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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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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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위 | |
1468년 ~ 1469년 | |
왕 비 | 장순왕후 안순왕후 |
황 후 | {{{황후}}} |
왕 후 | {{{왕후}}} |
부 군 | {{{부군}}} |
앞선 왕 | 세조 |
앞선 황제 | {{{이전 황제}}} |
다음 왕 | 성종 |
다음 황제 | {{{다음 황제}}} |
조선의 제8대 국왕 |
예종(睿宗, 1450년 ~ 1469년, 재위 1468년 ~ 1469년)은 조선의 제8대 임금이다. 휘는 광(晄), 자는 명조(明照) 또는 평남(平南), 시호는 예종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睿宗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편집] 생애
1450년 경오 정월 정축일에 세조의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해양대군으로 봉해졌으나 형인 의경세자가 까닭없이 갑자기 죽어버리자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68년 9월에 세조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19살 때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예종은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아직 성년인 20살이 되지 않았으므로 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예종의 국정은 어머니인 정희왕후의 수렴청정과 세조가 지명한 3명의 신하들이 내린 결정을 형식적으로 결재하는 원상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예종의 재위 기간은 14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1468년에 남이의 옥 사건이 일어났으며, 1469년에는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서 일본과의 개별 무역을 금지시켰으고, 그 외에도 병영에 딸려 있는 논과 밭을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세조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했던 《경국대전》을 드디어 완성했으나 이를 반포하지 못한 채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승하하고 말았다. 능은 서오릉 중의 하나인 창릉(昌陵)이다.
예종은 원상제도와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재위 기간 동안 정희왕후의 강력한 통치로 사회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예종은 2명의 왕자와 1명의 공주를 두었으나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 왕세자에 책봉됨으로써 예종의 아들들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편집] 가족 관계
-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 인성대군(仁城大君)
-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 제안대군(齋安大君)
- 현숙공주(顯淑公主)
- 혜순공주(惠順公主)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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