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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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513년경)
자화상 (1513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 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 하였다.


목차

[편집] 생애

1452년 4월 12일 새벽 3시: 레오나르도는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삐에로 다빈치 (Ser Piero da Vinci)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Catarina)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1466: 14세 때 레오나르도와 그의 가족은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이주한다. 15세부터 당시의 유명한 화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밑에서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다빈치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다빈치를 화가로 인정했다. 레오나르도는 1481년까지 그의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이 시기에 그려진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창적인 구도와 분위기 표현 기술을 엿볼 수 있다.

1481년 (혹은 1482년)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 - 1498,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암굴의 성모에서는 레오나르도의 특유의 화법인 이른바 환상적인 색감을 살리는 스푸마토 (Sfumato)가 첫 선을 보이게 되며, 뒤에 이 화법을 바탕으로 유명한 모나리자 (1500 - 1503, 루브르 박물관)가 그려졌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통제에 따라 제작되던 교회 미술계의 풍토를 깨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등 자신의 소신에 따른 작품 활동을 했다.

1516: 프랑소와 1세( François I)가 있는 프랑스의 끌로 뤼세(Clos Lucé)로 그의 제자인 프란세스코 멜지( Francesco Melzi )와 함께 이주한다. 그는 3점의 그림을 가져간다. 모나리자(라 조콘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

1519: 4월 23일 유언을 남기고 5월 2일 사망. 그의 나이 67세. 조르조 바사리 는 레오나르도의 전기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소와 1세의 품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가 그의 유산을 상속한다.

1570: 프랑세스코 멜지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나온다.

[편집] 대표 작품

〈최후의 만찬〉(1495 - 1498, 밀라노)
최후의 만찬〉(1495 - 1498, 밀라노)
  • 〈그리스도의 세례〉(1472–1475) –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베로키오 공방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왼쪽의 천사를, 보티첼리는 오른쪽의 천사를 그린것으로 알려짐. 교회의 통제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그렸다.)
  • 〈수태고지〉(1475–1480) –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예수를 잉태한 성모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왔다는 탄생설화를 소재로 함
  • 〈동굴의 성모〉(1483–86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예수가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갔다는 루가의 복음서의 전승내용을 소재로 함
  • 〈흰 족제비를 안고 있는 여인〉(1488–90) –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크라코우 (Krakow), 폴란드모델은 세실리아 가레라니(Cecilia Gallerani)로 뤼도빅 르 모르(Ludociv le More)의 정부로 알려져있다. 그림속의 흰 족제비는 다양한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순결함 혹은 순수함 그리고 모로 집안에 대한 상징으로 주로 해석된다.
  • 〈음악가의 초상〉(1490년경) – 암브로시니아 미술관, 밀라노, 43 x 31 cmㅡ 다빈치의 유일한, 남성을 그린 자화상으로 알려졌다. 모델은 프란치노 가퓌리오(Franchino Gaffurio)
  • 〈리타의 성모〉(1490–91년) – 에르미타지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 최후의 만찬〉(1498년)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밀라노
  • 모나리자(라 조콘다)〉(1503-1505/1507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 〈암굴의 성모〉(1508년) – 국립 미술관, 런던
  • 〈성 안나와 성 모자〉 (1510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로이드가 다빈치의 동성애를 증명할 수 있는 단서로 본 그림.
  • 세례자 요한〉(1514년경) 루브르 박물관, 파리, 다빈치의 손으로 완성된 마지막 작품으로 남성과 여성성 사의의 모호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편집] 같이 읽기

《모나리자》(1503-1505/1507년,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1503-1505/1507년, 루브르 박물관)

[편집] 다른 작품 속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소설 《다빈치 코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 대항해시대 시리즈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NPC로 등장한다.

[편집] 바깥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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