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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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순(朴齊純, 1858년 - 1916년)은 을사오적 중 하나이며, 을사 조약 당시 외부대신이었다.
호는 평재(平齋), 본관은 반남(潘南).
경기도 용인 상도촌에서 태어나, 기호지방 관료층들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 박홍수(朴洪壽)가 유신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관계로, 같은 동문이었던 김윤식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다.[1]
1885년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 중국 톈진에 종사관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이조참의·참판·한성부윤 등을 역임했다. 1898년 외부대신이 되고, 1905년 전권대신으로 을사조약에 조인하였다. 같은 해, 한규설의 뒤를 이어 참정대신(수상)이 되고, 1909년 이완용 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에 서명, 일본 정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고,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2]
일제의 강점 후에도 경학원의 대제학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친일 활동을 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그의 작위를 습작한 박부양과 함께 선정되었으며, 2006년 대한민국 정부가 조사,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편집] 각주
을사오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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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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