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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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명(柳子明, 1894년 1월 13일 ~ 1985년 4월 17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다. 본명은 유흥식(柳興湜), 호는 우근(友槿)이다.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다. 충주간이농업학교(충주농업고등학교의 전신)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육로를 통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무장 항일 투쟁에 뜻을 두고 김원봉의열단에 가입하였으며, 이회영, 김창숙, 신채호 등과 더불어 아나키스트 노선에서 활동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중국인, 인도인들과 함께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회장 김규식)를 결성하여 기관지 《동방민족》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발행했고, 조선혁명자연맹, 남화한인청년연맹, 불멸구락부 등의 독립 운동 조직에 꾸준히 가담했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1940년대에는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1923) 기초에 참가했을 만큼 아나키즘 이론에 밝았으며 탁월한 어학 실력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독립 운동계의 일급 참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인과 다시 결혼한 뒤 광복후 한국 전쟁 등으로 귀국 시기를 놓치면서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서 원예학자로 활동하였고 자손들도 대부분 중국과 북조선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활동 내역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199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고, 북조선에서도 1978년 3급 국기훈장을 수여받아 보기 드물게 남북 양 체제에서 동시에 인정 받은 독립 운동가가 되었다. 유해는 2003년 봉환되어 대전 국립현충원에 한국인, 중국인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

저서로 회고록 《나의 회억》(1984)이 있으며, 전기로는 《행동하는 지식인 류자명 평전》(원제 《불멸의 지사 류자명 평전》)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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