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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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술(盧德述, 1899년 - ?)은 일제 시대 및 대한민국의 경찰 간부였다.
1920년 경남 순사교습소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경찰부 보안과를 시작으로 경찰 근무를 시작하여, 울산경찰서 사법계에 근무하면서 순사부장이 되었다.
1924년 경부보로 승진하여 의령, 김해, 거창, 통영 경찰서의 사법주임을 지냈다.
1927년경, 비밀결사조직 혁조회(革潮會) 수사를 담당하였다.
1929년, 1930년 동래경찰서 사법주임으로 재직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 맹휴 사건과 조선인 일본 유학생의 하기휴가 이용 귀국 강연회 사건 수사를 담당하였다. 1932년 5월 통영경찰서 사법주임 재직 시, 김재학(金載學)을 고문 취조하였다. 1930년대 초, 경부로 승진하여 서울본정, 인천, 개성, 종로경찰서의 사법주임과 고등계주임을 지냈다.
1934년 9월 평안남도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승진하였다.
1949년 초, 임화(任和) 고문 치사 사건에 개입하였다.
1949년 1월 24일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 요인 암살 음모 혐의로 체포되었다.
1949년 1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석방을 요청하였으나, 반민특위는 이를 거부하였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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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한국 토막글 | 1899년 태어남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