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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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蔣英實, ? – ?)은 조선 전기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이다. 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난 장영실은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취미와 재주를 가졌다. 청년 때에는 관청에서 일하는 노비가 되었느며, 그의 훌륭한 재주가 세종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궁궐로 불려 갔다. 그 후, 세종 임금의 보살핌으로 노예 신분도 벗고 과학연구에 몸 담아 물시계, 해시계를 비롯한 천문 관측 기구와 금속 활자를 만들어 냈다.

장영실의 측우기(높이 30.9 센티미터, 지름 14.4 센티미터의 개량 기구)는 서양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셰계 최초의 발명품이다.

1442년 상호군 (정3품)의 높은 벼슬은 받은 장영실은 그 해에 세종 임금이 탈 가마를 만들었다. 그러나 종묘로 행차하던 도중 교군 (가마 메는 사람) 한 사람이 넘어지면서 가마가 부서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장영실은 옥에 갇히고 벼슬도 빼앗겼는데, 그 후엔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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