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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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一進會)는 조선 말기 송병준 등이 조직한 친일단체이다. 지금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편집] 역사
집권파인 여흥 민씨 일파의 박해를 받아 10여 년간 일본에 망명해 있던 송병준은 러일 전쟁 때 일본군 통역으로 귀국, 친일적 민의를 조작하려는 일본의 앞잡이로 나서 1904년 8월 18일 구 독립협회 잔당인 윤시병(尹始炳), 유학주(兪鶴柱) 등과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했다가 8월 20일 다시 일진회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에 윤시병, 부회장에 유학주를 추대하여 발족했다.
일진회는 4대 강령으로 왕실의 존중, 인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시정개선, 군정·재정의 정리 등을 내걸고 국정의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회원은 모두 단발과 양복 차림을 하는 등 개화를 서두르는 척 했다. 1904년 12월 16일 지방조직을 가지고 있는 동학당(東學黨) 내 친일세력인 이용구의 진보회(進步會)를 흡수, 13도 총회장에 이용구, 평의원장에 송병준이 취임했다.
이후 일진회는 일본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친일활동을 전개, 1905년 체결된 을사 조약 지지선언을 냈으며, 기관지 〈민국신보〉를 통해 온갖 친일적 행동을 하였다.
일진회는 처음부터 일본의 막후 조종과 자문을 받았다. 1904년 10월 22일에는 주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 헌병대장 다카야마(高山逸明), 하야시 곤스케 주한 일본공사에게 서한을 보내 "일진회의 취지가 일본 군략상 조금도 방해됨이 없다"며 친일색채를 드러냈다.
일진회가 친일의 기치를 선명히 내세우자 일본은 5만원의 운영 자금을 주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막대한 활동 자금을 지원했다. 일진회는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화한다는 내용이 알려 지고 있는 가운데 1905년 11월 6일 일본에 외교권을 위임하자고 주장하는 〈일진회 선언문〉을 발표했다.[1]
[편집] 각주
-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56~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