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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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呂布 156년 ~198년)는 후한 말기·삼국 시대의 장수이다. 자는 봉선(奉先)이며, 오원(五原)군 구원(九原)현 출신이다. "사람 중에 여포요, 말 중에 적토가 있다(人中呂布 馬中赤兎)"고 했을 정도로 여포의 용맹은 당대 최강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자기를 거둔 정원과 동탁을 배반하여 죽였기에 "배신의 상징"처럼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여포는 그 악명만큼 배신을 자주 한 사람은 아니었다.

[편집] 생애

여포는 처음에 병주자사 정원(丁原)을 따랐으나, 그의 권력욕으로 인해 동탁(董卓)의 유인에 넘어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을 섬겼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원은 여포의 의부(義父)였으며 동탁이 선물한 적토마의 유혹에 넘어가 정원을 죽였다고 기록한다. 동탁을 섬기게 된 여포는 동탁과 부자의 서약을 맺었으며 동탁을 곁에서 호위하였다. 여포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하였으며 전한 무제 때의 명장인 이광에 비유하며 스스로를 비장(飛將)이라고 불렀다.

동탁의 괴팍스러운 성격은 여포와의 갈등을 불렀는데, 동탁은 자신의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화극을 여포에게 던지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여포의 마음 속에는 동탁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싹텄다.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동탁에게 발각될까 두려워하였다. 당시 사도 왕윤은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폭정을 임살고 있던 동탁을 죽일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벌어진 것을 기회로 여포를 동탁 주살 계획에 끌어들인다. 천자가 미앙전으로 신하를 소집했을 때 동탁을 불려들여, 여포는 동탁을 죽이고 그의 삼족을 멸했다. 이 때가 192년(초평 3년) 4월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과 여포 사이가 벌어진 원인이 왕윤의 양녀인 초선(貂蟬)을 둘러싼 다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탁을 죽인 후 여포는 분무장군에 임명되고 온후(溫侯)에 봉해졌고 조정의 정사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동탁의 무리였던 이각·곽사 등에게 패하여 장안성을 빼았겼다. 원술에게 몸을 맡기려 하였으나 여포의 배반을 증오한 원술이 받아들이지 않자, 원소에게 가서 그와 함께 장연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원소와의 사이가 이내 틀어지고 그는 원소를 떠나 장양에게 합세하였다. 조조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서주도겸을 치러 본거지를 비웠을 때, 여포는 장막과 합세하여 복양을 점거하였다. 그러나 조조에게 결국 패배하여 유비에게 몸을 의탁한다.

유비가 원술을 치러 나갔을 때 여포는 하비를 점거하고 서주를 취하였다. 이후 유비는 여포에게 귀의하였다. 여포는 스스로를 서주자사라고 칭하였다. 원술이 기령을 보내 유비를 토벌하려 하자, 여포는 화극에 화살을 맞추는 무용을 선보이며 원술과 유비를 중재하였다. 원술과의 혼담을 여포가 처음에는 승낙하였다가 이내 파기하였고, 조조는 이 무렵 여포를 좌장군에 제수했다.

198년 여포는 다시 원술과 연합하여 조조에게 맞섰다. 조조가 친정에 나서 여포를 포위하였다. 원술은 여포를 구하러 스스로 기병을 끌고 나갔지만 패하여 여포를 구원할 수 없었다. 그러자 후성(侯晟)·송헌(宋憲)·위속(魏續)이 여포를 배신하여 진궁을 체포하고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여포는 조조의 군졸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항복했다.

여포는 조조에게 "명공은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에게는 기병을 거느리게 하면 천하의 평정이 실로 쉬울 것입니다."라고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유비는 조조에게 정원과 동탁의 전례를 들었고, 조조는 이를 옳게 생각하여 여포를 교수하였다. 일설에는 조조의 큰 그릇을 잘 알고 있던 유비가 여포의 재능을 조조가 손에 넣을 것을 우려하여 여포의 처형에 찬성하였다고 한다.

[편집] 평가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여포를 평하길, "호랑이와 같이 용맹스러웠으나 모략이 없고 천박교활하며 오직 이익만을 바라보며 일을 도모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여포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보면 그를 나쁘지 않게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여포가 동탁을 배신하였을 때 왕윤이 이간계를 잘 썼기 때문이라고 하였을 뿐 여포의 인간성-배신을 잘 한다거나 이익만을 보고 일을 도모한다-을 거론하지 않았고, 또한 정사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 따르면, "장막이 진궁과 함께 조조에게 반역을 도모하여 여포를 맞아들이자 군과 현(군과 현의 주민)이 모두 호응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유비가 여포를 배신하여 가족을 내팽개치고 달아났을 때 여포는 유비가 여포의 결의형제임을 들어 그들을 보살펴주었다(정사 삼국지에서 여포는 유비를 "유비는 나의 동생"이라고 지인에게 소개하곤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서 볼 때 "오직 이익만을 바라보며 일을 도모한다"라는 평가는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편집] 여포와 관련한 배신 기록

정사 삼국지에는 많은 배신의 기록이 나타나 있다.

  • 여포는 정원과 동탁을 배신하였다.
  • 원소한복여포를 배신하였다.
  • 손책원술을 배신하였다.
  • 진궁은 조조를 배신하고, 장막(張邈)에게 가 있다가 장막에게 여포를 맞으라고 건의했다.
  • 조조는 장수를 배신하였다.
  • 송헌과 후성은 여포를 배신하였다.
  • 유비여포조조, 유장, 유봉을 배신하였다.
  • 조표(曺豹)는 유비를 배신하고 여포를 맞아들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하비의 수장 조표와 공모하여 유비를 배반하였다고 나온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서는 "하비의 수장 조표가 유비를 배반하고 은밀히 여포를 영접했다"라고 하였다.


삼국지의 주요 등장 인물
군주 후한: 영제 - 소제 - 헌제
: 조조 - 조비 - 조예 - 조방 - 조모 - 조환
: 유비 - 유선
: 손견 - 손책 - 손권 - 손량 - 손휴 - 손호
: 사마염
기타: 공손찬 - 도겸 - 동탁 - 마등 - 맹획 - 여포 - 원소 - 원술 - 유요 - 유장 - 유표 - 장각 - 장로 - 장수 - 한복
참모 : 가후 - 곽가 - 만총 - 사마사 - 사마소 - 사마의 - 서서 - 순욱 - 순유 - 유엽 - 정욱 - 허유
: 간옹 - 강유 - 등지 - 미축 - 방통 - 비의 - 손건 - 장완 - 제갈량
: 고옹 - 노숙 - 육손 - 육항 - 장굉 - 장소 - 제갈근 - 제갈각 - 주유
: 가충 - 장화 - 진수
기타: 심배 - 이숙 - 이유 - 저수 - 전풍 - 진궁
장군 : 등애 - 서황 - 악진 - 우금 - 이전 - 장합 - 장료 - 전위 - 하후돈 - 하후연 - 허저
: 관우 - 관평 - 관흥 - 마초 - 위연 - 장비 - 장포 - 조운 - 황충
: 감녕 - 능통 - 서성 - 여몽 - 정보 - 주연 - 주태 - 태사자 - 한당 - 황개
: 양호 - 두예 - 왕준 - 왕혼
기타: 기령 - 문추 - 안량 - 하진 - 화웅
기타 관로 - 남화노선 - 사마휘 - 손상향 - 우길 - 좌자 - 초선 - 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