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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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檀奇古史)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般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이 편찬했다는 역사서인데, 1959년에 출간된 한글 복원본만이 전해지고 있고 그 내용도 특이하여 위서로 의심되고 있다.
단기고사는 '단군(檀君)과 기자(奇子)의 옛 역사' 라는 의미로, 전단군조선과 후단군조선으로 분류된 47대 약 2천여 년에 걸친 역사와, 그보다 늦은 기자조선의 42대 1천여 년의 역사, 재위기간과 각 시대의 주요 사실을 시대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은 기존의 기자조선(箕子朝鮮)과는 다르며, 단기고사의 기자(奇子)가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기자(箕子)를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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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출간경로 및 유래
, '저자의 말'과 '중간서(重刊序)', '출간경로'에 의하면, 단기고사는 728년 대야발이 흩어진 사료를 모아 발해문으로 지었으며, 100년 후에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되었던 것을 구한말 학자인 유응두가 중국에서 발견하여 수십권 등사하였고, 이관구, 김두화, 이시영이 국한문으로 번역.교열하여 간행하였다고 한다. 1949년 간행본을 구할 수 없게 되자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한글본을 복원하였다.
현재 1959년에 간행된 한글복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편집] 1959년 판본의 구성
- 출간 및 책 내용과 관련된 자료
- 보충자료 - 역대총계표, 각종 기사, 역대약기, 전단제.후단제.기자조선 지도
- 단기고사중간사(김재형), 단기고사중간서(정해박), 본사출간경로(김재형, 정해박, 이종국) 등 출간정보
- 보충자료 - 국조단군칙어, 원본국가, 천부경
- 단기고사재편서(발해국 대야발)
- 단기고사중간서(이경직), 단기고사중간서(신채호)
- 본문
- 제1편 전단군조선
- 제2편 후단군조선
- 제3편 기자조선
[편집] 진위 논란
[편집] 천문 기록의 연구
박창범 교수(서울대 천문학)는 단기고사에 기록된 10여 건의 천문 관련 기록의 실현 여부를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의 검증을 위해 1993년 한국 상고사학회에 제출하였다. 상고사학회는 고고천문학이라는 시도의 참신함을 인정하여 논문을 받아들였으며, 그 내용이 2002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도서로 출간되었는데, 그 이후로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논문의 주장과 그 반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장 - 오성취합은 25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데, 기록과 실제 현상은 1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썰물 기록도 200년 사이에 가장 큰 썰물이 4년의 오차로 기록되었다. 이는 매우 적은 확률이며, 따라서 기록이 임의로 조작된 것일 확률도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 반론 - 논문은 단기고사가 위작일 경우 막연하게 꾸며내었을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동양 천문학의 지식이 있다면, 특히 천체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게 된 조선 세종시대 이후라면 옛 천문현상을 예측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연구의 기준으로 쓰인 연대는 고조선이 B.C.2333에 건국되었음을 가정한 것이며, 단기고사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연대가 아닌 환단고기의 연대를 따른 것이다.
[편집] 내용상의 모순
단기고사에는 여러 가지 모순을 찾아볼 수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서로 채택되지 않는다.
- 출간년도와 원본
- 단기고사는 한문본인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1949년 간행본은 구할 수 없고, 1959년의 한글 번역본 이전의 것은 없다.
-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 및 어휘
- 미술관, 지구성, 원심력, 만국박람회 등의 근대에 등장한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기구와 전화, X-레이와 잠수선이 등장하고, 신하가 임금에 서양의 칸트-라플라스가 주장한 성운설의 내용을 소개하기도 한다.
- 재위연도의 모순
- 단기고사에는 고조선이 2096년에 모두 47대로, 기자조선이 1097년에 42대로 기록되어 있다. 왕의 수는 비슷한데 다스린 연수가 2배의 차이가 난다. 단기고사에 기록된 왕들의 평균 재위연대는 45년 가까이 되어 상식과 어긋난다. (후반부에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된 기자조선은 41대 1052년으로 기록되어 평균 재위연대가 26년으로 계산된다.)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 점을 들어 단기고사의 기록을 불신하고 있다.
