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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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교(李範敎, 1887년 7월 27일 영천 - 1951년 12월 29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였다.
- 대구에서 동산병원(東山病院)을 개업하여 의료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일경의 지명수배를 피하여 상해로 망명하였다.
- 1919년 4월에 임시정부에서 국내외를 연결시키며 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교통부의 교통위원으로 피선되었다.
- 1919년 7월에 임시정부 경북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항일선전 및 군자금 조달, 임시정부 연락 임무 등의 사명을 띠고 입국하여 활동을 전개하였다.
- 1919년 11월에는 국내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체포 위기를 여러 번 모면한 뒤 만주, 봉천(奉天)으로 가서 국내 출입 안내역과 연락책으로 활동하였으며, 또한 12월에는 러시아령(領) 니코리스크시에 배영학교(培英學校)와 병원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계몽사상을 교육시켰다.
-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이만(달네레첸스크)을 탈출한 이범석이 약 6개월간 배영학교(培英學校)에서 훈련부장으로 재직하면서 2세 교육에 전념하고, 독립운동을 보다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미군정 때에는 군정청 영천군 고문을 맡았다.
[편집] 참고자료
《대한민국 의정총람》, 국회의원총람발간위원회, 1994년
전 임 - |
제1대 국회의원(영천군 을)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영천군 갑)정도영 |
후 임 (영천군 갑)권중돈 (영천군 을)조규설 |
분류: 1887년 태어남 | 1951년 죽음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 한국의 독립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