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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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석(河駿錫, 일본어: 河本駿錫, 1898년 ~ ?)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 인물이다.

경상남도 창녕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창녕 지역의 유지에서 시작하여 기업인으로 경력을 쌓던 그는 1935년 선만(鮮滿) 개척 설립위원에 임명되었고, 조선사회사업협회 이사와 국방교육회 부이사장을 지냈으며, 만주 선양의 동광학원 이사 등을 맡아 친일 활동을 했다. 특히 1938년 북지위문단 소속으로 중국 전선의 일본군을 위문하였고,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에까지 임명되었다.

1934년부터 최린천도교 신파가 조직한 시중회(時中會) 이사로 활동하는 등 친일 단체에서도 활동했다. 1936년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가담하였고, 국민총력조선연맹(1940), 조선임전보국단(1941)에도 참가하였으며, 이 기간 중 징병제와 지원병제 등을 홍보하는 강연, 좌담회에 참석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승마협회 이사를 맡았고, 친일 지주 출신의 금융인인 민규식 등과 함께 이승만을 지지하는 우익 정치 활동을 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풀려난 바 있고,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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