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갑순(金甲淳, 일본어: 金井甲淳, 1872년 ~ 1960년)은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부호로,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 인물이다.

공주에서 출생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공주 감영에서 관노로 일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의남매를 맺은 여인이 충청감사의 첩이 되어 그를 후견해주는 행운으로 1900년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하급 관직과 군수 벼슬 등을 거치면서 거금을 모았으며, 30년이 흐른 뒤에는 '조선 제일의 땅부자'로 불릴 정도로 갑부가 되어 있었다. 집중적으로 사모은 대전 지역의 철도 건설 이후 차츰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관권을 이용한 치부를 했기에, 맨손으로 출발한 김갑순이 투기 수준으로 돈을 불려서 당대에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일 행위에도 열성적이었다. 1911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래 꾸준히 관변 단체에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으며, 특히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다른 친일파들처럼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흥아보국단과 조선임전보국단 등 전쟁 지원을 위해 조직된 각종 친일 단체의 임원을 맡았다.

단군을 숭배하는 연기군의 금강대도교(金剛大道敎) 신도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수십 명이 구금되고 이 중 여러 명이 옥사한 사건 또한 김갑순의 밀고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금강대도교가 설치한 단군성전을 압수한 뒤 건물을 헐어버리고 조선총독부 역대 총독의 사진을 진열한 열전각(列傳閣)을 건립하여 참배하도록 강요했다. 자재는 옮겨다가 자신 소유의 호텔을 짓는데 사용했다.

성인이 될때까지 생존한 5남 4녀의 자녀들을 모두 세도가의 자녀들과 결혼시킨 남다른 인맥 관리 기술도 유명하다. 내장원경을 지낸 김윤환, 박영효의 심복으로 도지사를 지낸 이규완, 윤치호의 사촌 동생인 윤치오, 이완용의 손자 이병길 등 이름난 친일파들과 두루 사돈 관계를 맺었다.

광복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나 반민특위 해체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풀려난 뒤에는 자신에 체포되었을 때 조사관을 맡은 독립 운동가 김명동(제헌의회 국회의원)에게 당한 수모를 씻는다며 아들 둘과 장손을 국회의원에 출마시키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김갑순이 사망한 후 몰락했으나, 2005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손녀가 공주, 연기, 부여에 위치한 그의 땅 일부를 되찾아간 사실이 있다[1].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포함되었다.

[편집] 가족 관계

  • 장남 : 김종석
  • 큰며느리 : 김학필 (김윤환의 딸)
  • 큰며느리 : 이절자 (이규완의 딸)
  • 장녀 : 김정자
  • 큰사위 : 윤명선 (윤치오의 아들)
  • 7남 : 김종소
  • 일곱째 며느리 : 이병길의 딸

[편집] 각주

  1. 《오마이뉴스》 (2005.09.14) 친일파 김갑순 후손, 행정도시 주변 '조상땅' 되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