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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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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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는 시각과 청각 장애가 있는 미국의 작가 겸 활동가 겸 교육가이다.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났다. 생후 19개월이 되던 1882년 2월에 걸린 열병으로 인해 장애가 와서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를 갖게 되었다.하지만, 특수교육 교사인 설리반 선생의 지도로 언어장애를 극복했으며 학습능력을 갖게되었다. 헬렌 캘러하면 장애를 극복한 여성, 교육가로만 생각하지만, 실제 역사속의 헬렌은 스미스여자대학교 시절부터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온건보수성격의 미국노동총연맹(AFL)에 반대, 진보적 성격의 노동운동단체를 결성할 정도로 열렬한 노동운동을 했고,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보수언론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순진한(?) 시각장애인인 헬렌을 유혹했다고 악평했다. 그외 사회운동경력으로는 反 나치운동이 있다.

[편집] 유년기

헬렌 켈러는 앨라배마주의 투스컴비아에 있는 아이비 그린이란 저택에서 1880년 6월 27일에 예비역 장군이자 지방신문사 편집자였던 아더 H. 켈러와 케이트 애덤 켈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 청각 장애인이 아니었다. 생후 19개월후 그녀는 당시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생각되는 위와 뇌에 심한 출혈을 앓았다. 그 결과,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시각와 청각을 잃고 말았다. 7살이 되는 해까지, 그녀는 약 60개가 넘는 수화를 만들어서 가족과 대화를 할수 있게 되었다. 1886년, 그녀의 어머니인 케이트 켈러는 찰스 딕큰의 American Notes에 나오는 시청각 장애인, 로라 브링맨의 성공적인 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감명받아, 조언을 얻으러 발티모어의 특수 의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 청각 장애우의 치료 전문가이자 전화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래햄 벨을 만났고, 그는 그가 교육을 받은 메사추세츠, 보스턴에 있는 펄킨스 시각 장애 학원을 찾아가보라고 조언을 했다. 그 학원에서는 스스로 시각적인 장애를 앓고 그 당시 겨우 20살이었던 졸업생 앤 설리번을 특수교육 선생님으로 보내게 된다. 이것이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49년간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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