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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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유학자 조선의 정치 이념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고려말에 들어와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윤리의 척도로 받아들여 졌다. 때문에 대표적인 조선의 유학자는 동시에 대표적인 조선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조선의 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목차 |
[편집] 조선 초기
정도전 (호: 삼봉, 1337~1398)
황희 (호: 방촌, 1363~1452)
[편집] 조선 중기
이황 (호: 퇴계,1501~1570)
이이 (호: 율곡,1536~1584)
유성룡 (호:서애, 1542~1607)
서경덕 (호: 화담,1489,1546)
조식 (호: 남명, 1501~1572)
이언적 (호: 회재, 1491~1593)
조한보 (호: 망기당, 15세기 후반 ~ 16세기 중반), 정확한 생몰년 알 수 없음
기대승 (호: 고봉, 1527~1572)
[편집] 조선후기
송시열 (호: 우암, 1607~1689)
정경세 (호: 우복, 1563~1633)
허목 (호: 미수, 1595~1682)
[편집] 조선 유학의 주요 논쟁
태극무극논쟁 성리학의 주요 개념인 태극의 성격을 둘러싸고 이언적과 조한보를 중심으로 벌인 논쟁.
사칠리기논쟁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조선의 유학자들간에 이루어진 논쟁. 이황과 기대승간의 논쟁이 유명하다.
[편집] 참고 문헌
<<논쟁으로 보는 한국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예문서원, 서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