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식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강이식(姜以式) 진주강씨의 시조로 고구려 영양왕 때의 명장이다.

남북조시대로 나뉘어져 혼란하던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文帝)는 외부로 눈을 돌려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품고 조공과 봉작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도발에 분노한 고구려는 먼저 선제공격을 하게된다. 영양왕은 강이식 장군을 병마원수(兵馬元帥)로 삼아 5만의 개마병을 이끌고 출전하여 수나라 영주성까지 밀고 나가게 되었다. 영주총관 위충의 군대는 강이식 장국과 일전을 벌였으며 강이식 장국은 대승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 후 강이식 장국은 개마병 1만과 보병 5만 휘하에 두고 임유관으로 출전하여 수나라 문제의 30만대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게 된다.(영양왕8년). 이에 수문제는 결국 철군하게 된다.

십여년뒤(영양왕23년)에 수양제는 113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재침공하는데 이때 강이식 장군은 수륙양군병마도원수(水陸兩軍兵馬都元帥)가 되고, 왕제 건무는 해상을, 을지문덕은 육상을 맡아 대항하였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별동대 30만 대군을 전멸시키자 사기가 꺽인 수나라는 또 한번 철군을 서두르게 된다.

묘는 만주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옆 앞에 있으나 중국 문화혁명 당시 크게 회손되어 지금은 거북좌대만 남아있다. 묘비가 회손되어 강이식 장군의 사망년도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