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18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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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金永哲, 1841년 ~ 1923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인사이다.

그는 광산 김씨로서 이조판서를 지낸 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나 1872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요직에 임명되었으며, 김보현은 선혜청당상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김영철은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이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