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Diabetes333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Diabetes333님, 안녕하세요! 한국어 위키백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위키백과와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문서들은 위키백과에 익숙해지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또한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있습니다. 꼭 읽어 보시기 바라며, 토론 문서 등에 의견을 남기실 때는 로그인 상태에서 편집 창에 물결표를 이렇게 ~~~~ 네 개 이어서 써 넣으시면 자동으로 서명이 추가됩니다. 위키백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셨다면 이 환영글을 지워주세요. If you cannot speak Korean, click here. - 환영위원회 |
일방적인 주장을 담지 말아주세요. -- ChongDae 2007년 2월 8일 (목) 12:20 (KST)
사실 아닌게 없네요. Diabetes333 2007년 2월 10일 (일) 16:47 (KST)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을 써주세요 개인적인 정치적성향을 배제하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0:20 (KST)
여기는 백과사전 역활을 하는 곳입니다 다른 사용자가 써 놓은 링크까지 모조리 다 지우면 안됩니다 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0:34 (KST)
분서갱유에 대항하느라 바빠서...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0:46 (KST)
[편집] 편집 지침
위키백과:편집 지침을 참고해서 문서를 편집하시면 조금 더 정리된 문서를 만드실 수 있답니다. 다른 문서들의 편집 방식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아, 서명은 --~~~~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121.131.81.210 2007년 2월 10일 (일) 15:57 (KST)
[편집] 창조사학
문서 삭제는 관리자 권한이 없으면 못 합니다. 만약 자명한 이유라면 {{delete}}를 붙여서 요청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위키백과:삭제 토론을 통해서 해 주세요. --Puzzlet Chung 2007년 2월 11일 (일) 06:27 (KST)
[편집] 객관적인 춘추필법을 선호합니다.
객관적인 춘추필법을 선호합니다. 한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찬양이나 비난만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공과를 낱낱히 가려 후세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0:26 (KST)
[편집]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을 써주세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7 (KST)
여기는 대통령에 관한 백과사전을 만드는 곳입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7 (KST)
한 교수의 의견을 가져와 쓰는 곳이 아닙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면 정확한 출처와 신뢰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쓰기 바랍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7 (KST)
또한 대한민국은 특정지역이 지지한다고 해서 당선되는 국가가 아닙니다 또한 정확한 판결 내용과 그에 맞는 출처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7 (KST)
쓸데없이 월드컵에 관전했다 이런 글은 쓰지 마시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글을 쓰기 바랍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0:54 (KST)
혼란이 올까봐 제가 쓴 글에 서명 추가 하였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7 (KST)
[편집] 토론
안녕하세요. 김대중 의 페이지로 편집 전투가 되어 있습니다만 토론의 페이지로 대화를 부탁합니다.--Naohiro19(T/H) 2007년 2월 12일 (월) 01:12 (KST)
안녕하세요. 최근 위키백과의 카프카에 대한 영어문서 일부를 한글로 옮겼는데 매우 상세했습니다. 선진국과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삭제보다는 내용을 더해가는 위키백과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김대중'을 치건 '김영삼'을 치건 간단한 약력, 정치이력은 다 나옵니다. 백과사전이란 이름에 걸맞는 상세한 인물 소개가 되길... 또한 인터넷 백과사전이기에 종이백과사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네요. 이런 장점을 죽이지 말고 잘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1:19 (KST)
저는 김대중 페이지에 싸움이 커지고 있어 바로 윗 글에 제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저의 의견에 아무런 답변도 없이 페이지를 수정, 지우고 있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1:21 (KST)
다시 적겠습니다 Diabetes333 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대통령에 관한 백과사전을 만드는 페이지입니다. 한 교수의 의견을 가져와 쓰는 곳이 아닙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면 정확한 출처와 신뢰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쓰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특정지역이 지지한다고 해서 당선되는 국가가 아닙니다. 또한 정확한 판결 내용과 그에 맞는 출처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쓸데없이 대통령이 월드컵에 관전했다. 이런 글은 쓰지 마시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글을 쓰기 바랍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1:25 (KST)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내용을 많이 보충해 놓았는데 To to님을 비롯, 211.197.207.12 님, Max21님 등이 오늘 수천자씩 삭제했습니다.
