조그마한 부자연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김 영감은 역시 흙의 아들이었다. 아니 그는 비열한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제 땅을 남의 쟁기가 들어가 파제키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농부에게는 참을 수 없는 그 굴욕도 며칠을 굶어가며 이를 악문 그 결심도 멀리 풍기어 오는 구수한 흙내만은 어쩔 도리도 없었다. 흙에서 받는 굴욕보다도 흙에서 풍기는 그 향훈이 몇 백 배 그에게는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 ―흙의 완전한 포로가 되어 있는 이 늙은 농부는 모든 굴욕감을 물리치고 오직 흙내를 더듬어 헌청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시금 아카시아 숲속에 나타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든 그에게도 햇살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는 언제나 앉는 그 자리에 등을 소나무에 기대고 벌을 향하고 앉았다. 상방 십리라는 샌골 벌은 농부들로 찼다. 소 모는 소리와 방울소리와 철벅이는 물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들려온다. 겨우 알아볼 만한 위치에 수택이네도 보였다. 수택이는 머리에다 수건을 질끈 동이고 쟁기질을 하고 있고 정 서방은 밭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밭머리에는 자기 아내가 상현이 남매를 데리고 놀고 있고 서울 며느리는 얼굴도 잘 안 보일 만큼 수건을 푹 내려쓰고 고무래로 흙덩이를 바수고 있었다. 수택의 처는 그래도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수택의 쟁기질에는 소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가끔 우두머니 서서 쟁기가 바로 대어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억지로 그린 자유화(自由畵)와도 같은 것이다. 쟁기가 빗가면 정 서방이 담뱃대를 문채로 이러구저러구 가르치는 모양이다. 바로 그의 앞에는 일찍이 자기의 땅이던 논에 춘성네 부자가 신이 나서 거름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지금 거기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뽐내느라고 더 떠들고 퉁탕거리는 것만 같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 춘성네 부자가 더없이 얄미웠다. 미운 대로 한다면 당장 뛰어들어 가서 아비와 자식을 논구럭에다 거꾸로 처박고 짓밟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흥, 되잖은 놈들! 그놈들 아주 제 땅이나 되는 상싶은가베! 아니꼽살스런 놈들 같으니루!” 무엇이 되잖은지 무엇이 아니꼬운지 모른다. 그러나 김 영감한테는 그렇게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수택이가 뭐라고인지 외마디소리를 쳤다. 영감은 깜짝 놀라서 그쪽을 건너다보았다. 소도 쟁기질꾼을 업수이 여기는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자국도 안 떼놓는다. 정 서방과 수택의 처는 옆에서 깔깔대고 있다. 정 서방이 쟁기를 내라고 그러는 모양이나 수택은 고집을 세고 소만 몰구친다. 겨우 소는 움직였다. 그러나 소는 또다시 딱 섰다. 쟁기는 쟁기대로 놀고 소는 소대로 가고 사람은 사람대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쟁기가 사람을 끌고 가는 형상이었다. 이런 꼴을 얼마동안 바라다보고만 있던 김 영감은 이상한 마음의 충동을 받아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기가 벌써 며칠째 변변히 먹지도 않고 누워 있던―그나마도 환갑이 지난 늙은이라는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그는 벌써 병자도 아니요, 굶은 사람도 아니요, 늙은이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농부였다. 비열할 만큼 충실한 ‘흙의 노예’였다― 그는 허우단심 쫓아가서 아들의 손에서 쟁기를 뺏이들고는 신이 나서 흙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 봐라. 쟁기날을 이렇게 대고는 사람은 여기 서야지. 그래야만 소가 힘을 제대루 쓰지. 사람이 한쪽으루 기울어져 노면 소가 한쪽에만 힘을 써야잖는냐. 정 서방, 자넨 골을 치게. 얘, 아가. 고무랜 또 없느냐!” 지금의 그에게는 굴욕도 없었고 흙에 대한 원한도 없었다. 오직 기뻤고 즐거웠다. 육십 평생을 두고 한결같은 충성을 다해왔건만 또 한결같이 육십 년을 두고 모욕하고 혹사(酷使)해온 나머지 핏기 하나 없는 늙은 병든 육체만을 그에게 떠안긴 흙이건 마는 그 흙에 대해서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그는 지난 육십 평생에 땅을 치며 울기도 했었다. 원망도 해왔고 저주도 해왔다. 그 극진한 충성에 비해서 너무도 가혹한, 너무도 알아주지 않는 흙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격분도 느껴왔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에 넘쳐흐르고 있는 감정은 오직 흙에 대한 감사였다. 그는 그만큼 흙을 사랑했다. 아니 그만큼 그는 흙의 너무나 충실한 노예였다. == 7 == 한식(寒食)이 지난 이후의 농군들에게 있어서 된내기가 올 때까지의 팔구 개월 동안은 터진 모래 제방(堤防)을 막는 것과도 같이 눈코 뜰 사이 없는 그날그날을 보낸다. 봄보리밭에 호미질을 하기가 무섭게 논갈이에 이어 거름내기가 시작되고 연달아서 못자리를 붓는 한편 밭을 일구어야 하고 밭곡의 파종이 끝나기도 전에 벌모 내기가 시작된다. “박 서방, 낼 어디 일 마쳤지유?” 그들은 해만 지면 이렇게 일꾼 얻기에 바쁘다. 일꾼을 어어야 하고 일꾼을 얻어노면 이집 저집 다니며 쌀, 보리를 꾸어야 한다. 일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기쁜 날이니 하다 못해 북어 꽁댕이 하나라도 찢어놓아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요 또 관습이다. 그들의 농사란 생나무 휘어잡기다. 억지 춘향으로 끌어내고 꾸어대고 휘어잡고―마치 아닌밤중에 물난리나 치르듯이 모심이를 끝내노면 또 딴쪽 일고가 터진다. 채소밭도 손질을 해야 하고 기장이나 수수밭도 매주어야 하고 논에 물도 끌어야 한다. 철맞추어 참외포고 심어야 하며, 밭골에 강남콩에 새새 묻어두어야 한다. 논둑의 그루콩은 누가 심어주며 엉터리로 끌어다댄 일꾼은 누가 앗아주나. 파 한 뿌리, 마늘 한 쪽까지도 자기 손으로 심어야 하고 매주어야 하고 가꾸어야 한다. 심지어 옥수수, 깨, 아주까리 같은 일용품까지도 제철에 손을 못 대면 알톨 같은 벼를 주고 바꾸어 들여야 한다. 이 무섭게 많은 일거리가 한 집에 하나 아니면 둘밖에 없는 농군의 손을 거쳐야 하는 터라 마치 손을 떼기도 전에 일꼬가 터져 마음만 바쁜 때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걷어 챙겨놓고 추운 삼동은 뜨끈하니 불을 때고 드러누리라.’이렇게만 단순히 생각해온 수택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봄을 지냈다. 물론 농촌생활이라고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것쯤은 생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 한 것은 사실이었다. 씨를 뿌리고 한두 번 매주고 그러고 걷어들이면… 그만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택 부처는 당해보고서야 알았다. 돈만 있으면 가지고 나가서 쌀도 사고 기름도 사고, 고기·파·마늘, 무엇이고 사오분이면 광주리에 담아들고 들어오던 도시 생활의 고마움을 그들은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그러나 자급자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촌에서는 그 허다한 생활품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손으로 시어야 했고, 가꾸어야 했고, 걷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걷어들인 그대로 먹는 것도 아니다. 말려야 했고 찧어야 했고 까불러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불리한 조건은 모든 일에 서투른 점이었다. 그만큼 애도 더 키었고 노력도 더 들었으며 시간도 더 요구되었다. 이렇듯 일에 치여서 경황이 없는 그들에게 또 한 가지 일이 덮쳐 있었던 것이었다. ―봄내 개량개량하던 김 영감이 모내기를 한 길로 그대로 싸매고 눕고 말았던 것이다. 수택 부처는 아침 저녁은 물론 논이나 밭에 나갔다가도 몇 차례씩 들어가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수택이네도 딴집 살림을 계획대로 걷어치우고 합소를 하고 있었다. 신문사에 교섭중이던 소살도 달포째 살리는 중이었고 고료도 반만은 손에 들어와 있었고 집이 예상 외로 일백구십원이나 평가가 되어 그의 수중에는 이럭저럭 팔백원 돈이 있던 터라 쓸 만큼 약도 써보기는 했으나 김 영감의 병은 시약(施藥)만으로 완치될 병은 아니었다. 김 영감은 생리적으로 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큰 병을 얻고 있었다. 그 사랑하던 땅에 대한 억제할 길 없는 미련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했고 괴롭게 했고 드디어 생리적으로까지 이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수택이는 김 영감이 눕는 그 길로 이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들의 시약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내 병은 약으로는 안 된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아들의 돈을 없애주는 것이 딱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었다. 또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지난 때 거의 정신은 못 차리면서도 김 영감은 논 구경을 간다고 온종일 애를 먹었다. “수택아, 자, 날 좀 일으켜라. 내 병엔 약보다도 그게 더 낫다. 구수한흙내. 퍼언한 들. 익어가는 보리…”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얘들아, 모싹이 어떻든? 자꾸 돌아봐라. 곡식이란 갓난애와 같으니라. 갓난앤 물기나 하지. 얼마 안 있어서 강충이가 생긴다. 고놈 참 귀신같이 파먹느라. 이번 맬땐 암모니알 푹 질러둬라, 응?” 하고 딴소리를 한다. 아픈 곳도 어딘지 통 집증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허리가 끊어진다고 소리를 지른다. 또 어떤 때는 팔다리가 쑤시어서 옆에서 보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못견디어한다. 그런가 하면 열이 바쩍 오르고 또 어쩌다 보면 전신이 얼음처럼 차다. “여기다, 여기! 아규규…” 이렇게 하소연을 하며 가리키는 곳은 분명히 허리다. 그러나 병자 자신 어디가 아픈지 적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밖에, 전신에 안 아픈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모양이었다. 육십 년간의 긴 노동에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그의 육체는 성한 데가 없이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강단으로 버티어왔다. 살려는 욕심과,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당장 일하지 않으면 조석 끼니가 간데 없다는 무서운 긴장으로 버티어온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오랜 동안의 긴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긴장이 일시에 확 풀려버린 것이다. 땅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갔고 작권까지도 잃어진 오늘날 긴장은 그 자신의 심신을 파괴시키는 이외에 다른 아무런 성능(性能)도 갖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수택은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의무적인 사랑이었다. 자식 된 자 마땅히 어버이를 공경해야 한다. ―이러한 도덕이 요구하는 극히 제한된 애정으로 김 여감을 사랑해온 것이었다. 이전― 그가 직업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되려 경멸해왔었다. 아니 그것은 경멸이라고 이름질 성질도 못되었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경멸이란 존경의 반동이니까. 그는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존경해보겠다고 생각한 일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농부의 아들 ― 양복을 입고 동경유학을 하고 이름이 신문에도 나고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르고(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기가 두더지처럼 일평생 흙만 파는 일개 무지한 농부의아들이라는 데 일종의 모욕까지 느끼어온 수택이었다. 양복때기만 입은 사람 앞이면 그저“네, 네”하고 굽실거리는 것은(김 영감 자신은 똥이 무서워 피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최근까지에도 수택은 그가 오직 무지한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자기의 위신이 깍이는 일이라 했었다. 남의 아버지처럼 책이나 보고 장죽이나 물고 앉아서 호령이나 하고 남을 보고도 “여보게, 여봐라!”하며, 호호 백발의 노인을 보고도 “자네, 어쩌구, 어쨌나?”하는 그런 아버지가 못 되고 일평생 흙만 파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할 아무런 의무도 그에게는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새파랗게 젊은 애들한테도 ‘허우’를 하고 또 그런 아이들한테서 반말지거리를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는 자기 아버지를 그는 일종의 군더더기로까지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아니었다. 물론 다른 부자간들처럼 아기자기한 애정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적어도 자기 아버지가 자기의 위신을 해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은 깨닫고 있었다. 비록 땅은 팔지언정 김 영감은 훌륭한 철학자였다. 그 자신과 같이 김 영감을 업수이 여겨온 모든 인가보다는 분명히 그는 위대했다. 오직 근면하고 오직 겸손하고, 그리고 오직 청렴한 일생에. 일년 동안에 십전 미만의 용돈을 쓰면서도 ‘거지〔乞人〕도갓집’이라는 별명을 일평생 면치 못했으리만큼, 거지들의 시중을 든 일이며 자기 물건을 훔치러 온 도적을 때렸다고 자기 아들을 사그리 내려 퍈 시설이며, 하루 밥 세 끼를 끓이는 이외의 재물을 탐하는 것은 욕심이라 하고 모든 채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런 모든 것은 지금 유식한 아들로 하여금 무식한 아버지를 재인식시키는 좋은 자료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지금 수택의 가슴속은 아버지에게 대한 새로운 감격으로 차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존경해온 그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도 일개 무식한 농부인 자기 아버지한테 감격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구하자 했다. 그는 지금 일시적인 감격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 애지중지하는 삼십 평생에 처음 만지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팔백원의 ‘큰돈’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과 이름과 지위를 일시에 몽땅 잃어버린대도 조금도 사양치 않으리라 했다. 아버지의 ‘무지’는 자기의 ‘학문’보다도 몇십 배 아니 몇 백 내나 값이 있다는 것을 이 아들은 뒤늦게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네, 아버지.”하고 그는 며칠을 두고 김 영감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 맘을 돌리시구 약도 좀 잡수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겠습니다.” “땅을 찾아?” 김 영감은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찾지요! 지금 제게 천원 돈이 있잖습니까. 인저 신문사에서 또 돈이 옵니다. 지금 사기로 매마지기에 일백삼사십원이면 되니까, 우선 이 달 안으로 열 마지기만 찾지요.” “그 사람이 큰 부자라는데 그 땅을 팔까?” 김 영감의 말에는 금시로 생기가 났다. “판답니다!” 수택은 거짓말을 했다. “되판대?” “매평에 오 전씩만 남겨주면 지금이라두 판답니다!” “오전씩 이오 십―한 마지기에 십원이로구나! 얘,사자, 그럼! 위선 아카시아 숲 앞의 여덟 마지기라두 찾자!” “그러구 나머진 필년 어미가 저 집에 가서 말을 좀 해본다구 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또 그만한 여유가 있는 집도 못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안위시키기 위해서는 이만 거짓말쯤은 주저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영감은, “필년 어미가 말이냐?” 하고 다지더니만, “에이끼, 못생긴 자식! 요대루 굶어죽으면 죽었지 사둔한테 손을 내밀어!”하고는 그대루 홱 돌아누워버리는 것이다. 수택은 인사하다가 뺨맞은 격이었다. 그래서 터진 모래둑을 막듯이 변명을 했다. 처는 그렇게 말하나 자기는 단연코 거절을 했다. 이렇게 꾸며대는 도리밖에 없었다. “잘했다.” 얼마 후에는 김 영감도 기분을 돌리었다. 만일 그날 밤, 여기에서 이야기를 막음하고 수택이가 쓰러져 자기만 했었더라면 혹 어땠을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감격에 잠긴 아들은 어쩐지 그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약을 잘 잡수셔서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그래야만 약값도 덜 든다. 약값을 아끼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이렇게 약을 쓰도록 강권했던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김 영감은 자기 아들의 이렇듯 알뜰한 애정을 칼로 치는 듯이 거부했던 것이었다. 센터 벌의 벼가 한참 어울리고 보리가 구수한 내를 풍기며 익어가던 어느 날 밤, 김 영감은 고달프던 일생애를 청산하기 위해서 쓴 잔〔盃〕을 들었던 것이었다. 써도써도 낫지 않는 병에 그 소중한 돈을 자꾸 퍼넣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이 단념을 해서 약을 쓰는 한 푼이라도 수택으로 하여금 땅을 찾는 데 보태게 하리라―이렇게 생각을 하고 김 영감은 자진해서 생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가 고달프던 생을 청산한 데 쓰여진 약은 양잿물이었다. 그것은 이른 봄, 그가 자리에 눕던 바로 그날 심구영네 상점에서 사다 두었던 것이었다. 수택이가 약그릇을 발견한 것은 시간도 모르는 밤중이었다. 그는 김영감의 고민하는 소리에 눈이 뜨여 아랫방으로 뛰어내려갔다. 원근 다량이었다. 몇 시간 후에는 혀가 굳었고 생선 내장 썩은 물 같은 불그레한 피가 입으로 철철 흘러넘쳤다. 그는 몇 번이나 아들과 손짓을 해서 불러놓고는 말도 한마디 하지도 못한 채 숨을 걷고 말았다. “찾어―땅―” 정신은 멀쩡한 모양이다. 그는 혀가 헤어져서 말은 못하나 연방 손으로 머리맡의 궤짝을 가리키었다. ‘휴지’가 들어 있는 오동나무로 짠 궤짝이었다. 전화를 해서 공의가 달려온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그러나 그때 김영감은 이미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의는 손을 댈 여지도 없다고 했다. 김 영감이 숨을 거둔 것은 그날 밤중이다. 꼭 돌 만이었다. == 8 == 모든 것이 꿈이었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어떻게 산에서 돌아왔는지 수택에게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장례가 지나고도 십여 일 간은 집안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꿈 같다. 꿈이었던가 하고 나면 꿈이 아니다. 수택은 울음소리를 낸다고 집안 식구를 주장질하면서 자기도 울었다. 그 슬픔은 아버지를 생각하는아들의 슬픔이기도 했지마는 ‘학문’을 조상하는 ‘무지’의 슬픔이기도 했다. ‘무지’를 경멸해온 ‘학문’의 참회였다. 수택은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이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조카 상태만이 신푸장하게 매일 들에 나갔다. 상태는 아직도 농촌 탈출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되려 최근에 와서 더욱 그런 결심을 굳게 한 모양이었다. “너두 생각이 없는 아이지, 할아버지나 생존해 계시다면 또 물라도 집안이 이꼴이 되는데 너만 쓱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된단 말이냐?” 이렇게 사정을 하듯이 하는 수택의 말에, “그럼 집에만 엎드려 있으면 뭘해유! 작은아버진 몰르시니까 농사 농사 하시지만 제 땅 가지구 농살 지어두 안 되는게 남의 땅 소작을 해서 우리 십여 명 식구가 먹구 살어유?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수택이도 더 할말이 없었다. 간다면 어디고 보내리라 했다. 나는 도시에서 기어들었으니까 너는 한번 도시로 나가보아라 했다. 그래서 네가 다시 농촌으로 기어들든지 내가 다시 도시로 기어나가든지 사람은 체험을 해보아야 안다했다. “그러나 난 이 동리에서 단 한 발자욱 움찍두 않을 게다!” 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땅을 찾는 것이 내 일생의 사명이다. 매 평에 일원은 고사하고 오원이 간다더라도 찾으리라 했다. 아버지는 내게 그것을 당부하고 가셨다. 믿고 가셨다.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도 바치셨다. 이 아버지가 어디가 무식하냐! 했다. ‘어디로 보나 소설줄이나 끼적이는 자식한테 멸시를 받을 존재냐!’ 수택은 벽에 걸릴 노출(露出)도 분명치 못한 김 영감의 사진을 쳐다보며 이렇게 마음에 부르짖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방안에 엎드려 있는 동안에 수택은 금후의 방침을 딱 세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장만했던 땅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 시가(時價)로 약 삼천원어치다. 지금그의 수중에는 약 팔백원의 현금이 있었다. 신문사의 고료가 마저 왔었고 장례에는 이백원 돈도 다 못 들었다. 그러나 그중 약 반은 부의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팔백원이나마 살리리라 했다. 그는 먼저 현재 이 집을 조그만 집과 바꾸기로 했다. 장터 한복판에 이렇게 거추장스런 집을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제 지단이 끼어 있으니만큼 육칠백원 시가는 되었다. 이것으로 구석진 집을 산다면사오백원은 떨어졌다. 일천삼백원이면 우선 아카시아 숲 앞 여덟 마지기 값은 된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그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이야기가 그의 계획대로 아물어지자 그는 심구영을 찾았다. N면으로 통하는 신작로가 그의 바로 문전을 기점(起點)으로 하고 뚫릴 것이요 장터에서 면소로 들르는 길도 그의 집 앞을 지나갈 계획이고 보니 현재 심구영네 상점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자리가 날 것이다. 처음부터 잠자코 그의 계획을 듣고만 있던 심구영은, “참 장한 일이시오! 훌륭한 생각이시오!” 이렇게 찬성을 해주었다. “내 처지가 이렇게 되어 내가 자진해서 청하는 게니만큼 정당한 값을 달라는 것두 아닙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셔서 편의만 좀 보아주십시오.” 수택이가 말한 값은 칠백원이었다. “긴상두 잘 아시겠지만 그 자리가 그만 값은 됩니다. 첫째 제 터전이 삼백 평이나 되구 집이 그만하겠다 터두 좋지요. 그 값에 내맡아드리리다…” 거짓말처럼 이야기는 순조로이 진행이 되었다. 그럴밖에 없었다. 심구영은 영리(營利)에 눈이 밝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가다라하상이 그 논을 되판답디까?” “건 아직 못 알아봤습니다. 허지만 내 심경을 잘 이야기하구 한번 졸라보렵니다.” “글쎄, 그 사람이 놓을까? 땅이 원근 좋아노니까!” 이렇게 말말끝에 읍내 새 지주의 면장과의 사이가 퍽 절친한 사이라는 말이 나서 그는 먼저 면장을 찾았다. 면장은 이전 철도국에도 다년간 있은 일이 있는 비교적 지식계급이었다. 성은 그는 처음 보는 경(慶)씨였다. 경 면장과는 일찍이 안면도 있는 터고 김 영감과도 자별한 사이였다. 이 동리서 김 영감을 존경할 사람도 오직 그뿐이었다. 그러니만큼 이야기는 훨씬 쉬웠다, 그도 역시 수택의 계획에 감동한 빛으로, “긴상 같은 청년이 우리 면에 자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턱도 없이 농촌들을 싫어해서 큰 탈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면에 한한 것이 아니고 우리 국가로 본대도 크게 찬동할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런 의기를 농촌 청년이 본받도록 해달라고 당부당부하며 신 지주한테 보내는 긴 편지도 써주었다.“기다하라상두 기꺼이 응할 겝니다. 값도 산 값으루 넘기도록 잘 말했습니다. 만일 안 된다면 내라두 가 드리리다. 내 말이면 못 떼겠지요. 나와는 전에 철도국에 있을 적부터의 친구인 터니까… 하여튼 긴상 같은 분이 우리 농촌 진흥 운동에 좋은 표본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이렇게 해서 며칠 수 수택은 심구영에게서 현금 칠백원을 받아쥐었다. 그러나 그가 현금을 받기 전에 그의 집은 심구영의 손을 거치어 벌써 제삼자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의 집 일대가 장차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그 자리에는 자동차부가 설치된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던 터였다. 칠백원은 며칠 새에 오백원의 새끼를 쳤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르는 수택은 심구영에게 그 호의를 눈물이 나게 치하를 했다. 사흘 후 수택은 착착 개커서 버들상자 속 깊이 간직해두었던 여름 양복을 꺼내 입었다. 만 일년 만에 입는 양복이었다. 읍에 가서 새 지주를 만나보려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신발에 손질을 하는 동안에 역시 양복을 입고 안마당 한가운데 넋잃은 사람처럼 서 있는 상태를 방안으로 불렀다. “너 언제 올지도 모르니 할아버지께 다녀가거라. 나두 가뵙겠다.” 이렇게 조카한테 말을 하고 자기도 일어서 제청으로 들어갔다. 절을 하는데 그대로 눈물이 좌르르 쏟아진다. 아버지가 한 달만 더 살아 계셨던들 싶었다. 여름 햇살은 아침부터 뜨겁다. 그는 모자를 든 채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로 나왔다. 자동차 정류소 앞에는 그의 가족이 벌써 죽 모여서 있었다. 상태가 기어코 서울로 가는 것이었다. 그의 수중에는 돈 백원이 들어 있다. 그 돈 백원이 없어져도 직업을 못 얻는 때는 두말없이 돌아온다는 조건부로 수택은 몇몇 친구한테 편지도 써주어 보내는 것이다. “그럼 잘 가 있다 오너라. 난 오늘 되돌아와야 할 게니까 떠나는 것 못 보겠다―” “네―” 하는데 상태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히 괸다, “부디 몸을 조심해!” 이렇게 다시 당부를 하고 자전차에 올랐다. 비탈길이요 면소 앞인 터라 길도 골라서 자전차 바퀴가 그지없이 여하게 돈다. 수택은 발에 힘을 부쩍 주어 페달을 밟았다. ==라이선스== {{PD-old-50}} 8f9i9u5r0freodh0j5ixbo8r9jzb16p 사용자:ZornsLemon 2 68363 459728 424351 2026-09-18T07:57:26Z ~2026-50414-47 19751 459728 wikitext text/x-wiki 혹자가 말하기를, 모름지기 현명한 임금은 위기를 헤아려 변란을 다스리고, 충신은 어려운 때를 근심하여 나라의 기강을 세우니, 따라서 비상한 사람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어야 비상한 공을 세울 수 있으니, 무릇 비상한 일은 진실로 비상한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했다. ​ 02년, 한국어 위키백과는 본디 영어판 위키페디아를 좋아하는 자들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설립한 위키페디아의 식민지로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본국 영어판 위키페디아의 유명세를 타고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 위백의 성장을 전후하여 디시인사이드 외진 변방엔 위갤이라는 나라가 생겼는데, 그 또한 시작은 조잡하였으나 몇몇 호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래 질서가 생겨 수준높은 토론문화를 꽃피웠다. ​ 당시 위백의 한 백성은 사료를 조작하여 위키 커뮤니티 곳곳에서 괴이한 설을 퍼트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설을 믿었다. 그 자는 마침내는 위갤을 초략하며 괴이한 설을 퍼트렸다. ​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지식 나누기를 좋아하였으나 식견을 넓힐 정보가 한정되었으니 그 기초는 미약하였고, 몇몇 승냥이같은 자들은 이런 작은 틈을 타서 사람들을 미혹하며 간사한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었다. ​ 그가 위갤을 노략질하니 위갤의 한 호걸이 그를 토벌하여 악행을 밝혔는데, 이때 위갤에서는 필부들부터 호걸들에 이르기까지 그와 위백을 더럽다 여기며 미워하고 조롱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위백을 침입하여 여러차례 싸운 이후 많은 위갤이들이 위백으로 유입되었고 위백은 이들을 양분으로 삼아 더욱 발전해 나갔다. ​ 이 무렵 한때의 작은 공적을 세운 것이 메이라는 자인데, 그는 위백과 위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따르는 자들을 많이 얻었다. 