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시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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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치오
속명  
임기 시작 384년 12월 11일
임기 종료 399년 11월 26일
전임 다마소 1세
후임 아나스타시오 1세
탄생
사망 399년 11월 26일

교황 시리치오(라틴어: Sanctus Siricius, 이탈리아어: Papa Siricio)는 제38대 로마 교황(재위: 384년 12월 11일 - 399년 11월 26일)이다.

로마 태생이며 강독자로 서임된 후 교황 리베리오에 의해 부제로 서품되었다가 교황 다마소 1세가 선종하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시리치오는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힘 있게 활동하였고 처음으로 교황권을 확실히 행사하였다. 타라고나의 히메리우스에게 보낸 서한과 아프리카주교들에 보낸 서한에서 그는 교황의 수위권을 공포하였다. 386년 테살로니키의 아니시우스에게 주교 서품과 교회의 규율에 대하여 서한을 보내었다. 아리아니즘과 노바시아니즘에 빠졌던 이들이 정통 교회로 돌아올 경우 세례를 다시 줄 것이 아니라 안수를 해 준 후에 받아주도록 하였다. 유아 세례는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활절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주도록 하고 크리스마스 때에 거행되던 유아 세례는 폐지되었다. 주교 성성은 주교 한 사람이 할 것이 아니라 여러 주교들에 의하여 거행되어야 하며 다른 교회의 성직자나 다른 교회에서 면직된 사람을 서품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서품자들의 연령을 정하였고, 특히 성직자들의 절제 생활을 강조하였다. 신부부제는 영원히 절제를 지켜야 하고 무절제하게 사는 남녀 수도자들과 신자들에게 엄한 벌을 가해야 하며 엄한 참회 규정을 정하고 군복무자에게는 성직이 허용되지 않았다.

시리치오는 무엇보다도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신장시켰다. 자신이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확실히 깨닫고 있던 그는 그 권한을 실제로 행사하였다. '우리들(nos)'은 황제가 자기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서 복수이다. 시리치오는 '우리들'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사용하였다. 주교들에게 보낸 답신에서는 제국의 상서국에서 하듯이 완전한 권위를 드러내는 문구로 "우리들은 명령하고 반포하며 답신하였노라"라고 표현하였다. 시리치오의 결정들은 교황좌의 법령이 되어 인정된 공의회의 결정들과 동일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에 순종하지 않는 주교들은 기독교의 유대에서 분리되었다.

시리치오의 이런 권위 행사는 우선 이탈리아의 변두리 주교들에게 적용되었다. 주교 선출은 로마 교회가 알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로마 교회회의의 결정을 점차적으로 확대시켜 밀라노와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에도 로마 교회의 권위가 미치게 하였다. 시리치오는 테살로니키의 아니시우스를 일리리쿰의 교황 대리자로 임명하여 그 지역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암브로시오의 요청에 의해 시리치오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분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는 카에사리아 교회회의가 플라비아누스를 인정한 것은 시리치오와 뜻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전 임
다마소 1세
제38대 교황
384년 12월 11일 - 399년 11월 26일
후 임
아나스타시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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