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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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金策, 1903년 8월 14일 - 1951년 1월 30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함경북도 학성군(성진) 출생으로, 일찌기 중국 옌지에 이주하여 성장하다가 반일 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풀려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무장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엠엘파와 대립되는 화요파 계열로서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어 요직을 맡았고, 이후 동북항일연군에 가담했다.
김일성과는 1940년대 동북항일연군 시절부터 같이 행동한 측근이다. 동북항일연군이 소련에 들어와 재편된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에도 함께 있었다. 당시 직급은 김일성, 강건, 안길과 동급이었다.
광복후 김일성과 함께 귀국한 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을 시작으로,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평양학원 초대 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부수상 겸 산업상을 역임하는 등 북조선 정권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군사위원회 위원 및 전선사령관으로 참전했다가, 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30일 평양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사후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고향인 성진을 개명한 김책시, 청진제철소를 개명한 김책제철소와 평양의 김책공업종합대학이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들인 김국태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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