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세계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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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세계박람회(大田世界博覽會)는 1993년 8월 7일에서 11월 7일까지 대전광역시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로, 대전엑스포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이 처음 국제 박람회 기구의 공인을 받아 개최한 박람회이며 주제는 ‘새로운 도약에의 길’,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다. 태극을 변형한 엠블럼과 마스코트 ‘꿈돌이’가 상징이었다.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 기구, 대한민국의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정부와 민간을 합쳐 1조 8천억 원을 들였고 1450만 명이 관람했다.[1] 박람회가 끝난 이후 박람회 시설은 엑스포 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개장했다.

[편집] 개최

대한민국은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 말에 박람회 준비를 시작했고, 1989년에 대통령 노태우가 개최 의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국제 박람회 기구의 공인을 받기 위한 교섭 활동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최 신청 기간(5년)이 촉박하고, 비용 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의 여론도 부정적이어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세계 박람회를 개최하지 말자는 말도 있었다. 대한민국 법률 자문들의 의견도 비관적이었다.

대한민국은 부유한 선진국 위주의 축제였던 세계 박람회에 이제는 개발도상국의 참여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대한민국이 당시 경제 협력 개발 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교섭하고 있었던 점을 내세워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국제 박람회 기구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박람회의 주제로 채택된 ‘새로운 도약에의 길’(영어: The Challenge of a New Road to Development)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마침내 1989년 12월에 열린 제106차 국제 박람회 기구 총회에서 대한민국에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조사단의 보고서를 토대로 1990년 8월 총회에서 대전세계박람회를 공인한다는 결정이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당시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진 대한민국은 전통 문화가 상당 부분 파괴되고 지역간·계층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었으며 환경이 오염되는 등 축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조화로운 발전을 강조하는 대전세계박람회는 자연스럽게 전통 기술과 현대 과학의 조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 등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부제로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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