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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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남(安懷南, 1910년 11월 15일 - ? )은 한국의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이다. 본명은 안필승(安必承)이다.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해서 휘문고보를 다녔다. 휘문고보 동창인 소설가 김유정과는 절친한 사이였으며, 김유정이 요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편지글이 안회남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髮)〉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했던 안회남의 초기 작품은 심리 묘사 위주로 신변을 다룬 사소설(私小說)이 주를 이루었으나, 차츰 경향의 변화를 보인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온 후로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냈고, 월북 이후로 추정되는 1948년 발표된 중편인 《농민의 비애》는 미군정의 폭정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일제 강점기보다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회 고발적인 내용이다.
광복 후 좌익 계열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동맹 결성에 참가하여 소설부 위원장을 맡았다. 1947년 경에 월북하였다가, 한국 전쟁 시기에 서울로 종군하여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 아직 월북하지 않고 있던 문인들과 함께 북조선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숙청되었다는 설만 있을 뿐, 1950년대 이후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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