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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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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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일본어: 伊藤博文, いとう ひろぶみ, 1841년 10월 16일 - 1909년 10월 26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한자를 한국어식으로 읽은 이등박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본명은 하야시 도시스케(林利助)이며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무사 집안인 이토 집안의 양자로 들어갔다.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쳐 초대 내각총리대신까지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야마구치 현 출생.

1905년 조선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초대 통감으로 부임, 한일 병합의 기초를 닦았다. 을사 조약 참조.

1907년 5월 22일 을사 조약에 공을 세운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하는 새 내각을 조직하도록 했다. 일본에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여 궁내대신으로 삼은 이 내각은 총리대신 이완용, 탁지부대신 고영희(高永喜), 법무부대신 권중현, 농상공부대신 송병준, 내부대신 임선준, 군부대신 이병무(李秉武), 학부대신 이재곤(李載崑) 등으로 구성되었다.[1]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에 의해 암살되었다.

1963년 11월 1일부터 발행된 세번째 엔화의 1000엔짜리 지폐에 초상이 그려져, 이 지폐는 1984년 11월 1일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으로 바뀌기까지 널리 유통되었다. 그 지폐는 2005년 현재도 일본에서 사용할 수는 있다.


  1.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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