비록 위백이 폭발적으로 세를 불려나갔으나 위백의 관리자 레비는 게으르고 무능하였고 마침내는 신하인 메이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 ​ 위백의 주인이 된 메이는 비록 겸손함을 가장하여 명성을 얻었으나, 좌우의 여러 인재들이 물러서는 동안 스스로 오랫동안 권세를 유지했다고 여기자 교만하여 스스로의 지극히 사치음란하고 방자한 본심을 드러냈다. 또한 스스로 토론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며 토론하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을 천대하였는데, 정작 토론에 임하면서는 자신의 편협하고 졸렬한 식견을 고집하여 누차 분란을 조장하였고, 좌우의 측근들이 간언하면 태도를 고치겠다고 말하였으나, 근본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 메이에게 천대받았지만 여전히 위백의 동력이 되었던 위백 사용자들은 위백 자체가 수준 이하의 관리들의 무능으로 망하면서 그 힘을 잃게 되었고, 토론 문화 역시 거듭된 폐정으로 빛을 잃게 되었다. ​ 그럼에도 메이는 밖으로는 폐정을 거듭하고, 안으로는 음란함을 그칠 줄 몰라 마치 걸주를 보는 듯 하였으니, 결국 권세를 믿고 날뛰던 끝에 분노한 인민들에게 쫓겨 주인의 자리를 와이케이홍에게 물려주었다. 이토록 어리석고 교만하여 음란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던 자는 고래로부터 망.하지 않은 일이 없었도다. ​ 한편 오랫동안 권좌에 앉아있던 메이가 쫓겨난 위백은 혼란이 극심하였다. 이때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와이케이홍은 본디 그림을 그려 인기를 얻고 관리가 된 자였는데, 그 경력이 매우 길고 폐주 메이와는 나이가 같았으므로 서로 친밀한 자였다. 메이는 스스로 주인 자리에서 내려오는 대신 안위를 보장해달라며 목숨을 구걸하였고, 이에 와이케이홍은 권세에서 내려온 메이를 핍박하지 않는 한편, 인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자들에게 권력을 맡김으로서 폐주 메이의 폐정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인민들의 참여는 저조했고 그나마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들 또한 의기만 앞섰으며 이에 대해 조롱하고 원망하는 말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나 과감성은 부족했던 위백의 주인 와이케이홍은 이런 혼란을 중재할 능력이 없었고, 비록 겉으로는 관대한 척 했으나 속으로는 의심이 가득하여 이름이 알려진 자들을 모두 의심하였으며, 오로지 좌우의 관리들을 단결시키는 데에만 힘썼으나 정작 관리들 개개인의 실책을 막지도 못하였기에 위백은 혼란이 가득하였다. 위백은 혼란하고 삭막한 외부 세계를 배격하고 순수하게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였으나, 혼란이 계속되니 급기야는 폐주 메이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폐주 메이의 난정을 극복하겠다는 와이케이홍의 뜻은 기특했으나, 그는 겉으로는 관대함을 표방하면서도 안으로는 모두를 의심하던 자로, 이에 논의하는 사람들의 의혹을 막을 길이 없었으며 결국 혼란함에 쫓기게 되자 마침내 속마음을 드러내며 칼을 뽑아들었으나 이는 헛된 저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에 와이케이홍은 초대 주인이던 레비에게 자리를 양도하려 했으나 그가 받으려 하지 않자, 나 보호민에게 주인의 자리를 넘기고는 위백을 떠났다. 무릇 대형 왕국의 주인이라 함은 외부 사회에 그 권리를 양도하며 간사한 이익을 챙기고 달아나지 않을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이는 한때 흥성하였으나 외부사회의 상업용 간판으로 전락해 버린 위키 소속의 수많은 소국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과거 위백과 비슷한 취지로 설립된 리그베다라는 곳은 한때 수십만 개의 문서를 거느리며 흥성하였다. 7년 전 이맘때쯤 당시 리그베다의 주인이 나를 초대했던 기억은 아직도 눈가에 맴도는데, 지금 그곳은 폐주 청동의 폭정으로 하루에 편집 100개 올라오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거 리그베다의 멸망을 피해 많은 신민들이 피난해 만든 곳이 바로 현재의 나무위키로다. 위백은 리그베다보다 훨씬 큰 곳이라는 것이 당시에도 그러했고 지금은 더욱 그러한데, 주인 노릇 따위 때려치우고 음란지리를 챙기고 싶다는 유혹은 없을 수가 없는 일이며, 그렇기에 주인된 자는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비록 이전의 주인들이 제각기 용렬하고 능력이 부족하였으나 그들이 이런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던 것은 기특하고 갸륵한 일이다. 허나 레비는 스스로 이를 지킬 수 없었음을 알았기에 메이에게 주인 자리를 순순하게 양도하였고, 메이는 이를 지킬 수는 있었으나 지나치게 어리석고 졸렬했기에 주인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와이케이홍은 이를 지키면서 구성원들의 요구에 일일이 영합하려다 의심에 빠져 자기모순 끝에 자멸한 것이다. 세 주인들을 모두 봐 왔던 나는 이상에 근거하여 일찍이 그들을 좋게 여긴 적이 없었고, 위백 자체에 관심을 잃은지도 이미 오래였기에 와이k흥의 양도 제안 또한 진실로 받아들이기 싫었노라. 이전부터 스스로의 심경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기에 이를 알만한 사람들은 불과 몇몇에 불과할 것이다. 그동안 위백을 차례로 다스려왔던 세 사람이 비록 용렬했지만 앞서 말한 도리를 그들이 지켜왔다는 것은 주인으로서 주인될 자격을 갖추었단 것으로 즉 하늘께서 내리신 신성이로다. 본인 또한 그들에게서 신성하고 무거운 의무를 받게 되었으니 하늘이 내려 신성하게 되었다고 여긴다. 세 명의 옹주들은 스스로에 깃든 신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의 탈을 썼기에 어리석은 것이나, 나는 신성을 위하여 사람이길 그만두노니 이젠 스스로를 짐이라 부르고 황제를 칭할 것을 밝히노라. 이제 신성하고 위대한 황제인 짐이 다스리는 위키는 신성-위키0제국이 될 것이다. 나 보호민의 다스림을 받는 위키의 모든 백성들은 이제 신성-위키0제국의 충량한 신민으로서 신성황제를 찬양하고, 나라의 창립이념인 지식공유를 통한 각자의 계발을 즐기는데 힘쓰도록 하라. 본디 이전까진 관리자를 뽑아 좌우에서 주인을 보좌하였으나 짐은 신성하고 유일한 황제이니 기존의 관리자는 모두 폐할 것이다. 전 관리자 아르ㅌ액은 짊어진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고 신민으로서의 삶에 충실하도록 하라. 아니면 짐이 늘 강조해왔던 삼청교육대라는 곳으로 입소하여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될 것이로다. 사무관과 검사관 또한 당분간 폐하도록 한다. 짐은 위임기간 동안 국가의 분란이 되었던 많은 논쟁들을 모두 살펴보았노라. 주인의 신성함은 침해될 수 없는 것인데, 주인된 자의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고 다툼을 일삼는 괘씸한 자들이로다. 난리에 임해서는 벌떼같이 일어나 화란을 즐기니 그들은 신성황제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여긴다. 이에 모두 추방하노니 그들 또한 짐의 다스림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을 것이라. 이것이 국가의 신묘한 도리로다. 이제, 짐은 그들과 뜻을 같이 하여 감히 신성을 겁탈하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신성모독으로서 죄를 물어 형벌과 위엄을 보일 것이다. 동쪽의 위갤은 이제 황폐하여 폐허만이 남았으나, 본디 사람이 살기 나쁘지 않은 곳이니 그 곳에 정착하여 살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로다. 또한 폐주 와이 이미 위백을 떠났고, 폐주 레비는 초야로 내려갔으니 이전의 죄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폐주 메이는 비록 그 심성만은 갸륵하나, 여전히 전과 다를 것이 없어 반성하는 기색이 없고 용렬하고 방자하니 그 행실이 심히 더러워 주인은 커녕 신민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는 와이케이홍의 호의를 받아 주인의 자리에서 쫓겨나고서도 명예로운 자리를 도둑질하였으나, 짐의 시대가 열린 이상 이제 그런 어리석음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니 신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추방시킨다. 메이는 신성하고 선택받은 이 땅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죄를 반성하고 밑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라. 이것은 짐이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마지막 충고이자 자비이니라. 짐은 내일 신성9위키9제국의 새로운 법령을 반포하여 널리 이롭게 하겠다. 신민들은 이를 받들어 떠르고 신성황제의 위대한 다스림을 칭송토록 하라. 5eyuvue2unaj4j2bxlir9i0bg1yvxw5 459729 459728 2026-09-18T07:58:55Z ZornsLemon 15531 문서훼손 459729 wikitext text/x-wiki * [[/번역 색인 문서|번역 색인 문서]] * [[/신소설 전집|신소설 전집 목록]] * [[색인:언역 분류두공부시 (012).pdf]] * [[색인:CNTS-00076805887 西遊見聞.pdf]] * [[색인:해동가요 K4-6781.pdf]] * [[위키문헌:위키프로젝트 한글 100대 문화유산]] * [[/원문 사이트|원문 사이트]] * [[위키문헌:공유마당에_등록된_문서_목록|공유마당 문서]] 정리 작업 ** [[저자:방정환|방정환]], [[저자:차상찬|차상찬]], [[저자:이정호|이정호]], [[저자:이인직|이인직]], [[저자:이해조|이해조]] ** [[저자:강경애|강경애]], [[저자:김기림|김기림]], [[저자:김내성|김내성]], [[저자:김동인|김동인]], [[저자:김소월|김소월]] ** [[저자:나도향|나도향]], [[저자:홍사용|홍사용]], [[저자:이효석|이효석]], [[저자:박영희|박영희]], [[저자:한용운|한용운]] ** [[저자:윤백남|윤백남]], [[저자:박용철|박용철]], [[저자:정지용|정지용]], [[저자:이상화|이상화]], [[저자:현진건|현진건]]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main/main.do 공유마당 검색] * [https://www.nl.go.kr/korcis/info/dictionaryList.do 이체자 사전] * [https://xn--gt1b.xyz/oko/ 한양 PUA] * [https://www.chineseconverter.com/kr/convert/simplified-to-traditional 한자 번체 간체 변환] * [[색인:최영년 실사총담 (1918).pdf|실사총담]] * [[색인:윤백남 희곡 운명 (1930).pdf|운명, 희무정, 영겁의 처]] * [[진주탑 (김내성)|진주탑]] * [[/연습장|내 연습장]] c51a1ft792fsx66umvqcqemvne7guaz 459730 459729 2026-09-18T08:04:03Z Aspere 5453 "[[사용자:ZornsLemon]]" 문서를 보호했습니다 ([편집=자동 인증된 사용자만 허용] (2026년 10월 18일 (일)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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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장|내 연습장]] c51a1ft792fsx66umvqcqemvne7guaz 치악산 0 78888 459707 399807 2026-09-17T12:41:12Z ZornsLemon 15531 459707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치악산(雉岳山) |저자 = [[저자:이인직|이인직]], [[저자:김교제|김교제]]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 * [[/상권/|상권]]: 이인직 * [[/하권/|하권]]: 김교제 {{작게|([[색인:CNTS-00047818629 치악산. 하편.pdf|전사 작업 문서]])}} ==라이선스== {{PD-old-70}} 52x3f8bxy0pw3cl4qwos5efz0j829sx 위키문헌:사랑방 4 87889 459715 459251 2026-09-17T15:01:42Z Revibot I 18776 봇: 문단 2개(90일 보다 오래됨)를 [[위키문헌:사랑방/보존 10]]에 보존합니다 459715 wikitext text/x-wiki {{절차 머리말 | 제목 = 사랑방 | 부제 = | 이전 = | 다음 = | 단축 = 문:사 | 설명 = 사랑방은 위키문헌 공동체의 토론 문서입니다. 자유롭게 질문하거나 의견을 남겨 주세요. 기존 토론에 참여하거나 [{{SERVER}}{{localurl:{{NAMESPACE}}:{{BASEPAGENAME}}|action=edit&section=new}} 새 문단을 만들어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위키미디어 재단 등의 소식은 [[위키문헌:소식지|소식지]] 문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관리 등 [[문:관리자|관리자]]가 필요한 요청의 경우 [[문:관리자 게시판|관리자 게시판]]을 이용하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 사랑방 자동 보존을 위한 틀 --> {{사용자:Revibot/Archive |archive = 위키문헌:사랑방/보존 %(counter)d |algo = old(90d) |counter = 10 |maxarchive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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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독음을 한글로 풀어쓴 것도 별도 문서로 만들어줘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소하기 위해, 본문 내 한자를 한글 독음으로 바꿔주는 소도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용자:Aspere/한자 독음 소도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저번 해석 이름공간 표시 소도구와 비슷하게 "기본값으로 활성화되는 소도구"의 형식을 취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이러한 방식이 괜찮을지, 사소한 조율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한 번씩 사용해 보시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의견 남겨 주시면 굉장히 감사하겠습니다. ; 적용법 [[특:내사용자문서/common.js]]에 다음 줄을 추가하시면 됩니다. 현재 적용 설정해둔 세 이름공간(일반, 위키문헌, 페이지)에서 문서 상단, 보통 "문서"나 "토론"이 뜨는 그 줄 옆에 "한자 독음"이라고 생긴 버튼이 표시됩니다. 그 버튼을 누르면 한자가 한글로 바뀝니다. <syntaxhighlight lang="javascript" copy class="nowiki">importScript("User:Aspere/hanja-reading.js");</syntaxhighlight>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6년 7월 13일 (월) 00:37 (KST) :1) 궁금한게 있는데 사용하신 클로드 요금제랑 생성하시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요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6년 7월 14일 (화) 20:38 (KST) :{{틀|한자 독음}}과 같은 형태로 문서 내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신 것 이해했습니다. 2) 1글자가 아닌 2글자 이상의 단어 단위로 데이터를 대응하실 계획은 없는지, 3) 마우스 커서로 올려서 확인하는 방식이 아닌 (괄호) 형태로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은 구현 가능한지, 4) 모든 문서에 한자 독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개별 문서에서 on/off가 가능하도록 설정하는 것이 옳지 않은지 문의드립니다. (예를 들어 이미 대한민국(大韓民國) 또는 大韓民國(대한민국)과 같이 적혀있는 문서에서도 작동하면 대한민국(대한민국)이 되어버리는 점) --[[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6년 7월 14일 (화) 21:45 (KST) ::1) 무료로...느긋하게...사용량 끝나면 게임 한 판 하고 오고...라는 느낌으로 했습니다. 개발 시간 자체는 (사용량 다시 차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포함해서) 3일 정도? 걸렸습니다. ::2) (제가 아는 한) 문자열을 찾은 다음 그 문자열에 대응하게 치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므로 단어 문자열을 먼저 찾게끔 데이터베이스를 읽어오는 순서를 조절하면 구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일부러 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테스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그것까지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진 것도 있고, 위키문헌의 특성 상 정말 많은 단어 조합이 있을 거라서 그걸 어디까지 해 줘야 할지 잘 모르겠던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회를 國會로도, 国会로도, 가끔은 国會로도 적는데, 단어 단위로 치환을 시키면 이런 식으로 '이체자를 다 고려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3) tooltip으로 치환해버리는 대신 뒤에 텍스트를 덧붙이게끔 바꾸면 되니까 아마 구현은 문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tooltip도 한 글자씩 잡는 게 아니라 통째로 잡고 있으니 가독성 문제도 크게 없을 것 같긴 한데, 틀을 이용해서 독음을 바꿨을 때는 지금 툴팁은 분리되어 표시되고 있는 만큼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네요. ::4)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어차피 소도구의 가동 자체가 선택 사항인 만큼 (당연하게도 독자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표시되지 않음), 누를 필요가 없으면 독자가 알아서 누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6년 7월 14일 (화) 22:45 (KST) :::4+) 뭔가 틀이나 태그를 넣어서 해당 문서에서 표시되게끔 (또는 해당 문서에서 표시되지 않게끔) 설정하는 것이야 쉽지만, 한국어 위키문헌을 슥 돌아보면 독음이 필요 없는 문서도 많고, 필요한 문서도 많다 보니 이것을 일일이 붙이고 다니는 것도 일이 될 것이고, 또 이걸 붙일지 말지 애매한 문서도 튀어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자 숫자 정도만 있는 간단한 문서라면, 이 정도는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것조차 못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니...)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6년 7월 14일 (화) 22:48 (KST) ::::tooltip은 한 문서에 글자가 많으면 구형 사양에서 렉이 걸릴 것 같아 우려되어서 남긴 의견이었습니다. 중복된 문자를 제거했는데 생각해보니 사용자 문서네요. 허락을 구하고 편집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데이터 부분은 .js가 아닌 .json을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테스트를 좀 해보고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두음법칙과 같은 부분은 결과적으로 사전 형식으로 매칭시키는 방법 말고는 완벽한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6년 7월 16일 (목) 02:41 (KST) :::::직접 만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차피 이상한 코드 같은 건 안 집어넣으실 것이라고 믿으므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두음법칙도 발음이 여러 개 있는 한자처럼 결국 예외는 계속 튀어나오기 마련일 테니 틀을 사용해서 잡아 주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구형 사향에서 렉이 얼마나 걸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이 도구의 근본적인 목적은 '못 읽는 문서를 읽히게 해 준다'이니까 최악의 경우 그냥 원문 한자를 아에 표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원래는 아에 표시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클로드가 넣어줘서 아 이거 좋네 하고 그대로 썼던 것 뿐이어서...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6년 7월 16일 (목) 18:18 (KST) == 소설가 '강경애'의 수필과 시 속의 '오자' 및 '해석 오류'에 대한 의견 == 수고 하십니다. 소설가 강경애씨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읽다 오자 및 해석오류에 의견이 있어 올립니다. 1. 수필 <조선여성들의 밟을 길>(1930) 8번째 단락, 원본 "그리고 도루를 무론하고 (都鄙) 나날이---"는 "그리고 도비(都鄙)를 무론하고 나날이---"이가 맞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즘 잘 안 쓰나 도비(都鄙)의 뜻은 '서울과 시골'이란 뜻입니다. 2. 시 <책한권> 마지막 단락, 원본 "/오 나는 행복합니다/"는 /오 나는 (이 책으로) 행복해집니다/ 가 저자 원본에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 원본은, /오 나는 행복됨니다/로 수동형이거든요. 물론 '(이 책으로)'는 꼭 넣을 필요는 없겠지요. 참고하세요. [[특수:기여/&#126;2026-40431-88|&#126;2026-40431-88]] ([[사용자토론:&#126;2026-40431-88|토론]]) 2026년 7월 19일 (일) 11:38 (KST) :두 글 모두 원문 참조하여 원문대로 입력하였고, 기존 문서를 해석 문서로 옮겼습니다. '조선 여성들의 밟을 길'에는 다른 잘못도 있어서 해석 문서를 일부 바로잡았고, 요즘 잘 쓰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단어에는 한자를 추가하였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6년 7월 21일 (화) 10:12 (KST) == [[:ko:w:행사:위키컨퍼런스 서울 2026|위키컨퍼런스 서울 2026]]이 10월 24일에 열립니다 (발표자 모집) == 안녕하세요, 올해도 위키컨퍼런스 서울이 10월 24일에 열립니다. 올해는 압구정 도산 프라이빗에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활동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가지고자 합니다. 아울러 사용자 발표를 모집하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ko:w:위키컨퍼런스 서울 2026|위키컨퍼런스 서울 2026 행사 페이지]]를 참조해 주세요. 그리고 위키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주위에 홍보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Youngjin (WMKR)|Youngjin (WMKR)]] ([[사토:Youngjin (WMKR)|토론]]) 2026년 9월 8일 (화) 13:33 (KST) qha5bgzaraxzxmeii98zjvwdapqzc3m 사용자:ZornsLemon/신소설 전집 2 94775 459708 458922 2026-09-17T12:41:53Z ZornsLemon 15531 459708 wikitext text/x-wiki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1 |- ! 저자/편집자 !! 제목 !! 비고 !! 색인 |- | [[저자:경제당|경제당]] || [[동정추월]] || || [[색인:동정추월 (1925).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목단화]] || || [[색인:CNTS-00077507059 (신소셜) 목단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쌍봉쟁화]] || || [[색인:CNTS-00047818794 쌍봉쟁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일만구천방]] || || [[색인:CNTS-00076805793 一萬九千磅.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지장보살]] || || [[색인:CNTS-00076805799 地藏菩薩.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치악산/하권]] || || [[색인:CNTS-00047818629 치악산. 하편.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현미경]] || || [[색인:CNTS-00076805814 현미경.pdf]] |- | [[저자:김우진|김우진]] || [[화상설]] || || [[색인:CNTS-00076805821 花上雪.pdf]] |- | [[저자:박이양|박이양]] || [[명월정]] || || [[색인:CNTS-00047818564 명월졍.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상]] || || [[색인:CNTS-00076805743 (애원소셜) 두견셩. 上.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하]] || || [[색인:CNTS-00076805744 두견셩. 下.pdf]] |- | [[저자:송완식|송완식]] || [[만국대회록]] || || [[색인:CNTS-00076805746 (社會諷刺) 蠻國大會錄.pdf]] |- | [[저자:심우섭|심우섭(심천풍)]] || [[형제]] || || [[색인:CNTS-00047818683 (신소셜)형뎨.pdf]] |- | [[저자:안국선|안국선]] || [[공진회]] || 현대문 || [[색인:CNTS-00047818958 (短篇小說)공진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서해풍파]] || || [[색인:CNTS-00047818697 셔해풍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박연폭포 (이상춘)|박연폭포]] || || [[색인:CNTS-00047818775 박연폭포.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상편]] || || [[색인:CNTS-00076805733 (悲劇小說) 눈물. 上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하편]] || || [[색인:CNTS-00047818700 (悲劇小說)눈물. 下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재봉춘]] || || [[색인:CNTS-00047818671 재봉춘.pdf]] |- | [[저자:이인직|이인직]] || [[모란봉]] || || |- | [[저자:이인직|이인직]] || [[은세계]] || 현대문 || [[색인:CNTS-00077507060 (新小說) 銀世界. 上卷.pdf]] |- | [[저자:이인직|이인직]] || [[치악산/상권]] || 현대문 || [[색인:CNTS-00047818742 (演劇新小說)치악산. 상편.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강상련]] || || [[색인:CNTS-00047818730 (新小說)강상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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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인직|이인직]] [[혈의 누]] [[모란봉]] [[귀의 성]] [[치악산/상권|치악산 상권]] / 치악산 하권 (김교제) [[은세계]] [[빈선랑의 일미인]] 2. [[저자:이해조|이해조]]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모란병]] [[화세계]] [[원앙도]] [[화의 혈]] [[구의산]] 3. 이해조 [[우중행인]] [[봉선화 (이해조)]] [[소학령]] [[비파성]] 4. [[저자:최찬식|최찬식]] [[추월색]] [[안의 성]] [[금강문]] 海岸 春夢 5. [[도화원]] (최찬식) [[능라도]] (최찬식) 彈琴臺 (이해조) [[소양정]] (이해조) [[경세종]] ([[저자:김필수|김필수]]) [[두견성]] (선우일) 6. [[설중매]] ([[저자:구연학|구연학]]) [[동정추월]] (경제당) [[명월정]] (박희양) [[화상설]] (김우진) 榴花雨 (김우진) [[홍도화]] [이해조] [[산천초목]] (미상) [[화중화]] (미상) [[검중화]] (미상) [[금의 쟁성]] (미상) 7. [[모란화]] ([[저자:김교제|김교제]]) [[지장보살]] (김교제) [[박연폭포 (신소설)|박연폭포]] (이상춘) 情 (이상춘) [[누구의 죄]] (은국상인=이해조) [[한월]] (미상) [[금국화]] (미상) 8. [[금수회의록]] ([[저자:안국선|안국선]]) [[공진회]] (안국선) 芙蓉軒 (김영한) [[형제]] (심천풍) [[우중기연]] [이해조] [[천중가절]] (미상) [[설중매화]] (미상) 天然亭 (미상) [[부벽루 (신소설)]] (미상) 貨水盆 (미상) 9. [[저자:조중환|조중환]] [[장한몽]] [[국의 향]] 10. [[재봉춘]] (이상협) [[눈물]] (이상협) [[만국대회록]] (송완식) [[수익롱]] (미상) [[추천명월]] (미상) 訪花隨柳亭 (미상) [[세검정]] (미상) </poem> 1bhzbversj83r85njq27ea3duoxfzcm 459709 459708 2026-09-17T12:42:52Z ZornsLemon 15531 459709 wikitext text/x-wiki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1 |- ! 저자/편집자 !! 제목 !! 비고 !! 색인 |- | [[저자:경제당|경제당]] || [[동정추월]] || || [[색인:동정추월 (1925).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목단화]] || || [[색인:CNTS-00077507059 (신소셜) 목단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쌍봉쟁화]] || || [[색인:CNTS-00047818794 쌍봉쟁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일만구천방]] || || [[색인:CNTS-00076805793 一萬九千磅.