- 단기고사에 의하면, 기자조선이 전단조선 19세 단군 종년(규원사화는 구모소 임금)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1097년 간 계속되었다. 위만조선의 시작 연대를 일반적인 기원전 194년으로 가정하면, 전단조선의 시작 연대는 기원전 2512년이 된다. 일반적인 기원전 2333년과는 179년의 차이가 난다. 간지(干支)가 기록되어 있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기원전 2333년이 고조선의 시작 연도로 기록되어 있다.
- 박병섭의 「단군과 기자 관련 사료를 통해 본 『환단고기』의 역사성 검토」에서는 후단조선과 기자조선의 동일 내용에 대한 시대 불일치로 자체의 기간 정합성이 없음이 지적되었다.
[편집] 내용
각 역년별로 특이한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편집] 단기고사의 역년 및 기록
- 왕검(王儉)단군 : 재위 93년 (B.C.2512)
- 부루(扶婁)단군 : 재위 58년
- 가륵(嘉勒)단군 : 재위 45년
- 오사구(烏斯丘)단군 : 재위 38년
- 구을(丘乙)단군 : 재위 16년
- 13년, 혼천기(渾天機)를 제조
- 달문(達文)단군 : 재위 36년
- 한율(翰栗)단군 : 재위 54년
- 우서한(于西翰)단군 : 재위 8년
- 아술(阿述)단군 : 재위 35년
- 노을(魯乙)단군 : 재위 58년
- 도해(道奚)단군 : 재위 58년
- 48년, 평양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 양수기, 자행윤선차, 경기구, 자발전차, 천문경, 소금천리상응기, 진천뢰, 어풍승천기, 흡기잠수선, 측우기, 측한계, 측서계, 량우계, 측풍계 등 제조
- 아한(阿漢)단군 : 재위 52년
- 흘달(屹達)단군 : 재위 61년
- 16년, 지방자치제 실시.
- 20년, 법정학교(法政學校) 설립
- 고불(古弗)단군 : 재위 60년
- 벌음(伐音)단군 : 재위 51년
- 위나(尉那)단군 : 재위 58년
- 여을(余乙)단군 : 재위 68년
- 동엄(冬奄)단군 : 재위 49년
- 종년(縱年)단군 : 재위 55년
- 고홀(固忽)단군 : 재위 43년
- 소태(蘇台)단군 : 재위 52년
- 색불루(索弗婁)단군 : 재위 48년
- 아홀(阿忽)단군 : 재위 75년
- 연나(延那)단군 : 재위 11년
- 10년, 정치원론 저술
- 솔나(率那)단군 : 재위 89년
- 39년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김(후 단군조선), 서여가 기자조선 건국 (B.C.1291)
- 추로(鄒盧)단군 : 재위 65년
- 두밀(豆密)단군 : 재위 26년
- 해모(奚牟)단군 : 재위 28년
- 마휴(摩休)단군 : 재위 34년
- 내휴(奈休)단군 : 재위 35년
- 등올(登兀)단군 : 재위 25년
- 추밀(鄒密)단군 : 재위 30년
- 감물(甘勿)단군 : 재위 24년
- 오루문(奧婁門)단군 : 재위 23년
- 사벌(沙伐)단군 : 재위 68년
- 매륵(買勒)단군 : 재위 58년
- 30년, 성리학, 심리학 저술
- 50년, 의학화학 저술
- 마물(麻勿)단군 : 재위 56년
- 다물(多勿)단군 : 재위 45년
- 두홀(豆忽)단군 : 재위 36년
- 달음(達音)단군 : 재위 18년
- 음차(音次)단군 : 재위 20년
- 4년, 종교론 저술
- 을우지(乙于支)단군 : 재위 10년
- 5년, 지리학, 광물학 저술
- 물리(勿理)단군 : 재위 25년
- 8년, 논리학원본설 저술
- 구물(丘勿)단군 : 재위 40년
- 5년, 동물 및 식물학 저술
- 16년, 백과서 저술
- 여루(余婁)단군 : 재위 55년
- 28년, 의학대방 저술
- 40년, 자본론 저술
- 보을(普乙)단군 : 재위 46년
- 고열가(古列加)단군 : 재위 58년
- 22년, 건축학 저술
- 25년, 종수학(種樹學) 저술
- 기자조선 멸망, 위만조선 건국 (B.C.194)
고조선의 치세기간은 기원전 2512년 ~ 기원전 416년에 해당되며, 47대 2096년 간 지속되었다. 평균 재위기간은 44년 7개월이다.