객관성에 관하여. 객관성이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완전한 객관성이란 어렵습니다. 어떤 글이건 사건이건 이세상의 모든 것을 기술함에 있어 반드시 세계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수천자씩 날려버리는 것도 그 사람의 해석이기 때문에 존중해야겠지만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문서가 복구되어야 토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카프카 항목을 보면 다닌 초등학교가 정육점 거리에 있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카프카보다 한국사람의 삶에 수만배 영향을 미친 분입니다. 문서를 줄이는게 능사가 아닙니다.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1:32 (KST)
To to님 썼던말을 지우지 마시고 덧붙여서 써주시면 좋겠는데요.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1:33 (KST)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객관성을 견지하겠습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1:41 (KST)
먼저 상대방의 문서를 지우기 시작한 사람은 Diabetes333 <----이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링크해 놓은 글까지 지웠네요 물론 다양한 의견이 써져 있는건 좋지만 해당 항목에 정확히 맞게 기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은 지우는게 맞습니다 관련 사항에 글을 적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용자가 만들어 가는 곳이지만 주제와 맞게 글을 써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서는 저와 Diabetes333 문서 전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또한 제가 먼저 제시했던 문제점에 대한 답변을 하고 의견을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1:50 (KST)
제가 엊그제부터 대폭 첨가한 내용이 많은데 그 내력을 시간순으로 살피기보다는 김대중 문서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살펴보겠습니다. To to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대부분 객관적 사실이거나 근거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첨가한 이유도 웹상이라 지면의 제약을 덜 받는다는 이유뿐이 아닙니다.
To to님이 글을 계속 지우고 계시므로 2007년 2월 12일 (월) 01:42 버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46년 차용애(1926년생)와 결혼. 김홍일, 김홍업을 낳음. 후에 사별함. '
이 부분을 제가 넣었습니다. 김대중이 이희호와 재혼한 것은 그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미국은 독재자도 지원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자도 보듬어 줍니다. 어떻게 되나 제3세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그 대상은 미국에서 교육받은자가 우선입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자는 설사 미국을 비판하더라도 그 사고방식이 미국식이어서 이해나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독특한 민족교육이나 민족의식이 있는 자입니다. 김대중은 두번째 결혼에서 이희호와 결혼함으로 기독교인(구교)로 거듭나게 되었고 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희호와 재혼함으로써 그렇게 되었다면 첫번째 결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줄에 이런 의미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김대중의 재혼사실, 새엄마로서 이희호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은 이미 여성지에서도 잘 다뤄진봐 있는 감출필요가 없는 '객관적'사실입니다.
이 한줄이 날아가야 할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2:04 (KST)
자녀들의 출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인물의 배경지식이 됩니다.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2:05 (KST)
어린시절
'1939년 일제는 창씨개명을 한국인들에게 강제하였는데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그는 '토요타 다이추(豊田大中)'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부분은 제가 며칠전 고친 글입니다. 원래 글은 10대에 뭐뭐로 바꾸었다고 나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0대라면 10살인가 19살인가.. 10살이라면 부모손에 이끌려 갔을 수도 있고 19살이면 여러가지 민족의 모순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살인가? 일제는 창씨개명을 1939년에 했고 그의 나이 14살때였습니다. 이것은 객관적 사실일 뿐 아니라 독자들이 읽어가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볼수 있습니다. 이 부분도 자꾸 10대에 뭐뭐로 바꾸었다의 간략한 내용으로 되돌려 놓는 이유가 뭔가요?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2:09 (KST)
1971년 대선을 위한 당내경선에서 그는 처음에 당내 대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의 적수는 김영삼의원이었다. 유진산은 후보지명을 자신에게 일임하면 공정하게 하겠다고 양측에 얘기했다. 경선 하루 전 그는 밤새 대의원들을 설득하여 기적적인 역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박정희 후배에게 패배하였다. 당시 대선 패배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당시 시대분위기에서 군장병들은 거의 여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문단도 제가 새로 넣었습니다. 이것도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내용입니다. 오래된 책뿐 아니라 웹서핑만 해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김대중 항목에 쓰지는 않았지만 위 내용을 좀더 얘기하자면 유진산은 이중플레이를 했습니다. 양쪽에 될 것처럼 얘기한 것이죠. 김영삼은 어려서부터(초선의원시절)부터 귀여움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승산이 높았죠. 김대중은 어려서부터 자기힘으로 큰 사람입니다. 유진산을 신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대의원들 사이에서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밤새 대의원들이 묵고 있는 여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시킨 것입니다. 그야말로 진실의 순간이고 우리나라 정치사에 드문 극적인 순간입니다.
