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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도산(島山)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도산대로(島山大路)와 도산공원은 이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편집] 생애
-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태어났다. 안흥국(安興國)의 셋째아들이다. 선대는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8세까지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는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김현진(金鉉鎭)에게 한학을 배웠다. 이때 서당 선배인 필대은(畢大殷)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1895년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국력배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상경하여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호러스 언더우드가 경영하는 구세학당(救世學堂)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3년간 수학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서구문물과 접하게 되었다.
- 1904년, 의친왕(義親王), 정재관(鄭在寬)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였다.
- 1909년 - 김좌진(金佐鎭)·이갑(李甲) 등과 서북학회를 세웠다.
- 1919년 4월 13일 선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
[편집] 가족 관계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 ↑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한길사, 2004) 26쪽.
신민회 창건위원 |
양기탁 | 전덕기 | 이동휘 | 이동녕 | 이갑 | 류동렬 | 안창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