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권기옥(權基玉, 1903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다.

평양 출신으로, 남편도 독립 운동가인 이상정이다.

평양의 기독교 계통 학교인 숭의여학교에 다니면서, 이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박현숙의 영향을 받아 반일 비밀 결사인 송죽회에 참가해 활동했다.

숭의여학교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박현숙을 통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신홍식으로부터 지휘를 받아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와 동시에 평양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키는데 동참했다가 잠시 구금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일에 참가했는데, 평양 지역 청년 조직인 평양청년회의 김재덕과 연결이 된 것이 드러나 다시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루었다. 그는 이때 임득삼, 김정직, 김순일 등을 통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했다. 이후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는 활동을 계획하던 중 해로를 이용하여 상하이로 탈출했다.

임시정부의 추천으로 윈난육군항공학교(雲南陸軍航空學校)에 입학, 1925년 제1기생으로 졸업한 뒤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다. 이때 그는 중국군 공군 비행사로 복무하였고,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충칭으로 이동하여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근무했다.

임시정부 산하의 여성 조직인 한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1949년 귀국했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되었다.

[편집] 바깥고리

2002년········2003년 선정, 이 달의 독립 운동가 ········2004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김호 김중건 유여대 이시영 문일평 김경천 채기중 권기옥 김태원 기산도 오강표 최양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