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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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는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른바 생명파 시인이다. 호는 미당(未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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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 김동리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하여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주춧돌을 놓았다. 그러나 일제 시대 말기에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고 당시, 조선인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1]

해방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파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파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 예술대학과 동국대 등에서 오랬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시대 뿐만 아니라, 군부독재와 유신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편집] 미당의 시 경향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탐미적인 경향이 보인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수많은 시인, 문학가가 미당 서정주의 그늘 아래에 있느니 만큼,그 평가는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진보 문학가들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당의 영향을 받았다. 고은이 그 대표이다. 대표작 화사집

[편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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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 《화사집》, (1938)
  • 《귀촉도》, (1946)
  • 《시선》, (1955)
  • 《신라초》, (1960)
  • 《동천》, (1968)
  • 《질마재 신화》, (1975)
  • 《떠돌이의 시》, (1976)

[편집] 일화

  • 고인은 말년에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아침마다 세계의 1,625개와 각 나라의 수도 이름을 외웠다고 한다.
  • 시〈자화상〉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고백하였고, 이 구절은 그의 삶을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된다.

[편집] 바깥 고리

[편집] 각주

  1. 《서정주의 마음》, 김재용. <협력과 저항: 일제 말 사회와 문학>. 소명출판. 2004년. 122~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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