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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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희(申應熙, 1859년 - 1928년)는 친일파 인사이다.
1883년 5월 김옥균, 박영효 등의 주선으로 서재필, 정란교, 이규완 등 13명과 함께 사관생도의 신분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게이오의숙에서 일본어를 배웠고, 1883년 10월 3일 일본 육군의 하사관 양성기관인 도야마(戸山) 학교에 입학, 1884년 5월에 졸업하였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1]
- 대한제국 당시, 전라남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 1910년 함경남도 장관이 되었다.
- 1919년 황해도지사가 되었다.
- 1925년-1927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편집] 각주
- ^ 1883년 5월~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반민족문제연구소,《친일파99인》(돌베게, 1993년) 174쪽(장세윤 집필 부분)
분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 1859년 태어남 | 1928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