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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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神宗, 1144년 - 1204년)은 고려의 제20대 왕(재위: 1197년 - 1204년)이다. 휘는 탁(晫), 자는 지화(至華), 시호는 신종경공정효대왕(神宗敬恭靖孝大王). 인종과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의 다섯째 아들이다.
[편집] 생애
신종은 인종과 공예왕후 사이의 다섯째 아들로 1144년 7월에 태어났다. 신종은 최충헌에 의해 50살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최충헌은 늙은 명종을 폐위하고 명종의 아들과 12명의 신하들까지 귀양 보낸 뒤 신종을 왕위에 앉혔다.
그러다 보니 신종은 아무런 권력도 갖지 못했고 나라는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최충헌과 그 일파는 신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어 놓고 서로 권력 다툼을 벌이며 횡포를 일삼는 바람에 백성들은 굶주림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결과 명종 시대에 시작된 민중 봉기가 신종 시대에도 계속 일어나 온 나라가 전쟁터로 변해 갔다. 1198년에는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봉기를 일으키려다 실패했으며, 1199년에는 명주에서 봉기가 일어나 삼척과 울진 두 현이 무너졌다. 또 동경에서도 봉기가 일어나 명주의 봉기 세력과 손을 잡고 무섭게 일어섰다. 1204년 4월에는 진주에서 봉기가 일어났으며 같은 달에 밀성의 관청 노비 50여 명이 관아를 습격하고 운문에서 일어난 봉기군과 힘을 모아 세력을 크게 떨쳤다. 그리고 8월에는 동경에서 이의민의 친족과 관리들이 싸움을 벌여 동경의 관리들이 모두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해에서는 하층민들이 호족의 횡포를 참다 못해 봉기를 일으켜 호족들을 내쫓고 관아를 포위하면서 관군과 싸우기도 했다.
이에 신종은 봉기군을 달래기도 하고 많은 죄수를 풀어 주어 민심을 얻으려고도 했으며 과거를 실시해 인재를 뽑기도 했다. 또한 1202년에는 탐라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나 가까스로 이를 잠재웠다. 또 동경에서는 별초군이 운문의 봉기군과 동화사와 부인사 등의 승려들과 손잡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영주의 별초군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 영주과 동경 사이에 커다란 전쟁이 벌어졌다. 승리는 영주에게 돌아갔지만 조정은 동경에 중앙군을 보내 백성들을 감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자 동경에서 다시 봉기를 일으켰고 조정은 이들을 간신히 진압했다.
끊임없는 봉기와 반란은 당시 고려 사회가 부패와 억압 때문에 백성들이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런 혼란 속에서 최충헌의 권력은 더 강해지고 횡포는 더 심해졌다.
신종은 이러한 최충헌의 횡포를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면서 비참하게 왕위에 앉아 있다가 1203년 12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그러다 이듬해 1월, 왕태자 덕에게 선위하고 61살에 승하하였다. 능호는 양릉(陽陵)이다.
[편집] 가족 관계
- 선정왕후 김씨(宣正王后)
- 희종
- 양양공(襄陽公)
- 효회공주(孝懷公主)
- 경녕궁주(敬寧宮主)
전 임 명종 |
제20대 고려왕 1197년 - 1204년 |
후 임 희종 |
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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