저는 누구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니고 다만 여러가지 사실을 잊지말고 기억하고 나중에 또 비판하고 교훈을 얻었스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2:16 (KST)
할 말은 많으나 졸려서 오늘은 이만... 인터넷에서야 싸움의 기술을 겨룰수도 없고, 돈이 많냐 권력이 많냐를 다툴 수도 없습니다. 다만 논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래도 들을말이 있다 싶으면 인정하고 서로 배워나가는게 순리 같습니다. 내용보다 링크에 너무 맘을 쓰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난적도 없지만 많은 김대중 지지자들 보다 그의 기쁨과 고통을 더 많이 이해하지 않는가 감히 말해봅니다. 그럼 이만..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02:21 (KST)
[편집] 제 글을 이해 못하셨군요 다른 사람이 링크 해 놓은 글까지 모조리 지우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쓴 글은 옳지 못합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3 (KST)
토론 중간에 글을 수정 삭제 하지 말아주세요 논란이 대상이 된 글 이전으로 원상 복귀했습니다 논란이 된 시점 이전 글 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옳지 않을까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0:41 (KST)
그럼 해당 글의 문제제기를 하겠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남북 정상회담의 직전에 현대 그룹이 북한에 5억 달러를 위법으로 송금을 하는 것을 용인했다//<----------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정확히 판결난 사례가 없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3 (KST)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에 대해 그는 옹호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 등 서방 자본을 비난하는 입장이어서 그 둘은 외환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에서 대립각을 세웠다//<---------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외국 총리하고 대립각을 세웠다.?????? 단순 말레이시아 총리의 의견만 쓰면서 IMF구제 금융을 받아들인게 잘못이다?????라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대립각이라는 표현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IMF는 김영상 정부시절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1:23 (KST)
//그는 전국적인 추앙을 받지는 않는다. 한반도 서남부 전라도 지방에서 100%가까운 지지를 받는다 //<--------대통령 당선은 특정 지역만 지지해서 당선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일부 생각을 쓰면 안됩니다.당시 수도권과 충청도의 지지가 없으면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 합니다 --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51 (KST)
//나머지 지방에서는 보수파들의 통렬한 비판의 표적이 되곤한다.//<----------//나머지 지방//글로 고의적으로 대통령의 지지를 악의적으로 축소하시군요 다른 지역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적지 말아주세요 사실을 적어주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1939년 일제는 창씨개명을 한국인들에게 강제하였는데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그는 '토요타 다이추(豊田大中)'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특별히 문제 될게 없지만 다른 사람이 창씨개명 링크한걸 왜 지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네요 정확히 14세라 밝혀진 바가 없어 10대로 바꾸는게 맞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그의 외환위기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될 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가만히 있어서 될 IMF사태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평가가 있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글에 논란이 있으니 정확한 출처를 링크해주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한편 야당에서는 노벨상 로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이 글은 //야당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노벨 평화상로 로비설을 제기 하였지지만 밝혀진 바 없다// 이렇게 바꾸는게 좋을꺼 같네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0:41 (KST)
원상 복귀한 글 //집권 이후, 전임 김영삼 정부에서 발생한 IMF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IMF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 실시를 요구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기업 투명성 강화와 부채비율 축소정책을 추진하여 IMF 위기를 극복하고 인권신장, 햇볕정책 등 긍정적인 평가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고,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 등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문제 있습니까? 왜 자꾸 삭제 수정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 업적을 축소 하십니까?--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0:41 (KST)
Diabetes333씨의 글은 너무 당시 야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의혹만 내세운 비난을 주관적인 의견으로 쓰고 있네요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기 때문에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1:23 (KST)
<<다시 말하지만 있는 사실을 정확히 기입해주세요 주관적인 의견을 쓰지 말아 주세요 또한 논란이 있는 글은 직접 정확한 출처를 링크해주세요>> 위키백과 도움말 참고 해보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3 (KST)
[편집] 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자꾸 링크가 없어진걸 문제 삼지만
1939년 일제는 창씨개명을 한국인들에게 강제하였는데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그는 '토요타 다이추(豊田大中)'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부분을 이렇게 고치는 것 보다는 '그가 10대 때 창씨개명이 이루어졌고, '도요타 다이주(豊田大中)'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창씨개명에 링크를 추가해 주는게 더 낫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위의 이유와 갚이 재혼 사실을 날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링크를 만들 시간을 주는게 더 낫다고 봅니다.
