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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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金綺秀, 1832년 - ?)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년지"(秊芝)이고 본관은 연안(延安)이다.[1]

현감(縣監)을 지내다가, 1875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응교(應敎)로 뽑혔다. 1876년 예조참의로 있을 때, 강화도조약의 결과 파견하기로 한 수신사의 대표로 결정되어 일행 75명과 함께 일본 기선 고류[黃龍]호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근대화한 일본의 문물을 둘러보고 왔다. 1876년 6월 귀국하여 《일동기유》(日東記游), 《수신일기》등의 썼다. 이를 계기로 조정의 일본에 대한 관념이 호전되어 뒤에 신사유람단을 보내게 된 동기를 만들었다. [2]

[편집] 가족 관계

  • 아버지: 김준연(金駿淵)
  • 할아버지: 김선
  • 증조부: 김재칠(金載七)
  • 외조부: 신재관(申在寬) [3]

[편집] 주석

  1. 자는~연안이다.:조선조 방목 참조.
  2.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36쪽.
  3. 가족 관계:조선조 방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