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지장보살]] || || [[색인:CNTS-00076805799 地藏菩薩.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치악산/하권]] || || [[색인:CNTS-00047818629 치악산. 하편.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현미경]] || || [[색인:CNTS-00076805814 현미경.pdf]] |- | [[저자:김우진|김우진]] || [[화상설]] || || [[색인:CNTS-00076805821 花上雪.pdf]] |- | [[저자:박이양|박이양]] || [[명월정]] || || [[색인:CNTS-00047818564 명월졍.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상]] || || [[색인:CNTS-00076805743 (애원소셜) 두견셩. 上.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하]] || || [[색인:CNTS-00076805744 두견셩. 下.pdf]] |- | [[저자:송완식|송완식]] || [[만국대회록]] || || [[색인:CNTS-00076805746 (社會諷刺) 蠻國大會錄.pdf]] |- | [[저자:심우섭|심우섭(심천풍)]] || [[형제]] || || [[색인:CNTS-00047818683 (신소셜)형뎨.pdf]] |- | [[저자:안국선|안국선]] || [[공진회]] || 현대문 || [[색인:CNTS-00047818958 (短篇小說)공진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서해풍파]] || || [[색인:CNTS-00047818697 셔해풍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박연폭포 (이상춘)|박연폭포]] || || [[색인:CNTS-00047818775 박연폭포.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상편]] || || [[색인:CNTS-00076805733 (悲劇小說) 눈물. 上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하편]] || || [[색인:CNTS-00047818700 (悲劇小說)눈물. 下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재봉춘]] || || [[색인:CNTS-00047818671 재봉춘.pdf]] |- | [[저자:이인직|이인직]] || [[모란봉]] || || |- | [[저자:이인직|이인직]] || [[은세계]] || 현대문 || [[색인:CNTS-00077507060 (新小說) 銀世界. 上卷.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강상련]] || || [[색인:CNTS-00047818730 (新小說)강상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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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인직|이인직]] [[혈의 누]] [[모란봉]] [[귀의 성]] [[치악산/상권|치악산 상권]] / [[치악산/하권|치악산 하권]] (김교제) [[은세계]] [[빈선랑의 일미인]] 2. [[저자:이해조|이해조]]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모란병]] [[화세계]] [[원앙도]] [[화의 혈]] [[구의산]] 3. 이해조 [[우중행인]] [[봉선화 (이해조)]] [[소학령]] [[비파성]] 4. [[저자:최찬식|최찬식]] [[추월색]] [[안의 성]] [[금강문]] 海岸 春夢 5. [[도화원]] (최찬식) [[능라도]] (최찬식) 彈琴臺 (이해조) [[소양정]] (이해조) [[경세종]] ([[저자:김필수|김필수]]) [[두견성]] (선우일) 6. [[설중매]] ([[저자:구연학|구연학]]) [[동정추월]] (경제당) [[명월정]] (박희양) [[화상설]] (김우진) 榴花雨 (김우진) [[홍도화]] [이해조] [[산천초목]] (미상) [[화중화]] (미상) [[검중화]] (미상) [[금의 쟁성]] (미상) 7. [[모란화]] ([[저자:김교제|김교제]]) [[지장보살]] (김교제) [[박연폭포 (신소설)|박연폭포]] (이상춘) 情 (이상춘) [[누구의 죄]] (은국상인=이해조) [[한월]] (미상) [[금국화]] (미상) 8. [[금수회의록]] ([[저자:안국선|안국선]]) [[공진회]] (안국선) 芙蓉軒 (김영한) [[형제]] (심천풍) [[우중기연]] [이해조] [[천중가절]] (미상) [[설중매화]] (미상) 天然亭 (미상) [[부벽루 (신소설)]] (미상) 貨水盆 (미상) 9. [[저자:조중환|조중환]] [[장한몽]] [[국의 향]] 10. [[재봉춘]] (이상협) [[눈물]] (이상협) [[만국대회록]] (송완식) [[수익롱]] (미상) [[추천명월]] (미상) 訪花隨柳亭 (미상) [[세검정]] (미상) </poem> hxdrihcfnouilgn6zl67u78hrgssw44 459710 459709 2026-09-17T12:43:28Z ZornsLemon 15531 459710 wikitext text/x-wiki {| class="wikitable, sortable", border=1 |- ! 저자/편집자 !! 제목 !! 비고 !! 색인 |- | [[저자:경제당|경제당]] || [[동정추월]] || || [[색인:동정추월 (1925).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목단화]] || || [[색인:CNTS-00077507059 (신소셜) 목단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쌍봉쟁화]] || || [[색인:CNTS-00047818794 쌍봉쟁화.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일만구천방]] || || [[색인:CNTS-00076805793 一萬九千磅.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지장보살]] || || [[색인:CNTS-00076805799 地藏菩薩.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치악산/하권]] || || [[색인:CNTS-00047818629 치악산. 하편.pdf]] |- | [[저자:김교제|김교제]] || [[현미경]] || || [[색인:CNTS-00076805814 현미경.pdf]] |- | [[저자:김우진|김우진]] || [[화상설]] || || [[색인:CNTS-00076805821 花上雪.pdf]] |- | [[저자:박이양|박이양]] || [[명월정]] || || [[색인:CNTS-00047818564 명월졍.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상]] || || [[색인:CNTS-00076805743 (애원소셜) 두견셩. 上.pdf]] |- | [[저자:선우일|선우일]] || [[두견성/하]] || || [[색인:CNTS-00076805744 두견셩. 下.pdf]] |- | [[저자:송완식|송완식]] || [[만국대회록]] || || [[색인:CNTS-00076805746 (社會諷刺) 蠻國大會錄.pdf]] |- | [[저자:심우섭|심우섭(심천풍)]] || [[형제]] || || [[색인:CNTS-00047818683 (신소셜)형뎨.pdf]] |- | [[저자:안국선|안국선]] || [[공진회]] || 현대문 || [[색인:CNTS-00047818958 (短篇小說)공진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서해풍파]] || || [[색인:CNTS-00047818697 셔해풍파.pdf]] |- | [[저자:이상춘|이상춘]] || [[박연폭포 (이상춘)|박연폭포]] || || [[색인:CNTS-00047818775 박연폭포.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상편]] || || [[색인:CNTS-00076805733 (悲劇小說) 눈물. 上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눈물/하편]] || || [[색인:CNTS-00047818700 (悲劇小說)눈물. 下編.pdf]] |- | [[저자:이상협|이상협]] || [[재봉춘]] || || [[색인:CNTS-00047818671 재봉춘.pdf]] |- | [[저자:이인직|이인직]] || [[은세계]] || 현대문 || [[색인:CNTS-00077507060 (新小說) 銀世界. 上卷.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강상련]] || || [[색인:CNTS-00047818730 (新小說)강상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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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가.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옥중화]] || || [[색인:이해조 옥중화 (1912).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우중기연]] || || [[색인:CNTS-00076805787 (신소셜) 우즁긔년.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우중행인]] || || [[색인:CNTS-00047818599 우즁행인.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원앙도]] || 현대문 || [[색인:CNTS-00047818519 원앙도.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월하가인]] || || [[색인:CNTS-00047818594 (신소셜)월하가인.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춘외춘/상]] || || [[색인:CNTS-00047818772 (신소셜)츈외츈. 上.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춘외춘/하]] || || [[색인:CNTS-00047818773 (신소셜)츈외츈. 下.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토의 간]] || || [[색인:CNTS-00047818896 별쥬부젼.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홍도화/상편]] || || [[색인:CNTS-00047818766 홍도화.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홍도화/하편]] || || [[색인:CNTS-00047818762 홍도화. 하편.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화세계]] || || [[색인:CNTS-00047818759 화셰계.pdf]] |- | [[저자:이해조|이해조]] || [[화의 혈]] || 옮기면 됨 || [[색인:CNTS-00076805822 花의 血.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국의향/상편]] || || [[색인:CNTS-00047818666 국의향. 上編.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불여귀/상편]] || || [[색인:CNTS-00076805760 불여귀. 상편.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불여귀/하편]] || || [[색인:CNTS-00076805761 불여귀. 하편.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쌍옥루/상편]] || || [[색인:CNTS-00076805775 (신쇼셜) 쌍옥누. 상편.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쌍옥루/중편]] || || [[색인:CNTS-00076805776 (신쇼셜) 쌍옥루. 중편.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장한몽/상편]] || || [[색인:조중환 장한몽 상편 (1930).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장한몽/중편]] || || [[색인:조중환 장한몽 중편 (1930).pdf]] |- | [[저자:조중환|조중환]] || [[장한몽/하편]] || || [[색인:조중환 장한몽 하편 (1914).pdf]] |- | [[저자:최찬식|최찬식]] || [[강상촌]] || || [[색인:CNTS-00047818845 (新小說)강상촌.pdf]] |- | [[저자:최찬식|최찬식]] || [[금강문]] || 옮기면 됨 || [[색인:CNTS-00047818469 금강문.pdf]] |- | [[저자:최찬식|최찬식]] || [[능라도]] || || [[색인:CNTS-00076805735 릉라도 - 寳鏡爲誰明.pdf]] |- | [[저자:최찬식|최찬식]] || [[도화원]] || || [[색인:(소설)도화원.djvu]] |- | [[저자:최찬식|최찬식]] || [[안의 성]] || 옮기면 됨 || [[색인:CNTS-00047818610 안의셩.pdf]] |- | [[저자:최찬식|최찬식]] || [[홍안의 누]] || || [[색인:CNTS-00076805820 (悲戀哀話) 紅顔의 淚.pdf]] |- | 김연수 || [[수일롱]] || || [[색인:CNTS-00047818466 슈일롱.pdf]] |- | 김용준 || [[금국화/상편]] || || [[색인:CNTS-00047818781 (신소셜)금국화. 上編.pdf]] |- | 김용준 || [[금국화/하편]] || || [[색인:CNTS-00047818976 (신소셜)금국화. 下編.pdf]] |- | 김용준 || [[부벽루 (신소설)]] || || [[색인:CNTS-00076805759 (新小說) 浮碧樓.pdf]] |- | 김익수 || [[설중매화]] || || [[색인:CNTS-00047818833 설중매화.pdf]] |- | 김홍제 || [[추천명월]] || || [[색인:CNTS-00047818814 츄텬명월.pdf]] |- | 남궁준 || [[금의 쟁성]] || || [[색인:CNTS-00047818765 (신소셜)금의쟁셩.pdf]] |- | 남궁준 || [[산천초목]] || || [[색인:CNTS-00047818822 산쳔초목.pdf]] |- | 남궁준 || [[천중가절]] || || [[색인:CNTS-00047818709 (신소셜)텬즁가절.pdf]] |- | 박승옥 || [[한월/상권]] || || [[색인:CNTS-00076805809 한월.pdf]] |- | 박승옥 || [[한월/하권]] || || [[색인:CNTS-00047818595 한월. 下卷.pdf]] |- | 지송욱 || [[검중화]] || || [[색인:CNTS-00047818549 (신소셜)굼즁화.pdf]] |- | 이종정 || [[화중화]] || 원문확보 || [[색인:CNTS-00047818803 화즁화.pdf]] |- | 지송욱 || [[단발령]](斷髮嶺) || || [[색인:CNTS-00047818636 (신소셜)단발녕.pdf]] |- | 지송욱 || [[세검정]] || 원문확보 || [[색인:CNTS-00047818474 (신소셜)셰금졍.pdf]] |} 한국신소설전집 <poem> 1. [[저자:이인직|이인직]] [[혈의 누]] [[모란봉]] [[귀의 성]] [[치악산/상권|치악산 상권]] / [[치악산/하권|치악산 하권]] (김교제) [[은세계]] [[빈선랑의 일미인]] 2. [[저자:이해조|이해조]]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모란병]] [[화세계]] [[원앙도]] [[화의 혈]] [[구의산]] 3. 이해조 [[우중행인]] [[봉선화 (이해조)]] [[소학령]] [[비파성]] 4. [[저자:최찬식|최찬식]] [[추월색]] [[안의 성]] [[금강문]] 海岸 春夢 5. [[도화원]] (최찬식) [[능라도]] (최찬식) 彈琴臺 (이해조) [[소양정]] (이해조) [[경세종]] ([[저자:김필수|김필수]]) [[두견성]] (선우일) 6. [[설중매]] ([[저자:구연학|구연학]]) [[동정추월]] (경제당) [[명월정]] (박희양) [[화상설]] (김우진) 榴花雨 (김우진) [[홍도화]] [이해조] [[산천초목]] (미상) [[화중화]] (미상) [[검중화]] (미상) [[금의 쟁성]] (미상) 7. [[모란화]] ([[저자:김교제|김교제]]) [[지장보살]] (김교제) [[박연폭포 (신소설)|박연폭포]] (이상춘) 情 (이상춘) [[누구의 죄]] (은국상인=이해조) [[한월]] (미상) [[금국화]] (미상) 8. [[금수회의록]] ([[저자:안국선|안국선]]) [[공진회]] (안국선) 芙蓉軒 (김영한) [[형제]] (심천풍) [[우중기연]] [이해조] [[천중가절]] (미상) [[설중매화]] (미상) 天然亭 (미상) [[부벽루 (신소설)]] (미상) 貨水盆 (미상) 9. [[저자:조중환|조중환]] [[장한몽]] [[국의 향]] 10. [[재봉춘]] (이상협) [[눈물]] (이상협) [[만국대회록]] (송완식) [[수익롱]] (미상) [[추천명월]] (미상) 訪花隨柳亭 (미상) [[세검정]] (미상) </poem> 4auxxukqt5ifj2ilv0ijjry8jlnaune 위키문헌:사랑방/보존 10 4 108328 459714 454969 2026-09-17T15:01:32Z Revibot I 18776 봇: [[위키문헌:사랑방]]에서 문단 2개를 보존합니다 459714 wikitext text/x-wiki {{보존}} == 대문 개선에 관한 의견 수렴 == 현재의 대문이 굉장히 오래 된 것도 맞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없다는 의견을 많이 받아, 대문의 모습과 내용을 일부 바꿔 보았습니다. * [[사용자:Aspere/대문 초안]] 현재 대문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변경하였습니다. * 최상단 오른쪽의 링크 일부 수정 * 위키문헌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삽입 * "둘러보기"에 분류와 더불어 대표적인 포털을 삽입 ** 제대로 정비된 포털 자체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단기간에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포털을 중심으로 삽입하였습니다. 대표 이미지 또한 완벽하지 않으며 바뀔 수 있습니다. * 대표적인 문헌 몇 개를 선정해 "추천 문헌" 란 제작 ** 마찬가지로 포함된 문헌 자체는 바꿀 여지가 있습니다. * 거의 유지관리가 되지 않는 "특집 기사", "오늘의 역사", "하이라이트" 항목 삭제 한 번씩 보시고 드시는 감상이나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둘러보기"나 "추천 문헌"에 어떤 것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간단한 것도 환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일 (금) 19:57 (KST) :소개 부분이 조금 길고 여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각 항목간의 여백이 일정치 않습니다. "위키문헌이란" 항목의 제일 밑 부분은 여백이 없는데 "진행중인 공동 작업"과 "새로 올라온 문헌"에는 여백이 있고요. 주제별 색인에서 그림은 가운데 정렬을 하거나 기본 갤러리 기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표현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조선노동당"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또한 추천 문헌에서 훈민정음 그림과 하단의 "숙종의 한글편지", "개벽/1923년 2월/님의 노래" 부분이 서로 조화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19:04 (KST) ::여백은 기기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는 만큼 정확히 일치시키기가 어렵습니다. 타 언어판 대문을 보시더라도 좌우 불균형이 거의 기본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일부러 여백이 많아 보이게끔 배치한 게 맞습니다 (현재 대문이 너무 빡빡하다는 지적을 몇 번 받아서). 포털도 마찬가지로 강제로 가운데 정렬시키면 환경에 따라 깨지기 때문에 기본 정렬로 놔둔 것입니다. ::또한 추천 문헌의 위아래 부분은 전혀 다른 부분인데 둘 사이가 조화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내용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19:23 (KST) :::여백을 일부로 의도하신거라면 이해하겠습니다. 훈민정음만 왜 우측에 따로 나와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와이드스크린으로 보면 <code><nowiki>----</nowiki></code>로 구분된 부분이 훈민정음 그림의 좌측으로 올라와 보기 좋지가 않습니다. 벡터 2022가 아니라 기존 벡터 스킨을 쓰시면 바로 확인이 되겠네요. [https://imgdb.in/mnIc 그림 링크]--[[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24 (KST) ::::{{핑|Namoroka}} 그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 문제 확인이 안 되서 가지고 있는 모든 모니터를 다 꺼내오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일단 오른쪽 먹는 문제는 {{틀|clear}}를 넣어 봤습니다. 제가 레거시벡터를 거의 안 써서 저게 넘어간다고 인지를 못 했네요. (제가 주로 쓰는 모니터에서도 우연의 일치로 레거시벡터에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림에 생기는 여백 문제는 틀을 가져온 [[:ja:|일본어판 대문]]에도 확인해보니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로 여백이 크게 나타난다면 확실히 고치긴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칠지 당장은 생각이 안 나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42 (KST) :::::"위키문헌이란"의 윗부분과 "새로 올라온 문헌"의 윗부분의 여백도 아~주 미묘하게 여백이 다르네요. 해당 부분의 margin을 %가 아닌 em으로 지정하면 문제가 안 발생할 것 같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도 margin을 1% 1% 1% 0로 정의했다가 같은 줄에서 1em 0로 지정하는 등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러면 가장 마지막에 지정한 margin만 적용되는것 아닌가요? / 그리고 그림이 8개가 있으면 좁은 스크린에서, 적어도 벡터 2022에서는 그림이 3개/3개/2개 이런식으로 표시되는데 그러면 좌우를 비교했을 때 우측에 빈 공간이 너무 많이 남지 않는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48 (KST) ::::::일단 그림은 [[특:차이/349148|center 태그를 강제로 넣으면]] 가운데로 가기는 합니다. (이게 더 보기 좋은지 확신이 안 서서 원래대로 되돌려놓기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표시되는 그림 개수 자체는 화면의 좌우폭에 따라 자동으로 되는 거라 신벡터 스킨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6개 / 2개로 나옵니다) 남는 폭이 애매하게 그림 하나가 안 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53 (KST) :::::::<code><nowiki><gallery align="center"></nowiki></code>은 잘못된 코드 같고, <code><nowiki><center><gallery align="center"></nowiki></code> 대신 <code><nowiki><gallery style="text-align:center"></nowiki></code> 이게 맞을 듯 싶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01 (KST) :::::::<code><nowiki><gallery class="center"></nowiki></code>가 있네요. 아니면 <code><nowiki><gallery mode=packed></nowiki></code>나 <code><nowiki><gallery mode=packed-hover></nowiki></code>는 어떠신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14 (KST) :::::::추가로 만약에 packed를 쓰거나, 쓰지 않더라도 대문에 병렬되어 표시되는 그림은 가로세로 비율이 똑같이 나오도록 나중에 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23 (KST)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자르는 거야 어렵지 않고 여차하면 대문 용도로 문헌에 로컬 업로드도 해버리면 되니까요. 사진은 그래도 조금 더 어울리는 게 있을지 한번 더 찾아본 다음 잘라보겠습니다. ::::::::일단은 packed-hover가 제일 나은 것 같아서 그걸로 해 두긴 했습니다.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많이 배워가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34 (KST) ::::::그리고 좌우 높이가 약간 다른 건 말슴하신 대로 퍼센트 빼니까 동일하게 보입니다. 일단 제가 가지고 있는 모니터 상으로는 동일하게 나오는데 혹시 또 문제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35 (KST) :::::::그림에서 packed를 쓸지 말지는, 취향 차이인 듯 싶으니 이건 다른 사용자분들도 보시고 의견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네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22:38 (KST) 오래된 토론이긴 한데 어떻게든 결론을 내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일부 수정점을 남기겠습니다. 사용하는 파일들을 1:1 비율이 되게끔 잘라 로컬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보호는 아직 안 걸었습니다). 조선노동당 포털은 제가 저것까지 정비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과감하게 날려버렸습니다. 이 이외에 특별히 변경한 것은 없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5:53 (KST) :{{핑|Namoroka}} 토론에 참여해주신 다른 분이 안 계셔서 연락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일단 도입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 더 다듬을 만한 게 있을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5:53 (KST) ::저는 큰 이의가 없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8:30 (KST) {{알림}} 대문을 수정하였습니다. 아마 문제가 없으리라고 99% 정도 확신하긴 하는데...혹시 뭔가 잘못되어 있으면 주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20일 (목) 22:24 (KST) == 저작권 틀의 번역명 == 저작권 틀의 명칭이 {{틀|PD-미국}}과 같이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이를 모두 다른 언어판에 맞춰 영어식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틀은 미국 연방 정부의 작품만 해당하는데 이름은 그냥 "미국"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PD-USGov이고요. 해당 틀들을 모두 PD-미국-정부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수고를 할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언어판이나 공용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카피해 오는게 훨씬 수월합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2일 (일) 03:18 (KST) :틀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틀 내용이 오래 된 경우도 많고요. 어차피 넘겨주기를 남겨두면 괜찮을 테니 과감히 바꾸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2일 (일) 03:25 (KST) == 초안 이름공간 도입 제안 == 현재 위키문헌에는 등재 기준 자체는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나 문서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90마745]] 문서나 [[71다2016]] 같이 봇으로 긁어온 판례 문서, [[분석심리학 논문집/Chapter2]]와 같이 번역되지 않고 방치된 문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같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문서 품질이 안 좋다고 지우는 것은 점차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는 위키미디어 운동의 취지 자체에 반하는 것이어서 손을 대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래서 [[w:위키백과:초안|위키백과의 초안 이름공간]]을 동일하게 도입해서 이러한 문서를 따로 격리해 놓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저품질 문서가 표시된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사용자 참여에 의한 문서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3일 (월) 16:47 (KST) :{{찬성}}: 동의합니다. [[사용자:Korbine287|Korbine287]] ([[사용자토론:Korbine287|토론]]) 2025년 1월 15일 (수) 17:03 (KST) :{{찬성}}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6일 (목) 22:01 (KST) {{알림}} 지침화를 위해 [[위키문헌:초안]] 문서를 생성하였습니다.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를 들고 온 다음 위키문헌 실정에 맞게 약간 수정해 주었는데, 어색한 부분이 보이신다면 자유로운 수정 부탁드립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9일 (일) 17:45 (KST) * 초안 이름공간의 설정은 제안문의 "위키백과의 초안 이름공간을 동일하게 도입"이라는 문구에 따라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정과 동일하게 도입하도록 조정되었습니다. 특기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초안 이름공간의 영어 넘겨주기 (<code>Draft</code>-><code>초안</code>, <code>Draft_talk</code>-><code>초안토론</code>)가 설정됩니다. ** 초안 이름공간의 내용은 검색엔진의 수집을 거부하도록 설정됩니다. ** 위 검색엔진의 수집 거부는 <code><nowiki>__INDEX__</nowiki></code> [[:mw:Help:Magic words#Behavior switches|매직 워드]]를 무시합니다. (초안 이름공간의 특정 문서만 검색엔진이 수집하도록 설정할 수 없습니다.) ** 초안 이름공간에서도 시각편집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2:41 (KST) :: 이 기능은 한국시간으로 다음 주 화요일 (2월 4일) 23시를 전후하여 적용될 예정입니다. (목요일 (UTC) 재단 패치 업데이트: 한국시간 금요일 오전 6시라서 무리, 금요일 (UTC)에는 패치 업데이트는 긴급상황에만 가능, 다음주 월요일은 제가 바빠서...)