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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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貞純王后, 1745년 ~ 1805년 1월 12일)는 조선 영조의 계비이다. 휘호는 예순성철장희혜휘익렬명선수경광헌융인정현소숙정헌정순왕후(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綬敬光獻隆仁正顯昭肅精憲貞純王后).

본관은 경주이며, 오흥부원군 김한구(金漢耉)와 원풍부부인 원씨의 딸로 여주에서 태어났다.

1757년 정성왕후가 죽자 영조는 후궁에게서 새 왕비를 뽑지 않고, 1759년 간택령을 내려 그녀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66세, 정순왕후는 15세로 조선 왕조에서 가장 나이 차가 큰 혼인이었다. 그녀는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보다 나이가 어렸으며,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했다하여 정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800년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 시기에 정순왕후는 천주교를 포함한 남인계 실학자들을 탄압하여 정약용, 이가환 등을 숙청하였다. 1803년 12월에 수렴청정을 거두었으며, 1805년 창덕궁 경복전에서 사망하였다. 정순은 시호이며, 영조와 함께 원릉(元陵)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