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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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기원은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설립된 오스트마르크(Ostmark)이다. 오스트마르크는 동방에서 점증하는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전진기지 격으로 건설된 행정관구였다.

목차

[편집] 영토 작전

[편집] 오스트리아 제국

차츰 공국에서 대공국, 1804년에 이르면 오스트리아 제국이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일대에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네덜란드(1815년 왕국으로 독립)를 지배할 정도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1848년헝가리인이 독립 운동을 일으키자 처음에는 러시아 제국의 힘을 빌어 혁명을 진압해 버린다. 하지만 새로 즉위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마자르 인의 자치를 허용하여 1867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 제국으로 발전시킨다. 각자의 의회, 정부는 별개로 하되 군주, 외교 등은 공동으로 하는 것이었다.

[편집] 발칸 반도

프로이센과 독일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서 패한 후로 주로 발칸 반도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등을 합병하였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는 적대 관계로 발전하였다.

또, 이탈리아 통일전쟁에 패하여 이탈리아 반도로부터 축출된 후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으로 이탈리아와 동맹관계도 맺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간에 불신과 감정의 골은 깊기만 했고, 결국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삼국동맹을 탈퇴하고 삼국협상측에 가담하였다.

[편집]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을 이유로 세르비아 왕국선전 포고를 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915년에 힘을 내게 되었다. 갈리폴리 전투 당시에 오스만 제국 군대에 패배한 영국군프랑스군, 호주군을 갈리폴리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것은 다름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편집] 공화정 전락과 원치 않았던 합병

1918년부터 전쟁의 패배로 와해되고 오스트리아는 공화국이 되었다(오스트리아 제1 공화국).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오스트리아의 영토는 현재와 같이 축소되었다. 1938년에는 나치 독일에 불법 점령되었다. 당시 집권자였던 요제프 돌푸스와 알프레드 잔사는 합병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그 도중 암살되었다.

[편집] 연합국의 점령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패전국이 되었으며 끝난 직후인 1945년 미국소비에트 연방의 점령 하에서 사회 민주당의 카를 레너(독일어: Karl Renner)를 대통령으로 하는 사회민주당, 기독교 사회당, 그리고 연합정부로 임시정부를 구성하여 오스트리아 제2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편집] 제 2차 공화국

이 연합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정부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수립되었던 것과는 달리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 기간 동안 통합된 국민적 힘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1955년에 이르러 독립을 성취하고 통일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영세 중립을 전제로 하여 점령군이 철수하였고, 1955년 12월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유럽 연합에는 1995년에 가입하였으며 2002년부터 유로를 사용하였다.

[편집] 각주

박태균, 한국전쟁 (책과함께, 2005년) 7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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