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굴라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칼리굴라(라틴어: Caligula)는 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12년 8월 31일 - 41년 1월 24일)이다.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이며, 칼리굴라는 이름이 아니라 ‘꼬마 장화’라는 뜻을 가진 별명이다.
[편집] 생애
티베리우스 황제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와 대(大)아그리피나의 아들이다. 아버지 게르마니쿠스는 게르마니아 방면군의 사령관직을 맡고 있어 칼리굴라는 어린 시절을 로마 제국의 라인 강 방위선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때 칼리굴라는 아버지 휘하의 군단병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아 '꼬마 장화'를 의미하는 칼리굴라로 불려 군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티베리우스의 후계자 후보들이 차례차례 티베리우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티베리우스가 죽기 직전 남긴 유서에 의해서 칼리굴라는 사촌동생 티베리우스 게메루스와 함께 제위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늙은 황제 티베리우스(사망 당시 77살)의 젊은 후계자(즉위 당시 24살)로서 칼리굴라의 제위 계승은 로마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성사될 수 있었다. 티베리우스 치세 만년의 공포 정치 때문에 티베리우스의 인기는 급속히 하락 상태에 놓여있었고, 유서에 의해 티베리우스 게메루스가 공동 상속인으로서 지명되었지만, 원로원이 그것을 무시하여 칼리굴라가 단독 상속인이 되어 황제로 취임했다.
칼리굴라는 즉위 이후 7개월 동안 심하게 병을 앓은 뒤에는 티베리우스의 재정 낭비 방지 정책을 중지시켜 검투사 시합을 부활시키는 등 시민들에게 아첨하는 정책을 차례대로 펼쳐나갔지만, 이윽고 재정 파탄을 불러들여 이로 인해 급속한 민심의 배반을 불러왔다. 또 스스로 자신과 누이 드루실라를 신격화 시키는 등 비(非)정상적인 통치를 하여, 병을 앓고 난 이후 미치광이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다.
41년 1월, 팔라티누스 경기 도중에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 등에 의해 아내와 딸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그의 통치기간은 3년이었다.
칼리굴라가 암살된 후, 원로원이 제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의 부흥을 기획했었지만, 근위대가 칼리굴라의 숙부 클라우디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편집] 읽어보기
타고난 이름 | 가이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Gaius Caesar Germanicus) |
황제 이름 |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Ga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
재위 기간 | 37년 3월 18일 - 41년 1월 24일 |
앞선 황제 | 티베리우스 |
다음 황제 | 클라우디우스 |
![]() |
이 문서는 군주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