정치활동 부분도 제가 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이 후 1980년 '서울의 봄'시절 차기 집권을 위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3파전이 벌어졌다.김대중과 김영삼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당시 계엄사령관 전두환은 12.12사태를 일으키고 5.18 광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 부분도 크게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지역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에게 190만표 차로 패배했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체류하였다. 이 부분도 객관적 사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호남지역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란 문장을 살펴보면,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정권 기간 호남지역은 경제개발의 소외지역이었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정부의 고위층부터 관료인사까지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호남인에게 김대중은 한 사람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김대중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 그를 통해 차별을 극복하려고 해왔습니다. 92년 대선의 패배로 오랜기간 호남인들의 정치적인 꿈은 다시 좌절되었고 5년을 또 기다려야했습니다. 당시 한겨레 등에는 내부 호남은 내부 식민지다. 호남인들은 애를 많이 낳는 수밖에 없다는 등의 통한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마지막 부분 1997년 7월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정계은퇴선언을 한 지 2년 7개월만의 일이었다. 9월에는 그를 따르는 의원 65명을 모아서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71년 대통령선거에 첫 출마한지 26년만이고 그의 나이 일흔 두 살이었다. 도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글을 지우기 보다는 링크를 붙여주시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재임기간에서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이유는 '햇볕정책'과 북한과의 협력 그리고 한국과 다른곳에서 인권에 헌신한 공로이다. 이 부분도 제가 수정한 부분입니다. 원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아마 이렇게 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 부분이 이상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었나? 제 생각은 NO였습니다. 그래서 노벨상 위원회 웹사이트에서 김대중으로 검색을 하니 노벨상 수여 이유가 영문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제가 고친 부분입니다. 제 기억에는 'sunshine' policy ...로 시작하는 문장입니다. 제가 쓴 부분은 노벨상 위원회가 직접 밝힌 더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전의 링크가 날아갔다는 이유로 더 정확한 정보를 날려버리기 보다는 링크를 달기를 요청하거나 달아주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다음 문단 아래 부분 중 굵은 부분이 제가 쓴 부분입니다.
집권 이후, 전임 김영삼 정부에서 발생한 IMF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IMF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 실시를 요구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기업 투명성 강화와 부채비율 축소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의 외환위기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될 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바드대학의 마틴 펠스틴 같은 사람은 한국의 외환위기가 금융위기의 성격이었고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기업을 비난하고 억제하므로써 그의 행정부는 높은 성장율을 위한 동력을 약화시켰는 것이다
그 부분은 김대중항목의 영문판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추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IMF란 어떤기구인가, 한국과 IMF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에서 IMF가 강제한 정책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말해 외환위기는 일시적인 유동성의 위기, 환율방어로 인한 외화소진 등입니다. IMF의 정책은 재정적자의 감소와 구조조정, 자본시장의 개방 등입니다. 이런 정책들을 시행한 나라에서 위기가 극복되기보다는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IMF가 한국에서 시행한 정책이 어떤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문단의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에 대해 그는 옹호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 등 서방 자본을 비난하는 입장이어서 그 둘은 외환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라는 문장도 제가 썼습니다.
후대의 김대중 반대자들이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마하티르도 다른 의견을 가졌던 것입니다. 마하티르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3세계에서 꽤 유명한 지도자입니다.
