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돈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고상돈(高相敦, 1948년 12월 9일 ~1979년 5월 29일)은 1948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산악인이다.
목차 |
[편집] 일생
청주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71년 네팔정부에 입산허가서를 제출한지, 6년만인 1977년에 등반할 수 있었고, 그해 9월 15일 낮 12시 50분 에베레스트 산을 한국인 최초로 등정하였다. 당시 고상돈이 한 말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였다. 정상의 눈을 손으로 파헤친 뒤 성서와 사진 석 장을 묻음으로서 먼저 간 동료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편집] 사망
1979년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산(6194m) 원정대에 참가하여 1979년 5월 29일 등정에 성공하였으나 하산도중, 이일교와 함께 1,000m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고, 박훈규(현재 58세)는 목숨은 건졌으나 10개의 발가락과 7개의 손가락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써 그는 지금도 존경받는 영원한 산사나이로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 되었다. 한편 박훈규는 퇴원 후 방황하다가 6년후 한라산 등반, 제주산악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산악인의 삶을 다시 시작하였다.[1]
[편집] 사망뒤
1977년에 청년대상, 체육훈장 청룡상을 받았고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 묘소가 있다. 그가 죽은 후, 고상돈대원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2년 6월 에베레스트 산에서 청소활동을 벌이던 단체에 의해 고상돈 원정대의 깃발이 발견되었는데, 깃발에는 '77 K.E.E(77: 등반연도, K.E.E: Korea Everest Expedition)'라고 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