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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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
시 문장
지역 칼리닌그라드 주
설립 1255년
도시 등록 1286년 (알트슈타트 시)
1724년 (쾨니히스베르크라고 불려짐)
1946년 (소비에트 연방때부터 칼리닌그라드로 불려짐)
위도 북위 54° 44'
경도 동경 20° 29'
인구 (명) 421만명 (2003년)
OKATO 번호 27401
전화 번호 0112
모스크바와 시차 −1 시간

칼리닌그라드(러시아어: Калининград, 독일어: Königsberg 쾨니히스베르크[*], 폴란드어: Królewiec 크룰레비에츠, 리투아니아어: Karaliaučius 카랄리아우치우스, 라틴어: Regiomontium 레기오몬티움)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고립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주(북쪽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폴란드, 서쪽으로는 발트해에 접해 있다)의 주도이다. 발트 해에 면한 항구 도시로, 1946년까지는 독일 동북 변경의 중요 도시로, 쾨니히스베르크(독일어: Königsberg, "왕의 성")로 불렸다. 뒤에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면서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딴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구는 43만 5천명이다.

목차

[편집] 역사

본래는 발트계의 프로이센인의 땅이였다. 1255년 보헤미아의 왕 오타카르 2세의 권고로 튜턴 기사단에 의하여 요새가 건설된 것을 시초로 하여, 나중에는 독일 기사단 영토 및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로 변하고, 프로이센 왕국이 성립되어 수도가 베를린이 되기 전까지 수도였다. 역대 프로이센 왕들은 이 곳에서 대관식을 치뤘다. 동프로이센 주의 주도로 1945년까지 독일령이었다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이 곳 출신이다.

[편집] 지리

프레골랴 강이 칼리닌그라드 석호(潟湖)로 흘러드는 하구에 자리잡고 있다. 발티스크까지는 40km가 운하로 연결된다.

[편집] 기후

[편집] 주민 및 언어

본래 주민은 독일인이었으나, 2차 대전 후 추방당하여, 지금은 대부분의 주민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인이 82%를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벨라루스인이 5%를, 우크라이나인이 4%, 1.4%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출신이고, 0.8%가 아르메니아인과 독일인, 0.5%가 타타르족, 리투아니아타타르족과 유대인, 바슈키르족, 폴란드인이다.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쓴다.

[편집] 산업

러시아의 유일한 발트해에 접한 부동항이자 해군기지, 산업·어업·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한다.

[편집] 바깥 고리


칼리닌그라드 주의 도시
구리옙스크 | 구세프 | 그바르데이스크 | 네만 | 네스테로프 | 라두시킨 | 마모노보 | 바그라티오놉스크 | 발티스크 | 소베츠크 | 스베틀로고르스크 | 스베틀리 | 슬랍스크 | 오조르스크 | 젤레노그라츠크 | 체르냐홉스크 | 칼리닌그라드 | 크라스노즈나묜스크 | 폴레스크 | 프라브딘스크 | 프리모르스크 | 피오네르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