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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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창(李海昌, 1865년 ~ 1945년)은 조선 왕실의 종친으로 친일파 인물이다. 양아버지인 이하전은 흥선대원군의 사촌 동생으로, 이해창이 태어나기 3년 전 안동 김씨 집권 기간 중에 역모 사건에 얽혀 사형당했다.

그는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의 사위이기도 하다.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1889년 알성시(謁聖試) 병과(丙科)에 합격하였다.

사간원 대사간 등의 벼슬을 거쳐, 1904년 10월 17일 ~ 10월 20일 한성 판윤을 역임하였다 [1]. 그해 창산군(昌山君)에 봉해졌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고, 매국 공채 16만8천원을 사들였다[2].

유명한 친일파 한상룡이 실무를 맡고 종친 이재완을 내세워 일제가 설립한 한성은행에 1910년부터 민영휘, 조중응 등과 함께 참여했으며, 1923년부터 1928년까지는 이 은행의 취체역을 맡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이해창이 일제로부터 받은 남양주시 암자 인근 토지를 되찾겠다고 후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낸 바 있다 [3].

[편집] 가족 관계

  • 아버지: 이경용(李慶鎔)
  • 양아버지: 이하전(李夏銓)

[편집] 각주

  1. 서울六百年史 - 1921~1950
  2.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85~86쪽.
  3. 《한겨레신문》 (2005.9.12) 얽히고설킨 내원암과 이해창, 조선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