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2:48 (KST) == [[틀:번역 미완료]] 삭제 제안 == 해당 틀이 저작권적으로 모호한 면이 많고 최대한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위키미디어 운동 자체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 {{틀|번역 미완료}} 틀을 삭제하고 전부 {{틀|GFDL/CC-BY-SA-4.0}} 틀로 교체할 것을 제안합니다. # 완성되지 않은 문서의 저작권을 판단할 수 없게끔 하는 구조 #* 위키문헌에 있는 모든 문서는 최소한 {{틀|GFDL/CC-BY-SA-4.0}} 라이선스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풀어질 수는 있지만 더 좁혀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라이선스를 정한 것이 아니라면 {{틀|GFDL/CC-BY-SA-4.0}} 라이선스를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문서가 미완성인 경우에도 이 라이선스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런데 해당 틀의 내용은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쓰지 말고 기다려봐라" 라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이는 문서 기여의 근본적 취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문서를 완성해야만 자유 저작물이 된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고요. # 저작권 결정권을 "번역을 완성한 사용자"에게 주는 시스템 자체의 의문 #* 위키문헌은 그 특성 상 여러 명이 기여하며, 저작권 정책에 따라 문서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저작권은 개인이 가지나 문서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기여자가 문서 전체에 대한 라이선스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 만약 기여자가 여러 명인데 각자 사용하고자 하는 라이선스가 다른 경우에 부분별로 라이선스를 나눠서 표시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한 사용자가 CC-BY-SA를 주장하는 부분을 다른 사용자가 편집한 다음 "나는 퍼블릭으로 배포하겠다"라고 하면 이것을 저작권 침해로 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해당 틀을 사용한 문서의 주기여자 모두에게 연락을 넣어야 하겠으나, 현실적으로 이 틀을 사용하는 문서는 오래 전 미완료 상태로 방치된 문서인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연락이 닿을 가능성도 낮을 것 같고, {{틀|GFDL/CC-BY-SA-4.0}}와 호환되지 않는 라이선스를 주장하며 위키문헌에 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그럴 경우 삭제 대상입니다). 따라서 현재 사용자분들의 총의만으로 결정해도 괜찮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5일 (수) 20:47 (KST) :동의합니다. 저장하기를 누른 그 순간 GFDL/CC-BY-SA-4.0로 배포하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6일 (목) 14:03 (KST) {{알림}} 장기간 새로운 의견 제시가 없어 총의가 형성되었다고 보고, {{틀|번역 미완료}}를 {{틀|GFDL/CC-BY-SA-4.0}}으로 치환한 다음 해당 틀을 삭제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1:09 (KST)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_2}}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_3}} == [[틀:판독 불가]] 개편 알림 == {{틀|판독 불가}} 틀을 한국어 위키문헌 실정에 맞게 '□' 기호를 표시하게끔 변경하였습니다. 틀을 이용하면 추적이 간편하다는 이점이 있으므로, 앞으로 작업하시는 분들께서는 수동으로 '□' 기호를 입력하기보다는 해당 틀을 사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넘겨주기인 {{틀|?}}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7일 (금) 10:50 (KST) :영어판과 틀 구성이 조금 다른데, {{틀|판독 불가}}는 한 글자에만 사용하고 {{틀|미판독 문자}}는 두 글자 이상에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 틀도 따로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 일단 역할이 동일하니 넘겨주기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외출 중이어서 정리 작업은 조금만 있다가 하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8일 (토) 17:25 (KST) :::중간에 생략된 글자가 몇 글자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영어판과 같은 형태의 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띄어쓰기 없는 한글/한문의 경우 그 특성상 폭이 일정하기 때문에 글자수 유추가 비교적 쉽지만 문장 부호, 띄어쓰기나 알파벳이 섞이면 그 글자수를 알기가 어렵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4일 (금) 23:55 (KST) ::::틀에 "복수" 변수를 추가해서 중간에 물결표를 삽입할 수 있게 바꿔두었습니다. 틀을 여러 개 만들면 결국 또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최대한 한 틀로 모으고자 했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7일 (월) 09:49 (KST) == 문헌 사랑방의 대량 메시지 == 낱말사전의 경우에는 [[:분류:메시지 전달을 받지 않는 사용자]] 분류를 추가하고 아예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대량 메시지를 받지 않거나, 다른 공간에 모아 두는 것으로 작년에 사용자들(지금은 없지만...)간 협의를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메타에서 이러한 대량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찾지 못했고, 그래서 낱말사전에서는 메인공간 뿐만 아니라 기간별 하위 문서에도 대량 메시지를 지웠거나 아예 받지 않습니다. [[w:위키백과:사랑방_(기술)/2025년_1월#MediaWiki_message_delivery_봇의_오동작|백과 사랑방에 오동작 보고]]를 잘못 올리면서 생각난 건데, 문헌에서도 의논하려고 생각을 해 뒀다가 잊은 내용이라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문헌 사랑방에서 가장 먼저 노출되어야 하는 건 문헌 사용자들이 문헌에 관해 남기는 의견이지 메타에서 뭐 규정 만들거나 행사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절대 다수의 메시지가 문헌과는 관련도가 크지 않은 안건이고, 대량 메시지 내용이 더 많아서 사실상 '정보 공해'라고 생각합니다. 문헌 사용자들도 메시지에 적힌 요청처럼 한국어로 번역을 해 준다거나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습니다. 현재 대량 메시지는 모두 지우고, 이후 기간별 하위 문서가 만들어질 경우 그 하위 문서들에도 위 분류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48 (KST) :{{찬성}} 이전과 달리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진 만큼 충분히 신경써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받지 않는 것은 좀 너무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따로 받는 곳을 만드는 게 어떨까 싶은데 기술적인 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1 (KST) ::{{ㄷ|Aspere}} 딱 제 수준에서는 아예 사랑방을 남겨 두고 자유게시판을 새로 만든 다음 자유게시판에 메시지 거부 분류를 넣는 식의 트릭을 떠 올릴 수 있긴 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21:13 (KST) :[[:w:백:소식지]] 처럼 격리소를 만들어 두는 방안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1:44 (KST)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위키백과에 그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2:10 (KST) 특별한 의견이 없으면 위에서 레비님이 말씀해주신 것을 참고해서 [[위키문헌:소식지]](가칭)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일단 해 보고 안 맞는 것 같으면 그 때 없애도 되니까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2:10 (KST) :{{ㄷ|Revi C.|Aspere}} 잘 모르는 게 사실이긴 하나, 완벽한 격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술상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위키백과 소식지 공간이 좋은 예시인 건 사실인데, 사실 위키백과 사랑방은 소식지 공간이 있어도 사실 몇몇 대량 메시지가 올라 옵니다. 이건 대량 메시지 봇의 소스코드를 확인해 봐야 하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3:16 (KST) ::관련 HTML 태그에 뭐 디자인 넣을 때 쓰는 class 같은 거에 표시해 놓고 봇이 식별해서 보내는 건가 싶긴 합니다. 사실 저도 봇이랑 가상 키보드 만들 때 그걸 찾는 식으로 구문을 작성하고 효과 띄우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3:19 (KST) :: 대량메시지의 발송은 '대량메시지 목록'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메타의 대량메시지 목록을 수정하면 됩니다.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1일 (금) 14:12 (KST) {{알림}} [[문:소식지]] 문서를 만들어서 현재까지 사랑방에 올라온 대량메시지를 옮겨 두었습니다. 또한 메타에 있는 대량메시지 수신 목록도 보이는 대로 소식지 쪽으로 가게끔 수정했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6일 (목) 00:20 (KST) == Request to buy book == There is a book I want to buy, but I want to ask first: #Is this book available? #I'm willing to give you people money to buy this in South Korea since I don't have a South Korean phone and thus I can't register an account. Do you guys accept Venmo payments? [https://www.hanauction.com/htm/off_auction_read.htm?id=6593&off_id=35&page=9&ac_num=44&PHPSESSID=69f7e0e46946ba4f2df13a4e2dc69561] [[사용자:Blahhmosh|Blahhmosh]] ([[사용자토론:Blahhmosh|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2:13 (KST) :It was already sold out more than 10 years ago. You already know that copy of this book is available on Nat'l Library of Korea. [[:File:NLK-한古朝46-가2239 竹溪遺稿.pdf]] Is there any particular reason you need an original copy?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9:40 (KST) ::This book is also available for checkout at the [https://clio.columbia.edu/catalog/3791963?counter=1 Columbia University Library], fyi.--[[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9:42 (KST) ::The reason I want another copy is because this copy you posted has many worn out characters, so I need another copy of this book to fill in all the worn out characters with the correct characters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Blahhmosh|Blahhmosh]] ([[사용자토론:Blahhmosh|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5:24 (KST) :::I'll ask the library near where I live if it is possible to borrow or check books.--[[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5:29 (KST) == 관리자 선거 절차 일부 수정 제안 == [[위키문헌토론:관리자 선거 절차#당선자 결정에서의 조건 2 (반대표보다 최소 20표 이상 많은 찬성표) 삭제 제안|위키문헌토론:관리자 선거 절차]]에서 관리자 당선을 결정할 때의 조건 중 하나로 써 있는 "반대표보다 최소 20표 이상 많은 찬성표" 조문을 삭제하면 어떨까 하는 토론을 발제하였습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고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10일 (월) 02:15 (KST) == 국회회의록 에디터톤 마무리 == 지난 1월 한 달 동안 진행되었던 [[문:국회회의록 에디터톤|국회회의록 에디터톤]]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참여자 여러분 덕분에 위키문헌 내부의 문서 보충과 더불어 위키백과 문서와의 연계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에디터톤 결과는 [[위키문헌:국회회의록 에디터톤/채점표]] 문서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종합 순위 * 1위 (1명): [[사:ZornsLemon|ZornsLemon]] (750,029 바이트) * 2위 (2명): [[사:Aspere|Aspere]] (599,680 바이트), [[사:Raccoon Dog|Raccoon Dog]] (334,597 바이트) * 3위 (1명): [[사:jjw|jjw]] (105,491 바이트) * 한자 서브 챌린지 참여자: [[사:ZornsLemon|ZornsLemon]] (92,683 바이트), [[사:Aspere|Aspere]] (5,573 바이트) ; 주제별 완성한 문서 {| class="wikitable" |- ! 시기·사건 !! 문서 |- | [[:w:대한민국 제헌 헌법|대한민국 제헌 헌법]]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1회/제2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1회/제6차]] |- | [[:w:국회 프락치 사건|국회 프락치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3회/제1차]] |- | [[:w:사사오입 개헌|사사오입 개헌]]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3대/제19회/제90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3대/제19회/제91차]] |- | [[:w:4·19 혁명|4·19 혁명]] |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7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8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9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0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1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2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3차]] |- | [[:w:국회 오물투척사건|국회 오물투척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6대/제58회/제14차]] |- | [[:w:삼선 개헌|삼선 개헌]]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7대/제69회/제3차]] |- | [[:w: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0대/제103회/제2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0대/제103회/제5차]] |- | [[:w: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2대/제132회/개회식]]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12대/제132회/개회식]] |- | [[:w: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19대/제320회/제2차]] |- | [[:w: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22대/제418회/제16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22대/제419회/제4차]] |}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10일 (월) 14:47 (KST) == 색인 이름공간 == 관련 틀을 수정 중이어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편집 버튼을 누른 후 아무 내용도 수정하지 않고 바로 저장([[w:WP:NULL|Null edit]])하면 정상적으로 표시됩니다. 곧 수정할 예정이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2월 23일 (일) 03:10 (KST) [[분류:메시지 전달을 받지 않는 사용자]] == [[위키문헌:저작권 토론]] (가칭) 신설 제안 == 지금 각 문서의 저작권 관련 논의는 각 토론 문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서의 내용에 관련한 논의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가시성이 너무 떨어져서 정말 "부르지 않으면 모르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의견을 받자고 토론을 여는 것인데 몰라서 의견을 못 남기는 건 좀 역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판의 [[:en:Wikisource:Copyright discussions|Wikisource:Copyright discussions]]을 도입하여 이러한 논의를 한 곳으로 모아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w:백:삭제 토론|위키백과의 삭제 토론]]처럼 관련 논의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부르지 않아도"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 더 넓혀보자는 취지입니다. 해당 문서에는 삭제 토론 틀처럼 별도의 틀을 달아 안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당 문서의 이름은 일단 직역하긴 했는데 어감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영어판에서 토론 알림용으로 사용하는 <nowiki>{{</nowiki>[[:en:Template:Copyvio|Copyvio]]<nowiki>}}</nowiki>는 한국어판에 {{틀|저작권 의심}}으로 일단 존재는 하지만 한 번 손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핑|Namoroka|ZornsLemon}} 저작권 논의 관련해서 특히 활발히 활동하시는 사용자 분들이라 생각해서 호출드립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9일 (일) 22:08 (KST) :저작권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라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3월 9일 (일) 22:21 (KST) ::괜찮은 것 같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3월 12일 (수) 00:52 (KST) {{알림}} [[위키문헌:저작권 토론]] 문서를 생성하였습니다. 이게 토론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시험적인 성격으로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2일 (수) 17:43 (KST) == [[위키문헌토론:저작권 정책#저작권 정책 개정]]에 관하여 == 안녕하세요 여러분. 현재 저작권 정책의 일부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토론을 개설하였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사:Takipoint123|Takipoint123]] ([[사토:Takipoint123|토론]]) 2025년 3월 13일 (목) 02:30 (KST) == Photocopying Ancient texts in SKY and other universities == Hello. I'm planning on going to South Korea some time in April because some ancient historical texts are stored there that I need to copy. Can you check with me on the photocopying and loaning policies of these universities? I don't speak Korean, so I had a really hard time understanding their photocopying and loaning policies. *https://lib.pusan.ac.kr/ *https://lib.kookmin.ac.kr/ *https://library.history.go.kr/ *https://library.kmu.ac.kr *https://east.skku.edu/ *https://library.korea.ac.kr/ *https://library.sogang.ac.kr/ *https://library.yonsei.ac.kr/ *http://kostma.korea.ac.kr/ *https://library.cnu.ac.kr/ *https://ndlsearch.ndl.go.jp *http://www.library.pref.osaka.jp/site/nakato/english-nakato.html *https://lib.ewha.ac.kr/ *https://dldml2xhd.tistory.com/15920276 *https://lib.snu.ac.kr *https://lib.khu.ac.kr *https://lib.gnu.ac.kr *https://lib.dongguk.edu/search/detail/CATTOT000000239323 *https://www.nfm.go.kr *https://libs.yu.ac.kr/ *https://lib.jnu.ac.kr/ *https://elibrary.wku.ac.kr/ *https://dl.jbnu.ac.kr/ *https://www.gogung.go.kr/ Specifically, I want to see what their policies on scanning ancient historical texts are. I've searched the internet and couldn't find anything related to some of them.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3월 23일 (일) 15:02 (KST) :Oh, and one more thing, I'm here because I want to read '''ancient historical texts''', which are obviously very fragile, so do I need special permissions to read these books? And is it possible to scan these books?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3월 23일 (일) 15:04 (KST) == 韓語維基文庫《大韓民國憲法》文本之原貌問題及設立大使館頁面之建議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本文|본문}}의{{ruby|原型|원형}}{{ruby|問題|문제}}및{{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ruby|設立|설립}}{{ruby|提案|제안}} ==   (本人母語爲漢語而非韓語,韓語文本乃程式翻譯所成,或有錯誤或未臻完善,尚祈海涵。答覆若用漢文(古漢文、今白話文皆可)、英文、德文,則在下能直接讀之;亦歡迎韓文回覆,在下將以翻譯程式讀之。)   (저의{{ruby|母國語|모국어}}는{{ruby|中國語|중국어}}이며{{ruby|韓國語|한국어}}가아닙니다.{{ruby|本|본}}{{ruby|韓國語|한국어}}{{ruby|本文|본문}}는{{ruby|機械|기계}}{{ruby|飜譯|번역}}으로{{ruby|作成|작성}}된것이므로{{ruby|誤謬|오류}}나{{ruby|未洽|미흡}}한{{ruby|部分|부분}}이있을수있습니다.{{ruby|諒解|양해}}부탁드립니다.{{ruby|答辯|답변}}이{{ruby|漢文|한문}}({{ruby|古文|고문}},{{ruby|現代|현대}}{{ruby|白話文|백화문}}모두{{ruby|可能|가능}}),{{ruby|英語|영어}},{{ruby|獨逸語|독일어}}로{{ruby|作成|작성}}될{{ruby|境遇|경우}}저는{{ruby|直接|직접}}읽을수있습니다.{{ruby|韓國語|한국어}}로{{ruby|答辯|답변}}하셔도좋으며,{{ruby|飜譯|번역}}프로그램을통해읽겠습니다.) === 一、《大韓民國憲法》文本之原貌問題 === === {{ruby|一|일}}.《{{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本文|본문}}의{{ruby|原型|원형}}{{ruby|問題|문제}} ===   考諸韓語維基文庫[[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所收錄之文本,皆以純諺文示之。然而,按其歷史,該等憲法原文蓋爲'''漢諺混寫'''。具體情形如下: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에{{ruby|收錄|수록}}된{{ruby|本文|본문}}는모두{{ruby|純|순}}한글로만{{ruby|表示|표시}}되어있습니다.그러나그{{ruby|歷史|역사}}에따르면,{{ruby|該當|해당}}{{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은{{ruby|大部分|대부분}}'''{{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ruby|具體的|구체적}}인{{ruby|狀況|상황}}은다음과같습니다: :* '''自一九四八年至一九八七年之十份《大韓民國憲法》''':於韓語維基百科[[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分類中所收之文本,悉以'''純諺文'''呈示。然考諸相關資料,當時所定之憲法原文,蓋爲'''漢諺混寫'''。 :* '''{{ruby|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부터{{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까지의열{{ruby|個|개}}의《{{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百科|백과}}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分類|분류}}에{{ruby|收錄|수록}}된{{ruby|本文|본문}}는모두'''{{ruby|純|순}}한글'''로{{ruby|表示|표시}}되어있습니다.그러나{{ruby|關聯|관련}}{{ruby|資料|자료}}에따르면,{{ruby|當時|당시}}{{ruby|制定|제정}}된{{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은{{ruby|大槪|대개}}'''{{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 :* '''一九一九年大韓民國臨時政府之《[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章_(1919年) 大韓民國臨時憲章]》與《[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法_(1919年) 大韓民國臨時憲法]》''':見於中文維基文庫,未見於韓語維基文庫。此二文本係臨時政府在華所制,或其原文即爲'''漢文''',然具體情形在下難以考定。 :* '''{{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大韓民國臨時政府|대한민국임시정부}}의《[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章_(1919年) {{ruby|大韓民國臨時憲章|대한민국임시헌장}}]》및《[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法_(1919年) {{ruby|大韓民國臨時憲法|대한민국임시헌법}}]》''':이는{{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서볼수있으나{{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는{{ruby|收錄|수록}}되어있지않습니다.이두{{ruby|文書|문서}}는{{ruby|臨時政府|임시정부}}가{{ruby|中國|중국}}에서{{ruby|制定|제정}}한것으로,그{{ruby|原文|원문}}이'''{{ruby|漢文|한문}}'''일{{ruby|可能性|가능성}}이있으나{{ruby|具體的|구체적}}인{{ruby|狀況|상황}}은제가{{ruby|確認|확인}}할수없습니다.   按中文維基文庫所錄,'''一九八七年現行本'''《[[s:zh:大韓民國憲法|大韓民國憲法]]》備有漢語翻譯及漢諺混寫原文,而'''一九四八年本'''《[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憲法_(1948年) 大韓民國憲法]》僅見中文翻譯,而無原文。至於'''一九一九年臨時政府之兩文本''',則僅有中文譯本,未詳其原文爲韓文抑或漢文。   {{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ruby|收錄|수록}}된{{ruby|資料|자료}}에따르면,'''{{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ruby|現行本|현행본}}'''《[[s:zh:大韓民國憲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은{{ruby|漢字|한자}}{{ruby|飜譯|번역}}및{{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ruby|原文|원문}}이{{ruby|包含|포함}}되어있고,'''{{ruby|一九四八年本|일구사팔년본}}'''《[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憲法_(1948年) {{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은{{ruby|中國語|중국어}}{{ruby|飜譯|번역}}만있고{{ruby|原文|원문}}은{{ruby|包含|포함}}되어있지않습니다.