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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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현(崔錫鉉, 1893년 ~ ?)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계 경찰을 지낸 친일 인물이다.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났다. 영주에서 헌병보조원으로 시작하여 일제의 순사가 되었다.
그는 고등계 형사로 오랫 동안 근무하면서 독립 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하여 탄압했다. 1927년 김창숙이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자 남학봉, 고창봉과 함께 고문 수사를 벌여 김창숙은 이후 불구가 되었다.
그의 악명을 전국에 떨친 사건은 1927년 발생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범인을 잡는다며 영남 지역의 독립 운동가들을 대거 잡아들여 고문했고, 수년간의 수사와 끈질긴 추격 끝에 진범인 장진홍을 체포하여 자결하게 만들었다.
최석현은 '흡혈귀'로 불릴만큼 끈덕지게 독립 운동가들을 괴롭혔고 성고문도 불사하는 고문 수사로 이름을 날렸다. 장진홍을 잡기 위해서 일본에 건너갔을 때에는 그곳 사찰에서 체포 기원 기도를 올릴 만큼 일제에 충성을 다했다.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경시 계급에 올랐고, 경북경찰관교습소 소장과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과장을 지냈다. 광복 직전 강원도의 영월군 군수에 임명되었다.
그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하자 곧바로 도피하여 결국 체포되지 않았다.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도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