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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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호(玄俊鎬, 1889년 ~ 1950년 9월 28일)는 일제 강점기의 금융인으로, 친일파 인물이다. 아호는 무송(撫松).
전라남도 영암에서 현기봉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기봉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내는 등 일제에 적극 협력한 친일 유지로, 그의 집안은 호남 지방에서 유명한 거부 가문이었다.
담양의 창평영학숙(昌平英學塾)에서 수학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 대학에서 공부했다. 1917년 귀국하여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하고 전무취체역에 취임했다. 그는 1925년 호남은행의 대표가 된다.
창평영학숙 동창인 김성수, 송진우와 절친했으며 이들과 함께 1923년 민립대학설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적 계몽 운동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되고 큰 잇권이 걸린 지역 간첩 사업의 사업권을 따내는 등 일제와 밀착한 행보로 민족주의 운동과는 결별하게 되었다.
중일 전쟁 발발 후 총독부가 조직한 시국강연반에 참여하여 전남 지역을 돌면서 전쟁 지원을 역설함으로써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설치된 시국대책조사위원회에도 조사위원으로 임명되어 참여했다. 1941년에는 윤치호의 흥아보국단에 준비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참가했고, 중추원 고문과 참의들이 결성한 시국강연반 소속으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징병제 홍보와 학병 지원 권유 등에 가담했다.
광복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불구속으로 수사를 받다가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한국 전쟁 때 조선인민군에게 피살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두 목록에는 그의 아버지 현기봉도 포함되어 있다.
장남인 현영원은 현대상선 회장을 지냈으며, 현영원의 차녀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이다.
분류: 1889년 태어남 | 1850년 죽음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