어린 학생이 숙제를 하다가 제가 쓴 부분을 본다면 여러가지 문제의식을 가질 수도 있고 뭔가 더 공부해봐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신동아 1월호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경제 교수가 기자에게 '자유무역협상에서 왜 미국은 은행권의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답니다. 기자는 한탄을 했습니다. IMF 구제금융을 받고 경제 신탁통치를 받을때 시중은행은 이미 외국자본에 넘어갔습니다. 협상을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 '대부'를 보면 공격당해 놓고 처음에는 적이 누군지조차 모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딱 그꼴입니다. 저는 IMF의 음모설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 정확한 본질은 밝혀져야 됩니다. 당시 우리는 국제자본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어쨌던 제 글은 이런 정보를 제공할뿐 아니라 객관성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파서 여기까지...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11:02 (KST)
[편집] To to님 의견에 대한 코멘트
링크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6천자씩 날려버리는게 능사는 아닙니다. 링크가 없어졌다면 요청하던가 수정해 주시면 될 것입니다.
주관, 객관의 문제는 제 글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해당 글의 문제제기를 하겠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남북 정상회담의 직전에 현대 그룹이 북한에 5억 달러를 위법으로 송금을 하는 것을 용인했다//<-----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정확히 판결난 사례가 없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3 (KST)
라는 부분.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실형을 살았습니다.
//그는 전국적인 추앙을 받지는 않는다. 한반도 서남부 전라도 지방에서 100%가까운 지지를 받는다 //<-----대통령 당선은 특정 지역만 지지해서 당선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일부 생각을 쓰면 안됩니다.당시 수도권과 충청도의 지지가 없으면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 합니다
나중에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아래 부분은 영문판 위키 김대중 항목의 번역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당장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어쨋던 위 문장은 김대중이 호남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다는게 아니라 전국적인 추앙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고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여 번역했습니다. 차라리 당시 대선 지방별 득표율 같은 자료를 더하는게 낫다고 봅니다.
자꾸 삭제 삭제 삭제 보다는 더 나은 내용으로 가꾸어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창씨개명에 대한 링크는 붙여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수정한 부분의 의견은 위에 있습니다.
//그의 외환위기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될 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가만히 있어서 될 IMF사태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평가가 있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글에 논란이 있으니 정확한 출처를 링크해주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02:44 (KST) 말했듯이 영문판 김대중 항목을 번역한 것이지 제 개인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번역이유는 위에 말씀드렸습니다.
//한편 야당에서는 노벨상 로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이 글은 //야당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노벨 평화상로 로비설을 제기 하였지지만 밝혀진 바 없다// 이렇게 바꾸는게 좋을꺼 같네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0:41 (KST)찬성합니다. 그렇게 바꾸는 것도 좋겠습니다. 많은 시사지나 신문에서 읽어본 제 개인적인 느낌은 김영삼 때는 김대중 노벨상 수상을 저지하려는 방해공작이 있었던 것 같고, 김대중 노벨상 수상을 위한 활동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우리나라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이기에 문제제기를 하다가 어느 한 순간 사라졌습니다. 여당, 여당과 사회지도층의 묵언의 합의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나라망신 시키지 말자는 것이지요. 여야 모두의 타당한 결정이라 봅니다. 그러나 언급할 필요는 있습니다.
원상 복귀한 글 //집권 이후, 전임 김영삼 정부에서 발생한 IMF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IMF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 실시를 요구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기업 투명성 강화와 부채비율 축소정책을 추진하여 IMF 위기를 극복하고 인권신장, 햇볕정책 등 긍정적인 평가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고,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 등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문제 있습니까? 왜 자꾸 삭제 수정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 업적을 축소 하십니까?--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0:41 (KST) 노벨상 수상이유부분은 위에 제가 밝혔습니다.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 등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잘못된 부분입니다. 노벨상 수상위원회가 말한 수상이유가 맞습니다. 한반도에는 냉전이 종식되지도 않았고 평화가 정착되지도 않았습니다.
