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낙랑은 경상북도 경주시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토론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편집 지침에 맞춰 다듬어야 합니다.

낙랑(樂浪)은 기원전 1세기 중엽에 있었던 고대 정권이다. 그 위치에 관하여는 의견이 분분한데 평양직할시황해북도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최근들어 낙랑의 위치는 요서지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과 대한민국에서는 낙랑에 대한 주장이 다르다.

  • 조선의 력사학자들은 조선사회과학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펴내는 《력사연구》를 통하여 기원전 1세기에 있었던 락랑국은 조선민족이 세운 자주국가이며, 평양시 락랑구역에서 발견된 정백1호동고분과 정백2호동고분을 통해서, 락랑국은 중국의 한나라의 문화랑 전혀다른 자기들만의 독특한문화를 가지고있었다 주장한다. 한편, 조선에서는 한나라가 세운 괴뢰정권이 동북지방에 존재했다고하며, 《삼국유사》에서 락랑왕 최리를 왕으로 인정한것도 락랑국이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였음을 밝혀주는 자료라고 주장한다.
  •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중국역사책에 쓰여져있는《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켜, 한사군을 비롯한 여러 괴뢰정권을 세웠다.》는 기록에 따라, 낙랑은 한나라가 세운 통치기구임을 받아들였으나, 현재는 한반도에 설치된 한사군은 20여년 간 유지되었을 뿐으로 그 역할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낙랑은 주민들의 반발로 한사군이 2부로 개편되면서 대동강 유역에 남겨졌으나, 통치기관이라기 보다는 무역기구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기원전 28년신라를 침범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1] 37년고구려대무신왕이 낙랑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신라로 와서 투항하였으므로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2]

[편집] 주석

  1.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三十年 ... 日有食之 樂浪人將兵來侵 見邊人夜戶不扃 露積被野 相謂曰 "此方民不相盜 可謂有道之國 吾儕潛師而襲之 無異於盜 得不愧乎" 乃引還
  2.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유리 이사금 條>,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