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평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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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대군(麟坪大君, 1622년 - 1658년)은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이다. 본명은 요,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1630년 인평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중국 선양에 끌려갔으며, 후에도 몇차례 청나라를 방문했다. 오단의 딸 복천부부인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은 삼복의 변(三福之變)에 연루된다. 후에 장남 복녕군의 5대손 남연군은신군의 양자로 입적하였으며, 남연군의 손자 재황은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된다. 시서화에 능해 〈고백도〉,〈노승하관도〉,〈산수도〉와 같은 작품을 비롯해 〈송계집〉,〈연행록〉,〈산행록〉같은 저서를 남겼다.

묘는 경기도 포천시에 있다.

[편집] 가족 관계

  • 아버지 : 인조(仁祖, 1595년 - 1649년)
  • 어머니 : 인렬왕후(仁烈王后, 1594년 - 1635년)
  • 복천부부인 오씨
    • 장남 복녕군(福寧君)
    • 차남 복창군(福昌君)
    • 삼남 복선군(福善君)
    • 사남 복평군(福平君)
  • 귀인 조씨
    • 서1남 숭선군 징(徵)
    • 서2남 낙선군 숙(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