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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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1901년 9월 26일-1987년 1월 27일)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를 창시한 진보적 개신교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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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그리스도교 개종과 조선신학교 설립
1901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났으며, 청년기에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는 유학자 아버지에게 사서삼경과 동양고전을 배우면서 자란 덕분에, 한국인의 주체적인 눈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1940년 조선신학교(현재 한신대학교)를 세웠다. 당시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때문에,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자진 폐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재준의 진보적 신학은 성서를 축자영감설에 근거,성령이 불러주어서 쓴 무오한 존재로 숭배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는데, 그들은 조선신학교를 나온 신학생들을 인정하지 않아 목사안수를 주지 않기까지 했다. 결국 장로교회는 진보적인 한국 기독교장로회와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분열되었다.
[편집]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969년, 당시 대통령이자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권력의 민간인 이양약속을 어겨 국민을 속이자, 김재준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보수적인 교계의 원로들은 목사가 왜 정치에 관여하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 목사들이 교회의 민주화운동을 반대한 진짜 이유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적인 대다수의 개신교계에서는 5.16군사반란은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지지하는 설교를 할 정도로 반공주의 성격의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진보인사들을 정치목사취급하거나 공산주의자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 대학생 선교회(KCCC)의 총재인 김준곤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한국 개신교 교회가 지지해야 할 반공주의적인 정권'이라고 주장하였고, 민주화운동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신학","종교를 가장한 공산주의" 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한국교회의 과거사 고백,군사정권하의 한국교회",기독교 사상,대한 기독교서회)
하지만 그는 개신교 목사의 양심상 성직자의 의무인 예언자역할을 버릴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단체에 다니며, 군사정권의 연장을 뜻하는 개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이러한 국민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1969년 9월 14일 새벽, 개헌안은 기습적으로 통과 되어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재준은 자신의 예언자적인 양심실천을 중단하지 않았고, 그의 제자인 문익환 목사, 서남동, 안병무등의 민중신학자들은 이를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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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기독교 | 한국의 기독교 | 개신교 |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