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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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폭동은 1918년 일본 민중들이 쌀도매상들의 가격담합에 항의한 사건을 말한다.

[편집] 사건의 진행과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후 승전국의 위치에 오른 일본에서는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 혁명의 영향으로 젊은 농업인구의 도시이주로 농사를 짓는 인구가 줄어든데다가,지주들에게 을 공급받아서 파는 쌀도매상들이 가격담합하면서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당연히 민중들의 불만은 커졌고, 1918년 도야마(富山)현에서 어부들의 아내들이 쌀값을 내리라고 요구하며 쌀가게를 습격, 불태운 사건이 첫 시작인 쌀폭동사건이 발생했다. 식량공급문제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악화되자, 일본에서는 1920년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한다. 산미증산계획은 일본에 대한 쌀 수출량을 증가시키지만,조선인 자작농들은 지주들에게 땅을 헐값에 빼앗겨 소작인이 되거나 먹고 살길을 찾아서 만주, 연해주등으로 이주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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