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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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납치와 강제

동아일보의 기사에는 납치와 강제의 증거가 있습니다.


Date and Year Source Picuture
1933년6월 30일 동아일보 A girl kidnapped on the road
1930년5월 5일 동아일보 A girl forced prostitution
1936년3월15일 동아일보 A Virgin girl and kidnappers
1938년12월04일 동아일보 Many virgin girls were trafficked
1938년8월31일 동아일보 Over 100 virgin girls were kidnapped


--Lulusuke 2007년 3월 12일 (화) 16:06 (KST)

[편집]

2006년 2월 22일 (수) 14:05 Hyolee2 (진위여부는 불명이다) Hyolee2라는 이용자가 위안부항목에 "종군위안부의 진위여부는 불명이다"라는 편집을 해놓았더군요. 손바닥으로 해를 가려도 유분수죠. 좀 어이가 없군요.

맞습니다. 저도 아까 생각해 보았지만 Hyolee2님은 아직도 일어기준으로 편집하는 것 같네요. 저도 위안부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야 되지만, Hyolee2님이 위안부항목에 "종군위안부의 진위여부는 불명이다"이라고 쓴 것에 대해 좀 화가 났습니다. 참고로 일어위키의 중립성과 한국어기준의 중립성은 다릅니다.
Hyolee2님에게 부탁하겠지만, "종군위안부의 진위여부는 불명이다"이라고 쓰신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사실 일제시대에 얼마나 많은 조선인 여성들이 많이 끌려 갔는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위안부에서 생존한 사람은 현재 120명도 채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종군위안부의 진위여부는 불명이다"이라고 쓰신 것은 사실 일제시대를 마치 미화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부탁하지만 제발 위안부등 한국 관련 역사는 Hyolee2님은 건들지 마세요.- Russ 2006년 2월 22일 (수) 15:55

제 실수였습니다. 위안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어 있다의 틀림였습니다.--효리♪ (H.L.LEE) 2006년 2월 22일 (수) 16:40 (KST)

일본 측 공식입장인가요? 그렇다면, 언급해 두는 것도 역사 왜곡의 현장을 고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겠군요. ^_^ 뭐 암튼 약간 착오가 있으셨나봅니다. --정안영민 2006년 2월 22일 (수) 16:39 (KST)

일본의 주장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것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여기에 소개해 주세요. 의론하는 전에 왜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고 결정합니까. 논의를 거부하는 사람의 의견에 누가 귀를 기울입니까.Woozifikr 2006년 5월 17일 (수) 21:36 (KST)

Woozifikr님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위안부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에는 일본사람들에게 수많은 착취를 당했습니다. 위안부는 일본군이 우리나라 여성들과 일본 점령지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위안부 할머니도 120명도 남아있지 않아요.

일본의 말이 사실이라면 위안부라는 단어는 없어야 되겠죠. 하지만 일본이 저질러 놓은 범죄는 정말로 큽니다. 독도를 강탈하고, 우리나라의 지도자를 친일-반일로 분열시키고,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만든 게 바로 일본입니다. 위안부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저도 위안부라는 단어를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일본군은 실제로 우리나라 여성들과 일본 점령지의 여성들을 성노리개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정말로 위안부가 존재하는가, 안하는가에 대해서요. 만약에 존재안하다면 수요집회는 여는 것은 뭡니까? 그 위안부 할머니들이 심심해서 집회를 엽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일본에 대한 원한과, 자신들을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한 원한이 복밭쳐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역사왜곡과 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일제시대는 일본이 한국에 도움을 줬다고 할 겁니다. 마치 더러운 돈을 돈세탁해서 새돈으로 만드는 것처럼요.