기자조선의 치세기간은 기원전 1291 ~ 기원전 194년에 해당되며, 42대 1097년 간 지속되었다. 평균 재위기간은 26년이다.
- 위만조선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194년으로 추정하였다.
[편집] 다른 사서와의 비교
[편집] 《환단고기》와 공통된 기록
《단기고사》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왕의 명칭 및 재위기간이 거의 일치하며, 50여 건의 공통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 부루
- 3년 도량형 통일 (단기고사: B.C.2416, 단군세기: B.C.2237)
- 가륵
- 2년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精選)
- 오사구
- 7년 배만드는 곳을 살수 상류에 설치
- 우서한
- 7년 세발 달린 까마귀가 대궐에 들어왔는데, 날개 너비가 석자였다.
- 아술
- 원년 두개의 태양이 나란히 나와 보는 자 마치 넓은 울타리 같았다.
- 노을
- 16년 장백산의 누운 돌이 일어나고, 발해에 용귀(龍龜)가 나타나고, 흑수(黑水) 강가에 금괴가 노출되니 수량이 열한섬이나 되었다.
- 아한
- 2년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났다. 창해역사 여홍성은 비석을 지나며 시를 읊었다.
마을 밖 변한이라 이르는 곳에 / 홀로 뛰어난 돌 하나 있었네
받침은 깨지고 철쭉만 붉었는데 / 글자는 보이지 않고 이끼만 푸르구나
다듬어져 처음 생겼을 때 그대로 / 흥망의 황혼에 우뚝 서있으니
글에 보이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 이 어찌 단군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 홀달
- 50년 오성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 고불
- 56년 관리를 사방에 보내어 호구조사. 총계 1억 8천 만.
- 위나
- 28년 만국의 제후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회의.
- 고흘
- 40년 공을홀이 천하의 지도를 제작하여 바쳤다.
- 해모
- 11년 태풍이 일어나 폭우가 쏟아지니, 육지에 고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 마휴
- 8년 여름에 지진이 일어났다.
- 9년 가을에 남해(南海)의 조수가 석자(三尺)나 물러났다.
- 추밀
- 13년 3월 일식.
- 오루문
- 10년 두 해(兩日)가 함께 떠오르듯 왕무(黃霧)가 사방을 덮었다.
- 사벌
- 6년 황충의 피해와 홍수.
- 매륵
- 28년 지진과 해일이 있었다. (단기고사: B.C.855, 단군세기: B.C.676)
- 35년 용마가 천하에서 나왔는데 등에는 별무늬가 있었다.
《단기고사》의 연대는 동일한 《환단고기》〈단군세기〉의 기록보다 179년 앞선다.
《단기고사》〈기자조선〉의 기록은 《환단고기》의 「번한세가」의 내용과 왕의 명칭과 업적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편집] 참고문헌 및 링크
- 대야발 원저, 정해박 역, 《단기고사(檀奇古史)》, 충북신보사(忠北新報社), 1959
- 고동영 역, 《단기고사(檀奇古史)》, 한뿌리, 1990
- 조인성, 韓末 檀君關係史書의 再檢討 :《神檀實記》·《檀奇古史》·《桓檀古記》를 中心으로, 국사관논총 제3집 (1989. 10), 國史編纂委員會
- 이상시,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 고려원, 1990 中 제3장 5절 《檀奇古史》·《桓檀古記》·《帝王年代歷》에 대한 文獻考證
-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김영사, 2002
- 박창범, 라대일,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한국상고사학보》, 14, 95, 1993
- 이문규, 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 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 전국역사학대회 과학사분과 발표문, 2003
- 허종호, 고조선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남-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
- 박병섭, 「단군과 기자 관련 사료를 통해 본 『한단고기』의 역사성 검토, 한국종교사학회, 2003
- [1]사료비판(일본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