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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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승(金景承, 1915년 ~ 1992년)은 한국의 조각가이다. 아호는 표천(瓢泉).

경기도 개성의 지주 집안에서 출생했다. 서양화가 김인승이 그의 친형이다.

김인승과 김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는 형인 김인승을 따라 1934년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했다. 유화과에 다니는 형과는 달리 조각과에 입학하였는데, 이 학교의 조각과 학생으로는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하였고 1943년에는 추천 작가가 되었다. 그는 추천 작가로서 출품한 작품까지 선전에 총 다섯 점의 인물 조각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마지막 작품인 〈제4반〉(1944)이 애국반원인 조선 여성을 묘사하는 등 작품 전부가 일제의 구미에 맞는 시국성을 띄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 관변 단체로 조직된 친일 미술인 단체 조선미술가협회에서 조각부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이같은 친일 행위로 인해 광복 후에는 비슷한 경우로 친일 행적이 뚜렷하던 김은호 등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결성 때 제외되었다. 그의 형 김인승도 같은 이유로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이순신, 안중근, 맥아더 등과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의 동상을 제작하면서 동상 제작 전문가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로는 좀더 정부와 유착한 행보를 보였다. 수유리의 4ㆍ19학생 혁명 기념탑을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상을 제작했다. 불국사다보탑석가탑을 복원하는 일도 맡았고,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교수로, 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남한의 조각계와 미술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5공화국 때는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은관 문화훈장(1982)을 수상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 중 예술인 분야에 선정되었다.

[편집] 각주

  1. 정운현, 〈남산 백범 동상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 - 미술가 김인승·경승 형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마고원, 199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