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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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 155년 - 220년)는 후한 말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이며 시인이다. 자는 맹덕(孟德).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 한나라의 마지막 승상이며, (魏)를 창업하였다.

아버지는 조숭(曹嵩)이다. 조숭은 본래 하후(夏候)씨였으나 중상시 조등(曹騰)이 환관(宦官)이라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숭이 그의 양자가 되면서 조씨가 되었다. 조조와 하후연(夏候淵), 하후돈(夏候惇)은 사촌형제지간이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조조는 기도위(騎都尉)로 승진하여 영천(潁川)에서 황건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웠다. 190년 동탁(董卓) 암살에 실패 후 원소(袁紹)를 맹주로 하는 반동탁연합에 참가하여 이름을 날리지만, 반동탁연합은 동탁을 타도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192년 청주에서 황건적의 잔당을 물리치고 그 일부를 자기의 세력으로 영입하여 크게 성장한 조조는 202년 관도 전투에서 원소를 물리치고 화북 지역을 통일하였다.

관도 전투 이후 중원의 최강자로 성장한 조조는 207년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8년 적벽 대전(赤壁 大戰)에서 유비손권(孫權) 연합군에게 대패하여 이후 중국은 , , 삼국의 삼국 시대에 접어들었다.

216년 조조가 위의 왕에 봉해지면서 위의 건국이 이루어졌다. 헌제(獻帝)는 사실상 허수아비였으며 이 무렵 후한의 실권자는 조조였으나 황제가 되지는 않고 죽을 때까지 위왕으로 남았다. 220년낙양에서 죽었다.

후에 건안칠자와 함께 당대의 문학계의 이름 있는 사람들이라 해서 삼조(三曹)라 불리운다. 삼조는 조조와 그의 아들 조비, 조식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간웅이라는 비난을 받는 인물이지만, 역사속의 조조는 앞장서서 법을 지키는 모범적인 지도자였다고 한다. 그 실례로 조조시대에는 군인들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보리밭에 들어가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법이 있었다. 그런데 그 법을 어기자 조조는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겨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요구하였고, 신하들은 그가 탄 을 처형하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하였다. 이를 본 군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겨서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