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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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이탈리아어: Durante degli Alighieri, 1265년 6월 1일경 ~ 1321년 9월 13일 또는 14일)는 두란테의 약칭인 단테(Dante)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시인이다. 피렌체의 알리기에리 혹은 알라기에리(Alagh(i)eri) 가문의 일원이다(단테의 아들 야코포의 설명: “Durante olim vocatus Dante, condam Alagherii de Flore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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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의 중부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출생 일자에 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구구하며, 5월 30일이 실제 출생일이라는 설이 있다. 유년 시절의 단테의 삶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년 시절에 경험한 베아트리체와의 인연을 주제로 하는 자서전적인 《새로운 삶(Vita nuova)》에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단테가 9살이 되었을 때 동갑내기 폴코 포르티나리 (Folco Portinari)의 딸 베아트리체를 처음으로 멀리서 보고 애정을 느끼며, 이 진귀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단테의 인생 행로를 좌우하게 된다. 1277년 단테는 그러나 젬마 도나티(Gemma Donati)와 약혼을 하게되며 1291년 결국 그와 결혼하게 된다. 즉 베아트리체가 24세로 사망할 때까지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혼과 열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1275년에서 1294년에 걸쳐 약 20여년간 신학을 비롯하여 다방면에 걸쳐 교육을 받은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테는 특히 브루네토 라티니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신곡》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단테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스콜라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또한 배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단테는 1290년대에 피렌체와 피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당파 싸움에 가담하였으며, 1230년에는 피렌체 시협의회 회장(Priorat)직을 맞아 1233년까지 적극적으로 정치무내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단테는 피렌체가 로마 교황의 세력에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옹호하는 구엘프파 (Guelf)를 지지하여 교황을 받드는 기벨린파(Ghibelline)와 적대관계에 있었다. 1301년 11월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던 기벨린파가 다시 시의 정권를 탈취하자 당시 로마에 머무르던 단테는 시로 돌아갈 뜻을 포기하고 귀양살이를 하게된다.
[편집] 단테의 영향
[편집] 문학어로서 이탈리아어
[편집] 세계문학사에서 신곡의 위치
[편집] 신곡과 미술
[편집] 읽어보기
[편집] 저서
- 《신곡》: La Divina Commedia. A cura di E. Pasquini e A. Quaglio, 밀라노 19947.
- 《향연》: Convivio. A cura di G. Inglese, 밀라노 1993.
- 《새로운 삶》: La Vita nuova. Introduzione di Edoardo Sanguineti, note di Alfonso Berardinelli, 밀라노 199411.
- 《토착어에 관하여》: De vulgari eloquentia. Introduzione, traduzione e note di Vittorio Coletti, 밀라노 19953.
[편집] 참고서
- 단테 백과사전: Enciclopedia Dantesca. Instituto della Enciclopedia Italiana. 6권, 로마 1970-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