지금도 일본은 역사왜곡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일본은 역사왜곡으로 한국,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펼칠거고요. 역사왜곡으로 일본인들은 일본이 한국에게 도움을 줬다고 잘못 생각할거고요.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합니다. - Russ

위안부 용어 앞에 강제 라는 단어를 붙여 강제 위안부로 했으면 좋겠군요. http://news.empas.com/issue/show.tsp/cp_yt/3243/20070316n08088/ --Lovelove 2007년 3월 16일 (토) 19:18 (KST)


아베수상은 위안부 사과를 할 이유가 없다는 발언에 대하여 후회할 것이므로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함. 정말 말도안되는 내용에 대해 투표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우리입장에선 의당 사과정도가 아니라 천황이 피해 할머니들앞에 구륙대례를 올려도 시원치 않을판이죠... 여기서 구륙대례란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 칩입해온 청국 태종황제에게 조선의 황제였던 인종이 올렸던 예로 유명합니다... 원래 이러한 예법은 신하로서 청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다는 표시로 먼저 서서 3번조아리고 다음에 한쪽다리를 꿇고 3번, 엎드려서 3번 조아리는 말그대로 수치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인조황제는 남한산성 성문밖에서부터 태종황제의 앞까지 무릎걸음으로 와서 이러한 예를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일국의 황제로서 적국의 황제에게 이러한 예를 행했으니 얼마나 통탄하고 분한 일이었겠습니까? 더 가관은 이러한 인종에게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어 일국의 황제를 더더욱 욕보였다는 점이죠... 제가 이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언제가 되었든 일왕이 우리나라에 와서 사죄를 하게 되면 피해 할머니분들앞에서 이런 구륙대례를 올리게 한후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엄히 꾸짖고 침을 뱉은다음 돌팔매질을 하는거죠... 물론 이러한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아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 생중계하는 겁니다... 저의 대에 아직은 상상 뿐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져 봅니다...

저도 그런 상상은 해봤긴 하지만, 그렇다고 청국황제처럼 해선 안되죠. 그래도 옛날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나라인데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그들과 똑같해집니다. 우리는 위엄있게 해야죠. 그건 그렇고, 예전에 일본이 탈아시아를 부르짖었는데, 그 말대로 정말로 일본이 유럽쪽에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어찌 되었을까 혹시 상상해보셨나요? 유럽국가들 다들 조그만해도 쎄지않습니까? 계속 전쟁이 일어났을겁니다. 결국은 우리도 힘을 길려야 하는겁니다. 옛 역사에서도 몇번이고 구석에 몰렸었는데, 당하고만 있을순 없지요. 수상이나 일왕이 사과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무슨 일 날겁니다. 다만, 가까운 시일내에 일어날것 같지는 않습니다. :) (덧-위에 글남기신 분, 서명 넣으세요) --눈사람 2007년 3월 20일 (수) 20:38 (KST)

[편집] 영문 표현

위안부의 영문 표현은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 범죄이며 매춘, 전쟁등의 개념과는 다르게 일류 보편적 역사의 관점에서 표현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Snature(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편집] 아베의 강제성 부인 발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1조 위반일 수 있다.

미의회조사국보고서(CRS)에 따르면 승전국이었던 네덜란드 군사재판의 판결에서 강제성을 입증했으므로 아베의 발언은 승전국의 군사재판의 결과를 무조건 따르기로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1조를 위반한 가능성이 있다. Moreover, the contention that there is no evidence of forcible, coerced recruitment seems to either ignore or be a rejection of the findings of the Dutch War Crimes Tribunals' findings and verdicts (including three death penalties) against seven Japanese army officers and four civilian employees of the army for coerced prostitution and rape of Dutch and other women in the Dutch East Indies (now Indonesia). This raises the potentially very important question of whether the Abe goveimment is Repudiation of Article 11 of the 1951 Treaty of Peace between the Allied powers and Japan. Article 11 states: "Japan accepts the judgments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and of other Allied War Crimes Courts both within and outside Japan. . . ." according to the U.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delivered a report on "Japanese Mlitary Comfort Women System"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