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광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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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무제 유수(漢光武帝 劉秀, 기원전 6년 ~ 서기 57년)는 중국 후한의 초대 황제이다. 한 고조 유방의 9세손이며, 남양의 채양현 출신이다. 남둔 현령 유흠의 아들이다. 자는 문숙(文叔)이다.

신 건흥제 왕망에 맞서 반란이 일어나자, 유수도 형 유인과 함께 봉기하였다. 23년에 곤양을 점령했는데 신군 43만 명이 곤양을 포위하였다. 이 때, 유수는 포위망을 뚫고 원군을 요청하러 갔는데,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원군 3천 명을 이끌고 돌아와 적장 왕심을 죽였다. 이렇게 되어 유수의 명성은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때 당시, 황제를 자칭하던 한 경시제 유현은 유인과 유수를 죽이려 했다. 이를 알아챈 유수는 유현에게 복종하는 척 했으며, 심지어 형 유인이 트집이 잡혀 죽었는데도 형을 위하여 상복을 입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현은 유수에게 직책을 주어 그를 위로했다.

유수는 곧 유현에게서 떠나 하북에 정착했다. 그리고, 점점 세력을 넓혀 나라를 세우니 이가 후한(後漢)이다. 이때가 25년 6월 때의 일이다. 도읍은 낙양에 정하고 연호는 건무(建武)라 하였다.

유수는 적미군을 격파하고, 36년에 전국을 통일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노비를 해방하고, 죄인들을 석방시키고, 수리사업을 일으키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57년 2월에 유수는 낙양의 남궁에서 붕어하였으니 그 때 나이가 63세였다. 시호는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이다.


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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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중국 후한 황제
25년 - 57년
후 임
차남 후한 명제 유장
전 임
한 경시제 유현
중국 황제
25년 - 57년
후 임
차남 후한 명제 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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