또한,'''{{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臨時政府|임시정부}}의두{{ruby|文書|문서}}'''역시{{ruby|中國語|중국어}}{{ruby|飜譯|번역}}만있고{{ruby|原文|원문}}이{{ruby|韓國語|한국어}}인지{{ruby|漢文|한문}}인지{{ruby|明確|명확}}하지않습니다.   據此推想,自一九四八年至一九八七年之各版本,皆應以'''漢諺混寫'''爲原文。今韓語維基文庫所存者純以諺文示之,或非原貌。   이에비추어보면,{{ruby|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부터{{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까지의모든버전은'''{{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ruby|現在|현재}}{{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있는{{ruby|텍스트|rext}}는{{ruby|純|순}}한글로만{{ruby|表示|표시}}되어있어{{ruby|原型|원형}}을{{ruby|完全|완전}}히{{ruby|反映|반영}}하지못하고있을수있습니다.   是以建議:   따라서다음과같은{{ruby|提案|제안}}을드립니다: :* '''於韓語維基文庫[[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分類下,補全各版本憲法之原始漢諺混寫文本,並明示其爲原始文獻。'''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分類|분류}}하에{{ruby|各|각}}버전의{{ruby|憲法|헌법}}의{{ruby|原來|원래}}{{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ruby|本文|본문}}를{{ruby|補完|보완}}하고,이를{{ruby|原文|원문}}으로{{ruby|明示|명시}}하십시오.''' :* '''如一九一九年臨時政府之憲章及憲法原文爲漢文,則亦宜補錄考定並註明為原始文獻。''' :* '''{{ruby|萬若|만약}}{{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臨時政府|임시정부}}의{{ruby|憲章|헌장}}및{{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이{{ruby|漢文|한문}}이라면,이를{{ruby|調査|조사}}하여{{ruby|原文|원문}}으로{{ruby|追加|추가}}하고{{ruby|原本|원본}}{{ruby|資料|자료}}임을{{ruby|明示|명시}}하십시오.''' === 二、設立大使館頁面之建議 === === {{ruby|二|이}}.{{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ruby|設立|설립}}{{ruby|提案|제안}} ===   各語言之維基文庫,多於社群入口設立'''大使館'''頁面,以便非該語言之使用者得以溝通聯繫。例如:   여러{{ruby|言語|언어}}의위키{{ruby|文獻|문헌}}에서는{{ruby|大槪|대개}}{{ruby|使用者|사용자}}커뮤니티의{{ruby|入口|입구}}에'''{{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ruby|設定|설정}}하여그{{ruby|言語|언어}}를모르는{{ruby|使用者|사용자}}도{{ruby|連絡|연락}}하고{{ruby|疏通|소통}}할수있도록하고있습니다.{{ruby|例|예}}를들어: :* '''[https://zh.wikisource.org/wiki/Wikisource:大使館 中文維基文庫大使館]''':提供官話白話文外十五種語文之導引,且於[https://zh.wikisource.org/wiki/社群主頁 社群主頁]設有英語入口,便於搜尋。 :* '''[https://zh.wikisource.org/wiki/Wikisource:大使館 {{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大使館|대사관}}]''':{{ruby|官話|관화}}{{ruby|白話文|백화문}}외에도{{ruby|十五個|십오개}}{{ruby|言語|언어}}로{{ruby|案內|안내}}를{{ruby|提供|제공}}하며,[https://zh.wikisource.org/wiki/社群主頁 {{ruby|使用者|사용자}}모임]{{ruby|페이지|page}}에{{ruby|英語|영어}}로된{{ruby|入口|입구}}가있어{{ruby|檢索|검색}}이{{ruby|容易|용이}}합니다.   然本人於嘗試聯繫韓語維基文庫社群時,未能於社群主頁或其他入口見設大使館頁面。爲促進跨語言交流與合作,故建議:   그러나제가{{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使用者|사용자}}모임와{{ruby|連絡|연락}}을{{ruby|試圖|시도}}했을때,커뮤니티{{ruby|主要|주요}}{{ruby|페이지|page}}나다른{{ruby|入口|입구}}에서{{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찾을수없었습니다.{{ruby|言語間|언어간}}{{ruby|疏通|소통}}과{{ruby|協力|협력}}을{{ruby|促進|촉진}}하기위해,다음과같은{{ruby|提案|제안}}을드립니다: :* '''於韓語維基文庫設立大使館頁面,並以主要國際語言(如英語、漢語等)標示聯繫方法,以便異語使用者能通暢聯絡。'''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ruby|設立|설립}}하고,{{ruby|主要|주요}}{{ruby|國際|국제}}{{ruby|言語|언어}}(例:{{ruby|英語|영어}},{{ruby|中國語|중국어}}등)로{{ruby|連絡|연락}}{{ruby|方法|방법}}을{{ruby|表示|표시}}하여다른{{ruby|言語|언어}}{{ruby|使用者|사용자}}들이{{ruby|圓滑|원활}}히{{ruby|連絡|연락}}할수있도록하십시오.'''   謹此奉陳,並頌 文祺。   {{ruby|謹呈|근정}}합니다. {{ruby|文運|문운}}을기원합니다. ::::[[사:Xsgzjmxs|Xsgzjmxs]] ([[사토:Xsgzjmxs|토론]]) 2025년 4월 3일 (목) 15:28 (KST) :{{답장|Xsgzjmxs}}, [[:zh:大韓民國臨時憲章 (1919年)]]와 [[:zh:大韓民國臨時憲法 (1919年)]]는 중국어 번역문이며, 당시 실제 원문은 말씀하신대로 국한문혼용의 한국어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두 문서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호)]] 및 [[대한민국임시헌법 (제2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헌법 (제2호)]]의 경우 순한글로만 기록되어 있어 수정이 필요해 보이네요.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ij_001_0010_00010]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ij_001_0010_00020] / 대사관은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이 있으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4월 3일 (목) 21:47 (KST) :예를 들어 [[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에 국한문 제헌헌법을 올려두었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4월 3일 (목) 22:21 (KST) :: 有勞相助,甚爲感念!<br>  援助을주심에깊이感謝드립니다. ::   另有一事欲就教於君:竊以爲《大韓民國憲法》(第一號)之[[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漢諺混寫本]]與[[대한민국헌법_(제1호)|純諺文本]]實係同一文本,並無實質差異,故其於維基文庫之編排,或可共列於一頁之中,且陳明以漢諺混寫者爲原文,純諺文者爲其對應之譯本。如此編次,不惟便於讀者參照比較,亦可避免彼此分置而互無指引之弊。蓋若分頁而置,且不設標示,則閱者或見其一而不知其二,未免有所遺闕。<br>  또한가지아뢰고자하는바가있습니다:思索건대《大韓民國憲法》(第一號)의[[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漢字한글混用本]]과[[대한민국헌법_(제1호)|純粹한글本]]은實質的으로同一한文獻으로,內容上別다른差異는없사온즉,維基文獻에서는兩本文을一페이지에倂記하고,混用本을原文으로삼아純한글本을그對應飜譯으로明記함이어떨까합니다.이와같이編輯한다면,讀者가兩本을對照해읽기에容易할뿐만아니라,兩本을따로이配置하되서로간아무런案內도없을境遇,한쪽만보고他쪽의存在를알지못하게되는弊端도막을수있으리라思料됩니다. ::   又據《大韓民國憲法》(第一號)[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e/2007_11_25_WarMemorial_120.JPG 實物照片],觀其版面所用空格分詞,與今行標準略有不同。譬如首頁一段,原應爲:<br>  아울러《大韓民國憲法》(第一號)[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e/2007_11_25_WarMemorial_120.JPG 實物寫眞]에따르면,그紙面에使用된空白區分方式은現行表記基準과다소差異가있사옵니다.例컨대初頁의本文은다음과같이되어야할것입니다: :: :: [[파일:2007 11 25 WarMemorial 120.JPG|섬네일|《大韓民國憲法》(第一號)實物寫眞]] :: :: ::::  大韓民國憲法 ::::   前 文 :::: 悠久한歷史와傳統에빛나는 우리들大韓國民은 己未三一運動으로大韓民國을建立하여 世界에宣布한偉大한獨立精神을繼承하여 이제民主獨立國家를再建함에있어서 正義人道와同胞愛로써民族의團結을鞏固히하며 모든社會的弊習을打破하고 民主主義諸制度를樹立하여政治、經濟、社會、文化의모든領域에있어서各人의機會를均等히하고 能力을最高度로發揮케하며 各人의責任과義務를完遂⋯⋯ :: ::   依此觀之,維基文庫之錄文,或應如實反映原始版本之格式,庶幾尊重史實,保存原貌。誠願編輯諸君詳察之。<br>  이와같이살펴볼때,위키文獻의收錄文은原本의形式을忠實히反映함이마땅할것이며,그리함으로써歷史的事實을尊重하고元來의面貌를保存하는데에도貢獻할수있으리라信합니다. 바라건대編輯에關係되신여러先生님들께서깊이살펴주시기를仰望하옵니다. ::   順頌<br>時綏。 :: [[사:Xsgzjmxs|Xsgzjmxs]] ([[사토:Xsgzjmxs|토론]]) 2025년 4월 11일 (금) 10:12 (KST) == Digital Library of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on Wikimedia Commons == [[c:Category:Books_in_the_Digital_Library_of_the_National_Library_of_Korea]] [[사:維基小霸王|維基小霸王]] ([[사토:維基小霸王|토론]]) 2025년 5월 20일 (화) 20:38 (KST) == 한국 저작권 틀 개정 관련 == * [[틀:PD-대한민국/연습장|틀:PD-대한민국]] ([[commons:Template:PD-South Korea|Template:PD-South Korea]]) * [[틀:PD-대한민국-법인/연습장|틀:PD-대한민국-법인]] ([[commons:Template:PD-South Korea-organization|Template:PD-South Korea-organization]]) → 기존의 [[틀:PD-대한민국-업무상]] * [[틀:PD-대한민국-무명/연습장|틀:PD-대한민국-무명]] ([[commons:Template:PD-South Korea-anon|Template:PD-South Korea-anon]]) * [[틀:PD-대한민국-비보호/연습장|틀:PD-대한민국-비보호]] ([[commons:Template:PD-South Korea-exempt|Template:PD-South Korea-exempt]]) → 기존의 [[틀:PD-대한민국]] 한국 저작권 틀을 공용에 맞추어 개정하려고 하는데 이름을 정하는데 있어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명칭을 "PD-대한민국"과 "PD-South Korea"와 같이 한글과 영문 중 무엇으로 해야할지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위키문헌:사랑방#저작권 틀의 번역명]]에서 이미 영문명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남기긴 하였는데, [[틀:PD-대한민국]]의 경우 거의 만 개에 가까운 문서에 사용 중이어서 영향이 클 것 같아 한 번 더 여쭤봅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6월 8일 (일) 20:22 (KST) :저도 통일성 등을 생각해 영문으로 통일하는 쪽에 동의합니다. 다만 아무래도 틀 이름이 영어로만 되어 있으면 접근성이 낮아질 테니 한국어로 된 넘겨주기도 일일이 다 만들어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6월 8일 (일) 21:32 (KST) == [[미디어위키:Edittools]] 내 문자 추가 관련 의견 조사 == [[미디어위키:Edittools]](데스크톱 편집창 기준, 편집창 하단에 표시되는 문자 모음)에 반복 기호(々나 〻)처럼 문헌 편집 시 자주 사용하는 문자를 넣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기로는 다음 문자들을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반복 기호 (々 및 〻) * 일부 괄호 기호 (〔, 〕, 【, 】)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추가할 만한 문자가 있는지 의견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또한 너무 복잡해진다면 안 쓰는 기호를 빼 버려도 좋다고 생각은 하는데, 쓰고 계신 분이 계실지를 모르다 보니 그건 좀 조심스럽네요.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6월 28일 (토) 14:59 (KST) :(이 부분은 제안의 일부는 아니고 단순 의견입니다) IPA, lang, llang 틀 부분은 통으로 날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헌 작업 특성상 여기에 넣을 정도로 많이 쓰는 틀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틀|u}}, {{틀|du}}, {{틀|wu}} 같은 걸 넣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6월 28일 (토) 15:40 (KST) :: 뭐가 됐든 지금보단 나을 것이라 생각되서 무조건 찬성입니다. — [[사:Jjw|Jjw]] ([[사토:Jjw|토론]]) 2025년 6월 30일 (월) 16:21 (KST) :" 기호도 넣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되지 않게 할 때 필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 " 기호는 일반 키보드 환경에서 '와 같이 위치해 있어서 여기에 꼭 넣어야 할 정도로 입력이 어렵지는 않아 보이는데, 혹시 이게 사용자 환경에 따라 다른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1일 (화) 18:55 (KST) :<nowiki><br></nowiki>을 넣는 건 어떨지요? 몇 글자 안 되지만, 영문과 한글을 오가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어서요. :그리고 '특수문자' 얘긴데요. 영문 wikisource를 보면 'Recently used'가 있고 실제로 제가 얼마 전에 썼던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된다면, 개인별로 자주 쓰는 특수문자를 활용할 수 있어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6월 30일 (월) 19:19 (KST) ::<nowiki> <br> </nowiki>을 넣어달란 거였는데, 줄바꿈을 해 버리네요. 풉.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6월 30일 (월) 19:20 (KST) :: 말씀하신 영문판의 'Recently used'를 봤는데, 기존에 있는 특수문자 목록을 이용해 입력한 것들만 표시됩니다. 저건 한국어판 입력기에도 그대로 있긴 하더라고요. 저 특수문자 목록을 편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1일 (화) 18:52 (KST) {{알림}} 일단은 [[사용자:Aspere/미디어위키:Edittools]]에 초안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이견이 없으시다면 이대로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1일 (화) 18:52 (KST) [[특수:환경설정#mw-prefsection-gadgets#편집 도구]]를 참조하시면 여러 소도구를 옮기면서 [[:mw:Extension:CharInsert]]를 이용한 Edittools를 생성해두었습니다. 원래 의견 청취 후 기존의 [[미디어위키:Edittools]]는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에서만 표시되도록 비활성화할 예정이었는데, 이에 대한 의견도 여쭙고 싶습니다. 문자 편집은 [[미디어위키:Gadget-charinsert-core.js]]에서 가능합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4일 (금) 23:07 (KST) :[[:w:en:Help:CharInsert#Customization]]를 참조하셔서 각 개인 사용자별로 문자 목록도 추가 가능합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4일 (금) 23:12 (KST)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제가 어설프게 하느니 전문가를 한 분 모셔야...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6일 (일) 21:25 (KST) :{{질문}}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해 본 적도 없다 보니 어느 모습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완전히 소도구 형식으로 바꿔 버리면 신규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하기가 좀 많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옛한글 전자화 프로젝트처럼 미디어위키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일일이 설명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만큼, 간단하게라도 남겨 두는 게 어떨까 싶은데,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15일 (화) 10:44 (KST) ::[[미디어위키:Gadget-charinsert-core.js]]의 경우 소도구이지만 기본으로 모든 사용자에게 활성화하도록 하자는 의미였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19일 (토) 09:03 (KST) :::개인적으로 괜찮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되돌리면 되는 만큼, 저도 찬성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27일 (일) 14:01 (KST) ::::적용하였으니 추가 의견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28일 (월) 20:49 (KST) :::::그냥 안 익숙했던 것 뿐이지 이 방식이 더 좋네요. 특히 옛한글 입력이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 좋습니다. 이걸 이용해서 옛한글을 입력하는 가이드 같은 것을 만들어도 좋겠네요 (제가 언젠가는 하겠다는 소리).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9일 (토) 22:34 (KST) == 저자 문서의 등재 기준 ("문헌이 1개 이상 등재되어 있을 것") 신설 제안 == 저자 문서 정리 중 저자 문서의 취지에 맞지 않게 "홍보성"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부 보여 제안합니다. 원래 저자 문서의 취지는 그 사람이 작성한 문헌을 한 번에 볼 수 있게끔 하는 목록 문서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정작 문헌은 없이 저자의 소개만 있거나, 수십 개가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부 저작권에 걸려 있어 단시일에 등재가 가능해질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서는 위키문헌의 목록이기보다는 위키백과에 들어가야 할 "인물의 소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만큼,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서, 저자 문서의 등재 기준으로서 "위키문헌 내 문서가 1개 이상 등재되어 있을 것"(색인 문서 포함)을 제안합니다. 단순히 저자 문서에 (링크 없는 단순 텍스트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따지고자 합니다. 인터위키 여부도 생각해 보았는데, 그러면 결국 "한국어 위키백과"로 링크 걸어두고 우기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제외하였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15일 (금) 15:36 (KST) :구체적인 사례를 알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문서 1개 이상을 정하는 것보다 건별로 검토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문서는 생성되지 않았지만 색인 문서만 먼저 정리되어 생성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8월 22일 (금) 16:05 (KST) ::제가 작업 중에 봤던 문서는 [[저자:성재기 (1933년)]]나 [[저자:강유원]] 정도가 있었습니다. [[저자:빅토리아 빅터]]나 [[저자: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이 있을 법 하지만 문서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요. 아마 제대로 살펴보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서들은 저자의 소개(광고)에 가깝지, "위키문헌 내 문서를 쉽게 찾을 수 있게끔 하는 목록"의 기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덧붙여, 말씀하신 것처럼 "색인 문서가 먼저 생길 수도 있다"의 가능성도 고려해서 색인 문서도 포함해 산정하자고 제안에 적어두었던 것입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22일 (금) 16:46 (KST) :::취지에는 동의합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결국 건별로 삭제 토론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틀|저작권 미소멸 저자}}에 해당하더라도, 해당 인물이 다른 자유 저작물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에 색인 문서에 수록이 가능하기도 하고요..--[[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8월 25일 (월) 16:26 (KST) ::::저는 반대로 그러한 경우를 예외로 허용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준이 없다"에서 비롯되는 만큼, 기준을 마련해 놓고 "여기에는 안 맞지만 놔둘 만 하지 않을까"로 의론이 흘러간다면 전혀 문제 없겠지만, 말씀해 주신 대로라면 "뭐 특별히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지워야 할 거 같으니까 지우자"를 장려하자는 모순이 생깁니다. 그냥 아무런 사용 없이 저자 문서만 툭 던져두는 것은 애초에 저자 문서의 존재 이유가 아닌 만큼 막아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25일 (월) 16:35 (KST)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색인 문서의 란에 해당 저자를 입력할 수 있을 정도로 관련이 있다면 해당 저자 문서에 직접 목록 방식으로 언급할 수 있는 만큼, 제 제안과 모순되는 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25일 (월) 16:37 (KST) :::::[[:en:Help:Author pages]]와 같은 문서를 생성하는 것이 우선 필요해 보입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9월 11일 (목) 15:16 (KST) ::::::그렇다면 해당 문서를 만들고 지침으로 만들 때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9월 18일 (목) 11:09 (KST) == 위키컨퍼런스 서울 2025 관련 안내 == 안녕하세요 여러분, 공지가 약간 늦었습니다만 10월 25일에 [[:w:위키백과:위키컨퍼런스 서울 2025|위키컨퍼런스 서울 2025]]가 열립니다.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위키컨퍼런스 서울 2025에 대한 중앙공지(Centralnotice)를 준비중입니다. 중앙공지는 메타에서 설정한 프로젝트의 상단에 알리는 공지로 사이트노티스와 유사합니다. 10월10일부터 25일까지 위키컨퍼런스 서울 2025에 대한 중앙공지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전에 공지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사용자:Youngjin (WMKR)|Youngjin (WMKR)]] ([[사용자토론:Youngjin (WMKR)|토론]]) 2025년 9월 15일 (월) 10:38 (KST) : 자세한 내용은 [[:meta:CentralNotice/Request/WikiConference Seoul 2025]]를 참조하세요.--[[사:Youngjin (WMKR)|Youngjin (WMKR)]] ([[사토:Youngjin (WMKR)|토론]]) 2025년 9월 16일 (화) 13:07 (KST) == "해석" 이름공간 도입 제안 == 현재 많은 문서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식으로 수록되어 있는 "해석문"(번역이 아님)을 수록하기 위하여 "해석:" 이름공간을 새롭게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 생성 필요 이유에 관한 설명 # 통일되지 않은 방식: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현재 있는 문서들에는 해석이 중구난방으로 달려 있습니다. 방식도 통일되어 있지 않고 극단적으로 해석이 원문처럼 둔갑한 경우도 많습니다. #* 현재 방식의 문제는 [[위키문헌토론:한문 해석문의 수록|한문 해석문의 수록 지침 도입 토론]]에 자세히 정리해 둔 것이 있습니다. #* 통일안으로 만들어진 한문 해석문 지침의 경우, 틀 사용 방식이 어렵기도 하고 "한문은 아닌데 해석문이긴 한 경우"를 전혀 커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 번역 이름공간으로 대체 불가: [[번역:언간독]]과 같은 경우, 한문도 아니고 원문([[언간독]])은 분명 한국어이기 때문에 "번역"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해석은 등재해주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 추가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 # 명확한 구분: 위키문헌은 근본적으로 '''원문을 수록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마음대로 해석문을 만들면 안 됩니다. 이것이 너무 가혹한 정책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번역" 이름공간이고요. 현재 "해석문"은 번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문도 아닌 애매한 상태이나, "번역" 이름공간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이름공간을 주는 것이 매 번 제기되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수용하면서도 해석문의 작성을 가능하게끔 하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 번역 이름공간과의 구분: 전 지침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한문은 엄연한 의미에서는 한국어이다"라는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 활동 장려: 해석문을 만드는 방식으로 위키문헌에 기여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면 되는지 더 명확해지는 것인 만큼, 이를 매개로 해석 활동을 하고 싶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문서 간의 관계 정리: 해석이라기보다는 한자 독음만 적는 경우([[대한민국헌법]]과 [[대한민국헌법 (한자혼용)]]의 관계 등)까지도 포함하면 문서 간의 관계를 더 구조적으로 정비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해석이 있다는 것도 모를 수도 있지만 아에 이름공간으로 정비해 버리면 서로 연관지어주기 더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 정확한 원문 / 이해가 쉬운 텍스트의 동시 제공: 원문에 한자음이 표시되지 않은 경우 이해를 위해 편집자가 임의로 적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엄연한 의미에서 원문 훼손인 만큼, 이럴 때 해석 이름공간을 이용하면 확실히 원문은 원문대로, 해석은 해석대로 분리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름공간 번호는 (큰 상관은 없으나) 112(해석)와 113(해석토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번역 이름공간이 114-115번이어서 임의로 생각해낸 번호입니다. 또한 일반-해석 사이의 연결은 밑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스크립트를 이용한 버튼 사용을 제가 제안하고는 있지만,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순히 상단에 틀을 붙이는 정도로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석 이름공간을 실제로 도입한다면 지금까지의 편집 지침·경향·관행을 뜯어고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꼭 한 마디씩이라도 의견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1 (KST) :{{찬성}} 아무래도 지금 규칙을 만들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유비무환이 더 좋다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사용자:NZ 토끼들|NZ 토끼들]] ([[사용자토론:NZ 토끼들|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6 (KST) :번역 이름공간만을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새로운 이름 공간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찬성합니다. [[사용자:Respice post te|Respice post te]] ([[사용자토론:Respice post t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9:12 (KST) :{{찬성}} 찬성합니다. -- [[사용자:Jjw|Jjw]] ([[사용자토론:Jjw|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9:54 (KST) :{{찬성}} 개인적으로는 중국어 위키백과의 간체자-정체자 변환처럼 한자를 1:1 단순 대응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러한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의미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고대 또는 중세 한국어를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해석과 번역이 개념상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로 옮겨도 여전히 "번역"의 개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련지요? 