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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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극(李載克, 1864년 ~ ?)는 조선의 관료이며 친일파 인물이다.
그는 대한제국 고종과 같은 항렬의 왕실 종친으로, 아버지는 이연응이다.
1879년부터 관직에 들어섰고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치른 명성황후의 장례에서 종척집사(宗戚執事)를 맡는 등 왕실 주변에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900년에 경기도관찰사에 임명되면서 요직을 맡기 시작하여, 1903년 법부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이 무렵 부터 일제와 밀착하여 황실의 동정을 탐지하여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궁내부대신으로 일제의 뜻에 따라 고종을 협박하는 일을 맡은 그는, 종친 중 대표적인 친일파로 지목되어 나철이 을사오적을 암살하기로 했을 때 암살 대상자로 꼽혔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1919년 이왕직 장관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친일파로 활동하였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이재극은 의친왕의 5남 이수길을 양손자로 맞았는데, 이수길의 부인이 이재극 소유였던 파주의 땅을 되찾겠다는 소송을 낸 바 있다[1].
[편집] 각주
- ↑ 《한겨레21》(2005.8.23) 친일파 재산 환수, 이번엔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