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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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桓檀古記) 또는 한단고기1979년 출간된 한국의 고대역사서이며, 사서와 내용에 진위의 논란이 있다.

환단고기의 범례에 따르면 1911년홍범도(洪範圖), 오동진(吳東振)의 자금지원으로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하고 이기(李沂)가 교열(校閱)했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1949년이유립이 오형기에게 정서시켰으며[1], 한 차례 원본과 함께 관련 자료가 분실되었으나 그 후 기억을 되살려 복원하여 필사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이 때의 내용을 1979년 영인본으로 제작한 것이다.

2006년 초에 숙명여대에서 1912년에 첫 출판된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1989년에 기증된 영인본(배달의숙 발행)이고, 뒷면에 이미 1979년 인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최소한 1979년 이후에 다시 정서하여 영인된 것으로 보인다.

목차

저자

계연수

독립운동가. 사학자.

1898년 《태백유사》와《단군세기》를 간행하였다.

1916년 묘향산 석굴에서 천부경을 발견하여 대종교를 통하여 보급하도록 하였다.

〈범례〉에 의하면 1911년 여러 사서들을 엮어 《환단고기》라는 제목으로 필사하였으며, 이기의 감수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계연수 자신이 1916년에 처음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천부경의 내용이 1911년에 저술된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 포함되어 있고, 〈범례〉에도 그러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으며, 환단고기의 모든 내용을 감수하였다는 이기는 이미 1909년에 타계하는 등 저술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유립

독립운동가, 사학자.

1976년 박창암, 안호상, 유봉영, 문정창, 박시인, 임승국 등과 함께 국사찾기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1979년 음력 10월에 필사 영인본인 한문본 《환단고기(광오이해사)》를 간행하였다.

《환단고기》의 출간경위 및 경과

1911년, 광무 15년(환단고기 범례에 따른 연도. 실제 광무 연호는 10년까지만 사용) 계연수가 고대사서들을 묶어 환단고기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였다고 한다.

1920년 이전, (이유립이 13세가 채 안 되었을 때에) 편집된 《환단고기》의 원본을 계연수(~ 1920)로부터 건네받았다.

1975년 1920년대부터 보관해 오던 원본이 모든 관련 자료와 함께 유실되었으나, 기억을 되살려 복원했다고 한다.

1975년 박창암(퇴역장성, 월간 자유사 사장), 임승국(정사학회 회장, 환단고기 번역주해 저자), 이유립(단단학회장, 태백교, 환단고기 발간), 안호상(전직 문교부장관), 유봉영, 문정창(한국 고대사학회장), 박시인(알타이 인문학회 회장) 등 국사찾기협의회 조직.

1979년 11월, 필사, 영인하여 100부로 한정된 한문본이 출간되었고, 박창암([1]기사참조)을 통하여 일본의 변호사 출신 재야학자 카지마 노보루에게 원본을 전달하였다.

1982년 일본에서 우익과 재야학자[2]의 추천 글이 실린 일역본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1985년 일반을 대상으로 한 첫 한글 번역본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1986년 국사교과서 파동[3]

내용

《환단고기》는 《삼성기 상(上)》, 《삼성기 하(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5권을 엮은 책이다. 《삼성기》는 환웅이라 불리는 왕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단군세기》는 《규원사화》와 유사한 47대의 단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북부여기》는 북부여에 6명의 왕이 있었으며 이것이 고구려의 전신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태백일사》는 환국, 배달국, 삼한,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성과 참고문헌

구성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上, 안함로(安含老) 찬(撰)
  • 삼성기(三聖紀) 下, 원동중(元董仲)
  • 단군세기(檀君世紀), 행촌 이암(李嵒)
  • 북부여기(北夫餘紀),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 찬
    • 북부여기(北夫餘紀) 上
    • 북부여기(北夫餘紀) 下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한국본기(桓國本紀)
    • 신시본기(神市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마한세가(馬韓世家) 上
      • 마한세가(馬韓世家) 下
      • 번한세가(番韓世家) 上
      • 번한세가(番韓世家) 下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환단고기》의 참고 문헌

《대변설(大辨設)》, 《삼성밀기(三聖密記)》, 《삼한비기(三韓秘記)》, 《조대기(朝代記)》, 《진역유기(震域遺記)》, 《표훈천사(表訓天祠)》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진서인가?

