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다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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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다 가즈오(일본어: 楳図 かずお 본명 楳図一雄 1936년 9월 3일~)는 일본 와카야마 현 이토 군 고야 정 태생의 만화가이다. 호러,SF,개그,소년소녀물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호러만화로 일본 호러만화의 일인자 또는 대부로 불린다. 또한 많은 만화가들이 그의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 한 때 유행했던 빨간마스크 괴담은 본래 그의 공포만화작품에서 시작되었다.
[편집] 작품활동
출생후 6세때 아버지의 본적지인 나라 현 고죠 시로 이주하여 27세때 도쿄로 이주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데즈카 오사무의 모험만화《신다카라지마》(신보도)를 읽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초기의 스케치는 데츠카의 것을 모방했으나, 프로의 길을 결심한 중학교 때 하츠야마 시게루, 다케이 다케오등 동화작가의 영향에 따른 작풍으로 변경하여 고베,아오모리의 동인지 서클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1955년 『森の兄妹』(숲의 형제)(6월),『別世界』(별세계)(9월)등의 잡지로 프로데뷔하였다. 1963년 도쿄로 상경하여 이케부쿠로, 메지로, 다카다노바바, 기치죠지(현재)등에 거주하였다. 자동차를 싫어하여 전차 또는 도보로 이동한다고 한다. 1966년에 『ねこ目の少女』《고양이눈의 소녀》『へび少女』《뱀소녀》등이 대인기를 얻으면서 공포만화가로서의 명성을 일본전역에 알리게 된다. 1971년 주요 작품활동을 소학관으로 옮기면서 《표류교실》 《나는 신고》등 그의 대표작들을 소학관 잡지에 연재하게 된다.
《1995년》에 완결된 《14세》이후 더 이상의 창작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장기간의 작품활동으로 인한 지병악화와 소학관 편집자와의 트러블이 원인이다. 대신, TV,잡지등에서의 탤런트 활동은 활발하다. 밝고 서비스정신넘치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어 젊은 여성층을 포함하여 팬을 확보하고 있다.
[편집] 영향
절정기에는 치밀한 배경및 인물묘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특히 미소녀 작화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로 평가받았다. 1960년대 말을 정점으로 이후에는 화풍도 변화하여 한계를 느낀 그가 절필을 선언하였으나, 그의 신작을 보고 싶어하는 팬은 아직도 많다. 많은 작품속에서 성인이 매우 크게 묘사되어 어린이의 시점에서 관찰한 세계관이 엿보인다. 연예인 및 유명인들로부터 팬이 많아서, 추리작가인 아야츠지 유키토 같은 경우는 그를 신으로 부르며, 나는 신고를 1화부터 울면서 읽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만화가 야마자키 도오루, 나카가와 쇼코등은 작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공공연히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으며, 공동작품을 내기도 하였다. 의사겸 탤런트 니시카와 아야코, 싱어송 라이터 시바타 쥰 등도 열렬한 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열혈팬으로서 자신의 작품이 동 감독에 의해 영상화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편집] 주요작품
- 《오로치》
- 《어게인》
- 《표류교실》
- 《마코토 짱》
- 《14세》
- 《나는 신고》
- 《신의 왼손 악마의 오른손》
- 《뱀소녀》
- 《아기소녀》
- 《바램》
- 《세례》
- 《이아라》
- 《고양이눈 녀석》
- 《로맨스 약》
분류: 1936년 태어남 | 일본의 만화가 | 와카야마 현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