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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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운(田明雲, 1884년 6월 25일1947년 11월 19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죽암(竹嵒).

서울 태생이다. 한성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고문을 맡고 있던 D. W.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데 격분했다. 이 발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 이틀 후인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여객선 선착장에서 일본인 총영사와 함께 있는 스티븐스를 공격했고, 격투가 벌어지자 같은 목적에서 별도로 대기하던 장인환이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 이틀 후인 3월 25일 절명하게 하는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이때 장인환의 총격에 총상을 입고 장인환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공범 관계가 아님이 드러나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이때 통역은 신홍우가 맡았다.

그는 장인환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로 잠시 이주했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귀환, 말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며 보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