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광서제 | |
---|---|
![]() |
|
재 위 | |
1875년 ~ 1908년 | |
왕 비 | {{{왕비}}} |
황 후 | {{{황후}}} |
왕 후 | {{{왕후}}} |
부 군 | {{{부군}}} |
앞선 왕 | 동치제 |
앞선 황제 | {{{이전 황제}}} |
다음 왕 | 선통제 |
다음 황제 | {{{다음 황제}}} |
청나라의 제 11대 황제 |
광서제(光緖帝, 1871년 8월 14일 ~ 1908년 11월 14일)는 중국 청 왕조의 제11대 황제이다.
백모(伯母) 서태후(西太后)의 지원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초에는 서태후가 섭정을 했으며 양무(洋務)운동으로 부분적이나마 중국의 근대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1894-1895년의 청일전쟁이 청나라의 패배로 끝나 대만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등 중국에서의 열강의 각축은 더욱 치열해졌다.
광서제는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 신진 엘리트들을 등용하여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모델로 한 무술(戊戌)개혁을 실행하여 완전 근대화를 꾀하였다. 당시 캉유웨이등의 지식인들은 신문에 개혁안을 싣는등 개혁운동의 선두에 섰으나, 보수적인 서태후, 이홍장(李鴻章) 등이 반격을 가하여 개혁에 가담한 지식인들이 망명을 하거나, 사형당하는 등,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고 서태후의 섭정이 재개되었다.
1899년에 일어난 의화단(義和團)과 열강 8국의 연합군이 1900년 베이징에서 격돌하는 사이에 광서제는 서태후와 함께 시안으로 피난을 갔고 광서제의 애비(愛妃) 진비(珍妃)는 서태후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베이징 의정서가 성립되어 광서제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실권이 없었다. 1908년 서태후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청나라 황제 목록 |
---|
누르하치 - 홍타이지 - 순치제 -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 가경제 - 도광제 - 함풍제 - 동치제 - 광서제 - 선통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