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917년경의 프란츠 카프카
실제 크기로
1917년경의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년 7월 3일 - 1924년 6월 3일)는 체코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7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 1924년 오스트리아 근교의 결핵요양소 키얼링(Kierling)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사후 그의 모든 서류를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을 남겼다.

목차

[편집] 카프카의 문학 세계

한 작가의 삶이 물론 그의 문학 창작에 경우에 따라서는 큰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카프카의 길지 않은 삶의 여정은 그의 문학 세계의 섬세한 면을 이해하는데 적지않은 도움을 준다. 그의 문학 창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을 대충 간추려 본다면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상, 그의 약혼녀 펠리스 바우어, 유대인의 주체의식 등을 들 수 있겠다. 문학비평의 측면에서는 자주 거론된 "삶의 의미 추구"에 관한 문제를 여기서 짧게 손꼽을 수 있겠다.

[편집] 가족과 아버지상

[편집] 카프카와 펠리스 바우어 (Felice Bauer)

카프카는 펠리스 바우어와의 첫대면 (1912년 8월 13일)을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아가씨 F.C. 내가 8월 13일 브로트집에서 식탁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마치 식모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난 그녀가 누군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녀의 존재에 대해 곧바로 나름대로 정리를 하였다. 브라우스를 걸쳐 입은 모습이 아주 가정적으로 보였으나, 잠시후 그녀는 이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울퉁하고 빈 얼굴은 공허 그대로였으며, 삐뚤어진 코, 약간 무디고 매력없는 금발, 거센 턱. 식탁에 마주 앉으면서 그녀를 처음으로 자세히 눈여겨 보면서 나는 그녀에 관해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

펠리스 바우어가 이 짧은 기록에서 마치 카프카 소설의 한 인물처럼 묘사된 것에서 우리는 그녀의 존재가 카프카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아마 미루어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첫대면 후 카프카는 그야말로 억제할 수 없는 창작열에 사로잡히게 된다. 약 한달 후 그는 하루밤 사이에 (9월 23일) 유명한 단편 "판결"을 써서 펠리스 바우어에게 받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수도 없이 써 보낸 편지는 훌륭한 서한문학으로 평가됨과 동시에, 오늘날 카프카의 섬세한 문학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펠리스 바우어는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으로서 카프카를 알게된 당시 독일의 베를린에 거주하는 사무여직원 이었다.

[편집] 유대인의 주체의식

[편집] 삶의 의미 추구

[편집] 저작

[편집] 장편

  • 아메리카 (Amerika 혹은 실종자 Der Verschollene)
  • 소송 (Der Prozess)
  • 성 (Das Schloß)

[편집] 단편

  • 판결 (Das Urteil)
  • 지방에서의 결혼예식 (Hochzeitvorbereitungen auf dem Lande)
  • 관찰 (Betrachtung)
  • 변신 (Die Verwandlung)
  •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
  • 단식 예술가 (Der Hungerkünstler)

[편집] 일기

[편집]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