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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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黑齒常之, - 689년)는 백제의 달솔이며, 풍달군(風達郡)의 군장(郡將)을 겸했다고 한다.
660년 당나라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이 백제의 사비성을 점령한 이후 10여명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장수들과 함께 도망, 임존성을 점령하고 옛 백제군 3만여 군사를 모았다. 소정방이 흑치상지를 치려고 했으나 패배했고, 흑치상지는 그 기세를 몰아 2백여 성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용삭(龍朔) 연간 (661년 - 663년) 당에 항복해 좌령군원외장군양주자사(左領軍員外將軍佯州刺史)가 되었으며, 수차례 당군을 위해 싸웠다. 후에 연연도대총관(燕然道大聰管)이 되어 이다조(李多祚) 등과 함께 돌궐과 싸웠다. 좌감문위중랑장(左監門衛中郞將) 보벽(寶壁)이 끝까지 돌궐을 추격하려 하자 황제가 조서를 내려 흑치상지와 함께 치라 하였으나 보벽이 홀로 진격, 전군이 궤멸당하였다. 이에 보벽이 옥리에 내려 죽이고 흑치상지도 공이 없음을 문죄당하였는데, 주흥(周興) 등이 상지가 응양장군 조희절과 더불어 반역했다고 모함,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가 689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1929년 낙양에서 흑치상지와 그의 아들 흑치준(黑齒俊)의 묘비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묘비문에 따르면 그의 선조는 본래 부여씨이며, 흑치 지방에 봉해졌기 때문에 흑치씨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