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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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朴定陽, 1841년 - 1904년)은 조선 후기의 대신이다. 본관은 반남이다.
1866년 정시(庭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참판 등을 지내고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관제개혁 등에 앞장섰다. 1887년 미국특파 전권대사로 부임하여 외교활동을 하다가 1894년 1차 김홍집 내각의 학부대신이 되었다.
1894년 6월 24일 - 7월 4일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1]
1895년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자 내각 총리대신이 되어 과도내각을 조직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에 참정대신으로 참석하여 시정의 개혁을 약속하는 등 개화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일본에 의존하고 결탁하는 친일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2]
이상재는 그의 문하생이다.
[편집] 가족 관계
- 아버지: 박제근(朴齊近)
- 아들: 박승길(朴勝吉)
[편집] 각주
- ^ 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4.html
-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