IMF구제금융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행보에 관한 대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당시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섰어도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도 그대로 따른 것만은 아닙니다. 재정축소 정책에 반대하여 IMF의 명령을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 추가되어야 됩니다. "IMF가 하라는대로 해서 모든게 잘풀렸다" 이런식의 정보는 정보가 아닙니다. 화석화된 기술 속에 생동감 있는 사고의 가능성을 닫아 놓을 뿐입니다. 많은 부분 능력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내용이 계속적으로 보충되어야 될 것입니다. 자꾸 원래부분으로 바꾸어서 발전의 가능성을 막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11:30 (KST)
[편집] 김대중 노벨상 수상의 이유
더 정확한 문서를 찾아냈습니다.
http://nobelprize.org/nobel_prizes/peace/laureates/2000/
"for his work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South Korea and in East Asia in general, and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with North Korea in particular"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그의 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그의 노력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12:02 (KST)
업적을 없앤다고 하셨는데 정확한 내용을 더하려는 제 노력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의 업적에 더 부응하는 일이고요.
[편집] 출처는 위키 영문판
그의 외환위기 극복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될 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중략) 전국적인 추앙을 받지 않는다 (중략)
이 분의 출처를 밝힙니다. 전술한 대로 위키 영문판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Criticisms of Kim Dae Jung Kim is by no means universally admired. He enjoys an extremely high level of support in the Southwestern Jeolla province, where he routinely received close to 100% of the popular vote in elections. In the rest of the country, he is often a target of scathing criticism by the conservatives, who constitute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Kim is known for his superb oratorial skills and is often characterized as a demagogue and a populist rabblerouser. To rally support, he has often resorted to inflammatory rhetoric pitting the Jeolla province against the wealthier Gyeonsang Province and has also been accused of instigating the Kwangju armed uprising, which led to a bloody suppression by the military. He was tried and found guilty of sedition charges for the Kwangju uprising, although he was pardoned later. On at least three occasions over two decades, he publicly renounced any further interest in politics, only to come back and run for Presidency once more. He was finally elected President on his fourth attempt.
While Kim credits himself with recovery from the Asian financial crisis, others point out that the recovery was only partial and was most likely inevitable given the underlying strength of the Korean economy. It has been argued by prominent economists, such as Martin Felstein of Harvard University, that the crisis was largely financial in nature, not arising from a fundamental defect in the growth-oriented market economy propelled by large corporations, which resembled the Japanese economy from two decades earlier. By blaming and suppressing the large corporations, Kim Dae Jung's administration may have sapped the country of potential for sustained high-rate growth. Numerous corporations which had enjoyed robust growth went under during Kim's Presidency, particularly the ones whose owners publicly disagreed with Kim's business policies. Newspapers critical of the administration, including the Chosun Ilbo, Donga Ilbo, and Korean Central Daily, were targeted for tax audits and the owners jailed for tax evasion.
His Sunshine Policy is today considered by many to be a glaring failure, having only provided sufficient cash for North Korea to maintain its totalitarian regime and develop nuclear weapons. There has been little factual evidence that the North Korean regime has made any progress in human rights, about which Kim has been notoriously silent. Indeed, Kim may have committed illegal acts while funneling large sums of state money to North Korea without the knowledge of the National Assembly or the Korean public. While many have called for a special prosecutor to investigate the charges, no extensive formal investigation has taken place with the leftists remaining in power in the executive and legislative branches of the government. This may change in the subsequent administration as the level of support for both the current President and the ruling party have dropped well below 15% while the conservatives have enjoyed an upsurge of support to nearly 50%.
Diabetes333 2007년 2월 12일 (월) 12:06 (KST)
[편집] 대북송금에 대한 출처
제가 쓴 문장 자체는 위키 일문판 김대중 항목의 번역입니다.
http://ja.wikipedia.org/wiki/%E9%87%91%E5%A4%A7%E4%B8%AD
対北送金 金大中は南北首脳会談の直前に現代グループが北朝鮮へ5億ドルを違法に送金をするのを容認した。現代グループはこれにより北朝鮮における事業の権利を得た。このため首脳会談は送金の見返りだったという見方があり、ノーベル賞受賞に疑問をなげかけた。
전술한 대로 박지원은 실형을 살았습니다.
