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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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金秊洙, 1896년 ~ 1979년)는 삼양그룹을 창업한 한국의 기업인이다. 김성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아호는 수당(秀堂).
전라북도 고부군(현 고창군)에서 김경중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경중은 김연수가 어릴 때 이미 전라도를 대표하는 거부로 성장한 대지주였다.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1921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형인 김성수가 경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간부로 근무했다. 1925년 경부터는 학교 경영 및 언론사 운영 등으로 사회 활동에 나선 김성수를 대신하여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오랫 동안 친일 기업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9년 서울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194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직을 받았다. 특히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경성방직을 기반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고,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전쟁 기간 중 국민총력조선연맹(1940), 조선임전보국단(1941), 조선국민의용대(1945) 등 친일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 활동을 벌였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풀려났고, 이후 1961년 경제협의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회장을 맡고 여러 차례 훈장을 서훈 받는 등 재계의 원로로 활동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수록되었다.
그가 1924년 ‘삼수사(三水社)'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삼양그룹은 3남인 김상홍(삼양그룹 명예회장)과 5남 김상하의 공동 경영 체제를 거쳐 손자 김윤(김상홍의 아들)이 회장을 맡아 사촌들과 함께 경영하고 있다. 7남 6녀를 둔 김연수의 2남은 전 국무총리 김상협이다.
[편집]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활동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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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 김상준(金相駿) | 1918년 6월 4일 | 2004년 9월 10일 | 삼양염업 명예회장 |
차남 | 김상협(金相浹) | 1920년 4월 20일 | 1995년 2월 21일 | 국무총리 |
삼남 | 김상홍(金相鴻) | 1923년 12월 17일 | - | 삼양사 명예회장 |
사남 | 김상돈(金相敦) | 1925년 2월 24일 | - | |
오남 | 김상하(金相廈) | 1926년 4월 27일 | - | 삼양사 대표이사회장 |
육남 | 김상철(金相喆) | 1938년 4월 25일 | - | |
칠남 | 김상응(金相應) | 1946년 3월 29일 | - | 前삼양사 대표이사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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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분류: 사람 토막글 | 1896년 태어남 | 1979년 죽음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