《환단고기》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쪽의 주류 역사학계는 위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79년에 처음 등장한 이유가 불명확하고, 각 시대의 저자들의 시대에는 없었던 용어들이 등장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후대의 위작으로 여기는 것이다. 중국 학계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으며,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의 학계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대한민국 학계

환단고기는 단기고사와 함께 후대의 위작이라는 주장에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고 있으며, 그 저술시기는 1920년대 초반, 1949년, 1979년 부근 등의 이견이 있다. 고조선의 광대한 묘사나 환국배달국의 기록 등은 근거가 부족하고 과장된 역사로 판단, 사서로서의 내용 채택을 보류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계는 《환단고기》가 위작인 것은 분명하나, 어딘가 다른 사료에 기반해 있어 연구의 가치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규원사화》와 발해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는 《단기고사》 등을 국사연구 서적에 인용하여 제1대 단군성조부터 47대 고열가단군까지 47대 단군과 단군세계를 기술하고 있으나, 2천 년 간 47대로 《환단고기》와 거의 유사하게 설정된 《단기고사》의 연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자조선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전조선, 후조선의 구분은 채택하였다. (허종호, 고조선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남-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 3. 40쪽 등 참조).

일본의 학계

처음 소개될 당시, 일본의 재야학자(吾鄕淸彦)는 환단고기를 "아시아의 지보"라 극찬하고 우익 또한 환영하였으나, 이와는 별도로 시대와 맞지 않는 용어의 등장, 인용문헌의 불명확함 등의 이유로, 고대 역사를 주장하기 위한 위서로 간주한다. 또한,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伝)[4] - 실사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의 사서(일본어 위키백과) - 과 비슷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진서론

진서라는 측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후세에 일부 가필되었음은 인정하지만 편찬자로서의 지식의 첨가이며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다.
    1.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했다면 보다 완벽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 환단고기에는 민족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일관된 흐름이 있다.
    1. 각 권마다 구성의 치밀함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삼국 시대 이후의 불교 사상이나 고려·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과는 다른 한인 시대부터 독특한 "삼신사상(三神思想:한사상)"이라 하는 민족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고대사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도교 사상(道敎思想)과도 거리가 멀어 신라 시대 최치원이 말한 현묘지도(玄妙之道), 신채호 선생의 낭가사상(郎家思想) 등으로 표현되는 고유의 전통사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삼신사상은 오히려 불교 사상이나 유교 사상보다 훨씬 원초적인 인간존중의 사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구체적 방법론처럼 제시되고 있다.
  3. 기존 학계가 밝혀내지 못한 내용들이 있다는 것이다.
    1. 환단고기는 고조선의 위치, 정부 형태, 정치 제도, 풍습 등과 부여의 건국과 역사, 고주몽의 계보, 발해의 건국 비화 등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신화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환인, 환웅, 단군 등이 각각 한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군장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각 시대에 대한 역대 계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20세기 초엽에 발굴된 중국 선사 시대의 유적들이 환국과 배달국과 유사한 시기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환단고기》를 진서로 간주하는 논문은 다음과 같다.

  • 김막순, 한국민족의 형성에 관한 연구 :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국방대학원, 2000
  • 박병섭, 단군과 기자 관련 사료를 통해 본 《한단고기》의 역사성 검토, 한국종교사학회, 2003

위서론

《환단고기》가 위서(僞書)이며 사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 이도학, 〈在野史書 解題《桓檀古記》〉, 《민족지성》, 1986년 11월호
  • 조인성, 〈《揆園史話》論添補〉, 《慶大史論》3, 1987년, 경남대학교
  • 이순근, 〈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 성심여자대학교, 1987년 5월 15일
  • 조인성, 〈現傳 《揆園史話》의 史料的 性格에 대한 一檢討〉, 《李丙燾 九旬紀念 韓國史學論叢》, 1987년
  • 조인성, 〈《揆園史話》와 《桓檀古記》〉, 《韓國史市民講座》2輯, 1988년
  •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 《역사비평》10호, 1990년
  • 이상시,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 고려원, 1990년