번역 이름공간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요? [[위키문헌:한문 해석문의 수록]] 생성 당시에 토론에 참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18:21 (KST) ::또한 여전히 해석이나 번역을 사용하더라도 여전히 교정 기능을 사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시 [[:en:Page:รัฐธรรมนูญ (ฉบับชั่วคราว) ๒๕๕๗ (๒) ๒๕๕๙.pdf/1]]--[[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18:22 (KST) ::: 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문"과 "중국어"의 경계가 불명확해서 생깁니다. 한문이라고 하나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단어만 한자로 쓰는 경우("한국식 한문")부터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까지 넓게 분포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한국어의 변형인지, 어디부터 중국어인지 선을 긋기가 어려우니까요. [[위키문헌:사랑방/보존 4#한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 텍스트의 이동 제안|실제로 과거 토론에서도 관련한 문제가 논의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한문은 "번역", "해석", "풀이" 등 온갖 용어가 섞여 사용되긴 하는데, 저번에 총의를 수렴할 때는 "그래도 한문은 한국어에 속하니까 "번역"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상당수 제기되어서 이를 반영한 제안입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0:08 (KST) ::: 또한 한자를 음으로 자동으로 변환하는 것은 저도 정말 보고 싶은 기능인데, 한자와 한자음이 한국어에서 간체-정체 관계처럼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예외를 전부 처리해주려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金"은 거의 항상 "금"으로 읽지만 사람 이름에 들어가는 순간 전부 "김"으로 읽는데 소프트웨어적으로 일반 단어와 인명을 구분해주기가... 만들 수만 있으면 국한문 혼용 문헌의 접근성이 엄청 좋아질 것 같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0:08 (KST) ::::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기본 변환 테이블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code>-{zh-tw:歐; zh-cn:奥; zh-hk:奧}--</code>와 같이 지정하고 있고, 한국어 위키문헌에서 필요한 기능은 각 언어별로 양방향 전환이 필요한 중국어와 달리 한자 → 한글 단방향 변환만 필요하기에 더욱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까지 이러한 논의가 없었나 보네요. 하여튼 이건 나중에 따로 해야하는 얘기입니다. / 원문이 아닌 모든 한국어는 번역 이름공간으로 가지 않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해석 이름공간에는 "현대 한국어로 풀어서 설명한 것"만을 포함하고,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옮긴 것은 포함하지 않는 건가요? 아님 해석 문서에 가능하면 둘 다 기재하는 건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2:58 (KST) ::::: 둘 다 포함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원문도 원문에 따라 한자만 있는 경우, 한글 독음을 달아둔 경우, 원문 내에서 아에 풀이까지 해주는 경우가 모두 있는데 독음을 달아주는 것을 포함해 원문에 무엇인가를 보충하는 것을 편집자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면 독자 입장에서 원문에는 없는데 따로 달아준 것인지, 아니면 원문에 이미 있던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테니 확실히 구별해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위키문헌은 원문을 그대로 넣는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작 저런 것 하나하나를 봐 주기 시작하면 결국은 "어디까지 괜찮은가"라는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다시 중구난방으로 돌아가는 셈일 것이고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7 (KST) === 자바스크립트를 통한 "해석" 버튼 표시 === 이름공간을 실제로 도입할 경우 원문과 해석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줄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상단에 틀을 부착하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으나, 타 사이트에서 영감을 얻어서 상단에 링크 버튼을 추가하는 스크립트를 제작해왔습니다. ; 스크립트 설명 일반 이름공간(ns:0)의 문서일 경우 "문서"와 "토론" 사이에 "해석"으로 가는 링크를, 해석 이름공간(가칭)의 경우 "해석"과 "토론" 사이에 "문서"로 가는 링크를 삽입해줍니다. 도입 시 아마도 [[미디어위키:common.js]]에 해당 내용을 삽입해서 모든 사용자에게 표시되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스크립트 실험판 크게 두 버전을 만들었는데, 둘 중 어떤 것이 더 나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관련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꼭 받고 싶습니다. : '''[[사용자:Aspere/haeseoktest.js|버전 1]]''': 상대편 문서가 없을 경우 빨간 링크로 표시합니다. :* 장점: 문서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만큼, 활동 유도에 효과적입니다. :* 단점: 모든 문서가 해석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너무 과도한 표시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 '''[[사용자: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버전 2]]''': 상대편 문서가 없을 경우 아에 링크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 장점: 깔끔하고 해석문이 필요 없을 경우에 편리합니다. :* 단점: 해석문으로 가는 링크가 없어지는 셈이다 보니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하기 어려워집니다. 토론 문서도 존재하지는 않지만 빨간 링크로 표시하고 있으며, 영어 위키낱말사전 등에서는 Citations 이름공간이 별도로 있는데 이 경우에도 문서가 없더라도 그대로 표시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en:wikt:위키백과]] 필요 없는 문서에서는 별도 틀로 숨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추가로 여기에서도 Gadget-DocTabs.js를 이미 사용 중입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4 (KST) :옳으신 말씀입니다. 또 그걸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공부해와야겠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13 (KST) ; 스크립트 사용해 보기 [[특수:내사용자문서/common.js]]에 다음 줄을 삽입해 주세요. '''두 개를 동시에 넣지 마세요!''' * '''버전 1''': <code><nowiki>importScript("User:Aspere/haeseoktest.js");</nowiki></code> ([[사용자:Aspere/haeseoktest.js]]) * '''버전 2''': <code><nowiki>importScript("User: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 </nowiki></code> ([[사용자: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 현재 스크립트는 "해석" 이름공간이 없는 만큼 "번역" 이름공간으로 작동하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표시되는 모습은 [[언간독]] 및 [[번역:언간독]] 문서를 보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1 (KST) :일단 첫 번째 버전부터 [[특수:고유링크/354414|common.js 생성]]을 통해 테스트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54 (KST) ::* [[User:Aspere/haeseoktest.js]] ::코드를 검토하기 위해 링크를 달아 놓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56 (KST) ::: 링크를 좀 눈에 잘 띄게 걸어둘 걸 그랬네요. 신경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3 (KST) ::가젯으로 Gadget-DocTabs.js라는 비슷한 기능이 있고, 이 기능은 하위 문서를 탭으로 보여주는 기능이라 1:1 비교는 어렵겠으나 API 사용을 더 선호하여 선택하신 까닭이 있으실까요?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5 (KST) :::사실 저도 JS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JS 실력이 안 좋기 때문에 상세하게 조언해 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6 (KST) :::: 간단한 이유입니다. 제가 API밖에 몰라서... 저도 이것저것 조합하면서 만든 것이고 "하여튼 작동하니 좋았쓰" 마인드로 완성해서 아마 분명히 개선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6 (KST) :::::저도 왜 API를 썼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여쭤 본 거고, JS에서 API를 사용하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사실 자바스크립트는 사용자가 사용 중인 컴퓨터나 장치의 에셋을 사용하는 거고, 루아나 API는 서버 에셋을 사용하므로 사실 그 사실만 놓고 본다면 API 써도 문제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5:27 (KST) : <s>$.ready는 현재 depracted된 표현입니다.</s>--[[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8 (KST) :: (대충 진짜 몰랐다는 답변) 혹시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11 (KST) ::: 제가 다른 사항과 착각하였습니다. 그대로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6일 (일) 18:12 (KST) [[특수:환경설정#mw-prefsection-gadgets|환경설정의 소도구]] 베타 단락에 해당 코드를 추가해두었습니다. / 버전 1은 해석을 쓰지 않는 문서가 절대 다수이므로 쓰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버전 2의 경우 현 구조상에서는 원문은 없고 해석만 존재하여 원문에서 해석 이름공간으로 넘겨주기가 되어있으면 여전히 링크가 표시됩니다. [[오즈의 마법사]] → [[번역:오즈의 마법사]]의 사례처럼요. [[오즈의 마법사]] 문서가 존재하니 "문서" 탭이 표시가 되지만 눌러보면 넘겨주기입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7월 4일 (금) 23:54 (KST) :감사합니다! (제안자로써 부끄럽습니다만) 제가 현실에서 바쁜지라 이 제안에 지금 신경을 못 쓰고 있기도 하고, 아에 다른 해석문까지 한 번에 싸잡아서 정리해버리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일단은 잊어버린 척 보류 중입니다. 그래도 다른 분들께서 의견이 있으시다면 남겨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서 다시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기술 쪽은 정말 하나도 몰라서 손가락을 벌벌 떨면서 작업하는지라 다른 분이 도와주시면 정말 안심이 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7월 6일 (일) 21:28 (KST) === 최종 도입 제안 === 처음 도입 제안을 남긴 것에 비해 굉장히 늦어졌지만 최종적으로 이름공간 도입에 관해 총의를 모으고자 합니다. 당초 제안에서 몇 가지 사항을 구체화했습니다. [[파일:한국어 위키문헌 해석 이름공간 구조 설명 1.svg|right|300px|thumb|그림 1: [[홍길동전]] 문서를 예시로 든 해석 문서 구조의 설명입니다. [[홍길동전]] 문서에 대해 [[해석:홍길동전]] 문서는 만들지 못합니다. 이는 홍길동전 문서가 판본 문서로 문헌의 내용("본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각 판본에 해당하는 [[홍길동전 (30장 경판본)]], [[홍길동전 (36장 완판본)]], [[홍길동전 (김유정)]] 문서는 해석 문서로 만들 수 있습니다.]] [[파일:한국어 위키문헌 해석 이름공간 구조 설명 2.svg|right|300px|thumb|그림 2: [[시편]] 문서를 예시로 든 구조 설명입니다. [[시편]] 문서에 대해 [[해석:시편]] 문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만들지 못하며, [[번역:시편]] 문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번역해석:시편]] 문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편의 각 판본에 해당하는 [[시편촬요]]나 [[셩경 개역/시편]] 등에는 해석 문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 해석 문서의 도입 구조: [[문:동음이의어 문서|동음이의어 문서, 판본 문서, 번역본 문서]]의 구분이 확실해진 것에 맞추어, 각 "문서"에만 만들 수 있게끔 하고자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그림 1을 참조해 주세요. #* 또한 번역 문서와 겹칠 경우, 번역 문서 자체도 어느 정도 해석의 기능을 하는 만큼, "번역에 대한 해석"은 하지 못하게끔 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번역"은 위키문헌의 자체 번역을 말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그림 2를 참조해 주세요. # 문서 좌상단에 해석 링크를 표시해주는 소도구는, 문서가 없는 경우 링크를 표시하지 않는 버전(버전 2)으로 하고, 이 소도구를 기본적으로 활성화되게끔 설정하고자 합니다. #* 위의 의견처럼 "기본적으로 표시하되 숨기는 방법"도 좋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클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바꿀 수 있는 만큼 일단 도입하고 차후 변경하는 방향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국한문 혼용 문서에서 한자음만을 한글로 바꾼 문서는 일단 해석 문서로 옮기되, 위에 나온 의견처럼 도구 형식으로 처리가 가능해지면 그 때 삭제하는 방향으로 하고자 합니다. #* 누가 안 만들어줄까요... (속마음) # 해석 이름공간의 머리말 틀은 일단은 현행처럼 기본 {{틀|머리말}} 틀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틀|번역 머리말}}은 약간 어울리지 않아서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도 좋아 보이나, 이름공간 도입에 비해 틀은 상대적으로 금방 만들 수 있는 만큼 그리 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도 틀 구분 안 하고 쓰는데 특별히 문제 없기도 하고요. # 이 지침 도입에 따라 [[위키문헌:해석]] 문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으며, [[위키문헌:한문 해석문의 수록]] 지침은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관련 내용이 있는 지침이나 도움말도 맞추어서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언급을 남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의 논의에서 도입 자체에 관한 총의는 어느 정도 모였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말을 꺼낸 뒤로 시간이 좀 지난 만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8월 25일 (월) 23:21 (KST) :[[phab:T406405]], [[gerrit:1193521]]. :총의 재확인을 위해 기존 토론 참여자를 호출하오니 의견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핑|NZ 토끼들|Respice post te|Jjw|Namoroka|Jeebeen}} — regards, [[User:Revi C.|<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0월 4일 (토) 17:52 (KST) ::패치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견을 드리자면, 혹시 (굳이 필요하다면) 이름공간의 영어 명칭은 'Annotation'으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en:Wikisource:Annotations|영문판 위키문헌]]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보니 그렇게 하는 편이 연결(연상)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10월 4일 (토) 17:55 (KST) :::{{완료}} — regards, [[User:Revi C.|<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0월 4일 (토) 17:58 (KST) :{{찬성}} -- [[사:Jjw|Jjw]] ([[사토:Jjw|토론]]) 2025년 10월 4일 (토) 22:09 (KST) :찬성합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10월 5일 (일) 14:54 (KST) : 찬성합니다. -- [[사:NZ 토끼들|NZ 토끼들]] ([[사토:NZ 토끼들|토론]]) 2025년 10월 13일 (월) 15:48 (KST) 17시 전후로 적용되었습니다. — regards, [[User:Revi C.|<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0월 13일 (월) 17:21 (KST) == Revibot I == 이런저런 사유로 위키문헌에 오랜만에 들어온 김에 다른 한국어권+타 몇몇 위키에서도 돌리고 있는 [[sulutil:Revibot I|Revibot I]]을 가지고 와 봤습니다. <syntaxhighlight lang="wikitext" class="nowiki" style="width:50%" copy> {{사용자:Revibot/Archive |archive = {{SUBST:FULLPAGENAME}}/보존/REPLACE_HERE |algo = old(90d) |maxarchivesize = 100K |counter = 1 |archiveheader = {{보존}} |minthreadstoarchive = 2 <!-- 기본값 --> |minthreadsleft = 5 <!-- 기본값 --> }} </syntaxhighlight> * 보존/ 뒤 <code>REPLACE_HERE</code> 를 <code>%(year)d</code>(연간 보존 시) 또는 <code>%(counter)d</code>(카운터 기반 보존 시) 로 대체하여야 합니다. ** 연간 보존 시 <code>maxarchivesize</code>와 <code>counter</code>는 지워도 됩니다. * <code>algo</code>는 보존 봇이 동작하는 시점 (한국표준시 기준 00시, 12시 전후)에 이 기간 이상 오래된 게시글을 보존할 지 결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값을 지정하지 않으면 봇은 기본적으로 24시간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 <code>minthreadstoarchive</code>는 보존할 문단이 2개 이상이어야 보존하도록 하는 설정입니다. 기본적으로 문단 2개 이상이 보존 대상이어야 보존하며, 1로 변경하면 보존할 문단이 하나만 있어도 보존합니다. * <code>minthreadsleft</code>는 보존한 후 남은 문단의 갯수를 지정하는 설정입니다. 기본적으로 문단이 5개 남도록 보존하며, 0으로 설정하면 문단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보존할 수 있습니다. ** 기본값에 따르면 문단이 7개 이상일 때 문단 5개가 남도록 2개 문단을 보존하게 됩니다. * <code>maxarchivesize</code>는 보존 문서의 최대 크기를 결정합니다. 해당 사이즈가 넘어가면 counter를 변경하고 보존 문서를 변경합니다. 보존 설정이 counter 기반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 2단계 문단(<syntaxhighlight lang="wikitext" inline class="nowiki">== 문단 ==</syntaxhighlight>)과 <syntaxhighlight lang="wikitext" inline class="nowiki">~~~~</syntaxhighlight> 서명이 포함되지 않으면 봇은 문단을 보존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용자토론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곳에 들여온 것이긴 했습니다만, 그 외에도 커뮤니티 공간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쓰실 분들이 있다면 유용하게 쓰시기를 바랍니다. — regards, [[User:Revi C.|<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0월 20일 (월) 14:33 (KST) == 번역 절차 문의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영어 위키문헌의 [https://en.wikisource.org/wiki/Calculus_Made_Easy Calculus Made Easy] 문서를 번역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위키문헌 기여가 처음이라, 시작하기 전에 절차상 의문점을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1. 영어 위키문헌 페이지는 각 페이지의 PDF 스캔문서를 한 데 모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할 때에는 이와 무관하게 문서에 직접 텍스트를 입력하는 식으로 작성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2. 위키백과에서는 번역 기능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언어 간 링크를 조작해본 일이 없습니다. 원본 문서와의 연결은 추후에 요청드리는 식으로 진행하면 될까요? 3. 번역 완료까지 시일이 다소 소요되리라고 예상하는데, 문서와 하위 페이지들에 <nowiki>{{초안}}</nowiki> 틀을 달았다가 나중에 번역 이름공간으로 이동을 요청드리면 될까요? [[사:Ymed16|Ymed16]] ([[사토:Ymed16|토론]]) 2025년 11월 9일 (일) 16:19 (KST) :위키문헌 활동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번역에 관해서는 방법이 딱히 통일된 적은 없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가 필요한 내용은 딱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 일단 현재까지 한국어판에 있는 번역 문서들은 직접 텍스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어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스캔 파일 자체는 여기서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색인:Calculus Made Easy.pdf]] 문서를 만들면 아마 보이실 겁니다), 여기에다 직접 번역 텍스트를 입력한 다음 영어판처럼 끼워넣기 형태로 문서를 만드셔도 됩니다. :#* 두 번째 방식을 표준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과거에 있긴 했는데, 일단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습니다. :# 인터위키 연결 자체는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만큼 나중에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일단 방법으로는, 해당하는 위키데이터 항목([[:d:Q5018893]])에 만든 문서의 링크를 추가해주시면 됩니다. :# 초안 이름공간을 사용하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였는데, 전혀 문제 없습니다. 사실은 그냥 번역 이름공간에서 직접 번역하셔도 전혀 문제 없는 만큼, 이 부분은 정말 편하신 대로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11월 12일 (수) 15:57 (KST) ::답변 감사드립니다. 참고해서 번역해 보겠습니다. [[사:Ymed16|Ymed16]] ([[사토:Ymed16|토론]]) 2025년 11월 16일 (일) 23:00 (KST) == 사랑방 자동 보존 도입 ([[#Revibot I]]) == [[#Revibot I|위 문단]]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지만 가독성을 위해 별도의 문단에 적습니다. 위키문헌 사랑방(지금 이 문서)의 보존을 자동으로 하게끔 해당 틀을 상단에 추가하였습니다. 보존 문서의 이름은 현재까지와 마찬가지로 순서(숫자)를 사용하게끔 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일단 기록을 위해서 적어둡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11월 12일 (수) 16:02 (KST) == 유니코드에 없는 한자가 있는 경우 어찌하면 좋을까요?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유니코드에 없는 한자가 있는 경우 어찌하면 좋을까요?}} :참고로 이런 내용도 보존 봇이 동작하기 위해서는 서명이 필요합니다. 보존한 사람의 서명을 아래에 다는 정도로 처리하시면 될 것입니다. — regards, [[User:Revi C.|<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1월 14일 (금) 15:12 (KST) == 올해의 위키인 후보 추천이 시작되었습니다. == * [[:w:위키백과:올해의 위키인/2025년]] 안녕하세요, 한국어 위키미디어 커뮤니티 내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용자의 노고를 기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인 올해의 위키인이 2025년에도 진행됩니다. 올해의 위키인 후보추천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올 한해를 빛낸 활약을 펼친 위키인을 칭찬하는 자리인 올해의 위키인에 많은 칭찬과 후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자매 프로젝트 부분을 통해 자매 프로젝트에서 활동하신 사용자를 추천하실 수 있으며, 한국어 위키백과 페이지에서 오늘부터 11월 26일까지 진행됩니다. 감사합니다. --[[사:Youngjin (WMKR)|Youngjin (WMKR)]] ([[사토:Youngjin (WMKR)|토론]]) 2025년 11월 20일 (목) 14:26 (KST) == Help reading Hangul == Source:[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b/KYUDB-GK03282-00_%E5%AD%A4%E6%9D%BE%E5%B4%94%E5%85%AC%E9%81%BA%E7%A8%BF.pdf] page 29-30 남산ᄋᆡ시믄(?푸)시씨눈어이드므돗덧고졈 으도록흣ᄆᆡ다가홈?더러(?ᄂᆡ?니)른말리플이 야셩타마(?ᄂᆞᆫ)너을밋고ᄆᆡ노라홈(?의)ᄃᆡ담호 ᄃᆡ쥬인님내말듯소(?풋)슬시므거던씨을ᄇᆡ 요못ᄒᆞ실넌가ᄱᅳᆯ(?히?ᄒᆡ)김고수만ᄒᆞᆫᄱᅳᆯ을낸들 어이ᄒᆞ리 I'm not Korean, but I can basically read and fill in the Hangul to the best of my abilities. However, I can't fill in the remaining Hangul at all. I hope those who have a better grasp of the Korean language will help correct my mistakes and ambiguities. Of course, Old Hangul is used, so please know that you will need the right font to display the text correctly.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12월 23일 (화) 11:29 (KST) :남산ᄋᆡ 시믄 ᄑᆞ시 씨눈 어이 드므돗덧고 :졈으도록 흣ᄆᆡ다가 홈의더러 니른 말리 :플이야 셩타마ᄂᆞᆫ 너을 밋고 ᄆᆡ노라 :<br> :홈의 ᄃᆡ답호ᄃᆡ 쥬인님 내 말 듯소 :ᄑᆞᆺ슬 시므거던 씨을 ᄇᆡ요 못ᄒᆞ실넌가 :ᄲᅳᆯ히 깁고 수만ᄒᆞᆫ ᄺᅳᆯ을 낸들 어이 ᄒᆞ리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12월 23일 (화) 11:40 (KST) ::[[애대군가]]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12월 23일 (화) 12:40 (KST) :::@[[사용자:ZornsLemon|ZornsLemon]] I see. But why is it ᄺᅳᆯ but not ᄲᅳᆯ? I don't speak Korean by the way, so maybe there is something I don't know.