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밀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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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밀사 사건1907년 고종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등의 밀사를 파견하려 하였던 사건이다. 1907년 고종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러시아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 을사 조약이 조선 황제의 뜻에 반해 일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폭로하고 이를 파기하고자 했다.

고종1907년 4월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에게 신임장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주어 만국회의에 나가 조선의 실상을 만천하에 알리도록 조처했다. 이에 따라 이상설은 전 평리원 검사 이준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를 거쳐 당시 러시아의 수도 레닌그라드에 가서 전 러시아 공사관 서기 이위종을 데리고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본과 영국 등의 방해와 열국의 방관으로 조선 대표들은 회의 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영국은 영일동맹에 따라 일본을 지지한 것이었고, 러시아는 아무래도 러일전쟁의 여파로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조선의 특사 파견을 도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네덜란드 언론인 W. 스테드의 주선으로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이위종이 조선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 했다. 이에 이준은 울분을 삭이지 못 한 채 분사하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7월 20일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고종 양위 사건 참조.

그리고 이어 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정미7조약 참조.

[편집] 참고 문헌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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