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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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王安石)은 송나라의 개혁 정치가이다. 중국 장시성[江西省] 출신이며 북송 시기에의 시인·문필가로 활약하였다.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이다. 신법(新法)이라는 개혁책을 통해 균수법均輸法, 청묘법靑苗法, 시역법市易法, 모역법募役法, 보갑법保甲法, 보마법保馬法 등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격화되고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의 개혁 정치는 보수파에 매도되었지만 문장력은 동료뿐 아니라 정적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을만큼 뛰어났으며 당송 8대가중의 한 사람이다.
[편집] 생애
왕안석은 21세에 진사가 되었고 이후 거의 20년 동안 화난[華南]에서 지방관리로서 벼슬 생활을 한다. 신종(神宗)이 즉위한 후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고 이 때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 1069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내용의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장시성 출신인 그는 정치적으로는 신법당(新法黨)에 속해 韓琦·사마광(司馬光) 등 구법당(舊法黨) 인물들을 축출하고 이재에 능한 강남출신 신진관료들을 대거 발탁 기용하여 新法을 과감히 추진하게 된다.
[편집] 왕안석의 개혁
- 균수법 : 정부가 지방의 물자를 사들여 다른 지방에 팔아 이익을 얻음으로써 물자 유통을 원활히 하고 물건 값의 조절과 안정을 꾀하고자 한 정책이다.
- 청묘법 :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농사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어 지주들의 비싼 이잣돈을 얻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한 정책이다.
- 시역법 : 자본이 적은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대상인들이 이익을 독차지 하는 것을 막고 국가 수입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다.
- 모역법 : 역이 면제되어 온 관리 사원으로부터 돈을 받아 실업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품삯을 주어 역의 형평을 기하고자 한 정책이다.
- 보갑법 : 10집을 1보로, 5보를 대보로, 10대보를 도보로 편성하여 장점을 징집,훈련하여 민병으로 삼아 평화시에는 치안 임무를 수행하고 고 전쟁이 일어나면 관군을 돕게한 정책이다.
- 보마법 : 백성에게 말을 기르게하여 전쟁일 일어나면 군마로 쓰도록 한 정책이다.
[편집] 저술
- <<만언서 萬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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