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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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기(軍政期)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38선 이북에서는 소비에트연방군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전까지, 38선 이남에서는 미국군이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4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 한반도를 다스린 기간이다.

[편집] 배경

1945년 5월 초 독일의 항복 이후 대일전에 총력을 기울인 미국은 당시 일본 내에 "본토 결전"을 외치는 소리가 높음을 감안, 전쟁이 보다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소비에트연방군의 참전을 유도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를 단독 점령할 의도를 갖고 있었으나, 히로시마, 나가사키핵무기 투하 이후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8월 15일 항복함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당시 미국의 모스크바 특사 폴리(Pauley)와 소비에트연방 대사 해리먼(Harriman)은 8월 13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소비에트 연방이 한반도에 야심을 갖고 있으니 당장 한반도 전역과 만주를 점령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항복 당시 이미 소비에트연방군은 한반도의 동북부를 폭격하고 있었으나 미군은 필리핀에 위치해 있어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묵살되었다.

[편집] 진행

미국과 소련의 군정은 모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각각 자본주의, 공산주의 체제를 남북에 설립하였다.

미군정은 진주 직후 조선 남부의 직접통치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효과적으로 통치할 경험도, 능력도 없어 옛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친일파 인사들을 그대로 등용, 실질적으로 조선총독부를 계승했다. 임정을 완전히 무시한 미군정과 달리 소군정은 공산주의계 독립운동 조직을 포용하고 주요 친일파를 숙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수적으로 소수파에 불과했던 김일성의 빨치산계를 내세워 국내파, 상해파 등의 공산주의 분파들을 김일성의 조선공산당 아래에 강제로 편입시켰다.

[편집] 결과

1947년 11월 18일 북반부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제3차회의에서 림시헌법제정위원회가 수립되었고, 1948년 8월 25일 대위원선거로 북조선최고인민회의가 설립, 9월 3일 북조선사회주의헌법이 공식 채택된다. 9월 9일 김일성을 지도자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되고, 10월 12일 소련의 승인을 받음으로 소군정이 끝났다.

1948년 5월 10일 남반부에서 UN임시조선위원단(UNTCOK)의 감시하에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제헌국회는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으며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제1공화국의 공식적인 수립 이후 미군정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실제로 미국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은 1949년 1월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역사 대한민국 제1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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