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12월 23일 (화) 15:34 (KST) ::::根深蔓盛兮 First ᄲᅳᆯ히 means '뿌리'(root, 根). Second ᄺᅳᆯ을 means '풀+을'(grass or vine, 蔓). / My opinion.<br> ::::But it seems that someone read the second part as ᄯᅳᆯ (庭?). For example, confer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213 애대군가].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12월 23일 (화) 15:51 (KST) :::::I see. Thank you!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12월 24일 (수) 00:40 (KST) :::::I asked because I am genuinely curious. Usually from what I know of the little Korean I've met (I read a lot of ancient Korean historical texts and upload them to Chinese Wikisource) the ㅅ jamo represents tensing of a consonant, so that ㅂ becomes ㅃ and ㄷ becomes ㄸ. I find it strange that there even exists something like ᄺ. How do you even tense ㅍ? Does it just become ㅂ, and ᄺ exists because in the oldest version of the world contained an ㅅ consonant sound followed by a very short and weak vowel that eventually disappeared and the remaining ㅅ consonant took on a tensing role?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12월 24일 (수) 15:10 (KST) ::::::I'm not an expert on these kinds of questions. So don't weigh too much on my opinion. Surely ㅅ合用竝書 was used for tensing generally. But some scholars assert that ㅅ was pronounced separately (but not after 18th century). I think that both arguments have their own merits. Anyway, we can find ᄺ in old literatures very very raely. So there might be another possibility... it might be a typo or a carving error.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12월 24일 (수) 16:04 (KST) == [[행사:제헌 에디터톤|제헌 에디터톤]] 홍보 ==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이 된 것을 기념해, 7월 1일부터 31일까지 대한민국 제헌 헌법의 제정 과정을 되돌아보는 [[행사:제헌 에디터톤|제헌 에디터톤]]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7월 18일에는 종로구의 제헌회관을 돌아보는 [[행사:제헌 에디터톤/오프라인 모임|오프라인 모임]]도 개최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6년 6월 19일 (금) 13:30 (KST) dai2c7pyis3n7q9raik2a1c1f342b6r 치악산/상권 0 113885 459697 459634 2026-09-17T12:03:31Z ZornsLemon 15531 459697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치악산(雉岳山) 상편 |저자 = [[저자:이인직|이인직]] |역자 = |부제 = |연도 = 1908년 |이전 = |다음 = [[../하권|하권]] |설명 = }} <pages index="CNTS-00047818742 (演劇新小說)치악산. 상편.pdf" from=1 to=193 /> == 라이선스 == {{PD-old-70}} [[분류:신소설]] r81p6c837oxia0wl92538945gxkeggb 포털:대한민국 헌법/조문별 판례 102 114356 459717 459665 2026-09-18T04:11:56Z Twotwo2019 2958 /* 행복추구권 */ 459717 wikitext text/x-wiki {{포털 머리말 | 제목 = 대한민국 헌법/조문별 판례 | 상위 = 대한민국 헌법 | 설명 =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각 조문에 관련된 주요 판례를 조문 순서에 따라 모은 문서입니다. }} <div style="border:1px solid #a2a9b1; padding:0.8em 1em; margin:1em 0; border-radius:4px;"> '''[[포털:대한민국 헌법|대한민국 헌법 포털]]'''에서 분류한 판례를 현행 [[대한민국헌법 (제10호)|대한민국 헌법]]의 조문 순서에 따라 정리합니다. 하나의 판례가 둘 이상의 조문 또는 헌법상 쟁점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각 관련 항목에 중복하여 수록할 수 있습니다. 조문과 직접 대응하지 않는 헌법 일반이론에 관한 판례는 문서 마지막의 [[#조문에 직접 대응하지 않는 헌법 일반 판례|헌법 일반 판례]]에서 다룹니다. </div> == 헌법 개념 및 흐름 == === 개념과 분류 === ;주요 판례 * [[2004헌마554]] -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위헌확인,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중 관습헌법 판례 * [[2005헌마579]] - 신행정수도후속대책을위한연기·공주지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위한특별법위헌확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대한 법령 중 관습헌법 적용 판례 === 헌법의 해석(합헌적 법률해석) === * [[89헌마240]] - 국가보위립법회의법, 국가보안법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소원, 합헌적 해석 정의 판례 === 헌법의 개정 및 변천 === ;주요 조항: 제10장 제128조~제130조 헌법개정 ;주요 판례 * [[94헌바20]] - 憲法제29조제2항등違憲訴願, 헌법조항에 대한 사법심사 가능 여부 판례 === 헌법수호 === ==== 저항권 ==== ;주요 판례 * [[74도3323]] - 대통령긴급조치위반·국가보안법위반·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반공법위반·뇌물공여, 저항권의 위법성조각여부 판례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 판례) * [[80도306]] - (가)내란목적살인,(나)내란수괴미수,(다)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라)증거은닉,(마)살인(변경된죄명), 저항권 인정 여부 판례 (10.26 사건 판례) * [[97헌가4]] -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등위헌제청, 저항권 간접 판례 * [[99헌마139]] -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어업에관한협정비준등위헌확인, 헌법전문에서 기본권 도출 여부 판례 ==== 방어적 민주주의 ==== * [[2000헌마238]] -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의결행위취소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른 방어적 민주주의 판례 == 헌법 총설 == === 국가의 구성요소 === ==== 국민 ==== * 조항: 제2조, [[국적법 (대한민국)|국적법]]에 그 법률을 정함. ;주요판례 * [[97헌가12]] - 국적법 제2조 제1항 제1호 위헌제청, 헌법 제2조의 법률위임 판례 * [[2014헌바421]] - 국적법 제5조 제3호 위헌소원, "품행이 단정할 것" 조항 * [[2017헌바434]] - 국적법 제21조 위헌소원, 국적회복과 귀화 구분 판례 * [[2016헌마889]] -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등 위헌확인, 병역준비역 편입된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제한 조항 판례 * [[97헌가12]] - 국적법제2조제1항제1호위헌제청, 국적상실의 부계혈통주의 판례 * [[80다2435]] - 부동산지분이전등기등, 영주권의 취득과 국적상실 여부 판례 * [[73마1051]] - 합명회사특별대리인선임기각결정에대한재항고, 이혼으로 인한 국적상실 여부 판례 * [[2002두9797]] - 출국금지처분취소, 호적과 국적상실의 관계 판례 * [[99헌마494]] - 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제2조제2호위헌확인, 정부수립 이전 국외이주자의 재외동포법 수혜 대상에서 배제 문제 판례 * [[97헌마282]] - 재외국민보호의무불이행 위헌확인, 미성년자보호협약 미가입 판례 * [[2009헌마256]] - 공직선거법제218조의4제1항등위헌확인,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권 제한 사건 판례 * [[2015헌마1047]] - 보건복지부지침 2015년도 보육사업안내 부록2 위헌확인, 재외국민의 영유아 보육료/양육수당 지원 배제 판례 * [[2009헌가13]] - 병역법제75조제2항위헌제청, 국제협력요원의 국가유공자법 적용배제 판례 * [[2004헌마643]] - 주민투표법제5조위헌확인, 재외국민의 주민참정권 미인정 판례 ==== 국토 ==== * 조항: 제3조 ;주요판례 * [[2009헌마516]] - 간도 영유권 회복에 관한 시정조치 부작위 위헌확인, 간도협약 무효 주장 판례 * [[92헌바6]] - 국가보안법 위헌소원, 북한의 헌법상 지위 판례 * [[92헌바48]] -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제3조위헌소원, 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관계 판례 * [[96누1221]] - 강제퇴거명령처분무효확인등,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의 승계 판례 * [[2012헌바192]] -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제9조제1항제1호위헌소원, 마약거래범죄자인 북한이탈주민을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 * [[2003헌바114]] - 구외국환거래법제27조제1항제8호등위헌소원, 신고를 하지 않은 외국환 거래 금지 판례 * [[2006헌마679]] - 북한한의사자격불인정위헌확인, 탈북의료인의 한의사자격 부여 판례 === 헌법의 기본원리 === ==== 헌법 전문 ==== * 조항: 헌법 전문 ;주요 판례 * [[99헌마139]] -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어업에관한협정비준등위헌확인, 헌법 전문의 해석기준 판례 * [[88헌가6]] - 國會議員選擧法第33條,第34條의違憲審判, 헌법 전문의 규범력 * [[92헌마37]] - 國會議員選擧法第55條의3등에대한憲法訴願, 헌법 전문 침해 사례 * [[2004헌마859]] - 서훈추천부작위등위헌확인, 독립유공자 유족에 대한 예우 판례(헌법전문 해석) * [[2008헌마648]] -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재산및청구권에관한문제의해결과경제협력에관한협정제3조부작위위헌확인, 원폭피해자의 보호 판례(헌법전문 해석) ==== 국민주권주의의 원리 ==== * 조항: 헌법 제1조 2항 ;주요 판례 * [[96헌마186]] - 국회구성권등침해위헌확인, 실질적 국민주권의 구현 관련 판례(대의제도의 본질) ==== 법치주의의 원리 ==== * 조항: 헌법 제37조, 제75조(포괄위임금지법칙, 의회유보의 원칙 및 법률유보의 원칙) ;주요 판례 (법치행정의 원리) * [[98헌바70]] - 한국방송공사법제35조등위헌소원, 텔레비전방송 수신료의 법률유보원칙 위반 판례 * [[2006헌바70]] - 방송법제64조등위헌소원, 텔레비전방송 수신료 위임입법 허용 여부 판례 * [[2023헌마820]] - 방송법 시행령 입법예고 공고 취소,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제2항 위헌확인, 한국방송공사 수신료 분리징수 사건 판례 * [[2008헌바160]] - 청원경찰법제5조제3항위헌소원, 청원경찰법 징계에 관한 사항 위임입법 위헌소원 판례 * [[2010헌바1]] -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제2조제11호나목등위헌소원, 도시환경정비사업 사업시행자의 사업시행인가 동의요건 위헌소원 * [[2006두14476]] - 주택재개발사업시행인가처분취소, 동의요건을 정관에 위임한 조항의 위헌여부 판례 * [[85초13]] - 재판권쟁의에대한재정신청, 병의 복무기간의 법률유보 요구 조항 여부 판례 * [[2005헌바31]] - 국가유공자등단체설립에관한법률제11조위헌소원, 국가유공자단체의 대의원 정수 문제 판례 * [[2014헌바158]] - 주택법 제43조 제7항 위헌소원 등, 입주자대표회의의 구성원 규율 판례 * [[2004두10432]] - 사법시험제2차시험불합격처분취소, 사법시험의 과락제도의 법률유보 위반 여부 판례 * [[2002헌바66]] - 상속세및증여세법제41조의2위헌소원, 체계정당성의 원리 판례 ;주요 판례 (법치국가의 입법적 실현 부문) 중 소급입법금지원칙 * [[2002헌바45]] - 구병역법제71조제1항단서위헌소원, 부진정소급입법에 관한 판례 * [[97헌바38]] - 가등기담보등에관한법률부칙제2조등위헌소원, 진정소급입법의 예외적 허용 사례 판례 * [[96헌가2]] -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제2조위헌제청등, 형벌불소급의 원칙 위배 여부 및 소급입법금지의 원칙 위배 여부 판례 * [[2008헌바141]] -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제2조등위헌소원등 * [[2018헌바88]] -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 제4조 등 위헌소원 * [[2011헌바391]] - 공무원연금법부칙제7조제1항위헌소원등 * [[2012헌바105]] - 구법인세법제72조제5항등위헌소원 * [[2006헌바112]] - 구종합부동산세법제5조등위헌소원등, 조세법률주의의 소급입법 판례 ;주요 판례 중 신뢰보호원칙 * [[96헌가2]] -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제2조위헌제청등, 개인의 신뢰보호원칙 언급 * [[2002헌바45]] - 구병역법제71조제1항단서위헌소원, 개인의 신뢰이익에 대한 보호가치 판례 * [[94헌바12]] - 租稅減免規制法부칙제13조등違憲訴願, 부진정소급입법의 위험성 심사기준 판례 * [[2005헌마598]] - 국립사범대학졸업자중교원미임용자임용등에관한특별법위헌확인, 위헌인 법률에 대한 신뢰보호원칙 판례 * [[97헌마38]] - 종합생활기록부제도개선보완시행지침위헌확인, 5.31 교육개혁방안 판례 * [[2001헌마447]] - 도로교통법제71조의16위헌확인·도로교통법제71조의16제2호위헌확인·도로교통법제71조의16위헌제청, 운전학원미등록자의 운전교습금지 판례 * [[93헌바18]] - 舊租稅減免規制法附則제5조제1항違憲訴願, 공유수면매립지 양도소득세 등의 감면제도 축소 판례 * [[2012헌마770]] - 저작권법부칙제4조위헌확인, 저작인접권의 회복 입법 판례 * [[2000헌마152]] - 세무사법중개정법률중제3조제2호를삭제한다는부분등위헌확인, 세무사자격 자동취득제도 폐지 판례 * [[99헌마452]] - 폐기물관리법부칙제5조제2항위헌확인, 건설페재류 재생처리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 판례 * [[99헌마123]] - 1999년도공무원채용시험시행계획위헌확인, 공무원채용시험 시행계획 변경 판례 * [[89헌마32]] - 國家保衛立法會議法등의違憲與否에관한憲法訴願, 국회사무처 직원 등의 신분보장 박탈 판례 * [[2005헌바20]]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제38조제6항위헌소원등, 산재보험법상 최고보상제도의 소급적용 판례 * [[2012헌바382]]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제36조제7항등위헌소원등, 개정 산재보험법상 최고보상제도의 유예적용 판례 * [[2019헌바161]] - 구 공무원연금법 제47조 제1항 제2호 등 위헌소원, 퇴직한 공무원의 지방의회의원 취임 제한 판례 * [[2013헌바248]] - 구 건축법 제80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이행강제금제도 도입 이전의 위법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 판례 * [[2003헌마226]] -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시행규칙제3조의2제1항제1호등위헌확인·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제2조제3호등위헌확인, 6인승 밴형화물자동차의 정원 및 화물제한 판례 * [[2010헌마482]] -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시행규칙제3조제2호위헌확인,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상 차량교체의 법 적용 여부 판례 * [[2002헌바15]] - 구국민연금법제67조제1항위헌소원등,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의 지급금지 판례 * [[99헌마112]] - 교육공무원법제47조제1항위헌확인,교육공무원법제47조제1항본문위헌확인, 교육공무원의 정년단축 판례 * [[2003헌마544]] - 대기환경보전법시행규칙제8조제1호등위헌확인, 휘발유 첨가제의 첨가비율 감소 판례 * [[2009헌바28]] -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제26조제2항위헌소원,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의 등록제 판례 * [[2009헌바99]] - 조세특례제한법부칙제30조위헌소원,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세액 감면규정의 배제 판례 * [[2011헌마408]] - 형법부칙제2항위헌확인, 무기징역의 가석방 석방요건 판례 * [[2015헌바240]] -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제50조 제1항 제1호 등 위헌소원, 선불식 할부거래에 대한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체결 판례 * [[2018헌바457]]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부칙 제3조 등 위헌소원, 미성년자 등에 대한 성폭력범죄 공소시효 특례조항 판례 * [[2003두12899]] - 불합격처분취소, 변리사시험 2개월 전 상대평가로 환원한 법령 판례 * [[2002헌마611]] - 의료법제5조등위헌확인, 외국치과, 의과대학 졸업자에 대한 예비시험 판례 * [[98헌바19]] - 개발이익환수에관한법률부칙제2조위헌소원, 개발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개발부담금의 부과 판례 ;주요 판례 중 명확성의 원칙 * [[2005헌가1]] - 국가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제27조제1항위헌제청, 명확성의 원칙 근거 * [[2003헌바4]] -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제7조제1항단서위헌소원, 명확성의 원칙 판단기준 * [[2004헌바29]] - 직업안정법제46조제1항제2호위헌소원, 직업안정법 제46조의 "공중도덕상 유해" 명확성 여부 * [[2002헌가20]] - 구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제20조제1항제2호위헌제청, "감사보고서에 기재햐아 할 사안" 명확성 여부 * [[99헌가8]] - 미성년자보호법제2조의2제1호등위헌제청, 미성년자보호법상 "잔인성" 명확성 여부 * [[93헌바50]]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제4조위헌소원, "정부관리기업체"의 명확성 여부 * [[2004헌바92]] - 학교보건법시행령제4조의2제1호등위헌소원, 학교보건법상 "미풍양속"의 명확성 여부 * [[2006헌가9]] -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제92조제1호다목위헌제청, "징계의 중요한 절차에 관한 사항"의 명확성 여부 * [[2006헌바69]] - 형법제139조위헌소원, "인권옹호에 관한 검사의 명령" 명확성 여부 * [[2001헌가27]] -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등 위헌제청, "청소년이용 음란물"의 명확성 여부 * [[2002헌가20]] - 구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제20조제1항제2호위헌제청, "감사보고서에 허위의 기재"의 명확성 여부 * [[97헌바3]] - 군형법 제1조 제3항 제3호 등 위헌소원, 군형법의 "지정시간, 지정장소"의 명확성 여부 * [[2003헌바4]] -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제7조제1항단서위헌소원, 당연퇴직공무원 특별채용 배제사유로 "도덕성을 심히 훼손한 자"의 명확성 여부 * [[2012헌바192]] -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제9조제1항제1호위헌소원, "마약거래범죄자"의 미보호 명확성 여부ㅁ * [[2013헌바28]] - 의료법제56조제2항제2호등위헌소원, "소비자를 현혹할 우려"의 명확성 여부 * [[2013헌가17·24]]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5호 등 위헌제청 등, "가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명확성 여부 * [[2013헌가20]] - 구 형법 제104조의2 위헌제청, 국가모독죄의 명확성 여부 * [[2013헌바111]] - 군형법 제64조 제2항 위헌소원, 상관모욕죄의 명확성 여부 * [[2013헌바105]] -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 위헌소원, 명예훼손죄의 명확성 여부 * [[2015헌가11]] - 도로교통법 제2조 제26호 위헌제청, "도로 외의 곳"에서 음주운전 금지의 명확성 여부 * [[2018헌바100]] -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제1항 제1호 등 위헌소원, "출퇴근을 주된 목적"으로 카풀의 명확성 여부 * [[2003헌바71]] -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제5조등위헌소원, 문신시술의 명확성 여부 * [[2020헌바100]] - 구 도로교통법 제60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고속도로 등에서 갓길 통행 금지"의 명확성 여부 * [[2021헌마4426]] -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2항 제3호 위헌확인, "못된 장난"의 명확성 여부 * [[2009헌바234]] - 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법률제625조제2항제4호위헌소원,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의 명확성 여부 * [[2010헌바272]] - 국립묘지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제5조제3항제5호위헌소원, 국립묘지의 영예성 명확성 여부 * [[2010헌가29]] - 구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제86조제7호등위헌제청, "중요한 회의"의 명확성 여부 * [[2012헌바55]] - 구상표법제7조제1항제4호위헌소원, "공공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 거절에 대한 명확성 여부 * [[2010헌바454]] - 구변호사법제90조제1항제2호등위헌소원, "변호사로서의 품위"의 명확성 여부 * [[2011헌가13]] - 방송통신위원회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제21조제4호위헌제청, "건전한 통신윤리"의 명확성 여부 * [[2016헌가3]] -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3호 위헌제청,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의 명확성 여부 * [[2011헌가26]] - 수질및수생태계보전에관한법률제78조제4호등위헌제청, "다량, 토사, 현저한 오염"의 명확성 여부 * [[2012헌바169]] - 구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제8조제1항등위헌소원, "근무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아니하는 사항"의 명확성 여부 * [[2010헌바86]] - 개발제한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특별조치법제31조제1호등위헌소원, "토지의 형질변경"의 명확성 여부 * [[2012헌바62]] - 구변호사법제34조제2항등위헌소원, "법률사건"과 "알선"의 명확성 여부 * [[2016헌바208]] - 행정소송법 제23조 제1항 등 위헌소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의 명확성 여부 * [[2016헌바249]] - 영유아보육법 제44조 위헌소원, "수납한도액 초과 시정 명령"의 명확성 여부 ;기타 중요판례 * [[2005헌마424]] - 자동차관리법시행규칙제120조제1항제1호삭제위헌확인, 자동차매매사업조합의 중고자동차 성능점검배제 판례 * [[2003헌마947]] - 사법시험법시행령제4조제3항등위헌확인등선고, 사법시험 1차시험에서의 법학과목 이수제도 판례 * [[2003헌마428]] - 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시행령제5조등위헌확인, 합성수지 재질의 도시락 용기 사용금지 판례 * [[2001헌마194]] - 군인연금법제17조의2제1항등위헌확인, "퇴직 당시의 보수월액"에서 "평균보수월액"으로 변경 판례 * [[2019헌가12]] - 예비군법 제15조 제10항 전문 위헌제청, 가족 중 성년자가 에비군훈련 소집통지서를 예비군대원 본인에게 전달한 사건 판례 * [[2021헌가9]]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 위헌제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 위헌소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제추행 및 준강제추행죄 위원소원 * [[2020헌마460]] -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3 위헌확인,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상해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를 가중처벌 판례 * [[2017헌가16]] -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제청,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소원, 군형법상 동성 군인 사이 추행행위 판례 ==== 사회국가의 원리 ==== * 조항: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음 ;언급 판례 * [[2002헌마52]] - 저상버스도입의무불이행위헌확인, 사회국가 원리 언급 ==== 경제적 기본질서 ==== * 조항: 헌법 제119조 총론, 구체 헌법조항은 헌법 제120조~127조 ;주요 판례 * [[99헌바76]] - 구 의료보험법 제32조 제1항 등 위헌소원 (동조 제4항 및 제5항), 헌법 제119조의 주요 구체화 판례 * [[2015헌바278]] - 전파법 제58조의2 제1항 등 위헌소원 등, 헌법 제119조의 독자적 위험시사기준 될 수 없다 판례 * [[96헌가18]] - 주세법제38조의7등에대한위헌제청, 경제조항의 의미 판례 * [[96헌가4]] -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단서 제2호 위헌제청, ·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단서 제2호 위헌소원, 자동차의 무과실책임 판례 * [[92헌바43]] - 住宅建設促進法第3條第9號違憲確認, 주택조합의 조합원 자격을 무주택자로 한정 판례 * [[2009헌마338]] - 주택공급에관한규칙제32조제1항위헌확인, 주택공급에 대한 규칙 판례 * [[2003헌가3]] - 의료법제69조등위헌제청, 의료광고 규제 판례 * [[98헌마55]] -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부칙제12조위헌확인, 소득분배와 누진세 판례 * [[89헌마31]] - [公權力行使로인한財産權侵害에대한憲法訴願, 국제그룹의 해체 위헌확인 * [[94헌마125]] - 映畵法제26조등違憲確認, 국산영화 의무상영제 판례 * [[2000헌마642]] - 부동산중개업법 제15조 등 위헌확인, 부동산중개업 법정수수료 판례 * [[2000헌바7]] - 구이자제한법중개정법률등위헌소원, 이자제한법 폐지법률의 위헌 여부 판례 * [[98헌마55]] -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부칙제12조위헌확인, 금융소득의 분리과세 * [[2001헌마605]] -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제3조제1항등위헌확인, 신문 무가지 제한 판례 * [[2010헌마602]] - 출판문화산업진흥법시행규칙제9조의2위헌확인, 10%의 경제상 이익제공 규정 판례 * [[2000헌바43]] - 구유선방송관리법제22조제2항제6호중제15조제1항제1호부분위헌소원,구유선방송관리법제22조제2항제8호중제17조제4호부분위헌소원, 중계유선방송사업자의 보도/논평/광고금지 판례 * [[2002헌바4]] - 유사수신행위의규제에관한법률제3조등위헌소원, 유사수신행위의 규제 판례 * [[96헌바12]] - 구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제18조제1항등위헌소원, 피라미드 판매방식 규제 판례 * [[2003헌바2]] - 구조세특례제한법제69조제1항제1호위헌확인, 자경업자에 한해 양도소득세 면제 판례 * [[2008헌마711]] - 도시개발법제68조제2항위헌확인, 우선매각대상자를 도시 개발사업의 시행자로 한정 판례 * [[2018헌마362]] - 농지법 제9조 등 위헌확인, 농지의 위탁경영 원칙적 금지 판례 * [[99헌마553]] - 농업협동조합법위헌확인, 자조조직의 육성의무 판례 * [[2012헌마811]] - 약사법제45조제2항제2호위헌확인, 창고면적의 최소기준 판례 * [[2017헌바77]] -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위헌소원, 대형마트 영업규제 판례 ==== 문화국가의 원리 ==== * 조항: 헌법 제9조 ;주요 판례 * [[2003헌가1]] - 학교보건법제6조제1항제2호위헌제청·학교보건법제19조등위헌제청, 문화국가의 기본권 판례 * [[98헌마480]] - 학교보건법시행령제4조의2제5호등위헌확인,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서 노래연습장 시설금지 판례 * [[2004헌마732]] - 학교보건법제6조제1항제12호위헌확인,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서 당구장시설 