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샨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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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 제국(105년경 - 250년경)은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이었다. 월지 민족이 세웠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 등과 교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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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기원

'쿠샨'은 중국어로 월지족의 다섯 민족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인 '귀상(貴霜)'에서 왔다. 월지족은 토차리어군의 말을 썼던 사람들을 아울러 부르는 말로, 중국 역사가들에 따르면 휴밀(休密), 귀상(貴霜), 쌍미(雙靡), 힐돈(Ch:肸頓), 도밀(都密) 다섯 부족으로 나뉜다. 그들은 원래 타림 분지의 초원에 살았으나, 기원전 176년~160년 흉노에 의해 서쪽으로 이주했다.

윌지족은 기원전 135년경에 나라였던 박트리아를 만났고 이를 점령하여 다섯 부족의 나라로 나누었다.

이후 기원전 1세기에 귀상족이 나머지 네 부족을 정복시켰다. '귀상'이라는 이름은 서양에 '쿠샨'으로 전해졌지만 중국에서는 쿠샨 제국을 계속 월지라 불렀다.

[편집] 문화

튜닉을 입고 부츠를 신은 쿠샨 왕조 사람. 2세기 간다라의 돌 조각.
튜닉을 입고 부츠를 신은 쿠샨 왕조 사람. 2세기 간다라의 돌 조각.

처음 쿠샨 제국은 그들이 정복한 박트리아의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 문자를 썼고, 그리스를 본따 동전을 만들었다.

쿠샨 제국은 인도양을 통한 무역과 실크 로드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쿠샨 제국은 동서양의 문화를 포용하여 그리스 문화와 불교 문화가 융합된 Greco-Buddhism이 발달하게 하였는데, 이는 사방으로 퍼져 중국에는 대승불교로서 전해졌다. 쿠샨의 카니슈카 1세(2세기경)는 인도의 아쇼카, 하르샤와 메난더 1세와 함께 불교를 부흥시킨 왕 중 하나였다. 그는 카슈미르에서 불교 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는 대승불교가 Nikaya에서 분리해 새로운 분파로 시작했다고 공포했다.

쿠샨 제국은 간다라 미술이 생겨난 곳으로 유명하다.

[편집] 로마와의 접촉

로마에서는 2세기에 박트리아 제국에서 온 사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아마 쿠샨 제국을 두고 쓴 기록일 것이다.

후한서에는 로마와 인도 북동부의 교역에 대한 기록이 있다. "Tiazhu(인도 북동부)는 대진(로마)와 통한다. 대진에는 면직물, 카펫, 향수, 설탕 덩어리, 후추, 생강, 검은 소금과 같은 것이 있다."

바그람은 로마와 무역하는 항구로, 주로 유리 공예품을 수입했다.

[편집] 중국과의 접촉

지루가참(로카크셰마)은 불경을 처음으로 한문으로 번역한 승려였다.
지루가참(로카크셰마)은 불경을 처음으로 한문으로 번역한 승려였다.

1세기와 2세기 동안 쿠샨 제국은 북동쪽으로 확장하여 타림 분지의 일부까지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몇차례 전쟁을 하였다.

이후에는 문화적인 교류가 있었는데, 지루가참과 같은 쿠샨의 승려가 낙양과 같은 도시에 불교를 전파했다.

[편집] 멸망

225년 Vasudeva 1세가 죽고 난 뒤 쿠샨 제국은 동쪽과 서쪽 두 나라로 갈라졌다. 이후 사산 제국이 인도 북부를 점령하는 등 쿠샨 제국은 영토를 잃어갔다.

4세기 중반에 키다라가 나라를 전복시키고 키다라 왕조를 세웠다.

남아있던 쿠샨 제국의 일부는 5세기에 훈족과 이슬람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