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힌츠페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년 7월 6일 ~)는 독일의 기자,언론인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을 영상에 담아 국내에서는 보도될 수 없었던 광주의 참상을 제 외국에 알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린다.
[편집] 이력
학창시절에는 의사를 지망하던 의학도였으나 미디어로 진로를 바꿔 1963년에 당시 서독의 제1공영방송(또는 북독일 방송 Norddeutscher Rundfunk, NDR) 함부르크 지국의 TV방송국 카메라멘으로서 입사했다. 1967년 초에는 그당시 제1공영방송 유일의 동아시아 방면 지부가 있던 홍콩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가, 1969년 봄에 사이공에서 부상을 당한다. 이후 북독일 방송 도쿄지국으로 옮겨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그는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박정희 정권하의 여러 공안사건들에 대한 기록과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가택연금중인 김영삼과의 인터뷰등을 녹음하였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중이던 5월 19일에는 한국에 잠입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취재한 결과,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쿄로 날아가 편집화면을 독일로 전송한 그는 다시 광주로 돌아와 23일 계엄군이 일시 퇴각한 상태에서 시민자치하의 광주의 모습을 추가로 담았다. 힌츠페터가 보낸 필름은 독일 제1공영방송을 통해 제 외국에 즉시 보도되었으며, 그 해 9월에는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송되었다. 언론통제하의 5공화국시절의 국내에서는 비밀리에 알려졌다. 오늘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자료는 대부분 그가 수집한 것이다. 5공 말기인 1986년 11월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 취재도중 사복경찰에게 구타당하여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1995년 기자직을 은퇴한 이후에는 독일북부의 라체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다.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했던 그는 사후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밝혀 광주민주화운동 유족회및 광주광역시등 관련단체들이 그의 명예시민증 부여와 안장을 추진했었다.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회고록을 집필하는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방송기자협의회는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하였다.
[편집] 바깥고리
((영어))1980년 광주의 목격자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