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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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廢妃 尹氏, 1445년?-1482년)는 판봉상시사 윤기견의 딸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함안.
성종보다 12살 위였고,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와는 8살 차이가 난다고 하나, 그 생년은 정확하지 않다.
1474년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함에 따라 숙의의 위치에 있던 그녀가 왕비가 되었다. 그 해에 연산군을 낳았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고 성종의 다른 후궁들에 대해 감시가 심하였으며, 심지어 그 후궁들을 독살하기 위해 비상(독약의 일종)을 숨겼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성종이 자신의 처소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1479년 6월 2일에 폐비가 되고 말았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비가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두고저 하였으나,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정현왕후(성종의 3번째 비)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면서 1482년 8월 16일, 결국 사약을 받아 사사되고 말았다.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면서 갑자사화 등이 일어나게 된다.
연산군에 의해 제헌왕후에 추존되고, 그녀의 묘는 회릉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중종반정으로 인해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그녀의 관작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