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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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1944년 3월 18일 - 2005년 9월 24일)은 한국의 경제학자, 언론인이다.
온양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온양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1972년 중앙일보 입사해 기자로 일했다. 가톨릭 사제들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벨기에 루뱅 대학교로 유학가 198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후, 이듬해 한신대학교 경상학부 교수로 임용되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하며, 김수행, 이영훈, 윤소영, 강남훈 등과 함께 한신 경제과학 연구소 활동을 주도했다. 1986년 한신대에서 해직당한 뒤, 다른 서울대와 고려대 등에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했다.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비상임 논설 위원을 지내며, 전망대 등의 칼럼을 통해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1991년 12월 31일 한겨레신문사를 퇴사했다. 오랜 강사 생활 끝에 1999년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로 임용되었고,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 첫 진행자가 되었으며, 2000년 중앙일보 논설 위원이 되어 정운영 칼럼을 써왔다. 당시 쓴 몇 편의 글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에는 위암 수술을 다시 1987년에는 허파에 병이 생겨 입원하는 등 병마로 고생하기도 했다. 2005년 지병인 신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편집] 저서
- 《레테를 위한 비망록》
- 《광대의 경제학》
-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 《경제학을 위한 변명》
분류: 1944년 태어남 | 2005년 죽음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 대한민국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