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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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倻 혹은 加耶)는 가락(駕洛), 가라(加羅), 가량(加良), 구야(狗耶)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대부분동안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던 부족국가들의 연맹체였다. 동쪽으로 신라, 서쪽으로 백제를 접하고 있었으며 남쪽으로 와 수교했다. 변한의 소국들이 발전해 형성되었다.

<삼국유사>에는

"하나의 자줏빛 끈이 드리워져 6개의 둥근 알이 내려왔는데, 다섯은 각기 읍으로 돌아가고 하나만 이 성에 남았구나"라고 하였으니, 그 하나는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은 각각 5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고 나와있다. 여기서 5가야란 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소가야이고, 수로왕이 남은 성이 가락국 즉 금관가야이다. 그러나 6가야에 대해서는 다른 전승도 많은데, <고려사략>(高麗史略)은 금관가야, 고령가야, 비화가야, 아라가야, 성산가야의 다섯 가야가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야의 소국들은 2~3세기경에 김해부근에 있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체를 구성했다. 가야연맹은 이후 쇠락기에 들어섰으나 5~6세기경에 고령부근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다시 재결집했다. 그러나 신라백제의 오랜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562년에 대가야는 신라에게 병합되었다.

가야는 형성기에 일본 규슈 북부의 와 와 관계가 가까왔다.가야와 와 의 관계에 대해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아직도 논쟁을 계속하고있다. 일본서기에서는 가야(일본어로 미마마)가 와 의 식민지나 속국으로 기록되어있다. 한국의 기록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대부분의 학자는 이런 설을 부정하고있다. 한국의 일부학자들은 와 는 백제의 식민지나 속국이라고 믿고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가피하게 가야 와 와 는 가까운 관계이나 식민지는 아닌것으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