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년 1월 25일 ~ 1926년 7월 23일)는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로, 한국의 독립 운동가인 박열의 연인이었다.
일본의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출생이다.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하는 등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는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충청북도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양녀가 되어 한국에서 약 7년간 생활했다. 그동안에 3·1 운동을 목격한 뒤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확인하고 이에 동감하게 되었다.
1919년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어머니가 여전히 재혼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라 혼자 도쿄의 친척집으로 올라와 공부했다. 이때 사회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1921년에는 도쿄에 유학한 한국인 사회주의자들과도 알게 되었다.
1922년 박열과 만나 연인이 되었으며, 흑도회와 흑우회에 가입하고 기관지를 발행하는 등 그와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1923년 박열과 함께 아나키즘 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했는데, 그해 가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보호 검속 명목으로 연행되었다. 그는 천황을 암살하려한 대역죄 명목으로 1926년 사형 판결을 받았다.
며칠 뒤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형무소 측은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발표했지만 변호사와 가족들은 사인에 의문을 제기하여 명확한 사인은 불명으로 남아 있다.
유골은 박열의 형이 인수하여 박열의 고향인 문경에 안장했다.
전기로 야마다 쇼지의 《가네코 후미코》가 있다.
![]() |
이 문서는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