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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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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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14대 대통령
 임기  1993년-1998년
 전임  노태우
 후임  김대중
 출생  1927년 12월 20일
배우자 손명순

김영삼 (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 - )은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1993년 - 1998년)을 지냈다. 군사 독재정권 시절 동안 야당 정치지도자로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대한민국 3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거제에서 출마하여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다. 이후 여당의 독재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야당 정치인이 되었다.

4.19 혁명 이후 여당인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고, 박정희 정권 동안에는 야당의 대변인, 원내총무, 총재 등을 거치며, 이철승, 김대중 등과 함께 대표적인 야당의 신세대 정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유신정권 말기 박정희 정권과의 극한 대립 투쟁을 주도하여 야당 총재직과 국회의원직에서 강제로 제명되고 가택연금되는 탄압을 받았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 정권에서도 계속된 가택연금과 정치적 탄압에 항의하며 장기간의 단식투쟁을 단행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치 민주화 이후 시행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분열 속에 노태우 대통령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여소야대의 국회 정치 구도속에서 노태우, 김종필과 손잡고 여야 삼당합당을 이루어 내고,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대표와 대통령 후보가 되어 14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1993년 취임 직후부터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없애기 시작했다.

1993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통해,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을 통해 해야 한다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였다.

문민정부라고 불리우는 재임기간 동안 여러가지 민주화 개혁을 시도하지만, 임기말 아시아 국가 전반에 들이닥친 경제위기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를 요청하는 치욕적인 실정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후임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정권교체를 초래하면서 퇴임하였다.

대통령직 퇴임 후, 후임자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전 임
(통영군 갑)서상호
(통영군 을)이채오
제3대 국회의원(거제군)[1]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무소속
후 임
'
전 임
'
제5대 국회의원(부산직할시 서구 갑)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민주당
(부산직할시 서구 을)김동욱
후 임
(부산직할시 서구)김영삼
전 임
(부산직할시 서구 갑)김영삼
(부산직할시 서구 을)김동욱
제6대 국회의원(부산직할시 서구)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민정당
후 임
'
전 임
노태우
제14대 대통령
1993년 2월 25일 - 1998년 2월 25일
후 임
김대중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편집] 주석

  1. 1953년 1월 1일 통영군 중 장승포읍, 장목면, 둔덕면, 거제면, 사등면, 일운면, 동부면, 하청면, 연초면을 관할로 하여 거제군이 새로 설치됨으로써 신설된 지역구이다. (거제군설치에관한법률(제정 1952년 12월 14일 법률 제2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