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홍범도(洪範圖, 1868년 - 1943년)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1910년 한일합방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청산리 대첩에서 김좌진 장군을 지원하였다. 1927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그곳에서 1943년에서 죽었다. 1962년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편집] 생애

  • 1868년 음력 8월 27일 - 평양에서 출생.
  • 1886년 - 어렸을 적에 일찍 부모가 죽자, 여러가지 막노동을 전전.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중, 친일파였던 공장주가 7달동안 품삯을 주지 않고서는 도리어 먹고 입고 잠잔 값을 받아야겠다고 하자 공장장을 살해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감. 총술과 검술은 이때 산생활에서 익혔다고 함.
  • 1895년 - 을미사변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홍범도도 강원도 철령에서 봉기
  • 1896년 - 14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함경남도로 이동하여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 을미의병 해산 후 포수로 위장하고 일제의 추적을 피함.
  • 1907년 -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정미의병 발발. 홍범도는 함병도 갑산 신포계 신포수 중심으로 의병 조직. 12월에 삼수 전투에서 일본군 함흥/북청/갑산 수비대를 궤멸시키는 등 대소 37회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국내에서 무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함.
  • 1919년 10월 - 평안북도 강계 만포진을 공략하여 일본군과 3일간 격전을 치르면서 70여 명을 살상.
  • 1920년 6월 7일 - 봉오동에서 일본군 19사단 소속 야스가와 소좌 휘하 부대를 격멸(봉오동 전투)
  • 1920년 10월 - 청산리 대첩 참가. 김좌진과 공동 작전.
  • 1921년 6월 - 자유시 참변. 러시아 자유시에서 소련의 해산 명령을 계기로 독립군 조직간에 분열이 발생하여 동족 상잔. 이후 대한독립군은 러시아 적군 소속으로 편입되어 이르쿠츠크로 이동
  • 1922년 - 모스크바에서 열린 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 이때 레닌과 조우
  • 1923년 - 연해주 이남 구역 차우돈카에서 농업 콜호스를 조직하여 활동
  • 1927년 -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
  • 1937년 -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옮겨져 연금으로 생활
  • 1938년 - 알마아타의 크질 오르다 조선인 극장에서 수위로 근무
  • 1943년 - 76세의 나이에 카자흐스탄에서 사망.
  • 1963년 10월 25일 -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편집] 바깥 고리

1997년········1998년 선정, 이 달의 독립 운동가 ········1999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신언준 민긍호 백용성 황병학 김인전 이원대 김마리아 안희제 장도빈 홍범도 신돌석 이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