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시탄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기리시탄(일본어: 吉利支丹, 切支丹, 포르투갈어 cristão(크리스탕)에서 유래)은 막부시대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이들은 포르투갈에스파냐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으며, 일본 메이지 정부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할때까지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주로 일본에서의 가톨릭 중심지인 나가사키 지역에 집중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이묘들이 가톨릭 교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가시키에서 죽은 26명의 순교자 기념비
나가시키에서 죽은 26명의 순교자 기념비

목차

[편집] 역사

일본에 가톨릭이 들어온 시기는 1549년이며, 예수회 선교사인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에 의해 들어왔다. 현재 에스파냐 바스크 지역인 나바라 왕국 출신인 그는 프랑스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함께 1533년 예수회를 설립하였으며, 인디아 고아에서 전도하였다. 그때 자비에르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슬림유대인이 없는 일본은 선교활동을 하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1549년 포르투갈말을 사용할 줄 아는 일본인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전도했는데, 놀랍게도 다이묘들과 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다이묘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서양문물을 접할 수 있는 통로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환영은 잠시동안이었고, 바오로 미키를 위시한 26명의 순교자가 나가사키에서 발생하는 등 탄압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경쟁국가인 네덜란드에서 온 상인들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식민주의 세력이라고 선동했고, 시마바라 봉기(1638년)라고 불리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례로 일본은 네덜란드이외의 유럽국가들과는 거래하지 않았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선교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집] 조선 기리시탄

기리시탄 가운데 조선 기리시탄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압송된 조선인중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예수회 선교사들은 "조선인 가톨릭 신자들은 우리가 전한 신덕(信德)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리교육도 잘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편집] 순교자

  • 복자(福者) 고스마 다케야(コスマ竹屋)
  • 복자 안토니오(Antonio)
  • 복자 가이오(Caio)- 복자 가이오는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평신도 사목을 하였다.
  • 복자 권(權) 빈첸시오(Vincentio)- 권 빈첸시오는 예수회 수사였다.
  • 복자 가이오 지우에몬(カイオ次右衛門)
  • 복자 가스파르 바스(Caspar Vaz)
이 문서는 기독교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이 문서는 일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편집] 참고문헌

  • '일본과 기리시단의 만남',일본 개신교회사/김수정 지음/홍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