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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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흔히들 '성모(聖母, Sancta)' 또는 '동정녀(童貞女, Virgo)'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다.

가톨릭 교회의 성전(聖傳)과 역대 교황들의 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에 따르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과 달리 원죄 없이 태어났으며, 죽은 뒤에 하느님에 의해 천국으로 올림을 받았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성경 근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동방 정교회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어머니, 전구자로 부르며 성인들 중에서 특별히 공경하고 있다.

목차

[편집] 생애

마리아는 요아킴과 안나의 딸로서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 태어났다. 이 나자렛 태생이라는 것이 그녀가 다윗 왕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녀는 목수 요셉과 약혼을 하였지만 처녀의 상태로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령에 의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임신한 그녀는 이 기쁜 소식을 사촌언니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 전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인사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곧 마리아는 '마니피캇(Magnificat)'을 노래하였다.

그녀는 인구 조사 때문에 로마 제국 황제의 칙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지만 숙소를 구하지 못해 근처 마굿간에서 밤을 보내다가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 그녀는 정해진 날에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였다.

당시 유다 지역을 다스리던 헤로데스 1세 왕은 베들레헴에 유대인들의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죽이려 하였다. 그를 피해 이집트로 도망쳤던 예수네 가족은 헤로데스 1세가 죽자 나자렛으로 돌아와 예수가 30세 무렵이 될 때까지 그 곳에서 목수 일을 하며 살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가 12살이 되었을 때,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갔으며, 거기서 가족들은 3일 동안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할 때에 마리아는 그와 함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고, 거기에서 첫번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녀는 예수가 가르침을 전하다가 유대교와 로마 제국을 모욕하고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을 때에 십자가의 발치에 서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 보았으며, 사도들이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던 때에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후 마리아는 예수의 뜻에 따라 죽을 때까지 사도 요한과 살았다고 전해진다.

[편집] 교리

[편집] 원죄 없는 잉태

이 부분의 본문은 원죄 없는 잉태입니다.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미리 하느님이 계획한 특전이라 한다. 교회는 ‘원죄 없는 잉태’가 사도들에게 계시되어 교회 내에 전래되어 온 교리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성서에는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그러나 사도들의 구두 가르침에 이 교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다른 명확한 가르침에 은연중 내포되어 있었는데, 이는 복음의 씨앗이 그리스도교인의 가슴에 열매를 맺고 난 이후에 비로소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성서상 간접적인 근거로 창세 3,15과 루카 1,28을 들기도 하지만,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뚜렷한 신앙은 마리아의 성덕(聖德)에 대한 일반적인 교리를 구체화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루카 복음서 제 1장과 제 2장은 마리아를 예외적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보고 있으며 그녀의 성덕을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사실과 관련시킨다.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성령으로 인하여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으실 터이니…”(루카 1,30-31)

이러한 마리아의 성덕은 성모 영보 때 뿐 아니라 마리아의 잉태 순간부터 갖추었음이 수세기가 지난 후에 비로소 밝혀졌다.

[편집] 성모 영보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가브리엘 대천사를 시켜 계시한 사실을 성모 영보라 부른다.

성모 영보에 관한 성서의 말(루카 1,26-28)에 의하면 마리아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시여, 기뻐하십시오"라는 인사를 받으셨고 동정녀는 천사에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의 모친이 되었고, 아무런 죄의 거리낌도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교부들은 마리아가 순전히 피동적으로 하느님에 이용당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편집] 평생 동정

초대 교회의 신앙 표현들에서는 성서의 증언에 따라 예수가 오로지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잉태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의 고백은 점차로 마리아가 예수를 낳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동정이었다, 즉 평생 동정이었다는 고백으로 확대되었다. “평생 동정(aeiparthenos)”이라는 표현은 4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고, 공식적으로는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결정문에서 사용된다. 그리고 649년 라테라노 시노드에서는 마리아가 출산 전에, 출산 중에, 출산 후에도 동정녀였다고 선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형제와 자매를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구약성서의 표현에 따라 형제라는 말은 예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석함으로써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에서는 형제 자매라는 명칭으로써 사촌들도 지칭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히브리어나 아라메아어에서는 이 친척관계를 나타내는 고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편집] 성모 몽소 승천

교회는 마리아의 지상 생애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그 마지막도 하느님의 행동을 통해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의 승천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라틴어에서는 이 차이를 분명히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승천(ascensio)”, 성모 마리아는 “받아들임(assumptio)”이라고 구분함으로써, 마리아의 승천에서는 하느님이 이 사건의 능동적 주체임을 분명히 한다. 마리아가 육체성과 함께 전인적으로 완성된 것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인한 구원의 주도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사건이다.

[편집] 성모 발현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의 초자연적인 현현(顯現)을 일컫는 말이다.

옛부터 성모 마리아의 환시나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기이한 현상들을 통해서 마리아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마리아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메시지는 인류의 갖가지 범죄로 말미암아 진노한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박하였으니 끊임없이 세계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보속(補贖)의 기도를 바치고 회개하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성모 발현지에는 기념 성당 등이 세워지고 전세계 신자들의 순례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마리아의 주요 발현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