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류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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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류타로(일본어: 橋本龍太郎, 1937년 7월 29일 ~ 2006년 7월 1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중의원 의원(14선), 내각총리대신(제82·83대), 특명담당대신(행정개혁·오키나와-북방대책·규제개혁),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제42대), 통상산업성 장관, 대장성 장관(제86대), 운수성 장관(제60대), 후생성 장관(제61대), 자유민주당 총재(제17대) 등을 역임하였다. 오자와 이치로 등과 함께 1990년대의 일본 정계를 대표하는 정치가의 한 사람이다.
[편집] 약력
- 1937년 도쿄 시부야 구에서 대장성 관료 하시모토 료고의 장남으로 태어남.
- 1960년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 1963년 4월 중의원 의원 니시무라 에이이치의 비서가 됨.
- 1963년 7월 고바야시 다케하루 후생성 장관의 비서관이 됨.
- 1963년 11월 아버지(1962년에 급사)의 뒤를 이어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됨(오카야마 2구).
- 1970년 1월 제3차 사토 내각의 후생정무차관에 임명.
- 1978년 12월 후생성 장관에 임명(제1차 오히라 내각).
- 1986년 7월 운수성 장관에 임명(제3차 나카소네 내각).
- 1989년 6월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선출되나 곧 사임.
- 1989년 8월 대장성 장관에 임명(제1차 가이후 내각).
- 1993년 7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해 하야를 받고, 총재 고노 요헤이 하의 자민당 정조회장으로 취임.
- 1994년 6월 통상산업성 장관에 임명(무라야마 내각).
- 1995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 총재였던 고노 요헤이를 불출마하도록 유도한 후, 그를 대신해 대항마로 입후보한 전 후생성 장관 고이즈미 준이치로에 큰 차이로 승리해 17대 자유민주당 총재로 취임.
- 1996년 1월 무라야마 내각이 퇴진함에 따라 제82대 내각총리로 취임.
- 1997년 4월 기간이 만료된 오키나와 미군용지의 수용을 계속하게 하는 미군용지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성립시킴.
- 1998년 7월 참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
- 2000년 12월 행정개혁담당대신·오키나와 개발청 장관에 임명(제2차 모리 개조내각).
- 2001년 1월 행정개혁 담당 대신에 오키나와·북방대책담당대신과 규제개혁담당대신을 겸임.
-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패배.
- 2004년 2월 국제 연합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요청으로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취임.
- 2004년 7월 일본치과의사연맹으로부터의 1억엔 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헤이세이 연구회 의장을 사임함. 또한 차기 총선거에서 오카야마 4구에서 불출마할 의사를 표명.
- 2005년 8월 중의원 해산 후 “총선거 불출마=정계 은퇴”를 표명하여 14회 연속 당선의 정치 인생을 마감함.
- 2006년 7월 1일 도쿄 신주쿠 구의 국립 국제의료센터에서 장관허혈을 원인으로 하는 패혈증성 쇼크에 의한 다장기부전으로 사망. 향년 68세.
전 임 무라야마 도미이치 |
제82 ~ 83대 총리 1996년 1월 11일 ~ 1998년 7월 30일 |
후 임 오부치 게이조 |
[편집] 링크
- 하시모토 류타로의 홈페이지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