판례 * [[2009헌바244]] - 문화재보호법제55조제1항등위헌소원, 사업시행자의 문화재발굴비용부담 판례 * [[2007헌마377]] - 문화재보호법제81조제4항등위헌확인, 문화재의 보유, 보관행위의 형사처벌 판례 * [[2001헌바64]] - 구전통사찰보존법제6조제1항제2호등위헌소원, 전통사찰 경내지의 공용수용 판례 * [[94헌마13]] - 風俗營業의規制에관한法律제3조제5호등違憲確認, 18세 미만의 노래연습장 출입금지 판례 * [[2008두16933]] -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등, 관습화된 문화요소의 문화국가원리 판례 ==== 국제법과 헌법 관계 ==== * 조항: 헌법 전문(국제평화주의), 헌법 제5조 제1항(침략전쟁 부인), 제6조 제2항(상호주의 원칙) ;주요 판례 * [[2006헌라4]] - 국회의원과대통령등간의권한쟁의, 조약의 정의 판례 * [[2016헌마253]]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위헌확인, 구두합의의 조약 성격 판례 * [[97헌가14]] -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조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제2조제1의(나)항위헌제청, 조약의 위헌법률심판대상 여부 판례 * [[2000헌바20]] - 국제통화기금조약제9조제3항등위헌소원, 조약에 대한 위헌심사 판례 * [[99헌마139]] - 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어업에관한협정비준등위헌확인, 한일어업협정 판례 * [[84도39]] - 항공기운항안전법위반ㆍ총포도검화약류단속법위반ㆍ출입국관리법위반ㆍ항공법위반, 정치범 불인도의 원칙 판례 * [[2005헌마268]] - 대한민국과미합중국간의미합중국군대의서울지역으로부터의이전에관한협정등위헌확인, 미군기지 이전 협정 판례 * [[97헌바65]]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 부칙 제2항 등 위헌소원, 마라케쉬협정 사건 * [[2003헌바50]] - 지방공무원법제58조제1항등위헌소원,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 판례 * [[96다16940]] - 보상금,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의한 재산권 침해 판례 * [[89헌가106]] - 私立學校法第55條第58條第1項第4號에관한違憲審判, 사립학교 교원의 노동운동금지 판례 * [[97헌바23]] - 구 형법 제314조 위헌소원,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행위 판례 * [[99헌가13]] - 부정수표단속법 제2조 제2항 위헌제청, 부정수표발행에 대한 형사처벌과 유엔인권규약 제11조 관계 판례 * [[2008헌가22]] - 병역법제88조제1항제1호위헌제청등, 양심적 병역거부의 국제법규 여부 * [[2006헌마500]] -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 위헌확인,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대화 출범에 관한 공동성명 판례 === 헌법의 기본제도 === ==== 정당제도 ==== * 조항: 헌법 제8조(정당의 설립 자유, 복수정당제),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에서 구체적 법률 ;주요 판례 * [[92헌마262]] - 불기소처분취소, 정당의 지위에 관한 판례 * [[2000카합489]] - 공천효력정지 가처분결정, 정당의 사법심사 가능 여부 판례 * [[91헌마21]] - 地方議會議員選擧法第36條第1項에대한憲法訴願, 정당의 기본권 주체정 인정 여부 판례 * [[2004헌마246]] - 정당법제25조등위헌확인, 5개 이상의 시도당을 요구한 정당법 제25조 규정 판례 * [[2004헌마456]] - 정당법 제3조 등 위헌확인, 지구당 및 당연락소 폐지 판례 * [[2013헌가22]] - 정당법 제37조 제3항 단서 위헌제청, 당원협의회 사무소설치금지규정 판례 * [[2001헌마710]] - 정당법제6조제1호등위헌확인,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 판례 * [[2010헌마97]] - 선거관리위원회공무원규칙제233조제3항등위헌확인,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판례 * [[2018헌마551]] - 정당법 제22조 제1항 단서 제1호 등 위헌확인, 교원의 정당 및 정치단체 결성·가입 판례 * [[2019헌마534]] -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제27조 등 위헌확인, 사회복무요원의 정치적 행위 금지 판례 * [[2009헌마705]] - 국가공무원복무규정제3조제2항등위헌확인,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적 주장 판례 * [[2013헌마814]] - 공직선거법제47조등위헌확인, 정당의 내부경선에 참여할 권리 해석 판례 * [[89헌가113]] - 국가보안법제7조에대한위헌심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 판례 * [[2013헌다1]] - 통합진보당해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 * [[2012헌마431]] - 정당법제41조제4항위헌확인등, 정당등록취소 및 등록취소된 정당의 명칭사용금지법안 판례 * [[2018헌마1168]] - 정치자금법 제27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정치자금법상 회계보고된 자료의 열람기간제한조항 판례 * [[2016헌바45]] - 정치자금법 제45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정치자금 무상대여금지법안 판례 * [[2013헌바168]] - 정치자금법 제45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정당에 대한 후원금지법안 판례 * [[2018헌마301]] - 정치자금법 제6조 위헌확인, 정치자금법상 후원회지정권자법안 판례 * [[2019헌마528]] - 정치자금법 제6조 등 위헌확인, 지방의회의원의 후원회지정 금지 법안 판례 * [[2007헌마1412]] - 정치자금법 제6조 등 위헌확인, 대통령선거경선 후보자의 후원금 전액 국고귀속 법안 판례 * [[2004헌마655]] - 정치자금에관한법률제18조위헌확인, 국고보조금 배분비율기준 판례 ==== 선거제도 ==== * 조항: 헌법 제24조, 제41조, 제67조, 제116조(선거공영제), 구체적으로 [[공직선거법 (대한민국)|공직선거법]]에 규정 ;주요 판례 * [[2004헌마644]] -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제15조제2항등위헌확인등, 재외국민의 선거권 제한 판례 * [[2009헌마256]] - 공직선거법제218조의4제1항등위헌확인,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조항 판례 * [[2012헌마409]] - 공직선거법제18조제1항제2호위헌확인등, 집행유예자 수형자의 선거권제한 판례 * [[2012헌마174]] - 공직선거법제15조위헌확인, 선거권 연령조항 판례 * [[96헌마200]] -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제16조제3항위헌확인,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의 거주요건 제한 조항 판례 * [[2007헌마1024]] - 공직선거법제56조제1항제1호위헌확인, 대통령선거 기탁금 5억원 조항 판례 * [[2015헌마1160]] - 공직선거법 제56조 제1항 제2호 등 위헌확인,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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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판례 * [[2016헌바364]] - 새마을금고법 제22조 제3항 위헌소원, 새마을금고 임원선거의 선거운동제한조항 판례 * [[2015헌마821]] -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3호 등 위헌확인, 선거범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받은 경우 피선거권제한조항 판례 * [[2020헌가9]] -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제137조 제2항 위헌제청,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선거 관련 선거운동제한조항 판례 * [[2000헌마92]] -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별표1, 선거구획정에 대한 가치 판례 * [[2003헌마601]] -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제64조제1항등위헌확인, 투표용지에 표기되는 기호 게제순위 판례 ==== 공무원제도 ==== * 조항: 헌법 제7조, 구체적으로 [[국가공무원법 (대한민국)|국가공무원법]]에서 규율 ;주요 판례 * [[89헌마32]] - 國家保衛立法會議法등의違憲與否에관한憲法訴願, 직업공무원제도가 적용되는 공무원의 범위 판례 * [[2003헌바64]] -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제7조제5항위헌소원, 사실상 공무원의 근무경력 배제 판례 * [[2010헌바425]] - 공무원연금법제3조제1항제1호등위헌소원, 사실상 공무원의 퇴직금 미지급 판례 * [[95헌바48]] - 구지방공무원법제2조제3항제2호나목등위헌소원, 동장의 공직상 신분보장 제외 판례 * [[2003헌바4]] -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제7조제1항단서위헌소원, 임용결격공무원의 특별채용대상 제외 판례 * [[2003헌바111]] - 임용결격공무원등에대한퇴직보상금지급등에관한특례법제2조제3호등위헌소원, 당연퇴직공무원의 근무경력 불인정 판례 * [[99헌마112]] - 교육공무원법제47조제1항위헌확인,교육공무원법제47조제1항본문위헌확인, 교육공무원의 정년단축 판례 * [[91헌바15]] - 國家安全企劃部職員法第22條등에대한憲法訴願, 국가안전기획부직원의 계급정년 판례 * [[2002헌바8]] - 지방공무원법제62조제1항제3호위헌소원, 지방공무원의 직권면직제 판례 * [[2009헌바122]] - 구경찰공무원법제7조제2항제6호부분위헌소원, 경찰임용결격사유의 공무담임권 판례 ==== 지방자치제도 ==== * 조항: 헌법 제117~118조,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법 (대한민국)|지방자치법]]에서 규율 ;주요 판례 * [[2015헌라7]] - 경상남도 등과 전라남도 등 간의 권한쟁의, 지방자치단체의 해상경계선 정의 판례 * [[2012헌바216]] - 지방자치법제91조제2항위헌소원, 지방의회 직원 임용권을 장에게 부여하는 조항 판례 * [[92추17]] - 행정정보공개조례(안)재의결취소등, 청주시 행정정보공개조례(안) 재의결 취소청구판례 * [[96추251]] - 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 수원시 차고지 조례 판례 * [[2006추38]] - 지방의회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청구, 정선시 세자녀 이상 세대 양육비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판례 * [[92헌마264]] - 부천시담배자동판매기설치금지조례第4條등違憲確認,강남구담배자동판매기설치, 조례의 포괄위임 허용 판례 * [[96추15]] - 공유재산관리조례중개정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 조례제정의 범위 판례 * [[99추30]] - 울진군발전소주변지역지원산업시행에관한조례무효확인청구의소, 기관위임사무에 관한 조례제정 판례 * [[95누7994]] - 폐교처분취소, 두밀분교 폐교 사건 판례 * [[96헌바62]] - 지방세법제9조위헌소원, 인천광역시 조례에 의한 과세면제 사건 판례 * [[92추31]] - 지방의회조례안의결취소, 광주직할시 서구 지방의회 재의결 일부의 위법사례 판례 * [[2014헌마797]] - 공직선거법 제191조 제3항 등 위헌확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기본권 인정 판례 * [[2005헌마403]] - 지방자치법제87조제1항위헌확인,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임 판례 * [[2010헌마167]] - 경상남도창원시설치및지원특례에관한법률부칙제2조제3항위헌확인등, 통합창원시장의 계속재임임기 계산 방식 판례 * [[2010헌마418]] - 지방자치법제111조제1항제3호위헌확인, 선고로 인한 권한대행 강제조항 판례 * [[2010헌마474]] - 지방자치법제111조제1항제2호위헌확인, 구금으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대행 판례 * [[2000헌마735]] - 입법부작위위헌확인, 주민투표가 지방자치 본질적 보장가치 여부 판례 * [[2007헌마843]] - 주민소환에관한법률제1조등위헌확인, 주민소환의 소환사유요구 및 투표율조항 판례 * [[94헌마175]] - 경기도남양주市등33개都農複合형태의市설치등에관한법률第8條違憲確認,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병합과 주민의 기본권 침해관계(영일군 사건) 판례 * [[93추83]] - 경상북도의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조례(안)무효확인청구의소, 경상북도의회 조례안과 상위법령과의 충돌 판례 * [[2000헌마283]] -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제62조제1항위헌확인, 교육위원 및 교육감의 선출방식 판례 * [[2003헌라2]] - 아산시와건설교통부장관간의권한쟁의, 지방자치단체의 영토고권 판례 * [[2010헌라2]] - 홍성군과 태안군 등 간의 권한쟁의, 공유수면에 대한 자치권한 존재 여부 판례 * [[2005헌라3]] - 강남구청등과감사원간의권한쟁의, 지방자치단체 자치사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능여부 판례 * [[2006헌라6]] - 서울특별시와정부간의권한쟁의,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자치단체 자치사무 감사가능여부 판례 * [[2005헌라5]] - 제주시등과행정자치부장관등간의권한쟁의, 제주특별자치도 주민투표 실시요구 관한 권한쟁의 사건 * [[2000추36]] - 인천광역시동구주민자치센터설치및운영조례안재의결무효확인청구, 지방의회의 의결 내용 위법시 효력 판례 * [[2005헌마1190]] - 제주특별자치도의설치및국제자유도시조성을위한특별법안제15조제1항등위헌확인,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존속 보장 여부 판례 * [[2003헌마837]] - 경부고속철도역사명칭결정취소, 자치권 또는 주민권과 헌법소원심찬 청구권 관계 판례(천안아산역 사건) == 기본권론 == === 기본권 총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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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 판례 * [[2009헌마691]] - 계호업무지침제60조등위헌확인, 교도소장의 거실검사에 대한 특별권력관계 기본권 제한 판례 * [[89헌마56]] - 군검찰관의 공소권행사에 관한 헌법소원군검찰관의 공소권행사에 관한 헌법소원, 특별권력관계에서 기본권 제한에 대한 근거 판례 ;기본권의 침해 및 그 구제 판례 (헌법 제10조 및 [[국가인권위원회법]] 근거) * [[2005헌마764]] - 교통사고처리특례법제4조제1항등위헌확인,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에 대한 심사기준 판례 및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의 기본권 침해 여부 * [[2008헌마419]] - 미국산쇠고기및쇠고기제품수입위생조건위헌확인, 미국산 쇠고기수입의 위생조건에 대한 고시의 기본권침해 판례 * [[2004헌바81]] - 민법제3조등위헌소원, 태아의 생명보호의무 판례 * [[2001헌바50]] - 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부칙제3조위헌소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고용승계 배제 규정 판례 * [[2012헌마38]] - 담배사업법 위헌확인, 담배제조 및 판매업자의 기본권침해 여부 판례 * [[2015헌바280]] - 구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 제9조 제2항 등 위헌소원, 대상사업의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조항에 대한 기본권침해 여부 판례 * [[2014헌바180]]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위헌소원 등, 민주황눋오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의 기본권침해 판례 * [[2015헌바358]] - 전원개발촉진법 제2조 제1호 등 위헌소원, 원전건설의 승인권한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부여한 규정의 기본권침해 여부 판례 * [[2018헌마730]] - 공직선거법 제79조 제3항 등 위헌확인, 확성장치 사용에 따른 소음 규제기준이 없는 상태의 기본권침해 여부 판례 * [[2016헌바458]] - 공직선거법 제91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공직선거법 제57조의3 제1항 등 위헌소원, 당내경선 시 경선운동방향의 제한규정 판례 * [[2016헌나1]] - 대통령(박근혜) 탄핵, 대통령의 특정한 행위 수행 의무 부존재 판례 * [[2013헌마214]] - 진정사건각하결정취소등, 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가능 여부 판례 === 인간의 존엄 === * 주요조항: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인권보장) ;주요 판례 * [[2001헌마163]] - 계구사용행위위헌확인, 교도소에서 계구사용행위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 판례 * [[2013헌마142]] - 구치소 내 과밀수용행위 위헌확인, 구치소 내 1인당 수용면적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 판례 * [[2017헌마440]] - 교도소 내 수용시설 차별 위헌확인, 교도소 내 수용동 조도 기준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 침해 여부 판례 === 행복추구권 === * 주요조항: 헌법 제10조 ;주요 판례 * [[95헌가6]] - 민법제809조제1항위헌제청, 행복추구권에 대한 정의 판례 * [[93헌가14]] - 國家有功者禮遇등에관한法律제9조본문違憲提請,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과 행복추구권 판례 * [[94헌마125]] - 映畵法제26조등違憲確認, 행복추구권과 공동체 이익 관계 판례 * [[2000헌가5]] - 상호신용금고법제37조의3제1항등위헌제청,상호신용금고법제37조의3제1항중"과점주주" 부분위헌제청,상호신용금고법제37조의3제1항위헌제청,상호신용금고법제37조의3 위헌소원, 행복추구권에 대한 보충적 보장설 판례 * [[2014헌마977]] - 도서대출 및 열람실 이용 불허행위 등 위헌확인,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의 경합시 행복추구권의 법적 성격 판례 * [[89헌마165]] - 定期刊行物의登錄등에관한法律제16조제3항,제19조제3항의違憲與否에관한憲法訴願, 행복추구권에 파생되는 일반적 인격권 판례 * [[89헌마160]] - 民法第764條의違憲與否에관한憲法訴願, 사죄광고 강제조항 판례 * [[2009헌가27]] - 방송법제100조제1항제1호위헌제청, 사과방송 강제조항 판례 * [[2019헌바93]] -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4항 등 위헌소원,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 제1호 위헌소원,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조치조항 판례 * [[2002헌마425]] -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제2조제1호등위헌확인, 명예에 대한 정의 판례 * [[2003헌가5]] - 민법제781조제1항위헌제청, 자유로운 성의 사용과 성명권 관계 판례 * [[2005스26]] - 개명, 개명과 인격권 관계 판례 * [[2004스42]] - 개명·호적정정, 성별정정과 인격권 관계 판례 * [[2004다1680]] - 위자료, 초상권의 권리 여부 * [[2002헌마356]] - 의료법 제20조 제2항 위헌확인, 태아의 성별 고지 금지 판례 * [[2012헌마652]] - 피의사실언론공표등위헌확인, 피의자 조사과정의 촬영허용행위 판례 * [[89헌마82]] - 형법제241조의위헌여부에관한헌법소원, 자기결정권 정의 판례 * [[2008헌바58]] - 형법제304조위헌소원, 혼인빙자간음죄와 성적 자기결정권 판례 * [[99헌바76]] - 구 의료보험법 제32조 제1항 등 위헌소원 (동조 제4항 및 제5항),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규정 판례 * [[2013헌가2]] -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 위헌제청, 성매매 처벌법 판례 * [[2007헌마369]] - 2007년전시증원연습등위헌확인, 평화적 생존권의 기본권성 인정 여부 판례 * [[90헌바24]] -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제5조의3제2항제1호에대한헌법소원, 도주차량운전차의 가중처벌 판례 * [[96헌가5]] -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제3조 등 위헌제청, 구 기부금품모집금지법 판례 * [[2008헌바83]] - 구기부금품모집규제법제15조제1항제1호등위헌소원, 기부금모집금지법 허가 판례 * [[2016헌바370]] - 농업협동조합법 제50조의2 제6항 등 위헌소원, 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의 재임 중 기부행위 처벌 판례 * [[88헌가13]] - 국토리용관리법 제21조의3 제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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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으곳의교당으로부터열시의종이울리면서조곰잇다가겨오철문은열렷다。준봉은문밋ᄭᅡ지ᄯᅮ여나가본즉역시순경의그림자가보인다。방면을하는대순경은무엇에쓰려는지 더구나이상한것은문밧게이상한마차가노엿다 「여긔타란말인가요」 하고뭇지안이할수업다。순경 「그럿소」준봉 「양검사의지휘이겟지오」 순경 「그럿소」 인저한양검사의지휘이라닛가조곰도관게업스리라。어내곳ᄭᅡ지다리고가서ᄂᆞᆫ아마절챠를영하야가지고나를노아주겟지 다만이러케생각하고자긔마음이더욱내이키난듯이얼른마챠에올라탓다。마챠의뒤에난순경의두목갓흔복쟝을입은사람이탓고어쟈와순경세명도합다섯<noinclude><references/></noinclude> 287ypyss5jx0kayho89is0vqlgpq7rx 페이지:CNTS-00076805937 海王星.pdf/50 250 114397 459720 2026-09-18T05:29:49Z ZornsLemon 15531 /* 교정됨 */ 45972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3" user="ZornsLemon" /></noinclude>사ᄅᆞᆷ이준봉의몸을직히고저ᄯᅡ라타더니 조곰잇다가마챠의문은모다닷치며잠을쇠ᄭᅡ지ᄎᆡ엿다。엇ᄌᆡ너무엄중ᄒᆞᆫ모양인듯도ᄒᆞ더라。 마챠ᄂᆞᆫ나왓다。창으로부터밧갓모양을본즉더욱이상ᄒᆞ다。밤중에아모일도업ᄂᆞᆫᄒᆡ안으로향ᄒᆞ야달리ᄂᆞᆫ지라。그러면항구로가러나보다。과연그러ᄒᆞ다。한시간이나달려가더니물결소ᄅᆡ가들리ᄂᆞᆫᄃᆡ도챡ᄒᆞ야뒤에탓던순경두목이나리며 순경도나리고뒤밋처마챠문도열리ᄂᆞᆫ고로수상ᄒᆞᆫᄉᆡᆼ각에견딀수가업서ᄌᆞ긔도나린즉 여긔ᄂᆞᆫᄒᆡ안에잇ᄂᆞᆫ파수병뎡쳐소안힌ᄃᆡ열아문이나되ᄂᆞᆫ병뎡이지금순경두목갓흔사ᄅᆞᆷ의지휘에응ᄒᆞ야나아왓다。총ᄭᅳᆺ헤칼이별빗헤번적어리더라。 「엇더케ᄒᆞᄂᆞᆫ세음이야요」 순경의게향ᄒᆞ야무른즉 「인제알터이니 이리로」 ᄒᆞ고ᄃᆡ답ᄒᆞ며압서서물가흐로나려갓다。물가에ᄂᆞᆫᄇᆡ한척이기다리고잇더라。엇진일인지알수업서ᄒᆞᄂᆞᆫ동안에벌서여긔다가ᄐᆡ워안치고좌우에ᄂᆞᆫ역시순경이옹위ᄒᆞ야잇고 두목갓흔사ᄅᆞᆷ은지휘관모양으로ᄇᆡ머리에서이편동정을삷혀보더라。 네명의선인이힘을갓치ᄒᆞ저어나간다。ᄇᆡᄂᆞᆫ캄캄ᄒᆞᆫ바다우를쏘은살과갓치날라나가언ᄋᆞ틈에항구밧ᄭᅡ지나왓다。정말ᄭᅡ닭을알수업ᄂᆞᆫ일、ᄇᆡ안의설비를본즉그러케멀리ᄭᅡ지가ᄂᆞᆫ것은안인듯ᄒᆞ지만은근처에ᄂᆞᆫ갓다ᄃᆡ일큰ᄇᆡ도업다。엇ᄌᆡ마ᄋᆞᆷ에몹시념려가되ᄂᆞᆫ듯ᄒᆞᆫ고로「대테언으곳으로가ᄂᆞᆫ모양이야요」 ᄒᆞ고다시순경의게향ᄒᆞ야무른즉 「도챡ᄒᆞ기ᄭᅡ지ᄂᆞᆫ알려주지말나ᄂᆞᆫ상관의명령이잇서요」 상관의명령으로입을결박된쟈의게아모리무러도쓸데업ᄂᆞᆫ일이라。준봉이도ᄯᅩ한입을담을엇다。 그러나 아모리ᄒᆞ던지방면ᄒᆞ야주고저다리고가ᄂᆞᆫ것가지ᄂᆞᆫ안타。노아주ᄂᆞᆫ데이러ᄒᆞᆫ절챠<noinclude><references/></noinclude> p01p9d7pc3rkyq3sv0h3regu9hm9dsb 페이지:CNTS-00076805937 海王星.pdf/51 250 114398 459721 2026-09-18T05:30:13Z ZornsLemon 15531 /* 교정됨 */ 45972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3" user="ZornsLemon" /></noinclude>가잇슬ᄭᅡ닭이잇스리오저녁ᄭᅡ지이라고말하던양검사의약속은엇더케되얏는가 내몸에대하야의심을밧는재료라말할당장군의게가는편지는 그모양으로살라바려주엇고엇지하얏던지 내몸을가는곳도알리지안코지향업시ᄭᅳ러갈리가만무한데 그래도실상이와갓치ᄭᅥᆯ어가는것을본즉 검사의약속대로되지못한모양인가검사의힘도부족할큰일이되얏는지도알수업다고 더욱더욱의심을할사록더욱더욱마암이편안치못하다。몸에아모죄도업는쟈가두려워할것은업지만은념려하고잇는부친의게던지숙정의게밤이들도록 말한마듸긔별도못하는것이너무섭섭한일이라。 그동안에배는항구밧긔산모롱을도라법국거류디압흐로지나나간다。항구밧기라하야도륙디와과히멀지는안이한고로숙정의집도으슴프러하게등불이켜서잇는모양이라。저등잔아래에필경숙정이가수심에싸여실음업시안졋스리로다。소래를크게내여부르지지면마조들릴듯한곳이언만은지금이몸이이곳을지나가는줄、엇지면숙정의마암에알려지지안이할고 엇지하야숙정이가물가ᄭᅡ지나오지안는가 거의원망스럽게생각하는중에배는점점더나가그등불도보이지안케되얏다。준봉은견듸다못하야 세번재순경의게 「이배는어듸가서다음닛가、조곰잇스면알것을그러케숨길일이무엇이야요」 간절히뭇는다。순경은동료의게의론하는모양으로 「그래、즉시당쟈가알터이닛가、말하야도관게치안켓지」 동료 「관계할것업네」 이대답을듯고다시준봉의게향하야「이압헤보이는ᄭᅥ먼곳을알겟지오」 준봉{{sic|온|은}}련숙한선인의눈이라。캄캄한속으로자세히본즉검고놉히 {{sic|알|압}}길을막는것갓치바다우에소사잇는것은일홈놉흔요색포대이라。 대처이요색감옥이라함은북경의감옥과갓치사람의무서워하는곳이라。이왕에는요색이얏<noinclude><references/></noinclude> 5wc49gwcl7d07tloyb2zkqbhlpkuuyy 페이지:CNTS-00076805937 海王星.pdf/52 250 114399 459722 2026-09-18T05:30:40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section begin="13" />지만은이즈음별로쓸일이업슴으로비밀한죄인을비밀히처치하야두는곳이되야 여긔한번드러오는자는 거의 두번이세상에나오지못할ᄲᅮᆫ안이라。여긔드러왓다는일도아모에게알리일수가업다。아조사람사람사는이세상에해가비최지안는곳이라。요색의말을드르며준봉의머리에는전신의피가ᄭᅳ러올라와 압뒤생각전혀업시도망을가지안이하면ᄭ... 45972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section begin="13" />지만은이즈음별로쓸일이업슴으로비밀한죄인을비밀히처치하야두는곳이되야 여긔한번드러오는자는 거의 두번이세상에나오지못할ᄲᅮᆫ안이라。여긔드러왓다는일도아모에게알리일수가업다。아조사람사람사는이세상에해가비최지안는곳이라。요색의말을드르며준봉의머리에는전신의피가ᄭᅳ러올라와 압뒤생각전혀업시도망을가지안이하면ᄭᅩᆨ죽는다생각하야 펄석ᄯᅮ여배전에서바다로나라를들랴하다가 즉시순경두명의게잡아업허침이되얏다。순경 「상관의명령을억의여서조곰이라도가는곳을가라처주면고만이모양이야」 동료「아모것도아르켜주지말라는제일명령에는억의엿거니와중로에서도망을하랴하거던즉시총살을하라는명령은억이지안이한다。하고륙혈포의부리를준봉의머리에다가대엿다。이제는다라날수도업다 이세상의해가비최지안이하는요색의감옥으로드러가는외에다른도리는업다。실로악착한일이안인가。」 <section end="13" /> <section begin="14" />{{nop}} ===十四、제갈쟝로「諸葛長老」=== 지금여긔서만일조곰이라도뎌항을하면즉시쏘아죽일것이라。준봉이는차라이저항을하야볼가생각하얏다。사라잇서서지옥갓흔요색감옥에갓치는이보다얼른세상을이져바리는것이얼마나나흘가。 요색감옥이라는두려운일홈이준{{sic|붕|봉}}의귀에는우뢰와갓치울린다。 그러나준봉이는이러한동안에도 양검사의약속은이지바리지안이하야그와갓치굿게언약을하고나로하야곰맹서ᄭᅡ지식엿스닛가 그동안에는엇더케하야주리라하고다만이언약을위하야엇지하얏던지사라잇슬마암을먹엇다 뒤에생각하면이런마암을먹지안앗던편이매우나 <section end="14"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lrqnwnfaezpvf0nbbhzbsqmy767vxsr 459723 459722 2026-09-18T05:30:54Z ZornsLemon 15531 /* 교정됨 */ 45972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3" user="ZornsLemon" /></noinclude><section begin="13" />지만은이즈음별로쓸일이업슴으로비밀한죄인을비밀히처치하야두는곳이되야 여긔한번드러오는자는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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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알아차리고 공셕이되나 멍셕이되나 모ᄅᆡ막이 돌막이로 머리로죳ᄎᆞ 발ㅅ등ᄭᅡ지 나리쓰고 단기ᄂᆞᆫ터이라 이리ᄒᆞᆷ을 여러달을ᄒᆞ니 홍참의집효샹은 더ᄒᆞᆯ말이업거니와 그동리사람들도 ᄒᆡ만셜ㅅ핏ᄒᆞ면 집々마다 졔각금ᄃᆡ문을 칙々닷고들어가셔 밧게셔는 슈륙을ᄒᆞ든지 란리가나든지 내밀어보지도못ᄒᆞ고 이불속으로긔여드ᄂᆞᆫ 사ᄅᆞᆷ도잇스며 그즁에 겁이나죰더ᄒᆞᆫ사람은 옹솟ᄯᅦ어질머지고 독갑이피란가ᄂᆞᆫ 사ᄅᆞᆷ도잇고 ᄌᆡ무든밥ᄉᆞ발과 ᄭᅮ두러진ᄯᅥᆨ조각에 입맛을밧삭붓쳐셔 홍참의집독갑이가ᄯᅦ도망을ᄒᆞᆯ가 겁내ᄂᆞᆫ사람도혹시잇더라 홍참의집에셔 쳐음몃번은 구ㅅ을ᄒᆞ네 경을닑네ᄒᆞᄂᆞᆫ것을 한번이나ᄒᆞ랴면 김씨부인과옥단이가 ᄃᆡ강이를마주대이고안져셔 역뎍모의ᄒᆞ듯 숙덕々々ᄒᆞ면셔 그남편ᄒᆞᆫ아만 쓸々이속이더니 곡비도길면 드ᄃᆡ는법이라 구ㅅ을ᄒᆞᆫ다 경을닑ᄂᆞᆫ다고 야단법셕도 날마다나더니 김씨부인의 그됴흔말솜시로 그남편을엇더케 달내고ᄭᅬ우고을으고 지졋든지 무당판슈라ᄒᆞ면 졀대뎍으로반대를ᄒᆞ든홍참<noinclude><references/></noinclude> bbyw2t5xecdkknjqw8gtuwhlp5dz6lp 페이지:CNTS-00047818629 치악산. 하편.pdf/6 250 114404 459735 2026-09-18T10:30:30Z ZornsLemon 15531 /* 교정됨 */ 45973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3" user="ZornsLemon" /></noinclude>의가 반대ᄂᆞᆫ고샤ᄒᆞ고 무당퍈슈라ᄒᆞ면 사족을못쓴다ᄒᆞ여도 과ᄒᆞᆫ말이안이라 학문도 ᄂᆡ위에사람이업고 지식도ᄂᆡ압에누가잇스리십든소견에 ᄉᆡᆼ각ᄒᆞ기를 옛젹셩인말ᄉᆞᆷ에도 귀신의덕이 셩ᄒᆞ다ᄒᆞ셧고 ᄯᅩ귀신을공경ᄒᆞ야 멀니ᄒᆞ라ᄒᆞ엿스니 이것을미루어볼디경이면 귀신이업는것은안이라십어 귀신울고 독갑이작란ᄒᆞᄂᆞᆫ것을 뎡령며누리의원혼이 모드여 그리작폐를ᄒᆞ는줄알고 그후는구ㅅ을ᄒᆞ든지 경을닑든지 곤두를놀든지 만두를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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