[편집] 영문판, 일문판 등 김대중항목을 함부로 삭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함부로 삭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글판을 저나 많은분들이 힘들여서 채워넣듯이 누군가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편집] 전 영문판 일문판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7 (KST)
허위사실을 말하지 마세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7 (KST)
[편집] 제가 쓴 글의 답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군요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6 (KST)
토론이 끝나면 그를 수정하던지 하시기 바랍니다 또 Diabetes333 논라이 된 문서로 바꾸었군요 옳지 못합니다 논란이 된 이 전 문서로 바꾸겠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전 삭제 한게 아닙니다.전 계속 논란이 지속되는걸 막기 위해 논란이 시작된 이 전 문서로 되돌려 놓았을 뿐입니다. Diabetes333씨가 최초 쓴 문서 이전 문서 글에서 다시 시작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아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글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쓴 글의 답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무조건 아니라고 글을 쓰시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을꺼 같습니다Diabetes333씨가 쓴 글에는 직접 책임을 가지고 링크를 써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링크를 추가하라는건 옳지 못합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위키백과 도움말을 참고 하시면 왜 출처와 링크를 쓰라고 하는지 아실겁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창씨개명 고리 수정 해놓았는데 삭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정확한 연령이 밝혀지지 않는봐 논란이 있으니 정확한 링크를 걸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10대라고 추정하는게 맞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야당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노벨 평화상로 로비설을 제기 하였지지만 밝혀진 바 없다// 이렇게 바꾸는데 Diabetes333 찬성 하신다고 하셨으니 이 부분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하지만 //하지만 김대중은 우리나라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이기에 문제제기를 하다가 어느 한 순간 사라졌습니다 여당, 여당과 사회지도층의 묵언의 합의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나라망신 시키지 말자는 것이지요. 여야 모두의 타당한 결정이라 봅니다. 그러나 언급할 필요는 있습니다//<------------이 부분은 문제가 있네요 정확한 증거 자료가 없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 로비설이 소리없이 사라진거입니다 사회지도층의 묵언의 합의????? 여기는 의혹만 내서운 곳이 아니라고 몇번이나 글을 썻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위키 백과는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 곳이 아닙니다 IMF원조 요청에 대한 비판적인 개인적인 교수의 의견은 IMF사태 항목에 링크를 걸어 해당항목에 기입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아니면 IMF원조 요청을 한 김영삼페이지에 의견을 객관적으로 쓰는게 좋을꺼 같습니다 말레이시아 총리가 누구지 모르는게 아닙니다 대립각을 이루었다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것입니다 이 부분은 Diabetes333 의견 바로 위 제 의견을 다시 읽어 주세요 영문판에서 글을 가져 올려면 정확히 해석해서 글을 쓰기 바랍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 등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부분을 문제 삼으신거 같은데 분명 군사 독재시절부터 이루어진 남,북 긴장상태가 해소 되었습니다. 분명 평화정착에 대한 공로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남,북한과의 관계를 김대중 정부시절과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노벨 평화상 위원회에서 상을 준 목적은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로인데 Diabetes333 개인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상을 준 목적까지 바꿔버리면 곤란합니다.--To to 2007년 2월 12일 (월) 12:42 (KST)
[편집] 김대중 항목과 토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토론에 계속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하나마 제가 쓴 부분에 대한 이유와 나름의 근거는 모두 밝혔기에.. 오늘 보니 김대중 항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군요. 관심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해주신 To to님, 토론을 만들어주시고 항목을 정리해주신 리듬님, 항목을 정리해주신 Gksdnf1999님께 감사드립니다. Diabetes333 2007년 2월 14일 (수) 12:00 (KST)
[편집] 아일랜드 내전
안녕하세요? 아일랜드 내전 문서에 기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된 내용을 읽다보니 궁금한 것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계급모순과 사회모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선뜻 읽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저만 이해를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저처럼 계급모순과 사회모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다듬었으면 좋겠습니다. -- Allen 2007년 2월 28일 (수) 01:27 (KST)
-
- 안녕하세요. 그러고 보니 암호같네요. 고쳤습니다. 사실 저는 아일랜드에 대해 잘은 모릅니다. 오래 전에 관심을 가져왔으나 공부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역사는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시사점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도 6.25를 치렀으니까요. 그들의 역사에서 저는 우리 역사를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계속 수고해 주시면 제 견문을 넓히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스니다. 감사합니다. Diabetes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