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파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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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처럼 고도성장을 거듭했으며 거대 도시들에 인구가 집중되어있는 나라에서 아파트는 도시개발사의 초창기부터 증가되어야 할 주거용 건축 양식으로 간주되어왔다. 상업 및 업무용 고밀도 건축의 경우 그 시초가 세운상가 및 낙원상가라면, 주거용 고밀도 건축의 시초는 1964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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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마포아파트

이 아파트는 1961년 10월에 착공하여 1964년 11월 30일 1, 2차 공사가 완성되었다. 대한주택공사가 직접 주도한 건축으로서 고밀도 건축인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기획되었다. 본래 1962년 말 완공 예정이었고 10층 11개동, 총1158호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주변 기관의 반대로 6층으로 낮아졌다. 이는 승강기 가동용 전기와 건설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건축이었으며 입식 생활 방식을 지향한 내부 구조를 택했다. 2차 아파트는 최초의 계단실형 아파트로 건축되었다. 이 방식은 복도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사생활 침해 염려를 최소화할 수 있고 또한 복도식에선 복도 등으로 활용해야만 하는 옥외공간을 가구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내진설계까지 적용되어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주택건축이었다. 건폐율 11%, 용적율은 87%에 불과했다. 때문에 1992년에 이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되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아파트의 주민들이 입주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철조망을 두른 높은 담을 단지 주위에 요구,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는 주변지역이 당시 지속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인구가 유입되던 구시가라는 점 분만 아니라 당시의 마포아파트가 주변지역 어디서나 눈에 잘 띄는 높은 건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사례는 거대하고 높은 건축물이 지니는 상징성이 어떤 효과를 지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논의된다.

[편집] 한강변 아파트의 건설

[편집] 시민아파트의 등장

[편집] 강남개발과 아파트

[편집] 주택 5백만가구 건설계획

[편집] 주택 2백만가구 건설계획

[편집]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등장

[편집]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