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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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컴퍼트 벅(Pearl Comfort Buck, 1892년 6월 26일1973년 3월 6일)은 《대지의 집》 3부작을 쓴 미국의 소설가이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

[편집] 생애

태어나 생후 수개월 만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선교활동에만 열중한 아버지때문에 집안 일은 어머니가 도맡아야 해야 했지만, 부모의 중국 선교활동은 펄벅은 자신을 중국사람으로 생각했었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였다.벅은 1910년 대학을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랜돌프 매콘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1917년, 뒤에 중국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을 하였다. 이때 성이 "Buck"이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장애인였다. 자서전에서 펄 벅은 큰 딸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 딸은 《대지》에서 왕룽의 딸로 그려져 있다).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1927년 국민당 정부군의 난징(南京) 공격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체험, 피치 못할 균열을 깊이 자각한 일도 그녀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한 동기였다. 이 균열은 작품의 바닥에 숨겨진 테마로 흐르고 있다. 그녀는 이 균열을, 자기가 미국인이라는 입장에 서서 제2의 조국 중국에 대한 애착을 통해 평생을 두고 어떻게 해서라도 메워 보려고 애썼다.

[편집] 작품 활동의 시작

1930년 중국에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처녀작 《동풍 서풍》을 출판하였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이 채 안 되어 3번이나 다시 인쇄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였다.

이어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을 중심으로 왕룽의 아내 오란과 세 명의 아들들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1931년)를 출판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겼다. 대지는 왕룽이 죽은후 세 아들의 진로를 묘사한 《아들들》 (1933년), 《분열한 집》 (1933년)과 함께 3부작 《대지의 집》을 구성한다.

1934년 이후로 그녀의 저서들을 출판해 온 J.데이 출판사의 사장 R.J.월시와 재혼,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사회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 관련 소설도 집필하였는데,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1968년)를 쓰기도 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 아버지의 전기인 《싸우는 천사들》, 어머니의 전기인 등이 있다.

[편집] 주요 작품

  • 《동풍 서풍》
  • 《아들들》 (1933년)
  • 《분열한 집》 (1933년)
  •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
  • 《새해》(1968년)
  • 《어머니》 (1934년)
  • 《싸우는 천사들》 (1936년) - 아버지의 전기
  • 《어머니의 초상》 (1936년)
  • 《애국자》 (1939년)
  • 《서태후》 (1956년),
  • 《나의 가지가지 세계》(1954) - 자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