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관동군(關東軍)은, 일본 제국(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에 상주(常駐)한 대일본제국 육군의 한 총군(總軍). 러일전쟁 후의 1906년, 랴오둥 반도(遼東半島) 남단의 관동주(關東州) 조차지(租借地)와 남만주철도 부속지(付屬地)의 수비를 위해서 조직된 "관동도독부 육군부"(關東都督府陸軍部)가 그 전신이다. 1919년, "관동도독부"가 "관동청"(關東廳)에 개편되었을 때에 관동군으로서 독립했다.

일제는 만주를 중국 침략과 대(對)소련 작전의 전진기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동군은 그 주변지역의 권익 옹호나 지배 지역의 확대와, 일제 군부의 대륙 침략의 선봉으로서, 다양한 음모 공작을 행했다. 1928년에는 참모 고오모토 타이사쿠(河本大作)등이 장쭤린(張作霖)을 폭사시켜, 1931년에는 참모 이카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등이 9·18 사변(만주사변; 滿洲事變)을 획책 하고, 1932년 일제의 괴뢰 정권 만주국의 건설을 성공시켰다. 병력은 차츰 증강되어, 1938년 장고봉 사건(張鼓峰事件)과 1939년 노몬한 사건으로 소련에 대패했지만, 대(對)소련전에 대비한 1941년 관동군 특종 연습(關東軍特種演習, 관특연) 시에는 약 70만의 대군이 되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 1943년 가을 이후에는 전력(戰力)이 남방(동남아시아등)에 이동해, 만주의 전력은 약체화 했다. 그 때문에,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전쟁에 참전하면, 관동군은 체계적인 반격도 하지 못하고 괴멸 해, 장교들은 일반의 일본인들을 방치한 채로 도망했다.

[편집] 관련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