이들 위서론의 논점은 다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용어사용의 부적절
    1. 사백력(시베리아), 흑수(흑룡강), 파나류산(파미르고원), 수밀이(수메르), 우루, 지백특(티베트), 남녀평권, 부권, 상춘, 영고탑 등 시대와 맞지 않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2. 인용서적의 불분명
  3. 저술연대와 저자 문제
  4. 후대의 글 인용 등 내용상의 모순

고조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1920년대 이후로 일반에 알려진 《규원사화》는 단군조선 47대 임금의 명칭은 유사하나, 대부분의 내용이 다르며, 일부 내용이 겹치고 있으나, 그 연대, 치세기간, 내용에 차이가 있다.

1949년 ~ 1959년에 일반에 알려진 《단기고사》와 고조선 47대 단군의 재위연수와 각 시대의 여러 부분의 내용이 일치하며, 구한말 이후에 지어진 글이 각자의 본문 내용에 맞추어 변경, 인용된 듯한 부분이 있어, 《환단고기》가 《단기고사》를 토대로 씌여진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기술된 2천 년 간 인구 1억 8천만명에 가까운 인구를 유지했을 고조선이 남긴 유적(거주지나 무덤)과,《환단고기》의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의 유적이 거의 발굴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책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중도론

《환단고기》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가필되었음은 인정하지만, 그 내용에 포함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한말 ~ 일제강점기 초에는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전래되는 도가 계통의 흐름이 있었고, 복원본이지만 《환단고기》에 이러한 내용이 표출되었으리라는 의견이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가필의 정도를 알 수 없으므로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과, 직접적인 인용은 피하면서 대체적인 흐름만은 참조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전자에 해당되는 논문은 다음과 같다.

  • 정영훈, 단군민족주의와 그 정치사상적 성격에 관한 연구 : 한말-정부수립기를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1993

후자에 해당되는 논문은 다음과 같다.

  • 박창범, 라대일,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한국상고사학보》, 14, 95, 1993

참고 문헌 및 링크

  1. "단군신화설은 식민사학자들의 왜곡.농간", 고준환(경기대 법학과 교수), 개천절에 되새겨 보는 '실증적' 단군조선사, 오마이뉴스, 2003-10-03 13:15
  2.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한 새로운 이해』, 조인성(경희대 사학과 교수), 국토포탈사이트
  3. '환단고기' 토대로 상고사 연구 보류해야 - 검증안 된 내용 왜곡 우려, 정영훈(한국학중앙연구원), 제주대 신문, 2004-03-31
  4. 김정배, 한국사 권4 - 초기국가 – 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pp.53
  5. [5] 안창범(제주대 명예교수), 桓檀古記 僞書論 批判, 한국종교사연구 통권 제10호 (2002. 2)
  6. 이도학(한양대 강사), 桓檀古記, 민족지성 9('86.11), 民族知性社
  7. 조인성, 韓末 檀君關係史書의 再檢討 :《神檀實記》·《檀奇古史》·《桓檀古記》를 中心으로, 국사관논총 제3집 (1989. 10), 國史編纂委員會
  8. 한영우(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외,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 일지사, 2002
  9. 이상시(변호사),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 고려원, 1990
  10. 송호수(Baylor Univ. 명예교수), 韓民族의 뿌리思想, 가나출판사, 1985
  11. 전병훈, 정신철학 통편(精神哲學 通編), 1919
  12. 허종호, 고조선력사개관, 사회과학출판사 남- 도서출판 중심 펴냄, 2001
  13. 사료비판(일본어 위키백과)
  14.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일본어 위키백과)
  15. 위서(영어 위키백과)
  16. 위서(일본어 위키백과)

같이 보기

각주

  1. 《'책'의 운명》, 이중연, 혜안, 2001년, 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