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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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년-기원전 30년)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이다.

[편집] 생애

기원전 69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18세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공동으로 통치하는 파라오가 되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기반인 그리스계의 외면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협상하였다.다시 파라오 자리에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물리친후 정치에 몰두하였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후에는 안토니우스와 협동하였으며 3년후 결혼하였다. 결혼후 그녀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권력투쟁을 경제적으로 도운 대가로 페니키아, 유대등의 쓸모있는 영토를 할양받아 확장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와의 삼두정치가 깨지자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 이집트 여인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그녀는 자살했다. 그녀의 자살에 대해 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편집] 평가

클레오파트라는 지식인인 블레즈 파스칼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녀가 살고 있었을때에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이집트 여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현실적인 외교감각을 가진 정치가답게 강대국 로마 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한 업적을 남겼으며 이집트어를 배움으로써 이집트계 주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궁전밖의 세계를 다스리고자 한 여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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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Cleopatra VII of Egy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